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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지난주말 시골집에 갔는데 우리집에 참, 이상한 새 한마리가 산다.

배 쪽은 짙은 밤색, 등 쪽은 검은색, 깃에는 흰색 점이 박힌 참새만한 새인데 이 새는 하루종일 마루에 걸어놓은 거울에 와서 논다. 파르륵, 날갯짓을 하며 거울을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어머니 말씀대로, 살면서 세상에 별놈의 새를 다 본다. 거울 속 제 모습을 두고 짝이라고 생각하는 듯싶다. 저녁 무렵,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신다. 여름에 안방으로 새 한 마리 들어왔기에 들고 있던 파리채로 그만 후려갈겼다. 그게 짝인갑다. 아버지도 참...... 그래서 내가 팔순의 아버지께 왜, 그 새를 죽였냐고 난생처음 버릇없이 화를 내었다. 그리고 내 얼굴이 비치는 그 마루의 거울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 고영민 시집 <공손한 손> 중에서 =

 

(줄 바꿈 없이 쓰여진 원문 그대로 옮겨놓는다.)

 

 

 

 

 

 

 

 

 

 

 

 

 

 

 

 

 

 

 

 

 

 

 

 

시집은 마구 사들여도 좋다.

후루룩 읽자고 들면 한권 읽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으니 좀 쌓인다 한들 그리 부담스러울 것 없어 좋고

그렇게 한번 읽었다 해도 다 읽은게 아니고 두고 두고 또 보는 일이 많으니 좋다.

이 시집도 벌써 몇번을 다시 들춰 읽었는지 모른다.

오늘 이 시가 특히 마음에 들어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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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2-03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반해 버린 나르키소스가 생각나네요.

hnine 2017-02-03 17:30   좋아요 0 | URL
거울 속 자기 모습이 잃어버린 자기 짝인줄 알고 자꾸 쳐다보는 새.
이제 자기 짝이 보고 싶어도 거울 속 자기 얼굴을 쳐다보는 수밖에 없는 새를 딱하게 여기는 시인.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
 

 

 

 

인생은 카푸치노 같은 것, 거품이 많지만 그러나 따스한 것,

파세라, 날 잡지 마,

가을은 오는데

 

 

=김승희 <파세라 (passera)> 일부=

 

 

인생이 카푸치노 같은 것이라는 구절보다 뒤에 나오는 거품이 많지만 그러나 따스한 것이라는 구절을 생각해본다.

시인이 인생을 카푸치노 같다고 보는 이유.

인생이 카푸치노 같을 때도 있고, 에스프레소 같을 때가 있는가 하면, 자판기 밀크 커피처럼 달달, 끈적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나?

이 시의 제목 passera는 스웨덴어로 지나가다, 흘러가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마 영어의 pass에 해당하는 말인가보다.

 

 

 

밥 짓는 주부답게 이 시집의 다음 시에서 그냥 넘어가질 못한다.

 

 

새벽밥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랴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김승희 <새벽밥> 전문=

 

 

아침에 밥을 안먹겠다는 아들 때문에, 새벽에 밥을 짓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밥 대신 과자 같은 시리얼. 그것도 겨우 먹고 간다.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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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6-09-30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새벽에 일어나서 도시락 두 개. 아들꺼 딸꺼요. 애들 아이때 너무 바빴던 엄마였어서 도시락으러 그 시간을 사죄받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밥이 뜸들어가는 것을 사랑이 익어가는 것으로 시인이 썼네요. 시인이 놓친 밥냄새, 를 여기 얹져놓고 갑니다. 밥냄새가 상상하니, 간강게장의 맛도 입안에 번집니다. 내 몸이 기억하는 오감들. 크! 그게 진짜 시..일지도요.

hnine 2016-09-30 18:05   좋아요 0 | URL
냄새는 가끔 다른 어떤 감각보다 오래 기억 속에 남는 것 같아요. 새벽의 밥 냄새, 그리고 새벽 자체의 냄새, 새벽 공기의 냄새를 저는 무척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새벽밥 짓던 때가 그립기도 해요. 그런데 문제는 반찬 만드는 건 늘 고민이지요. 잘 못하거든요. 도시락을 매일 두개씩 준비하신다니, 부지런하게 새벽을 여시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투병중 엮은 시집이라니

얼마나 더 절절할까 싶어,

읽는 사람 마음을 얼마나 아릴까 싶어,

얼마나 더 허무를 가르칠까 싶어,

차라리 읽지 말까도 했지만

결국 읽을 거라는걸 알고 있었지.

 

눈이 한번만 지나가지 않고 되돌아 다시 와야했던 구절들을 모아본다. (괄호안은 페이지수)

 

손이 사라진 손금의 길 (14)

허무에 추태를 부리는 감정과도 화해를 하세요 (18)

자기를 버린 만족들이 뒹구는 어둔 뒷골목을 지날 때는 태연을 가장하세요 (18)

희망은 가끔 왔으나 언제나 머물지 않는 객(客)이었다 (25)

 난 슬픔이 좋아죽겠다 돌아가고 싶은 고향처럼 좋아 죽겠다 내가 자석인지도 모른다 슬픔이 달라붙지 않고는 못견디는 자석인지 난 슬픔이 좋아죽겠다 슬픔 없인 혼자 못산다 이제는 (80-82)

내가 웃을 때 운 자여, 이제 내가 운다 그러니 웃으라 삶은 우울증에 걸린 흉한 나체이니 (90)

 

해설을 쓴 장석주는 그녀의 시를 루마니아 출신 철학자 에밀 시오랑과 견줄만하다 했다. 비극적 허무주의.

일일이 체험하지 않더라도 삶은 외로움, 절망, 사랑, 그 무엇이든 죽음으로 가는 우울한 행열이라고 느끼는 이상, 허무하고 속절없을 수 밖에 없다는 에밀 시오랑의 대전제이자 결론을 일단 인정한다면, 니체는 그런 허무하고 헛됨은 학문으로도 구제할 수 없고 오로지 예술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냥 저항없이 동의하고 싶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발버둥 쳐보고 싶지 않다.

부정하고 불안하느니

인정하고 편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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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음식 만들면서 TV를 소리로 듣고 있는데, 낭송되어 나오는 시가 음식 만들던 손을 잠시 멈추고 TV 화면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오류동의 동전

 

 

 

박 용래

 

 

 

 

한때 나는 한 봉지 솜 과자였다가

 

한때 나는 한 봉지 붕어빵였다가

 

한때 나는 좌판에 던져진 햇살였다가

 

중국집 처마밑 조롱속의 새였다가

 

먼먼 윤회 끝

 

이제는 돌아와

 

오류동의 동전

 

 

 

 

 

 

 

 

 

내가 보고 있던 TV채널이 아마 대전지역방송 채널이었던가보다. 시인 박 용래. 이름은 익숙한데 그가 대전 출신 시인인줄은 몰랐다. 시 제목의 오류동은 서울시 오류동이 아니라 대전시 오류동. 생전에 시인이 살던 동네라고 하는데 대전에 산지 벌써 8년째인 나도 서울에 있는 오류동을 먼저 떠올렸지 대전에 이런 동이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한 봉지 솜 과자, 한 봉지 붕어빵, 좌판의 햇살, 조롱속 새, 동전. 어느 것 하나 대수로운 것이 없다. 하지만 얼마나 소중하고 따스한가. 이런 소소한 것들에 자기 삶의 여정을 비유할 수 있는 겸허함. 자신을 낮추는 자세.

자학과 비굴, 한탄이 아니라 이렇게 곱고 아름답게 읽혀지게 써내려간 시인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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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7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6-02-08 05:51   좋아요 0 | URL
음력설이 있어 한번더 심기일전 기회를 삼을 수 있으니 좋습니다.
올해는 책을 더 많이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알라딘 님들에게는 새삼스런 얘기겠지만 저야말로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서울의 오류동은 구로구 아니던가요? 저도 이제는 가물가물한데요.
박용래 시인은 별명이 울보시인이었대요. 보리밭 박용하와 잠깐 또 헛갈리기도 했지요.
늘 따뜻한 말씀 건네주시니 감사드려요. 새해에도 서재에서 늘 반기는 사이가 되길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서니데이 2016-02-07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오늘도 많이 바쁘셨겠어요. 좋은 저녁 되세요.^^

hnine 2021-01-31 09:41   좋아요 1 | URL
이제 꾀가 나서 식혜도 만들지 않고 파는 걸 사다놓았어요. 이제 슬슬 나가서 몇시간 후 차례 지낼 준비, 산소 갈 준비를 해야겠어요. 서니데이님 느긋하고 평화로운 한해 만들어가시길 바라겠습니다.
 

   

박연준.

이름을 보고 남자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2004년에 등단한 1980년생 여성 시인.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이라는 이 시집은 여기 저기 소개되는 것을 들어서 귀에 익었으나 읽어보진 않고 있었다. 이처럼 제목이 특이하면 바로 끌리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관심 밖으로 제껴놓거나 하는데, 이 시집의 경우엔 아마 바로 끌리는 경우는 아니었나보다.

그러다가 막상 이 시집을 구입하게 된건 이 시인이 다음과 같은 산문집을 냈기 때문이다.

 

 

 

 

 

 

 

 

 

 

 

 

 

 

 

 

 

모 신문에 연재하던 것을 묶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잠깐 라디오에서 소개되는 것을 들으니 귀에 쏙 들어오기에 읽어보려고 구입하면서 이왕 구입하는 것 위의 시집도 함께 구입하였고, 저자가 시인이니 시부터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내가 알기로 평판도 좋고 많이 읽힌 시집인데, 나는 한권을 내리 다 읽도록 보통 이상의 감동이 없었다. 어느 페이지에도 따로 표시해놓은 시 한편 없이 마지막 장까지 와버렸다.

물론 잘 썼다. 이 정도면 누구든 쓰겠다 최소한 이런 생각이 드는 시는 아니었다. 지나치게 난해한 시도 아니었다. 표현이 수려하다.

그런데 왜?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보는 눈높이에서 말해보자면 상징과 비유가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모든 시, 모든 연과 행에 힘을 주다보니, 잘 썼다는 생각은 들되 받아들이기 부담스럽고, 자꾸 읽어보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 같다. 버겁다.

 

 

 

 

생일

 

 

 

 

 

 

파란 장미를 먹고 얼어버렸으면,

생선가시처럼 희미하고 싶다

나뒹구는 밤을 넘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고 싶다

진하게, 굵게, 뭉개지도록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발가락이 하나 없었으면-

생리하는 바다에 투신하고 싶다

울렁이는 푸른 죽음들에게 발목 잡히고 싶다

내 깊은 병(病)을 유리병에 꾹꾹 눌러담아

늙은 아버지에게 선물하고 싶다

병아리 다리를 붙잡고 울고 싶다

온몸이 흔들리는 촉수가 되어

하늘에

박히고 싶다

 

 

 

 

 

태어남이 축복으로 생각되지 않고, 갈수록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절망하는 생, 뜻대로 나아가지 않는 생으로부터 오히려 도피하고 싶은 마음, 자신에게 부끄러워지는 심정, 감사가 아니라 원망하고 싶은 심정을 그렸다고 해석되는데, 나 같은 독자의 입장에선 얼른 공감이 가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한편 뽑아보았다.

 

이런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몇쪽 맛보기로 읽어본 그녀의 산문집의 문장들은 매혹적이다. 곧 찬찬히 읽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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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11-04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시집에 실린 <속눈썹이 비르는 지명>이 좋아서 이 시집을 사서 봤었거든요. 제게도 역시 난해하더라고요. 공감이 되지도 않았고요. (아, 공감되는 시도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풀지 못한 숙제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여러차례 했던 기억이 나요.

hnine 2015-11-04 14:13   좋아요 0 | URL
예, 다락방님 서재에서 본 기억 나요. 아버지 얘기가 시에 많이 나오지요. 오래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대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한을 그린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고, 어떤 인터뷰에서 얘기하더군요.
조금만 더 쉽게 읽힐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저 같은 보통의 독자 입장일까요? ^^ 부디 그녀의 산문집을 읽으면서는 생각이 좋은 쪽으로 확 뒤집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