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모닝이라는 말을 들을때 마다 나는 부끄럽다.

일부러 애쓰지 않고도 새벽 일찍 눈이 떠지고, 조금의 갈등 없이 벌떡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나란 사람에게는

'미라클? 무슨 미라클?' 

지금까지 아무 미라클도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뿐이지 아무 계획 없이 흘려 보내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눈이 떠지면 그게 새벽 3시이건 4시이건 사과와 커피와 유산균으로 아침을 먹으며 하루가 시작된다. 그리고 아직 새벽에는 선듯한지라 이불 한자락 다리에 덮고 앉아 스마트폰 앱으로 마치 게임같은 스페인어 공부를 한다. 점수, 등수 확인해가면서 하는게 꼭 게임하는 것 같아 재미있다. 그렇지 않다면 특별한 목적도 없이 시작한 스페인어 공부를 벌써 포기했을 것이다. 

3,40분 하고 나면 이제 책상으로 자리 이동한다.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즐겨찾기 사이트를 돌아 보고 오늘 하루 밥공장 돌리는데 필요한 인터넷 장보기도 한다. 일기장을 꺼내어 어제 날짜의 일기를 쓴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본다.

이러다 보면 창 밖이 조금씩 훤해져 온다. 

슬슬 부엌으로 나와 남편 아침 준비를 한다.


쓰다보니 살림 냄새만 폴폴 날뿐, 어디에도 미라클의 미자도 기미가 안보이는구나.

이게 거의 매일 copy & paste 인 모닝 루틴인데, 오늘 처럼 조금 다른 아침일 때도 있다.






며칠 전에 이런 웨비나 (webinar) 를 소개하는 내용의 메일을 받고서, 호기심에 참가 등록을 해버렸는데 그게 여기 시간으로 오늘 새벽 5시부터 6시까지였다. 몇년 전에 영상 강의로 여기서 하는 수업을 하나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을 계기로 계속 연락이 오는 것 같다.

아무튼 한시간 동안 zoom을 켜놓고 두 사람의 학자와 한 사람의 사회자가 진행하는, 정신건강에 관한 online discussion을 참관해서 들었다.


인상적인 내용으로, 정신 상태를 rock과 water에 비유한 것이 있다.


변화에 닥칠때마다 평상시 바위와 같은 마인드로 살고 있는 사람에겐 그것이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지만 물과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는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워진다. 즉 flexibility 가 중요하다.


어떤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을때 누구나 맨 먼저 드는 생각은,

I'm not good enough.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피해갈 수도 있지만 (avoid),

어떤 것이 나에게 더 유익할까,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I'm not that bad. 의 상태로, 

더 나아가

I'm enough.

의 상태로 발전시켜 상황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처음의 단계에는 감정적인 두뇌가 우선 작동했지만 (emotional brain),

점차 사고하는 두뇌가 작동하는 단계로 나아간 것이다 (thinking brain).

Approach instead of avoid. 즉 피하기 보다 접근해가라.


emotion-driven life vs. value-driven life


인간은 행복한 창조물이 아니다. Human is unhappy creature.

불안 (anxiety)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빈번하고 자연스런 일이다.

불안과 화가 극도로 치솟아오를때,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말고 pause, 즉 잠시 멈춤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자가 여기서 연사에게 질문, pause하는 것이 어렵다, 당신만의 비법 (trick of pause) 이라도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가장 좋은 방법은 writing이라고 했다. 행동 이전에 써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대표적인 pause의 방법이라고.


처음에 사회자가 연사로 나온 두 교수를 소개할때 잠시 10% Happier 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주의깊게 듣지 않아 그 말이 왜 나왔는지 놓쳤다. 내가 몇해전에 사두고 읽다가 만 책 제목이기도 한데 말이다.























이 참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오늘 아침은 평소와 쪼금 다른 아침이었기에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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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5-16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미라클이 일어나신 것 같은데요?ㅋㅋㅋ
아침에 많은 일을 하시는군요?
전 새벽에 일어나기도 좀 힘들지만, 일어나더라도 30분 정도 깨작깨작하다 보면 한 것도 없이 애들 밥 차려주러 주방으로 출근을 해야 하니???
미라클 모닝이 좀 힘드네요^^
미라클 애프터눈이나 이브닝을 해도 상관 없을라나요?ㅋㅋㅋ
암튼 정신 상태를 바위와 물과 같은 마인드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문장을 얻어 갑니다.

hnine 2023-05-16 23:37   좋아요 1 | URL
제가 어릴 때부터 잠이 없는 아이였거든요. 그래서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었음에도 키가 안 자랐나봐요 ㅠㅠ
아침을 일찍 시작하기 때문에 점심 먹고 나면 할만한 일은 거의 다 한 것 같아 심심해지기 시작해요.
사실 미라클은 모닝에만 일어나란 법이 없잖아요. 어느 시간대이든 계획적으로 루틴을 행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면 말씀하신대로 미라클 애프터눈, 이브닝, 나잇, 모두 가능하지 않을까요?
제 정신 상태는 늘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는 바위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마인드는 정말 인생을 다르게 사는 방법이기도 한 것 같아요.

난티나무 2023-05-16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미라클?’에 한 표 더합니다. ㅋㅋㅋ

hnine 2023-05-16 23:41   좋아요 0 | URL
난티나무님 댓글에 푸하하 한번 더 웃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는 미라클까지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루틴대로 하루를 보낼 수 있으면 그것만 해도 되었지 싶답니다.
새벽 시간이 참 좋긴해요. 늦게 일어나면 절대 가질 수 없는 저만의 세계를 누리는 기분이랄까요. 머리가 그나마 제일 창의적으로 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미라클은 안 일어나고 있지만....^^

모나리자 2023-06-09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새벽 세 네시에 저절로 눈이 떠졌으면 좋겠네요. 제가 보기엔 그 자체로 이미 미라클입니다.ㅎ 좋은하루 보내세요. hnine님.^^

hnine 2023-06-09 14:26   좋아요 1 | URL
저는 타고 나길 그렇게 태어났나봐요. 어릴 때부터 잠 잘 안자는 아이였어요 ^^ 그런데 딱 그렇지 않았던 1년이 있었는데 바로 고3때였답니다. 정말 잠을 아껴야 할 시기엔 스트레스였는지 잠꾸러기 였답니다.
이젠 미라클 보다 그냥 루틴이 저에겐 더 소중하답니다.
모나리자님도 좋은 하루 보내고 계시죠? ^^
 



























고속버스를 타고 어딜 갈때 가방 속에 챙겨가는 책으로 시집을 들고 갈때가 많다. 무겁지 않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구입한 이소호 시인의 <홈 스위트 홈>을 버스 안에서 읽으며 서울까지 갔다.

시인의 본명은 이경진. 2014년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경진 대신 이소호가 탄생하였다.


이날, 이 시집 아니어도 웬지 서울가는 길은 울적했고 그런 참에 내 손에 잡힌 이소호의 시들은 읽는 대로 바로 바로 이해가 되었다. 시가 이렇게 쉽게 이해가 되어도 돼?












여전히 하나구나 우리는.




(사진이 흔들린게 아니라 원래 이렇게 되어 있음)



엄마가 가르친 것이 그런 것이었어.

엄마 자신은 알았을까?









가족 안에는 사랑도 있고 연대감도 있고 동정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랑을 가장한 억압도 있고, 평등처럼 보이는 불평등도 있으며, 균형을 위한다면서 더 커지는 불균형도 있다.

늘 스위트 할 수 만은 없다.







스위트 홈은 마치 유토피아 같은 것.



다 읽고 나니 이젠 시보다 시인이 더 궁금해진다.





https://blog.aladin.co.kr/hnine/11814349


예전에 올렸던 글이 생각나서 링크 걸어둔다.

박제영 시인의 <식구>라는 시집이었고, 진은영 시인의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도 인용을 했었다.

물론 이소호의 시집은 이 둘 어느 시집과도 다른 느낌과 메시지를 주는 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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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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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5-06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h님이시라니. 서글픕니다.ㅠㅠ ㅎㅎ
여기가 어딘가요?

hnine 2023-05-07 05:37   좋아요 1 | URL
오십년이 넘었으면 오래된 것 맞죠 뭐. 오래된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잖습니까? 친숙하고 정감 있고 편안하고 ^^
사진 속의 저 장소는 여울님 전시회가 있던 건물이랍니다. 예전에 교회 건물이었다던. 크지 않은 건물인데도 구석구석 눈길을 끄는 곳이 많았어요.

자목련 2023-05-0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 님의 사진은 언제나 좋아요!
이 사진들도 정말 좋습니다.

hnine 2023-05-08 04:05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 제 사진 좋아해주시는 것 알아요 ^^
제가 사진에서 보여주고 싶던 걸 읽으시는거죠.
고맙고 기쁩니다!
 









































































창작 활동 하시는 분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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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5-01 14: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게 다 여울님 작품인가요?
훌륭하네요. 전시장이 어딘가요?
근데 벌써 끝났군요.~

hnine 2023-05-01 15:10   좋아요 4 | URL
네, 어제가 마지막 날이었어요.
전시장은 대전이었고요. 저도 대전에 살긴 하지만 한번도 안가본 대전의 예전 도심에 있는 곳이라 지도 보며 찾아갔어요. 전시도 좋고, 전시장이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도 참 좋았어요. 전시장이 예전 교회 건물인데 건물 자체를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여울님 서재 가면 작품과 함께 설명까지 다 보실 수 있어요.

여울 2023-05-01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녀가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가족손님들과 식사하러 간 사이 들르신 듯요. 얼굴 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좀 아쉬웠어요. 고맙고 감사드려요^^

hnine 2023-05-02 01:55   좋아요 1 | URL
놓치지 않고 마지막 날이나마 갈수 있어서 좋았어요.
보여지는 것은 한정된 공간에 한정된 작품이지만 그 뒤에 여울님께서 들이신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보며 보았답니다. 회화뿐 아니라 조각, 판화, 꼴라쥬에, 쓰신 재료도 다양하고, 정말 감탄했습니다.
 


봄에 피는 꽃이 한둘이랴마는

나는 이 꽃을 봐야 봄을 지냈다 싶다




지난 주 낙안읍성에서 본 할미꽃이다.



매년 봄이면 다시 들춰보는 시집으로 고영민의 시집 <공손한 손> 과 유영금의 시집 <봄날 불지르다> 가 있다.




    




































이번에도 이 시집을 꺼내다가 이번엔 옆에 꽂혀 있는 오태환의 시집을 대신 꺼내보게 되었다. 아마 시집 제목때문에 눈이 갔나보다. <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
























오태환의 시는 우리 말의 숲속을 헤치며 걷는 기분으로 읽는다.

숲속을 뛰어가지 않고, 빠른 걸음도 아니며, 두리번 두리번 덩굴 헤치며 나가듯 읽어야 한다. 겨우 헤쳐나가야 한다. 언어 감각이 거의 묘기에 가깝다고 해야할까.







너밋골 달빛





하릅강아지 누렁강아지 귀때기처럼 돋는 달빛


양지머리 뒷사태 근 (斤) 가웃 맑은 국거리로 한소끔씩 뜨는 달빛


으슥한 도린결 도린결만 뒤지고 다니는 따라지 달빛


마른 장마 맞춰 벼르다 벼르다 듣는 감또개 같고 감꽃 새끼 같은 달빛


잘 잡순 개밥그릇이나 설거지하듯 살강살강 부시는 달빛






여기서 '감또개'는 꽃과 함께 떨어진 어린 감, '도린결'은 사람이 별로 가지 않는 외진 곳. '가웃'은 어떤 분량의 반 정도 양. 근 가웃이라고 했으니 양지 머리나 뒷사태 반근 정도 분량으로 끓인 맑은 국이라는 뜻일 것이다. 

네째 행의 '벼르다'는 방울져 떨어진다는 뜻.

달빛도 빛이되 몇 룩스의 밝기로 강렬하게 어두운 곳을 드러내게 하지 않고, 이렇게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도 구석 구석 우리 눈에 잘 안띄는 곳으로 스며드는 빛이다



이왕이면 책 제목이 된 시도 읽고 넘어가야지 싶어.





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




삐뚜로만 피었다가 지는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백금 (白金)의 물소리와 청금 (靑金)의 새소리가 맡기고 간 자리 연분홍의 떼가, 

저렇게 세살장지 미닫이문에 여닫이창까지 

옻칠경대 빼닫이서랍까지 

죄다 열어젖혀버린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맨살로 삐뚜로만 삐뚜로만 저질러 놓고, 

다시 소름같이 돋는 참 난처한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발바닥에서 겨드랑이까지 해끗한 달빛도 사늘한 그늘도 없는데, 

맨몸으로 숭어리째 저질러 놓고 

호미걸이로 한사코 벼랑처럼 뛰어내리는 애먼 그리움, 

천지간의 우수리, 

금니 (金泥)도 다 삭은 연분홍 연분홍떼의





(원문은 행의 구분이 없다)


죄다열어젖힌 그리움, 소름같이 돋는 참 난처한 그리움이라고 할 만큼 복사꽃은 숨어서 필 수 없는 꽃, 무리 지어 만발하여 자태를 드러내고야 마는 꽃이 아닐까 한다. 숭어리째 저질러 놓듯 피어 드러내는 꽃.

다만, '호미걸이로 한사코 벼랑처럼 뛰어내리는' 이란 구절의 뜻을 확실히 알수 없어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있다.


물소리는 백금, 새소리는 청금이란다. 이왕 금에 비유를 했으니 복사꽃도 금과 연관을 지어 마무리 했나보다. 마지막 연 '금니도 다 삭은' 이라고 했다.




당신의 봄엔 무엇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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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23-04-3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봄이 되면 이천 ‘화담숲‘이 생각날듯 합니다.
올 봄엔 두번 다녀왔거든요.
자작나무 새잎이랑, 수선화가 어찌나 곱던지요.
hnine님께 화담숲도 추천합니다.
앗! 시는 생각안나요.ㅎㅎ

hnine 2023-05-01 00:04   좋아요 1 | URL
화담숲은 들어만보고 가보진 못했어요. 올봄에만 벌써 두번 다녀오셨다고요. 저도 꼭 기회를 만들어보아야겠네요.
고영민 시인과 유영금 시인의 시집은 제가 다른 포스팅에서도 아마 소개했을거예요.
오태환 시인의 시들은 언어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저도 추천드릴께요.

Jeremy 2023-05-01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미꽃 생각보다 너무 예쁜데요.
hnine 님, 시집 많이 읽으시는군요.
페이퍼에 언급해주신 시집들 둘러봅니다.
제가 한국소설책 표절 사건 이후로는 거들떠도 안 보면서
한국 시집도 관심을 끊었는데 올려주신 시들은 너무 좋네요.
봄은 역시 시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계절인가 봅니다.

hnine 2023-05-01 12:03   좋아요 1 | URL
할미꽃은 피어도 일부러 찾지 않으면 눈에 잘 안띄더라고요. 키도 작고 색도 튀지 않고 꽃은 금방 저렇게 하얀 수염이 되어 버리고요. 할미꽃의 학명을 보면 종명이 koreana 인것도 특별하지요.
시집은 일부러 읽는다기 보다 그냥 좋아서 읽고 있네요. 다른 문학 장르와 구별되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어서 어떤 시 한줄에서 책 한권 읽은 것 같은 깨우침을 얻기도 하고요, 저도 갖고 있던 무형의 생각을 어떤 시인은 이렇게 그들의 언어로 유형화 시키는구나 라고 알게되는 놀라움과 기쁨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