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부터 공부하자-엄마도 몰랐던 나뭇잎 하나
와, 백점, 백점!
예전에 식물일기라는 책을 보고 참 잘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그림책중에도 식물에 대해 이렇게 잘 만든 그림책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무척 기쁘다.
글작가 윤여림의 작가 소개를 읽어보니 나무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이고, 이 책 역시 나무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서울대 식물학과 이은주 교수가 감수를 하였다.
집 밖에만 나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나뭇잎.
우리 어른들은 궁금증을 가지지 않는다. 그냥 나뭇잎일뿐.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이게 뭐야? 어디서 왔어? 왜 떨어져있어? 왜 이렇게 생겼어? 왜 이것만 빨간 색이야? 이제 이건 어떻게 돼?
나무마다 다 다른 나뭇잎의 모양. 첫 페이지에는 정말 다른 모양의 나뭇잎 그림들로 채워져있다. 이름따윈 나중에 알아도 괜찮다. 이렇게 여러가지 모양이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게 하면 된다. 한 나무에 달린 나뭇잎들도 그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다음에야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 나뭇잎 중에 서로 어긋나기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건 왜 그럴까? 모든 생물의 형태나 구조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 외에 가끔 크레파스로 쓱쓱 그려진 그림이 나오는데 그건 나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설명을 위한 페이지이다. 이런 것은 아이에게 그냥 보여주기 보다는 엄마가 미리 보고 아이 눈 앞에서 엄마가 이렇게 그려가면서 설명해주면 훨씬 좋을 것 같다.
'자, 이게 나무야. 여기 잎이 있어. 나뭇잎은 물을 빨아들이지 못해. 대신 나뭇잎은 숨을 쉬지. 요기 나뭇잎을 뒤집어서 뒤를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숨구멍이 있거든.' 이런 식으로.
나뭇잎 속에는 물길과 밥길이 있다는 설명은 '물관', '체관'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얼마나 좋은가. 단어에서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이 금방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계수나무 같은 그물맥 나뭇잎 모양은 그림 작가가 스탬프로 찍듯이 그려놓았다. 동글동글 나뭇잎이 종이 위에 붙어있는 듯 생동감이 느껴진다. 좋은 아이디어이다.
햇빛에 나뭇잎을 비쳐보면 여러 갈래 길이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물길, 밥길이라는 내용 끝에, 그래서 나뭇잎에 귀를 대면 물과 밥이 흐르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고 나온다. 이런 표현 하나에서 작가의 감성을 읽는다.
나뭇잎에 낙엽이 왜 생길까에 대한 설명을 네 컷 그림으로 그려놓았는데, 낙엽이 생기는 이치를 이보다 더 간단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떨어진 나뭇잎은 또 누가 이용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고, 책 마지막엔 모르는 나뭇잎을 한 페이지에 크게 그려놓고, 나를 찾아온 (그냥 떨어진 나뭇잎이라고 하지 않고) 얘는 어디서 날아왔을까, 이름이 뭘까 궁금해하는 것으로 맺었다. 끝까지 아이들의 호기심을 놓지 않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다.
자연과 과학에 대해 이렇게 쉽고 정확하고 명쾌하게 설명해놓은 어린이책들을 보면 정말 감탄한다. 한가지 능력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가는 기쁨이란
업적을 남기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위한 삶에 '업적'이라는 말을 붙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형태이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고 이롭게 하는 일일때 하는 말일 것이다. 그렇게 뭔가를 남기고 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한 분야에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살다보면 해볼만한 다른 많은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지만 사람이 쏟을 수 있는 에너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박병선. 언젠가 신문에서 본 것 같은데 그 정도의 기억만 있을 뿐 어떤 일을 한 분인지 몰랐는데 이 책을 쓰신 작가분의 소개로 비로소 알게 되어 책을 읽어보았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은 그녀는 대학 재학 당시 은사 이병도 박사가 심어준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평생을 프랑스 어딘가에 쳐박혀 있는 우리나라의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일을 하며 우리나라로 다시 돌려보내기 위해 애쓰신 분이다. 가족도 없이 타국에서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일에 대한 외롭고 쓸쓸한 투쟁을 하며 일생을 보냈다. 자신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별로 바라지 않던 박병선. 병들어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야 그동안 자기가 걸어온 길, 기울여온 노력을 작가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결국 이 책이 나오고서 얼마 안되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찍은 책은 우리 나라의 직지심체요절이라는 것은 학교 다닐때 국사시간에도 배워서 잘 알고 있으나 아는 것은 딱 그것뿐,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만들었다고 알려져있던 것이 어떻게 바로 잡아 졌는지, 누구에 의해서인지, 어떻게 그것을 증명해보였는지, 직지심체요절이 대체 어떤 책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직지심체요절은 박병선이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다니다가 운좋게 발견해내었고 그것이 세계 최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녀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지 책에 자세히 나와있다.
어떤 업적을 이룬 사람의 일대기를 읽는다는 것은 그 업적이 무엇이든간에 가슴 뭉클하게 한다. 한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생의 다른 많은 즐거움을 기꺼이 포기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
'십년을 하루 같이' 라는 각오 없이 무엇을 이루길 기대하지 말아야 함을 또 깨닫는다.
"결혼도 하지 않고, 일생을 한국 자료와 고문서들에 파묻혀 살아오셨습니다. 후회는 없으신가요?"
"천만에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누군를 만나는 건 순간적인 기쁨일 뿐이에요. 무언가에 몰두해서 몇 년을 헤매다가 마침내 찾아내는 기쁨이 어떤 건지 아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가는 기쁨입니다." (1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