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Loving Vincent (러빙 빈센트)(한글무자막)(Blu-ray)
Cinedigm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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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 끝에 이 영화를 봤다.

영화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흐가 어쩌면 타살됐을지도 모른다는 가정하게 그의 삶을 다시금 반추하고 추적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단순히 생각해서 고흐를 연상시키는 정교하게 그린 애니메이션? 또는 그래픽 노블 뭐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실사 영화에 편집 과정에서 고흐의 화풍을 덧입힌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여기에 여러 명의 화가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것은 전에 보았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13점을 가지고 만든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을 연상시키기도한데 그보다는 좀 더 진화한 방식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어쨌든 실사 영화에 고흐 화풍을 덧입혔으니 그 작업이 만만치 않았겠다 싶다. 영화속 장면과 고흐의 그림을 조화하도록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인상적이기도 하다. 이렇듯 이 영화에 드린 공력이 어느 정돈지 알 것도 같은데 나 개인적으론 약간은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고흐풍의 순수 그래픽 노블 같은 질감을 기대했는데 실사 영화에 그림을 덧입히니 그림도 아닌 것이 영화도 아닌 것이 뭔가 어정쩡한 느낌이다. 나만 이런가?

 

고흐를 가리켜 고독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많이 추켜세우던데, 타살됐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에서 시작된 영화는 결국 고흐의 고독만을 더 확연히 부각시키고 끝나버린다. 요즘 추세는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며 고독을 찬양도 한다만, 뭐든 지나치면 독이라고 그것도 적당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독을 즐겼던 사람은 또 있는데 그건 철학자 니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행복한 삶을 산 것도 아니다. 우린 고흐나 니체가 나름 행복한 삶을 살을 것이라며 섣불리 그들의 삶을 평가하는 걸 조심하고 있는데 그것은 후대 사람의 경의를 표하기 위한 거라고 생각하고, 실상 고독은 그렇게 즐거운 것은 아니다. 물론 고독이 해롭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홀로 있음으로 해서 영혼의 성숙을 이루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이 주는 만족도 한계가 있는 법이고. 

 

영화 말미에 돈 맥클레인의 공전의 히트곡 '빈센트'가 나오면서 고흐의 일종의 프로필 같은 것이 그의 그림과 함께 흐르는데 상당히 인상적이기도 하거나와 놀라운 것은 그가 죽기 전 8년 동안 800점의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당 2점이 채 안되는 건데 실로 엄청난 작업량이다. 그걸 보면서 내가 또 알아야 할 것은 난 너무 게으르다는 것. 고흐의 고독 후에 오는 게 이거였다니. 이 영화가 잔인한 걸?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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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3-11 1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흐에 관심 있어서 고흐에 대한 책을 읽은 적 있는데 다작에 놀랐었지요.
뛰어난 예술가들은 재능은 기본이겠지만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노력파라는 거죠.
하루키도 그렇고. 어쩌면 노력이 재능보다 우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요즘 듭니다.
노력이 재능을 키우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stella.K 2018-03-11 18:48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런데 전 너무 게으른 것 같아요.
재능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하는데...ㅠ
전 아무래도 짧고 굵게 보다 가늘고 길게 살 것 같아요.ㅠㅋ
 

 

 

영화정보: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68172

 

영화를 만든 신연식 감독은 대중에겐 잘 안 알려진 감독이다. 그렇다고 독립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설명에 의하면 독립영화와도 인연을 맺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영화로 밥 벌어먹기 정말 어려울텐데...)

 

그래서일까? 이 영화가 완성도가 높다던가 예술적으로 뛰어난 것은 아니다. 요즘 영화의 결을 생각하면 오히려 조악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얼핏 보면 K 본부에서하는 <인간극장>을 연상케도 한다. 그만큼 열악한 환경속에서 최소한의 예산을 가지고 만들었을 거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나름 볼만하다. 그러고 보면 영화는 영화의 정신이 먼저지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케 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그런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꽤 괜찮았다. 그렇게 만들었다면 배우들도 아마추어를 썼을 거란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모르긴 해도 우리가 모르는 전문 배우들을 기용한 것 같다. 몇몇은 TV나 여타의 영화에서 본 얼굴도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기독교 영화다. 기독교 영화라면 주로 순교자들이나 다루지 않을까란 편견 또한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 역시 벗어났다. 오히려 요즘 벌어지고 있는 교단내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교회와 교회끼리 서로의 담임 목사를 헐뜯고 중상모략하며 거기에 한술 더 떠 목사의 성추행까지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계의 이런 문제는 한 두해 있어온 것도 아니고, 작년이 종교개혁이 500주년이라는데 그것이 있기 전 아니 어쩌면 역사적으로 교회라는 건물과 단체가 생긴이래 있어왔던 문제는 아닐까 싶다.  비기독교인이라면 같이 욕이라도 해 주면 그만일텐데 이걸 또 영화로까지 보자니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편한 것마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 영화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만큼 민낯을 보여줌으로 교회나 교인 각자가 각성과 회개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도가 읽히기도 한다. 특히 담임 목사실에서 교회 자매를 성추행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건 한때는 유명 교회 담임 목사이면서 저명한 저술가이기도한 모 목사를 떠올릴만 했다.또한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는 교회에서 파면 당한 후 교회를 개척해 여전히 목사 노릇을 한다고 들었다. 그가 그럴 수 있는 것엔 교단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독립적으로 목회를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기독교 윤리의 실종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아닐까?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목회자를 배출하는 신학교에서 기독교 윤리 과목이 사라졌거나 있어도 선택 과목으로 되있다고 들었다. 일반 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윤리나 도덕을 아예 가르치지 않거나 축소해서 가르친다고 들었다. 내가 이 말을 들었던 게 아주 오래 전 일이다. 그때 나의 모교의 교수님은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교회의 문제를 생각하면 심히 걱정된다며 혀를 끌끌 차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오늘 날 기독교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고, 사회는 미투 캠패인을 통해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 당하고 있는지가 속속들이 들어나고 있다.   

 

왜 학교에선 윤리가 푸대접을 받는지 모르겠다. 요즘 우리는 절대 가치가 사라지고 상대 가치가 팽배해신 세상에 살고 있다. 거기에 무슨 윤리와 도덕을 따지겠는가? 그런 것들은 사회가 공존함에 있어 일종의 룰과 같은 것이기도 한데 그것을 금욕적 이미지에 덧씌워 박물관에나 보내버렸음직하다.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면 법체계도 온전히 설 수가 없는 건 자명하다. 모든 걸 다 상대적으로만 판단하고 평가하는데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거기엔 온갖 편법들이 난무한다.

 

새삼 기독교 윤리가 약화된 것은 목회자의 권력내지는 권리를 교회내에서 공고히 하려고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사회 역시 남자들의 세상에서 남자들이 누려야할 권리와 쾌락을 공고히 하기 위함 아닐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 때문에 상처 받고 고통당할 사람이 있다는 것쯤 윤리적으로라도 깨달았으면 좋겠다.   

 

영화는 타교회로부터 공격 받고 있는 부순 교회 목사이며 친형이나 다를 바없는 요섭을 도와주려다 그의 성추행 사실을 알고 오히려 교단에서 파면시키는데 앞장서게 되는 기섭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어떠한 결말도 보여주지 않고 끝이나는데, 사실 그러기엔 이야기가 처음엔 의욕적이긴하나 좀 구태의연한 것도 사실이다. 어찌보면 기섭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과연 거기서 괴로워 하는 것이 맞는지 묻고 싶기도 하다.

 

물론 형처럼 믿고 따른 요섭이 그렇게 됐으니 충격도 받았을 것이고, 어쨌건 주의 종을 자신이 무슨 권리로 정죄를 하나 죄책감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한 영혼이 그것도 목사가 그런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했다는 것에 크리스찬으로서 마음 아파하는 건 옳은 태도이긴 할 것이다. 그런 것을 우리 모두의 죄악이고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주님 앞에서 가질 수 있는 태도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또 크리스찬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흔한 형태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은 크리스찬은 이것 밖에는 과연 할 것이 없나? 그런 생각도 없지 않고 그런 점에서 영화는 별로 새롭지가 않은데 그것이 오늘 날 크리스찬의 현주소라고 감독은 보발하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감독 역시도 이 정도에서 동의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요즘의 미투 캠페인을 생각할 때 기섭이 목회자의 성적 타락을 보고 파면에 앞장섰다면 모르긴 해도 여신도들과 여성운동 단체에서는 환영 받을 일은 아닐까? 그런 건 차치하고라도 기섭이 자기 감정에만 함몰되어 담임 목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친구이기도한)지민의 상처를 돌아보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건 목회후보자로서 그리 바람직한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이럴 때 기섭은 단순히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고민해야 했다. 우린 성경에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을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알고 있다. 율법은 돌로 쳐 죽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너희중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치라고 하시면서 모인 사람을 흩어버리셨다. 

 

물론 여기서 왜 간음의 주체가 여인이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여자가 남자를 간음하고 성추행해도 될만큼 대범한 시대는 아니라고 보는데 그녀를 상대했던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다. 어쨌든 예수님의 행동은 옳았다. 적어도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감독일 확률이 높긴 하지만)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 썼어야 했다. 아니 설혹 염두했다고 해도 잘못 해석했을지도 모른다. 누구든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말을 기섭은 요섭에게 적용시키는 우를 범한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지민의 상처와 괴로움 잊은 것이다. 즉 감독이 이야기의 균형을 맞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아직도 영화 시나리오에 있어서 남성중심의 사고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혁이라는 것. 혁명이라는 것이 어려운가 보다. 난 이 영화를 보고 곧 <루터>란 영화를 봤는데, 루터는 아는대로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우린 단순히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니 루터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렀는가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교회의 타락상을 봤던 것이 아니라 교회의 타락 때문에 고통 당하는 교인들을 본 것이다. 만일 그가 교회의 타락만 봤다면 그는 결코 그런 혁명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타락했다면 너는 깨끗하냐고 온갖 회유와 핍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날은 교회뿐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정치계는 적폐청산을 시도하려는데  진보와 보수가 너희는 청산해야 할 적폐가 없느냐며 서로 흡집내기만 한다면 적폐청산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누구를 위한 적폐청산이냐는 것인데 과거의 정권 때문에 억눌렸고 상처와 고통을 당한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어느 쪽에서 적폐청산을 부르짖건 그건 밥그릇 싸움 밖엔 되지 않을 것이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루터의 종교 개혁을 보면 상당히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었음을 알 수가 있다. 국정 개혁 세력이 적어도 그런 진취함과 미래지향적 태도를 갖지 않는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루터는 한마디로 생각은 깊게 하고 행동은 과감하게 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만이 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제목을 성경구절로 했는지 모르겠다. 로마서 8:37절은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고 나와 있다. 사실 그 말씀과 영화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지 잘 공감하기 어렵다.  이 영화는 끝이 애매모호한 소위 말하는 열린 결말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 괴로움을 안고 파면당한 요섭 목사를 대신해 주일 날 설교하는 기섭을 보면서 한국의 기독교는 그렇게 우유부단하게 생각만 많이하고 내면이나 수양하는 그런 종교가 아닌데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싶다. 오히려 개혁의 사명이 기섭과 교인 모두에게 있음을 힘차게 외쳐야 하지 않았을까? 하긴 외치는 것만이 개혁은 아니다. 조용한 개혁도 개혁은 개혁일 것이다. 그것을 기대해 봐도 되는 것일까? 

 

지금 교회 밖에선 한창 미투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을 교회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여자들은 그동안 성추행을 당하고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역사가 얼마나 될 것인지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다. 그것을 교회가 침묵한다면 여자들은 어디가서 위로를 받고 상처를 치유할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영화 말미에 보면 지민이 요섭 목사의 성추행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가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민은 사실을 말해야 하는 순간에도 사람들로부터 사실 증명을 위해 종용만 받았지 누구에게도 위로 받지 못했다. 옛날 초기 한국 기독교는  과부와 고아, 나병 환자를 위해 얼마나 많이 봉사하고 헌신했는가? 그런 것을 생각하면 오늘 날 교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초기 기독교 전파를 위해 희생했던 선교사와 손양원 목사 같은 순교자들은 기함할 일이다. 

 

이 영화는 작년에 개봉한 영화다. 미국에서의 미투 운동은 작년부터고 우리나라는 올해들어서 본격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감독이 이 미투 운동을 생각했다면 영화의 내용은 조금 더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감독이 그것을 인식했지만 뭔가 기독교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성경을 비롯해 저명한 기독교 학자들은 간음에 대해 성직자의 성적 타락에 대해 오래 전부터 얘기해 왔었다. 그런 것을 참작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단순히 문제제기만 해 놓으니 좀 아쉽긴 하다. 그래도 초두에 말했던 것처럼 영화의 의도는 뭔가의 각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가 느껴졌다. 다음엔 좀 더 혁명적인 작품이 나와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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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8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2-18 19:07   좋아요 1 | URL
다 그런 건 아니겠죠.
어느 특정 교회 때문에 선의의 피해를 보는 일도 많겠죠.
사실 제목을 저렇게 써 봤지만
모든 사람이 개혁한다고 하면 교회든 나라든 남아 나겠습니까?ㅎ
개혁이든 혁명이든 그건 특정한 사람이 하는 것이고
각성하고 회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냥 영화가 그다지 새롭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에 저리 써 본 거죠.
그래도 시도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교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겠습니까?
감독이 배포 하나는 좋은 것 같더군요.ㅋ

페크(pek0501) 2018-02-21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투 운동이 왜 진작 시작되지 못했을까 아쉽기도 하지만
그걸로 인해 이제라도 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에 희망을 가집니다.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의 입장에서 무척 신경이 쓰이는 사안입니다.

stella.K 2018-02-21 19:0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문화 예술계 보면서 예전에 그 분야는
아예 그러려니 했던 인식이 있었잖아요.
그게 얼마나 잘못된 인식인지
그쪽 종사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 한 10년 전인가? 어느 여자 연예인 성 상납 문제 때문에
자살했잖아요. 그녀가 생각나더군요.
조금만 더 버텨서 이런 미투 운동에 참여했더라면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은 미투 운동은 그때 이미 일어났어야 했던 건데 말입니다.ㅠ
 
루터
에릭 틸 감독, 알프레드 몰리나 외 출연 / 카누(KANU)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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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영화. 나름 진중하고 유려하다.
감독이 주로 종교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가 보다.
<본 회퍼>도 찍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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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2-1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18-02-15 14:12   좋아요 1 | URL
어멋, 설 연휴 첫날 저에게 새해 인사해 준 분은
서니님이 처음이어요.고맙습니다!!

오늘도 춥지 않아 넘 좋네요.
모쪼록 즐거운 연휴되시고
서니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특별시민 (2disc)
박인제 감독, 최민식 외 출연 / 에프엔씨애드컬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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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 때문에 본 영화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선거를 소재로한 영화가 등장했구나

나름 반가웠다.

 

이런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적이 있던가?

작가가 우리나라 선거판을 두루 잘 살피고 쓴 것 같아 만족스럽긴 하다.

하지만 곽도원을 굳이 죽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엔 의문이 남는다.

 

정말 우리나라 정치판이 이 정도인가 싶기도 하지만

전혀 없는 얘기를 한 것 같지는 않고

아무튼 시도가 좋은 것 같아 괜찮은 점수를 주고 싶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과감성 보단 안정성을 선택했단 느낌은 든다.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최민식이 쌈을 싸 자기 운전 기사에게도 주고

자신도 우걱대고 먹던데 참 인상적이었다.

그가 나왔던 영화 <올드 보이>도 잠시 생각도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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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2-08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객들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하는 영화 속 장면에는 반드시 음식이 들어가 있어요. <올드보이>의 낙지, 군만두, <황해>의 김, <웰컴 투 동막골>의 팝콘. 아마도 <특별시민> 엔딩 장면도 그걸 노리고 만들었을 것 같아요. ^^

stella.K 2018-02-08 20:02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럴듯한 해석이야.
그런데 그 한 장면을 위해 선거라는
통큰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아.
아마도 엔딩을 뭘로 할까 하다가 <올드 보이>
오마주로 가지 않았을까 싶어.
같은 최민식이잖아.ㅋ

[그장소] 2018-02-09 0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올드보이가 또 있었네요.. 저 어제 였나.. 침묵을 봤거든요.. 최민식이 나와요 . 거기.. 저 배우가 왜 여기 나와서 이러고 있나... 막 그랬거든요 . 올드보이 . 악마를 보았다 . 또 뭐가 있죠? 이 사람 연기..( 검색을 햇!!^^) ㅎㅎㅎ

stella.K 2018-02-09 13:31   좋아요 1 | URL
<침묵>은 저도 좀 봤는데 졸면서 봐서 그런지
재미가 없더군요.
<대호> 안 보셨으면 함 보시죠. 전 아주 괜찮게 봤습니다.^^

[그장소] 2018-02-09 13:34   좋아요 1 | URL
아~ 대호는 저도 재미나게 봤어요. 잊고 있었네요. 그러고보니.. 이분 연기를 꽤 봤네요. 제가!^^

서니데이 2018-02-10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부터 따뜻한 날인데, 미세먼지가 대신 많대요.
오늘 저녁부터는 한파가 온다고도 합니다.
stella.K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18-02-10 15:54   좋아요 1 | URL
네. 이젠 그만 추웠으면 좋겠는데...ㅠ
서니님도 잘 보내시길.^^
 
[블루레이] 대호
박훈정 감독, 최민식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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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사실 좀 뻔한 게 그려지는 영화였다.

한때는 명포수였던 천만덕이 왜 포수의 일을 접고 이름 없는 약초꾼으로 살아가는지는 차치하고라도, 그의 아들 석이 천둥벌거숭이처럼 나오는 거 보면 너도 언젠간 개처럼 죽겠구나 싶었다. 천만덕과 대척을 이루는 구경 또한 최후가 어떨지 영화를 보면서 알 것 같았고, 나중엔 엔딩에 이르기도 전에 천만덕이 어떻게 죽을지도 알 것 같았다. 이러면 재미없지 않을까?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뭔가 빤한데도 보게 만들었고 나중에 코끝까지 시큰하게 만들었다.

 

사실 최민식이 주인공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난 이 영화를 언제 볼지 기약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빨리 본 건 아니지만.핑계지만 이 영화에 영화 찍으러 히말라야까지 다녀왔다던(?) 황정민만 나왔어도 난 더 늦게 봤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니 그 옛날 영화 <취화선>을 비롯한 최민식의 영화 몇 편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최민식은 정말 연기를 잘하는 멋진 배우란 생각이 든다. 영화 중간에 오랜만에 구경(정만식)과 칠구(김상호)와 셋이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결코 좋은 분위기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는 구경이 오래 전에 포수 일을 그만둔 만덕에게 다시 일을 하자고 설득하는 자리다. 하지만 만덕과 구경이 과거에 맺힌 일이 있어 말이 설득하는 자리지 결코 범상치 않은 자리다. 그때 만덕 역의 최민식이 앉아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그야말로 그림이다. , 이 배우는 어쩜 앉아 있는 모습도 그림 같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실 최민식의 일련의 영화들을 보면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느낌이다. 웬만해서 MSG를 치지 않는 담백한 연기다. 물론 다소의 익살스러움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늘 카리스마와 남자의 고독을 연기해 왔다. 늘 똑같은 연기라면 질릴 법도 한데 어떤 영화에 그를 갖다 놓아도 그는 그만의 시그니처를 연기한다. 문득 가식 없이 정석대로 노래를 불러 엘리지의 여왕이라 칭송을 받는 트로트 가수 이미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를 일컬어 영화계의 이미자라고 하면 너무 약한 표현일까?

 

영화를 보는데 문득 예전에 본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가 생각이 났다.

당연하다. 두 영화 모두 호랑이가 나온다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만족스럽긴 하다. 하지만 굳이 흠을 잡자면 호랑이를 너무 인간화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나는 가끔 동물을 의인화 시킨 영화, 예를 들면 <주토피아><라따뚜이> 같은 영화가 탐탁치가 않은데 물론 모두 좋은 영화긴 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우린 동물을 너무 많이 길들여 왔거나 죽여 왔다. 좋은 의도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역시 동물을 동물 그대로 봐주지 못하고 인간 멋대로 해석하려는 저의가 느껴져 탐탁지 않은 것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의미에서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에게 대호란 이름이 붙여졌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혹시 예전에 천만덕이 어미 호랑이는 죽였으나 새끼 호랑이 두 마리는 살려주고 스스로 사냥이 가능할 때까지 죽지 않도록 돌봐준 것, 그래서 그 새끼 호랑이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나중에 산짐승에 갈갈이 찢겨 죽은 만덕의 아들을 장례라도 치를 수 있도록 그의 집 앞에 가져다 놓은 은혜 갚을 줄 아는 호랑이라서 대호라고 했을까? 하지만 이런 설정 자체가 너무 자의적이다. 솔직히 그 대호가 은혜 갚을 줄도 모르고 석이가 누군지도 모른 채 갈갈이 찢겨 죽인다고 해도 만덕은 대호를 원망하거나 똑같이 죽일 자격은 없다. 지리산 아니야 당장 인왕산에 호랑이의 씨가 마른 것도 알고 보면 인간 때문 아니겠는가? 호랑이가 사냥 본능을 잃어버린 채 동물원에서 주는 먹이나 먹어가며 살게 만든 것도 인간 때문 아니겠느냔 말이다.

 

내가 얼마나 호랑이에 대한 이해가 없었느냐면, 호랑이 한 마리를 잡는데 일본군 일개 대대가 출동하고 대호는 그 많은 사람을 죽이는데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물론 CG의 힘이라고 썩소를 날리기도 했지만 또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까지 호랑이가 한 떼의 사람들을 삽시간에 죽였다는 뉴스 보도는 고사하고 역사 자료도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저렇게 죽였을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확실한 건 호랑이는 용맹하다는 것뿐.

 

나중에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은 뭐라고 했나 싶어 네*버를 기웃거려 보았다. 보니 좀 가관이었다. 이런 영화를 두고 여전히 종북 타령이다. 모든 건 깔떼기라고 어떻게 이런 영화에 종북 논리가 가능한 건지 이 종북의 망령이 참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렇지 않으면 왜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했느냐는 볼멘소리도 있었던 것 같다. 이건 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까 계속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숨은 의도까지 파헤치느라 참 바빴겠구나 싶었다.

 

우린 언제쯤이면 영화를 영화 자체로 볼 때가 올까? 이 영화는 김탁환의 <밀림무정>을 원작으로 한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김탁환도 저런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썼을까?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어찌 보면 이 이야기는 신선 같은 이야기다. 전설이라고 말하기도 못하고, 설화라고 말하기도 뭐하다.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찾았을지 모르겠으나 단지 분명한 건 그는 언제나 그렇듯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를 찾고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북이니 일본 위안부 문제니 하는 정치적 현안과 연결시키기 보단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찾는 게 영화를 보는 관객의 몫은 아닐까?

 

이 영화는 누가 진정한 포수인가를 묻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또한 동시에 현대인에게 생각을 즉 철학하기를 촉구하는 영화 같다. 아무리 배운 거 없는 무지렁이 포수라도 그 삶에 철학이 있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당시는 호랑이 한 마리를 잡으면 장가 밑천은 되었나 보다. 그러니까 석이가 그토록 호랑이를 잡고 싶었던 거겠지. 당장 그의 정인이 다른 사람한테 시집을 갈지도 모른다는데 이 사실만큼 자신이 포수가 되어야할 확실한 명분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포수가 되기엔 몸도 마음도 너무 어리다.

 

그나마 구경이 약삭빠르다. 일본군으로 구성된 한 편대를 산에 오르게 만들고 호랑이에게 죽게 만들고 나중에 그 호랑이 까지 잡는다는 소위 이이제이 전법을 쓰려고 했으니 말이다. 포수가 호랑이만 잘 잡으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는가. 하지만 그도 진정한 포수가 될 수 없었다. 그래도 그의 죽음은 장렬했으니 아주 초라하지만은 않다.

 

천만덕이 진정한 명포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가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해도 그 짐승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리 새끼 호랑이라 하더라도 수성이 자라고 있다. 이 새끼가 나중에 자라면 제 어미처럼 사람을 여럿 잡아 죽일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잘만 잡으면 한몫 단단히 잡을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아들도 언제 죽일지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법칙으로 치자면 언제가 됐든 죽여야 마땅했다. 하지만 죽일 수 있을 때 그는 죽이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당장 어미를 잃은 새끼 호랑이가 불쌍했을 것이다. 그땐 그의 부인 즉 석이의 엄마가 살아 있을 때이기도 하다. 그의 처가 죽은 후에 엄마 없는 석이를 생각했다면 일견 이해는 한다. 요즘에야 개체수 확보니 해서 동물의 씨를 함부로 말릴 수 없었지만 그땐 그런 것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호랑이를 죽일 수 있을 때 명포수가 되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로 아내를 죽게 만들고 그것 때문에 포수 일을 그만 두었을 때 진정한 명포수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아내를 죽게 만들었다는 그 죄책감과 아내가 없는 고독감이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약초꾼으로 이 산 저 산을 방황하고 돌아다니면서 자연과 하나 되는 것을 몸으로 받아 들였겠지.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 사랑하는 아들이 죽고 호랑이로부터 본의 아닌 위로를 받았을 때였을 것이다. 그때 인간은 함부로 호랑이를 죽이고 말고 할 권리가 없었다는 걸 깨닫지 않았을까? 또 마침 대호도 두 새끼를 잃어버린 상태다. 자식을 잃은 건 대호나 만덕이나 똑같다.

 

만덕이 대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때야 알 것만 같다. 그리고 그것은 만덕의 뜻이기도 하다. 만덕이 대호에게 하는 몇 마디 되지 않은 대사와 산꼭대기에서 대호에게 절하는 장면이 제법 비장하면서도 처연하다. 대호는 만덕이 자신을 죽여줬으면 좋겠고, 만덕은 대호가 자신을 죽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 둘은 하나가 되고 자연으로 돌아가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대호가 만덕을 죽일 수 있을 때 멈칫했다. 왜 그랬을까? 그 옛날 자신이 새끼였을 때 자신을 죽이지 않았던 만덕을 기억했던 걸까? 아니면 나는 당신의 총에 죽을 테니 당신은 살아남으라고 했던 걸까? 하지만 만덕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낭떠러지에서 함께 죽는 방법을 선택한다. 어찌 보면 만덕의 명포수는 호랑이를 잘 죽여서가 아니라 대호가 완성시켜 준 것은 아닐까? 또한 이렇게 동물과 인간이 교감했을 때야 비로소 감동은 오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난 <주토피아><라따뚜이> 같은 영화에서 그다지 감동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고.

 

지금도 엔딩 장면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다. 같이 떨어져 죽고 그 위로 하얀 눈이 쌓인다. 몇 안 되는 엔딩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최민식의 묵직한 연기에서 진한 허무주의가 느껴진다. 또한 대호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다.

 

오래 전 나의 싸부는 작가 김탁환은 작가라기 보단 좋은 스토리텔러 같다고 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런 작가가 누군가 같은 작품을 가지고 영화든 드라마든 제 2, 3차 작업을 할 때 얼마나 많은 상상력을 증폭시켰을지 알 수가 없다. 모르긴 해도 감독은 영화 작업을 했을 때 신나지 않았을까? 이제까지 만나 보지 못한 이야기를 가지고 최민식이란 걸출한 배우와 작업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을 것 같다.

훗날 다시 보고 싶은 영화 목록에 끼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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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8-01-26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하신대로 묵직하지만 빤한 스토리가 사람들에게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갈리게 만듭니다. 전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봤던 영화입니다.

stella.K 2018-01-27 10:16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십니다. 잘 지내시죠?
맞아요. 스토리는 빤한데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나중엔 찡하더라구요.
스토리는 몇 갈래로 정해져 있죠. 문제는 어떻게 다르게
보여주느냔데 좋더라구요.^^

서니데이 2018-01-26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최민식이 나오는 영화라서 소식은 들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영화가 아니어서 지나갔던 것 같아요. 영화가 좋으면 원작이 있는 책은 원작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영화 소개가 좋으면 영화를 보고 싶을 때도 있어요.

동물을 의인화하는 것이 좋은 점도 있겠지만, 가끔은 동물인 그 자체보다 의인화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 같아요. 어떤 동물에 대한 선입견을 때로 사람에게 투영하기도 하고, 또는 반대로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을 동물이 그러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서요.

오늘 많이 추웠는데, 잘 보내셨나요.
따뜻하고 좋은 금요일 밤 되세요.^^

stella.K 2018-01-27 10:21   좋아요 1 | URL
영화적 감동을 위해 희생하는 거죠.
이거 보면서 동물의 왕국을 열심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물을 동물 자체로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서.

<밀림무정>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탁환은 이야기 발굴 하나만큼은 독보적인 것 같아요.
부지런히 쓰기도 하고. 전 그 부지런함이 부럽더군요.ㅋ

오늘은 바람이라도 덜 부니 그나마 좀 난 것 같습니다.
즐건 주말 보내시길.^^

2018-01-26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1-27 10:27   좋아요 0 | URL
CG가 좀 아쉽긴 하죠.
정말 옛날에 호랑이가 저렇게 삽시간에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하구요.
그래도 이 영화는 최민식을 위한 영화더군요.
실망시키지 않았어요.
사실 그동안 이 영화는 영화 전문 채널에서 많이 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실시간 영화 별로 안 좋아해요.
리와인드를 할 수 없잖아요.
월정액 가입한 게 있어서 그 돈 뽑아 먹으려고 열심히 보려고 하는데
시간과 체력이 받혀주질 않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