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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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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범하고 시시한 삶인가! 어느 곳에도 모험이나 투쟁 같은 것은 없으며 예외적이거나 비극적인 면도 없었다. 제대로 작동하는 기계를 바라보는 것같이 흐뭇한 눈길로 되돌아볼 수 있다. 나의 삶은 소리도 내지 않고 멈출 것이다.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조용하고 묵묵히 움직임을 끝낼 것이다. 또한 그래야 한다." (19쪽)


나도 당신도 언젠가는 지나온 생을 되돌아 보고 정리하고 싶어질 때가 올것이다. 그때 나의 삶은 어떤 삶이었다고 말하고 싶을까. 이 소설의 '나'는 말한다. 나의 삶에서는 비일상적이고 극적인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그저 기계적인 세월의 흐름이었고, 평범한 삶이었다고.


며칠 전 '나'는 정원에서 잡초를 뽑는 일을 하던 중, 엄청나게 강하고 확실한 '죽음의 느낌'을 감지한다. 놀람과 두려움에 이어, 나의 주변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집안의 모든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젠 아무것도 정돈할 게 남아 있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음에도 그는 아직 정돈해야할 뭔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은 바로 나의 삶을 정리하는 일, 나의 삶을 짧고 간결하게 기록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자기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기록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자문해본다. 그가 읽어온 책들에서 보면 얼마나 신기한 모험과 별난 인물들이 나오던가. 그에 비해 자기가 살아온 삶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삶이란 특이하고 별난 모험이 아닌 일상적 법칙의 흐름 아니던가, 오히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찬미해야 옳지 않을까, 덜컥거리고 비통하고 산산이 부서지지 않았다는게 부족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그렇게 쓰여진, 한 노인의 마지막 정리의 결과물이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작은 목공소를 하며 돈을 모아가는 것을 인생 목표로 성실하게 일하는 가장이었고 엄마는 감성적이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소심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생각이 많은 아이로 자란 그는 아버지의 기대에 맞춰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고 대학에 들어가 철학을 공부하지만 중간에 그만두고 좋아하는 시를 쓰며 시인을 꿈꾼다. 하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자기의 시가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자 시인이 되고 싶은 꿈을 접고 대신 경제적으로 당당하게 독립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의도로 철도역 공무원으로 취직을 한다. 아들에게 기대를 많이했던 아버지의 엄청난 반대가 따른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뜻을 굽히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보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는 편이었던 그는 도시에서 역무원으로 기계적인 생활을 하던 시기를 이렇게 회상한다.

내 인생의 이 기간은 일종이 끝없는 독백의 시기였다. 독백이란 지독한 것이며, 어느 정도는 자기 파멸이자 우리와 삶을 결속시키는 사슬을 부서뜨리는 일이다. 독백하는 사람은 고독할 뿐만 아니라 끝장난 사람이다. (75)

역을 드나드는 다양한 군상들을 보며 자기와는 동떨어진 세상을 바라보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별종의 군상들이 몰려드는 역은 모든 종류의 악이 번성하는 데 비옥한 토양 구실을 하는 것이며, 자신은 그 희미한 몰락의 냄새를 즐겨 맡는다고 해놓았다. 역에서의 하루를 두 페이지에 걸쳐 묘사해놓은 부분 (79, 80쪽)은 그의 문장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별을 쳐다보면서 나는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했는지 아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처럼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이곳은 실로 세상 끝에 있는 마지막 역이었다. 선로는 풀과 냉이 속으로 뻗어 있었고, 그 뒤에는, 바로 적치장 뒤에는 벌써 우주가 나타났다. 강과 숲이 소리를 냈고, 그 뒤에는 우주가 소리를 냈다. 별들은 오리나무 잎새처럼 깜박이며 소리를 냈고, 산바람이 세상 사이를 가르며 불었다. 아, 그곳은 폐를 채우기에 좋은 곳이었다! (80)


강의 물결처럼 늘 똑같고 늘 새로운 생활. 늘 똑같고 늘 새로운 반복.

가끔 나는 놀랐다.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그렇다. 이것이 인생이다.하루에 기차 두 대가 오가고 끊긴 선로에는 풀이 덮이고, 그 바로 뒤에는 병풍 같은 우주가 나타나는 것이. (82)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우리도 가끔 이 생각을 할 때가 있지 않은가? 이렇게 적절한 어휘, 매력적인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지.

결혼을 하고, 성실한 임무 수행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한 끝에 역장으로 승진도 한다. 자기의 직장인 기차역을 완벽하게 돌아가는 기계처럼 유지시키면서 이 역만은 정말로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남자에게는 자신의 일을 몰두할 수 있는 곳이 가정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116)

그에게 정말 가정은 집보다 오히려 일터였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부에게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그런 현실에 적응하며 남편에게 모든 것을 맞추어 살기로 하는 아내 덕에 표면적 평화와 안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집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간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시간이다. (117)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굴절율이 다른 여러개의 색으로 분산되어 나온다. 작품의 중반을 넘어서 '나'는 평범한 인생이라는 것의 정체가 뭘까 생각하다가 '나'라는 한 사람 내면에 서로 다른 '나'가 존재함을 알게 되고, 그들의 대화가 시작된다. 그것은 자아 비판일수도 있고 자기에 대한 철저한 이해의 과정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의 진가는 여기서 드러나는 것 같다. 여러 개의 다른 내가 삶의 각 순간에 밀고 당기고, 숨거나 드러나며 지금까지 이끌어 왔음을, 통합된 개체로서 '나'는 뒤늦게 발견하는 과정이다. 어린 시절 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 보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졌는지, 들키면 처벌받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역장으로서 친구에게 비밀리에 정보를 넘겨준 것은 무엇때문이었는지, 시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기차역 사무원이 되기로 한 것은 어떤 '나'의 결정이었는지, 하나 하나 해부하는 과정이다. 프리즘에 빛을 통과시켜 서로 다른 여러 색의 존재를 비로소 발견하듯이. 면적을 미분하여 여러 개의 선이 모여 이루어졌음을 확인해가듯이. 


삶에서 규칙적인 생활의 의미는 무엇인가.

너의 내면에는 뭔가 두려운 게 있었고, 너는 쉬지 않고 달아났어. 어디에서 멈춰 섰었나? 세상 끝에 있는 마지막 역이었던가? 아니야, 그곳엔 아직도 약간의 인광이 빛을 발하고 있었어. 네게 부여된 역에 가서야 비로소 멈출 수 있었고 넌 사물들이 안전하게 질서를 이루는 그곳에 자신을 숨겼지. 그곳에서는 더 이상 두려워할 게 없었고 안정을 찾을 수있었어. 넌 죽도록 무서워했지. 이게 죽음일지 모른다. 조심해야 해. 이 길로 몇 걸음만 더 가면 미쳐 버리고, 자신이 파멸해 죽게 될 거라고 느꼈겠지. 

그러고는 너를 파멸시키지 않을 그 점잖고 견고하고 규칙적인 생활에 단단히 매달렸지. 삶에 필요한 것만을 골라잡고는 다른 어떤 것에도 눈길을 주지 않았어. 

자신을 바라보지 않기 위해 너는 일들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그 일을 네 직업이자 생활로 만들었다. 너는 성공했고, 너 자신에게서 벗어나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 양심적이고 만족스럽게 평범한 인생을 살았어. 잘 살아온 삶인데 또 뭘 원하는 거지? 뭘 유감스러워하는 건가? (173, 174, 175)

이 부분을 이 작품의 핵심 구절로 꼽고 싶다. 

서로 완전히 다른, 극단적으로 다른 존재인 여럿의 '나'가 나의 내면에 서로 뒤섞이고, 삶의 각 순간마다 두각을 나타내어 하나의 인생을 이루어온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alter ego의 존재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문학 작품 속에서 이렇게 피부에 와닿게 느껴보긴 처음이다. 


카프카, 쿤데라와 함께 체코 국민 작가중 한 사람이라는 카렐 차페크.

책 표지 그림이 재미있다. 누구의 그림인가 봤더니 요세프 차페크. 카렐 차페크의 친형이다.





이건 갈등의 여지 없이 별 다섯개.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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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
김정선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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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나와있는 수많은 책들. 살아있는 동안 아무리 부지런히 읽어도 그 중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을테니, 책을 만난다는 말보다 '마주친다, 스친다' 라고 표현하는게 이해 되기도 한다. 그 많은 책들 중 몇권을 선별해서 그것들에 대해 책을 썼다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 반가고 어떤 책을 골랐을까 하는 것부터 어떻게 읽었을까 하는 것 까지,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그 중에 내가 읽은 책이 나오면 물론 반갑고, 내가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한 부분은 그런 책들대로 더 호기심과 궁금증을 준다.

읽은 책을 주제로 기존에 나와 있는 책들 역시 많지만 내가 읽은 것들을 기억나는대로 추려보니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번에 읽은 책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은 제목이 솔직하고 꾸밈없어 더 눈에 들어왔다. 나 역시 기회될때마다 세계문학전집을 조금씩 사서 모으기 시작한지 몇년 되다 보니 더 관심이 갔다.

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하루 종일 다른 일 안하고 책만 읽고 살 수 있는 생활을 꿈꾸곤 한다.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하면서. 위의 세 저자들은 그런 경우는 아니었다. 한 저자는 직업이 번역가이고 틈틈히 읽은 책들 중 고전을 골라서 책을 엮었고 ('살면서 마주 한 고전'), 다른 저자는 중년에 이르러 꿈찾기의 돌파구로 독서를 한 경험을 책으로 썼으며 ('책만 읽어도 된다') 또 한 저자는 친 언니를 잃고서 정신적인 공허를 달래고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기로 하고 그 기록을 책으로 엮었다 ('혼자 책 읽는 시간').

이 책의 저자의 경우는 좀 다르다. 생계 수단으로 해오던 일을 건강문제로 접어야했고 그렇게 주어진 시간의 공백을 책 읽기로 채우기로 한다. 예전 부터 하고 싶어 마음 속에 담고만 있던, 세계 문학 전집 쌓아놓고 한권씩 읽어나가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2020년에서 2021년에 걸쳐 아홉달 동안 읽은 백권의 책을 읽은 기록을 이 책에 모아놓았다.

책 제목과 출판사, 그리고 한 단락 정도의 대표 구절을 시작으로 하여, 그 책을 읽을 즈음의 본인 근황과 심경을 간단하게 밝히고, 책 줄거리는 비교적 자세하게 적어놓았다. 그리고 책에 대한 소감으로 마무리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책 감상글이랄 수 있는데 저자만의 독특한 감상과 소감이 들어가 있는 경우도 많이 눈에 띄었다.

예를 들면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를 <폭풍의 언덕>의 남주인공 히스클리프의 미국 버전으로 비교한 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가면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이다.

가면을 쓰는 것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가면 뒤에 참다운 나가 있다고 믿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외려 가면이야말로 가면 뒤에 숨어서 온갖 사회적 시선을 피하고 있는 바로 그 '참다운 나'를 대신해 그 모든 걸 다 받아내는 존재 아닐까? (65쪽)

가면이 일반화되어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인정하고, 가면이 필요한 이유, 가면의 의미를 나의 일부로 보는 시각이 새로왔다. 

줄거리를 차근차근, 자세히 설명해놓은 것은 좋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그것이 내가 읽은 책이라면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주어 좋았지만 읽지 않은 책의 경우엔 책에 대한 소개 정도로 따라가며 읽기에 좀 긴 분량이 되더라는건 순전히 개인적 소감일 수 있겠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을 줄거리를 한번 읽는다고 내용이 파악되긴 어려울 것이고 그러다보니 자세한 줄거리를 따라 읽는 동안 자칫 지루해질 수 있고 글자만 읽어넘기게 되더라는 것이다. 저자의 친절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작품이라며 조지 오웰의 다른 작품보다 먼저 읽히기를 바란다는 점에는 공감하며 흐뭇했다. 저자가 읽은 소설 가운데 가장 고급스럽고 고상한 소설에 속한다는, 그래서 흥미로우면서도 한편 불편하기도 하다는 헨리 제임스의 소설 <나사의 회전>도 어서 읽어보고 싶다. 

같은 제목으로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2>도 나와있고 3권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막상 책만 읽어도 되는 여유가 생기고 나니, 책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아 투덜대곤 하는 나 자신에 대해 잠시 반성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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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0-2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인 님 리뷰 읽으려니 제가 이걸 장바구니에 담아놓기만 하고 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사야지 싶어집니다.
저는 작가가 소개하는 책 줄거리를 읽는 것도 좋을것 같아요. 근황과 심경도 적어두었다 하셨는데, 아무래도 어느 상태에서 언제 읽느냐가 감상에 영향을 많이 미칠거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읽어볼래요.

hnine 2023-10-25 00:47   좋아요 0 | URL
저자의 근황을 쓰려면 주위 다른 사람들을 언급할 수 밖에 없어서 근황은 아주 간단하게만 쓰셨어요. 타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이겠지요.
같은 작품이라도 어느 상태에서 언제 읽느냐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적잖이 영향을 미친다는데 동감입니다. 이 책 저자도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데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 있나 하는 언급을 한 작품이 몇개 되더군요.
다락방님의 독후 소감을 기대합니다~
 
라쇼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6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서은혜 옮김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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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것이 지금처럼 많지 않던 어린 시절, 읽고 또 읽던 열몇권 짜리 (오십권짜리 어린이 세계문학전집 말고) 세계 전래 동화집중 유독 이야기의 재미보다 신비감을 더 크게 남겨주었던 것은 일본 동화집이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현실과 현실 아닌 곳을 왔다 갔다, 눈에 보이는 것과 상상의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들이어서 다 읽고서도 갸우뚱, '이게 뭐지?' 하는 여운을 남겼던 기억이 있다. 기이하기도 하고 약간 무섭기도 하고, 확실히 우리 나라 전래 동화와는 달랐고 나머지 다른 어느 나라의 이야기와도 다른 분위기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일본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그나마 몇권 읽은 것들에서 받은 느낌은 어릴 때 기억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일본이라는 나라가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여서 그런지 이야기에 귀신이 자주 등장하고, 귀신의 출현이 일회성 출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 생활에 스스럼없이 침투하여 살아있는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한 경우까지 자주 나오는 것이,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에 편향된 독서를 해오던 나에게는 여전히 일본 소설은 일본 소설의 독특한 분위기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이 책을 읽자고 고르면서, '막연한 불안'이 이유라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그 막연한 불안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었다.

그가 발표한 작품들 대부분이 단편인데 이 책에는 열 네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소세키의 극찬을 받았다는 ''는 한 스님의 신체부위 코가 특이하게 큰 것을 소재로 하였다. 남의 눈을 기준으로 나를 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고, 스님을 대상으로 한 것은 종교인이나 수도자도 예외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부질없는 희비극 끝에 도달하는 곳은 결국 허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마죽'. 마죽을 실컷 먹고 싶다는 욕망 (인생의 욕망)이 어느 순간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어느 날 해 질 녘이었다. 하인 하나가 라쇼몬 아래서 비를 긋고 있었다. 

널따란 문 아래에는 이 남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군데군데 붉은 칠이 벗겨진 커다란 원주에 귀뚜라미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라쇼몬 (羅生門)'은 원래 헤이안 시대 수도 교토의 성문을 말한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행동에 대해 쓰고 있다. 재해와 기근으로 폐허가 된 교토의 성문 (라쇼몬) 위에서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 노인을 마주친, 갈 곳 없는 하인이 나온다. 도둑질 아니면 굶어 죽음 앞에서 그의 선택은 고민의 여지가 없다. 굳이 사고가 필요없는 선택이 있을 뿐이다. 역동적이고 회화적 묘사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묘한 이야기'는 전쟁에 파병된 남편을 기다림과 동시에 다른 남자와 밀회 약속을 하면서 신경증을 보이는 지에코의 이야기이다. 그녀 앞에 출현했던 빨간 모자의 정체는 그녀의 양심일지도 모른다. 

우울의 시작은 이렇게 소소한 것일 수 있지만 결과는 끝도 없이 부풀려 질 수 있다는 '다네코의 우울', 내 아기 잃은 것이 다른 아기 잃은 엄마를 보고 위로가 될 일인가? 과장된 것은 아닐지 공감이 쉽게 되지 않던 '엄마'. 모든 엄마에게 아기는 다른 대상이나 재산을 얻고 잃는 것과는 다른데 말이다.  

꿈 같은 현실, 현실 같은 꿈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그동안 읽었던 일본 소설을 구별짓는 특징 중 하나였다.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창작 과정에 따르는 필요한 혼돈일지도 모른다. 제목처럼 글 전체가 꿈 얘기인 ''. 그리고 '흙 한덩이'에서는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죽으면 흙 한덩이로 돌아간다는 의미도 되겠고, 며느리가 살아있는 동안 그토록 움켜쥐고자 했던 욕망의 부질없음을 흙 한덩이라고 보았을 수도 있다. 

죄인들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지옥변'이라고 한다. 단편 '지옥변'에서는 창작의 고통을 참극으로 극대화하여 비유하였다. 딸이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아비의 눈으로 보고 있어야 하는 참극이다. 이렇게 나온 창작의 결과물 앞에서그림을 그린이는 과연 만족할까. '아무리 하나의 예나 능에 뛰어나다한들 인간으로서 오상 (인의예지신)을 못가린다면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라는 짧은 인용문이 나온다. '거미줄'에서 거미줄은 신이 준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상징한다. 보기엔 가늘지만 강도가 센 거미줄을 내려주지만 결국 이기적인 인간 본성은 자기손으로 그것을 끊어내고 만다는 비유가 뛰어나다. 연꽃의 아랑곳하지 않음은 변하지 않는 진리, 흔들리지 않는 세계를 의미한다는 설정까지도. 

두자춘이라고 하는 사람이 도를 깨우쳐가는 과정을 그린 '두자춘'은 부귀영화의 삶을 누려본 후 마지막으로 그가 원하는 것은 인간답고 정직한 삶, 그에게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것은 산기슭의 집한채와 밭이었다. 

'신들의 미소'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명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일본에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신부 (神父)가 일본의 전통 토속 신앙과 대립을 이루는 방식이 몽환적이면서 상징적으로 그려져있다. 꿈의 세계에서 현실을 다시 보여주는 것은 아쿠타가와의 주특기인지. 

한 사람의 죽음을 놓고 여러사람의 설명을 모아 놓은 형식의 '덤불속'은 또 얼마나 신선했는지 모른다. 죽은 사람에 대한 어느 누구의 말도 일치하는 사람이 없다. 더 많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한들 마찬가지일것 같다. 덤불속이란 제목은 어느 것이 진실인지 가려낼수 없는인간의 삶,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실린 마지막 작품 '갓파'는 뜬금없이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떠올리게 했다. 갓파라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 나오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직업과 신분에 해당하는 갓파의 이름들이 나온다. 차크는 의사, 배그는 어부, 토크는 시인, 래프는 학생, 이런 식. 여기까지만 해도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감이 올수도 있다. 인간의 신분과 계급에 대한 비판을 갓파라는 상상의 동물을 통해 쏟아 내겠다는 것이다. 특히 시인에 해당하는 '토크'라는 갓파를 통해서는 창작가로서의 작가의 고뇌를 집중적으로 묘사한 느낌이 든다. 이 작품을 썼던 해 1927년, 35세를 일기로 아쿠타가와는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세상을 등졌다. 35세라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그가 소재로 삼고 작품으로 남긴 다양한 세계를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세계를 넘나들며 복잡하고 불안한 정신 세계를 혼자서 머리속에 구축해왔을까 감히 짐작하게 한다. 

막연한 불안이라는 말은 문학의 세계에서 생소한 말이 아닌 듯. 그는 더 살아남아서 그 불안을 다른 형태로 승화시킬 수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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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0-1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편집의 리뷰는 쓰기 어려운데 잘 정리해 쓰셨네요.
저는 라쇼몬보다 덤불속, 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참 탁월한 작가라고 감탄하며 읽었죠.
언젠가는 덤불속을 소재로 글을 쓰려고 마음먹고 있어요. 저는 문예출판사 걸로 갖고 있어요.^^

hnine 2023-10-19 12:51   좋아요 1 | URL
제가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읽으면서 그때 그때 간단히 메모를 해두었어요.
리뷰를 쓰느라고 그때 메모를 다시 보고 페이지를 들춰보다보니 읽을 때보다 더 의미가 깊게 들어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덤불속, 제게도 작가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 인상적인 단편 중 하나였어요.
 
레테의 사람들
민혜 지음 / 디멘시아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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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디멘시아 문학상 공모전 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이라는 소개글이 보이니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디멘시아 북스라는 출판사가 있다. 한 신경정신과 의사를 중심으로 치매 환자및 가족을 위한 후원회가 결성되었고 치매 관련 정보 및 건강 정보 등의 건강지식을 알리기 위한 치매 전문 인터넷 매체 홈페이지가 개설된 것을 시작으로 치매관련 작은 도서관 설립, 이어서 치매 관련 서적 소개와 출판을 위한 출판사가 설립된 것이 디멘시아 북스이다. 이 출판사에서 주관하는 디멘시아 문학상 공모전이 있었고 2021년 제5회 디멘시아 문학상 소설 공모전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2023년에 출판되어 나온 것이 바로 이 책 <레테의 사람들>이다. 책이 나오게 된 배경 소개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에 우선 적어보았다. 갈수록 증가하는 치매에 대한 관심이 문학공모전에까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는 처음에 에세이로 등단한 작가이고 그녀의 수필집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을 읽어본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엔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화자인 윤정인은 엄마 뱃속에 있을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채 홀엄마 손에서 자랐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혼자 딸을 키우느라 그닥 살갑지 않았던 엄마와 사느라 아픈 기억이 많은 딸 정인은 결혼도 하지 않고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지만 이제는 치매 환자가 되어 버린 엄마와 여전히 한집에 살고 있다. 딸도 못알아 보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구는 엄마는 정인으로 하여금 갈수록 돌봄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엄마의 기억이 자꾸 사라져가는 것을 보며 정인은 지금까지 한번도 엄마가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해준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얼굴도 모른채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알게 된 어머니 인생이 상처 투성이였으며, 그것을 자신의 성장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연과지어진다. 더구나 요즘 들어 자신 역시 예전같지 않은 기억력으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어 갑자기 알게 된 어머니의 일생을 어머니와 어머니의 치매를 지금까지와 다른 시각으로 보는 계기가 된다.       


이 세상에 어느 딸도 어머니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싶어하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연관성을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것이기에 어머니의 인생으로부터 나에게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끈, 쉽게 끊어낼 수 없는 끈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는 나이에 이른다. 어머니의 과거는 자기의 출생과 연관이 있으며 자기가 자라온 방식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숙명이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부르지 않아도 그렇다.

저자는 이점을 치매와 잘 연관시켜 스토리를 구성하였고 어머니의 과거와 자신의 가족사에 대한 궁금증을 결말까지 가져감으로써 읽는 동안 독자의 관심을 끌고 가도록 하였다. 아쉬운 점은, 주인공의 특별한 노력 없이 그냥 드러나는 가족사와 그것을 너무 쉽게 잘 받아들이고 주인공이 마음의 정리를 하며 맺는 결말이다.

공모전의 취지에 맞게 치매가 글의 중심을 잘 이끌어간 것은 이 작품이 대상작으로 선정되는데 적합했음은 분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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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8 14: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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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8 15: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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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1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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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1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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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1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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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 그림으로 본 고흐의 일생
이동연 지음 / 창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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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보고 들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화가 고호. 그래서 한번도 그의 일생을 한권으로 꿰뚫어 읽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의 제목이 저자나 출판사가 지은 것이라면 좀 작위적이지 않나 했는데, 고호 자신이 한 말이란다. 죽고 나서 주머니에서 미처 부치치 못한 편지 한통, 테오에게 보내려고 했던 편지가 나왔고 거기 써있던 글귀라고.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림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이 책을 쓴 저자는 방송매체와 기업에서 예술과 역사 관련 강의를 많이 한 경험이 있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오랫동안 고정 출연하며 '예술가와 뮤즈'에 대해 다룰 때 고흐를 방송했던 것을 인연으로 이 책을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강의 경험이 많은 때문인지 글이 편하게 읽혔다. 왔다 갔다 할 것 없이 고흐의 태어남부터 죽음까지 시간 순으로 구성이 되어있어 지루함 없이 따라 읽다 보면 금방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게 된다. 

책 내용에서 언급하는 그림이 바로 그 페이지에 삽입되어 있어 따로 검색해보지 않고 바로 볼 수 있게 구성한 점도 독자로서 마음에 들었다. 긴 일생을 산 고흐는 아니지만 시기와 거주지에 따라 화풍이 다소 변화를 겪기 마련인데 나중에라도 그림들이 이 책에 등장했던 순서를 기억해보면 자연스럽게 시간순으로 어느 그림이 이전 그림이고 어느 그림이 나중에 그려진 그림인지 대개 가닥이 잡힐 것 같다. 


1853년,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준데르트에서 태어난 고흐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고 동생 테오와는 네살 차이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듯, 어머니가 풍경을 그리러 나갈때 가끔 따라다니며 데생을 했다고 한다. 그가 9살때 그렸다는 목탄화 <다리>를 보면 확실히 어릴 때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흐의 원래 꿈은 화가가 아니라 파브르 같은 곤충학자였고 그림은 취미였다고 한다.

형제가 많았던 고흐는 초등학교는 몇년 다니다 말고 동생들과 함께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16살에는 화랑에 직원으로 취직을 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신학을 하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기대를 따르지 않고 고흐는 서른이 다 된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벨기에 브뤼셀 왕립미술학교, 헤이그를 거쳐 벨기에의 항구도시 안트베르펜에서 미술 아카데미에 다녀봤지만 브뤼셀 왕립미술학교를 1년도 채 못다니고 그만 두었듯이 안트베르펜에서의 아카데미도 너무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그만두고 만다. 하지만 고흐는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리고는 예술의 도시 파리로 무작정 떠난다. 그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누구 못지 않았지만 파리에서 미술상을 하고 있던 테오로부터 고흐의 그림은 기대만큼 잘 팔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뿐이다. 고흐는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그려보라는 테오의 조언도 듣고, 파리의 다른 여러 화가들을 만나 그들의 그림을 보고 매료되기도 하면서 자기의 화풍을 구축해나간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연인으로부터 잇달은 실연과 잘못 퍼진 소문, 좋지 않은 결과만 주고 있는 그림으로 고흐는 정신적 불안과 조울증세를 나타내며 힘든 생활을 한다. 이런 가운데 고갱을 만난 고흐는 천재 화가를 만났다며 그와 함께 작업을 하고 싶어한다. 파리에서 아를로 이주를 하고 좋아하는 노란색의 집을 구한뒤 고갱을 불러들인 고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동생 테오와 주위 몇몇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고갱과 함께 한집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토록 좋아하던 고갱이었지만 이들의 그림 방식과 주관은 사못 달라서 자주 의견 충돌을 보였고 사이가 멀어져 급기야 고갱은 고흐를 떠난다. 

건강이 더욱 악화된 고흐는 가족들의 도움으로 아를을 떠나 생레미 요양원으로 들어가고 외롭고 힘든 요양원 생활을 하지만 여기서도 그의 그림은 멈추지 않는다. 이당시 그의 그림을 보면 우울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다. 비탄에 빠진 노인, 단체로 운동하고 있는 죄수들, 황혼의 풍경등. 

자신의 건강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안 고흐는 마지막을 요양원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파리 근교 시골 마을 오베르로 가서 오베르의 전원 풍경을 그리며 마지막 창작열을 불태운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나무 뿌리와 기둥>은 그가 오베르에서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1890년 그의 나이 37세,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고흐는 총알이 가슴에 박힌채 하숙집으로 돌아왔고 이틀 후 세상을 떠난다. 아직도 그것이 고흐 자신이 쏜 총인지, 다른 누가 그에게 총을 쏘았는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그가 죽은지 6개월 후 동생 테오 역시 세상을 떠났다. 


왼쪽으로 사이프러스 나무가 우뚝 솟아있는 그의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은 1889년 그의 요양원 시절에 그린 것, 강물에 가스등 불빛이 마치 별그림자 처럼 비추고 있는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빈센트의 방> 등은 1888년 아를에서 그린 그림이다. 자연을 즐겨 그린 고흐이지만 비교적 작은 정물을 그린 그림들에서 유독 더 쓸쓸함이 느껴지는건 왜일까. 낡은 구두, 뒤집어져 있는 게, 말라비틀어진 청어.


이토록 전 세계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명성을 얻고 있는 화가의 작품들이 생전에 그렇게 하나같이 인정을 못받았다는 사실이 나같은 보통사람에게 예술이라는 세계에 대해 난해함만 던져준다. 그리고 작가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 공황상태, 조울증에 시달리는 상태에서도 음악, 미술, 문학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그것이 예술이 아닌 다른 분야라면 가능할까? 

고흐의 37년 생애를 따라가며 그림 감상까지, 느끼고 정리하기에 좋은 기회를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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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1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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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2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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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0-16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고흐 책을 읽고 그의 인생이 좀 안 됐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그림을 그릴 땐 행복했을까요?
불행한 삶이 예술을 방해하기보다 오히려 예술적 작품을 탄생하게 만들기도 하죠.
행복한 예술가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예술가들의 인생에는 고독 우울 불행 소외. 이런 것들이 따라다니는 듯합니다.

hnine 2023-10-19 12:53   좋아요 0 | URL
정말 불행한 일생을 살다 간 화가이지만, 그나마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떨쳐내는 결단력이 있었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았던 용기가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행복이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