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파르마의 수도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
스탕달 지음, 원윤수.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라고 하는 나라가 지금처럼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것은 200년이 채 못된다. 이전까지는 여러개의 도시 국가가 복작복작 이탈리아 반도 땅을 나눠갖고 있는 형태였다. 파르마 공국도 그 중 하나로서 이탈리아 반도의 북부에 위치한 나라였고 파르마가 수도였다. 스탕달은 프랑스 태생임에도 불구하고 군인이 되어 이탈리아로 떠났던 것을 계기로 이후로도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많이 하였다. 파르마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 <파르마의 수도원>은 <적과 흑>보다 9년 늦게 발표한 작품으로서 스탕달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다. 스탕달이 이탈리아에서 영사로 있던 때인 1833년에서 1834년 사이 로마를 방문했다가 16세기 르네상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문서를 몇 편 접하게 된다. 그 중에서 <파르네제 가문의 위대함의 기원>이라는 글에 특히 흥미를 느낀 스탕달은 이 얘기를 16세기 배경에서 19세기 배경으로 바꾸고 일부 내용을 첨삭하여 하나의 소설을 탄생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파르마의 수도원>이다.

19세기 초 이탈리아 밀라노 공국 (파르마 공국은 이야기의 나중에 등장). 델 동고 후작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그 중 둘째 아들 파브리스가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나폴레옹을 숭배하는 젊은이이다. 적과 흑에서도 그러더니 나폴레옹 얘기가 빠지질 않는다 (스탕달 자신이 나폴레옹 군대에 지원하여 참전한 경험을 갖고 있다). 어느 날 나폴레옹 꿈을 꾸고 나더니 나폴레옹 황제의 군대에 들어가겠다고, 이건 운명이라는 듯이 고모인 백작 부인에게 설파하는 내용이 소설의 초입에 펼쳐진다. 결국 전쟁터에 투입되어 전쟁에 임하는 모습이 허세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전쟁에 대한 환타지를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아, 드디어 난 전쟁터에 왔구나!" 그는 생각했다. "난 포화를 본 거야." 그는 만족스러운 심정이 되어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나는 이제 진짜 군인이야." 그 순간에도 호위대는 쏜살같이 질주하고 있었다. 우리 주인공은 사방에서 흙덩어리가 날아오르는 이유가 바로 포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72쪽)

어수룩하게 전쟁 구경만 하다시피하고 돌아온 파브리스를 기다리는 건 그가 자유주의자라는 혐의를 씌운 친형의 음모였다. 다행이 파브리스를 너무나 사랑하는 공작부인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 공작부인은 파브리스의 친고모이다. 그런데 조카 파브리스에 대한 감정이 고모와 조카 사이의 친밀도 그 이상이다. 우리 정서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고모의 나이가 아주 많은 것도 아니었고 결혼 생활에 만족하는 편도 아닌데다가 조카 파브리스 말고도 여러 남자들의 추앙을 받는 미모를 지닌 것으로 나온다. 단, 파브리스 역시 고모와 같은 감정을 지녔는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사랑의 감정보다는 숭배에 가까운 것이라고 보여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대목때문이다. 

그는 공작부인에게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녀를 향해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한 것이다. 이 순간 그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부인에 대한 감정은 숭배에 가까운 것이었으므로 사랑이란 말은 옳지 않은 것이다. 그는 부인에 대항 사랑이란 단어를 꺼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햐면 사람들이 사랑이라 부르는 이 정열은 그에게는 낯선 것이니까. 지금 그는 고귀하고 너그러운 감정이 솟아오르는 가운데 더 없는 행복을 느꼈다. (230쪽)

이런 파브리스의 성격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된 부분이 더 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그 주위를 수없이 맴돌기만 할 뿐, 그 문제를 뛰어넘을 줄은 몰랐다. 그는 아직도 너무 젊었던 것이다. 한가할 때면 그의 마음은 상상력이 언제라도 꾸며내 주는 소설적인 상황에 빠져들어 그 감각을 맛보는 데 정신 없이 몰두하곤 했다. 사물의 실제적인 특성을,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성찰하는 일에 시간을 쓰는 적은 없었다. (232쪽)

이후로 소설의 주 갈등 요소를 제공하는 사건으로, 파브리스와 떠돌이 극단의 여배우 마리에타의 연애 사건이 등장한다. 마리에타에게는 이미 정부 (情夫)가 있었고 파브리스에게 시비를 거는 정부와 싸움이 붙은 끝에 그만 그를 죽이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감옥게 갇히게 된 파브리스는 와중에 감옥이 있는 성채 사령관의 딸인 클렐리아와 사랑에 빠지고, 파브리스를 감옥에서 빼내기위한 고모인 공작부인의 온갖 노력으로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파브리스의 마음은 클렐리아에게서 떠나질 않는다. 

이후 클렐리아는 결국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고 절망한 파브리스는 파르마의 란드리아니 대주교의 수석 보좌주교를 거쳐 부주교의 지위에까지 오르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고 오로지 클렐리아 생각 뿐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그동안 철없는 젊은이가 중심이 되어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사랑 타령 이야기라 생각하며 가볍게 읽어오던 것을 홱 돌려놓을 만큼 급격하고 불행하게 맺는다. 제목이 파르마의 수도원인 것은 파브리스가 마지막으로 은둔에 가까운 생활로 정착하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1, 2권에 걸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소수의 행복한 사람들에게 바친다.

To the happy few


행복은 소수에게만 있다는 이 말이 오늘 따라 더 쓸쓸하게 마음에 닿는다. 

파르마의 수도원이 출판된 후 발자크는 이 작품에 찬사를 보내는 평문을 쓰기도 했다. 이 작품을 출간하고 3년 후 스탕달은 뇌졸중 발작으로 쓰러져 다음 날 새벽에 사망하였다. 그의 나이 59세. 

소설 구성이 다소 산만하고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더라는 의견들에 충분히 공감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결말이 이렇게 될 것이라면 살아있는 동안의 크고 작은 일들은 그저 꿈 같기도 하고 행복을 쫒는 놀이에 지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나 저나 행복이란 현실보다 꿈에 가까운 것인가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 고독한 방구석 피아니스트들을 위하여
임승수 지음 / 낮은산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업이나 전공으로 하지 않으면서 취미로 즐겨 하는 사람을 아마추어라고 한다. 그게 예술 분야일때는 딜레당뜨 (dilettante) 라는 말도 있다. 아마추어나 딜레당뜨라고 하면 기술적인 숙련도나 깊이는 프로에 못미친다는 의미가 우선 떠오르지만, 그래서 더 부담없이 맘껏 즐길 수 있는게 아마추어의 특권이지 않을까.

자기 전공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것도 가치 있고 존경스러운 일이지만, 자기 전공 아닌 분야에서, 즉 돈 되는 일도 아니면서 오랜 세월 진심인 사람은 멋진 사람이다. 이 책 저자 처럼 말이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좋아해서 레슨을 받고 있었지만 분야의 특성상 일찍 진로를 결정하고 진학을 해야하는 기로에서 뒤로 물러서고만다. 끓는 점인 100도 까지 오르지 못하고 99도에서 훅 꺾였다고 저자가 썼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후로도 피아노에 대한 열정은 계속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레슨을 받고 좋은 피아노를 찾아 다니며 쳐보고 사이버대학교 피아노과를 알아보고, 30평대 아파트에 중고 그랜드 피아노를 들여놓고, 시간이 날때마다 피아노를 친다. 





그가 연습하는 곡 중에는 악마에게 혼이라도 팔아서 잘 치고 싶다는 곡도 있고 (바흐의 부조니 샤콘느), 연습이 제대로 안풀려 답답할때 치면 위로가 되어주는 진정제 같은 곡도 있으며 (브람스의 인터메조),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아낌없이 주는 곡도 있다 (슈만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저자의 부인 ('기울어진 미술관'을 쓴 이유리 작가)이 책을 내고서 출판 기념회를 겸하여 저자의 미니 연주회를 마련, 그 유명한 스타인웨이 앤 존 피아노로 연주하는 모습은 그가 책에서 넌지시 알려준 그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서 보게 되었다. 슈베르트의 즉흥환상곡을 정확한 터치로 흐트러짐없이 (정신 안차리고 치면 흐트러지기 쉬운 곡인 것을 아는 입장에서) 쳐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참 좋은 세상인 것이, 그가 책 속에서 소개하고 언급했던 곡들이 내가 따로 찾아볼 필요도 없이 책 뒤에 바로 QR코드로 실려 있다. 






스마트폰의 QR코드 리더를 갖다 대면 바로 이 곡의 동영상 연주 페이지로 연결되어 들을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이 나오기도 전, 훨씬 오래 전부터 역시 피아노에 몹시도 진심인 한 방송국 PD가 팝 캐스트를 통해 자신의 피아노 사랑을 얘기하고 자신의 연주도 올리더니 (나도 구독자였다) 다음과 같은 책도 냈었다. 




--> [알라딘서재]모든 아마추어들이여, 부러워하라 (aladin.co.kr)  (그때 올린 리뷰)


프로만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프로가 되는 순간, 그 일의 완성도에 신경을 써야 하고 실수가 생기지 않기 위해 집중해야 하며, 온전한 마음으로 즐기는 순간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하리라. 

아마추어로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를 이렇게 주워섬기고 있는 나도 역시 피아노에 관해서 아마추어라고 보기 때문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23-07-2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평대 집에 중고 그랜드피아노라니...대단하네요.
악마에게 혼이라도 판다.
그 열정도 부러워요. 음..
요즘은 뭔가 하고 싶은게 없어요.

hnine 2023-07-22 21:06   좋아요 0 | URL
세실님, 우리 나이쯤 되면 일부러 찾아보거나 만들지 않는 한, 뭔가 하고 싶은게 많은 시기는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리고 예전에 써놓은 글이나 일기장을 들춰보면 분명히 생각나는게 있으실걸요.
일에 너무 치여서 몸과 마음의 여력이 없으셔서 그러실지도 모르고요.

icaru 2023-07-27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 님 피아노 아마추어와 전문가 사이 어드메쯤인 거 저 잘 알잖아요!
쇼팽의 야상곡 중에서 한 곡을 연주하여 올리신 유튜브 영상 보고 놀라서 넘어갔잖아요!
ㅎㅎㅎㅎ 여전하시죠?

저 또한 요즘엔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읽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인데, 히사이시 조와 류이치 사카모토의 에세이를 충동적으로 구매한 것을 보면, 마음이 음악 언저리에 가 있기는 한 것도 같고 그래용 ㅎㅎ

icaru 2023-07-27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재작년엔가 백건우가 연주하는 슈만을 주제로 한 피아노 독주회에 갔다가 엄청난 감화를 받고 왔던 기억이 있어요,
노익장의 무르익은 연주란 이런 것이다. 했어요. 듣고 있는데, 순식간에 내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시간 맞춰서 간 공연이라 미처 프로그램북을 챙기지 못했다가 인터미션에 나와서 줄서서 구매하고, 원래 그런 사람 아닌데,,,프로그램북도 얼마나 만듦새가 좋다며 감탄감탄하고요 ㅎㅎㅎ 그 이후로 저는 슈만의 환타지 c장조 작품번호 17에 3악장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되었어요! ㅎㅎ;; 나인 님 서재에서 사연을 풀어내는 저는 또 왜 이러는 것인지 ㅎㅎ

hnine 2023-07-28 18:56   좋아요 0 | URL
아이쿠, 창피해라. 지금 다시 유튜브 들어가보니 제가 듣기에도 아니다 싶었는지 그 곡은 내리고 없네요 ㅋㅋ. 남아있는 몇 곡들도 별 차이 없지만요.
피아노는 저에겐 대나무숲 같은 것이라서 위로나 위안이 필요할때 마다 피아노를 뚱땅거렸더니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왔어요 ㅠㅠ 그런데 지금은 민원을 넣었다는 그 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사일런트 피아노를 지르고 말았으니까요. 지금은 아무때나 마음 놓고 피아노를 칠 수 있어요.
백건우 피아니스트는 지금처럼 조성진 임윤찬 선우예권 없던 시절에 피아니스트의 대명사 같은 분이었지요. 그 온화한 얼굴 하며 격정을 다 소화시켜 풀어내는 명상같은 음악.
얼마전엔 손민수 피아니스트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연주 보러 통영까지다녀왔답니다. 제가 사는 대전에서도 통영은 먼 거리인데 무리를 했지요. 저도 눈물 콧물 범벅 하면서 숨 죽여가며 보았답니다.
icaru님 ,저 좀 말려주세요. 댓글에 답글 다는 핑계로 저야말로 수다가 길어지고 있네요.
위에 피아노홀릭 쓴 김영욱 pd야 말로 피아노 실력이 전문가 수준이어요. 말은 또 얼마나 재미있게 잘 하는지. 시간 되실때 한번 들어가보세요.https://youtu.be/CBWRLTpCjJI


icaru 2023-07-29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민수라면 윤찬 군의 스승님 역시 그 제자의 그 스승님이시네요!! 김영욱 피디 링크해 주신 것 꾹!!! 눌러 들어가보겠습니다~

보물선 2023-07-3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취향 공동체시군요! 반가워요~~~

hnine 2023-08-01 00:05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
 
적과 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5
스탕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의 적과 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스탕달 자신은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한다. 여러 의견들이 분분한 가운데 , 즉 붉은 색은 복장 색깔로서 군인계급을, 은 성직, 사제직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의견이다. 스탕달이 이 작품을 쓸 당시 프랑스는 평민이 신분을 상승시켜 출세할 수 있는 두개의 주요 루트가 군인 계급과 성직이었다.


1783년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태어난 스탕달의 본명은 앙리 벨. 스탕달은 그의 필명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어둡고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파리로 갔다가 우여 곡절 끝에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군대의 소위로 임관받고 이탈리아 원정에 참관한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그의 지위도 소용없게 되었으나 이탈리아를 좋아했던 스탕달은 이탈리아 밀라노에 체류하며 크고 작은 관료직에 종사하며 경제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으나 풍족하지는 못했다. 몇 명의 여성들과 연애 사건도 겪지만 실연과 정치적 이유로 밀라노를 떠나게 되고 프랑스로 돌아와 작품들을 출판한다. 적과 흑은 1830년 그의 나이 47세때 파리에서 발표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프랑스 베리에르라는 소도시에서 목수일을 하는 아버지를 둔 아들 쥘리엥 소렐. 

변변치 않은 신분, 가족들과 원만치 않은 관계 등으로 쥘리엥은 구차한 상황을 탈피하여 출세해볼 목적으로 베리에르 시의 시장인 드 레날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쥘리엥이 자기보다 어린 나이에도 박식해보이지만 넉넉치 못한 가정 형편인 것을 알게 되고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된 드 레날 시장 부인의 마음을 알게 된 쥘리엥은 곧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다른 가족들 몰래 만남을 갖는다. 매력적인 청년 쥘리엥에게 마음이 있던 이집 하녀 엘리자는 쥘리엥에게 프로포즈를 하지만 드 레날 부인과 좋아하는 쥘리엥은 하녀 엘리자의 청을 거절한다. 이에 대한 복수심으로 엘리자는 드 레날 부인과 쥘리엥과의 사이를 주위에 폭로하고 쥘리엥은 그 집에서 쫓겨나 브장송이라는 곳의 신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다행히 쥘리엥은 신학교에서 실력을 인정 받지만 수입을 좀 더 챙겨볼 요량으로 파리의 대귀족인 드 라 몰 후작의 비서로 일해주기로 하는데, 여기서 그는 또 드 라 몰 후작의 딸 마틸드와 눈이 맞는다. 드 레날 부인과 달리 거만하고 일상이 권태롭기만 했던 마틸드의 눈에 쥘리엥은 어딘가 달라보여 마음을 끌게 한다. 쥘리엥은 서슴없이 접근해오는 마틸드와 밀고 당기고를 반복하며 비밀스런 연애를 벌이다가 마틸드를 임신시키게 되고, 딸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후작은 어쩔 수 없이 둘의 결혼을 허락하는데, 여기서 쥘리엥의 과거는 또 그의 발목을 잡는다.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데.


계급과 신분의 굴레가 팽배했던 사회에서, 출세가 인생의 목적이었던, 야심찼지만 동시에 심약하기도 했던 청년 쥘리엥과, 부르조아 신분의 여유가 넘쳐 권태 속 일상을 보내고 있던 마틸드는 그 당시 프랑스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소설이 배경이 되었던 사건이 있었는데 1827년의 일명 '베르테 사건'이다. 법정 신문에 상세하게 게재되기도 했던 이 사건은 베르테라는 청년이 가정 교사로 들어간 집의 부인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의심받게 되자 억울하다고 생각한 베르테는 앙심을 품어 살해를 시도하여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아 처형된 사건이다. 이런 것을 보면 스탕달의 이 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 단지 그가 지어낸 한 청년의 연애 사건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연애 소설이라고 보기엔 스토리가 너무 뻔하다. 상류 계급 여자와 하류 계급 출신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애증과 복수가 얽혀 비극으로 마치는 얘기가 참신하다고 볼수는 없으니까. 작품 속 쥘리엥이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입장을 나타내듯이 스탕달 자신이 실제로 나폴레옹 군대에 지원했던 경험이 있고, 수년간 이탈리아와 파리를 오가며 사회에 팽배해있는 신분과 계급의 격차, 출세의 장벽 등을 실감하며 고발하고 싶은 것들을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그 나름의 폭로를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출세를 지향하는 쥘리엥의 처지 뿐 아니라 쥘리엥을 사랑했던 여자들이 속한 두 가문을 통해서, 사랑에 임하는 그 여자들의 심리 묘사를 통해서, 귀족 신분을 가진 사람들의 그 알맹이는 없고 허세와 권태만 있는 생활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순서를 다 기억못할 정도로 혁명에 혁명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던 프랑스 혁명 시대, 극과 극의 체제 변화를 겪으며 불안한 가운데 개인의 성공과 안위를 모색해야했던 시대상이 잘 찾아보면 보이는 것도 같다.


스탕달 하면 이 '적과 흑', 그리고 '파르마의 수도원'을 대표작으로 꼽는다.

파르마의 수도원이 마침 집에 있으니 다음 번 읽을 책으로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 Rothko, Right red over black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caru 2023-06-22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로스코의 그림을 보고 아! 적과 흑이지! ㅋㅋ
알은체를 하고 갑니다!!

뭇사람들에겐 읽지 않았지만 읽은 것만 같은 고전들을 묵묵히 읽어내시는 저력!! 존경스러워요!!

hnine 2023-06-22 23:51   좋아요 0 | URL
icaru님처럼 알아봐주시는 분이 계셔서 좋습니다 !
연관짓기 좋아하는게 제 취미라서 ^^
읽고 싶은 신간들도 많지만 고전 중에서 책을 골라들땐 ‘이 책 괜찮을까?‘ 갈등할 필요가 없어서 좋아요. 솔직히 적과 흑은 제게 책장이 빨리 넘어가는 책은 아니었지만 내친김에 스탕달의 대표작 양대산맥인 파르마의 수도원, 그것도 두권 짜리인데 읽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이고요.
 
하루 10분 명문 낭독 영어 스피킹 100 - 조이스 박이 엄선한 삶의 문장들, 개정판
조이스 박 지음 / 로그인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머리글에서 이 책의 용도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읽고 들은 다음 입을 열어 따라해보고 핵심 메시지를 영어문장으로 말해보는 구조를 매 꼭지마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책의 구성은 그렇게 10분씩 눈으로 읽고 한 문장씩 듣고 따라하고 전체 문단을 듣고 따라하고 응용 메시지를 영어로 말해보는 4단계를 따라가면 됩니다."


처음 구입해서 일단 어떤 명문들이 올라와있나 쭉 훑어 보았다. 말 그대로 유명인사들이다. 대부분 미국의 작가, 정치가, 배우, 가수 등 들으면 알 만한 사람들이고 대학 졸업식에서의 연설문, 저서 중 일부 발췌문, 인터뷰 중 발췌문 등으로 되어 있다. 100개의 꼭지로 되어 있는데 한 꼭지가 1두세 페이지 정도로 되어 있어 10분 정도 분량이라는 말에 부합하게 그리 길지 않다. 

요즘은 책의 페이지 위에 큐알코드가 인쇄되어 있어 그 페이지의 내용을 바로 듣기 모드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는 책들도 많은데 이 책은 그렇게 되어 있지는 않고 MP3음원을 들으라고 되어 있는데 youtube에서도 검색이 되어 나는 주로 youtube를 통해 들어보았다. 이 책은 믈론 오디오북으로도 판매되고 있으나 내가 구입한 것은 오직 종이책뿐이므로.


그렇게 착실하게 저자님 말씀하신대로 읽고 듣고 하면서 반 정도 왔을때 손에서 놓고 한참이 지났다. 다시 시작하려니 youtube 찾아 듣고 읽고 하자니 귀찮고 끝까지 보긴 봐야겠고 해서 말하기와 듣기 연습이라는 저자님의 말씀을 안듣고 따라쓰면서라도 끝까지 다 읽자고 방향을 전환해서 아무튼 끝까지 다 가긴 갔다.














저자의 의도대로 이용하진 못했으나 따라 써보는 동안 책의 내용을 더 확인하고 의미를 새길 수 있었다는 장점은 취득한 셈이다. 일부러 시간을 낸다기 보다는 짜투리 시간에, 다른 어떤 무거운 책 읽고 있던 도중 읽는데 집중이 잘 안될때, 잠시 이런 책 꺼내어 따라써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The most difficult thing is the decision to act, the rest is merely tenacity. The fears are paper tigers. You can do anything you deceide to do. You can act to change and control your life: and the procedure, the process is its own reward.


가장 어려운 일은 행동하겠다는 결정이다. 나머지는 그저 집요함일 뿐이다. 공포는 종이호랑이다. 하기로 결정한 일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삶을 바꾸고 통제하기 위해 행동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절차, 그 과정이 그 자체로 보상이 된다. 

아멜리아 에어하트 (Amelia Earhart)라는, 미국의 여성 파일럿이자 작가의 말이다. 


각 꼭지의 문장들이 그리 어려운 내용도 아니고 말대로 좋은 메시지를 지닌 내용들이 많으며 100개 구성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책도 그리 두껍지 않다. 부담없이 한번 보기에 적당할 것 같다.

문제는 이런 류의 책이 너무나 많다는 것. 그래도 나처럼 이렇게 구입해서 보는 사람이 여전히 있지 않은가?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n22598 2023-06-18 0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hnine님, 핸드롸이팅이 정말 좋네요 ^^ 깜짝 놀랐어요!!

hnine 2023-06-18 04:24   좋아요 1 | URL
제 연식이 나오는데, 저 중학교 들어갈때는 영어 처음 배울때 인쇄체 대문자 소문자, 필기체 대문자 소문자, 이렇게 배우기 시작했답니다. 연습노트 같은 것도 팔았고요.
좋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

Jeremy 2023-07-22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cursive 예술!

hnine 2023-07-22 16:10   좋아요 0 | URL
심심하니까 별걸 다 해봅니다 ㅋㅋ
예술이라고까지 칭찬해주시니 감사해요. 사실 글자를 쓰고 있는지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모르는 느낌으로 페이지 채워나갈때 많답니다.
 
페데리코 라피넬리의 첫사랑 ink books 7
안톤 소야 지음, 옥사나 바투리나 그림, 허은 옮김 / 써네스트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가 이렇다. "Правдивая история Федерико Рафинелли/Батурина, Оксана"

영어로 번역된 제목도 나와있지 않다. youtube에 올라와있는 영상이 있는데 자막 한줄 없고 그야말로 그림으로만 되어 있다.


--> https://youtu.be/pG2xsUTsxvY


국내 다른 도서 사이트를 찾아보아도 리뷰 올라와있는 곳이 없고 유일하게 여기 알라딘에 서곡님께서 올리신 리뷰만 있을 뿐이다. 호기심 잔뜩 안고 읽기 시작.


저자 안톤 소야는 1967년 러시아 레닌그라드 (지금의 상트페테르브르크) 태생으로, 원래 출판사에서 편집자와 작사가 일을 하다가 마흔 되던 해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선 아마 이 책이 처음 소개되는 안톤 소야의 소설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서커스단 부모 밑에서 태어난 열다섯살 소년 페데리코. 태어날때부터 넘어지는게 특기였다는 부모의 주장에 따라 서커스에서 주로 넘어지는 행동으로 관객들을 웃기고 있다. 

"세상에 우리 페데리코 만큼 재미있게 넘어질 줄 아는 사람은 없어요. 그 애는 서커스를 위해 태어났답니다." 

그의 부모는 자랑스럽게 말했고,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점점 더 새롭고 정교하게 넘어지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15쪽)

페테리코 자신은 넘어지는 것이 아프고 창피하고 화가 났지만 서커스단에서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은 오로지 그 일뿐이라 생각하며 참고 견딘다. 그러던 어느 날 모두가 그의 넘어지는 행동을 보고 웃고 즐거워할때 관객 중에 있던 한 소녀가 넘어진 페데리코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자기 이름을 소개하는 일이 일어난다. 한 쪽 눈에 검은 안대를 하고 있는 이 소녀는 마을에서 과일 장수를 하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이상한 행색때문에 마녀라는 소문이 나있는 '나쟈'라는 소녀였다. 페데리코와 나쟈는 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또 들어주며 친해지게 되고 헤어지기 싫어진 페데리코는 나쟈를 자기 서커스단에 데리고 가서 소개시키고 싶어한다. 서커스단에 막상 가본 나쟈는 서커스단의 해괴하고 쌀쌀맞은 분위기에 질려서 바로 떠나기로 한다. 서운한 페데리코, 나쟈를 껴안고 말한다.

"네가 보고 싶을 거야, 나쟈! 벌써 보고 싶어지기 시작했어. 느껴지니?"

"우리는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 페쟈. 미안해, 이렇게 바보 같이 되어버려서.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그런 서커스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어. 그건 정말로 미친 짓이야. 심지어 나에게조차도. "  (77쪽)

나쟈 역시 페데리코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페쟈의 커다란 빨간 코에 입을 맞춘다. 이 책의 표지 그림이 바로 이 장면이다. 그러자 페데리코 눈에서는 뜻하지 않게 눈물이 솟아 오르고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사라져버렸다. 끝없는 우주 속에서 두 명의 작은 사람이 서로 끌어안고 서 있을 뿐이었다. 헤어지기 싫어서.

그러다가 이들을 훼방놓으려던 불량배 롭을 상대하여 싸우게 되고, 난쟁이 괴물이라고 알려져 있는 룸펠슈틸츠헨(Rumpelstilzchen, 원래 독일 민화에 나오는 난쟁이)까지 만나게 되는데 괴물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난쟁이들과의 만남에서 페데리코와 나쟈는 오히려 새로운 반전의 기회를 찾는다. 이야기의 결말은 시작과 매우 다른 분위기로 맺게 된다.


동화, 민화, 전설 같은 이야기, 독특한 그림이 배경으로 뒷받침을 해주고 있고 괴물, 악당을 상대해가는 환상적인 모험의 과정등, 잘 알려진 작가 겸 영화 감독 팀 버튼을 연상한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 같다. 


독특한 구성,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여러 가지 메시지를 간추려본다.

1. 넘어지는 사람을 보고 즐거워 하는 대중들과 그것을 알면서 넘어지는 역할을 감수하는 사람이 있다. 서커스장은 다름 아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닮았다.

2.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끼리 마음을 열고 공포스런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으려면 서로에 대한 사랑과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

3. 부모가 항상 최선의 사랑을 제공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때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가족보다 더 끈끈한 관계를 이룰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린 옥사나 바투리나는 러시아의 일러스트레이터로서 2019년 이 작품으로 모스크바 국제 일러스트레이션 및 도서디자인 공모전인 Image of the book 에서 수상하였다.


갈수록 읽는 책의 분야가 제한적이고 중복적인데 이 책은 신선한 아웃라이어 같은 책이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곡 2023-06-05 1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은 책이라 반가워서 들어와 보니 제가 언급되어 있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말씀대로 신선한 책이었습니다 네 저도 페이퍼에 적었어요 팀 버튼 생각난다고 ㅋㅋ

hnine 2023-06-05 22:46   좋아요 1 | URL
서곡님 덕분에 알게 된 책이라서 안그래도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늘 읽는 책들만 읽게 되고 요즘은 새로 책 검색하는 것도 귀찮아 집에 있는 문학전집 중에서 한권씩 읽어나가고 있는데 모처럼 독특한 구성의 책을 읽게 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서곡 2023-06-05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 감사합니다 제 경우 도서관 신간으로 접한 책인데요 저는 이 책에 나온 룸펠슈틸츠헨에 꽂혀서 그림동화를 조금씩 생각날 때마다 읽고 있습니다 새로운 가지치기랄까요...안녕히 주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