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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김보경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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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나를 깨운 그의 편지들

   



언제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는지 모르겠다. 한때는 우체국을 집앞 구멍가게 들르듯 다니고 편지지값 지출이 상당했다. 그 땐 무슨 할말이 그렇게 많았고, 무슨 글을 그렇게 써주고 싶었을까. 편지 쓰는 걸 너무 좋아해서 내 편지를 쓰다못해 남의 편지도 참 많이 대신 써주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편지를 자주 쓰지 않게 된 이유는 이메일이나 휴대폰 문자 탓이라기 보다는 남에겐 차마 나눌 수 없는 절망이 많아지면서였다. 가장 먼저 부모님께 쓰는 편지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상황은 이전보다 안 좋아졌습니다 따위의 문장을 쓰는 것에 신물이 났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도 치미는 미안함에 괴로웠다. 내 가족에게도 터놓지 못하는 것들을 하물며 다른 이들에겐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 그렇게 내 삶에서 점점 편지가 멀어져 갔다. 


누군가가 인생의 책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책이 내게도 두세 권 있다. 그 중 한권이 중학생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였다. 너무나 인상 깊게 봐서 꽤 오랫동안 그 책의 세세한 문장이나 그림을 외웠다. 그러나 그의 열렬한 팬이라기엔 나는 비겁했다. 항상 이런 감성과 사유를 가지고 이처럼 맑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부러워하면서, 그의 다른 작품과 삶에 대해선 많이 알고 있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겁이 났던 것 같다. 내게 <어린 왕자>의 의미는 잃고 싶지 않은 최후의 순수 내지 유년시절의 아련함이 담긴 인생의 동화였다. 그래서 <어린 왕자>의 강렬한 충격과 감동만이 이 작가에 대한 내 오롯한 환상의 완전체로 마음에 새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이하 생편지)>를 집어든 것은 작가 소개의 내용과 몇몇 비행사를 소재로 한(자신이 투영된) 소설들을 읽으며 짐작해볼 뿐이었던 불량 독자로서의 반성이자 뒤늦게나마 작가와 똑바로 마주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독서에 앞서 생텍쥐페리의 인생(작품들의 창작배경과도 연결하여)에 대해 따로 찾아보았다.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치열하고 힘겹게 살았고 삶과 인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 가까스로 죽음에서 벗어난 치명적인 부상 전적은 왜 이리 많으며, 용감한 군인이자 하늘 바보였다. 그래서일까, <생편지>를 엮은 그의 어머니 마리가 서문에 인용한 ‘우리가 아는 생텍쥐페리는 평화라곤 알지 못했다’라는 문장이 더욱 절절하고 울컥하였다. 


<생편지>는 갈리마드 출판사에서 1955년과 1969년에 생텍쥐페리의 어머니 마리 드 생텍쥐페리가 출판한 서간문 모음집을 몇 편의 편지를 추가하는 등 보완하여 새로이 발간한 책이다. 생텍쥐페리가 10살이었던 1910년부터 죽기 직전의 1944년 7월까지(마지막 편지는 그래서 유고편지이다) 어머니께 쓴 100여 통의 편지와 가족들에게 쓴 몇 통의 편지들을 담았다. 마리의 서문이 끝나면 몇십 쪽에 할애해 생텍쥐페리의 대략적인 삶을 편지 인용과 함께 빠르게 보여준다. 그리고 나서 350여 쪽에 달하는 편지의 원문들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준다. 단, 사적인 부분으로 삭제해도 괜찮은 부분들은 비공개하였다. <생편지>엔 생택쥐베리의 사적이고 진솔한 모습들로 가득하다. 철자가 엉망이던 꼬마시절을 지나 기숙사 학교에서 한창 대입 준비 중인 수험생에서 전쟁이 끝나길 바라며 가족을 걱정하는 조종사, 그렇게 작가이기 이전에 한 남자이자 누군가의 아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성장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마망(maman;프랑스어로 엄마라는 뜻)하고 늘 어머니를 그리고 필담을 늘어놓는 생텍쥐페리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처음엔 생텍쥐페리의 얼굴을 떠올리면 사랑하는 엄마, 사랑스러운 엄마, 효성스러운 아들, 마음으로 키스와 포옹을 담는다는 말 같은 표현을 서슴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 낯설고 조금은 낯간지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계속 읽고 있으니 종이 밖을 뚫고 나오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로맨틱한 프랑스인이고 편지가 주요 통신수단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보다 생텍쥐페리가 편지에 매달렸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떨어져 살았고 결혼생활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 더 컸던 것 같다. 


<생편지>는 메모노트와 수첩을 제외하고 그의 저서 중 유일하게 국역되지 않았던 책이다. 이번에 드디어 갈리마드 출판사와 생텍쥐페리 재단과 모든 절차를 완료한 끝에 나온 이 책은 시공사와 번역자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원서는 기본적으로 생텍쥐페리 편지의 실물이나 그림들을 일부 싣고 주석을 달았다. 이번에 출판된 시공사 번역본은 원주 뿐 아니라 추가적인 주석을 더 달았으며, 편지에 나오는 장소들을 번역자가 직접 찾으며 찍은 사진들이 여러 장 실었다. 다만 편지에 대한 주석을 한 편지가 끝날 때마다 미주로 정리해서 달아 놓아서 일일이 책장을 넘기며 확인해서 읽어야 되는 것은 조금 번거로웠지만 작가에 대한 애정이 높아서일까 평소와 달리 덜 툴툴댔고 더 꼼꼼히 보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생텍쥐페리의 지극히 사적이고 인간적인 면면이 궁금해 <생편지>를 읽기 시작했지만 이 책이 내게 끼친 가장 큰 영향은 가족의 소중함과 그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는 것이다. 나는 자존심 사수와 내식대로의 배려라는 이유로 나와 관련된 부정적인 이야기나 남이 잘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누구에게도 거의 터놓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생텍쥐페리는 전혀 개의치 않고 별별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받은 자극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부모님과의 통화해서 짧고 기계적으로 안녕하다 말하곤 부모님의 얘기만 듣는다. 변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다시 예전처럼 헤헤 편지 쓰고 싶어졌다.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3285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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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사람들 NFF (New Face of Fiction)
톰 래크먼 지음, 박찬원 옮김 / 시공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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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사람들]
11+1, 신문사 안팎을 배경으로 녹아낸 인간 군상


  


'날선 기묘함', 신간 <불완전한 사람들>에서 느낀 전체적인 공기는 그러했다. 이 책은 목차부터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쪽수의 표시도 없이, 11개의 신문기사 헤드라인과 그 각각마다 인물의 이름이 달려 있다. 신문과 관련된 인물이지만 그들이 모두 기자는 아니다. 그리고 목차의 헤드라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일반적인 신문 헤드라인과는 달리 엉성하고 어색하다. 소설의 인물들과 그들이 겪는 에피소드들도 그렇다. 이들이 정말 전문 언론인이 맞을까, 이 신문은 3류지인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만큼 '프로페셔널'이나 '저널리즘'과는 동떨어진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제목처럼 불완전한 인간들의 불완전한 일상들을 작가는 날카롭게 포착하고 그려낸다.  


로마의 한 영자신문사(로마를 거점으로 한 국제지)를 중심으로 그 직원과 독자들의 모습 안에 인간 군상을 명민하게 녹여낸 소설, 톰 래크먼의 2010년작 <불완전한 사람들>이 드디어 국역 출판되었다. 이 책은 11+1 구성의 옴니버스 소설이다. 먼저 발행인에서 교정교열 편집자까지 10명의 같은 신문사 직원과 1명의 독자가 각각 겪는 11개의 에피소드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서로 얽혀 있다. 또 각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삽입된 짤막한 이야기가 있는데(그것도 총 11개인 셈) 다 합치면 신문사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설정엔 전직 기자였던 작가의 경험이 어느 정도 투영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언론사가 배경이고 언론인들이 주인공이지만, 언론이나 언론인의 삶을 주제로 한 소설은 아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의 원제는 'The Imperfectionists'로 perfectionist 혹은 imperfection의 의미에서 착안한 작가의 신조어이다. 책의 제목부터 반증하듯 작가는 이 소설에서 직업이나 배경보다는 인간 보편적인 특성과 인생희비극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언론과 언론인을 다룬 것이 중요하진 않지만, 우리가 흔히 대표적인 엘리트 집단이라고 여기는 인물들의 나사 빠진 모습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성을 더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때론 인물이나 처한 상황 자체가 특이하고, 아무리 계획하거나 거부해도 우연이 발생하기도 한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독립된 단편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데 다시 그 에피소드들과 인물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 얽히고, 에피소드 안에서 혹은 전체적으로 허를 찌르는 반전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사람들은> 독자들에게 다각도로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책이다.
 

 

옴니버스 구성 자체가 잘 만들기 무척 어렵고, 이 책은 워낙 에피소드가 많아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어떻게 읽을지 긴장되고, 산만할까 걱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전혀 걱정할 필요 없이 책의 순서대로 쭉 읽으면 된다. 웬만하면 줄거리 등 책 내용과 관련된 정보를 최대한 배제한 채 읽으면 더욱 좋다. <불완전한 사람들>의 인상적인 점은 날카로운 작가의 시선과 철학적인 주제의식이 매우 형이하학적인 통속극과 자연스럽게 어울어진다는 것이다. 독특함과 불친절함, 기발한 발상이나 풍자 등의 개성은 살리면서 쉽고 대중적인 문법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불완전한 사람들>은 톰 래크먼의 데뷔 소설인데 작년 초에 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누렸고 벌써 13개국 이상 번역·출판되었다. 게다가 이미 브래드피트의 영화사인 플랜B에 판권이 팔려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라고.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32569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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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이 인도차이나 - 어느 글쟁이의 생계형 배낭여행
정숙영 지음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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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바이 인도차이나] 읽는 이를 유쾌하게 하는 생계형 여행기

 
 

'어느 글쟁이의 생계형 배낭여행'이란 부제 때문에 눈이 간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정숙영이란 작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책을 정말 재밌게 읽으면서, 그리고 책을 읽고나서 작가에 대해 더 찾아보면서야 알게 되었다. 여행 기자 경력도 있고 유명한 여행블로거이고, 특히 '노플랜, 무대책' 여행으로 유명하단다. 이런 사전 정보가 없더라도 <사바이 인도차이나>는 꽤 두꺼워(450쪽에 달한다) 압박스러웠던 첫인상과 달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게 되어 전혀 두껍게 느껴지지 않았다. 책 속에서 작가는 자신이 돌아다니고 찍은 이런저런 사진을 보여주면서 쉼없이 떠들고 있다. 수다쟁이인데 얘기 한번 참 맛깔나게 하는 언니(누나) 혹은 친구의 여행후기 듣는 느낌의 여행기를 읽고 싶은 독자라면 <사바이 인도차이나>를 적극 추천해본다.

작가에게 회사생활은 너무나 스트레스가 심했고, 그래서 남들은 다 한창 사회초년생으로 한해 두해 경력 쌓고 아둥바둥 사는 나이에 시원하게 회사를 때려치웠다. 하지만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어느 정도의 수입은 필요했다. 영어는 원래 잘하는 편이었고 29살에 빠진 일본 드라마 때문에 일본어도 제법 잘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은 프리랜서 번역가, 그리고 여행을 좋아했고 여행기를 인터넷에 연재하면서 인기를 얻어 아예 여행기자의 일을 하기도 하였다. 작가의 인도차이나 반도행은 극심한 일상 매너리즘 타개를 위한 발상의 전환에 의한 것이었다. 생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것을 하며 행복해지는 방법, 일을 하면서 여행하자!

어쨌든 부러운 인생이다. 30대 중반의 한국 미혼 여성이 자유여행을 제지당하지 않고, 결혼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으며(게다가 작가는 맏이라 한다), 프리랜서로 꾸준히 벌이를 하고, 좋아하는 여행을 하며 쓴 글들이 계속 인기가 많다. 아마 열에 아홉은 작가가 무슨 소리를 하든 이 책을 읽으며(혹은 이 책을 보기도 전에) 작가를 부러워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한참 부러움과 질투심에 눈이 삼각형이 될 즈음, 작가는 때맞춰(마치 '이쯤되면 날 부러워하겠지? 이런 걸 궁금해하겠지'를 다 아는 것처럼) 한 소리씩 한다. 그 점이 <사바이 인도차이나>가 다른 여행기와 다른데, 여행담을 늘어놓는데만 그치지 않고 생계형 글쟁이로 살아가는 어려움, 여행작가나 프리랜서가 되는 방법과 그 직업의 장단점 같은 얘기들을 허심탄해하게 해준다. 자세하진 않지만 작가 같은 삶을 꿈꾸는 독자라면 꽤 도움되는 이야기들이다.

너무 덥지 않고, 물가가 싸며,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란 세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여행지를 찾다가 선택한 곳이 바로 인도차이나 반도(동남아), 일단 방콕에 사는 지인을 믿고 번역할 책과 노트북을 비롯한 여행짐을 싸서 무작정 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렇게 시작된 인도차이나 여행은 태국의 방콕과 빠이와 끄라비, 라오스의 방비엥과 씨판돈, 캄보디아의 라따나끼니와 씨엠립, 베트남의 호치민과 달랏 이렇게 4개국 9지역을 여행하게 된다. <사바이 인도차이나>는 2009년 8월에서 10월까지 약 3개월간 배낭여행하며 돌아다닌 여행기인데, 그 후로 11월에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출국해 태국과 캄보디아에서 반년간 더 살았다고 하니 작가가 한동안 얼마나 인도차이나의 매력에 푹 빠졌을지 짐작된다. 

여행자라는 동병상련으로 국적과 나이를 초월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예측하지 못한 여행을 진행하게 된다. 동남아에서 가장 가난한 여행자가 되기도 하고, 아무리 불쌍함을 증명해도 안타깝긴 하지만 벼룩의 간이라도 뺏어가야겠다는 날강도 현지인을 만나기도 한다. <사바이 인도차이나>를 읽으면서 이 작가는 천상 여행자 팔자로 타고났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같은 여행지 여행기도 이렇게 재밌게 쓸 수 있구나 싶어 글재주가 참 부러웠다. 눈물이 주륵주륵 나올만큼 탁월한 문학성의 미문은 아니지만,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다녀온 여행지 다 가고 싶게 혼을 쏙빼놓는 유쾌한 문장이니 여행기엔 최적합하지 않겠는가. 이 배낭여행 이후 6개월 거주기도 궁금하다. <사바이 인도차이나> 2는 안 나오려나?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32067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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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좋은 시간이야, 페르귄트
김영래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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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좋은 시간이야 페르귄트]
잠시 새의 입장이 되어 책과 함께 날았다 
  

새들의 세계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저는 국경 없는 새들의 나라의 '명예 시민'이 되고 싶은 소망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한 마리의 까치를 통해 풀어 보았습니다. (중략) 이 작품은 까치를 주인공으로 한 '새의 오디세이'입니다. 거대 도시 서울의 변두리에서 '아작'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한 마리의 까치가, 몽골과 시베리아를 거쳐 남태평양에 이르는 장대한 여행을 통해 '페르귄트'라는 이름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 작가의 말 中

입센의 극시 페르귄트는 전형적인 탕아의 이야기이다. 심각한 몽상가이자 사고뭉치였던 젊은 페르귄트는 돈과 권력을 찾아 세계를 떠돌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산전수전 다 겪고 나이 들어 무일푼으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입센은 페르귄트를 통해 부와 권력 추구가 가져오는 정신의 황폐, 야망의 덧없음 등을 그렸다. 태평양을 떠돌다 한 배 위에서 쉬어가려던 페르귄트를 발견한 선원(새와 소통할 수 있는)은 그의 사연을 대충 듣고나선 이 노르웨이의 이야기를 말하며 꼭 페르귄트 같은 새라고 이야기를 한다(글쎄 별로 비슷한 점은 없는데 정처없는 방랑 때문일까). 그리고 그 때부터 이 까치는 페르귄트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어 다시 태어난다. 


<떠나기 좋은 시간이야 페르귄트>는 첫 장편소설 <숲의 왕>으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았던 시인 겸 소설가 김영래 작가의 2010년작이다. 참고로 작가는 작년 상반기에는 이 책은 하반기에는 또다른 새에 대한 소설을 출간하였다. 책 속의 작가의 말이나 소설 내용, 작가 소개를 읽으며 뭔가 감지되는 남다름이 있어 찾아보니 생태소설가로(한국문학에선 거의 장르 개척자나 다름 없는) 불리우고 있었다.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들은 생태학적 사유를 강조하고 자연친화적이다(그리고 한국적이다). 우리의 나무, 동물 등을 소재로 인간사회에 경종을 울리기도 하고 훈훈한 자연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의 정화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떠나기 좋은 시간이야 페르귄트>는 한국의 평범한 소년까치 아작이 성장하면서 여행을 꿈꾸고 긴긴 여정을 하며 경험하고 깨닫는 이야기이다. 망우리에서 태어난 아작의 소년 시절을 보여주며 소설은 시작한다. 인간에 비해 현저히 빠른 새의 시간을 살아가는 아작은 순식간에 어른 까치가 된다. 아작은 다른 친구들처럼 한국의 서울에 예쁜 암컷 새를 만나 둥지를 틀고, 즐겨 찾아가는 고마리 분교에서 놀며 평범하게 살지 않고 결심을 한다, 한국을 떠나겠다고. 그 결심의 이유도 없고, 그래서 언제 끝날지 어디로 갈지 등의 여정의 목적도 없다. 몽골, 시베리아, 태평양, 일본 등을 돌며 그곳의 까치나 다른 종의 새들을 만나기도 하고, 고난과 맞닥드리기도 한다. 


이러한 아작의 서울 이야기와 여행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자연스럽게 까치에 대해 알 수 있다. 까치는 단순히 우리나라의 대표적 텃새를 넘어 우리나라에서 기원해 전세계로 퍼진 새이다. 아작의 서울 이야기를 통해선 까치의 습성 같은 것을, 여행 이야기를 통해선 까치가 퍼진 곳들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소설이 문장면에서 수려하거나 내용면에서도 별로 인상적이지 않아 문학성은 좀 떨어진다는 것이다. 굉장히 수수하고 투박한데, 그럼에도 <떠나기 좋은 시간이야 페르귄트>가 좋았던 것은 읽으면서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있으면 작가가 참 맑은 사람이구나, 그래서 이런 맑은 글을 쓸수 있구나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읽는 동안 잠시 새의 입장이 되어 페르귄트의 여행에 나를 잠시 실어봤던 책, 그 점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31625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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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일 동안 - 행복을 부르는 37가지 변화
패티 다이 지음, 박유정 옮김 / 이숲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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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일 동안] 나 있는 성찰·치유 에세이, 더럽게 읽을수록 득이다

 
 

이 책의 원제는 '삶은 동사다(Life is a verb)'이다. 그런데 왜 한국판 제목은 <37일 동안>일까? 그 해답은 프롤로그를 보면 알 수 있다. 작가는 계부의 죽음에서 강렬한 동기를 얻어 이 책을 썼다. 계부는 폐암 진단을 받은지 정확히 37일 후에 사망했다. 작가에게 이 경험은 처음 겪는 죽음을 앞둔 사람을 곁에서 지켜본 것이었고 계부를 간호하고 남은 나날들을 함께 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절망과 죽음을 겪으면서 아이러니하게 생의 의지가 더욱 강해졌던 입장에서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것이고, 그래서 슬픈 죽음의 경험이 삶의 각성의 계기가 되줄 수 있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했고 그래서 솔깃해하며 책장을 넘겼다.
 


[pp.12-13] 두려운 심정으로 계부의 죽음을 지켜본 나는 마침내 그분의 죽음이 내게 어떤 교훈을 얻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 후로 나는 매일 아침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37일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은 때로 나를 매우 곤혹스럽게 했다. (중략) 나의 대답은 소중한 하루를 더욱 절실하게 의식하며 사는 것이었다.

 

[pp.27-28] 조금 더 의식하는 삶, 조금 더 충실한 삶을 살려면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 끝에 나는 결론에 다다랐다. 충만하고, 온전하고, 당당하고, 보람 있고,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여섯 가지 요소가 필요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것은 영어의 '개인(Individual)'이라는 단어처럼 모두 알파벳 'I'로 시작했고, 'I' 다음 철자가 모두 'n'이었다.

Intencity(집중): 긍정적인 삶

Inclusion(관용): 관대한 삶

Integrity(성실): 자신이 믿는 바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삶

Intimacy(친밀): 더 사랑하는 삶

Intuition(직관): 자신을 믿는 삶

Intention(의도) 느리게 사는 삶

이렇게 만들어진 <37일 동안>은 총 9개 챕터로 나눠진 자신의 삶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좀더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훈련서이자 삶을 돌아보고 마음의 고단함을 위로하게 하는 에세이다. 9개 챕터는 다시 서문 2개 챕터와 결론의 1개 챕터를 제외하곤 위에 언급한 여섯가지 'I' 각각에 대해 한 챕터씩 할애되어 있고, 이 여섯개 챕터에 딸린 소주제는 총 37개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인생이 37일밖에 안 남았어하는 비장함까진 아니어도(물론 그렇게 읽어도 좋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보며 새삼 생의 의지를 잡아 볼 수 있는 책이다.  

 

<37일 동안>의 작가는 심리학자도 정신과 의사도 아니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설교조로 쓰지도 않고, 대놓고 상담하는 식의 글도 아니다. 다른 저작과 작가 소개에 나와 있는 커리어를 보면 그녀의 직업은 비즈니스 컨설팅 및 교육서비스 기업 CEO인데 그 사실이 놀라울만큼 그런 작가의 프로필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내용의 책이다. 두 딸을 가진 아주 평범한 중년의 가정주부가 가족들과 부비고 이웃을 만나며 살아가는 일상과 그 속에서 발견하는 깨달음을 담은 책이 <37일 동안>이다.

 

그래서 여러모로 인상적이었고, 어떤 가르침도 전문 지식도 담겨 있지 않은데다가 매우 개인적인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마음도 많이 편해지고 울림을 느꼈다. <37일 동안>이 가장 좋았던 이유는 책 속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더럽게 읽을수록 득이다. 책의 여백에 끄적끄적 메모도 해보고 제시된 활동 과제나 실행 과제를 다 풀수록 이 책을 읽은 효과는 높아진다. 작가가 서문에 릴케의 말을 인용하며 이 책은 여러분의 것이라고 말한 것이 무척 기억에 남았다. 


사진과 그림 가득하고 과제 문제까지 있으니 바른 생활 교과서를 다시 보는 느낌도 들었다.(하지만 이 말은 거짓말이다, 알록달록하고 사진도 많이 들어간 교과서는 요즘에 오면서부터지 내가 썼던 교과서를 지금 보면 굉장히 투박하기 짝이 없으리라) 대체 누가 그렸나 싶은 37개 소주제를 상징하는 37개의 <37일 동안> 그림이 있고, 작가가 모범을 보이는 차원으로(?) 찍은 사진들(특히 자신과 가족이 나온)도 꽤 많다. 올해 읽었던 같은 류의 책을 읽으며 쌓였던 불만과 스트레스를 <37일 동안>을 읽으며 다 풀 수 있을만큼 대만족이었다.  


역시 그저 개인의 취향일 뿐일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에세이들이 명령하고 가르쳐도 도움 얻지 못했는데, 제일 친한 친구 다이어리 구경하듯 너무나 편하게 읽었고 작가는 별말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참 많은 도움을 받고 배웠다. 무엇보다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며 느꼈던 소외감이나 불편함이 <37일 동안>은 읽으면서는 없었고 뭔가 주체적으로 독서에 임하고 책내용과 소통할 수 있는 책이라 좋았다. 원래는 한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다가 다음에 만날 때 선물로 주려고 먼저 읽고 책 속에 깜짝 편지를 적어놓거나 하려 했던 건데, 욕심나서 선물 주기로 한 것 취소하고 싶어질만큼 마음에 쏙 든다, 이를 어째.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31496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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