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사자 아저씨 어깨동무문고
이소라 지음 / 넷마블문화재단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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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사자 아저씨] 같은 얼굴 다른 마음, 콤플렉스가 아니라 나만의 매력!


  

 

동네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빨간사자 아저씨는 항상 머리에 손을 올린 채 장사를 한다. 단골손님 아기 토끼는 그런 빨간사자 아저씨가 무척 궁금하다. 편찮으신 걸까, 비를 미리 피하시는 걸까, 혹시 머릿속에 뭔가 숨긴 것은 아닐까 별의별 상상을 해본다. 어김없이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온 어느 날 용기를 내 빨간사자 아저씨께 묻는다. “아저씨는 왜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어요?” 알 듯 말 듯한 뜬구름 잡는 소리만 가득 말하던 아저씨가 무지개 건너 코뿔소 할아버지의 잡화점까지 들리도록 엉엉 운다. “울퉁불퉁 못생긴 머리 모양이 창피해!” 빨간사자 아저씨는 머리 한쪽이 움푹 패여 있던 것이다.

 

 

며칠 전 성형수술 부작용 피해자의 인터뷰 하나를 봤다. 그 인터뷰에서 가장 충격받은 것은 성형수술 부작용 피해자의 상당수가 자살을 택한다는 점이었다. 인터뷰이는 담담하게, 자신이 성형부작용카페에서 만나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 중 자기만 아직까지 살아 있다고 말했다. 외모 콤플렉스로 수술을 택한 이들이기에, 의료피해사실 자체보다 자신의 그 선택이 외모의 결함을 더욱 증가시켰다는 것을 못 참는다. 이소라가 그리고 쓴 그림책 <빨간사자 아저씨>는 흔치 않은 신체 특징으로 인한 외모 콤플렉스로 소재로 한다. 너무나 꽁꽁 숨겨 남들은 전혀 몰랐던 비밀.

 

 

주인공 빨간사자 아저씨는 다른 사자와 달리 머리 한쪽이 찌그러지고 갈기털도 적은 것에 심한 콤플렉스를 느낀다. 그래서 장사하는 내내 손을 바꿔가며 찌그러진 머리 부분을 가린다. 그림책에는 언급이 없지만, 부끄러워서 얼굴이 원래보다 더 빨갈 수도 있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빨간사자 아저씨는 자신감도 자존감도 낮다. 그림책 <빨간사자 아저씨>는 그런 빨간사자 아저씨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신감을 찾고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날이 바뀌어도 모습은 그대로다. 하지만 달라진 마음으로 보는 자신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스토리텔링과 발상도 적당히 기발하고, 주인공이 한참 있다 등장하는 점도 신선하다.

 

 

게임회사 넷마블은 올봄 훈훈한 도전을 하였다. 자사가 세운 넷마블문화재단에서, 장애인부터 사회적 약자까지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로  출판사업을 시작하였다. <빨간사자 아저씨>는 넷마블문화재단의 그림책 시리즈 어깨동무문고의 첫 책이다. 대구대학교 장애학과 손홍일 교수가 감수를 맡아, 내용이 흔한 듯 꽤나 섬세하다. 이소라 작가의 전공인 판화는 어떨까 궁금할만큼 개성 있는 책그림이었다. 어깨동무문고는 독특하게 판매수익금 전액을 다음 그림책 제작에 쓰는 시스템이라 한다. 부디 널리 알려져 계속 다음 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래핑 처리, KC인증 안전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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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도 바로 알기
게르하르트 로핑크 지음, 김혁태 옮김 / 생활성서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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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도 바로 알기] 위대하고 무서운 예수의 일곱 문장

 

 

그리스도인들은 미사(예배) 때마다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신경)을 바친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친히 가르쳐주신 청원 기도문이다. 사도신경은 교회 안에서 형성하고 확립한,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예수그리스도의 삶이 압축되어 있는 신앙고백문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이며, 신구교가 일치하는 지점이다. 그중 더 중요한, 최고의 기도문을 꼽자면 단연 주님의 기도다. 주님께서 친히 가르치신 이 기도를, 우리는 감사와 찬미로 벅찬 마음으로 읊는다. 다양한 곡조와 장르로 노래 부르기도 하고, 주모경과 묵주기도로 삶에 항상 가까이 둔다. 한국 천주교회에선, 한동안 미사나 행사에서 전 신자가 손을 잡고 주님의 기도를 드리는 유행이 불었고, 위생과 심리적 거부감상 자제를 부탁한다는 주교회의의 권고가 있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서 오늘날로의 전환이 너무 성급하거나 사려 깊지 못하다면,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주님의 기도 해석도 결국 자기 생각으로 끝나고 만다. - P.13

 

가톨릭보편적인이란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정신에 입각해 세상 만민을 포용하는 종교이다(물론 역사적으로 과오도 많이 저질러 아직도 사죄하고 있지만). 그래서 대단히 세속화가 잘 되어 있는 종교며, 중앙집권적이고 보수적이지만 끊임없는 쇄신과 회개를 촉구하는 종교다. 교리도, 성경해석도 시대에 맞춰 바뀌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한다. 주님의 기도도 마찬가지다. 원형은 루카 11(6가지 청원)과 마태오 6(7가지 청원)으로 대단히 짧다. 그것이 오랜 세월을 거쳐 현재의 기도문으로 확정되었다. 독일의 성경 주석학자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는 저서 <주님의 기도 바로 알기>에서 오늘날 주님의 기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소개하며, 그 본질이 흐려지고 있는 세태를 비판한다. ‘Neu Ausgelegt(Redesign)’란 표현을 제목에 붙이며 주님의 기도를 돌아보는 책, 11월 광주가톨릭대총장 김혁태 신부의 번역으로 생활성서사에서 출간하였다.

 

  지금까지 소개한 여러 편의 현재적 해석과 변형들 뒤에는 사실 의도적인 전략이 숨어 있다. 곧 모호하고 포괄적으로 들리는 주님의 기도를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이에게 이 기도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상황에서는 실제로 전혀 모호하거나 포괄적인 기도가 아니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의 걱정과 제자들의 필요를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기도였다. 또한 주님의 기도는 각 청원마다 성경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었다. 주님의 기도를 해석하면서 이 기도에 담긴 당시 상황과 구약 성경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 시대 우리 현실에 적용한 해석은 무엇이나 빈말로 끝나고 말 것이다. - pp.19~20

 

여하튼 주님의 기도는 일차적으로 제자들의 기도이다.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제자들이 자신들의 원의와 계획은 잊고, 오직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만을 바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 모든 청원의 마디마디 핵심을 이룬다. 그러니 이런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이에게 이 기도는 자신의 삶을 뒤흔드는 위험한 기도가 된다. - p.38

 

주님의 기도는 청원기도다. 전반부의 세 청원은 하느님에 대한 것을(1)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소서 2)하느님의 나라가 오소서 3)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후반부의 네 청원은 인간에 대한 것을(4)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5)죄를 용서하소서 6)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7)악에서 구하소서) 담고 있다. 마태오 복음엔 루카 복음엔 없는 세번째 청원과 일곱째 청원이 덧붙여져 있다. 로핑크 신부는 마태오 복음에 덧붙여진 이 두 청원이, 완전수 7에 맞춰 늘린, 두번째 청원과 여섯 번째 청원의 보완적 성격에 가깝다고 말한다. 책은 주님의 기도의 일곱 청원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집중하며, 이런 청원이 중요했던 예수 생전부터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를 살펴본다. 주님의 기도만 잘 헤아려도,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기도의 의미와 힘을 알면, 이 기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치신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무서운 선물이었는지 전율하게 된다. 더욱 하느님을 경외하고 하느님께 감사하게 된다.

 

주님의 기도가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한 사람은, 이 기도가 결과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안다. 주님의 기도는 위험한 기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히 이 기도를 바쳐도 된다. 주님의 기도에는 엄청난 신뢰도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 p.180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주님의 기도는 짧고 명료하다. 하느님 앞에서는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신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고 교회가 전해 준 대로 주님의 기도를 날마다 바쳐야 한다. 천천히, 깊이 새기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값진 보물마냥 주님의 기도를 잘 간직해야 한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를 그리스도교적 삶의 핵심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이 정말 어떤 분이신지도 보여 준다. 이 기도야말로 우리를 예수님의 마음 한가운데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 p.187

 

가톨릭은 공동체와 일치를 강조한다. 교회나 사회가 위기를 겪을 때 집단적으로 주요 기도문을 반복하며 이겨내고 믿음을 지켜왔다. 묵주기도가 대표적이다. 앞서도 말했듯, 우리 교인들은 늘 갖가지 방식으로 주님의 기도를 읊는다. 무의식적으로, 기계적으로 임할 때가 비일비재하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어린 아이처럼 순전한 믿음을 강조하셨고, 우리는 모든 것을 초월해 하느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어린 양들이다. 오히려 신학적 지식도 전혀 없고, <주님의 기도 바로 알기>를 읽어본 적도 없지만, 주님의 기도만을 반복하고 집중하는 이의 믿음이 하느님 나라에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다. 로핑크 신부의 요지도 결국 그것이다. 남의 해석도 자신의 욕망도 덧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주님의 기도를 바라보는 것. 그래서 책이 길지도 않다. 눈 있고 귀 있는 자는 바르게 보고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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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네 사랑이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야
김효준 지음 / 생활성서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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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네 사랑이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야]​기쁨이지 않은 사랑은 없습니다

 

 

책 초반부, 사랑은 적당할 수 없다는 표현에 아찔하며 남은 책장을 넘긴다. 저자는 신부, 독신과 정결을 맹세하고 하느님의 사람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런 이가 사랑학개론이란 제목으로 월간지 <생활성서>에 연재했고, 17편의 에세이를 책 한권으로 묶어 출간하였다. 김효준 신부의 <괜찮아, 네 사랑이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야>를 읽으며, 은연중에 교만인지 모르고 당연하게 품어온 생각을 반성하였다. 적어도 사랑에 있어선 평신도의 경험과 사유가 좀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읽는 내내 어머어머, 이 신부님 뭐야 어쩜 이래를 연발하며 속으로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댔다. 가장 가까운 자매님, 어머니께 쪼르륵 쫓아가 책을 인용하며 독후감을 말하였다. 마지막 남자와 연애 38년차에 접어든 어머니의 반응은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신부인데사랑에 대해 이렇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신부라서이렇게 쓸 수 있는 거야.”

 

 

 

지난 주일과 월요일 복음은 마침 사랑에 관해서였다. 주일엔 <괜찮아, 네 사랑이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야>를 읽으며 뒤통수가 얼얼했던 사랑의 계명 말씀과 마주했고, 그 다음 날엔 보답 받을 수 없는 사랑의 행복함을 말하는 루카 14장 말씀과 마주했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한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진다고 하셨다. 그만큼 잘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가 아닐까. < 괜찮아, 네 사랑이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야>의 부제 역시 사랑이 어려운 당신을 위한 따뜻한 응원이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사랑을 많이 받으면 잘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왜 사랑이 어려울까. 어머니의 대답을 들으며,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스쳤다. 너무 사랑을 강조하기에 본질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봉사’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사랑에 지치거나, 하느님의 사랑과 사람의 사랑을 나눠 생각하지는 않은지.

 

   

성당에서 봉사를 하면서 열정이 많은 봉사자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부끄럽고 힘들다. 교회는 사회와 다르다고들 하지만,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어떤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열정’은 무언가를 이끌어내는 수단일수는 있어도 그 자체가 가치 있는 본질이고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기왕 남에게 그런 사람으로 평가된다면, 열정이 아닌 사랑이 넘치는 봉사자로 보이고 싶었다. 엄청 잘 읽히고 많이 공감해서, 내내 감탄하면서 읽었던 <괜찮아, 네 사랑이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야>. 금방 다 읽었지만, 깊고 오랜 묵상으로 이끄는 책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사랑이 어렵고 무겁게 느껴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의 사랑과 세속의 사랑을 나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특히 연애와 대인관계에 대해 한창 고민 많고, 영성 책을 읽고 싶지만 통 시간적 여유가 없는 청소년, 청년 평신도들이 읽기 좋은 책이다. 참고로 상당히 많이 웃기다, 이 책.

 

어제도 계획한 일을 다 해내지 못한 채, 기절하듯 잠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맡은 일정을 다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러고 사나, 무엇 때문에 사나 싶었는데 결국 사랑해서인 것 같다. 가족을, 회사를, 친구를, 일을, 꿈을…‘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사랑해서. 점점 늘어나는 역할과 책임이 버겁지만 걱정할까봐 내색 못한다. 견디다 보면 또 괜찮고, 사랑해서 기꺼이 겪는 일상이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길을 알면, 당신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서,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멈추지 않고 계속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3학기째,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멈추지 말게 이끌어달라는 기도를 가장 즐겨 한다. 많이, 잘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큰 은총이고,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은 큰 축복이다. 행복하고 기쁘게, 많이 사랑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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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크러시 1 - 삶을 개척해나간 여자들 걸크러시 1
페넬로프 바지외 지음, 정혜경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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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크러시1] 자기 삶을 개척하다 역사를 개척한 여자들

 

 

는 제게 영감을 줍니다. ‘는 아름답습니다, 인간을 낳는 는 위대합니다. 여성과 모성에 대한 예찬을 우리는 역사 내내 숱하게 봐왔다. 하지만 위인의 어머니, 아내, 연인, 뮤즈, 조력자가 아닌 그 스스로가 위인으로 인류 역사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여자는 흔치 않다. ‘잊혀진 역사’, ‘알려지지 않은 역사등의 표현으로 포장되며 발굴되고 조명 받은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자의 권리는 유색인종과 짐승의 권리보다 더 늦게 논의되었다. 여학교, 여성단체, 여성정책 등 아직도 여성들을 분리하는 집단과 정책을 만드는 방법이 여권 신장에 유용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걸크러시1>을 애써 심드렁해하며 기대 안 하고 반, 그럼에도 혹시나 일말의 기대를 걸며 호기심 반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번역출간한 문학동네는 삶을 개척해나간 여자들이란 부제를 붙였다. 어떤 여자들과 그들의 삶이 담겨 있을까가 먼저 궁금하였다. 19세기 프랑스의 수염 난 술집 사장님으로 시작한다(클레망틴 들레). , 배우, 운동선수, 작가 등 시대와 국적을 넘나들며 30명의 여자를 각 15명씩 책 두 권으로 소개하였다. 인물마다 분량도 3~8쪽까지 제각각이다. 책을 읽으며 내면의 이상한 마음과 마주쳤다. ‘고작 이 정도로? 이런 면이 있어도?’하며 작가의 엄선에 놀라고 염려하며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걸크러시girl crush’, 외래한 인터넷 신조어로 여성을 (성적이지 않은 면으로) 끄는 여성 정도의 의미이다. 원제를 보니, 번역 제목이나 부제를 두고 편집자와 역자가 고심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제는 ‘Les Culottées’ 여성용 속바지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페넬로프 바지외는 이 제목에 ‘Des Femmes Qui ne Font Que ce Qu'elles Veulent그들이 원하는 대로만 행동하는 여자들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인간으로서의 오롯한 해방의 의미에서 팬티 벗고 소리 질러정도의 표현이었을까. ‘Sans-culotte상 퀼로트가 잠시 떠오르기도 하였다. ‘퀼로트(귀족들의 하의)를 입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프랑스 혁명의 추진력이 된 사회 계층이다.

 

<걸크러시1>을 읽으면서, 이 책에 독서 욕구를 느낀 이유를 상기해보았다. 역시 여성으로 30여년을 산 인간으로서, 자기 의지로 자기다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개척한 것이 곧 역사를 개척해, 오늘이 있게 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 하니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동양의 분단국가 국적의 여성으로 살면서, 여권 신장과 양성 평등을 논하는 것은 언제나 제한적이고 조심스럽다. 그저 훌륭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며, 단속하며 살고 있다. 성 차이를 인정하되, 비슷한 조건의 남성보다 좀 더 능력적으로도 인성적으로도 낫자고, 그리고 그보다 더 침묵하며 징징대지 말자고.

 

그래서 수도 없는 사람을 죽이고 부도덕한 면이 있어도, 다른 수록 위인들과 비교해 시시한 면이 있어도 똑같이 대단한 여자들이라고 소개하고 추어올리는 작가를 보며, 꽤나 해방감을 느꼈다. ‘이 정도의 남자 위인들을 생각해봐, 충분히 훌륭한 여성들인데 뭘 숨겨, 넌 뭘 기대한 거야.’하고 작가가 말을 건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프랑스 웹툰은 어떤 건지 엿볼 수 있어서 좋았고, 동 시대 또래의 작품이라 더 열심히 읽었다. 마리포사 자매나 토베 얀손처럼 존재는 잘 알지만 인생은 전혀 몰랐던 경우 읽으며 놀라고 흥미로웠다. 아그노디스 편을 읽으며 왜 한번도 고대 그리스의 여자 의사라는 존재를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반성하였다.

 

서양 백인 중심적인 글로벌 스탠다드(?) 세계관에서 접하기 힘든 소수민족 왕과 전사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걸크러시1>에서 가장 멋지다고 눈길이 많이 갔던 인물은 무측천이었다. 왕족도 아니었고, 오로지 운과 실력으로만 왕조시대 황제 자리까지 올라갔고 오늘날까지 평가가 갈리는 과오 분명한 여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남자 왕도 많지 않았던가, 흔한 왕의 면모지 않나 싶다. 고른 지역과 직업 선택도 그렇고 남장여자, 장애인여자, 레즈비언, 트렌스젠더까지 고려하는 작가의 넓고 섬세한 대상 선정이 참 멋지다남은 절반의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서둘러 2권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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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 디즈니 애니메이션 <곰돌이 푸> 원작 에프 클래식
앨런 알렉산더 밀른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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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어른이 되어 보면 더욱 뭉클한 고전동화

 

 

 

1992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의 많은 어린이들은 KBS2<디즈니 만화동산>을 시청하는 것으로 일요일을 시작하였다. 나와 동생 역시 열혈 시청자였는데, 한 캐릭터에 대해서 취향이 엇갈렸다. ‘곰돌이 푸’, 아기 때부터 곰돌이 푸를 보며 자란 동생은 내일 모레 서른이 다 되는 지금도 너덜너덜해진 푸 인형을 버리지 못할 정도로 좋아한다. 방영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나는 푸가 멍청하고, 그저 아저씨 표준 얼굴처럼 보였다. 애니메이션에도 크게 재미를 못 느꼈다.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그 캐릭터들에 호감이 가고 원작이 궁금해졌다. 원화가 비싸게 경매되기로 유명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에 에프에서 나온 <곰돌이 푸>를 읽고 당황하였다. ‘그림이 없어!’

 

 

그렇다. 곰돌이 푸 초판 삽화가의 이름을 알고 있었음에도, 곰돌이 푸의 모델이 된 위니 곰을 다룬 그림책을 읽었음에도 별 생각이 없었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달라도 당연히 한 세트처럼 같이 있을 줄 알았다. 덕분에 궁금해져 책을 읽고, ‘곰돌이 푸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게 되었다. 지난 달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Christopher Robin, 2018)>가 개봉하였다. 영화 개봉에 맞춰 곰돌이 푸를 인용해 재편집한 책 등 관련 책이 쏟아져 나왔다. A.A.밀른이 쓴 원작 완역본이 이미 여럿 나와 있는데도 에프에서 새로운 번역본을 내놓은 것도 이 배경 때문인 듯 싶다. 에프는 푸른책들의 문학 임프린트다.

 

 

초판 삽화가인 E.H.세퍼드는 A.A.밀른의 친구이다. ‘곰돌이 푸A.A.밀른이 아들 크리스토퍼 로빈 밀른에게 자기 전 들려줄 이야기로 지은 이야기다. 그래서 하나의 완결된 책이 아니라 에피소드 모음집으로 되어 있다. <곰돌이 푸>곰돌이 푸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다. 1922년에 출간된 첫 곰돌이 푸<Winnie-the-pooh> 번역을 했다. 한 책이 더 있는데 합본 번역본을 다른 출판사에서, E.H.세퍼드의 삽화도 넣어 출간하였다. 이번 에프의 <곰돌이 푸> 번역본은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Winnie-the-pooh> 번역본을 냈던 진하림이 다시 번역해 출간하였다. 에프는 이 책을 키덜트를 위한 클래식 시리즈의 일환으로 펴냈다. 그림 없이 이야기()에만 오롯이 집중하고 싶은 독자, 휴대하며 읽기 편한 가볍고 얇은 번역본을 원하는 독자에게 추천한다.

 

 

‘Winnie-the-pooh’는 푸의 풀네임. 크리스토퍼 로빈 밀른이 좋아하던 동물원 곰 위니와 고니 를 합쳐 만든 캐릭터고 이름이다. 위니처럼 애착하는 곰 인형이 있었고 피글렛, 티거, 이요르, 토끼, 캥거, 루 등 <곰돌이 푸>의 다른 캐릭터들도 크리스토퍼 로빈 밀른 방에 있던 봉제인형들을 모델로 한다. 아버지가, 자신의 인형들을 주인공들을 주인공으로, 자기 가족이 즐겨가는 숲에서 그들이 살고 있다며 들려준 이야기,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 내가 크리스토퍼 로빈 밀른이면 너무 감동하고 흥미진진해하며 아버지가 이야기 들려주는 밤만 기다렸을 것 같다. 100에이커 되는 그 숲엔 로빈과 동물 친구들 말고도 헤팔룸푸(코끼리)와 우즐(족제비)라는 괴물도 존재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들이 숲으로 모였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버지 A.A.밀른의 상상력과 입담(글솜씨)로 아들 로빈은 자기 전 밤마다 인형들과 숲으로 모험을 떠난다. 에프 번역본은 편집이 삽화 하나 없고 글로 빽빽한데, 생각보다 책장도 잘 넘어가고 10개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읽으면서 뭉클했다. 삽화가 전혀 없어도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읽으면서, 꼭 보고 있는 것처럼 장면이 잘 그려진다. 단순히 감동적인 줄거리고, 멋진 표현이라기보다는 독자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담뿍 담겨 있달까. 모든 이야기와 모든 대사가 책 속의 인물들 자체보다, 지금 그 책을 읽고 있는 독자를 향해 있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내가 로빈이 아니어도 로빈 혹은 친구로 이 책 안에 동참하고 있는 기분이다.

 

 

많이 언급되는 명대사가 원작에도 있나 찾아보려 읽기 시작하였다. 막상 책을 읽으며 눈과 마음이 더 머문 것은 사소한 장면들이었다. 한결같이 멍청하기 이를 때 없는데 그걸 본인이 좀 알고, ‘쓸모가 없는 곰이 되는 걸 걱정하는 위니 더 푸. 그런 푸에게 넘치는 애정을 담뿍 담아 바보 곰이라 부르는 로빈. 북극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발견하고 싶어 무작정 팜험을 떠나는 친구들. 각자 나름대로 모자라지만, 이런 저런 사건과 모험을 함께 겪으며 서로 채워 주는 친구들. 똑똑하고 뛰어나지 못해 내뱉는 말들이지만, 참 철학적이고 공감가는 대사, 본받고 싶은 삶의 자세. 별 기대 없이 읽다가 뭔지 모를 그리움과 따뜻함이 마음에 가득해졌다. 이런 독후감은 어른 독자들이 훨씬 더 잘 느낄 듯 싶다. 초판 삽화도, 나머지 푸 책도 얼른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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