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국왕을 섬겼다 - I Served the King of 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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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심상치 않아 보기 시작한 영화였다.  

제2차 세계대전 나치를 배경으로 한 체코 영화다. 

그런데 결국 나는 저 거울을 들고 있는 남자 배우한테 빠져서 영화를 보는 내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보았다.  

어쩌면 그리도 키 작은 배우가 그처럼 연기를 똑부러지게 잘 할 수 있는지? 어쩌면 그리도 본인은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도 보는이로 하여금 감동과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인지? 정말 이 배우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체코의 영화는 그다지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이 배우의 이름이 확실히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은 하난데 늙은 노역과 젊은이의 배역을 따로 하다보니 누가 누군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럴 때는 배급사 측에서 좀 더 배려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튼 저 배우 연기를 보면서 꼭 채플린을 보는 것 같았다. 작달막한 키에 모든 움직임 하나 표정 하나가 채플린을 연상케 한다. 



난 이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뭔가 모를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주연급 배우라면 뭔가 잘 생기거나, 힘있어 보이거나 암튼 뭔가의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스토리 자체도 멋있고 잘 생긴 사람이 끝내 승리하거나 사랑을 이루는 뭐 그렇고 그런 영화가 대부분인 영화의 세계에서 이렇게 키도 키지도 않고 특별히 잘 생기지도 않았으며 카리스마도 없어 뵈는 인물이 그처럼 영화 전반을 아우르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것이 너무 흐뭇했다고나 할까? 

영화의 분위기도 나치 시대의 20세기 초중반 너무도 잘 살려냈다. 다소 딱딱하면서도 스산한 독일적 분위기. 체코 영화인 만큼 체코의 분위기도 그만하였으리라. 그러면서도 그 흐름은 시종 밝고 유머러스하다.  

하긴 그 시대가 암울하기만 했을까? 물론 많은 유대인들이 죽어나갔으니 결코 행복했다고는 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시대가 암울 할수록 웃음의 요소를 찾으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니겠는가?  

창작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암울한 시대를 찾아 그 시대에 바치는 헌사를 종종한다. 지금까지 나치를 배경으로한 영화가 잊을만하면 한번씩 만들어졌고 변주되어졌다. 이 영화 역시 그 시대의 헌사를 감행했다. 

자신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낮은 자의 자리 있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자리가 더 세상을 잘 볼 수 있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섬김의 자리에서 세상을 보고 자신의 직업을 자신의 삶에 십분 활용해 보는 것도 지혜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장군이 되어야하고, 사장이 된다면 그를 보좌하고 섬겨야 하는 사람은 누가 하겠는가?  성경에도 누구든지 섬김을 받고자 원하면 먼저 섬기라고도 했고, 누구는 섬기는 자리에 있으니 나중엔 왕도 섬기게 되었더란 말이 나온다. 그러니 저 영화 제목도 어찌보면 성경적이다 싶기도 하다. 

 

스포일러겠지만, 나중에 주인공이 애써 모은 돈이 휴지조각이 되고 어처구니 없게도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건 좀 억울하기도 하지만 주인공은 워낙에 영특하고 낙천적이어서 그것을 그다지 원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담담히 받아 들인다. '인생 별거 있어?' 하는 마음이었을까? 

영화가 너무 마음에 들어 훗날 다시한번 보고 싶은 영화가 될 것 같다.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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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9-03-10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제목의 책도 나온 거 같던데 같은 작품인가보네요 :)

stella.K 2009-03-10 15:51   좋아요 0 | URL
아, 이거 쫌 아까 자꾸 에러가 나서 저장을 포기했었는데 되는군요.
네. 맞아요. 책으로도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이 배우 너무 멋져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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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아련하다. 남편과 아내, 아들과의 더 없이 행복한 가정의 모습. 여름의 싱그러운 녹색의 이미지와 노란색의 해바라기의 풍광 등. 그리고 죽은 아내 미오가 1년 전 비의 계절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죽지만, 정말 약속처럼 그녀는 죽은 지 1년만에 남편과 아들 곁에 돌아와 꼭 비의 계절(장마 기간)만큼 살다가 다시 그들의 곁을 떠난다. 정말 동화 같은 이야기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이야기. 하지만 소설이고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가 보는이의 가슴을 촉촉히 적셔준다. 

 

 영화처럼, 죽은 사람이 어느 일정기간만이라도 다시 돌아와 살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처음 죽은 미오가 그들이 평소 잘 가는 숲속 허름한 창고에 죽은 듯이 앉아 있는 것을 봤을 때 약간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뭐야? 호러였어?' 하지만 영화는 나의 예상을 뒤엎어도 한참 뒤엎는다. 

그렇게 죽은 사람이 어느 일정 기간 살아있는 사람과 함께 있어준다면, 죽은 사람에 대한 오해, 상실감, 슬픔 등이 훨씬 반감이 되며 죽음을 좀 더 성숙한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보면 아들 유우지가 자기 때문에 엄마가 돌아갔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어린 나이 때 그런 상실을 맛 보면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엄마 미오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해 준다. 이것이 유우지에겐 얼마나 위로가 되는 것일까? 

미오는 그렇게 약속 같이 비의 계절에 돌아왔지만 자신이 죽기 전의 이 생에 대한 기억이 없다. 남편 다쿠미는 미오를 만나서 사랑하고 아기를 낳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준다. 그 과정에서 미오의 기억을 일깨우고 다쿠미의 사랑이 다시한번 피어난다. 

그들은 비의 계절이 끝나고나면 서로 헤어질 것을 알기에 그 계절이 끝나기 전까지 따뜻하고 애틋한 사랑을 나눈다. 더구나 죽은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왔으니 살아있는 부자(父子)의 삶이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집안에 생기가 돈다. 

정말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애틋한지 전달되어져 오는 느낌이다. 사람이 그렇게 오랜 세월 천년만년 사랑하고 사는 것이 아닌데 이렇게 한 계절 사랑하는 것만큼만 사랑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사랑을 하고 사는 것인데 그래서 사랑만 해도 다 못 사는 생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시간을 허비하며 사는 것 같다. 

미오는 자신이 비의 계절이 끝나면 떠날 것을 알기에 어린 아들에게 계란 후라이 하는 방법, 빨래를 개는 법, 구두를 닦는 법 등을 찬찬히 가르친다. 한편 타쿠미는 장마가 예상보다 길어질 거란 말에 기뻐했고, 그리고 마침내 장마가 끝나는 날 회사에 있던 타쿠미는 마지막 아내를 만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집으로 달린다. 


이 영화는 시간을 해체해 사랑이 영원하며 변치 않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는 영화다란 말을 하게되는가 보다. 현실에서는 그다지 있을 법하지 않는 것이기에 이 영화는 사람의 환상을 충분히 만족시켜 준다. 하지만 진실하고 영원한 사랑이 있다와 그런 사랑은 없다는 것은 결국 믿음의 문제는 아닐까?  

특히 내가 유심히 본 것은 미오와 타쿠미가 사랑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이다. 서로를 그리워 한다. 간절히 그리워 했더니 정말 어느 날 전화가 오고 만나게 되고 첫 데이트를 하게되는 과정을 단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람과 사람에겐 텔레파시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정말 누군가를 간절히 생각하면 그에 관한 소식을 듣거나 그에게로부터 전화를 받게되곤 하는 경험을 하게된다. 그렇다면 난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간절한 텔레파시를 보내지 않았던 걸까? 슬쩍 후회가 이는 건 또 뭐 때문일까? 영화를 보면서 좋아하는 사람 또는 좋아할 것만 같은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기 때문에 매번 사랑에 지고 소극적이 되는 내 모습이 역투사 됐다.  

모든 영화들이 다 그렇지만, 영화는 시간을 해체한 만큼 다양한 장면과 이미지가 자유롭게 씨앗처럼 뿌려지고 영화 말미에 그것을 훌륭하게 거둬드린다. 그래서 퍼즐조각 맞추는 듯 '아, 그래서 그런 거구나!'하는 나름의 쾌감도 느껴졌다. 시간을 해체해서 보여주는 감독의 열출력이 탁월하다. 앞으로 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영화 한편을 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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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더의 연인들 - Ladies in Lav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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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은 해안가 마을에 자넷과 우슐라라고 하는 노년의 자매가 평화롭고 조용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웬 낮선 젊은 청년이 실신한 상태로 바닷물에 실려 이 마을에 표류하게 된다. 알고 봤더니 폴란드의 바이올리니스트 였다. 자매는 영어를 단 한마디도 못하는 청년에게 몸이 회복될 때까지 돌봐주면서 영어를 가르쳐 주기로 한다. 그런데 자넷과 우슐라는 이 청년과 함께 있는 동안에 뭔가모를 마음이 동요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자넷과 우슐라에게 청년 안드레아는 그저 손주벌 밖에는 안되는 청년이다. 어떻게 그런 청년에게서 로맨틱한 감정이 가능하겠느냔 것이다. 특히 우슐라 역의 주디 덴치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볼만했다.  


청년 안드레아는 점점 건강을 회복하면서 잠깐 동안 잃었던 기억 상실 또한 회복하고,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여류화가를 알게 된다. 그녀는 안드레아의 음악성을 발견하고 관현악단 지휘자로 있는 자신의 오빠에게 소개 시켜주기 위해 그를 데리고 마을을 떠난다.  

변변한 작별 인사도 못하고 자신 곁을 떠나버린 우슐라는 큰 상실감을 경험한다. 자넷은 안드레아에게서 옛 사랑을 떠올리는 정도지만 젊을 때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우슐라는 안드레아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것이다. 그것은 누가 봐도 그리고 자신이 생각해도 결코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영화는 줄곧 우슐라의 감정을 충실히 따라간다. 자신을 돌봐 준 것에 감사해 라벤더 꽃 두송이를 꺾어다 자넷과 우슐라에게 각각 손에 쥐어줬을 때 자매가 느끼는 감정을 여과없이 보여주기도 하고, 우슐라는 그렇게 안드레아가 없어진 빈자리를 강하게 느끼며 그에 대한 기억의 주변을 서성인다. 그런 자기자신에 대해 이 낮선 감정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그녀 또한 젊었다면 당연 즐겼을 것이고,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그런 감정에 불을 짚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기엔 너무 나이를 많이 먹었고 젊을 때 한때 그런 감정을 마음껏 발산해 보지 못한 것에 후회를 하고 짙은 고독만이 무겁게 마음을 누른다. 

영화를 보면서 내심 우슐라의 감정이 느껴져 나 또한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가 되면 그 나이에도 사랑의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는 거로구나 즐거워 하고 기뻐하게 될까? 그냥 로맨틱한 감정을 즐기는 정도라면 그것도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에게서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생을 그만큼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이니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영혼이 바뀐 사람처럼 전혀 생뚱맞게 이런 미끈한 젊은이나 좋아한다면 마냥 좋아할 수마는 없을 것 같다. 그건 차라리 두려운 것이고 저주받은 감정일 뿐이다.   

나는 나이 먹어서 사랑의 감정 같은 것은 더 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다. 그냥 평온하게 살고 싶다.그런데 모를 일이다. 그 나이에도 사랑을 원치 않으면 안 할 수도 있는 마음이 생길지. 그때도 영화속의 우슐라처럼 마치 영혼이 바뀌기라도 해서 여전히 그 혼란스러움 감정을 느끼면 어떻게 할까? 

물론 영화든 소설이든 어느만치의 허구가 깔려있는 법이다. 이런 사람의 이런 사랑도 있다는 인간 미학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에 제법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 감정이입이 가능했던 것같다. 

영화는 '한 방의 미학'이라고도 한단다. 여러 에피소드의 층위를 잘 쌓아서 어느 지점에서 관객에게 어떤 식으로든 감동내지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한 방 날려주는 뭔가가 있으면 된다라는 것이다. 영국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도 약간 지루한 면도 있다. 그런데 말미에 가서 울컥 한 방 먹여주는 뭔가가 있었다. 그래서 눈물을 흘렸다. 언젠가 한 번 울고 싶은 감정이 들 때 보고 싶은 영화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조슈아 벨의 연주도(진짜 연주를 한 것은 아니고, 저 안드레아의 연주 소리를 입힌 것이다.) 감상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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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2-26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 하네요.
나이 들어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말씀도 이해가 가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 또한 행운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주디 덴치의 독특한 억양이 막 들리는 것 같네요.
요즘들어 영화 리뷰를 많이 올려주시네요? ^^

stella.K 2009-02-26 14:05   좋아요 0 | URL
작년 여름에 나온 영화죠. 인디계열의 영화라 많이 알려지진 않았어요.
개봉했을 때도 스폰지 하우스 정도에서만 했으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노년의 고독감이란
엄청 쓸쓸해서 그닥 행운이란 느낌이 안들었어요.^^

프레이야 2009-02-26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본 영화에요. 참 좋더군요.
우슐라의 감정, 청춘의 특권으로만 여겨지는 그런 감정이 남기는
뒷모습에 숙연해지더군요. 좋은 영화였어요.^^

stella.K 2009-02-27 10:58   좋아요 0 | URL
이거 저까지 네 명이서 같이 봤는데 한 명만 빼놓고
전부 다 울었어요. 그 울지 않는 한 명 울지도 않고
졸았다고 하길래,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마구 야유를
퍼부어준 기억이 납니다.ㅎㅎ
 
멋진 하루 - My Dear En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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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 <여자, 정혜>를 봤을 때의 신선한 충격이란...! 대사는 별로 없고 영상으로 말하려 하는 것을 충실히 전달해  나름 좋게 보았다. 그런데 누구는 그의 영화가 재미없다고도 한다. 아니 어떻게 이 괜찮은 영화를 재미없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재미로 봐줄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내가 말하는 재미란 인상 깊은 것의 다른 말일 뿐이다.  

어쨌거나 난 '여자, 정혜'를 본 이후로 이 감독을 좋아하게 되었고, 얼마 안있다 이 <멋진 하루>가 나왔다고 하길래 조용히 대중들의 반응을 지켜 보았다. 뭐, 그닥 큰 성공을 거둔 건 아니지만 '여자, 정혜'보단 조금 낫지 않았을까 싶은 정도의 반응? 그래도 하정우, 전도연이 나온다니까 봐줄만 하지 않았을까? 



영화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떤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음모나 배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 이윤기 감독만의 독특함이 묻어나 있어 즐겁게 봤다.   

이 이야기는 하루 동안 옛 애인에게 떼인 돈을 받아내기 위해 그 애인을 따라다니는 일종의 로드 무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희수의 애인 병운이 350만원을 갚기 위해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니는데 희수가 동행하면서 겪에되는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병운이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하고 있고, 그 사람들을 통해 병운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만나게 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줌으로 희수는 처음엔 몹시 귀찮아 하다가 차츰 병운에게 동화되고 그와 동행하면서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이구나 체험하게 된다. 그러니 제목처럼 '멋진 하루'일 밖에.  

거기에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그저 비슷 비슷한 인간 군상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각 나름의 사연들을 안고 살아간다. 또한 그것을 별것 아닌 양 능청스럽게 보여주면서도 간간히 희수의 1년 간의 삶과 병운의 1년간의 삶을 서로 넌지시 던지는 한마디 속에 응축해낸다. 나는 감독의 그 노련미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주인공의 삶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매 씬마다 보여주는 에피소드 즉 조연들이 보여주는 삶속에서 빗대어 보여줄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도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다이라 아즈코란 일본 작가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원작을 읽어보긴 했지만 원작보다 훌륭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병운 역을 맡은 하정우의 연기가 돋보인다. 껄렁껄렁한 백수건달 역을 참 잘도 소화해낸다. 하지만 건달이어도 참 사랑스럽다. 그런 돈 빌린 기억이 없다고 딱 잡아 뗄 수도 있을텐데 성실하게 갚아 줄려고 애쓰고, 나는 비록 백수여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으니(스페인에 막걸리집을 내는 희망) 지난 세월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 까칠할대로 까칠해진 희수를 오히려 위로한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이 많고 까칠한 희수에겐 차라리 단순한 병운이 잘 맞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왜 둘은 서로를 못 알아보고 헤어지는 걸까? 물론 맨마지막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둘이 뭔가의 프로포즈를 할 것처럼 하다가 끝나버리긴 하던데 거기서 뭔가의 암시가 있는 것 같긴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 자체는 사랑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에 있지 않다. 


영화를 보다보니 좀 황당한 장면이 하나 있었다. 바로 문제의 이 스틸컷. 

남자들은 왜 여자의 과거가 궁금한 걸까? 맨 오른쪽의 재수남 이미 자신의 와이프가 된 여자에게 학교 때 병운이랑 자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걸까? 이에 저 긴 생머리의 여자 순간 화가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희수가 남자에게 가 봐야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다시 돌아 올거라고. 정말 잠시 후 다시 돌아와 앉는다. 그래놓곤 미안하다고 하고, 앞으로 또 한번만 그러면 죽을 줄 알라고 한뒤 둘은 또 이전 분위기를 회복한다. 참 재밌는 설정이기도 하다. 그러는 남자들은 온갖 비리를 서츰치 않으면서 왜 그렇게 여자들의 과거를 건드리고 싶어하는 걸까? 진짜 저런 재수남 보면 두들겨 패주고 싶다. 

이 영화의 영상적 미덕이라면 남녀 주인공의 얼굴이 전혀 덧칠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지고 있다는 점이아닐까? 하정우 피부 정말 장난 아니다. 어쩌면 그리도 얼굴에 분화구가 많은지? 그래도 별로 개의치 않고 자기 맡은 역할에만 충실했던 것 같다. 또한 전도연도 늙는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직 피부는 좋아보인다만 코에서 입까지 한쪽에 짙게 그려지는 굵은 주름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보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나이 먹어가는 모습 그를 좋아하는 관객으로서 지켜봐 주는 것도 특권이 아닐까 싶다. 제발 배우들 늙는 거 싫다고 발악하는 모습 좀 보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배우들 그렇게 늙어가면서 관객들이 위로 좀 받으면 안되는 걸까? 배우들이야 돈이 많아 늙지않게 하는 온갖 것들을 동원할 수 있다고 하지만 서민들이야 그럴 수 있는 처지가 못되지 않는가? 그럼 그 갭을 어디가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배우란 모름지기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관객과 함께 나이 먹고 늙어가며 관객의 가슴속에 별로 남을 수 있는 믿음직한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저 하정우와 전도연도 그렇게 남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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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미친 짓이다 - Marriage Is a Crazy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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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니 소설이 읽어졌다.(하지만 난 아직 소설은 읽지 못하고 있다.)
정말 똑똑한 이야기가 아닌가?  

많은 사람이 결혼을 한다. 사랑이 없이도 하고, 사랑하니까 결혼을 한다. 아마도 이 영화의 전제는 사랑없이도 하는 결혼에 대한 조롱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니 더 나아가 결혼 자체에 대한 회의를 드러내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사랑이 없는 결혼은 많은 위험과 스스로 일탈을 감행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까지 꼭 결혼을 해야하는 것이냐고 묻는 것 같다. 

주인공 연희(엄정화 분)를 보라. 준영(감우성 분)과는 진정한 섹스와 사랑을 하면서(처음 섹스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발전한다.) 결혼은 다른 사람과 하고, 준영이 방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평일은 결혼한 남편과 함께 보내고 주말은 준영과 함께 보내는 진짜 결혼한 주말부부 같다. 

 
하지만 그들의 불안한 동거는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이야기가 하도 설득력이 있어 이땅의 거의 대부분의 결혼한 사람들이 배우자를 두고 이런 형태로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어수룩한 상상을 해 보게도 된다. 물론 이런 형태가 없으리란 법은 없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그런 형태의 사랑 또는 가상의 부부는 지양되어야 되지 않을까 한다. 괜히 영화가 그런다고 따라했다가 파탄지경에 이를 테니. 이혼에 드는 경제적 손실 또한 적지 않다지 않은가? 

난 솔직히 이즈음 결혼에 대한 회의의 목소리를 많이 듣는데, 과연 결혼이 미래에 그렇게 부정적이고 없어져야할 것이냐라는 것에 오히려 회의적이다. 물론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결혼이 흔들리는 건 사실이지만 고래로부터 결혼이란 제도는 있어왔고, 그런 악순환 속에서도 결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단지 우려가 되는 걸 한다하는 학자들이나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결혼을 너무 정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말 결혼은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할 것처럼 터부시 된다. 왜 결혼의 긍정적인면을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물론 잘못된 결혼 또는 불행한 결혼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결과를 낳긴 하지만 결혼을하고 가정을 이루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이기심을 다스리는 것으로서 결혼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영화도 어차피 연희와 준영이 그런 관계는 언젠간 종지부를 찍을거라는 걸 드러내주지 않아도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충분히 감지하고도 남는 일이 아닌가? 적어도 그렇게 결혼에 관해 부정적으로 뇌까리는 준영이 언젠간 결혼할거라는 건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은가?     

영화는 참 화끈하게 보여줄 건 다 보여주는 것 같다. 중간중간 낮뜨거운 장면이 혼자 보고 있음에도 좀 민망하더라.  

왜 나는 이런 이야기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알았으면 내가 먼저 썼을텐데 하는 일말의 아쉬움이 들 정도로 탐나는 스토리였다.

새로운 발견은 작년에 시나리오를 공부하면서 거기모인 젊은 수강생들이 의외로 엄정화를 의외로 많이 좋아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40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 사람 못지않은 탄력과 당당함이 마음에 든다는 중론이었다. 불론 저 영화는 그녀가 40이 되기 한참 전에 찍은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덩달아 나이 많아 시나리오를 공부한 나도 어부지리로 좋게 봐주는 건 아닐까? 어줍잖은 기대를 잠시 가졌더랬다.ㅎ 나는 엄정화는 잘 모르겠고 감우성은 확실히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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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짱 2009-03-03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짝 부럽... 아, 뭐여...?

stella.K 2009-03-04 11:13   좋아요 0 | URL
부럽긴 뭐가 부럽단 말이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