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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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소설가의 미술 감상은

 

 

 

 

학창 시절 음악이나 미술 감상문을 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어떤 선생님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미술이나 음악에 영감을 얻어 밑도 끝도 없는 소설을 짓거나 을 풀곤 하였다. 평가가 호불호가 크게 갈렸다. 지금도 미술과 음악을 어떻게 감상하고 대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래도, 이상하게,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재주는 참 축복이다.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을 보며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리코부터 호지킨까지 열 일곱명의 화가와 그들의 그림을 말하는 책. 미술에 대해 깊고 풍부한 지식이 넘친다기보다 제목처럼 아주 사적인 감상과 경험, 기억 등을 자분자분 푼 에세이다.

 

번역본을 감안해도 술술 읽히고 집중하게 만드는 에세이다. 줄리언 반스도 모르고 이 책에 다루는 화가들과 그림을 모르더라도 읽는 데 지장이 없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줄리언 반스의 글솜씨에 탄복하였다. 역시 소설가는 다르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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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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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여자의 몸, 여자의 운동, 깔깔대다 페미니즘

 

 

 

넌 책도 너 같은 귀여운 것만 읽네.” J가 턱을 괴고 단눈으로 쳐다본다.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이 말에 자유로울 수 있는 현대 한국 직장인 청년들이 얼마나 될까. 별다른 일정 없이, 그저 회사를 벗어나 푹 쉬기 위해 월요일에 같이 휴가를 냈던 우리. 당연히 자전거든 볼링이든 운동도 꼭 하자며 계획은 창대했으나, 휴가를 써도 숨쉬기 외의 체육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운동하는 책을 읽느라 더 운동을 못 하게 되었다. 자기관리와 자기만족 때문도 있지만, 살기 위해서 운동해야 한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운동 안 하면 죽겠다는 깨달음은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돼 얻는다. J와 나는 그래서 이 책을 보고 웃다가 울다가, 서로를 그리고 책을 귀엽고 가여워 할 수밖에 없었다.

 

   

짧은 운동의 경험은 나를 잠깐 쥐었다가 놓으며 지문처럼 흔적을 남긴다 그것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으며 인지할 수 없다. 불시에 불쑥 솟아오르고서야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 - p.48

 

 

핫보디가 아닌 핫바 바디인 작가 아가씨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피트니스 업계의 기부천사. 아쿠아로빅, 필라테스, 요가, 헬스, 승마, 복싱 등 살면서 굉장히 다양한 운동을 시도하는데 어느 한 운동도 한번에 3개월 이상 하지 못하고 강습료를 기부한다. 흔하디 흔한 게 작심삼일 돈만 내고 운동가지 않는 기부천사지만, 작가처럼 끊임없이 운동 무언가를 시도해 체육인생이 상당한 경우는 참 드물다. 흔히 젊은이들에게 진입장벽이 높은 지역 수영장 어르신 고인 물사이에서도 쭈삣쭈삣대면서도 제법 잘 다닌다. 다만 3개월은 채우지 못할 뿐이다. 그렇기에 책날개의 체크리스트를 보고 야 너두? 야 나두!’하며 동지의식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책장이 넘어갈수록 의외로 존경심이 제법 쌓인다.

 

 

그때까지 나는 공복을 잘 견디는 것에 이상한 자부심이 있었다. 거식증을 겪는 여성이 느끼는 감정이라고도 하던데, 결심한 대로 음식을 먹지 않으면 스스로를 잘 통제한다는 기분에 빠지기 쉽다. - p.104

 

깔깔대며 공감하며 읽다 덜컥 손이 걸린다. 이진송 작가의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하는데>가 탁월한 점은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글솜씨 속에 페미니즘 메시지를 잘 녹여낸다는 것이다. 정말 괜찮은 페미니즘 책으로 추천하고 싶지만,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단어만 들어도 무조건 날서고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에 조심스럽다. 여자의 운동이 남자의 운동과 어떻게 다른 접근을 하고 있는지, 여자의 몸에 대해 여자가 강요받고 세뇌당하는 점이 무엇인지를 일상 경험담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낸다. 그래서 여자의 운동만 알았던 여성독자들에게 사람의 운동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게 한다. 오늘은 서평을 쓰느라 또 운동을 못했다. 내일 나의 몸과 운동은 안녕하기를, 미래는 밝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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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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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에세이를 읽는 이유

 

 

 

 

내일의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어제오늘과 똑같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계속될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지루함이 축복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뭐 그렇다고 별 수 있나. 무너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지루함을 만들 수밖에 없다. 오늘이 언젠가 우리만 아는 농담이 될 날을 기다리며,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 p.260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에세이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출판사도 독자도 부담 없이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책을 선호한다고 한다. 과거 인기 작가를 포함해 유명 인사들의 외도, 펜굿즈 같은 느낌의 에세이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저자의 풀도 훨씬 넓고 새 저자 발굴도 활발하다. 다산북스 브랜드 놀에서 이달 출간한 <우리가 아는 농담>도 이런 시류에 발맞춘 에세이집이다. 가볍고 판형이 작아 휴대성 좋고, 가독성 좋게 편집되어 있다. 이 책을 쓴 김태연은 영화인이자 칼럼니스트이다. 현재 한예종에서 다시 영화를 공부하고 있고,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프로필이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이 유명의 시작이고 이 책을 아는 우리는 옥석을 알아챈 선구자이길 바라며, 고단한 출퇴근길 짬짜미 책장을 넘겼다.

 

  

<우리만 아는 농담>의 소재는 여행을 좋아하거나, 일탈과 휴식이 간절한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보라보라섬'에서 '외국인'남편과 한국아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보라보라섬은 설사 이름은 처음 들어봤어도, 사진을 보면 '', 유명휴양지다. 어느 날 불쑥 프랑스인 남자친구와 편도 비행기티켓을 끊고 프랑스령 보라보라섬으로 떠난 작가. 어느 날 불쑥 청혼 받아 어느 날 불쑥 결혼식 없는 결혼을 하고, 어느 날 불쑥 피자가게를 열고 어느 날 불쑥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렇게 9년을 살았고, 4년 동안 잡지에 연재한 일상에세이가 이번에 단행본으로 나왔다. 섬 전체를 통틀어 '소비생활'이 가능한 곳이 손에 꼽을 정도(p.34)인 보라보라섬.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아서 작가 역시 외딴 바다마을에서의 유유자적, 자급자족, 슬로우 앤드 미니멀 라이프(p.252)을 꿈꿨지만 개뿔, 인생은 어느 장소에서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족끼리 이렇게 시시한 얘기나 할 수 있을 때가 좋은 때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시시함이 아주 감사하다. - p.55

 

아무리 작은 일도, 무의미한 일도 그래서 모두 의미가 있다. - p.57

 

외로운 사람은 너무나 흔하다. 그래서 서로의 의로움에 더 쉽게 공감할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이 때문에 서로의 외로움에 더 쉽게 무감해지고 만다. - p.62

 

하지만 별 걱정은 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먼훗날 다시 만난다 해도, 우리에게는 우리만 아는 농담이 있기 때문이다. - p.207

  

 

'아재'들이 '자연인'에 열광하듯,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이국에서의 여유롭고 한가한 삶. 작가는 보라보라섬에서의 일상을 별거 아닌 듯 담담하게 쓰지만, 단한번도 가보지 않은 독자에겐 온갖 상상과 부러움을 자극하는 글이다. 어쨌든, 한국에선 느낄 수 없는 정서와 풍경이 있다. 책 중간중간 사진이 실려 있지만 에필로그 후에 일기 같은 짧은 포토에세이가 나열되는 편집이 인상적이었다. ()은 끝났지만 삶은 계속됨을 보여주는 듯한. 특유의 유쾌하고 재치있는 글을 빠르게 넘기다, 영화를 말하는 에세이에 손이 걸렸다. <우리만 아는 농담>은 그후 작가의 행보를 엿볼 수 있었고, 작가가 얼마나 멋지고 씩씩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사소함을 공유하고 위로하는 일, 그렇게 만드는 '우리만 아는 농담'. 그 시간의 길이는 상관없다. 남의 삶을 소비하는(에세이를 읽는) 이유를 이 책에서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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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한 여름, 네가 좋아한 겨울 책고래숲 1
이현주 지음 / 책고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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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한 여름네가 좋아한 겨울] 색으로 풀어낸, 사랑이 어려운 이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기적이다진부하고 흔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표현이지만 사랑은연애는 신기하고 귀한 일이다. <내가 좋아한 여름네가 좋아한 겨울>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사랑하는 일을 다루고 있다이 책을 그리고 쓴 이현주 작가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연애를 두 색이 섞이는 것으로 표현한다더러 완전히 합쳐져 새로운 색이 되는 부분이 있지만 대개 각자의 색을 공유하는 모양새로그래서 같아질 수 없고다툼이 있고헤어지면 남이 된다고.

 

 

책은 여름을 좋아하는 여자 연이(노랑)과 겨울을 좋아하는 남자 준이(파랑)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부터 시작한다둘은 잡지사 기자인 연이가 소설가 준이를 취재하게 되면서 처음 만난다쏜살같이 전개되었던 성장과정만큼 연애의 흥망성쇠도 빠르게 전개된다. <내가 좋아한 여름네가 좋아한 겨울>은 그렇게 대단히 얇은 책이다그러나 주제(사랑)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와 개성적인 표현이 충분히 담겨져 있다어찌 보면 이미 어디서 많이 본 것도 같지만 새 그림이고 새 이야기그림책의 모양새 자체가 사랑(연애)의 속성을 닮았다.

 

 

둘은 한 발짝씩 물러섰다.

그만큼 거리가 생겼다

그제야 서로의 진짜 모습이 보였다.

(...)

준이는 생각했다.

왜 그녀를 만나고 있는 걸까?’

(...)

연이는 생각했나.

나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종잡을 수 없는 생각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그러다 문득 둘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를 좋아한다는 거였다.

- 본문 중에서

 

 

이현주 작가는 본문에서 가까워질수록 닮은 점을 많이 발견했고 사랑이라 확신했다(준이)’, ‘늘 지나던 곳을 그와 같이 걷자 새로운 길이 되었다(연이)’ 등의 표현으로 연애를 말한다그러면서 색으로 작가는 촌철살인한다준이와 연이는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고 상대를 친근하게 느끼지만연애하는 동안 상대의 색을 알아보지 못한다노랑의 세상(연이)파랑의 세상(준이)에 알게 모르게 상대를 맞춰보며 오해한다색이 다르다는 걸 알아채기 전에 다투고 감정이 식는다


 

연이와 준이는 서로의 진짜 색을 알아채고 서로를 이해하기로 하면서 이별의 위기를 극복한다이것 또한 쉽지 않지만이런다 해도 연이와 준이의 열애가 영원하다는 보장이 없다. 사랑은 참, 흔한 듯 어렵다. <내가 좋아한 여름네가 좋아한 겨울>은 아동출판사 책고래에서 처음 펴낸 어른들을 위한 그림에세이다작가가 애니메이션을 전공해서인지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해도 괜찮을 것 같은 장면 구성과 전개를 선보인다작고 얇아 선물하기 좋은 무난한 양장본 그림책이다표지 재질이 닳기 쉬운 종이인 것이 아쉬웠다. 124, 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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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황교익 지음 / 지식너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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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 황교익

 

 

 

누나, 왜 하필 이 사람 책이예요?” 다시 서평을 쓰려 고군분투 중이라는 내 말에 반기던 임이, 내가 읽던 책을 확인하곤 내뱉은 말이다. 안그래도 시간 없다며 못 읽고 못 쓰는데, 왜 굳이 세간에 한창 비난받는 작가의 책을 골랐냐며. 나도 그래서 망설였지만 궁금했고, 악명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고 판단하고 싶었다. ‘교이쿠상이란 별칭과 연유를 처음 들었을 때 놀랐다. 황교익은 꽤 오래 전 내가 즐겨 찾던 블로거였다. 논란이 된 그의 주장 중 상당수는 그때부터 있었다. 대개 사람들은 글쓰기와 말하기를 모두 잘 하지 못한다. 황교익은 천상 글쟁이다. 그것도 아주 고집스럽고 성실한.

  

 

교이쿠상의 오명을 황교익은 반드시 글로 풀어낼 것이라 생각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를 출간하였다. 그에 대한 호오가 없음에도, 두근거리며 책장을 펼쳤다. 책은 생각 외로 음전하였다. 그렇다고 그답지 않게 느껴지지 않았고, 특유의 날선 화법과 집요한 탐구욕이 이 책에서도 잘 느껴졌다.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를 읽으며 황교익이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결코 친화적이지는 않은 독특한 작가란 생각이 들었다.

  

 

치킨은 맛이 없다는 대중들에게 도발적이고 불편한 이야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이 그가 망상가이고 친일파여서 아니다. 음식문화사적으로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도 있고, 앞으로의 요식업과 식생활에 던지는 유의미한 화두들도 담겨 있다. 그의 주장들 중 동의하기 힘든 것은 외면하면 될 뿐이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으며 물적으로도 문화역사적으로도 오랫동안 가난하고 무너져 있던 우리나라다. 그런 배경에서 형성된 현재 우리의 먹거리와 식생활에 대해 황교익처럼 연구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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