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
정지돈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3년 <눈먼 부엉이>로 등단한 소설가. 올해 마흔살. 소설만 쓰지 않는다. 소설을 써도 우리가 쉽게 떠올리지 않는 소재와 주제로 쓰길 좋아한다. 인간과 비인간, 실재와 가상, 친절과 불친절, 겸손과 오만, 이렇게 이분법으로 그를 정의하기 어렵다. 그가 이렇게 말했듯이.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쓰는 (사는) 글쟁이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인데 표지에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이라는 부제가 작게 붙어있는 것은 대구 태생인 그가 서울에 거주하면서, 그리고 파리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느낀 점, 생각한 점들을 기록하였다는 명분때문이다. 그의 평소 생각, 친한 사람들과의 대화, 문학, 건축, 철학, 예술관 등이 넘치도록 담겨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그가 이 책에서 소개한 명칭 '플라뇌르'는 프랑스어로 산책자, 배회자를 의미한다. 정지돈은 이에 덧붙여 매우 다양한 해석과 의미를 달아놓았다. 단순한 산책자라고 하기엔 여러가지 의미와 사회적 배경, 이미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뇌르 뿐 아니라 그는 어떤 개념에도 하나 이상의 해석과 의미를 갖다 붙일수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알고 있는게 많고 그 어떤 가능한 관련성도 떨쳐내고 싶어하지 않아보인다. 그래서 나 같은 독자에게 처음의 개념을 더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게 정지돈이라는 사람이구나 알아가게 한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애초에 그는 무엇을 계획했나.

플라뇌르의 흔적 찾기. 그것을 재발명하거나 취소하거나 아니면 외면하기, 산책과 젠더, 상품, 자아, 신체, 공간, 사물, 매체를 엮는 불가능한 기획의 밑바탕을 깔기, 그것이 곧 근대성과 자본주의, 그리고 그 이후다!  (80)

그러면서 산책을 사랑했던 로베르트 발저와 버지니아 울프, 레베카 솔닛을 많이 언급하였는데, 이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읽어도 새삼스러울 만큼 새롭게 그들을 재조명해주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들에게 산책이 무엇이었는지.

책 중에는 정지돈과 친구의 대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부분들이 자주 나온다.

오랜만에 이 시간에 연남동에서 술을 마시니....지옥 같네요. 정연씨가 말했다.

지돈씨, 글쓰기가 너무 힘든 것 같아요.

- 늘 그러시잖아요.

- 갈수록 힘든 정도가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동력이 사라진 것 같은데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아무래도 독자가 없는 것 같아요.

-지돈씨는 인기 많잖아요.

-그럴 리가...근데 여기서 독자는 진짜 독자말고 다른 의미에서의 독잔데, 저는 언제나 저 자신이 제1의 독자였거든요. 제가 읽고 싶은 글을 썼는데 어느 순간 그 제1의 독자를 잃어버린 느낌이에요.(145)

내가 생각하는 직업으로서의 작가의 정의 중에도 그것이 있었다. 나를 위해서만 쓸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부럽기도 했고 부럽지 않기도 했다.


현대의 산문체 작품들은 현대의 심리에 부합하는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오직 그 작품들이 단숨에 쓰여질 수 있을 때만. 이삼십 줄, 말하자면 최대한 백 줄 정도의 생각이나 혹은 회상, 이것이 현대의 소설이다.

장편서사시는 내게 필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은 큰 책들이 쉬는 시간-지하철 안, 심지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위에서-에 읽힌다. 그러면 뭣 때문에 책이 이렇게 커야만 하는가? 나는 저녁 내내 책 읽는 독자를 상상할 수없다. 우선 수백만 대의 TV가 있고, 둘째, 콜호스 사람들은 신문을 읽어야만 하며, 기타 등등.

-유리 올레샤, <매일 한 줄씩> 1965-  (172)

그는 앉아서도 쓰고, 누워서도 쓰고 서서도 쓴다고 했다. 쓰는 글의 범주가 다르다고 했다. 


다음은 플라뇌르가 왜 통설적으로 여성을 포함시키지 못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플라뇌르의 어성형은 플라뇌즈다. 학계의 통설상 플라뇌즈는 존재하지 않는 전설 속의 유니콘 같은 존재다. 여성이 플라뇌르가 되기에는 사회의 편견과 위협 요소가 너무 컸다. 여성은 거리로 나서는 순간 응시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된다. 쉽게 말해 남자들이 자꾸 쳐다보고 집적댄다는 말이다. (183)

1920~1930년대에 이르러서 본격적으로 여성 산책자들이 등장하는데 소위 모던걸의 등장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던걸들은 플라뇌즈로 개념화되지 못했고, 여성은 상품 소비문화의 수동적인 노예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남성들은 관찰자이자 소비자로서 양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반면 여성, 모던걸들은 허영과 사치를 일삼는 성적 방종이 상징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비중있는 페이지는 마지막 글, 이 책의 제목과도 같은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254~270)이 아닌가 한다.

독일의 문화사회학자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를 인용하면서 그가 추구하는 것을 말했다.

크라카우어처럼 내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언제나 특정 대의가 아니라 대의들 사이의 틈새였다. 대의를 실천하면서도 대의로부터 자유롭게 생활하고 사유하기, 상충하는 대의를 함께 유지하기, 대의들 사이에 공유되는 공간에 머물기. 믿음 없이 살기, 하지만 어떠한 믿음 속에서. (262)

크라카우어가 이러한 삶의 표본으로 떠올렸다는 에라스뮈스는 15세기 종교개혁 시기 카톨릭 인문주의자였다.

에라스뮈스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데 그것은 특정한 목적이나 주장, 대의에서 자유로워도 된다는 아이디어였고, 어느 쪽 편을 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태도이며 단지 지식의 즐거움과 삶의 기쁨에 헌신해도 된다는 해방감이다. 

이렇게 내겐 에라스뮈스라는 학자를 새로이 알게 되는 기회가 된다.

누군가는 이를 방관이나 비겁함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는 세상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에라스뮈스는 부당한 권력 앞에 한 번도 방관자였던 적이 없으며 종교개혁의 큰 공헌자 중 한 사람이었다.

에라스뮈스는 가장 이상적인 삶의 조건이 시원한 나무 그늘이 있는 집과 선량한 친구들과의 산책, 정원에서의 식사라고 생각했다. (266)

결국 그런 것인가. 시원한 나무 그늘이 있는 집, 선량한 친구들과의 산책, 정원에서의 식사. 이상적인 삶이란 말이다.


정지돈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책이면서 산책에 대해, 플라뇌르라는 자기 인식자로 사는 삶에 대해, 대의가 아닌 대의들 사이의 틈새를 볼 수 있는 자의 자유에 대해 알고 간다.

정지돈 작가, 땡큐! 건필하시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3-12-31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지돈 작가의 글은 여러 작가의 작품이 실려 있는 수상 작품집으로 읽었어요.
올해 올리시는 마지막 글이 되겠군요.
새해에도 건필하십시오.^^

hnine 2023-12-31 14:46   좋아요 1 | URL
데뷔작부터 상을 여럿 받았더라고요.
페크님, 올해도 감사했습니다.
새해에도 변함없이 저의 좋은 서재 친구로 있어주세요.
 
공부의 위로 -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곽아람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곽아람 조선일보 기자가 대학 졸업한지 이십여년 지난 후 대학교 4년 동안 들었던 수업들을 되돌아보며, 현재의 글쓰는 직업을 이어오는 이십 년 동안 어떤 힘이 되어주고 있는지 되돌아본 책이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4년 내내 모범생, 우등생으로서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고 과 수석 졸업을 했다. 학교 밖 경험과 지식 역시 중요한, 기자라는 직업을 이어오면서 학교 다닐때 그런 이력은 자부심이기도 하면서 단점이 되지 않을까 회의적이기도 했다. 소위 우물한 개구리, '너드'의 범주에 갖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 역시 모범생처럼 해가고 있는 자신을 볼때 이것이 과연 나의 직업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이 책은 모범생에 대한 변명이자 '그 많던 모범생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며, 평생을 모범생으로 살아온 사람의 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7)

법학을 전공하기를 바라는 부친의 소망을 등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라고 생각해서 들어간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고고학 보다는 미술사학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거기서 안주하지 않고 대학 4년 동안 다른 과를 넘나들며 다양한 외국어, 인문과학 관련 수업을 찾아 열심히 들었다. 유명한 수업은 청강까지 서슴지 않으며 들은 수업 목록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1학년: 미술사 입문, 고고학 입문, 불어, 프랑스 산문 강독, 한문, 동양미술사 입문

2학년: 영시의 이해, 인도미술사, 서양미술사 입문, 중국어, 영미단편소설 강독, 서양문명의 역사,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 민법총칙, 법학개론

3학년: 독일 명작의 이해, 일본미술사, 종교학 개론

4학년: 동양 및 한국 도자사, 심리학 개론, 라틴어, 19세기 미소설

자연계열이었던 나 같은 사람에게 4년 동안 배우는 과목들이 너무나 다름을 새삼 알겠다. 그래서 1,2 학년때 교양과목이라는 것이 개설되어 있는가보다. 

그 과목을 어떻게 듣게 되었는지 (주로 선배들의 권유가 많았다), 그 과목을 어떻게 열심히 공부했는지, 지나고 보니 지금의 직업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그때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기도 하고, 그때 강의를 해주신 분들을 직장에서 인터뷰나 글을 청탁하기 위해 다시 뵙기도 한다고 한다. 직접 교수님의 이름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읽어보면 종교학 개론이나 독일 명작의 이해 같은 수업처럼 누구의 강의구나 짐작이 가는 것도 있었다.


이런 구성으로 에세이를 한권 낸다는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내용도 그 취지에 맞게 적절하게 채워져 있다. 이 책 역시 참 적절하게 모범생다운 책 같은 느낌이라면 저자는 만족할까 서운할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3-12-2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드란 말이 있군요. 전 처음 듣네요. ㅋ 근데 별이 세개네요. 약간 별로 였나봅니다.

hnine 2023-12-27 13:48   좋아요 1 | URL
‘nerd‘ 라고, 우리말로는 어떻게 옮겨야할지 몰라서요. 모범생, 샌님?
요즘 제가 별점에 좀 진지해져서, 특별히 좋고 싫지 않고 평작 수준이다 하면 별 세개 줍니다. 별로였다는 뜻은 아니고요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인 룰루 밀러가 일곱살 무렵 일이다. 가족과 함께 간 여름 휴가지에서 아버지와 습지에 나가 아버지가 하는 일을 지켜보던 룰루 밀러는 저런 일은 대체 뭐하러 할까 생각하며 아버지에게 묻는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어린 딸의 갑작스런 질문에 아버지는 잠시 아무 말 않고 있다가 씩 웃으며 말한다.

"의미는 없어!"

이어서 아버지는 말한다. 의미는 없고 신적인 존재도 없고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다, 인간 자신이 의미가 없다는 감정이 무시무시해서 그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 뿐이다, 혼돈만이 우리를 지배할 뿐이다 라고. 광대한 우주에 비하면 한 사람의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고 사람이 개미보다 더 의미있는 것도 아니며 넌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너 좋은대로 살라고 까지. 일곱살 딸에게 생화학자 아버지는 한치의 거짓이나 포장없이 당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구대로 대답해주었고 딸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아버지의 그 말을 기억하고 되돌이켜 생각해보곤 했다.

저자가 20대 초반 과학 기자로 막 발돋움 하던 시기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 (David Starr Jordan, 1851~1931) 이라는 어류학자를 알게 되었고 어릴 때 아버지가 말했던 그 혼돈에 반격하는 이야기를 이 사람이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초대 스탠포드 대학 총장을 지내기도 한 데이비드는 인간적으로 여러 번의 좌절과 실패를 아무렇지도 않게 극복하고 꿋꿋하게 다시 질서를 되찾아가는데 노력하며 평생을 보냈다는 것, 그리고 혼돈이 아니라 질서, 계획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그 질서가 자연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다.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그가 남긴 책들과 자료를 찾아 읽고 그가 연구하던 장소들을 방문해보며 조사를 해오던 중, 룰루 밀러가 그동안 오래 사귀어오던 애인으로부터 절교를 당하는 일을 당했고 한동안 개인적으로 깊은 슬럼트에 빠지게 된다. 그 좌절과 무기력에서 헤쳐 나오기 위한 방법으로서, 그것을 오히려 동기 삼아 망해버린 사명을 몇번씩이나 극복하고 자기 길을 나아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전기 속에서 돌파구를 찾아보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과학을 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소신은 변함이 없었고 대쪽 같았다. 비과학이라고 믿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경향을 단호히 배척하고 공격하였다. 그는 "진실이 아니라는 걸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굳이 믿으려고 하는 것"은 사회 몰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죽을 때까지 자기 신념대로만 일생을 산 사람이었다.

룰룰 밀러가 알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모든 게 사라지고 부서지고 희망이라곤 없는 최악의 날에 조차 어떻게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밖으로 나가게 한 것일까? (126)

인간과 자연의 힘을 믿어, 약을 먹는 것도 반대했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약은 신경계가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라고 할 정도로 자연의 질서와 힘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다.

동식물의 정확한 분류를 위해 수집을 하고 비교를 하고 표본을 만들어 보존하는 것이 분류의 가장 기본적인 연구 방법이던 시대에 데이비드는 그 원칙에 입각한 어류 분류의 대가였다. 진화학이 등장하고 수리분류학, 분기학과 같은 선진적이고 어떻게 보면 파격적이기 까지 한 분류 방법이 도입되어 생물의 분류 방법에 큰 전환이 이루어지고, 그때까지 알려져 온 분류 방식에 혁명과 같은 공격이 될 수도 있는 학자들의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데이비드는 믿으려하지 않았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위와 아래가 있고 열등한것과 진보된 것이 있는 사다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질서이고 이 질서를 밝혀내는 것이 분류학이 할 일이라는 것. 나아가 사회적으로 우생학을 옹호하고 그에 따른 잘못된 처치 (열등하다고 믿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도태되어야 한다는)에도 반대하지 않았다.

룰루 밀러는 의문을 갖는다.

데이비드는 왜 그걸 보지 못한 걸까? 사다리에 대한 그의 믿음을 반증하는 증거들이 이렇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식물과 동물이 배열되는 방식에 관한 이 자의적인 믿음을 왜 그토록 보호하려 한 걸까? 그 믿음에 도전이 제기되면 왜 더욱 강하게 그 믿음을 고수하고 폭력적인 조치를 합리화하는 데 그 믿음을 사용했을까? (206)

데이비드에겐 그 믿음이 진실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그것은 바로 혼돈이었을 것이라고.

데이비드에게 그것은 지독히도 방향 감각을 앗아가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혼돈이었을 것이다.

내가 어려서부터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써왔던 바로 그 세계관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개미들과 별들과 함께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느낌.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내부에서 바라본, 차마 마주 볼 수 없을 만큼 눈부시고 가차 없고 뚜렷한 진실.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진실을 흘낏 엿본 바로 그 느낌일 것이다. (207)

자기가 믿는 것을 뒤집기란, 쌓이는 과학적 증거 앞에서도 어려울만큼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을 거부하고자 했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 실화임에도 소설 속의 반전 못지 않은 충격이 드러난다. 그것을 알게 된 룰루 밀러 만큼이나 읽는 나도 충격적이었다. 이 책은 이런 내용이고 이렇게 결말이 지어지겠지 하고 읽어가던 생각이 뒤집어졌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에서 저자 캐럴이 어류라는 이름은 최근의 분기학적 연구 결과로 볼때 잘못된 계통분류에 의해 잘못 붙여진 이름이라는 걸 인정해야할 시점의 충격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룰루 밀러가 어류분류학의 거장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에 대해 알게 되고 마지막에 이른 곳은 막다른 골목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인생과 학문적 업적에서 답을 찾으려던 룰루 밀러는 이제 더 큰 문제를 안게 되었다.

우생학의 잘못된 믿음의 사회적 국가적 조치의 희생으로부터 간신히 살아남아 눈에 띄지 않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며 물어본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다시 의미를 묻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곱살때 아버지에게 물었듯이.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내가 평생에 걸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물어왔던 질문이다. 그것은 내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인생에 관해 조사하며 여러 해를 보낸 이유였으며,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던졌던 바로 그 질문이며...(223)

그리고 그들의 단순하고 천진한 대답으로부터 발견한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끼리의 관계 맺음, 그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상들을.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대단치 않은 것일지 모르는 그 그물망이 그들에겐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음을.

<자연에 이름붙이기>에서 캐럴이 움벨트의 의미를 다시 붙잡고 싶어하던 이유와 상통한다고 본다. 과학은 과학으로서 진실이지만 또한편 과학 너머의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 가치를 외면하지 않는 것. 독선적이지 않는 것. 다른 세계에 대한 포용력. 다른 관점에 대한 인정.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유일하고 불변의 진실이라고 보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227)

우리가 어떤 생물의 이름을 붙여줄때 그 생물은 인간과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이렇게 형성된 관계는 인간의 의식속에 오랫동안 자리잡아 선입견이 되고 편견이 될 수도 있다. 직관이 가려버린 사실들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류라고 부를때, 비늘이라는 외피를 먼저 떠올리지만 폐어 같은 것은 폐와 유사한 기관을 갖고 있어 호흡을 하여 이 폐어와 연어 사이의 관계보다 폐어와 인간 사이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폐어 같은 것은 다른 아가미호흡하는 어류와 같이 분류되면 안되는 것이다. 또한 어떤 특징들은 진화적으로, 분류학적으로, 다른 특징들보다 더 유용하고 그것이 분류에 반영되어야 한다.

인간은 은연중에 데이비드가 말한 우열의 사다리를 자키기 위해, 인간을 사다리의 정상 자리에 유지하기 위해 우리와 다른 동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하고 있다. 어류라는 말은 어류 속의 복잡성을 감추기 위해, 계속 속 편히 살기 위해, 우리가 실제보다 그들과 훨씬 더 멀다고 느끼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다. (251)


이 책은 전기인가, 과학 전문 에세이인가, 일반 에세이인가. 모두를 아우르고 있다고 볼수 있고 하나의 주제에서 이렇게 포괄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저자의 끈기있는 연구와 조사, 열린 마음의 자세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단한 책,

올해가 며칠 안남았지만 얼마전에 읽은 <자연에 이름붙이기>와 더불어 이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책으로 꼽고 싶다.



책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다가 아래 자료를 찾았다. 저자인 룰루 밀러와 일곱살 그녀에게 모든 것은 의미없다고 말한 생화학자 아버지가 함께 참여한 웨비나이다.


https://youtu.be/ixe1--0yGk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일을 직업으로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거나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면 좋겠고, 생계 유지에 필요한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저자는 왜 제목에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이라고 했을까. 아마도 소설쓰는 일을 직업으로 한다는 것은 다른 일에 종사하는 것과 어딘가 다를것이라는 일반 사람들의 선입견때문일텐데 사람들은 소설가라고 하면 직종의 한 명칭이라기 보다 예술 활동 자체를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다.

자기 직업은 자기가 선택했음에도 직업을 소개할때 좋은 점보다는 열악한 작업 환경, 고충, 과로를 먼저 얘기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없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듣는 사람은 안타깝다. 저 일이 한시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직업으로서 매일 해야하는 일이라니 하루 하루가 얼마나 고달플까, 그 사람이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게 된다.

다행히 장강명 작가의 이력을 보면 그가 어쩌다 떠밀려 소설을 쓰게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대번 알게 되긴 하지만 그래야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더 확인하게 되었다. 

그가 말하는 소설가라는 직업이 자기에게 매력있는 직업인 이유는 (이전 직장인 신문사, 건설사와 비교해서), 

첫째, 주체적으로 일하고, 일의 주인이 나이다. 

둘째,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결과물을 생산한다. 

세째, 내가 만드는 생산물이 단순한 소비재 이상이다.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이다.

그가 물론 이렇게 첫째, 둘째, 세째 하며 쓰진 않았지만 요약해보면 그렇다. 소설가에게 소설 쓰는 일이 그렇다면 독자 역시 지금 나의 직업을 대응해서 생각해볼 수도 있는 사항이 아닌가 싶다. 

한편, 그는 왜 소설 쓰는 일이 엄연한 하나의 직업임을, 굳이 연재까지 해가며 (이 책은 채널예스에 연재했던 글 모음집이다) 집중 설명해야했을까. 소설 쓰는 일을 다른 직업과 병행하여 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장강명 작가 자신은 소설쓰는 일을 전업으로 하고 있고 소위 괜찮은 직장에 사표내고 나와 오로지 글만 쓰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볼 수 있는 사회적 시선을 의식한 것도 조금은 작용했지 않을까 싶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단단히 다져보는 기회로 삼고 싶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벌써 오래 전 일이다. 정이현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듣던 중 신인작가 소개를 하는 시간에 장강명 작가의 <열광금지, 에바로드>라는, 생소한 작가의 생소한 제목의 소설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활약이 매우 기대되는 소설가라고 극찬하던 때부터 이 작가에게 관심이 있었다. 2011년 작가로 데뷔한 것에 비해 부지런히 소설을 발표해오고 있고 에세이, 논픽션 디양한 분야의 책을 출간하였다. 사회 고발적인 성격의 글이 많은 것에 대해 그가 기자 출신이라는 배경을 들기도 하는데, 그가 낸 책들의 제목들을 보거나 <월급사실주의>라는 특이한 제목의 동인 문인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을 봐도 그가 지향하는 바와 개성이 엿보인다. 

본인은 앞에 나가 얘기하는데 재주가 없다고 했으나 들어오는 제안을 거절하는 것도 잘 하진 않는 듯, 여러 매체를 통해 자기 역할을 하는데 몸을 사리지 않는 것 같다. 최근 나름 큰 포부를 가지고 장편소설을 냈고 ("재수사 1, 2")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읽어벌까 생각중이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거나 글을 읽는 것은 듣고 읽는 사람도 즐겁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연에 이름 붙이기 -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캐럴 계숙 윤 지음, 정지인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렇게 재미있는 책일지 상상도 못했다. 분류학이라면 요즘도 분류학 하는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생물학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인기 없고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두툼하기 까지 하여 과연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까 싶었는데, 읽기 시작하고 바로 책 속에 빠져들어 다른 책에 한 눈 팔새 없이 읽어버렸다.

분류학이라는 그 고리타분하고 졸린 이야기를 이 저자는 과연 대중들의 관심을 끌 정도로 '가볍게' 썼는가 하면 그게 전혀 아니었다. 전문적인 내용을 이렇게 설득력 있게 쓰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 그것은 어떤 분야의 가장 밑바닥 기초부터 첨단까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분류학이 생물학의 한 분야가 되기에 앞서 인간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새로운 대상들을 접할때 그것을 특징에 따라 구분하면서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려는 본성이 있어왔다. 이것은 과학, 비과학을 넘어서 인간 특유의 본성이고, 생명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는 인간 특유의 시각이다. 이것을 움벨트 (umwelt) 라고 하고 이 책에서 아마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용어가 될 것이다. 린나이우스 (학교 다닐때 '린네'라고 발음했는데 이 책에서는 린나이우스라고 나온다)에 의해 처음 체계적인 생물의 명명법이 제정될때에도 알게 모르게 가장 기본이 된 것은 이 움벨트에 의한 것이었다. 움벨트를 이후에 나오는 수리학적 분자생물학적 분류 방법과 너무 대척에 놓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 생물에 이름을 붙이고 비슷한 것끼리 무리짓는 작업은 수리학적 방법이나 분자생물학적 방법이 도입되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이 행해오던 것이기 때문이고 적어도 부족, 민족에 따라 공통된 방법이 통용되기 까지 그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분류되고 이름지어졌기 때문이다. 단지, 그 근거에는 모두 객관적인 근거가 아닌 주관적이고 인간 위주의 시각이 포함되었고 그것은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한 생물의 진화상 위치를 실제와 아주 다른 단계에 가져다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움벨트가 관여한 명명, 분류 체계에는 인간과 다른 생명체 사이의 '관심'이 있고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분류학자이든 아니든, 생물학자이든 아니든, 인간 모두에게 다른 생명체 사이의 유대관계가 연루되어 있었다.

다윈에 의한 진화론이 체계화되고 받아들여지면서, 그리고 이후 수리분류학자들에 의해 각 형질이 공평하게 같은 기여도를 가지고 생물의 특징을 결정하는 수치로 환산되어 분류의 기준이 되면서, 더 근래 DNA 정보가 빼도빡도 못하는 확실한 분류의 기준으로 제시되면서 과거의 분류학은 도전을 받고, 극단적으로 우리가 물고기라고 분류하던 무리는 존재하지 않는 결과까지 오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이제 분류와 명명은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작업이고 결과가 되었으며, 그게 어떻게 되든 관심을 두지 않는 쪽으로 가고 있어서 생명에 대한 인식은 사라지고 오직 우리 인간들의 삶과 소비, 편리함에만 집중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움벨트가 현대 과학으로 대치되는 상황은 정확한 학문이라는 목적에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사실이지만, 인류의 역사와 함께 오랫동안 다른 생명체를 바라보던 우리의 가치관과 존중의식, 연대감을 이렇게 내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음을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대중에게 일반적인 주제가 아닐 수도 있는 한 분야를, 이렇게 매혹적으로 설득력있게, 그리고 내용에 충실하게 한 권의 책으로 낼 수 있는 저자의 능력에 별 다섯개도 모자라다는 느낌이다.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의 입장에서도 이 오래되고 케케묵은 분야로 여겨지던, 그래서 학교 다닐 때 가장 지루하게 듣던 수업 중 하나이던 분류학이란 분야의 의미과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새겨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다. 특징짓고 분류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능력이고 그것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방법이 더 과학적이고 정확해지면서 다른 생명체에 대한 인간의 의식은 더 멀어져간다는 이 아이러니가 안타까운 정도를 넘어서려고 한다.


너무나 많은 곳에 밑줄을 치고 읽었기 때문에 그중 몇개만 인용해서 옮겨 놓는 것을 차라리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쉬워 책을 반납하기전 제일 명문이라 생각한 한 단락을 남겨두어야겠다.


생명은 모든 곳에서 끈질기게 버티고, 존재하고, 침입하고, 발산하고, 살금살금 다니고, 튀어나온다. 그리고 움벨트는 (우리가 가격표와 상표가 붙은 물건들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마음껏 쓸 수 있으며, 생명의 세계에 대한 움벨트의 전체적이고 풍성한 시각을 한껏 흡수할 수 있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구찌와 베르사체에서, 맥과 피씨에서, 에디 바우어와 바나나 리퍼블릭, 허머와 포드와 폭스바겐에서 벗어나 생명있는 존재들에게 돌아가려면 약간의 재훈련은 필요할 것이다. 아기들에게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먼저 충분히 배워야겠지만, 희망은 영원히 솟아나며 또 그래야 한다. 한결같이 어서 생명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의 굶주린 움벨트의 허기를 채워주고 싶어 하는 작은 사람이 새로 한 명씩 태어날 때마다 우리에게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생물에 대해 열렬히 배우고자 하는 또 한 명의 존재가 생겨난다. (393)


마지막 챕터의 제목이 "과학을 넘어"이다. 과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과학 너머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통적인 분류학의 거장으로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Ernst Mayr의 책이 집에도 있기에 같이 올려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3-12-14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만족스럽게 읽으셨군요. 그럴 때 기분 좋지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를 오디오북으로 가지고 있어요. 들어봐야겠습니다.^^

hnine 2023-12-15 07:39   좋아요 1 | URL
네, 올해 좋은책들을 여럿 읽었지만 이책도 그중 기억에 오래 남을 책이 될것 같습니다. 생명을 연구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도 생명의 본질이나 본성을 잊고 있을수 있거든요. 분류학의 의미와 의의에 대해 이렇게 설득력있게 글을 쓸수있다는데 감탄하게 됩니다. 과학적 글쓰기의 좋은 표본이 되는것 같아요. 저자가 워낙 오래 과학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기때문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