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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노의 가르침 (70만 부 기념 빨간 표지) - 피보다 진하게 살아라
세이노(SayNo) 지음 / 데이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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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알라딘 서재 카테고리에 보면 내가 만든 생활백서라는 것이 있다. 살면서 몸으로 깨우친 나만의 팁이랄까, 그런 것을 짤막한 문장 몇개로 적어 모아둔 박스이다. 겨우 오십 개도 안되지만, 적어도 나에게만은 소중하게 얻어진 경험들에서 나온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이 경험하고 고생을 해봤다면 더 풍부한 내용일테지만 나는 그리 용기 있는 사람이 못되고, 적극적이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온 편이 아니다보니 이 정도에 그치고 있다. 앞으로 더 확장되려나? 

평소에 생각은 그랬다. 찐으로, 진정성있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생을 마감할 때 쯤이면 책 한권 쓸 만큼의 컨텐츠를 남길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고. 읽고 듣고 보아서 채워진 컨텐츠가 아니라 몸으로 겪어서 얻은 인생팁 같은 것 말이다. 보통 사람인 나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 처럼 나보다 살아온 세월도 길고 닥치는 상황마다 몸사리지 않은 경험이 많은 분이라면 남기고 싶고 해주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으랴.


책장을 들춰 첫페이지에 "세이노는 누구인가?"를 읽어보면 700쪽 넘어 두툼하기까지 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겠다 싶었다. 

필명 '세이노'는 영어 'Say No'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며, 현재까지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No 라고 말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믿고 있는 것들이라면 편견과 선입견으로 내 머리 속에 자동적으로 들어와 있어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것들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삶의 기준이 되고 목적이 되는 삶에 대한 경고라고 할까. 

1955년생인 저자는 45세되던 2000년 부터 본명을 밝히지 않는 대신 '세이노'라는 필명으로 동아일보에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2003년에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카페가 만들어졌고 여기에 기고한 글을 기본으로 하고 그밖에 월간지, 주간지에 발표했던 글 일부를 첨가하여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벼드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문제는 그대로 남겨둔 채 그 문제로 인하여 생긴 스트레스만을 풀어 버리려고 한다면 원인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 아닌가. 

친구들과 상의하는 짓도 그만두어라. 당신이나 친구들이나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이며 그저 당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답답함에 대한 약간의 위로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도토리 키 재기 아닌가. (40)


로버트 슐러는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떨어지고 있으므로 하늘을 향해 날아 볼 수는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을 그래서 나는 좋아한다. 절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날갯짓을 할 줄 모른다. (56)


Integrity는, 머릿속에서 옳다고 믿는 생각들과 행동이 엇갈림 없이 하나 된 상태 (189)

이 단어는 평소에 나도 어떤 한 단어의 우리말로 번역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던 단어이다. 세이노는 위와 같이 설명해놓았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섣불리 하지 마라. 

경제적 가치가 별로 없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면 다음 세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하여야 한다.

첫째, 그 분야에서 정말 최고 일인자가 되는 길이다.

둘째, 최고가 되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오타쿠처럼 자기만족을 위하여 빠져 사는 길이다.

세째, 다른 길의 일을 통해 경제적 여유를 마련한 뒤 그 돈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204) 

첫째 길을 택할 수 있다면 문제될게 없겠지만 극소수의 사람에 해당할 것이고,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라면 세째 길을 택해야 하겠지만, 바로 세째 길을 선택하기보다 아마도 첫째, 둘째 길을 거쳐서라는 것이 함정이지만 말이다. 


3세대 부유층에 속한 MZ세대 사람들은 이른바 고생없이 등 따듯하게 자란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고 사고방식이 게임 플레이어에 가깝게 세팅되어 있으며 그런 그들이 부유층이 아닌 다른 MZ세대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저자는 열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그중 몇개만 옮겨본다.)

-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 자기 기준으로 수행한다. 이를 몇몇 기사에서 '3요 세대'라고도 하는데, "이걸요? 제가요? 왜요?" 한다는 거다.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이 옳다고 생각한다.

- 일은 일일 뿐이다. 잡코리아가 발표한 조사결과를 보며 MZ세대 10명 중 3명은 입사 1년도 안 돼 퇴사하였는데 퇴사 사유1위는 연봉 만이 아니라 '워라밸'불만족이었다. 

- 재미있는 게임을 하듯이 재미있는 직장을 찾는다. 일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자기 역량에 달린 것인데 재미있게 이미 만들어 놓은 게임 같은 직장을 찾는다. 

- 게임에서 점수가 바로바로 올라가듯이 금전적 보상이 즉시즉시 나오기를 바란다.

- 공정을 외치면서도 불공정을 옹호한다. 

- 온라인에서 몇 분이면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 한때는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삶을 즐기자더니 (YOLO) 이제는 빨리 돈 많이 벌어서 일찍 은퇴하겠단다 (FIRE족). 


MZ세대이지만 부유층 3세대가 아니고 딱히 물려받을 것도 없다면 저들을 절대 따라하지 말고 독자적으로 살아라.  (316)


세이노도 강조했지만 대부분의 MZ세대들은 부유층도 아닐뿐더러 모두 저런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하고 싶지 않다. 개성이 강한 듯 보이지만, 무리 속에 자신을 일체시키고 싶어함으로써 오히려 획일화된 방향으로 쏠려 살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서 얻는 것이 일체감이 아니라 소외감일까봐 걱정도 되고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위에 예시한 것들이 MZ세대에만 해당한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현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그 윗세대들에게도 이미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것들이 아닌지.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 이론가 혹은 본격 하이테크 사회 이론가라 불리는 장 보드리야르는 이미 30여년 전에 저서 <소비의 사회>에서 광고, 매스 미디어, 에로티시즘, 레저, 가제트 (아이디어 상품) 등이 약속하는 풍요롭고 자유로운 행복한 삶은 거짓 신화에 지나지 않으나 현대인은 그 신화를 믿고 자신의 영혼을 팔아 버리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소비자가 소비하는 것은 더 이상 물건의 사용 가치가 아니라 광고와 텔레비전 등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그 상품의 사회적 이미지이며 현대인은 그러한 이미지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한 때에도, 불행한 때에도 인간이 자신의 모습과 마주 대하던 장소였던 거울은 사라지고, 그 대신에 쇼윈도가 출현했다."라고 그는 지적하였다. (374)


고개 끄덕이며 읽은 부분이 많았지만 그보다 내가 이책에서 더 의미를 찾은 것은, 세이노가 말하는 가르침대로 살자는 것보다는 정작 다른데 있다. 이렇게 자신있게 자신의 인생사용설명서를 묶을 수 있도록 진하게, 자신이 믿는 삶을 꽉 채워 살고 싶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졌고 누구의 삶도 같은 삶은 없으며 소중하지 않은 삶이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하는 삶은 정말 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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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1-17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완독하지 못한 책이에요. 경제와 부 관련의 책인데도 의외로 배울 점이 많아 완독할 계획입니다.
술술 읽히고 재밌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죠.
따라하는 삶을 살기엔 우리 인생이 아깝지요. 아마 점점 개성적으로 사는 이들이 많아질 것 같아요. 비혼들도 늘고 있고 말이죠.

hnine 2023-11-19 09:45   좋아요 1 | URL
읽어볼만해요. 글로 얻은 지혜가 아니라 몸으로 직접 겪은 사람이 하는 말은 더 귀 기울이게 되더라고요. 이분 얼굴은 공개를 안해서 모르지만 이 책 읽고 검색해보다가 어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인터뷰하는 장면은 봤어요. 목소리도 듣고요.
 
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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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평화보다는 전쟁에 가깝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 무서운 전쟁. 

언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르고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마치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 때문 아닌가?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기 때문. 

모든 사랑이 죽음처럼 확실한 끝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스러진다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끝만 끝이  아니라 기억속에서 점차 사라지는 끝도 있는 것이니까.

1940년 생인 아니 에르노가 1991년에 출간된 소설이니 그녀의 나이 51세였다. 데뷔 소설인 <빈 옷장>부터 자전적 소설로 시작해서 체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겠다는 노선을 분명히 한 작가이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1)

사랑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그대로 느껴질 것이다. 세상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험. 

내가 놀란 것은 51세의 나이에도 사랑의 감정 노선은 여전히 이렇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2, 30대와 다를게 없다. 

파리에 살고 있는 중년의 여자 '나'는 러시아 외교관으로 파견되어 나와 있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다.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나의 일상보다 더 중요해지고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의 전화 기다리기, 그와 만나기, 다시 그의 전화 기다리기의 순환 고리 속에 사는 날들. 그 고리가 끝나는 날 자기의 삶도 끝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을 안고 사는 날들. 이미 부인이 있는 남자이지만 나 말고 또다른 연인이 있다면 차라리 그것이 한명의 여자가 아니라 여러명의 여자였으면 하고 바라는 심리.

이런 열정은 단순히 감정의 일시적 폭발이 아니라 한권의 책을 써내는 열정과 같다고 했다.

가끔, 이러한 열정을 누리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를 완성해햐 하는 필요성,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한다는 점이 그랬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서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 열정이 끝까지 다하고 나면 죽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19)


가끔씩 엄마를 방문하는 아들들에게도 그 사람에 대해 말해두고 아들은 집에 와도 되는지 오기 전에 알아서 미리 전화를 걸어주는 문화. 최소한의 것을 알려주지만 그렇다고 아들에게 모든 것을 공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는,

아이들에게 판단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22)


그를 만나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한번도 듣지 않고 대중가요가 더 마음에 들어오고, 여성잡지를 펼치면 제일 먼저 운세란을 읽고, 그의 전화가 오기를 빌면서 지하철 역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거지들에게 적선을 하고, 만약 몇월 몇일에 그에게 전화가 오면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어보기도 하고, 일상의 짜증스럽고 귀찮은 일들에도 무덤덤해진다. 

한 사람에 대한 집중된 열정이 온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삶이지만 작가는 그 열정의 대상에 대해 쓰기보다는 그런 자기의 심경에 대해, 자기의 일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더 쓰고 있다는 점에서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더 특별하게 여기게 했다. 

책 마지막에 이와 관련된 문장이 나온다.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 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66)


이 짧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 만큼 마음에 큰 도장을 찍는 말이 있을까 싶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이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67)

이 세상 사람들을 이 말을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가의 책을 한권 읽고 거기서 그치지 못하게 하는 것, 그의 다른 책을 꼭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면 적어도 내겐 성공적인 읽기라고 본다. 

알려져있는 대로 아니 에르노는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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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0-3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는 제게 재미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멀리했는데....
욘 포세를 읽고는 아니 에르노 작품이 양반이란 걸 알았습니다. ^^;;

hnine 2023-11-01 11:28   좋아요 0 | URL
그럴 것 같아서 저는 아직 욘 포세 책 읽을 생각을 안하고 있습니다 ^^
아니 에르노 책 여자들에게 더 와닿을 내용이지요.
 
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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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범하고 시시한 삶인가! 어느 곳에도 모험이나 투쟁 같은 것은 없으며 예외적이거나 비극적인 면도 없었다. 제대로 작동하는 기계를 바라보는 것같이 흐뭇한 눈길로 되돌아볼 수 있다. 나의 삶은 소리도 내지 않고 멈출 것이다.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조용하고 묵묵히 움직임을 끝낼 것이다. 또한 그래야 한다." (19쪽)


나도 당신도 언젠가는 지나온 생을 되돌아 보고 정리하고 싶어질 때가 올것이다. 그때 나의 삶은 어떤 삶이었다고 말하고 싶을까. 이 소설의 '나'는 말한다. 나의 삶에서는 비일상적이고 극적인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그저 기계적인 세월의 흐름이었고, 평범한 삶이었다고.


며칠 전 '나'는 정원에서 잡초를 뽑는 일을 하던 중, 엄청나게 강하고 확실한 '죽음의 느낌'을 감지한다. 놀람과 두려움에 이어, 나의 주변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집안의 모든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젠 아무것도 정돈할 게 남아 있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음에도 그는 아직 정돈해야할 뭔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은 바로 나의 삶을 정리하는 일, 나의 삶을 짧고 간결하게 기록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자기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기록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자문해본다. 그가 읽어온 책들에서 보면 얼마나 신기한 모험과 별난 인물들이 나오던가. 그에 비해 자기가 살아온 삶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삶이란 특이하고 별난 모험이 아닌 일상적 법칙의 흐름 아니던가, 오히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찬미해야 옳지 않을까, 덜컥거리고 비통하고 산산이 부서지지 않았다는게 부족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그렇게 쓰여진, 한 노인의 마지막 정리의 결과물이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작은 목공소를 하며 돈을 모아가는 것을 인생 목표로 성실하게 일하는 가장이었고 엄마는 감성적이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소심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생각이 많은 아이로 자란 그는 아버지의 기대에 맞춰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고 대학에 들어가 철학을 공부하지만 중간에 그만두고 좋아하는 시를 쓰며 시인을 꿈꾼다. 하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자기의 시가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자 시인이 되고 싶은 꿈을 접고 대신 경제적으로 당당하게 독립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의도로 철도역 공무원으로 취직을 한다. 아들에게 기대를 많이했던 아버지의 엄청난 반대가 따른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뜻을 굽히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보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는 편이었던 그는 도시에서 역무원으로 기계적인 생활을 하던 시기를 이렇게 회상한다.

내 인생의 이 기간은 일종이 끝없는 독백의 시기였다. 독백이란 지독한 것이며, 어느 정도는 자기 파멸이자 우리와 삶을 결속시키는 사슬을 부서뜨리는 일이다. 독백하는 사람은 고독할 뿐만 아니라 끝장난 사람이다. (75)

역을 드나드는 다양한 군상들을 보며 자기와는 동떨어진 세상을 바라보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별종의 군상들이 몰려드는 역은 모든 종류의 악이 번성하는 데 비옥한 토양 구실을 하는 것이며, 자신은 그 희미한 몰락의 냄새를 즐겨 맡는다고 해놓았다. 역에서의 하루를 두 페이지에 걸쳐 묘사해놓은 부분 (79, 80쪽)은 그의 문장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별을 쳐다보면서 나는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했는지 아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처럼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이곳은 실로 세상 끝에 있는 마지막 역이었다. 선로는 풀과 냉이 속으로 뻗어 있었고, 그 뒤에는, 바로 적치장 뒤에는 벌써 우주가 나타났다. 강과 숲이 소리를 냈고, 그 뒤에는 우주가 소리를 냈다. 별들은 오리나무 잎새처럼 깜박이며 소리를 냈고, 산바람이 세상 사이를 가르며 불었다. 아, 그곳은 폐를 채우기에 좋은 곳이었다! (80)


강의 물결처럼 늘 똑같고 늘 새로운 생활. 늘 똑같고 늘 새로운 반복.

가끔 나는 놀랐다.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그렇다. 이것이 인생이다.하루에 기차 두 대가 오가고 끊긴 선로에는 풀이 덮이고, 그 바로 뒤에는 병풍 같은 우주가 나타나는 것이. (82)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우리도 가끔 이 생각을 할 때가 있지 않은가? 이렇게 적절한 어휘, 매력적인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지.

결혼을 하고, 성실한 임무 수행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한 끝에 역장으로 승진도 한다. 자기의 직장인 기차역을 완벽하게 돌아가는 기계처럼 유지시키면서 이 역만은 정말로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남자에게는 자신의 일을 몰두할 수 있는 곳이 가정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116)

그에게 정말 가정은 집보다 오히려 일터였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부에게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그런 현실에 적응하며 남편에게 모든 것을 맞추어 살기로 하는 아내 덕에 표면적 평화와 안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집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간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시간이다. (117)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굴절율이 다른 여러개의 색으로 분산되어 나온다. 작품의 중반을 넘어서 '나'는 평범한 인생이라는 것의 정체가 뭘까 생각하다가 '나'라는 한 사람 내면에 서로 다른 '나'가 존재함을 알게 되고, 그들의 대화가 시작된다. 그것은 자아 비판일수도 있고 자기에 대한 철저한 이해의 과정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의 진가는 여기서 드러나는 것 같다. 여러 개의 다른 내가 삶의 각 순간에 밀고 당기고, 숨거나 드러나며 지금까지 이끌어 왔음을, 통합된 개체로서 '나'는 뒤늦게 발견하는 과정이다. 어린 시절 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 보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졌는지, 들키면 처벌받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역장으로서 친구에게 비밀리에 정보를 넘겨준 것은 무엇때문이었는지, 시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기차역 사무원이 되기로 한 것은 어떤 '나'의 결정이었는지, 하나 하나 해부하는 과정이다. 프리즘에 빛을 통과시켜 서로 다른 여러 색의 존재를 비로소 발견하듯이. 면적을 미분하여 여러 개의 선이 모여 이루어졌음을 확인해가듯이. 


삶에서 규칙적인 생활의 의미는 무엇인가.

너의 내면에는 뭔가 두려운 게 있었고, 너는 쉬지 않고 달아났어. 어디에서 멈춰 섰었나? 세상 끝에 있는 마지막 역이었던가? 아니야, 그곳엔 아직도 약간의 인광이 빛을 발하고 있었어. 네게 부여된 역에 가서야 비로소 멈출 수 있었고 넌 사물들이 안전하게 질서를 이루는 그곳에 자신을 숨겼지. 그곳에서는 더 이상 두려워할 게 없었고 안정을 찾을 수있었어. 넌 죽도록 무서워했지. 이게 죽음일지 모른다. 조심해야 해. 이 길로 몇 걸음만 더 가면 미쳐 버리고, 자신이 파멸해 죽게 될 거라고 느꼈겠지. 

그러고는 너를 파멸시키지 않을 그 점잖고 견고하고 규칙적인 생활에 단단히 매달렸지. 삶에 필요한 것만을 골라잡고는 다른 어떤 것에도 눈길을 주지 않았어. 

자신을 바라보지 않기 위해 너는 일들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그 일을 네 직업이자 생활로 만들었다. 너는 성공했고, 너 자신에게서 벗어나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 양심적이고 만족스럽게 평범한 인생을 살았어. 잘 살아온 삶인데 또 뭘 원하는 거지? 뭘 유감스러워하는 건가? (173, 174, 175)

이 부분을 이 작품의 핵심 구절로 꼽고 싶다. 

서로 완전히 다른, 극단적으로 다른 존재인 여럿의 '나'가 나의 내면에 서로 뒤섞이고, 삶의 각 순간마다 두각을 나타내어 하나의 인생을 이루어온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alter ego의 존재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문학 작품 속에서 이렇게 피부에 와닿게 느껴보긴 처음이다. 


카프카, 쿤데라와 함께 체코 국민 작가중 한 사람이라는 카렐 차페크.

책 표지 그림이 재미있다. 누구의 그림인가 봤더니 요세프 차페크. 카렐 차페크의 친형이다.





이건 갈등의 여지 없이 별 다섯개.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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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
김정선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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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나와있는 수많은 책들. 살아있는 동안 아무리 부지런히 읽어도 그 중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을테니, 책을 만난다는 말보다 '마주친다, 스친다' 라고 표현하는게 이해 되기도 한다. 그 많은 책들 중 몇권을 선별해서 그것들에 대해 책을 썼다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 반가고 어떤 책을 골랐을까 하는 것부터 어떻게 읽었을까 하는 것 까지,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그 중에 내가 읽은 책이 나오면 물론 반갑고, 내가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한 부분은 그런 책들대로 더 호기심과 궁금증을 준다.

읽은 책을 주제로 기존에 나와 있는 책들 역시 많지만 내가 읽은 것들을 기억나는대로 추려보니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번에 읽은 책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은 제목이 솔직하고 꾸밈없어 더 눈에 들어왔다. 나 역시 기회될때마다 세계문학전집을 조금씩 사서 모으기 시작한지 몇년 되다 보니 더 관심이 갔다.

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하루 종일 다른 일 안하고 책만 읽고 살 수 있는 생활을 꿈꾸곤 한다.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하면서. 위의 세 저자들은 그런 경우는 아니었다. 한 저자는 직업이 번역가이고 틈틈히 읽은 책들 중 고전을 골라서 책을 엮었고 ('살면서 마주 한 고전'), 다른 저자는 중년에 이르러 꿈찾기의 돌파구로 독서를 한 경험을 책으로 썼으며 ('책만 읽어도 된다') 또 한 저자는 친 언니를 잃고서 정신적인 공허를 달래고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기로 하고 그 기록을 책으로 엮었다 ('혼자 책 읽는 시간').

이 책의 저자의 경우는 좀 다르다. 생계 수단으로 해오던 일을 건강문제로 접어야했고 그렇게 주어진 시간의 공백을 책 읽기로 채우기로 한다. 예전 부터 하고 싶어 마음 속에 담고만 있던, 세계 문학 전집 쌓아놓고 한권씩 읽어나가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2020년에서 2021년에 걸쳐 아홉달 동안 읽은 백권의 책을 읽은 기록을 이 책에 모아놓았다.

책 제목과 출판사, 그리고 한 단락 정도의 대표 구절을 시작으로 하여, 그 책을 읽을 즈음의 본인 근황과 심경을 간단하게 밝히고, 책 줄거리는 비교적 자세하게 적어놓았다. 그리고 책에 대한 소감으로 마무리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책 감상글이랄 수 있는데 저자만의 독특한 감상과 소감이 들어가 있는 경우도 많이 눈에 띄었다.

예를 들면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를 <폭풍의 언덕>의 남주인공 히스클리프의 미국 버전으로 비교한 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가면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이다.

가면을 쓰는 것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가면 뒤에 참다운 나가 있다고 믿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외려 가면이야말로 가면 뒤에 숨어서 온갖 사회적 시선을 피하고 있는 바로 그 '참다운 나'를 대신해 그 모든 걸 다 받아내는 존재 아닐까? (65쪽)

가면이 일반화되어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인정하고, 가면이 필요한 이유, 가면의 의미를 나의 일부로 보는 시각이 새로왔다. 

줄거리를 차근차근, 자세히 설명해놓은 것은 좋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그것이 내가 읽은 책이라면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주어 좋았지만 읽지 않은 책의 경우엔 책에 대한 소개 정도로 따라가며 읽기에 좀 긴 분량이 되더라는건 순전히 개인적 소감일 수 있겠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을 줄거리를 한번 읽는다고 내용이 파악되긴 어려울 것이고 그러다보니 자세한 줄거리를 따라 읽는 동안 자칫 지루해질 수 있고 글자만 읽어넘기게 되더라는 것이다. 저자의 친절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작품이라며 조지 오웰의 다른 작품보다 먼저 읽히기를 바란다는 점에는 공감하며 흐뭇했다. 저자가 읽은 소설 가운데 가장 고급스럽고 고상한 소설에 속한다는, 그래서 흥미로우면서도 한편 불편하기도 하다는 헨리 제임스의 소설 <나사의 회전>도 어서 읽어보고 싶다. 

같은 제목으로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2>도 나와있고 3권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막상 책만 읽어도 되는 여유가 생기고 나니, 책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아 투덜대곤 하는 나 자신에 대해 잠시 반성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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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0-2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인 님 리뷰 읽으려니 제가 이걸 장바구니에 담아놓기만 하고 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사야지 싶어집니다.
저는 작가가 소개하는 책 줄거리를 읽는 것도 좋을것 같아요. 근황과 심경도 적어두었다 하셨는데, 아무래도 어느 상태에서 언제 읽느냐가 감상에 영향을 많이 미칠거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읽어볼래요.

hnine 2023-10-25 00:47   좋아요 0 | URL
저자의 근황을 쓰려면 주위 다른 사람들을 언급할 수 밖에 없어서 근황은 아주 간단하게만 쓰셨어요. 타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이겠지요.
같은 작품이라도 어느 상태에서 언제 읽느냐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적잖이 영향을 미친다는데 동감입니다. 이 책 저자도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데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 있나 하는 언급을 한 작품이 몇개 되더군요.
다락방님의 독후 소감을 기대합니다~
 
라쇼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6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서은혜 옮김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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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것이 지금처럼 많지 않던 어린 시절, 읽고 또 읽던 열몇권 짜리 (오십권짜리 어린이 세계문학전집 말고) 세계 전래 동화집중 유독 이야기의 재미보다 신비감을 더 크게 남겨주었던 것은 일본 동화집이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현실과 현실 아닌 곳을 왔다 갔다, 눈에 보이는 것과 상상의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들이어서 다 읽고서도 갸우뚱, '이게 뭐지?' 하는 여운을 남겼던 기억이 있다. 기이하기도 하고 약간 무섭기도 하고, 확실히 우리 나라 전래 동화와는 달랐고 나머지 다른 어느 나라의 이야기와도 다른 분위기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일본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그나마 몇권 읽은 것들에서 받은 느낌은 어릴 때 기억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일본이라는 나라가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여서 그런지 이야기에 귀신이 자주 등장하고, 귀신의 출현이 일회성 출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 생활에 스스럼없이 침투하여 살아있는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한 경우까지 자주 나오는 것이,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에 편향된 독서를 해오던 나에게는 여전히 일본 소설은 일본 소설의 독특한 분위기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이 책을 읽자고 고르면서, '막연한 불안'이 이유라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그 막연한 불안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었다.

그가 발표한 작품들 대부분이 단편인데 이 책에는 열 네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소세키의 극찬을 받았다는 ''는 한 스님의 신체부위 코가 특이하게 큰 것을 소재로 하였다. 남의 눈을 기준으로 나를 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고, 스님을 대상으로 한 것은 종교인이나 수도자도 예외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부질없는 희비극 끝에 도달하는 곳은 결국 허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마죽'. 마죽을 실컷 먹고 싶다는 욕망 (인생의 욕망)이 어느 순간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어느 날 해 질 녘이었다. 하인 하나가 라쇼몬 아래서 비를 긋고 있었다. 

널따란 문 아래에는 이 남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군데군데 붉은 칠이 벗겨진 커다란 원주에 귀뚜라미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라쇼몬 (羅生門)'은 원래 헤이안 시대 수도 교토의 성문을 말한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행동에 대해 쓰고 있다. 재해와 기근으로 폐허가 된 교토의 성문 (라쇼몬) 위에서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 노인을 마주친, 갈 곳 없는 하인이 나온다. 도둑질 아니면 굶어 죽음 앞에서 그의 선택은 고민의 여지가 없다. 굳이 사고가 필요없는 선택이 있을 뿐이다. 역동적이고 회화적 묘사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묘한 이야기'는 전쟁에 파병된 남편을 기다림과 동시에 다른 남자와 밀회 약속을 하면서 신경증을 보이는 지에코의 이야기이다. 그녀 앞에 출현했던 빨간 모자의 정체는 그녀의 양심일지도 모른다. 

우울의 시작은 이렇게 소소한 것일 수 있지만 결과는 끝도 없이 부풀려 질 수 있다는 '다네코의 우울', 내 아기 잃은 것이 다른 아기 잃은 엄마를 보고 위로가 될 일인가? 과장된 것은 아닐지 공감이 쉽게 되지 않던 '엄마'. 모든 엄마에게 아기는 다른 대상이나 재산을 얻고 잃는 것과는 다른데 말이다.  

꿈 같은 현실, 현실 같은 꿈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그동안 읽었던 일본 소설을 구별짓는 특징 중 하나였다.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창작 과정에 따르는 필요한 혼돈일지도 모른다. 제목처럼 글 전체가 꿈 얘기인 ''. 그리고 '흙 한덩이'에서는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죽으면 흙 한덩이로 돌아간다는 의미도 되겠고, 며느리가 살아있는 동안 그토록 움켜쥐고자 했던 욕망의 부질없음을 흙 한덩이라고 보았을 수도 있다. 

죄인들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지옥변'이라고 한다. 단편 '지옥변'에서는 창작의 고통을 참극으로 극대화하여 비유하였다. 딸이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아비의 눈으로 보고 있어야 하는 참극이다. 이렇게 나온 창작의 결과물 앞에서그림을 그린이는 과연 만족할까. '아무리 하나의 예나 능에 뛰어나다한들 인간으로서 오상 (인의예지신)을 못가린다면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라는 짧은 인용문이 나온다. '거미줄'에서 거미줄은 신이 준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상징한다. 보기엔 가늘지만 강도가 센 거미줄을 내려주지만 결국 이기적인 인간 본성은 자기손으로 그것을 끊어내고 만다는 비유가 뛰어나다. 연꽃의 아랑곳하지 않음은 변하지 않는 진리, 흔들리지 않는 세계를 의미한다는 설정까지도. 

두자춘이라고 하는 사람이 도를 깨우쳐가는 과정을 그린 '두자춘'은 부귀영화의 삶을 누려본 후 마지막으로 그가 원하는 것은 인간답고 정직한 삶, 그에게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것은 산기슭의 집한채와 밭이었다. 

'신들의 미소'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명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일본에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신부 (神父)가 일본의 전통 토속 신앙과 대립을 이루는 방식이 몽환적이면서 상징적으로 그려져있다. 꿈의 세계에서 현실을 다시 보여주는 것은 아쿠타가와의 주특기인지. 

한 사람의 죽음을 놓고 여러사람의 설명을 모아 놓은 형식의 '덤불속'은 또 얼마나 신선했는지 모른다. 죽은 사람에 대한 어느 누구의 말도 일치하는 사람이 없다. 더 많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한들 마찬가지일것 같다. 덤불속이란 제목은 어느 것이 진실인지 가려낼수 없는인간의 삶,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실린 마지막 작품 '갓파'는 뜬금없이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떠올리게 했다. 갓파라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 나오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직업과 신분에 해당하는 갓파의 이름들이 나온다. 차크는 의사, 배그는 어부, 토크는 시인, 래프는 학생, 이런 식. 여기까지만 해도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감이 올수도 있다. 인간의 신분과 계급에 대한 비판을 갓파라는 상상의 동물을 통해 쏟아 내겠다는 것이다. 특히 시인에 해당하는 '토크'라는 갓파를 통해서는 창작가로서의 작가의 고뇌를 집중적으로 묘사한 느낌이 든다. 이 작품을 썼던 해 1927년, 35세를 일기로 아쿠타가와는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세상을 등졌다. 35세라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그가 소재로 삼고 작품으로 남긴 다양한 세계를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세계를 넘나들며 복잡하고 불안한 정신 세계를 혼자서 머리속에 구축해왔을까 감히 짐작하게 한다. 

막연한 불안이라는 말은 문학의 세계에서 생소한 말이 아닌 듯. 그는 더 살아남아서 그 불안을 다른 형태로 승화시킬 수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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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0-1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편집의 리뷰는 쓰기 어려운데 잘 정리해 쓰셨네요.
저는 라쇼몬보다 덤불속, 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참 탁월한 작가라고 감탄하며 읽었죠.
언젠가는 덤불속을 소재로 글을 쓰려고 마음먹고 있어요. 저는 문예출판사 걸로 갖고 있어요.^^

hnine 2023-10-19 12:51   좋아요 1 | URL
제가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읽으면서 그때 그때 간단히 메모를 해두었어요.
리뷰를 쓰느라고 그때 메모를 다시 보고 페이지를 들춰보다보니 읽을 때보다 더 의미가 깊게 들어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덤불속, 제게도 작가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 인상적인 단편 중 하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