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Lecture (Paperback, International Edition)
랜디 포시 지음 / Hyperion Books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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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출간 당시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책. 언제부터 내집 책장에 꽂혀있었는지 모를 책을 이제서 꺼내 읽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는 말로 인생의 허무함을 한탄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말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사람은 과연 빈손으로 가는것일까.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그럴지 모르지만 정신적인 영향력, 가르침도 포함한다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2006년 췌장암 진단과 함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통고받았을때 저자인 Randy는 아직 40대였고 어린 세 아이의 아빠였으며 카네기멜론 대학 컴퓨터학과의 촉망받는 교수였다. 남아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족들과 함께 하며 어린 자식들의 기억 공간을 채워주고 싶었지만 그 시간을 쪼개어 그는 자신의 아이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뭔가 더 구체적인 것을 남기고 가고 싶었다. 아내 Jay의 말에 의하면 그는 원래 자기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자기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그 기간이 Randy 에게는 힘든 항암의 화학치료 기간이기도 했지만, 돌아보건대 암치료를 위해 주어지는 그 어떤 약보다도 그가 쓴 이 책을 읽은 사람들로부터의 긍정적이고 애정어린 반응을 받았던 것이 그에게는 더 좋은 것이었다고 아내는 회상한다. 그는 마침내 불과 1년 전만해도 자기가 지금 이런 일에 시간을 쏟을거라고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을 히작한다. 길지 않은 생을 돌아보고 남겨질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남겨질 이야기들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연을 하였고, 책으로 출판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이든, 그렇지 못했던 사람이든,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가늠하여 생의 성공여부를 말하곤 한다. 얼마나 남기고 갔느냐는 말의 '얼마나'에는 재산, 직위, 때로는 자식의 성공 여부까지 포함시켜서 말할 때가 많으면서 말이다.

자기가 태어나는 때를 스스로 정하지 못했듯이 생의 마감도 자기가 정할 수 없는 것.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다. 그 뻔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우리는 왜 그 순간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는 것일까.

흔히 나이들으면 말이 많아진다고 한다. 남의 말을 듣는 대신 자꾸 자기가 살아온 얘기를 꺼내어 한번 시작하면 끝낼 줄을 모르는 경향을 말하는 것이다. 자기에게는 재미있을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길게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은 채 말이다. 거기에 남을 가르치는 듯한 말투까지 보탠다면 상황은 더 못견딜 상태로 치닫는다. 이런 일에 대한 대안으로서 "내 말 좀 들어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에 해당하는 내용을 아무나 붙잡고 말을 하는 대신 혼자 글로 써보면 어떨까.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도 되고 억지로 듣는 사람을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30년을 살든, 70년을 살든, 이 세상을 떠날 생각을 하면 누구나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것들을 자기의 경험을 기본으로 하고 경험을 통해 얻은 생각을 잘 정리하여 에피소드 형식의 지루하지 않은 얘기들을 "The Last Lecture"  라는 제목으로 남겨주었다. 학생들과 interaction이 활발하던 젊은 교수였기 때문인지 강의라기 보다는 한바탕 그의 수다를 들은 느낌일 정도로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며, 그러면서도 요약이 잘 되어 결론이 분명하고 확실하다. 이해하기 쉽고 전달력이 확실한, 강의라고 치면 명강의이다.

 

Experience is what you get when you didn't get what you expected. (148쪽)

경험이란 당신이 기대하던 걸 얻지 못했을때 얻은 그 무엇이다.

 

'The Eaten By Wolves Factor' (160쪽)

: 어떤 일을 하기 앞서 worst case scenario를 생각해보는 것. 더 잘 준비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이다.

 

Once you get over them, it can be helpful to others to tell them how you did it. (174쪽)

당신이 일단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극복해야 나중에 그것이 어땠노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A lot of parents don't realize the power of their words. An offended comment from Mom or dad can feel like a shove from a bulldozer. (198쪽)

많은 부모들은 그들이 하는 말의 위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엄마 아빠가 화 나서 던지는 한마디는 (자식들에게) 불도저가 와서 밀어붙이는 것 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지 3년만인 2008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가 결코 빈손으로 떠났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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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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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하고 긴 검은 머리, 검은 테 안경, 장갑 낀 손으로 애견 '애니'를 옆에 끼고 카메라를 향해 웃는 모습.

이 책을 다 읽고 궁금해서 찾아본 그녀의 모습은 25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릴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고 평화로왔다.

▶ https://www.cambridgeindependent.co.uk/whats-on/writer-emma-mitchell-discusses-the-wild-remedy-how-nature-mends-us-9060590/

 

그녀의 우울증은 일조량이 적은 겨울에 심해지고 봄이 오면 나아지는 '계절성정서장애 (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와 많은 부분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그녀가 숲에서 발견하게 된 사실은,

“I realised I could find signs of spring in the woods in the depths of winter. There are many signs visible right now. Back in 2012, when I first found out I had SAD, I started to use those walks in the woods to get through the winter."

(봄의 낌새를 한겨울 숲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봄의 징후가 바로 지금 여러 군데서 보인다. 지난 2012년 내가 계절성정서장애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고나서 나는 겨울을 나기 위해 숲속길 걷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숲속 걷기를 하면서 발견한 것, 숲에서 주워 모은 것, 느낀 것들을 모아 글을 썼고, 꾸미는 작업을 하여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겨울나기>라는 책을 내었다. 그렇게 자연과 교감하는 법을 배워오며 우울증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현재 잡지, 방송, 신문 기고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영국의 박물관과 식물원에서 자연물을 이용한 창작 수업도 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삶이 빚어낸 두번째 책이다.

그녀는 실제 우울증의 압력에 못이겨 저항하다 못해 자살을 시도했던 적도 있다고 했다. 마음이 요동치는 가운데 떨어져 내릴 다리를 찾아 차를 몰고 나가 달리던 중 문득 도로 중앙분리대에서 자라는 조그만 묘목이 눈에 들어왔고, 눈앞을 스치는 푸른 잎사귀와 엔진의 규칙적인 진동에 의해 마음의 진동이 가라앉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고 한다. 마음의 폭주와 소란이 가라앉으며 점차 온전한 상태로 돌아오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다음날 아침 저자는 의사를 찾아가 의학적인 치료를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늘 있어왔다. 이러는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며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우리 인간들이란 인간의 편리와 이익만 생각하며 살다가 지친 몸과 영혼을 끌고 자연을 찾는다. 거기서 위안을 받고 회복의 기회를 발견한다.

이런 자연의 치료 효과는 단지 심리적인 플라시보 같은 것만은 아님을 저자는 이 책에서도 여러번 언급하고 과학적인 근거 논문을 책 뒤에 참고문헌으로 제시해놓았다.

우울증 진단의 대책으로 자연 산책이라는 관념이 더욱 널리 퍼지기를 소망한다. 자연 속을 걷는 일이 특이하거나 괴짜 같은 행동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인간은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근본적 필요성이 일반적인 정신의학과 표준 심리치료법을 보충하는 효과적인 접근방식으로 간주되기를 바란다. (254쪽)

세로토닌이 아니더라도, 피톤 치드 효과에 대해 모르더라도, 도파민에 대해 알지 못하더라도, 꼭 숲이 아니더라도, 목적을 가지고 어디를 향하여 걷는게 아니라 무작정 걸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걷기가 주는 효과를. 걷는 곳이 자연 속이고 숲 속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내가 교회에서 느꼈어야 마땅하지만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모든 감정이 자연 속에서는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26쪽)

저자가 책에서 인용한 소설가 앨리스 워커 (소설 "컬러 퍼플"의 저자) 의 말이다.

이 책의 많은 지면이 여러 새들과 꽃들의 이름, 행태, 변화를 묘사한 내용이어서, 평소 이것들에 무관심했던 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다소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할지라도 언젠가 찾게 될 그날을 위한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근래 몇년 걷기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차지한 나로서는, 더구나 코로나 이후로 갇힌 공간이 아닌, 동네 뒷산을 거의 매일 산책하고 있는 나로서는 읽기도 전에 공감의 준비가 미리 되어 있던 책이었다.

오늘도 산책길에 딱다구리를 보았고, 꿩을 보았고, 매일 그 자리 할미꽃이 얼마나 더 피어있는지 살펴보고 사진을 찍었다. 동물학을 전공하였고 일러스트레이터이기까지 한 저자에 비하면 비교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 기쁨과 행복은 조금은 일치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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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수도사 -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의 잃어버린 삶과 업적
로빈 헤니그 지음, 안인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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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번역본이다.

함께 구입하긴 했지만 번역본이 있으니 아무래도 번역본으로 먼저 눈이 가긴 했는데 읽다가 번역의 원뜻이 궁금할때 함께 참고하며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유전학사, 아니 생물학사에 있어 가장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게 한 발견이라면 DNA보다 앞서 멘델의 유전법칙을 꼽아야 할 것이다.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것이 Nature에 발표된 것이 1953년이었고 멘델이 유전의 근본원리를 내용으로 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 1865년이니 거의 1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후로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 속도와 방향은 이전과 비교 될 바 아니었다.

그레고어 멘델. 182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고 스무살 무렵 브륀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이곳은 현재 체코의 브루노에 해당하기 때문에 지금 그의 흔적을 보기위해선 오스트리아가 아닌 체코의 브루노를 찾아가야한다.

그는 결코 수월하지 않은 과정을 거쳐 수도사의 신분으로 빈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대학에서 딱히 생물학이라기 보다 물리, 화학, 수학, 동물학, 식물학 등 자연과학 제반을 공부하였다. 수도원으로 돌아온 그는 수도 생활과 함께 완두의 잡종 교배 연구를 시작하였다. 왜 그는 완두 잡종 교배를 연구하게 되었을까. 수도사인 그에게 그 연구를 해야하는 책임과 의무를 지워준 사람이 있었을리 없고 그런 자리에 있지도 않았지만 그보다는 그의 과학자로서의 성향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물과 현상을 보는 과학자로서의 눈이 궁금증을 일으켰을 것이고 궁금증에서 발전하여 더 알고 싶고 캐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이것이 요즘의 몇억 짜리 글로벌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완벽한 연구계획서를 만들어내고 추진하는 욕구와 같을까?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만.

옆에서 도와주는 다른 수도사가 실제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유의 과정과 실험 과정을 거쳐 오늘날 멘델의 법칙이라 불리는 소위 3:1, 9:3:3:1 이라는 간단한 보편적 비율에 도달했는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도 그의 실험에 대해 반론이 끊이지 않게 한 여지를 남긴 것이다. 완두라는 식물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었는지, 그토록 형질의 구분이 뚜렷하고 예외가 없는 식물을 골랐다는 것을 두고 그가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완두가 첫 실험 대상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식물로 시도했다가 그중 예외없이 딱 떨어지는 결과를 낸 식물인 완두를 나중에 골라서 논문을 쓴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의문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다. 딱 필요한 결과와 과정만 기록으로 남겼을뿐 모든 실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오직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정확하게 실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어떤 질서를 따라, 어떤 계절에, 그리고 브륀에 있는 성 토마스 수도원의 널따란 안마당의 정확하게 어디에서 그런 실험이 이루어졌는지 우리는 모른다. 멘델이 한 번의 재배 기간 동안에 몇 세대나 식물을 키워 냈는지, 얼마나 자주 온실에서, 또 얼마나 자주 정원에서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또한 우리는 그가 사용한 완두 식물의 총 개체수를 알지 못하고, 그가 작업할때 누가 그를 도와주었는지 아닌지, 아니면 가장 집중적인 실험이 행해지던 시기의 어떤 특별한 날에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멘델은 실험 일지를 쓰지 않았던 것 같고, 만일 그가 그것을 썼다면 그것은 뒷날 사라졌다. (163쪽)

읽으면서 나조차도 믿기 어려웠다. 실험의 성공 여부를 떠나 실험 하는 사람에게 기록은 기본이고, 그것은 실험의 진실성 여부를 가늠하는 제일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것은 실험자로서 상식이나 다름 없는데 실험 일지가 남아 있지 않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그의 실험 결과가 지금까지도 몇가지 예외를 남기고 잘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것들까지도 멘델의 기본 법칙들을 넘어서 더 큰 법칙으로 볼만한 것들은 아직은 없다는 것과, 이후로 밝혀지고 있는 유전학의 제반 현상들이 멘델의 기본 법칙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고 설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1865년 <식물의 잡종에 관한 연구>라는 소박한 제목의 논문으로 10여년에 걸친 거의 혼자만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때 그 누구도 제대로 주목한 사람이 없었다. 당시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지 얼마 안되어 (1859년) 가히 진화론의 찬반이 크게 대립해있을 때였고 그것이 과학계에 던진 돌풍이 가라앉기 전이었다. 멘델은 자기의 논문을 다윈을 비롯해 몇몇 유명한 과학자들에게 보낸 것 같으나 주목은 고사하고 제대로 읽어준 사람도 없는 듯 하다. 멘델은 그후 수도원 원장 직을 맡게 되면서 수도원 행정과 경영 문제, 세금 문제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결과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우연히 그와 같은 연구를 하던 세명의 각기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서였다. 이들 역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어서 이해 관계가 엇갈렸고 갈등도 많았는데 본격적으로 유럽을 넘어서 미국에까지 멘델의 이론을 전파한 것은 영국의 과학자 베이트슨이었다. 이 사람 역시 과학계의 아주 주류에 있던 사람은 아닌 것이, 평생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에 매진했지만 끝내 교수가 되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는 그를 수도사의 불도그 (The Monk's Bulldog)라고 부르며 책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베이트슨의 업적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베이트슨 역시 멘델이 살아있는 동안 멘델과 교류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멘델이 세상을 떠난 것은 1884년, 베이트슨이 영국 왕립원예학회에 돌연변이 이론에 대한 강연 준비차 런던으로 가는 기차에서 각주에 인용된 멘델의 논문을 우연히 접하게 된 것이 1900년의 일이다. 1시간 동안의 기차 여행 중에 베이트슨은 멘델의 논문을 읽고 그 탁월함과 명료함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자신의 강연 내용을 완전 수정하였고 이후 멘델을 영어권 세계에 소개하게 되었다는 추측이다.

책 후반부엔 멘델의 결과를 뒤늦게 발견한 드브리스를 비롯해 베이트슨과 다른 주장을 하는 학파와의 논쟁 과정을 자세하게 기술하는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참고할 기록들이 멘델 자신의 연구에 비해 많다는 것이고 멘델이 얻은 결과가 얼마나 영향이 컸는지 말해주는 것이다. 토마스 모르건의 유명한 초파리 연구, 염색체라는 것이 어떻게 유전자가 위치한 장소로 알려지게 되었는지, 왜 이름이 염색체인지, 유전자 지도가 만들어지기까지, 책의 저자는 비교적 산만하지 않고 정확하게 잘 설명해놓았다.

 

멘델은 내게 늘 더 알고 싶은 과학자였다. 인간 멘델도 그렇고 그의 연구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그래서 그가 평생 봉직하고 실험했던 수도원을 찾아가보기도 했었다. 유전이라는 것에 대해 현장이 아닌 책상에서, 실험이 아닌 이론으로 추론하고 단정하던 시대에, 밭이든 정원이든 손수 실험하여 나온 결과로 유전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한 멘델이 아닌가. 그로부터 100년후 DNA가 유전 물질이라는 것을 알아내었고, 그후로 100년도 안 지난 지금은 그 DNA의 성질을 바탕으로 신종 코로나 진단을 하루에 수만건씩 하고 있지 않나.

멘델에 대한 관심은 생명과학에 대한 관심이고 그 본질에 대한 관심이라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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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ubble Wrap Boy (Paperback)
Earle, Phil / Penguin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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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의 저 소년은 무엇인가로 온 몸을 꽁꽁 둘러싸고 있다. 상품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둘러싸는 비닐뽁뽁이이다. 간신히 눈과 손, 발의 일부만 남기고 포장했으니 내용물의 안전이야 보장되지만 저 내용물이 물건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생물이라면. 그것도 내가 낳은 자식이라면.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와서 배달전문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들 찰리. 찰리는 동양인 외모뿐 아니라 유난히 작은 체구로 아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모자라, 유난히 아들의 안전을 염려하는 엄마의 행동지침때문에 친구들과 맘대로 어울리지도 못하고 하고 싶은 활동을 맘껏 하지도 못한채 늘 위축되어 있고 자신감이 없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공원에서 보드를 타고 있는 애들을 보게 되고 묘기에 가깝게 보드를 타는 모습에 완전히 정신을 빼앗기고 만다.

'나도 하고 싶다!'

오랜만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잘 하고 싶은 의욕이 생겼으나 보드를 살 돈도 없고 엄마의 허락을 얻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포기했을지도 모를 것을, 유일한 친구인 싸이너스의 형으로 부터 무리를 해서 보드를 겨우 대여받고, 혼자 연습하는 것을 보고 약간의 힌트를 주며 다가온 보드 전문가 경지의 동네 남자 아이들의 부추김,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어떤 것보다 의욕을 불타게 만드는 보드의 매력때문에 찰리는 보드를 숨겨놓고 엄마의 눈을 피해 몰래 몰래 배워가던 중, 결국은 엄마에게 들통나게 되고 공원에서 만천하가 다 보는 앞에서 엄마와 찰리가 한판 붙게 된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것은 못하게 하느라 찰리를 마치 어린 아기 다루듯 하길 계속하는 엄마말을 언제까지 들을 수는 없던 것이다.

"All you do is wrap me up in cotton wool!"

더 이상 참지 못한 찰리는 자기를 과잉보호하려는 엄마의 행동을 빗대어 엄마가 자기를 솜뭉치로 둘둘 말아놓지 않냐고 대들고,

"Well, you've seen nothing yet. I'll wrap you in so much cotton wool that you won't be able to move!"

이에 대해 엄마는 더욱 열받아 네가 아직 뭘 못봐서 그러는데 앞으로 진짜 솜뭉치로 잔뜩 감아싸서 옴짝달짝 못하게 만들어버릴테니 두고 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엄마는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며칠 후 정작 그 일을 찰리에게 행한 것은 찰리의 엄마가 아닌 동네 아이들. 엄마와 찰리가 한판 붙는 현장에서 구경했던 아이들은 거 나이 되도록 엄마의 보호 속에 감시받고 사는 찰리를 놀려주려고 뽁뽁이 (bubble wrap)로 찰리의 몸을 완전 포장해버린다. 이 책의 제목이 The Bubble Wrap Boy가 된 이유이다.

아이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그토록 하고 싶은 보드도 못타게 된 찰리. 그래서 보드를 포기하는가?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될리는 없을 것이다. 엄마에게는 다시 타지 않기로 다짐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더욱 보안을 철저히 하고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간다. 꺼림칙한 큰 비밀을 안고 사는 댓가를 치뤄야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없는 엄마 대신 전화를 받다가 찰리는 십이년 동안 몰랐던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에게 여동생이 있고 사고로 크게 몸이 다쳐 말도 못하고 사지가 마비되어 집에도 못온채 병원 요양 시설에 수년째 수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보드를 몰래 계속 타는 것과 비할 바 안되는 큰 비밀이 엄마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그때 여동생과 사고 현장에 함께 있었지만 자기만 온전한채 동생을 잘 보호하지 못하여 동생을 불구의 몸으로 만들었다는 가책에 스스로 시달리며 살아오고 있다. 그래서 찰리에게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을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원천봉쇄하는 방식으로 키워왔던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두 모자의 비밀이 묘하게 얽히며 해소되는 과정, 여기에 찰리 못지 않은 따돌림친구인 사이너스의 우정, 그리고 찰리 못지 않게 사이너스가 주위의 인정을 받아가는 과정이 절묘하게 잘 어우러져 결말을 맺는다.

 

부모가 된 사람들은 아마 이 책을 읽으며 찰리 엄마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가면서도 곧 반성 모드로 들어가보게 될 것이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내 소중한 아이를 눈에 안보이는 투명한 뽁뽁이로 온통 감싸고 키우려고 했던 적은 없는지.

한편 이 책을 읽는 찰리 또래 아이들이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부모의 허락을 구하지 못할때 어떤 방식으로 헤쳐나갈지 참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찰리는 엄마의 반대 결정에 따르느라 자기 꿈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당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도 않았다.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다. 영국 태생인 Phil Earle은 처음부터 작가가 되기로 했던 것은 아니었고 어린이집에서 돌보미로 일해오다가 연극치료사가 되기 위해 수업을 받게 되었고, 그 후 2-3년 관련 일을 하다가 좀더 정적인 일을 하기로 하여 bookseller를 선택, 지금은 어린이책을 쓰고 파는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 책만 읽어봤지만 이 작가는 재미있게 글을 쓰려는 사람임은 분명해보인다. 찰리를 보호하려는 엄마의 행동의 하나로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할때 혹시 나무의 뾰족한 가지에 몸의 어디라도 찔릴까봐 집 안에서이지만 고글을 착용해야만 트리 장식을 하도록 허락했다든지, 중국음식배달전문점 이름 정하는 문제라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찰리라는 아이의 바탕이 자신감 없고 기죽어 지낼것 같은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 자기의 비밀이 계속하기 꺼림칙하다는 것을 알고 엄마의 비밀 역시 엄마가 더 이상 비밀로서 숨기지 않고 공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마음은, 어른들이면 오히려 갖기 힘든 따뜻한 순진함이 아닐까 생각되어 읽는 내내 유쾌하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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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2020-03-31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에게 선물해드리고픈 책인데요 나인님, 하지만 저는 평생 그렇게 엄마의 솜뭉치 이불 안에서 살아가도록 운명지워진 존재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자전거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사촌이 있어요. 그래서 저희 4남매는 자전거를 여직 못 타요. 강에서 수영하다가 익사한 사촌도 있는데 그래서 저희 넷은 아직도 수영을 못하구요. 아이쿠 이야기하다보니 부끄러워지네요. 딸로서의 입장, 엄마로서의 입장 지금은 모두 다 아니까 마냥 엄마 탓을 할 수는 없을듯 해요. 제가 오히려 어느 순간 더 솜뭉치 이불 안에서 나오지 말아야지, 바깥 세상은 정말 위험하니까! 하고 안 나온 것도 있는듯 해요. 아침부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hnine 2020-04-05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연님 그런 사연이 있으시군요. 내 경험으로 인해 스스로 내 몸에 두르는 솜뭉치 이불은 어쩔수 없겠지요. 그런데 그게 자식에게까지 확장되어 정말 아이가 하고 싶은 일, 아이의 인생을 바꿀수도 있을 일을 막아서게 되는건 아이에게 또하나의 트라우마를 만들어 주는 결과가 되기도 할것 같아요.
작가는 이런 소재를 어떻게 찾아내었는지, 아무튼 재미있게 읽었어요. 추천!^^
 

 

 

 

 

 

 

 

 

 

 

 

 

 

 

혼자 걷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언제부터 내 손등에 무당벌레

반가와서 사진 찍고 나중에 사진을 열어보니

무당벌레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내 손

거칠고 비쩍 마르고 주름많은 내 손

 

손은 정직하다지

고맙고 기특한 내 손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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