벤야멘타 하인학교 (양장)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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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여기서 배우는 것이 거의 없다. 가르치는 교사들도 없다. 우리들, 벤야멘타 학원의 생도들에게 배움 따위는 어차피 아무 쓸모도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훗날 아주 미미한 존재 누군가에게 예속된 존재로 살아갈 거라는 뜻이다. (7)

이 책의 시작이다. 책의 결론도 이 시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산책자'라는 에세이로 많이 알려진 로베르트 발저는 에세이뿐 아니라 소설도 남겼는데 <벤야멘타 하인학교>라는 이 장편소설도 그중 하나이다. 그가 출간한 세번째 소설이자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작이기도 하다. 독일어 원제는 '야콥 폰 군텐 이야기 (Jakob von Gunten)'. 여기서 야콥 폰 군텐은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 이름이다. 

야콥의 목표는 하인이 되는 것이었고 그래서 하인을 양성하는 학교인 벤야멘타에 입학한다. 이 학교에서 배우는 유일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이런 학교가 있을까? 벤야멘타 원장과 그의 여동생인 리자 벤야멘타양이 교사로 있는 이 학교에서 생도들이 하는 일은 이 학교의 규정들을 달달 외우거나 학교의 지향하는 목표등이 적혀 있는 책을 보는 일이다. 

어떤 생도는 따로 혼자 프랑스어 따위를 공부하기도 하고 작은 일탈 행위를 하는 생도도 있는 등, 집단내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소소한 일과 인간 관계에서 오는 갈등은 여기에도 존재한다. 

이 학교에서는 생각한다는 일 조차 쓸데 없는 일이다.

순응하는 것, 그건 생각하는 일보다 훨씬, 훨씬 더 고상한 일이다. 생각을 하면 저항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은 항상 꼴사납게 일을 망쳐버린다. 철학자들, 그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망쳐놓았는지를 알기나 할까.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무언가를 행한다. 그게 훨씬 더 필요한 일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머리들이 쓸데없이 일하고 있다. 학술적으로 다루고 이해하고 지식을 갖게 되면서 인류는 삶에 대한 용기를 서서히 잃어버리고 있다. (101)

이것에 대해 누군가는 동의를 하고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나는 이 문장을 비유적 표현으로, 과장된 표현으로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만큼 살았나보다. 그렇게 살았나보다.

이 소설에서 하이라이트는,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다른 생도들을 보며 나도 일하러 나가고 싶다고 하는 야콥에게 벤야멘타 원장이 야콥을 말리느라 쏟아붓는 긴 대사중 에 나오는 다음 부분이 아닐까 한다.

내가 이제 막 너라는 놈을 얻게 되자마자 내게서 멀리 달아나버리고 싶다는 말이냐?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 학원에서 네가 할 수 있는 한 맘껏 지루해보거라. 오, 이 어린 세계의 정복자여, 세상에서, 세상 밖에서 비로소, 일을 하거나 무언가를 위해 노력할 때 무엇인가를 쟁취할 때, 그때, 그때 지루함의 바다가, 적막과 고독의 바다가 네게 그 깊은 심연을 드러낼 거다. 이곳에 그냥 머물러라. 조금만 더 동경하는 거야. 동경 속에, 그러니까 기다림 속에 어떤 축복이, 어떤 위대함이 있는지 너는 믿을 수가 없을 거다. 그러니 기다려라. (145)

야콥에게 호의를 베풀고 걱정해주던 벤야멘타 양 마저 세상을 떠나고 대부분의 다른 생도들도 학교를 떠난 후 결국 야콥은 혼자가 될 원장과 함께 길을 떠나기로 한다.

삶이 원하는 것은 격동적인 움직임이라는 것, 성찰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느낀다.

생각하는 삶일랑 이제 집어치운다. (184)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거의 모순에 가까운 말을 남긴다.

이제부터 나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신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 신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신에 대한 생각을 한단 말인가? 신은 생각하지 않는 자와 함께 간다. (184)


야콥이 마지막으로 짐을 꾸려 떠나는 그곳은 어떤 곳일까? 책 속에는 황야 또는 사막으로 그려져 있지만 그것이 나타내는 곳은 어떤 곳일까 생각하며 이 책을 구상했을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마치 노자의 무위 사상을 연상하게 하는, 그런 생각을 소설로 쓰기로 한 로베르트 발저의 마음 상태를. 

알다시피 로베르트 발저는 일생동안 세상에 알려지기를 극도로 꺼려하며 살아간 사람이지만 그가 발표한 작품들은 카프카, 헤세, 벤야민 등의 쟁쟁한 인사들에게 높이 평가되었다. 아직 이들도 아웃사이더에 속하는 시대였긴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 이전에 그를 인정한 이런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로베르트 발저가 너무 오래동안 요양원과 정신 병원에서 세월을 보내며 단절된 채 살았다는 것은 지금도 안타까운 일이다.


벤야멘타 하인학교는 로베르트 발저의 일생을 나타낸 것 같기도 하고, 우리 모두 살아가는 동안 한번씩 거쳐가는 시공간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생을 마치는 반면, 어느 누군가는 벤야멘타 학교를 떠나 새로운 곳을 향해 갈 것이다. 그곳이 거친 황야나 사막일 지라도. 지루함과 적막과 고독을 불사하고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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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법
오한기 지음 / 현대문학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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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으로 내가 지금까지 읽은 가장 난해한 한국 소설은 김태용의 <풀밭 위의 돼지>였다. 정지돈의 에세이 한 권 읽은 댓가로 지금 몇권째 줄줄이 독서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오한기 이 소설도 그렇게 읽게 되었는데 김태용의 풀밭 위의 돼지 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 역시 어떻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하나 고민을 남겼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하지만 풀밭위의 돼지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책장이 넘어간다. 작품에 대한 모호한 해석을 숙제로 남길 뿐 읽는 속도를 방해할 정도의 난해함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독성은 좋다. 

1985년생, 2012년에 등단한 이 작가는 현실에서 박리되어 나와 현실을 다시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며, 한번 세상에서 동떨어져 세상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사실주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읽으면 영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 싶다.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있어 하나의 장편을 읽는 것보다 작가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작품수가 많아서 좋다.


파라솔이 접힌 오후

자살한 컨트리 가수 W를 추앙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서점의 손님이었다가 임시직원이 된 '나'는 W의 평전 <파라솔이 접힌 오후>를 읽으며 평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실제 인물인 서점 주인, 손님 튀기, 유리를 대입시켜 생각한다. 이 모든 사람이 '서점'이라는 커다한 파라솔 아래 있다는. 파라솔 아래서 이들은 파라솔을 접고 햇빛에 맞서 견딜 시기를 망설이며 기다리고 있다.


더 웬즈데이

제목 '더 웬즈데이'는 예전에 실제 있었던 주간지 '선데X 서울'을 연상시키는 대중 주간지 이름이다. 여배우와 불륜의 관계에 있던 아버지의 사망기사가 더 웬즈데이에 실린 것을 본 '나'는 곧 없어질 상가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며 포르노 소설을 쓰는 초급 작가이다. 아버지의 납골당으로 가는 중에 아버지의 불륜 상대였던 여배우의 인터뷰 기사가 난 것을 보며 노출 영화에 씌워질 가면과 해석을 생각한다.


나의 클린트이스트우드

아날로그 시대의 종말, 영화관의 종말, 서부극, 마초 영화배우의 종말을 얘기하며 추억을 되새기는 작가의 방식은 이렇게 한편의 소설이 되었다. 


유리

오한기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인 '유리'라는 인물은 여기서 살인청부업자. 기이한 언행과 행동을 소재로, 한 작품 써보려는 글 속 작가지망생의 과정을 그린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미완의 느낌이 강한 단편이다.


햄버거들

'나'는 작가지망생, '한상경'은 시인 지망생. 한상경은 햄버거가 최고의 문학적소재라고 떠들어대며 햄버거와 관련된 유명작가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다. 말도 안되는 행동이라며 한상경을 이해 못하던 나도 어느새 햄버거 얘기만 하고 있고 햄버거를 통해 문학을 해석하고 있다. 나와 한상경이 함께 알고 있는 여자 최승자도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왜 썼을까 갸우뚱 하게 하는 작품이 이것뿐만은 아니지만 소재어를 들라면 많아도 주제어를 말하라면 없는 것도 이 작가 작품들에 공통적이다. 작가로서 관점과 의식의 확장 연습이었을까?


볼티모어의 벌목공들

상황설정은 많은데 다 읽고나서 주제어가 떠오르지 않는 모호함으로 남는 또 하나의 단편이다. 시작은 독특하나 그만한 결말이 아닌 것은 이 단편만의 특징은 아닌듯하다. 포르노적 묘사가 빈번하게 출현하는 것도 거슬리기 시작하여 읽기를 방해했다.


열네살

말이 열네살이지 스무살은 되어 보이는 소년의 직업은 도시락 배달. 여기서 작가는 모든 상황을 도시락의 종류와 상태에 비유한다. (예; '텅 빈 도시락', '도시락 속에서 온갖 반찬들이 뒤섞이는 기분 같았다'). <햄버거들>에서 모든 문학작품을 햄버거에 비유했듯이. 오한기 소설에서 여자를 묘사하는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고 물질적이라는 아쉬움이 쌓여간다.


의인법

나와 한상경은 아직 유명해지기 전의 소설가. 소설가로서의 능력이 있는건지 자아비판하며 하루라도 빨리 유명해져보고자 망상인지 소설인지 모를 글을 써대고 헛소리 같은 말을 해댄다. 어느 날 한상경은 자기의 정체가 외계인이었다고 지껄여대고, 처음엔 헛소리로 흘려듣던 나 역시 언제부터인가 외계인 생각에 빠지게 되어 자기도 혹시 외계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어 외계인 '나'가 나오는 소설을 쓰기에 이른다. 

실제 외계인도 이보다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비현실적인 내용이다.


새해

한동안 잠적했던 한상경이 아이를 안고 내 앞에 나타난다. 아이의 이름은 피츠제랄드. 한상경 대신 그 아이를 돌봐주게 된 나는 아이를 피츠제랄드가 아닌 친친나트라고 이름 부른다. 같은 아이의 이름이 돌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불리게 한것은 문학을 하는 사람에 따른 문학적 롤 모델, 혹은 지향하는 문학이 다름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아이의 존재는 자연적으로 생겨났다기 보다 '납치'의 형태로 오게된다는 것이 이 작품의 포인트.


아홉편의 단편이 독립적인 작품이지만 동일 인물이 중복해서 출현하기도 한다.

아홉 편을 통해 나타나는 오한기 작품의 특징을 정리해보았다.

1. 완성된 플롯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 떠오른 한 두 문장에서 출발하여 거기서 어떻게 소설을 한편 써볼까 생각하여 써가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작품화 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2. 아직 큰 인정을 못 받고 있어 더 유명해지고 싶고 자기 미래에 끊엄없이 회의하는 작가가 '나'로 나오고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그러나 같지는 않은 사람이 또 하나 짝을 이루어 등장한다. 예를 들면 여러번 다른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한상경' 같은 인물이다. 모두 작가 오한기 자신이 투영되었다고 보이는데 이들은 생계를 위해 전업 작가보다는 다른 직업을 병행하여 가지고 있다. 포르노 작가, 자서전 대필, 학원 강사, 서점 직원, 햄버거 가게 직원, 식물 학자 등.

3. 현실과 상상 속 세계, 진실과 허구 사이를 구분 없이 드나든다. 없는 존재, 없는 나라, 없는 지명, 없는 질병 이름을 수시로 지어내어 작품 속에 등장시키니 주의하여 읽어야 하는데, 작가는 이미 존재하는 세상이 재미없었을까? 세상과 동떨어져 작가 마음대로 지어내고 마음대로 일을 벌인다. 작가는 소설이 그릴 수 있는 세계의 범위를 그렇게 넓히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방식을 택하는데, 이런 방식의 글에서 문제는 그래서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는지, 상상과 허구의 세계까지 범위를 넘어가며 알아온 것은 무엇인지 모호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영역은 넓어졌으되 손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 꿰지 않은 서말의 구슬일 뿐이라면.


오래간만에 눈에 띄는 한국 소설을 읽어서 좋고, 적어도 이 작가를 다른 어떤 작가와 혼동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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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월12일 논산 윤증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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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1-17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멋집니다. 설마 개집인가요?

hnine 2024-01-17 15:35   좋아요 1 | URL
개집 맞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본 개집 중 기와올린 개집은 처음이어요.
집 옆에 집 높이를 넘어서는 나무와, 돌로 만든 물그릇까지, 멋스럽지요?

stella.K 2024-01-18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역시 빼대있는 집 개는 클래스가 다르군요. ㅋㅋ

hnine 2024-01-19 14:15   좋아요 1 | URL
제가 윤증고택을 세번 방문했는데 처음 갔을때부터 눈에 띄는 개였어요. 아직까지 있더라고요.
처음엔 개를 보느라고 집은 눈여겨 안봤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 저렇게 근사한 개집을 본적이 있나 싶어요.

레삭매냐 2024-03-09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래 전에 답사로 간 적이 있는데...
이름만 들어도 반갑네요.

마당의 댕댕이, 표정이 비장하네요 왠지.

hnine 2024-03-09 09:55   좋아요 1 | URL
여기 다녀오셨군요. 저는 벌써 몇번째 가는지 몰라요. 집에서 가까우니까요.
댕댕이가 표정은 비장한데 가까이 갔는데 무반응이라 사진까지 찍게 두더군요. 갑자기 짖거나 달려들면 도망갈려고 했는데 ^^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7
장 자크 루소 지음, 문경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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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나는 이제 이 세상에서 나 자신 말고는 형제도, 이웃도, 친구도, 교제할 사람도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7)

이 책의 시작이다.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사교적이고 정이 많은 내가 만장일치로 인간 사회에서 쫓겨난 것이다. (7)

사람들과의 연이 끊어졌다고 생각한 루소는 자신에 대한 비난에 맞서 사회도 아니고 신학도 아니고 대중도 아닌, 나 자신의 문제로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고백록>을 썼고, <대화:루소, 장자크를 심판하다>를 썼고, 마지막으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쓰던 중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에밀> 등의 저서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루소를 우리는 보통 계몽주의 철학자, 사회계약론자 등의 학술적인 분야에서 활동한 학자로만 알고 있지만 그는 식물채집에 몰두하기도 하였고 악보 표기법을 정리하여 그에 관한 글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으며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다.  

인간 불평등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로 사회제도, 소유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를 추구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던 루소는 그의 과거 행적중 그의 주장과 모순되는 것들이 대중에게 밝혀지면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회의를 느끼고 이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자기 자신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자신에 관한 글을 쓰기로 한 루소는 많은 시간을 산책을 하며 보냈다. 첫번째 산책, 두번째 산책...이렇게 소제목을 붙이며 써나가던 글을 열번째 산책까지 쓰던 중 세상을 떠났다. 

나 자신은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 내게 남겨진 탐구의 주제다. (7)

여러 분야의 학자들과 교류하고 관심을 가지며 사회 불평등과 인간이 비참함을 해소하고자 연구하고 글을 써왔던 그가 결국

해야했던 일은 본인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고 고백한 이 책은 그의 자서전이기도 하며 명상록이기도 하다.

자신의 저지른 일의 오류, 또는 무오류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기준과 증거 역할을 하는 것은 지식이나 이성이 아니라 양심이었다.

내 마음이 아쉬워하는 행복이란 덧없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는 조금도 강렬하지 않지만 지속되면서 점점 매력이 커져 마침내 그 속에서 최고의 행복을 찾게 되는, 그런 단순하고도 영원한 상태다. (85)

말년에 루소가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었을때 끝가지 자신을 변론하며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대신 택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피ㅐ야만 했다. 그럴 때는 만인의 어머니인 자연으로 피신하여 그 품에서 형제들의 공격을 면하고자 했으며 내게는 배신과 증오만을 품은 악인들의 사회보다 차라리 지독한 고독이 더 나아 보였기에 나는 혼자가 되었고 그들이 말하듯 사교성 없고 사람 싫어하는 괴짜가 되어버렸다. (115)

그리고 찾은 자연.

사람들을 피해 고독을 찾아다니고 더이상 상상하지 않고 생각도 한층 덜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생기 없이 우울한 무기력에 빠져 있지 못하는 활달한 기질을 타고난 까닭에 나는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그중 가장 기분좋은 대상들을 선택했다. (116)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었다고 하여 세상으로부터 고립은 아니었다. 그는 더 큰 대상들을 찾았으니 말이다. 자연 중에서 광물계, 동물계 대신 식물계를 그 대상으로 삼아 식물학자가 된 이유가 나온다. 그리고 뒤늦게 식물학자로서의 생활을 택한 것은 식물학이라는 학문이 대단해서라기 보다 오히려 단순한 오락거리로서라고 했다. 이런 여유와 느긋함이 어쩌면 본질적인 학문의 세계가 아닐까.

책 읽기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목의 '몽상'은 '사색'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보았다. 마침 해설에 몽상에 대한 번역자의 멋진 설명이 있기에 여기 옮겨본다.

'몽상'은 무엇보다 일상의 흐름에서 벗어나 인간을 현실에 부재하게 만드는 깊은 성찰과 명상, 그러한 상태를 야기하는 자연 속에서 모든 감각을 잠들게 하는 반수면 상태의 의미를 포괄한다. (182)

루소는 이성적인 사유 능력이란 인간이 후천적으로 획득하는, 자연에 반하는 활동이고 훈련이라고 했다. 반면 루소에게 있어 몽상은 식물채집처럼 대상물에 의해 촉발되는 즐거운 기억의 연장이기도 하고, 아무런 대상 없이 공기와 물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긴 채 온전히 현재 자신의 존재감만으로 영혼 전체가 채워지는 초월적인 체험으로서의 몽상이다. 

존재의 본질을 체험하는 몽상. 이것은 'daydreaming'과는 다른 차원의 체험인 것이다. 

사람들과의 고립을 고독이라고 부르든 무어라고 부르든 우리에게는 여전히 우리들을 품어줄 대상이 있고 그것은 더 크고 더 깊은 행복감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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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쏜살 문고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박광자 옮김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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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꾼'이라고 하면 보통 '말'하기를 좋아하거나 '말'이 많은 사람을 일컫지만, 말이 아니라 글로 본다면 로베르트 발저는 분명히 글수다꾼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1878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로베르트 발저 (Robert Walser) 우리에게 <산책자>라는 에세이로 많이 알려져있는데 소설과 희곡을 여러편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다. 스위스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빈곤한 가정형편으로 생계를 위해 일찍이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유럽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여러 직장을 전전하였다. 그러던 중 스무살때 신문 지상에 시를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희곡과 소설을 발표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정신 질환으로 사망한 어머니에 이어 형도 정신질환을 앓다가 요양병원에서 사망했는데 로베르트 발저 역시 오십세 무렵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에 입원을 시작으로 창작활동이 중단되었다. 이후 그는 죽을 때까지 이십년 이상 정신요양원에 머물렀다. 조용하지만 열광적인 산책자였던 그는 1956년 크리스마스날 역시 산책을 하던 중 심장 마비로 눈길 위에서 생을 마친다.

사후 그의 짧은 글들을 모아 출판된 이 책에는 열편의 글이 실려있고 열편중 가장 긴 산문 <산책 (Der Spaziergang)>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사람들과의 교류없이 혼자 걷고 혼자 생각하며 혼자 글쓰기가 전부였던 로베르트 발저이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생각이 많고 느끼는 것도 많고 눈여겨 보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마 그가 가끔만 걷는 사람이었다면, 누구와 동행하며 담소를 나누며 걸었다면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했을 것들, 사람 눈길이 미치지 않는 자연의 구석구석을 얼마나 세세히 보고 관심을 가졌었는지 놀랄 정도이다.

매일 그게 그것일수도 있는 풍경이 그에게는 달랐다. 새로운 것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찾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은 곧 나 자신의 결핍이라고 하였다.

완전히 새로운 것에서 계속 즐거움과 맛보기를 찾는 것이야말로 나는 하찮다는 징조, 내적인 삶의 결핍, 자연에서 소외된 것, 이해력이 보통밖에 안 되거나 혹은 부족한 상태라고 본다.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과 색다른 것을 봐야 하는 것은 아이들이고, 아이들은 그렇게 해야 만족한다. 진지한 작가라면 소재를 쌓아 놓는 일에 신경 쓰거나, 감칠맛 나는 욕망에 부응하는 심부름꾼이 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자주 비슷해지는 것을 열심히 피하기 위해서, 물론 노력은 하지만 몇 번이고 계속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것이라면 작가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67)


포함된 이미지: Plant These Winter Flowers to Brighten Up Your Garden or Landscape


한 겨울에 피는, 수선화를 닮은 작고 소박하고 여린 꽃, <스노드롭 (사진)>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어보면 그가 어떤 심성의 사람인지 엿볼수 있다.

스노드롭을 보았다. 마당에도, 장에 가는 시골 아낙의 수레에도 있었다. 한다발 사고 싶었지만 나처럼 건장한 사람이 그처럼 섬세한 생명을 가지는 것은 맞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온 세상이 반기는 소식을 전하는 이 부끄럼쟁이, 무엇보다도 빠른 전령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96)

추위를 말하지만 이미 더 따뜻한 것을 말하고, 눈을 말하지만 녹색 세상, 움트는 싹을 말한다고 했다..

바라는 것은 이루어질 것이고, 따스함이 세상을 덮으리라고.

조금만 기다리자. 행복이 오고 있다. 행복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에 있다. 기다리면 복이 온다. 최근에 스노드롭을 보았을 때 나는 이 오래되고 좋은 속담이 생각났다. (97)


그가 기다리는 행복은 어떤 것이었을까. 

혼자 할 수 있는 작고 조용한 행위의 반복에서 최대의 의미를 찾기 원했던 로베르트 발저는 보통 사람이면서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산책자>, <세상의 끝>에 이어 <산책>을 읽었으니 이제 그가 남긴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빌려다 놓았다. 무엇을 가지기 위한 것을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님을 배우는 학교라고 한다는 정도 알고 읽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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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1-11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베르트 발저가 글수다꾼이라니 그러니까 읽고 싶은 생각이 확 드네요. ㅋ
사진 속 꽃은 눈속에 피는 꽃인가 봅니다. 신통한데요?^^

hnine 2024-01-12 07:18   좋아요 1 | URL
사람과 교류가 거의 없었던 사람이 얼마나 섬세하고 자연과 사람에 관심이 많았는지 몰라요. 그걸 모두 글로 표현해놓았고 그게 다른 사람이 말로 표현하는 분량만큼 되나봅니다.
스노드롭이란 꽃은 우리나라 복수초가 눈속에서 봄소식을 알리듯이 외국에서 그런 상징인가봐요. 수선화를 닮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