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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튼, 난 멜로가 체질이 아니다.  

 

<멜로가 체질>이란 드라마를 재미있다고 해서 봤다. 영화 감독이 TV드라마를 만들었다는 것도 그렇고(감독 데뷔 전 '써니', '과속스캔들'등을 썼다고 한다) 기대가 돼 봤다. 결국 난 7회까지 보고 말았다. 뭐 이제까지 봤던 멜로 드라마와 확실히 차이는 있다만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배우가 연기를 해야지 개그를 하면 쓰나 싶다. 그렇지 않아도 개그 프로그램 보면 개그맨들은 뭐 하나를 빼놔야 개그를 하지 정상적인 사고로 저런 개그가 나오나 차라리 이해가 가는데,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작정하고 덤벼드니 보면 볼수록 뭔가 질리는 느낌이다. 상황을 만들고 상황에 맞는 대사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도 그렇지만 난 이상하게도 멜로가 맞지 않는다.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기 전 갈등 은 봐줄만 한데 그러다 사랑에 빠지면 그때부터 급격히 재미가 없어진다.

 

대신 <동백꽃 필무렵>을 보고 있는데 이거 완전 내 스타일이다. 공효진도 공효진이지만 강하늘을 열렬히 좋아한다. 무엇보다 대본을 잘 썼다. 충청도 사투리를 정말 잘 살렸는데 무대뽀 사랑을 표현하는데 충청도 사투리만큼 찰진 게 또 있을까 싶다. 혹시 대본집으로 나온다면 사 두고 싶을 정도다. 

 

 2. 역사적 견해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를 챙겨 보고 있다. 지난 번에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다뤘는데 거기 나온 설민석과 장강명이 중요한 얘기를 한다. 독일은 나치의 역사에 대해 두고 두고 반성과 사죄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일본에게 사죄를 받지 못하느냐에 대해 설민석은 국운을 들었는데, 일본이 패망을 하고 조선에서 물러가면 전범을 잡아 들이는 건 물론이고 모든 체계를 다 없애버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일을 미국이 해야하는데 그때 하필 미국은 소련과 싸워야 하는데 일본의 힘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러질 못했고 그것이 우린 아직도 정당한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아베의 외할아버지를 비롯해 아직도 일본 내 극우 세력이 판을 치는 거라고.

 

이어 장강명은 독일이 그렇게 두고두고 사과할 수 있었던 건 나치 시대에 독일의 괴롭힘을 당했던 나라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하나같이 국력을 키워 잘 살게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의 침략을 당했던 필리핀 등 동아시아의 나라는 일본 보다 잘 살지 못하니 사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둘 다 그럴 듯한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일본이 과거사에 사죄하는 날이 온다면 우리나라가 그 첫번째가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이제 일본의 적수가 될만하니 말이다. 

 

3. 도대체 할 수 있는데가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온 지인이 최근 친정 부모와 합쳤다고 한다. 부모님이 다 치매라서. 어머니가 조금 심하시고, 그나마 아버지는 경증이다. 그동안 바쁜 중에도 일주일에 한 두 차례씩 친정을 가곤했는데 힘에 부치기도하고 그밖에도 여러 가지 합칠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런데 그게 왜 그리 짠하던지. 자식이 부모 모시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때문에 더 힘들어질 거라는 것을 아니 무작정 잘한 일이라고 박수를 쳐줄 수가 없었다.   

 

"그냥 저 할 수 있는데까지만 하려구요. 나중에 요양원에 모시더라도 어떻게 처음부터 요양원에 모셔다 놓을 수가 있겠어요." 한다.그렇게 말한 게 지난 추석 하루 전날이었다. 부모님 모시기 준비 중 내 생각이 나 전화한다며. 그녀 역시도 몸이 그렇게 건강한 편은 아닌데 말이 좋아 할 수 있는데까지지 어디까지가 할 수 있는데까지며 그러다 골로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다 바로 얼마 전 이번엔 내가 먼저 연락을 해 봤다. 워낙 바쁘게 사는 사람이라 그나마 주일이 연락하기가 낫지 싶어 했는데 역시 쉽지는 않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한숨부터 쉬는데 상황이 어느 정돈지 알 것도 같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다잡고 또 잡았을까. 부모님을 모셔 놓으니 일가친척들이 한번씩 머리를 디미는데 오시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죽을 맛이란다. 그렇게 대화 좀 이어갈까 싶었는데 어머니 목욕시켜 드려야 한다며 중간에 전화를 급히 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년이면 두 세 차례는 만났는데 전화를 끊을무렵 내가 우리 언제 만나요 하며 푸념했는데 그게 그녀에겐 배부른 투정처럼 들리지 않았을까.    

 

4. 수렁에서 건져낸 내 친구? 

 

얼마 전, 갑자기 폰이 울려 또 스팸 전화겠지 했는데(언제부턴가 스팸 아니면 전화 올 때가 거의 없어졌다) 사이판에 서는 친구다. 어찌나 반갑던지. 전화 안 한지가 거의 3년쯤 된 것 같다. 사이판에 산지가 20년 가까이 되고, 그동안 2년에 한번씩은 서울에 왔던 것 같다. 나올 때마다 만나곤 했는데 이쯤되면 이 친구와도 멀어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마지막 통화했을 때 사이판에 강력한 태풍으로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하고 아직도 복구가 안 되고 있다고 했다. 그 나라가 자기네 나라에 사는 외국인들에게까지 도움을 줄 형편이 못 되는지라 그런 난리가 나면 사는 게 말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못 들은 척 할 수도 없고 새발의 피도 안되는 돈을 위로차 보내 줬었다.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받았으면 받았다고 연락이라도 할 텐데 그런 것도 없고, 내가 이 친구에게 뭐 잘못한 것이 있나 찜찜해 하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얘기를 들어 보니 그동안 지난 번에 델 것도 아닌 강력한 태풍이 몰려와 그야말로 건질 것도 없이 알거지가 될 지경이었단다. 그나마 조금 나아져서 이제야 전화하는 거라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화고 통신이고 제대로 하지도 못 했단다. 문득 이상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 같으면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한번쯤 나올 법도 할텐데 그동안 그런 뉴스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못 들은 걸까. 

 

마지막 통화를 할 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하고 있느냐고 했더니 하지 않고 남편이 동업으로 일을 해 그 일을 함께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조만간 그만두고 살림만 할 거라며 이제 일이라면 신물이 난다고 했다. 왜 안 그럴까.

 

앞서 말한 지인도 그 친구의 경우도 그렇고 중년에 빈 둥지 증후군도 있다는데 과연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자식 뒷바라지 끝났다 싶으니 아픈 부모를 모셔야 하고, 그게 끝나면 자신이 아프겠지. 이게 또 사람의 인생이란 생각을 하니 새삼 허무한 생각이 든다.

 

5. 고종의 길

 

<고종의 길>이란 연극을 봤다. 명성황후 시혜 전후 상황과 고종의 아관파천, 대한제국이란 국호를 정하기까지 과정을 보여준다. 결코 즐겁게 볼 수 있는 연극은 아니었다. 설명이 약간 과하다 싶지만 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연기 몰입도가 꽤 높다. 처음 보는 배운데 고뇌하는 고종을 제법 실감나게 잘 표현했다. 끝나고 마음이 무거워 한동안 자리에 멍하니 않아 있었다(물론 관객들 빠져나가길 기다린 것도 있긴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꽤 성공한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부인과 아버지 사이에서 방황해야 했고, 급기야 아내가 일본의 낭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 당하는 것도 부족해 시신이 불태워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걸 보고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할 생각을 했다는 건 새삼 대단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고종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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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2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11-12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댓을 남기고 나니 공개 댓글도 남기고 싶어지네요. 오랜만에 댓글 남깁니다. 반갑게...
잘 지내시죠?
저도 잘 지냅니다.

<동백꽃 필무렵>을 봐야겠군요. 채널 돌리다 제목은 많이 봤어요.

stella.K 2019-11-12 15:02   좋아요 0 | URL
<동백꽃 필 무렵> 꼭 보세요.
그거 보고 있으면 어쩐지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나요.ㅎㅎ
여기 쓰진 않았지만 혹시 웃음이 필요하시면 <천리마 마트>도 보세요.
처음엔 별로 기대 안하고 봤는데 의외로 괜찮고
몇 회까지 할지 모르지만 한 회 한 회 종반을 향해 간다고 생각하니
꽤 아쉽더라구요. 그럴만큼 재밌고 좋아요.ㅋㅋ

레삭매냐 2019-11-13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 저도 해당 프로그램을 보면서 제가
읽었던 아이히만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래도 대중 프로그램이다 보니 좀 더
깊이 있는 접근이 아쉽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입해서 풀어 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말이죠.

stella.K 2019-11-13 15:57   좋아요 0 | URL
ㅎㅎ 좀 그렇긴 하죠?
어차피 TV는 그냥 바람잡이 역할 정도 밖에는 안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그래도 관심은 가더군요.
그런데 요즘엔 그것도 전 왠지 편하게 보이진 않더군요.
마치 저들만이 똑똑하고 의식있는 양 하는 것 같아서.
전 왜 이렇게 삐딱한지 모르겠습니다.ㅎㅎ
 

오늘 새 냉장고를 들여 놓느라 고생 좀 했다.

어제까지 쓴 냉장고는 거의 16,7년쯤 썼던 것 같다.

작년부터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한 걸 그래도 바꾸기가 뭐해 여태 쓰고 있었다.

전기 코드는 내가 뽑았는데 느낌이 좀 묘했다.

어떤 물건이든 오래 사람의 손을 타면 그 물건에도 영혼이 깃드는 걸까?

괜히 냉장고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 같아 괜시리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노후된 로봇도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내 따라든 생각은 아마도 울엄니가 직접 냉장고를 구매하는 것은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이 되겠지 싶었다.

살아오는 동안 엄마는 몇번의 냉장고를 바꾸었을까? 

엄마가 갓 결혼했을 때만해도 냉장고는 그렇게 흔한 물건이 아니었다. 너무 비싸서 혼수품목에도 들지 못했다. 정말 있는 집에서나 들여놓는 거의 귀중품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그러던 것이 TV만큼이나 두 대 이상 보유하는 시대로 바뀌었으니 엄마는 대여섯번쯤 냉장고를 바꾸었을 것이다.

엄마는 냉장고를 새롭게 들여놓고 그안의 물건들을 정리하느라 파김치가 되었다.

예전엔 새 냉장고 쓴다고 그저 신이났었겠지. 

수고했어 엄마. 그리고 구 냉장고 너도 수고했다.

요즘 냉장고는 성능이 좋아 20년은 너끈히 쓴다는데, 엄마도 그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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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9-10-01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물건에도 영혼, 마음이 있다고 일찍이 그것을 機心(기심)이라고 표현했던 분이 있습니다.
자동차나 세탁기도 다 한가지지요.
아끼고 닦아주고 정성껏 다루면 왜 오래 사용하지 않습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관심가지고 사랑하면 더 예뻐보이지요.
이번에 마련한 냉장고도 아주 오래도록 스텔라님 어머님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stella.K 2019-10-02 14:29   좋아요 0 | URL
아, 그걸 기심이라고 하는군요.
저도 그런 얘기 들어서 알고 있긴했는데...
수년 전 세타기 바꿀 때만해도 안 그랬는데
이번에 냉장고는 좀 다르던데요? 미안한 생각마저 들더군요.
다음 번엔 저나 집안 식구중 누군가가 사게 되겠지요.
요즘은 스러져 사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자꾸 생겨서
좀 서글프더라구요. 고압습니다.^^


syo 2019-10-02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사람의 인생과 그 생을 스쳐간 냉장고의 대수.... 뭔가 아련하고 서글프면서 따뜻하기도 한 복잡다단한 구도입니다...

stella.K 2019-10-02 14:3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글은 저렇게 썼지만 뭔가 단편 소설이나
장편 수필을 쓰고 싶은 걸 겨우 참았습니다.
스요님도 혹시 떠오르는 영감이 있으면 한번 쓰시죠.^^

cyrus 2019-10-0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우리 집에 있는 냉장고는 제가 초딩이었을 때 샀어요. 그거 쓴지 20년 넘었어요. 그런데 그 전에 있는 냉장고도 오래 썼어요. 부모님이 결혼했을 때 샀거든요. 몇 달 전에 미니 냉장고를 주문했어요. 부모님이 먹고 있는 건강보조식품을 보관하기 위해 샀어요. 오래 쓴 냉장고가 어머니라면 김치냉장고는 장남, 미니 냉장고는 차남이겠네요.. ㅎㅎㅎ

stella.K 2019-10-02 18:0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정말 딱 적절한 비유네.
그렇구나. 어떻게 그렇게 오래 썼냐?
아주 가끔 로또 맞을 확률로 그렇게 성능 오래 가는 게
나오는가 봐. 보통 수명이 15년 내외쯤으로 알고 있는데 말야.
이거 전 냉장고는 그쯤 썼던 것 같아.
막 물이 질금질금 나오더라고. 그러면 수명을 다한 거라고 해서
바꾼 건데 모터 소리만 안 났어도 몇년 더 쓰는 건데 좀 아깝더라구.

cyrus 2019-10-02 18:40   좋아요 1 | URL
네, 정말 운이 좋으면 가전제품을 오래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김치냉장고의 수명은 오래 못 가요. 2년 전에 김치냉장고를 교체한 적이 있어요. 교체하기 전의 김치냉장고 안에도 물이 생겼어요.

후애(厚愛) 2019-10-04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전제품은 수명이 다 하면 바꾸기가 그래요.
살아오면서 정이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머님과 스텔라님 항상 건강하시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함께 하시길 빕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시고 편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19-10-04 14:59   좋아요 0 | URL
그렇죠? 다른 것과 같지 않게 오래 두고 쓰는 물건이라 그런가 봐요.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9-10-04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전제품도, 가구도 우리의 삶과, 역사를 같이 하죠. 뭐 바꿀 때는 섭섭함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것 같아요.

stella.K 2019-10-04 14:5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벌써 몇 달째 병원을 다니고 있다.

처음 다닐 땐 더 늦기 전에, 더 더워지기 전에, 한 달 정도만 다니면 낫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 해서 다니기 시작한 게 오늘로 꼭 석 달 째다. 그렇게 여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가고 있고 앞으로 얼마를 더 다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Y대학에서 일명 프랜차이즈로 운영하고 있는 정형외과. 그나마 내가 병원에 다니게 될 운명이란 걸 알았을까? 올초에 집 앞에 생겨나 주시고 그 거리는 걸어서 5분이다.


처음 두 달은 신나게(?) 다녔던 것 같다. 빨리 나을 욕심에. 그쯤 다녔을 땐 좀 났는 것도 같아 뿌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 더운 여름에 뭔가를 열심히 했다는 생각에. 그게 비록 병을 고치는 일이라도 말이다. 아마도 올 가을쯤엔 내가 이 병원을 다녔다는 것에 정마저 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아, 내가 어디를 치료받으러 병원에 다니고 있냐고? 김영하 작가가 모 지상파 TV 인터뷰 프로에 나와 각광을 받게 된 이름하여 좌골신경통. 그는 작가가 걸릴 수 있는 직업병 중 하나가 좌골신경통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앉아서 책을 읽던가, 글을 쓰던가 하고 있으니.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약간 서글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진작 작가가 되볼 걸. 물론 나도 최근까지 원고료를 받는 작가이긴 했다. 지금도 뭔가를 끄적이긴 하고.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그런 있는 듯 없는 듯한 작가 말고 김영하 작가 같은 유명 작가 말이다. 김영하 작가가 요즘 핫한 작가가 돼서 그렇지 얼마 전만 해도 (좀 미안한 얘기지만) 내겐 왠지 모르게 만만해 보이는 작가였다. 지금 내가 좌골신경통에 걸린 걸 알면 그는 콧방귀도 안 뀔 거다.


내가 또 좌골신경통만이라면 병원에 그렇게 일찍(?) 다닐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아프다. 아파서 헉헉거린다. 이게 초기 땐 집 밖만 나가면 희한하게 안 아프던가 덜 아프다.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 집에 있으면 더 아프고 밖에 나가야 안 아프단 말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러고 있는데 통증이 오른쪽 다리에도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고관절에서 엉덩이로 내려가는 쪽으로. 그래서 앉았다 일어나면 그 부분이 우욱신거리며 아프다. 물론 그전에도 그 부분이 뻐근하긴 했다. 그거야 늘 있어왔으니 그러려니 했는데 없던 통증까지 생겼으니 병원에 다닐 수밖에.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에게서 그 결과를 들으니 뜻밖의 말을 한다. 다른 쪽은 괜찮은 편인데 허리가 안 좋단다. 그래서 어쩌면 수술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내가 평소 허리가 강한 편은 아니지만 수술을 고려할 정도로 아프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의사 말을 믿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그때부터 난 지금까지 트라이앵글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지금은 어떠냐고? 죽을 것 같다. 귀찮아서. 


글쎄, 일주일에 세 번을 다니면 더 나았을까? 그런데 세 번은 좀 무리인 것 같다. 물론 초기 땐 의사가 세 번 다니라고 해서 다녔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죽을 것만 같은데 세 번을 다니라면 더 죽지 않을까?


얼마 전엔 그동안 죄꼬리만큼 좌골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뭐 때문인지 다시 아팠다. 그래서 오늘은 의사와 면담이 있는 날이라 이 부분에 대해 얘기를 했더니 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고, 오히려 내가 이럴 수도 있나요, 저럴 수도 있나요 물으면 그럴 수도 있죠, 저럴 수도 있죠 맞장구만 칠뿐이다. 고작 한다는 말이, 원하면 약 처방전을 써 줄 수도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그리고 물리치료를 더 받아 보란다. 말에 의하면 이쪽 계통의 치료는 오래 받아야 한다니 의사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더 받아 볼 생각이지만, 왜 그런 말도 의사가 아닌 제삼자에게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초기 때 이런 병은 치료가 얼마나 가나요 했더니 모른다고 했다. 물론 그게 정답인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개인차라는 게 있으니. 그러나 평균치는 말해 줄 수도 있지 않은가? 그 평균에서 더 받는 사람도 있고 덜 가는 사람도 있겠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면 무조건 오래 받아야 한다고 하던가.  


그렇게 의사와의 면담 후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헛웃음만 나왔다. 한 달의 한 번씩 그런 날은 왜 만들었으며 누가 의사고, 누가 환자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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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9-07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원에 오래 다니셨네요 처음에는 병원이 가까워서 좋았을 텐데 그게 길어져서 안 좋을 듯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아질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걷기를 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걷는 것도 힘들다면 조금씩... 앞으로 좋아지시기를 바랍니다


희선

stella.K 2019-09-07 13:43   좋아요 0 | URL
이런 계통은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해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봄까지는 간간히 걷기 운동도 했는데
여름엔 덥고, 병원 다닌다는 핑계로 거의 안했죠.
이제 선선한 바람이 불면 또 다시 해 보려구요.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9-09-07 0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7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09-07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시네요.
그나마 병원이 가까이 있으니 다행이예요. 지방이라면 어디가 아플때 갈만한 병원을 집 가까운데서 찾기가 쉽지 않아요.
벌써 몇달째라니 힘드시겠지만 꾸준히 치료 잘 받으세요. 나으셔야죠.

stella.K 2019-09-07 13:59   좋아요 0 | URL
우연히 TV에서 신장 투석을 하는 환자 얘기를 들었죠.
일주일에 3번 4시간씩 받는다는데
저는 일주일에 두번 30분 정도 받거든요.
아고야, 불평하면 안 되겠구나 싶더군요.
네. 당분간 열심히 잘 받아보려구요. 고맙습니다.^^

2019-09-07 0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9-07 14:0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자리보존하는 병도 아닌데 이것 가지고 불평하면 안 되는 건데
인간인지라 불평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오늘 제 글 다시 읽어보니 좀 부끄러워졌습니다.ㅋ

2019-09-07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9-07 14:18   좋아요 0 | URL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어요. 그냥 그만그만 합니다.
제가 저런 글을 써 본 건 정보를 얻기 위함이기도 한데
그 병원이 유명하군요. 참고하겠습니다.
아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허리가 중요하다더군요.
자신도 다리가 아파 치료를 받았는데 의외로
허리가 안 좋으면 다리가 안 좋을 수 있다고 해서
나중에 허리 치료를 같이했더니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의사가 허리를 지목한만큼 저도 얼마 전부터 허리도 같이 받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마태우스 2019-09-07 16:51   좋아요 1 | URL
그럼요 허리는 중요하고요, 그래서 좋은 병원에 다녀야 합니다. 제가 다른 건 동네병원 가라고 하는데요.... 허리는 중요합니다!

syo 2019-09-07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원이란 정말이지..... 열라 가기 싫지만 안 갈 수도 없고, 열라 싫지만 믿을 데가 병원 말고 없고.....

stella.K 2019-09-07 15: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맞아!
근데 저의 불만은 의사가 너무 환자를 대충 대한다는 겁니다.
좀 열린 마음으로 어디가 불편한지 듣는 자세가 되야하는데
진지한 것 같지만 말을 편하게 못하겠더라구요.
사람의 느낌이란 게 있잖아요. 저 사람이 내 얘기를 잘 듣고 있구나, 아니구나하는.
그리고 환자 보단 고객대하는 듯하고, 좋아지고 있다고 하면 얼굴이 활짝 피고, 심각한 얘기하면 심각한 표정을 하면서 약 처방 얘기나 하고.
내가 묻고 내가 답하고. 그래놓고 진료비는 진료비대로 챙기고.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면담 시간은 고작 3분도 안 걸린답니다.ㅠ

cyrus 2019-09-07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을 먹거나 물리치료를 해도 계속 통증이 일어나는 환자들이 있을 거예요. 그게 유일한 최선책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완쾌되지도 않을 치료를 계속 받는 건 고역이에요. 비용도 아깝고요.

stella.K 2019-09-07 17:5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좀 불안이야. 이달까지 다녀보고 조만간 다른데를 알아 보던가
해야할 것 같은데 어딜 또 알아봐야할지 좀 막막하네.
그래도 오늘은 좀 낫다.ㅠ

페크(pek0501) 2019-09-09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르게 생각하면 스텔라 님이 건강에 신경 쓰고 살게 할 좋은 기회예요.
저도 소화불량 때문에 위 내시경 검사를 하게 되면서 건강에 관심이 많아졌거든요.
그래서 한 시간씩 걷기를 하게 되었고 무용도 배우게 되었어요.
만약 몸에 이상 증세가 없다면 건강에 자신이 있어서 운동을 안 했을 거예요.
그랬다면 걷기와 무용의 즐거움도 몰랐을 것이고 운동을 안 해서 나중에 더 큰 병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이왕이면 좋게 해석하시길...

빨리 회복되길 바랍니다.

stella.K 2019-09-09 19:53   좋아요 0 | URL
그렇긴 하죠. 맞아요.
그런데 하체 전반이 다 안 좋으니까 운동을 해도 좋은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대체로 걷기 운동이라도 하라고 그러는데
괜히 말 듣다 잘못되는 건 아닌가 걱정되더군요.
그러다 보니 살도 더 안 빠져요.ㅋㅋ
건강도 한번씩 바닥을 칠 때가 있잖아요. 이러다 또 좋아지는 때가 있겠지
편하게 생각하려구요.
그래도 건강한 사람 보면 부럽지 않을 수가 없어요.ㅠ
고맙습니다.^^

2019-09-11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1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9-11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추석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추석명절 보내세요.^^

stella.K 2019-09-11 19:41   좋아요 1 | URL
앗, 저는 늘 서니님 인사를 먼저 받는군요.
제가 먼저해야할텐데...ㅠ
아무튼 고맙습니다.
서니님도 행복한 추석되십시오.^^

북프리쿠키 2019-09-14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지보수 ! 힘내십쇼 ^^

stella.K 2019-09-14 14:23   좋아요 1 | URL
ㅎㅎ 네. 고맙습니다. 쿠키님도요.^^
 

암 치료 후 5년 생존이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는데,

어떤 사람은 5년 동안 투병하다 천국으로 가는 사람도 있다는 걸

나는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운 없는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물론 그분이 더 사셨으면 좋겠지만,

천국에서는 영원한 완치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고인의 가족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함께 조문 간 B집사가 어머니를 여읜 지 이틀 된 맏딸에게 장례식 끝나면 뭐할 거냐고 묻자

그녀는 대답처럼, 이제 집에 돌아가면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 고인을 땅에 묻고 산 사람은 당장 끼니를 생각해야 한다.

그게 삶이고, 살아 있음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고인을 등지고 얼마나 많은 끼니를 지어먹어야

천국에서 고인을 다시 만날까.

그때까지 끼니를 거르지 말고 오늘이라고 하는 날에 충실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 또 하루가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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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8-22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인분께서 소천하셔서 조문을 다녀오셨군요.
이제는 천국에 가시니, 이곳의 힘든 일들로부터 편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페이퍼를 다시 읽으면서, 매일 매일 하루를 산다는 것을 조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날씨가 많이 더운데,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열대야는 지나갔다고 하지만, 아직 덥습니다.
stella.K님께서도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19-08-23 14:19   좋아요 1 | URL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정말 세월이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을 해요.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를 너무 의미없이 보내서 그런 건
아닐까, 이왕 빨리 지나가는 세월이라면 뭔가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부딪혀 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죠.

요즘엔 통 서재에 글을 못 올리고 있습니다.
가끔 올릴만도 한데 이상하게 못 올리고 있어요.
저 아마도 올핸 서재의 달인 못할 것 같습니다.ㅠㅎㅎ
인터넷 연재 종료 이후 계획한 게 있어서 아무래도
그게 마음에 씌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마실 와 주셔서 고마워요.
서니님도 평안히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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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가끔 동네가 싸움판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어디서 싸움이 났다하면 삽시간에 사람들이 떼로 몰려가 동그랗게 둘러싸고 구경하느라 바글댔다. 세상에서 제일 볼만한 것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지 않는가. 정말 볼만해서라기보다 왜 불이 났는지, 왜 싸움이 난 건지 그 원인을 알고 싶어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건 우리 집과는 전혀 관련 없을 거란 모종의 믿음 같은 것이 배면에 깔려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아뿔싸. 우리 엄마가 싸움의 중심축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느 날 피아노를 갔다 오니 우리 집 앞에 한 떼의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웅성웅성 떠들고 있었다. 놀라 냉큼 달려가 보니 엄마가 한쪽 눈 밑이 파여서 빨간 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싸움의 상대는 며칠 전 우리 집에 한 포대의 밤고구마를 팔았던 아줌마였다.

 

그땐 밤고구마를 먹는 건 큰 행운처럼 여겨졌던 때라 그 아줌마 덕에 그걸 먹게 된 건 기쁜 일이긴 하지만 너무 밤이라 잘못하면 목이 미어 먹다가 죽을 판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이러다 내 아이들 잡겠단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반품을 요구했던 모양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안 된다고 했었던 모양인가 보다. 그러다 뭐 때문인지 기습적으로 돌멩이 하나를 들어 엄마한테 던지더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렇게 맞기도 다행이지 잘못하면 실명이 됐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아줌마는 시장판에서 싸움꾼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아니 그럴 것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상대를 말 것이지 우리한테 제대로 된 밤고구마 사 먹이겠다고 하다 이런 엄청난 사단을 벌이다니. 그렇더라도 좀 심한 것도 사실이다. 화가 난다고 사람이 어떻게 될 줄 알고 돌을 던진단 말인가.

 

그렇게 한바탕 했음에도 성이 안 풀렸는지 엄마와 그 아줌마는 내가 보는 앞에서 2차전 했다. 다행인지 그땐 부천에 사시는 외할머니가 와 계셔서 싸움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역시 오빠가 빠지지 않았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오빠는 그 아줌마의 뒤에 달라 붙어 머리끄덩이를 잡더니 한 뭉텅이의 머리카락을 뜯어내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얼마나 의기양양하고 장난기가 역력했다. 오빠의 그런 행동을 보면서 웃어야할지 말아야 분간이 가질 않았다.

 

결국 할머니가 악에 받혀 이것들아, 이년아.”하면서 쓰러졌는데 순간 신발이 벗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역시 할머니가 좀 웃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웃을 수는 없고 아무튼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 맘도 나도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금만 어렸더라도 잔뜩 겁을 먹고 엉엉 울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렇게 쓰러져서일까? 싸움은 생각 보다 빨리 끝났다. 요즘 같으면 누군가의 빠른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고 시작도하기전에 끝났을 것이다. 엄마와 할머니는 혼이 나간 듯 마루 끝에 걸터앉아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후 언젠가 여름에 수영장을 다녀오다가 차멀미가 나서 시구문 시장에서 택시를 내리자마자 어느 맨홀 뚜껑에 한바탕 토를 했다. 정말 내 일생 그렇게 많은 토를 해 본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 엄마는 급한 대로 물 한 양동이를 얻으려고 단골 야채 가게를 찾았는데 가는 날이 장난이었을까 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예의 그 고구마 파는 아줌마가 여전히 누군가의 머리 끄덩이잡고 싸우는 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 놈의 버릇은 어디 안 가는구나 했단다. 글쎄, 지금 같으면 분노조절 장애라고 이해도 할 텐데 그런 이해가 없던 시절엔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할지 그냥 혀만 끌끌 찼다.

                   

엄마는 세월이 흐르고 그때를 생각하면 창피하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안 그러겠는가. 나름 점잖은 마나님인데.

 

#엘리제를 위하여

그렇다고 내가 피아노를 단 1도 안 좋아했냐면 그렇지는 않다. 1 정도는 좋아했다. 그건 하논, 바이엘 이런 걸 치다가 피아노 명곡집인가 하는 악보집을 칠 때다. 특히 거기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란 곡이 있었는데 난 그것을 빨리 배우고 싶어서 조바심을 냈다. 난 그때까지 피아노 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물론이고, 당시 선생님께 같이 배웠던 나 보다 나이 많은 언니가 둘 있었는데(그들은 친자매지간이었다) 그들은 피아노를 유창하게 쳤을 뿐 아름답게 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나도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유독 <엘리제를 위하여>는 뭔가 낭만적이며 동시에 고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조바심을 냈던 것도 당연했다. 물론 선생님은 악보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가르치셨던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아무데나 내키는 대로 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훑었는데 몇 곡은 뛰어넘기도 했다. 왜 그런지는 알 수는 없었다. 그런 곡은 재미없다고 생각하신 건지 아니면 가르쳐 받자 내가 따라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신 건지.

 

아무튼 그 곡으로 인해 처음으로 피아노에 의욕을 보였으니 선생님도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배운지 얼마 안 돼 선생님은 무슨 사정에 의해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셨다. 그리고 나를 선생님의 친구에게 인계했다. 새로운 선생님도 나쁘진 않았지만 워낙에 내가 피아노를 싫어하니 엄마가 어느 날 결단을 한 것 같았다. 더 이상은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기로. 처음엔 그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정말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되다니. 이제 겨우 의욕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말이다. 난 좀 아쉽긴 했지만 미련 같은 건 없었다.

결국 내가 처음으로 의욕을 보인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는 엄마를 위한 내 마지막 헌정 곡이 된 셈이다.

 

                                                           <기억 수집가- 유년시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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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0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를 갔다오니˝ - 피아노 학원에 갔다왔다는 말이죠? 그 시대에 피아노를 배웠다면 유복한 집에서 자란 걸로 생각됩니다. 엘리제를 위하여,는 저도 칠 줄 압니다. 저는 제 친구들 결혼식에서 웨딩 마치를 쳐 줬어요.(남의 서재에 와서 내 자랑질을 하고 있음.ㅋ)

그런데 피아노를 친 지 너무 오래돼서 지금은 못 칠 거예요. 다행으로 여기는 건 피아노 배울 때 왼쪽 손의 손가락도 같이 치니까 오른쪽의 두뇌가 발달했을 거라는 거죠. 대부분 왼손은 잘 안 쓰잖아요. 타자를 처음 배울 때 피아노를 양손으로 치던 경험이 있어서 쉽게 배웠어요. 뭐든 배워 두면 안 배운 것보다 나은 것 같아요. 요즘 부모들이 애들에게 피아노 가르치는 건 피아니스트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두뇌 발달을 생각해서일 거예요. 양손을 쓰고 발은 페달까지 밟고 눈은 악보까지 보니 두뇌가 얼마나 바쁘겠어요. 그만큼 두뇌는 발달하죠. 머리는 쓸수록 발달하니까요.

저도 애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게 했어요. 오른손을 쓰면 왼쪽 두뇌가 발달하고, 왼손을 쓰면 오른쪽 두뇌가 발달하고. 두뇌 한 쪽은 이성과 논리 영역이고 다른 한쪽은 감성, 상상력 영역으로 알고 있어요. 양손을 쓰면 이성과 감성, 다 발달하겠죠. 저는 지금도 왼손을 많이 쓰려고 걸레질도 왼손으로 할 때 많아요.

어머님 싸움. 재밌습니다. 잊혀지지 않을 경험이겠습니다. 저는 불 구경은 재밌는지 모르겠고 - 안타까운 마음에 - 싸움 구경은 재밌을 것 같습니다.
기억수집가. 연재 제목이 좋습니다.
(쓰다 보니 댓글이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ㅋ)



stella.K 2019-04-05 14:42   좋아요 0 | URL
긴글 고맙습니다. 저도 제목은 마음에 듭니다.^^

2019-04-04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5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4-04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모 인간이 쓴 ‘창녕‘이라는 제목의 요상한 잡설이랑 느낌은 비슷한데 삼만 배 정도 더 좋네요

stella.K 2019-04-05 14:22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마워요. 제가 스요님으로부터 칭찬도 듣고.
그런데 좋긴 좋은데 구독하실 의향은 없으시고~ㅎ
전에 스요님이 글을 팔기 위해 꼭 책이란 물질적 요소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해서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 독자의 눈은 높은 것 같습니다.
감히 작가가 따라 갈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흐흑~


후애(厚愛) 2019-04-1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되시고 감기조심하세요.^^

stella.K 2019-04-15 14:15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후애님도요.^^

2019-04-21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2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