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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지난주말 시골집에 갔는데

우리집에 참, 이상한 새 한마리가 산다.

배쪽은 짙은 밤색, 등 쪽은 검은색, 깃에는 흰색 점이 박힌 참새만한 새인데

이 새는 하루종일 마루에 걸어놓은 거울에 와서 논다.

파르륵, 날갯짓을 하며 거울을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어머니 말씀대로, 살면서 세상에 별놈의 새를 다 본다.

거울 속 제 모습을 두고 짝이 라고 생각하는 듯싶다.

저녁 무렵,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신다 여름에 안방으로 새 한 마리 들어왔기에 들고 있던 파리채로 그만 후려갈겼다.

그게 짝인갑다.

아버지도 참......

그래서 내가 팔순의 아버지께 왜, 그 새를 죽였냐고

난생처음 버릇없이 화를 내었다.

그리고 내 얼굴이 비치는 그 마루의 거울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고영민 이라는 시인의 <공손한 손> 이라는 시집에 수록된 '거울'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시 라기 보다 마치 짧은 얘기 한편을 읽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저 마지막 행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내 얼굴이 비치는 그 마루의 거울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이 시의 제목을 '새'도, '아버지'도 아닌 '거울'이라고 했기 때문일 것 같다.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시인이 거울을 본 순간 시인 눈에 비치는 것은 시인 자신의 얼굴뿐 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오늘은 

내가 가지고 있는 고영민 시인의 시집 두 권을 다시 읽어보는 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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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1-0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제목만 보면 으시시한 공포 얘기일 것만 같다는 느낌이...ㅋㅋ

hnine 2022-01-06 23:23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 제목만 읽으시면 안됩니다~ ㅋㅋ
옛날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인데, 쓸쓸한 옛날 이야기인셈이지요.

그런데 이 얘기를 제 남편이 듣더니 자기 경험으로도 새들이 워낙 거울 주위에 모여들어 들여다보는 걸 좋아한다네요.
 

'영감이 떠오른다' 라고까지 하긴 뭐하지만 아무튼 이른 아침의 나는 하루 중 가장 희망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정신 상태를 갖게 된다. 해보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등, 불과 몇시간후면 스물스물 사라질 생각들이지만 이런 생각들로 머리 속이 채워지는 느낌.


오늘 아침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는데 시선이 딱 박히는 곳에 이 시집이 있었다. 

























"저는 당연히 카톨릭 신부가 될거라고 생각했었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냐는 팟캐스트 진행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던 사람이었지.


오랜만에 이 시집을 다시 꺼내들어 읽어보게 되었다.




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생은 그저 가끔씩 끔찍하고, 

아주 자주 평범하다는 것을.


(표지, 시인의 말)


끔찍한 날이 가끔씩 오는 생은 나쁘지 않지. 자주가 아니고 가끔씩이라니까.

시인이 그걸 알게 되고서, 평범한 일상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되고서, 삶을 더 긍정할 수 있게 되었기를 바란다. 체념이 아니라 긍정.




"사랑했던 거 맞죠?"

"네"

"그런데 사랑이 식었죠?"

"네"


강물에게 기록 같은 건 없습니다

사랑은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시 '장마의 나날' 중에서)



사랑이 새로 생겨났던 것처럼 사랑은 식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미움으로 돌변하기도 하고 끝나기도 하고 다시 시작되기도 한다고, 나도 이제 거의 인정한다.




석양에 영웅은 없다. 지친 날개를 꺾는 것도, 핑계처럼 떨어지는 꽃도 다 석양의 일이다.


(시 '석양에 영웅은 없다' 중에서)


개와 늑대의 시간. 석양의 시간. 

한없이 무력에 빠지게 되는 그 잠깐의시간을 빌어 우리는 날개를 꺾기도 하고 변명을 마련하기도 한다.

나 이제 곧 그런 변명을 대대적으로 하게 될지도 모르니, 이때 석양은 하루의 석양이 아니라 일년의 석양.



불머리를 앓고도 다시 불장난을 하는 아이처럼


(시 'Cold Case 2' 중에서)


이제 그런 불장난할 무모함과 용기는 다시 없겠지.

그런 아이가 될 수는 없는거겠지.

아이때에도 막상 그런 불장난을 해보지 못한 것 같아 억울하구나.



어쩌면 인생은 만두다. 파릇한 청춘과 짜내도 계속 나오는 땀이나 눈물, 지친 살과 뼈, 거기에 기억까지 넣고 버무리는 만두는 인생을 닮았다.


하얀 만두피 속에 태생이 다른 것들을 슬쩍 감춰놓은 것도 생을 닮았다. 잘게 부수어지고 갈리고 결국은 뜨거워져야 서로를 이해하는 만두는 생이다.


뒤엉켜 뜨거워지기 전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뜨거워진 순간 출신을 묻지 않고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만두는 인생을 닮았다.


(시 '만두쟁반' 중에서)


만두를 보고 이렇고 표현할 수 있다니. 이게 어디 후천적인 노력만으로 될 일인가.



앞으로 읽고 싶은 책도 많지만 내가 이미 한번 읽은 책 중에 결코 한번 읽고 말게 아닌 책들이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생각하니, 새해에는 하루에 한권씩 읽은 책 다시 보기 프로젝트를 해볼까 하는,

연식 드러나는 새 계획이 떠오른 오늘 아침.

역시 오후가 되고 저녁이 되어가면서 스물스물 사라질 확률이 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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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31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인 님 아침에 맑고 기운찬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이네요. 좋습니다.
오늘 하루는 좀 길게 가면 좋겠어요 왠지.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세요 ^^

hnine 2022-01-01 09:07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 자주 서재에서 뵙게 되어 참 좋습니다.
새해의 첫책으로 프레이야님의 책을 읽으려고 앞에 두고 있답니다.
리뷰는 바로 못 올리더라도 이해해주세요. 리뷰와 상관없이 저는 한글자도 흘리지 않고 꼭꼭 읽을테니까요. 그러고 싶은 책일테니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Bonne Annee!
Feliz Ano Nuevos!

얄라알라 2021-12-31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명적인(?)....이라 하면 과장이겠지만, 스트레칭하시다 시선이 머문 곳, 딱 그 곳에 있던 시집을 소개해주시니 느낌 돋습니다!

hnine 2022-01-01 09:17   좋아요 1 | URL
스트레칭하면서 시선은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책꽂이로 향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저 시집에만 눈이 가지 않고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쳐다보게 되는게 사실이지만 아마 저 날은 저 시집에 마음이 특히 더 꽂혔나봐요.
아마 며칠 후엔 그 옆에 있는 책을 꺼내들지도 모르겠죠? 운명이라기 보다 단순히 책의 위치가 그 날 아침 다시 꺼내 읽는 책으로 선정되게 한다고 봐야겠지요 ^^
새 책을 사서 읽는 것도 좋지만 읽었던 책 중에도 기억에서 사라지면 너무 아까울 구절이나 내용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것 다시 주워담는 일, 언젠가 해보고 싶어요.

scott 2021-12-31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인의 말처럼 [강물에게 기록 같은 건 없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강물에 휩쓸리듯 지나가 버리길 바랄뿐입니다
에이치 나인님 새해 福 마뉘 ^ㅅ^

hnine 2022-01-01 09:21   좋아요 1 | URL
강물에게 기록 같은 건 없습니다.
단순한 한 문장인데 철학적으로 들리기도 하고 말이죠.
코로나 팬데믹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전 인류가 이렇게 환경, 미래 무시하고 막 나가기를 계속하면 제2의 코로나, 아니 코로나보다 더 속수무책 난관이 또 오지 않으리란 법 없다고 봐요. 모르고 싶은 진실이라고 해서 그동안 너무 무시하고 인간 편위 위주로 살아온 것 같아요. 하지만 이렇게 한 종류의 팬데믹이 오래 갈거라고 예상은 못했네요.
scott 님의 새해 프로젝트는 뭘까요? ^^
새해가 시작되었고 어제 아들이 엄마 이제 나이가 어떻게 되신거냐고 확인시켜주듯이 물어보기에 딱 서른 셋이라고 얘기하고 싶더라고요 ㅋㅋ
 





한 발만 더 뛰면 죽음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달리기는 그 지점부터 시작된다



살아있다는 말 따위는 믿을 수 없어야 한다

더는 달려 나갈 게 없을 때

세상에 오직 나만 없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거짓말이 세상에 가득해질 때




- 이승희 시집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달리는 저녁" 이라는 시의 일부 -









적지 않은 나이를 먹으며 살아오는 동안

나는 과연 저렇게 힘든 시기를 

피하지 않고 견뎌본 적이

몇번이나 있었나 생각해보았다

있기는 있었는지


한 발만 더 뛰면 죽을 것 같을때

살아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않을때

더 이상 앞이 안보일때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것 같을때

다시 시작하라는 말이 거짓말로 들릴때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다시 시작해야한다고

그때가 달리기를 맘먹어야하는 순간이라고

이 시는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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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게 하고 싶은 말






허리쯤에서 꽃 무더기라도 필 생각인지


새삼 잊었던 기억이 몸이라도 푸는지


녹색의 살들이 늘어질 대로 늘어져서


팽팽해지는 오후


녹색의 말굽들이 총알처럼 날아다니며


횡설수설 나를 잡아당긴다


슬플 겨를도 없이 구석을 살아온 내게


어떤 변명이라도 더 해보라는 듯


여름은 내게 


베고 누을 저승을 찾으라 한다


구름 사이로 모르는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다


누구의 유족인가 싶은데 


문상 차림 치고는 너무 설레는 표정이다


큰 나무 뒤에서 혼자 늙어가는 개복숭아는


제 식구들을 욱욱 게워내고 있다


다 늙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엇을 먹는 건지 게워내는 건지


나는 못 본 채 지나간다


그렇게 몇 개의 골목을 지나면서 생각한다


어디쯤에서 그늘을 오려내고 그 자리에 숨어 이 계절을 지나가야 하는지


오려낸 자리마다 더 깊은 변명이 부글부글 끓어도


함께 썩어가자고 


엎드려 울기나 하자고


이 세상 모든 꽃이 유족처럼 나를 향해 필 때까지


나는 캄캄한 사연을 말하지 않으려는 중이다




- 이 승희 시집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중에서 시 "여름에게 하고 싶은 말" 전문 -



(※ 줄바꿈은 제가 옮겨 적으며 한 것이고, 원문에는 줄바꿈이 없습니다.)





























작년에 사서 읽다가 다 못 읽은 시집

올 여름에 마저 읽으려고 한다.


'시를 읽는다'라고 쓸때마다 망설여진다.

시를 읽는다는 말 말고 더 적절한 말이 없을까.

시를 품어본다? 마음에 담아본다? 마음을 담궈본다? 물들어 본다? 


이 시집 말고 다른 시집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는 전권 필사를 해본 적도 있는,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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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올리버, 특색없는 평범한 이름.

천 개의 아침, 어디서 본 것 같은 제목.

그래서였는지 다른 분의 이 책 리뷰가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걸 보면서도 직접 읽어볼 생각까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읽었다.

1935년 미국 태생 메리 올리버는 서른 권이 넘는 시집과 산문집을 출간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시집 이전에 우리 나라에서 번역되어 나온 그녀의 책들은 모두 산문집이었다. 짐작컨대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산문과 같은 느낌이듯, 산문집에 실린 글들도 시 같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2012년 Penguin press에서 출판된 A thousand mornings」를, 민승남 번역으로 우리 나라에선 2020년에 출간되었다. 36편의 시가 원문과 함께 실려있는데 번역된 시도 그렇지만 원문을 읽어도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다. 어렵지 않은 언어로 쓰여진 시이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이 분명하고 시인 자신의 목소리를 일관성있게 분명히 내고 있다면 독자로서 더 반가울 것이 없다.

자연의 변화, 매일 일어나는 단조롭고 시시해보이는 일, 함께 사는 개, 주위의 식물과 동물 들에서 삶을 발견하고, 깊은 생각보다 그런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일깨워준다. 


'나는 바닷가로 내려가'라는 시에서, 아침 바다로 내려가 파도가 밀려오고 물러가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신세가 비참하다며 나 어쩌면 좋지? 라고 한탄하는 말에 바다가 대답한다 '미안하지만 난 할 일이 있어.' 라고.


나는 바닷가로 내려가



아침에 바닷가로 내려가면

시간에 따라 파도가 

밀려들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지,

내가 하는 말, 아, 비참해, 

어쩌지.

나 어쩌면 좋아? 그러면 바다가

그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하는 말, 

미안하지만, 난 할 일이 있어.


비참해하지 말고 현재 눈 앞에 있는 너의 일에 충실하라는 파도의 대답은 곧 시인이 자신에게 가르치는 말이다.


'마침 거기 서있다가 (I happened to be standing)' 라는 시에서는, 중요하지 않을 일들로 가득 차서 나에게만 집중하며 세상을 걸어 다닌다는 것, 그것은 내가 진실로 살아 있다고 부를 수 없는 상태일지 모른다면서, 고양이가 햇살 속에서 토막잠 자는 것, 주머니쥐가 길을 건너는 것, 굴뚝새가 쥐똥나무에서 노래하는 것, 그런 행위들이 고양이, 주머니쥐, 굴뚝새의 기도가 아니겠는가, 기도보다 의미있는 것은 일상, 시시해보이는 일상일지 모른다고 했다.


나는 충분히 살았을까, 나는 충분히 사랑했을까, 나는 충분히 감사하며 행복을 누렸을까, 나는 우아하게 고독을 견뎠을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정원으로 걸어 들어간 시인은 거기서 정원사가 장미들을 돌보고 있는 것을 본다. 자기 할일을 하고 있는 정원사를. 그는 단순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 ('정원사')

이렇게 시인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 보다는 단순한 일상에 집중하라고 말하고 있다. 


'허리케인'에서는 끝장을 본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자연의 경이로운 현상을 노래하고 있다.

나는 내 잎들이 포기하고

떨어지는 걸 느꼈어. 

허리케인의 손등이

모든 것들을 후려쳤지.

하지만

진짜 나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어봐,

허리케인들이 다 후려치고 지나간 나무들에서 봄도 아닌 여름 끝 무렵, 새잎이 돋아나는걸 보았다. 잎이 돋아날 철이 아니었는데, 다 끝장난 것 같아보였는데.

이 시는 다음과 같이 맺는다.

어떤 것들에겐 철이 아닌 때가 없지. 

나도 그렇게 되기를 꿈꾸고 있어.


바닥까지 내려간 후 다시 시작되는 내용은 '어둠이 짙어져가는 날들에 쓴 시'에서도 나타난다.

해마다 우리는 목격하지

세상이 다시 시작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풍요로운 곤죽이 되어가는지.


존재했던 것의 원기가 존재할 것의 생명력과 결합된다 (The vivacity of what was is married to the vitality of what will be.)는 것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진실이라면서, 세상을 사랑한다는 우리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오늘 우리는 쾌활하게 살아가야지 않겠냐는 시인의 말에 혼자 고개 끄덕거렸다. 


'썩은 그루터기에서, 무언가 (Out of the stump rot, something)' 라는 시에서도 같은 맥락을 발견한다.

예쁜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여기 오지 마.

대신 그림을 봐, 

아니면 수선화를 기다리든지.


지금은 봄, 

어수선한 숲속, 소란스러운 연못가

봄은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야

위의 연은이 우리가 상상하는 예쁜 그림같은 봄이라면, 아래 연은 실제의 봄,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기 위해 어수선하고 소란스런 실제의 봄이다. 생명은 치열한 것, 어수선하고 소란스런 과정을 통해 시작되고 또 유지되는 것.


1984년 퓰리처상, 1992년 전미도서상을 받았고 책 뒤에는 메리 올리버에 대한 유명인사들과 각종 출판사의 찬사가 실려있다. 자연을 교과서 삼아 가장 단순한 언어로 삶의 가장 밑바닥 진실을 말하고자 한 메리 올리버. 중요한 것은 단순하게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simple, yet sufficient. 단순하지만 충분한.

어쩌면, 삶의 가장 중요한 진실은 많이 배우고 많이 읽고 많이 말하고 많이 쓰는 것보다 매일 반복되는, 아주 단순해보이는 그 일상 속에 숨어 있는지 모른다. 하찮아보이는 그 일상 속에.

이 시집에서 내가 발견한 일관된 목소리는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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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2-28 0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hnine님 덕분에 좋은 시들을 얻어 가네요. 전 시집 전체를 읽는 것보다 이렇게 누군가가 좋다고 뽑아준 시를 읽는게 더 좋더라구요. ㅎㅎ 아 시인들이 저같은 사람은 싫어하겠죠? ㅠ.ㅠ

hnine 2021-02-28 05:44   좋아요 2 | URL
좋은 시라고 공감해주시니 저도 기뻐요. 시인을 알게 되는 과정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어쩌다 알게 된 시 한편에서 시작해서 그 시인의 시집을 사서 읽어보고, 그 시집에서 공감가는 다른 시를 발견하기도 하고 발견못하기도 하고요. 이 시집은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메리 올리버에 대해 소개해주는 것을 듣고 구입하게 되었어요. 미국 현대시에 대해 제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듯, 어떻게 보면 동양적이기도 하고 어려워서 머리써서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진리는 충분히 단순한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시인의 생각이 시에서 드러나는 것 같았어요.
메리 올리버의 산문도 한번 읽고 싶은데, 산문이라고 해서 다를 것 같지 않네요. 그래서 읽어보고 싶어요.

scott 2021-02-28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누군가 발췌한 시구절이 더좋은 1人!
[고양이가 햇살 속에서 토막잠 자는 것, 주머니쥐가 길을 건너는 것, 굴뚝새가 쥐똥나무에서 노래하는 것}
이런 자연의 모습을 목격한 시인의 천개의 아침은 도시인들의 아침과는 차원이 다를것 같아요.

원래 메리 올리버가 노벨상을 받았어야 하는데 ,,,
시인 메리 올리버의 반려견도 시인의 머리색과 같은 함께 늙어가는 모습까지 닮은
시인이 사랑하는 강아지 모습 그자체 였어요.

hnine 2021-02-28 23:00   좋아요 1 | URL
알라딘의 똘똘이 scott님! 메리 올리버에 대해서도 잘 아시는군요.
반려견 percy 가 시에 자주 등장하는데, percy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 한 마디 없이도 떠난 친구 그리는 내용의 시를 얼마나 뭉클하게 썼던지 몇번을 읽고 또 읽었어요.
책과 사람에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자연에서 배우는 것이 참 많지요. 책을 읽을수록, 사람을 알아갈수록 생각이 가지치기를 하고 더 복잡해져가는 것 같은데 (배움이 부족해서이겠지만), 자연과 가까이 하면 할수록 저절로 단순히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다락방 2021-02-28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가 할 일이 있다고 말하는 시가 무척 좋네요, 나인님. 저도 이 책 봐야겠어요.

hnine 2021-02-28 23:03   좋아요 0 | URL
바다가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는 뜻을 금방 파악하셨네요. 저는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야? 했답니다.
다락방님도 메리 올리버 마음에 들어하실듯해요. 오늘 이누아님과 하이드님 서재에 들렀다가 거기서도 이 시집을 만나 반가왔답니다. 저는 산문집도 한번 읽어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