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히라타 겐야 글, 가토 구니오 그림
조심스런 의견이지만 일본의 어린이책들을 보면 참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할 때가 많다. 혼, 신, 유령 등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의 특성도 한 몫 하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우리보다 판타지 세계, 상상력의 세계를 잘 그려내는 것 같다.
집의 공간적 깊이와 할아버지가 그간 살아온 시간을 서로 맞물려 감동적인 이야기 한편이 만들어졌고 그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재미를 더하기 위해 그 집은 지상 위의 집이 아니라 바닷속 집이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보게 되는 계기가 떨어뜨린 도구를 찾기 위해서라는 것은 작가가 억지로 설정했다는 티가 나지 않아 자연스럽고 납득이 갈 만한 상황으로 보였다.
할아버지가 망치를 떨어뜨리지 않았더라면 이전의 시간의 흔적을 못 볼수도 있었을까?
계속 허물어져가는 집에 계속 살려면 (미래) 보수가 필요했고, 그러다가 망치를 떨어뜨리는 사건이 일어났고 (현재), 그것을 찾으러 갔다가 과거와 만난다. 멋진 구성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동생은 싫어> 로리 뮈라이, 장노엘 로쉬 글
6-7세를 위한 그림 동화이다.
새로 태어난 동생 때문에 생기는 형의 고충을 그린 이야기들은 많다. 그런 이야기에 또 하나 보태는 책인가? 하고 들춰 보았는데, 아니었다. 책 속의 세바스티앙이란 아이는 표지 그림의 왼쪽의 아이. 혼자 노는게 심심해서 상상 속의 동생 피에르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늘 자기와 얘기하고 같이 놀아주는, 한마디로 자기 취향에 맞는 상대를 만들어냈는데, 문제는 엄마가 그것을 알고 세바스티앙에게 어떤 행동을 권할때 비교 대상으로 이 피에르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부터 세바스티앙은 자기와 반대로 뭐든지 엄마가 원하는대로 즉시 행동하는 이 가상의 동생이 싫어진다.
제목을 보고 미리 어떤 내용일거라 짐작하며 읽기 시작한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들 수 있는 책이다.
<비를 피할 때는 미끄럼틀 아래서> 오카다 준 글
이 작가의 <신기한 시간표>를 읽고서 감탄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 책도 기대하며 읽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내용, 구성, 소재.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 열명이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를 피하기 위해 공원의 미끄럼틀 아래로 들어간다. 그리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미스테리한 인물 아마모리씨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담을 돌아가며 하나씩 풀어놓는데, 이 이야기들이 다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라는 것이 포인트이다. <신기한 시간표>에서 그랬듯이 아이들이 어떤 혼자만의 걱정이나 근심에 빠졌을 때, 정말로 바라는 것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상상만 하고 있는 것들, 그런 것들이 이 아마모리씨를 통해 잠깐 동안이나마 이루어지는 경험들을 하는 것이다. 열명의 아이들이 이야기를 다 끝내고난 후 결말 처리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역시 아이들은 어른들이 따라갈 수 없는 면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좋은 작품이다.
<방귀 한 방> 제4회 푸른문학상 동시집.
2006년 푸른문학상 동시 부문에 수상을 한 이 옥근, 유 은경, 조 향미, 이 정림 시인의 작품 묶음이다. 이 분들의 이력을 보니 국문학을 전공한 분도 있지만, 경영학, 생화학 등, 그렇지 않은 분도 계셨는데 공통적으로 참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시였다. 그러면서도 가만히 읽다 보면 네 사람만의 개성도 짚을 수 있었다. 이 옥근의 시 속에는 시인의 눈이 아니면 찾아내기 어려웠을 아이들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었고, 조 향미의 시는 어른들의 마음에도 울림이 큰 내용들이 많았으며 이 중 제일 연배가 높은 이 정림 시인은 시각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진 시를 썼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사내아이 때문에
조 향미
서울서 전학 온 사내아이
하얀 얼굴 말쑥한 옷차림이
내 마음에 쏙 들었죠
그 아이 뒷그림자 조심스레 밟으며
교문을 나서는데
장에 오신 아버지가
고추 보따리 지고서 교문 앞에 계셨죠
이리저리 날 찾는 아버지 보고도
모르는 척 담장 밑으로 쏙 숨어 버렸는데
우리 아버지 날 봤는지
슬그머니 뒤돌아 학교서 멀어졌죠
집으로 오는 내내
돌아서던 아버지 모습 자꾸만 눈에 서려
목줄기가 뻣뻣이 저리고 아파 왔죠
쇠죽물 끓이시는 아버지 옆에서
마른침 삼키며 아무 말 못 하고 앉았는데
부지깽이만 탈탈 터시던 아버지
눈가 주름 굵게 잡으시며
씨익 한 번 웃으셨죠
그 사내아이가 뭐라고
내가 왜 그랬을까?
불씨를 뒤적이는 아버지의 옆을 보니
어느새 귀밑머리 하얀 눈이 소복했죠.
무슨 이유라고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으나, 어른의 시든, 아이들의 시든, 시를 늘 가까이 하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시를 읽을 때마다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