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저마다 마음 저 깊은 곳에 밖으로 쏟아내고 싶은 사연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면 아마 김하늘 선생님에게 그것은 섬진강, 지리산 자락 고향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그곳에서 나고 자라며 겪고 보고 들은 이야기들, 그냥 뇌의 기억 세포 몇개를 차지하고 있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가슴에 '묻어두어' 언제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려고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이 책 <큰애기 복순이>는 아마도 저자의 고모? 어머니? 쯤 되신 분의 이야기가 아닐까, 혼자 짐작해본다.
하심재, 벅시골, 깜장골, 이런 마을 이름들이 나오고, 꼬시래기 할매, 삼봉이 아재, 경상도 사투리가 억세면서 동시에 친숙하게 책 속에서 튀어나올 듯 하다.
하복순이라는 이 아이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지만 아버지, 언니, 오빠들의 대가족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제 할일 하며 기특하게 크는 아이이다. 큰언니네 가서 아기 봐주라면 가서 봐주며 지내다 오고, 심부름 다녀오라면 다녀오고, 하라는 일을 고분고분 하는 순하고 착한 이 아이가 일제 치하와, 해방, 6.25 전쟁등의 시기를 살아내오는 것이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 된다.
문학동네 보름달 문고는 우리 역사와 정서를 담은 우리 작가들의 이야기책 모음으로서 초등하교 고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문영숙 작가의 <무덤 속의 그림>, <궁녀 학이>, 이영서의 <책과 노니는 집> 등이 이 문고에 속하는 책들이다. 출판사가 이 책의 대상 연령을 5,6학년으로 잡았다고 하지만 이건 어른들이 읽어야 더 그 맛을 느낄 수 있을 책이다. 책 속 주요 등장인물의 연령을 따라 읽는 사람의 연령을 정하게 되면 올 수 있는 오류가 아닐까 하는데, 읽어서 마음에 들일 수 있는 누구라도 읽으면 될 일이다.
경상도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사투리로 계속 진행되는 대화를 이해하는 것도 버거울 수 있겠다 싶은데 익숙하지 않은 지명, 등장 인물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것도 이야기 속에 몰입을 방해하는 한 요인이 된다.
비슷한 시대 배경을 가지고, 비슷한 내용의 책들이 선점하고 있겠지만, 문장 하나 하나에서 느껴지는 깊이와 울림은 오래 갈고 닦고 공들인 작가의 손길이고 마음길이라 하겠다.
곧 나올 예정이라는 소설 제목도 '지리산 소년병'이라니, 기대된다.
마치 초상화를 그린 듯한 삽화와 표지 그림도 주목해주어야 한다. 표지의 저 아이 모습이 글 속의 복순이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그림 작가가 분명 그러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