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살지 못하는 당신에게 - 논어에서 찾은 나의 이립
이지훈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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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과거없이 존재하지 않고 미래로 연결되지 않는 현재란 없다. 살아있는 한 현재 속에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새삼 그렇게 살라고 하는 말은 무슨 뜼일까. 

과거는 과거로서 새기고, 미래는 미래로서 계획해야 하는데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그르치거나 미래를 위해 지나치게 현재를 희생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이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우리는 이미 손에 갖고 있는 것은 신경쓰지 않고 놓친 것을 아쉬워하는데 시간을 소비하며 앞으로 갖고 싶고 되고 싶은 목표에 집중한 나머지 당장 한치 앞을 못보는 인간의 운명인데 열치 앞을 조망하며 현재를 고통속에 보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현재만 생각하며 살아야한다는 것은 아니니, 어느 정도라고 선을 긋듯 정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더 어려운 일이고 끊임없이 자기가 걷고 있는 길을 확인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공평한 과제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이지훈 변호사는 자기의 인생 경험을 개인적인 경험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고, 자기의 경험에 변호사로서의 전문적인 지식을 더하여 방송, 저술, 개인방송 운영등의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적극적 활동가이다. 마흔 여섯 해를 살면서 한동안 개인적으로 헤어나기 어려웠던 시기를 보냈고, 극복하기 위한 길을 찾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논어>를 읽으면서 얻은 통찰을 이용,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겪을 수 있을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자기가 알게 된 것을 전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논어>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면서도 고리타분하거나 귀에 이미 익숙한 내용들만이 아니라 새로운 대목들이 많았다. 

흔히 우리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안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안타깝게도 그것은 곧 '성장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68)

<논어>를 읽으며 그녀가 깨달은 것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이립 (而立)'인데,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어렵다. '사리로써 나답게 바로 서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모든 것은 나에게서 시작된다는 것으로, '이기 (利己)'와는 다른 뜻이다.


우리의 삶은 덕이라는 그릇을 점점 넓혀가 결국에는 그릇이하는 형태가 없어질 때까지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갑니다.

공자는 나보다 못한 사람과는 친구 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무우불여기자, 無友不如己者). 이 말은 광장한 반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여기서 너와 나를 비교하는 기준은 경제력이나 신분이 아니라 배우려고 애쓰는 자세, 즉 '호학(好學)'입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성장하지 않는 사람을 '곰팡내 나는 치즈'라고 표현합니다.

"대체로 사람들의 사교는 값이 너무 싸다. 우리는 너무 자주 만나기 때문에 각자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우리는 하루 세끼 식사 때마다 만나서 우리 자신이라는 저 곰팡내 나는 치즈를 새로이 서로에게 맛보인다.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이 견딜 수 없게 되어 서로 치고받는 싸움판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예의 범절이라는 일정한 규칙들을 협의해놓아야 했다." (146)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내 또래 어떤 사람을 만나면 만나는 시작부터 헤어지기 까지 자녀들 얘기만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없고 '엄마'라는 신분만 있다. 안테나는 늘 자식을 향해 있다. 혹시 부족한 것이 없나. 내가 해줄 것은 없나.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만남을 가지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헛헛하다.

북극성이 할 일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머무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다른 별들은 알아서 질서를 잡아갑니다. 내가 나로서 나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 부모님, 배우자, 자녀, 친구, 회사 동료 등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가 자기 자리를 잡아 갑니다. (157)


삶을 살면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감정은 '외로움'입니다. 사람의 성장은 이 외로움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외로움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사람은 끊임없는 성장의 동력을 얻게 되지만, 외로움에 압도당한다면 매번 잘못된 선택을 하다가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170)


착한 사람은 좋은 배우자가 아니다

그럴까? 남에게 착하게 보이는 사람, 남에게 착하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이 갖는 함정을 말하는 것이리라.

공자는 '인자만이 제대로 사랑하고 (能好人, 능호인) 제대로 미워할 줄 안다 (能惡人, 능오인)'고 하였습니다.

착해서가 아니라 지금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대로 화를 내는 것은 제대로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다가 화를 내야 하는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고, 사리에 맞게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논리적으로 화를 내지도 못합니다. 그러고는 좋은 말로 포장하며 정신승리 쪽을 선택합니다. (306)

나도 지금까지 자신 없는 항목.


누군가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원망을 덕으로 갚는 것은 어떨까요?"

공자의 답변이 기대됩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덕을 베푸는 사람에게는 무엇으로 갚을 것이냐?

원망은 직으로 갚고 (이직보원 以直報怨) 덕은 덕으로 갚는 것이다 (이덕보덕 以德報德)." (307)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자신이 한때 실패를 겪지 못했더라면 이런 새로운 깨우침의 기회는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살아있는 동안 실패를 겪지 않을 수는 없고, 그때마다 좌절하고 하향 곡선을 그려갈 것인지, 슬퍼하고 절망한 후 결국 다시 일어나 배움과 깨우침의 기회로 삼을 것인지.


저자의 바람대로 이런 여성들이 주위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논어를 글자로만 휘리릭 읽는 대신 의미를 읽어들여 나름의 통찰의 기회로 삼기를 희망하는데 여전히 그러질 못하고 이렇게 다른 사람이 전하는 말로써만 끄덕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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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살인 클럽 목요일 살인 클럽
리처드 오스먼 지음, 공보경 옮김 / 살림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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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소설이 이야기, 서사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문학 분야라고 한다면 독자 입장에선 기왕이면 그 이야기가 재미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같은 글쓰기라도 사실을 기반으로 정리하는 글을 쓰는데 소질이 있는 사람보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지어내는데 소질이 있는 사람이 소설을 쓰면 훨씬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즐겁게 작업을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의 저자 리처드 오스먼 (1970~ ) 은 작가가 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참 재미있게 말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대본 작가, 편집자, TV 진행자이며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도 한 리처드 오스먼은 영국 서섹스 (Sussex) 출신으로 케임브리지에서 정치와 사회학을 공부했다. 2020년에 느닷없이 발표한 첫 소설 <목요일 살인 클럽>이 백만부 이상 판매되며 일약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이어서 바로 다음 해 <목요일 살인 클럽>의 주역들이 그대로 등장하는 두번 째 책 <두 번 죽은 남자>를 출간했다. 나는 두 번 째 책 <두 번 죽은 남자>를 얼마 전에 먼저 읽고난 후라서 그런지 이 책이 더 빨리, 더 재미있게 술술 읽혔다.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이야기의 종점이 되는 것은 맞지만, 읽다보면 누가 범인인가보다는 각각 다른 성격과 직업 출신의 네 어르신들(!)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머리를 쓰는 방법과 추진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지켜보는 것을 더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직접 물어보기보다 은근 슬쩍 떠보기, 넘겨 짚기, 둘러 말하기 라는 영국 사람들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화도 너무나 재미있고, 분명 작가가 지어냈을 이야기임에도 마치 일부러 지어낸 것이 아니라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나 상황을 옆에서 보면서 전달하는 것 뿐인 듯한 작가의 묘사 방식도 능청스러우면서 감탄스러웠다.

이 시리즈로 다음 소설이 또 나오면 좋겠다. 안그러면 서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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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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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작가의 <나인>을 읽었다. 천선란은 2020년에 <천 개의 파랑>으로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수상하였고 2022년에는 <나인>으로 SF어워드 장편 우수상을 수상함으로써 국내 SF 소설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작가 중 한사람이다. 작가들도 소속사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작가 검색하다가 처음 알게 되었는데 김영하 작가도 이 작가와 같은 소속사였다.

평소 SF소설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청소년이 등장하는 소설을 많이 좋아해서 언제나 관심을 같고 있는 편이라, 그리고 요즘 천선란 작가의 인기도까지 한몫하여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우선, 읽는 동안 지루하진 않다. 아마 주인공의 특별한 태생, 특성도 참신하다지만 그것만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 미제 사건을 등장시켜 주인공이 자신의 특성을 이용하여 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구성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한다. 실제로 식물의 생식 방법 중에 영양생식이라는 방법이 있는데 주인공 유나인이 태어나는 방식을 보면 마치 영양 생식 하듯이 식물의 뿌리 일부가 발생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떨어져 나온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식물들의 말을 들을 수 있으며 파란빛 에너지를 내는 '누브족'이라는 외계인인 것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인간 틈에서 자랐으며 누구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유나인은 17살이 될때까지 자기가 누브족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란다. 손가락에서 싹이 자라나고 식물들의 소리가 들리며 파란빛을 내는 다른 누브족 소년을 보게 되면서 의문을 가지게 되고 자신을 키워준 이모로부터 비로소 누브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듣게 된다. 

여기까지는 소설의 배경, 상황 설정이고 이것만으로는 이야기가 안될테니 본격적인 사건이 펼쳐져야 하는데 2년 전에 실종된 도현이라는 학교 선배가 사실 실종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인이 식물들로부터 듣게 되고, 그 사건을 파헤쳐 사실을 밝혀내려는 나인의 분투 과정이 소설의 줄거리 역할을 한다. 이 일은 나인 혼자서 하는 일은 아니고 거의 친형제 남매처럼 붙어다니는 또래 학교 친구 신미래와 강현재, 그리고 다른 누에브족 소년 승택과 함께이다. 그리고 이들이 청소년들인 만큼 그 세대 특징적인 관계 갈등, 진로, 가족에 대한 고민들도 소설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개인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재미없지도, 그렇다고 아주 재미있지도 않았다고 할까. 식물과 외계인의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그런 특별한 존재에게 소설 속에서 맡겨진 임무랄까 사명이 다른 청소년 실종자 사건의 해결이라는 것, 그것도 식물들의 정보 제공이 일을 어렵지 않게 해결하도록 해준다는 점 (주인공 자신이 주가 되는 활약보다 더),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밝혔을때 인간들이 받아들이는 과정의 놀라운 포용력과 이해심, 그들이 청소년들임에도 말이다. 고개를 갸우뚱 하게되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누브족이 지구 상에 오게 된 배경, 앞으로 이들의 계획 등에 대해서는 승택과 그 부모를 통해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고 작가도 그 배경 설정을 하느라 많이 고심했을 것임에도, 소설 전체로 볼때 큰 의미로 연결되지 않은 아쉬움도 있다.


참신한 발상이라는 것이 이 작품에 대한 호평에 빠지지 않는데, 아이디어와 상상력만으로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닌가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 중간, 그 의미를 작가가 직접 강조하여 설명하는 대목들도 과잉 친절 같아 보였다. 독자가 해도 되는, 독자가 해야 더 기쁨이 큰, 독자 전용 분야까지 선을 넘는 느낌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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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보일 때까지 걷기 - 그녀의 미국 3대 트레일 종주 다이어리
크리스티네 튀르머 지음, 이지혜 옮김 / 살림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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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에는 3대 트레일 코스가 있다. 


1.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acific Crest Trail, PCT, 4,277킬로미터)

 



2.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 (Continental Divide Trail, CDT, 4,900킬로미터)



3. 애팔래치아 트레일 (Appalachian Trail, AT, 3,508킬로미터)




이 책은 어렸을때 운동이라고는 질색하던 독일 여성 크리스티네가 걸어서 12,700킬로미터에 이르는 미국의 3대 트레일을 종주한 내용을 담고 있다. 

3대 트레일은 지도에서 보다시피 그 큰 대륙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코스들이다. 첫번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은 남쪽의 멕시코 국경부터 북쪽의 캐나다 국경까지, 두번째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은 대륙 가운데 로키 산맥을 따라 이어진 길이며, 세번째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미국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을 따라 이어진 코스이다. 다 합하면 12,700 킬로미터. 엄청난 거리이다.


바깥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잔뜩 긴장한 탓인지 속이 울렁거려 왔다. 나는 샌디에이고에서 출발해 멕시코 국경으로 향하는 어느 픽업트럭 안에 앉아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멕시코와 캐나다 사이를 잇는 4,277킬로미터 길이의 퍼시픽 트레일, 그 중에서도 남쪽 끄트머리 지점이었다. 나는 다른 장거리 도보여행자 두 명과 함께 트럭 뒷좌석에 구겨지다시피 끼어 앉아 있었다.


이 책의 시작 페이지이다. 이렇게 긴장으로 시작한 트레일을 그녀는 2004년에 PCT를, 2007년에 CDT에 이어 AT까지 종주함으로써 미국의 3대 트레일을 완주하였다. 트레일을 시작할때 그녀의 나이 마흔 여섯이었고, 종주를 시작할 때는 유지하고 있던 직장과 집을 종주 하는 동안 다 포기하고 이루어낸 일이었다. 이로써 그녀는 세 트레일을 모두 완주한 사람에게 미국 장거리 하이킹 협회가 수여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멋진 책도 내지 않았는가.

이책의 원제를 보니 Laufen, Essen, Schlafen. Eine Frau, drei Trails und 12700 kilometer Wildnis이다. 영어로 옮겨보면 Run, Eat, Sleep. A Woman, 3 trails and 12700km wilderness


순탄하지 않은 여정의 시작에 필요한 것은 장비, 시간, 철저한 계획 등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용기'이다. 뭔가를 이루어 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 둘을 구분짓게 하는 것은 그 일을 시작하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꿈 꾸는데서 그치고 말지만 어떤 사람은 실행을 한다. 

책 내용이 트레일 종주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라고 해서 자칫 내용이 딱딱하지 않을까, 지루하지 않을까 했는데 읽어보니오히려 그 반대였다. 미국인이 아닌 독일인으로서 짧지 않은 기간동안 미국 땅을 밟으며 만나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 얘기는 흥미로왔으며, 물을 만났을때 망설임없이 옷을 다 벗고 물로 뛰어드는 자기를 이상하게 보며 눈길을 피하는 미국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하는 독일인 저자. 유럽과 미국 사이에도 문화 차이는 존재하는 것이다. 하루 먹을 식량을 무게로 측정해서 제한해야 하는 것, 트레일 중에 만나는 곰이란 어떤 의미인가, 물이 부족할 때 어떤 긴급 조치를 취하는가 등등, 상상도 못해보던 내용이 많았다.

트레일의 일부 구간을 단기간 걷는 사람들과 구별하여 종주를 목적으로 하는 하이커들을 '스루하이커' 라고 한다든지, 이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들이 자주 나왔다. 트레일 엔젤 (스루하이커들에게 무료 쉼터를 제공해주는 사람), 카우보이 캠핑 (텐트 없이 자는 일), 바운스 박스 (짐 무게를 줄이기 위해 당장 필요하지 않은 짐 일부를 미리 목적지 우체국에 보내놓고 나중에 찾는 것), 하이커의 자정은 밤 12시가 아니라 밤 9시라는 것 등, 이런 용어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 하는 것으로 진짜 스루하이커인지 아닌지 알아볼수 있다고 한다. 

스루하이커들 중 대다수는 서른 살 이하의 남자들, 그 다음 많은 연령층이 50대 이상이라고 한다. 처음 트레일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남자보다 여자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은데, 이들은 첫 시작인만큼 준비를 철저히 해오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허세가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트레일러들이 묵고 가기도 하는 시설로 산장이 있는데 젊은 층이 많이 사용하는 산장들은 술판을 벌이고 마약을 하는 장소인 경우가 많더라는 사실은 씁쓸했다. 젊은 도보여행자들의 여행 목적 자체가 사교적 측면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아서 만나도 감정적으로 공유할게 딱히 없더란다. 

저자는 미국 3대 트레일 종주 이후로도 아웃백이라 불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황무지, 서유럽, 남유럽 전체를 도보로 여행했고, 가끔 자전거 여행을 끼워넣기도 했는데 이 중에는 일본과 한국도 포함되었다. 

8년 동안 스물 다섯 켤레의 신발을 교체했고, 0.5톤의 초코릿을 먹었으며 2,000일 이상의 밤을 텐트에서 보냈다고 한다. 1년이 365일인데 2,000일을 텐트에서라니.

이런 사서 고생길을 걸으며 배우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초코바 하나의 의미가 달려졌다는 것뿐이니까.

하루에 먹는 초코바의 갯수까지 정해가지고 걷는 트레일이라, 예상치 못한 일로 일정이 계획보다 길어지면 당장 먹을게 떨어지게 된다. 굶주리며 겨우 겨우 목적지까지 걸어가고 있던 중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자기네에게 남은 거라며 먹겠냐고 내미는 초코바에 대한 저자의 반응이 나오는 대목이다.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초코바라고? 

이 뜻밖의 행운을 믿을 수 없어 나는 목까지 메었다. 

몇분 동안 멍하니 서서 손에 든 초코바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벅찬 행복감이 밀려왔다. (161)


초코바 하나가 이렇게 감격할 일인가. 아무때나 심심풀이로 먹던 밀키웨이 초코바가 말이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육체적 행복감을 느껴본 것이 언제였던가. 

나는 지난 수년간 경험했던 성공의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일을 그만두기 전 마지막으로 급여가 인상되었을 때는 어땠었지? 그때도 만족감은 느꼈지만 이 단순한 초코바가 유발시킨 원시적이고 육체적인 행복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내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돈을 가치와 행복의 척도로 여겼다. 그리고 가진 돈이 많아질수록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보다 값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것을 찾게 되었다. 내 행복의 기준은 그렇게 점점 높아져만 갔다.

PCT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는 내게 그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트레일에서의 삶은 행복의 기준을 상향시키기는 커녕 어마어마하게 끌어내렸다. (162)


행복해지는 방법 중 하나는 그 기준을 끌어내리는 것.

이 단순한 진리를 배우기 위해 12,700킬로미터를 걷는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깨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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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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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허무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각오로 살아야 허무 속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그 허무를 딛고서 끝까지 갈수 있을 것인가.


인간에게는 희망이 넘친다고, 자신의 선의는 확고하다고, 인생이 허무하지 않다고 해맑게 웃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인생은 허무하다. 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인간의 선의 없이도, 희망 없이도,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 (10)

'허무를 직면하다'라는 제목으로 쓴 프롤로그 중 일부이다. 그가 제목에서 뜻한 바가 무엇인지 이 구절만 읽어봐도 파악이 될 것 같아 옮겨 보았다.

왜 인생은 허무할까. 없던 생명이 이 세상에 나와서 살다가 결국 이 세상에서 그 물성이 사라지는 것으로 마치니까. 시작과 끝을 보면 그렇다. 살면서 남긴 자취와 흔적 (업적까지는 아니더라도)을 생각하면 허무하지만은 않다고 보는 의견도 부정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니까. 

언제부터인가 인생의 허무함을 인정하고 나니까 훨씬 생각이 가벼워짐을 느낀 후로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매를 먼저 맞아놓은 기분이랄까, 좋은 소식 나쁜 소식 어떤 것 먼저 들을래 할때 나쁜 소식 먼저 듣고 난 후의 후련함이랄까. 


삶은 악보가 아니라 연주다 (99)

이 말이 얼마나 마음에 들던지. 삶을 소울 재즈에 비유하여, 이미 그려진 악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즐기고 궤도를 이탈해가면서 즉흥 연주를 얼마나 유연하게 해내느냐 하는 '연주'가 핵심이라고 했다. 관건은 정해둔 목표가 아니라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기 스타일을 갖는 것이라는 것. 목표를 이루었느냐 보다 더 핵심은 그 목표까지 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예측 못했던 그 무엇에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목표가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목표가 있었으니 거기까지 가는 과정도 있는 것이니까.


정신승리란 무엇인가 (203)

현실을 포장하는 것이 정신승리라고 착각하지 말자. 그것은 일종의 가스라이팅일 수 있다. 정신승리가 현실승리는 아니며, 정신승리는 정신의 공갈 젖꼭지라고까지 했다. 

같은 종류의 위로를 계속하는 것은 물론 한계가 있다. 낙방은 낙방. 실연은 실연. 패배는 패배. 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인지와 납득은 다르다. 낙방, 실연, 패배를 인지했다고 해서 마음이 곧바로 그 고통스러운 현실을 선뜻 납득하는 것은 아니다. 마침내 마음이 그 불편한 현실마저 수용해냈을 때 그것이 바로 정신승리다.

승리는 승리고, 패배는 패배다. 하나의 패배를 인정했다고 해서 모든 패배를 인정할 필요는 없다. 하나의 패배도 모든 면에서 패배인 것은 아니다. 모든 관점에서 다 패배인 경우는 없다. 어떤 패배를 해도 인생 전체가 패배로 변하는 경우는 없다. 현실을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마음의 탄력을 갖는 것이 진정한 정신승리다. (211)


마지막으로 요즘 내가 덮어두고 있던 문제를 다시 일깨워주는 구절을 만나고야 말았다. 

그가 생텍쥐페리의 <전시조종사>의 한 구절을 인용한 부분이다.

완공된 성당의 관리자로, 혹은 성당 의자나 운반하는 사람으로 자기 소임을 다했다고 만족하는 사람은 이미 그 순간부터 패배자다. 지어 나갈 성당을 가슴속에 품은 이는 이미 승리자다. 사랑이 승리를 낳는다. ...지능은 사랑을 위해 봉사할 때에야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난다. - 생텍쥐페리, <전시조종사> -


생텍쥐페리는 저 글에서 먼저 누가 패배자인지를 정의한다. 남들이 성당을 완성하기 기다린 뒤, 관리나 하려드는 이야말로 패배자다. 의자를 들고 앉을 자리나 확보하려 드는 이야말로 패배자다. 인생에서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자가 패배자다. 무엇인가 걸었다가 실패한 사람은 패배자가 아니다. 아무것도 걸지 않은 자가 패배자다. 무임승차자가 패배자다. 결과적으로 아무리 많은 이익을 계산해 얻었어도 무임승차자는 패배자다. (242)

대성당은 어디에 있는가? 대성당은 어떻게 지을 수 있는가? 나는 가슴 속에 대성당을 품고 있는가?


자기를 찾아온 죽음의 사신을 잠깐 기다리게 하고 마지막 할 일을 마친 뒤 이제 가자고 사신에게 얘기한 할머니 이야기, 비올레타 로피즈의 그림책 <할머니의 팡도르>에서는, 인간은 언젠가 죽을 수 밖에 없지만 무엇을 남기고 갈 수 있는지, 살아 있는 동안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인생은 허무하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직면하고 더불어 산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하며 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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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0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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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05: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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