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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이름을 보고 남자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2004년에 등단한 1980년생 여성 시인.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이라는 이 시집은 여기 저기 소개되는 것을 들어서 귀에 익었으나 읽어보진 않고 있었다. 이처럼 제목이 특이하면 바로 끌리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관심 밖으로 제껴놓거나 하는데, 이 시집의 경우엔 아마 바로 끌리는 경우는 아니었나보다.

그러다가 막상 이 시집을 구입하게 된건 이 시인이 다음과 같은 산문집을 냈기 때문이다.

 

 

 

 

 

 

 

 

 

 

 

 

 

 

 

 

 

모 신문에 연재하던 것을 묶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잠깐 라디오에서 소개되는 것을 들으니 귀에 쏙 들어오기에 읽어보려고 구입하면서 이왕 구입하는 것 위의 시집도 함께 구입하였고, 저자가 시인이니 시부터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내가 알기로 평판도 좋고 많이 읽힌 시집인데, 나는 한권을 내리 다 읽도록 보통 이상의 감동이 없었다. 어느 페이지에도 따로 표시해놓은 시 한편 없이 마지막 장까지 와버렸다.

물론 잘 썼다. 이 정도면 누구든 쓰겠다 최소한 이런 생각이 드는 시는 아니었다. 지나치게 난해한 시도 아니었다. 표현이 수려하다.

그런데 왜?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보는 눈높이에서 말해보자면 상징과 비유가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모든 시, 모든 연과 행에 힘을 주다보니, 잘 썼다는 생각은 들되 받아들이기 부담스럽고, 자꾸 읽어보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 같다. 버겁다.

 

 

 

 

생일

 

 

 

 

 

 

파란 장미를 먹고 얼어버렸으면,

생선가시처럼 희미하고 싶다

나뒹구는 밤을 넘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고 싶다

진하게, 굵게, 뭉개지도록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발가락이 하나 없었으면-

생리하는 바다에 투신하고 싶다

울렁이는 푸른 죽음들에게 발목 잡히고 싶다

내 깊은 병(病)을 유리병에 꾹꾹 눌러담아

늙은 아버지에게 선물하고 싶다

병아리 다리를 붙잡고 울고 싶다

온몸이 흔들리는 촉수가 되어

하늘에

박히고 싶다

 

 

 

 

 

태어남이 축복으로 생각되지 않고, 갈수록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절망하는 생, 뜻대로 나아가지 않는 생으로부터 오히려 도피하고 싶은 마음, 자신에게 부끄러워지는 심정, 감사가 아니라 원망하고 싶은 심정을 그렸다고 해석되는데, 나 같은 독자의 입장에선 얼른 공감이 가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한편 뽑아보았다.

 

이런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몇쪽 맛보기로 읽어본 그녀의 산문집의 문장들은 매혹적이다. 곧 찬찬히 읽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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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11-04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시집에 실린 <속눈썹이 비르는 지명>이 좋아서 이 시집을 사서 봤었거든요. 제게도 역시 난해하더라고요. 공감이 되지도 않았고요. (아, 공감되는 시도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풀지 못한 숙제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여러차례 했던 기억이 나요.

hnine 2015-11-04 14:13   좋아요 0 | URL
예, 다락방님 서재에서 본 기억 나요. 아버지 얘기가 시에 많이 나오지요. 오래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대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한을 그린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고, 어떤 인터뷰에서 얘기하더군요.
조금만 더 쉽게 읽힐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저 같은 보통의 독자 입장일까요? ^^ 부디 그녀의 산문집을 읽으면서는 생각이 좋은 쪽으로 확 뒤집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세상의 모든 과일들 모양이 다 둥글고

단맛 그득 품고 있어 사람들 보기에 좋고

먹기에도 좋았더라 그 가운데 생긴 것은

제멋대로 울퉁불퉁인데다 성깔은 있어

맛 역시 시고 떫은 것이어서 사람들

보기에 싫고 먹기에도 꺼려지는 자

바로 나일러니 나도 내가 하필 하고많은

과일 중에 모과인 것을 서러워하니라

허나 비록 구박과 천대와 소쇠의 생애 중에

까다롭고 별난 시정 입맛에 요긴한 시(時)

있으니 살진 알코올에 살(肉)과 뼈가 다 녹아

홍등가의 불빛처럼 보기에 좋고 먹기에도

좋은 술이 되는 때이라

가장 중에 더러 나를 마시고 시고 떫은 진애

훌쩍 뛰어넘기도 하는 것이어서 나는 내가

과일 중에 모과인 것이 자랑이고

위안 삼는 일이 많더라

<이재무 "모과">

 

 

 

혹시 바닥에 떨어진 것이 있으면 슬며시 하나 집어 오려고 어제도 가보고 오늘도 가보았는데

떨어진 것이 없어 그냥 들어왔다.

밤에 불빛 아래 보니까 정말 마치 노란 등이 켜 있는 것 처럼 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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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10-24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뭇줄기를 살살 흔들어 보면
툭! 소리 내며 떨어질는지 모르지요 ^^

hnine 2015-10-25 00:10   좋아요 0 | URL
내일도 나가봐서 떨어져있는 것이 없으면 그렇게 한번 해볼까요? ^^

상미 2015-10-25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모과는 향이 참 좋지?
잘 지내고 있지?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 나태주 <행복>-

 

 

 

엄마, 제가 가까이 두고 가끔 새겨보는 시랍니다.

나 태주라는 이 시인께서도 초등학교에서 오랫동안 가르치시는 일을 하셨고요,

어려운 말 안쓰고도, 길지 않으면서도, 절제된 언어로 마음에 울림을 주는 따뜻한 시을 여러 편 쓰셨어요.

 

 

시인이 위에서 말한 세가지를 저는 다 가지고 있네요!

엄마는요??

 

 

 

 

 

 

아빠의 빈자리를 몸으로, 마음으로, 매순간 견뎌내시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엄마.

그옛날 어린 나의 투정이나 어리광을 받아주시기보다는 따끔하게 일침을 놓으시며 꿋꿋하게 자립적으로 일을 해나가라고 말씀하시던 엄마였다.

지금은 입장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이다. 몸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아무 것도 못하겠고, 아무 것도 하기 싫으시단다.

전화드리면 한시간이 훌쩍 간다. 엄마의 하소연을 다 들어드리다보면.

내가 엄마를 위해 하는 일이란 고작 그게 전부이다. 잘 들어드리는 일.

모자란 나는 사실 그것도 쉽지 않다. 내 의견 앞세우지 않고, 빈 마음으로 열심히 들어드리는 일.

 

 

 

 

 

 

 

 

 

 

 

 

 

 

 

 

 

 

 

 

 

 

 

 

 

 

 

방금

손수레가

지나간 자리

 

 

바퀴에 밟힌 들풀이

파득파득

구겨진 잎을 편다

 

 

- 권영상 <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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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8-30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시가 어찌나 어려운지 비문해독가가 있어야할 정도인데..쉽지만 감성 돋는 시..그래서 더 반가운건 아닌가 싶어요.

hnine 2015-08-30 17:38   좋아요 0 | URL
어렵게 쓰는 것보다 쉬운 말로 여러 사람의 감성을 돋굴 수 있는 시를 쓰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기도 해요. 나태주 시인의 시는 어떤 때는 눈에 띄지 않다가 어떤 때는 마음에 쑤욱 하고 들어올 때가 있더라고요.

숲노래 2015-08-3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한테서
한 시간을 달콤하게 하소연을 들으면서
삶을 누리는 이야기를
오래오래 고이 이으실 수 있기를 빌어요.

hnine 2015-08-30 17:40   좋아요 0 | URL
말씀하시는 엄마도, 듣는 저도 솔직히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답니다. 저는 별로 착한 딸이 아니어서, 엄마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듣고 있지도 않아요. 좋았던 일도 좀 말씀하시라고, 다그칠 때도 있는걸요.

stella.K 2015-08-30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플 때 누군가 잘 들어 주는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잖아요.
그러고 보면 저의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 저는 엄마 얘기를 얼마나 잘 들어 드렸는지
까마득하네요. ㅠ
시가 참 좋네요. 그러고 보면 저도 그리 불행하지마는 않는 것 같습니다.ㅋ

hnine 2015-08-30 18:55   좋아요 0 | URL
그럼요. 잘 들어주고, 가끔 공감해주는 상대만 있어도 이 세상 버틸 힘은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듣기만 하는데도 늘 쉽지는 않더라고요. 하소연의 범위가 자꾸 커져가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가 스스로 일어서야할 시기를 점점 더 늦추게 하고 엄마 마음을 더 약하게 만드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음식을 만들어다 드린게 가보면 그대로 있어요. 과일은 상한게 태반이고요.
시, 좋지요? 아래 권영상 시인의 시는 엄마께 보내드리지 않았어요. 혹시나 읽으시고 밟힌 들풀이 당신의 상황이라고 생각하실까봐...ㅠㅠ
 

 

 

 

 

 

 

 

 

 

 

 

 

 

 

 

 

 

 

 

 

내가 좋아하는 시인 중 한 사람, 서정홍

농사짓는 시인이라서 그런지 시에서 늘 흙냄새, 풀냄새, 농사짓는 사람의 땀냄새가 난다.

 

 

 

 

경운기를 몰고

산밭 아래

작은 샘을 지날 때마다

잠시 물 한잔하신다

 

 

―어이쿠우, 시원타!

맨날 이리 고마워서 우짜노

 

 

보는 사람 하나 없는데

작은 샘한테 인사를 하신다

 

 

("산내 할아버지" 전문)

 

 

 

 

 

가뭄이 들어

상추밭에 물을 줍니다

 

 

혼자서도 잘 노는

다섯 살 개구쟁이 다울이가

살며시 다가와 묻습니다

 

 

―시인 아저씨, 상추는 물을 주면서

강아지풀은 왜 물을 안 줘요?

상추 옆에 같이 살고 있는데

 

 

그 말을 듣고

강아지풀한테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상추와 강아지풀" 전문)

 

 

시가 어렵지 않아 단숨에 한권을 다 읽고 나서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혼자 자못 심각하게 뽑아본 제일 좋은 시 두편이 위의 "산내할아버지"와 "상추와 강아지풀"이다.

 

 

싸락눈 내리는 밤에

나무들의 새살거림이 들리는 듯한 밤에

아내와 쥐눈만 한 쥐눈이콩을 가립니다

큰 쟁반에 콩을 붓고

눈에 불을 켜고 콩을 가립니다

 

 

비를 맞아 썩은 놈들이야

미련 없이 가려내며 그만인데

반쯤 벌레 먹은 놈들은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갑니다

 

 

벌레한테 먹히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을

그놈들의 만만찮은 하루가

자꾸 떠올라

 

("콩을 가리며" 전문)

 

 

 

시인의 마음.

콩을 가리는 소소한 일을 하면서도

이리 딴 생각을 지어내고야 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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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8-1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정말 흙냄새 풀냄새 사람냄새가 시인거 같아요^~^ 저두 알고싶어지는 시인입니다 ㅋㅂㅋ

hnine 2015-08-11 08:53   좋아요 0 | URL
제가 읽은 서정홍님의 다른 책은 <닳지 않는 손>, <부끄럽지 않은 밥상> 이렇게 두권인데요, 두권 모두 좋았어요.
<닳지 않는 손>은 동시집인데 한번 읽어보세요. 뭉클, 따뜻한 시집이랍니다.

해피북 2015-08-11 09:03   좋아요 0 | URL
추천 감사해요 hnine님! 찾아서 읽어...아니 느껴보도록 할께요 ㅎ 오늘부터 흐리고 비가온다죠~~ 우산 잘 챙기시구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nama 2015-09-01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마침 제가 있는 도서관에 서정홍의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가 있네요. hnine님 덕분에 눈에 들어왔어요.^^
저도 흉내내서 두어 절 옮겨야지요^&^

hnine 2015-09-01 18:10   좋아요 0 | URL
아이쿠, 제가 올린 책을 눈여겨 봐주신 덕분이지요. 고맙습니다.
nama님도 이 시인 좋아하실 것 같아요 ^^
 

 

 

 

 

아무 것도 못하고 있을 때가 있다

숨만 겨우 쉬면서

까딱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때 헤어나는 방법

살아나는 방법은

뭐라도 하는 것

하다못해

햇빛을 쏘아보는 일

떨어진 꽃잎을 다시 주워

백지에 하나씩 붙여보는 일

뭐라도

 

 

 

왜라고 묻지 말고

아주 중요한 일인 듯

혹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일인 듯

나를 잊어보는 것

뭐라도 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을 때

 

 

 

 

 

 

 

 

 

파라다이스?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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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7-2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채 벌렁 자빠지기도 하고,
마음으로 `기운을 내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설거지도 하고 걸레질도 하고...
이러다 보면 어느새 아무것도 못 하는 내가 아니라
무엇이든 새롭게 하는 나로 달라지지 싶어요.

hnine 2015-07-22 09:48   좋아요 0 | URL
마음이 꼼짝 안할때 마음을 움직이려고 재촉하면 요지부동, 차라리 몸을 움직이면 마음이 몸을 따라 좀 움직여주기도 하더라고요.
오늘도 기운 나는 하루 되시기를.

몬스터 2015-07-22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이와 비슷한 방법이 잘 들어요. 부지런히 움직여 땀 흘려주고 나면 , 기분이 많이 좋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구요. 저희 어머니를 봐도 , 자주 사고 쳤던 저와 제 동생을 야단친 후 청소를 하신다는... 그리고 나서 간식 해 주셨더랬어요. ㅎㅎㅎ

hnine 2015-07-27 05:58   좋아요 0 | URL
청소가 힐링의 한 방법이 된다는 것 저도 동의해요. 간식까지 해주셨다니, 어머니 참 멋지신 분!
마음이 꼼짝 안할때는 몸을 움직여 땀흘려주기, 원래 운동에 취미없는 제가 매일 운동을 하며 사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효과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