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1 - 오래두고 가까이 사귄 벗
곽경택 지음 / 다리미디어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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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영화 '친구'를 보았는데, 초기 시사회 때 보다 삭제된 부분이 너무 많아서 내용 연결이 조금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친구>(다리미디어,2001) 라는 책을 사서 영화에서 잘려나간 부분과 비교 분석하면서 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책을 한 권 읽었다.

이 글을 쓰면서 과거 나의 어린시적 추억이 많이 떠올랐다. 예를 들면, 회수권 10장을 11장으로 교묘히(?) 가위로 오리는 행위,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에 답변을 못할 경우 책상위에 올라가 꿇어앉는 행위, 과거 'GOLDSTAR'라는 상표의 카세트로 음악을 듣던 시절과 관련해서 말이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57쪽에 나오는 운동회 장면이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의 한가지 옥의 티(?)라고 해야 할까? 이 책의 저자인 곽경택 감독은 운동회 종목 중 '박 터뜨리기'와 관련해 '백군의 박 주머니가 투툭, 하는 소리와 함께 갈리진다'라고 묘사하면서 '이긴 백군 아이들의 함성이 학교를 가득 메운다.' 라는 표현을 썼는데, 원래 '박 터뜨리기' 종목은 상대편의 박을 먼저 터뜨리는 게임이기 때문에 곽경택 감독의 의와 같은 글은 약간의 실수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백군이 이겼다면, 청군의 박인 청색 박을 먼저 갈라지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조금전에 말한 이것이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 책을 통해서 과거 운동회 때의 추억도 회상하게 되고, 그 외 이 글을 쓰는 필자의 유년시절을 회상할 기회가 많았는데, <친구>라는 책을 통해 삭막하고 일상에 지친 현실에서 과거의 추억에 빠지는 계기가 마련 되었던 시간이 참으로 즐거웠다. 지금 나의 어린시절 친구들은 무었을 하면서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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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부일처제가 싫다
임혜숙 지음 / 서울문화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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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MBC에서 현업 PD로 일하고 있는 임혜숙씨의 <<나는 일부일처제가 싫다>>라는 책을 최근에 읽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상식(?)적인 생각을 벗어나는 조금은 센세이션한 사고를 저자는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톡톡튀는 사고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역사상 아주 훌륭한 위인이라고 할 수 있는(예를 들면,공자, 아리스토텔레스 등...) 사람들의 여자에 대한 평가를 인용한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여자의 머리는 닭의 머리 만도 못하다는 둥, 여자는 엉덩이가 유별나게 크서 집안에서 살림을 하기에 적합하다는 등과 같은 말과 관련해서 말이다. 우리 인류의 철학과 사상적 측면에 있어 엄청난 기여를 한 이러한 역사적으로 훌륭한 위인들이 여성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아주 형편없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는 필자는 현재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3학년으로서 학교에서 '대중매체와 여성'이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 얼마전 '방송매체에 나타난 여성에 대한 성의 왜곡 현상'과 관련해 발표할 일이 있었는데, 임혜숙씨의 저서인 <나는 일부일처제가 싫다>가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위에서 역사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훌륭한 위인들의 여성에 대해 비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폄하하는 발언을 소개했을 때 강의를 듣는 많은 학생들이 적지 않게 놀라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는데, 언제쯤 우리나라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한 사회적 여건속에서 기회균등의 원칙에 입각해 생활을 할 수가 있을까?
아주 최소한의 상식적인 생각만 가진다면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차별적 의식을 이제는 훌훌 던져버리고 진정으로 각 개개인의 능력과 실질에 의해 평가받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녀가 평등한 사회가 되는 그 날이 하루빨리 실현되길 기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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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일보인가
조선일보반대 시민연대 엮음 / 인물과사상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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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나는 현재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하고 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조선일보> 라고 하는 신문을 매일마다 읽고 있다. 과거에는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지 정확히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에게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지를 정확히 일깨워준 분이 바로 이 책의 공동저자 중 한 사람인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준만교수이다.

<왜? 조선일보인가>(인물과사상사,2001) 이 책에서 강준만교수는 조선일보 반대운동을 해야만 하는 10가지 이유를 하나하나 예를 들어서 열거하고 있다. 아마 강준만교수의 [조선일보와 지식인의 정체성]이라는 글을 읽으면 우리사회의 모든 국민이 조선일보 극복 운동에 참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은 일반인들이 <조선일보>라고 하는 신문의 실체를 아주 쉽게 접합수 있는 훌륭한 교양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조선일보사 앞에서는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시민과 지식인들의 1인시위가 매일마다 벌어지고 있다. 한일장신대 김동민교수, 동국대학교 강정구교수, 노혜경 시인, 문규현 신부 그 외에도 우리가 이름만 들어면 익히 알 만한 분들이 매일마다 자신의 귀한 시간을 내어서 오후 12시부터 1시까지 1인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조선일보 극복 운동을 지켜보면서 이 책을 읽다보니 그 의미가 조금은 남 달랐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사회에서 왜? <조선일보> 라는 신문을 문제 삼지 않으면 안 되는지, 과거 <조선일보>가 보여준 친일 행동, 군사정권과의 유착, 노동자 탄압, 악의적인 사실 왜곡보도를 일삼고도 후안무치한 그들의 작태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언론의 정도와 기본을 벗어난 그들의 곡필을 왜 지금의 현실에서 문제삼고 단죄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하는 생각의 편린들 말이다.

예전에 윌버 슈람이라는 학자는 언론학을 '학문의 십자로'라는 표현으로 정의를 내린 바 있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신문이 바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내지 의사소통 구조의 십자로 중 가장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언론의 사회적 공기로서의 기능은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언제까지 <조선일보>의 장난을 너그럽게 보아줄 것인가? 왜 <조선일보> 반대 운동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왜 우리사회의 일반 시민들과 지식인들은 조선일보사라고 하는 신문사 앞에서 외로이 침묵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이 이 책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 시민들이 모두 이 책을 한 권씩 사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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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17 - 대한민국 죽이기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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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이 글을 쓰는 나도 전공이 신문방송학인지라 평소 강준만교수가 쓴 거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정도로 그의 열렬한 팬의 한 사람이다. 단행본 <인물과 사상> 또한 17권을 다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강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물론 각 개개인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그에 대한 평가를 꼽자면, 자신의 언행과 관련해 공적 책임을 지지 않는 한국의 지식 사회에 실명비판 문화를 선도한 장본인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책에서도 조선일보사의 대표적인 논객들이라고 할 수 있는 조갑제, 김대중, 류근일에 대한 실명비판을 맹렬하게 퍼부었는데 이에 대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게 사실이다. 얼마전 발행된 월간 <인물과 사상> 2001년 4월호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한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기숙교수의 경우 또한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인물과 사상 17-김대중 죽이기>>(개마고원,2001) 에서도 강준만교수는 <조선일보> 논객들에 대한 실명비판을 했지만, 과거 <조선일보>가 보여준 공적책임의 부제를 생각한다면 실명비판 문화가 우리사회 곳곳에 그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조선일보> 사주가 자처하는 '밤의 대통령' 이라는 칭호 그리고 그들이 대선 때마다 매번 보여주고 있는 권력창출 행위와 관련해 그들은 지금까지 아무런 책임을 진 게 없다. 김영삼 정권의 실패에 대해서도 그들은 권력창출에 직접적으로 개입했으면서도 아무런 반성과 사과도 없이 아직까지도 후안무치한 행태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나는 강준만교수의 실명비판 행위를 '사회적 공적 책임을 묻는 운동'으로 보고 싶다. 공적 책임이 없는 사회에서 그 사회의 진보가 이루어 질 수 없다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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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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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 있어서 '성공'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 인간은 타인과 항상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반응과 가치기준을 통해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설정하는 타인의존적 삶을 살아간다. 흔히 말하는 '성공'이라는 단어와 관련해서도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는 그 어떤 기준에 의해 자신의 삶이 '성공'내지 '실패'를 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조선희씨의 삶의 모습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회적인 영역에서의 성공적인 삶과 관련해 그 개념적 정의를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조선희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남자도 가장 게으른 여자보다 더 게으르다는게 내 지론이다. 적어도 집안에서는.'(143쪽) 이라고 밝혔듯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여성이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남성에 비해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여성의 경우 바깥일은 바깥일대로 다 하면서 집안일도 같이 병행해야 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바깥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남자에게는 집안이 휴식처가 될 수 있지만 사회 생활을 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집은 또 하나의 노동공간이라고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선희씨의 이번 책과 관련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회적 의미에서의 '성공'이라는 단어와 관련해 그 의미를 새롭게 깨달은 사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자아의 성취와 사회적 의미로서의 '성공'이라는 단어와 관련해 그 개념적 정의를 새롭게 안 해볼 수가 없었는데, 자신이 20 여년간 기자생활을 하면서 이룬 업적 및 명성과 관련하여 일말의 미련도 갖지 않은 체, 자신이 그동안 가슴속에 간직했던 꿈을 찾아 미래의 전망도 불투명한 새로운 삶을 찾아나서는 게 과연 말처럼 쉬운일일까? 요즘같이 국가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새로운 일을, 그것도 소설가라고 하는 경제적-물질적으로 그리 넉넉한 삶이라고도 할 수 없는(일부 베스트셀러 작가 몇 몇을 제외한)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게 과연 나 같으면 그러한 힘든 길을 선뜻 선택할 수 있었을까?

요즘 같은 물질 만능사회에서는 조선희씨의 선택이 어쩌면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비칠 소지가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사회에서 언론사 계열의 잡지 편집장이라고 하는 자리는 굳이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그 가치와 명예를 인정받으면서 사회적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이지 않은가 말이다. 더군다나 조선희씨는 남들 같으면 편안한 현실에 기대어 '안주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을 40대 중년의 나이이지 않은가. 하지만 과거 자신이 꿈꾸었던 자아실현과 이상을 찾아가는데 있어서 나이가 무슨 상관이고 주위의 시선이 무슨 상관이 있으랴. 내가 조금전에 했던 우려는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점차 매몰되어 가고 있는나의 잘못된 시각을 보여주는 반증에 다름아닐 것이다.

지난 80년대 이후 가정과 직장을 함께 가진 여성과 관련해 잘못되고 크게 왜곡된 '슈퍼우먼 신드롬'이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조선희씨의 그러한 성공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자칫 이러한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확대재생산 내지 강화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일종의 노파심이 들기도 했지만, 조선희씨도 자신의 책에서, '슈퍼우먼은 없다'(128쪽) 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안도의 느낌을 받았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희씨가 소설가로서 써나갈 작품과 관련해 그것이 앞으로 어떤 작품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조선희씨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당부하자면, 진정한 페미니스트로서, 우리사회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공한 여성에 대한 동일한 여성집단의 소외라는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우리사회에서 왜곡되고 잘못 이해되고 있는 여성의 자아를 일깨우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해 달라고 부탁한다면 그건 나의 지나친 요구일까? 조선희씨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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