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먼 길 / 이재무

 

 



이 세상 가장 먼 길
내가 내게로 돌아가는 길
나는 나로부터 너무 멀리 걸어왔다
내가 나로부터 멀어지는 동안
몸 속 유숙했던 그 많은,
허황된 것들로
때로 황홀했고 때로 괴로웠다



어느 날 문득 내가 내게로 돌아가는 날
길의 초입에 서서 나는 또,
태어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새처럼
분홍빛 설레임과 푸른 두려움으로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괜시리
주먹 폈다 쥐었다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내게로 돌아온다는 의미를

예전엔 상상이나 했었던가

분홍빛 설레임보다는 푸른 두려움쪽이다 내 경우는.

 

그동안 빈자리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을 내 자리.

황홀하고 허황되고 때로 괴로왔던 것들로

댓가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알아보게 된 내 자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상한 저울

 

 

 

 

 

 

 

같은 사람인데

어떤 날은 눈금이 많이 올라가고

어떤 날은 눈금이 조금만 올라가는

우리집엔 신기한 저울이 있다

 

 

새학년 처음으로 친구 생긴 날

저울 눈금 거의 제자리더니

엄마 몰래 게임하고 두근거린 날

눈금이 옆으로 획 돌았다

 

 

내방 청소 깨끗히 해놓았던 날

엄마는 저울 눈금이 조금만 올라갔단다

내가 아파서 누워있던 날

눈금이 휙 돌아갔단다

 

 

마음이 가벼운지 무거운지

마음을 다는 저울

신기한 저울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13-03-08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제 마음의 저울도 달아봐야겠어요.
홀가분 하면 좋겠어요. 아마 그럴거에요^^
좋은밤 보내세요^^

hnine 2013-03-09 07:44   좋아요 0 | URL
어제 어떤 분이 입으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마법의 스웨터에 대한 동화를 써오신걸 보고 든 생각이랍니다. 몸무게 아니라 마음 무게를 다는 저울도 있으면 재미있겠다 싶어서요.
전 어제 밤에 기분이 좀 처지기에 물 받아놓고 반신욕하고 났더니 마음도 좀 가벼워지는 것 같더군요. 역시 몸과 마음은 함께 가나봐요.
오늘도 우리 좋은 날 만들어보기로 해요, 적극적으로 ^^

2013-03-11 0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3-03-12 00:06   좋아요 0 | URL
어제까지 무겁던 마음이, 오늘은 가벼워지는 경험을 종종 하지요. 마음 무겁던 일을 해결하고 나거나, 마음을 조금 달리 먹거나, 그러면 마음도 몸도 가뿐해지는 것을 느껴요. 새삼 신기하더라고요.
 

 

 

카페에 앉아 창 밖으로 길 건너 상점들을 내다본다

손님도 없는데 치킨 집 남자는 나름 분주히 움직이고 있고

역시 주인 혼자 지키고 있는 옷가게

그 옆 미장원에만 손님이 앉아 있었다

손님이 없어 쓸쓸해하면 안되는데

생각하다가

창 밖으로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을 내다보고 있는 행위 자체가

쓸쓸함, 그것임을 알았다

 

 

2013.1.17

 

 

 

 

 

 

 

 

 

 

 

 

 

 

사람들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산을 보곤 하는 것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

저 빈 잔디밭을 굴러가는 비닐봉지같이

비닐봉지를 밀고 가는 바람같이 외로운 줄은 알았어도

알았어도

다시 외로운,

새로 모종한 들깨처럼 풀없이 흔들리는

외로운 삶

 

 

 

- 장석남 詩集 <젖은눈>에 실린 '자화상' 중에서 -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3-01-17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삶은 어찌보면 외로움의 연속일수도......
문득 문득 군중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떠오르고는 합니다.
분주함속의 외로움, 쓸쓸함이여!

hnine 2013-01-18 05:12   좋아요 0 | URL
쓸쓸함을 느끼는게 이상한게 아니라, 말씀하신대로 삶이라는 것이 외로움의 연속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가끔씩 느끼는 충만함과 따뜻한 감정에 더 감사하게 되더라고요. 고독은 정말 군중 속에서 느낄 때가 많지요.
세실님은 쓸쓸함을 너무 오래 끌고 가지 않는 현명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잠깐씩만 느끼면 좋겠어요.

이진 2013-01-17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손님없는 가게를 보면 왠지 측은한 마음이 찾아들곤해요.
장사는 잘 될까, 혹 쓸쓸하시진 않을까...
어쩌면 저를 보는 거 같아서 그런 걸지도요...
나인님 좋은 밤 되세요!

hnine 2013-01-18 05:16   좋아요 0 | URL
좋은 밤 되라고 해주셨는데 4시도 안되어 잠이 깼습니다. 어제 밤 좀 일찍, 10시쯤 아이 옆에서 잠이 들었거든요.
저희 집이 새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에 있다보니 주위에 새로 생긴 상점들이 많아요. 주민 수에 비해 너무 많은 상점들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저 많은 카페들, 저 많은 음식점들, 학원들...잘 되어야 할텐데, 괜한 걱정을 할때가 많지요.
가만 생각해보면 쓸쓸할 때 음악도 찾아듣게 되고, 글도 끄적거리게 되고, 이런 저런 생각도 하게 되고...우리들의 감성은 오히려 풍부해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좋은 점도 있구나~ ^^

같은하늘 2013-01-18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워도 좋으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싶어요.
방학중인 두 아들들과 보내는 하루가 참말로 힘드네요. -.-;;

hnine 2013-01-18 05:21   좋아요 0 | URL
우리들 심리가 이렇다니까요. 사람들과 부대낄땐 좀 혼자 있었으면, 막상 혼자 있을 땐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그래도 혼자만의 시간은 꼭 필요해요. 그런데 그게 내가 나서서 만들지 않으면 그냥 주어지지 않더라고요.
아이 하나도 저는 힘든데, 두 아들들 데리고 쉽지 않으시지요. 이제 좀 더 크면 그렇게 엄마를 찾지 않는답니다.

프레이야 2013-01-18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젖은눈, 이 시집을 나인님 소개로 샀던가요, 제가요? 기억이 가물거려요. 암튼 시는 좋아요. 나인님의 단상은 더 좋구요. 손님없는 가게 분주한 주인장, 그걸 바라보는 시선이 전 왠지 따스하네요. 좋은하루 보내세요^^

hnine 2013-01-18 22:34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시집을 한번 페이퍼에 올린 적이 있긴 하지요. 누구 소개로 구입하셨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영광일겁니다 ^^
오늘 서울 다녀왔는데 한강이 꽝꽝 얼었더라고요. 집을 나서면 한강을 건너야 어디든 갈 수 있었던 (집이 한강 중간에 있어서요 ㅋㅋ) 그때에는 아무 느낌없이 보던 한강인데 오랜만에 보니 참 크고 넓다는 생각이 새삼 들더라고요. 추운 날, 글이라도 따스하게 느껴지셨다니 그 말씀이 또 저를 따뜻하게 합니다.

꿈꾸는섬 2013-01-1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오랜만이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잘 지내고 계시죠? 근데 쓸쓸하신거에요? 전 요새 쓸쓸함을 즐기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고 외롭거나 쓸쓸한 마음이 안 드는 건 아니더라구요.^^

hnine 2013-01-18 22:37   좋아요 0 | URL
꿈섬님, 무소식이 희소식임을 믿고 있었어요. 제 자리에서 모두들 열심히 살고 계시리라, 한동안 안보이시는 서재 친구분들 생각할때마다 그리 생각했지요. 저도 잘 지내고 있었답니다. 쓸쓸한건, 뭐 늘상 느끼는 일이고요. 저의 혈액형은 "쓸쓸형"인가봐요 ^^
독서지도 공부도 계속 하시나요? 읽으신 책도 많으실텐데 시간 나실때 조금씩 조금씩 들려주세요.
 

 

 

 

 

 

 

 

 

 

 

 

 

 

 

 

 

 

어쩌다 이 시집을 발견하였다.

2011년에 나왔는데 2012년도 다 지나가는 무렵에서.

 

시인의 이름 한 영 옥.

이름이 낯설지 않아 얼른 책꽂이의 시집 꽂아두는 칸에 가서 확인해보았다.

맞네, 그 시인.

 

1979년이면 내가 중학교 1학년때.

뭐 읽을 거리 없나 집안 여기 저기 뒤지고 다니다가 아빠의 책꽂이에서 발견한 시집.

제목의 한자도 어떻게 읽는지 더듬거렸던 시집.

 

 

 

 



 

 

<적극적 마술의 노래> 라고 읽어내고도 이게 무슨 소리야? 갸우뚱 했었지.

표지를 넘겨보니 저자가 아빠께 직접 드린 저자증정본이었다.

 

 

 


지금처럼 책이 많지 않던 시절. 이거 저거 가리지 않고 읽던 나는 이 아리송한 제목의 시집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 중 몇편의 시들은 마구 공감이 가는 것이다.

한번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읽고 또 읽고.

읽을수록 더 좋아졌다.

 

 

 

 

 

 

 

 

 

 

 

그 당시 책 읽는 것 다음으로 편지쓰는 것을 좋아하던 중학교 1학년 단발머리 나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낼때 여기 있는 시들을 함께 적어보냈는데,

누구에게 어떤 시를 적어보냈는지 이렇게 적어두었더랬다.

 

 

 

 

오랜만에 누렇게 바래고 표지마저 뒤틀린 이 시집을 다시 읽어본다.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이사도 여러번 다녔는데,

시간과 공간의 변화 속에서도 계속 나를 따라와준, 아니, 내가 데리고 다닌 책들중에 끼여있으니

바로 한달전에 읽은 책도 읽고나면 바로 중고책으로 처분해버리는 요즘 나를 생각하면

대단한 인연이구나 싶다.

 

1979년, 열 네살의 나.

2012년, 마흔 일곱의 나.

 

할 말이 없다.

가슴이 먹먹할 뿐.

 

 

 

 

 

 

어둠지는 들판에서

 

 

 

 

 

한 그루 버릴 나무쯤으로

어둠지는 들판에 심은 사랑

 

 

살가운 바람 속에

살갑게 키울 재미는 없는 나무

 

 

뿌리를 곧잘 얼리는

독난 나무 주인 나는,

 

 

심심할 때마다 더욱 신명난

그 나무의 임자건만

 

 

시정의 뜨락까지는

너를 못 불러 들이는

이름만 좋은 주인

 

 

어둠에 이마를 찧는 네 곁에서

어지럽게 맴이나 도는

속수무책의 주인이지만

 

 

누가 너를 앞세워 데려 갈 땐

들판의 어둠을 쩍 가를

칼날 하나는 갈아 두었다.

 

 

 

- 한영옥 <적극적 마술의 노래>중 '어둠지는 들판에서' 전문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에게 그녀의 시는 문학으로서의 시가 아니라 멘토로서의 시이다. 최고대학의 대학교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유명한 수필을 쓴 수필가, 등의 어떤 명칭보다도 시인이라고 불리고 싶어하는 저자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나에게 그녀의 시는 힘들 때, 갈팡질팡할 때,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을 때 나를 붙잡아 주는 하나의 받침대 역할을 해주어 왔다.

 

 

 

운명, 조롱당하다

 

 

 

콩 심은 콩 밭에서 팥을 더 추수한다

 

 

뱁새가 황새를 앞질러서 날고 있다

 

 

인삼 밭에는 민들레가 더 무성하다

 

 

통쾌한 21세기

으로 메주 쑤고, 황새보다 뱁새, 인삼보다 민들레래.

 

아름다운 문장, 절묘한 표현, 숨겨져 있던 감성을 일깨움으로써 감동을 주기보다는,

이처럼 하나의 짧은 경구 같은 시, 이렇게도 생각해보라고 가르침을 주는 듯한 시가 많다.

 

젊은 나이엔 별로 와닿지 않았을 시.

 

콩 심은데 콩 나는 거 맞지만,

콩 심은데 팥 난다고 해도 덮어놓고 틀리다 우기지 않게 되는 나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