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지침 걷는사람 희곡집 3
오세혁 지음 / 걷는사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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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여러 장르가 있지만 희곡은 내놓은 자식 같아 왠지 짠한 느낌이 든다. 일반 독자들도 소설이나 에세이, 시는 읽어도 희곡은 잘 안 읽지 않는가. 나도 한때는 연극  대본을 썼고 지금도 간간히 기회 있을 때마다 쓰고 있긴 하지만 희곡은 잘 읽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무리 TV 드라마와 영화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도 책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희곡은 공연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헤겔은 희곡은 시와 소설의 특성을 다 갖춘 변증법적 형식이라며 가장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유럽의 이렇다 할 작가들도 희곡을 쓰기도 하고, 독자들 역시 일상적으로 희곡을 즐겨 읽는다고 한다. 과연 그런 풍토가 우리나라엔 언제쯤이면 정착이 될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희곡집을 읽었다. 이 책은 저자의 두 번째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연극 연출도 겸하고 있는데 첫 번째 책이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고, 두 번째 책은 그로부터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작가로서는 엄청 게으른 작가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공연을 해야 하는 연출가의 입장이라면 꼭 게으르다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자신의 작품이 공연이 되든 안 되든 꾸준히 쓰는 노력을 한다면 독자들도 언젠간 희곡을 공연용이 아닌 문학의 한 장르로 인식하고 읽게 되지 않을까? 아님 우리나라의 지명도 있는 작가들도 영역을 넓힌다는 의미에서 가끔 희곡도 써 주시던가. 시와 소설의 특성을 함께 두루 갖춘 분야가 희곡이라지 않는가. 보통 우리나라에 알려진 소설가들 그들의 시작은 시였다가 소설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젠 그러지 말고 희곡을 경유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저자가 필력이 있어 보인다. 수록작 모두 수준 있어 보이는데 그중 나는 '괴벨스 극장'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괴벨스는 알다시피 히틀러가 총애하던 인물이었고, 극은 그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히틀러의 눈에 띄어 나치 시대를 열어 나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선동가로서 문학 및 예술을 사랑했고 그것을 교묘히 나치 선동에 이용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장애자였고 삐뚤어진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알고 보면 그 자신 스스로가 그랬다기 보단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괴벨스란 인물을 작품 속에서 살려내면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그 엮는 솜씨가 제법 근사하다. 작가의 이런 풍자와 비판은 다른 여타의 작품에서도 보이고 있는데 희곡의 장점은 바로 이런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이런 파편화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에서 예술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기도 한데 과연 예술가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 한 번 작가의 작품을 귀로 들어봤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맨 마지막 수록작 '분장실 청소'는 연극의 마지막 공연과 함께 철거될 분장실에서의 철거반원과 배우, 가수의 처남 등이 펼치는 일종의 콩트 같은 느낌이기도 한데, 재치도 있으면서 웃픈 연극이기도 하다.      

      

앞서 희곡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요즘은 희곡집들이 꽤 괜찮은 판형으로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일반 독자들도 시야를 넓혀 희곡도 즐겨 읽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추천할만하다.  

 

햄릿이 연극에 대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잊지 말게. 연극은 인간의 영혼을 빛추는 거울이어야 하네.‘ 뭔 뜻인지 알아? 연극을 하기 전에 인간이 되란 소리야.너희들은 연극 하려면 멀었어. 왜냐? 인간이 덜 되었거든. 내가 너희를 배우가 되기 전에 인간으로 만들어 주겠다. - P20

생각하면서 살지 마라. 살면서 생각해라. 시대는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뀐다. 그때마다 시대의 부끄러움도 달라진다. 그때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라. 그럼 너는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다. 이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는 파릇파릇한 놈아.- P23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이여. 환난의 파도를 이 손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죽는다는 것은 잠든다는 것 잠든다는 것은 꿈꾼다는 것. 내게 꿈꿀 권리가 없다면 세상의 비난과 조소를 어찌 견뎌낼 수 있을까. 폭군의 횡포, 세도가의 모욕, 사랑의 고통, 무성의한 재판, 관리들의 오만, 세상 곳곳 악취를 풍기며 썩어들어가는 부패, 이 더러운 똥통 같은 세상을 어찌 참아낼 수 있을 쏘냐. 한 자루의 단도면 깨끗이 청산할 수 있을 것을.

주혁들, 박수

이게 바로 독백이야. 마음의 말이지. 일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말이지. 마음속에 흐르는 생각을 혼자만의 시공간에서 말하는 것이 독백이다. 연극이 위대한 이유는 독백이 있기 때문이야. 일상에서는 한 사람이 긴 시간 동안 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 말을 하지. - P29

인간이란 존재는 그런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과 살아가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과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굴 싫어하거나 경멸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를 냉담하게 만들었으며, 우리의 영리함은 우리를 차갑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생각은 많이 하면서, 느끼는 건 정말 짧습니다. 우리는 기계보다는 인간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영리함 보다는 친절함과 상냥함이 필요합니다. 이것들이 없다면, 인생은 폭력이 될 것이며, 우리 모두 헛되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미워하지 마십시오. 사랑받지 못한 미움일뿐이고, 자연스럽지 못한 증오일뿐입니다.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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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1-13 14:42   좋아요 0 | URL
그래도 셰익스피어 정도는 읽으시지 않으셨을까요?
기회되시면 함 읽어 보세요. 시나 소설과는 또다른 맛이 있어요.^^

페크(pek0501) 2019-11-14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곡 읽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예전에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다 읽었지만 소설에 비해 스피드를 내어 읽을 수 없었죠.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름까지 기억해 가며 읽는 게 부담스러워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희곡 <관객 모독>을 사지 않고 그의 소설로만 두 권을 샀어요.

좋은 희곡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읽어 보겠습니다.

stella.K 2019-11-14 14:27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솔직히 셰익스피어 좀 어려워요. 그런데 왜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고는 희곡을 논할 수 없는 것처럼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래서도 희곡을 가까이 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희곡은 많이 못 읽어서 감히 추천할 수 있는 수준은 못되구요,
얼마전에 읽은 범우사에서 나온 희곡 안중근도 괜찮고, <현대 명작 단만극 선집>이란 책도 꽤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나혜석의 생애를 다룬 희곡집으로 나온 게 있어 찜해 둔 적이 있는데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희곡 안중근 범우희곡선 37
김춘광 지음 / 종합출판범우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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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라 여기저기서 관련된 공연물들이 심심찮게 올려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론 안중근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영웅>이 10년 전부터 공연되고 있는데 사실 안중근 의사에 관해서는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오래전 연극으로 공연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김춘광이 쓴 <희곡 안중근>이다.


이 책은 오래전 사놓고 거의 방치하다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최근에야 완독 했다. 솔직히 사놓고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어 중고샵에 팔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뭣 때문인지 그러질 못했는데 역시 책은 읽는 때가 따로 읽는가 보다.    

 

이 책의 초판 발행이 2010년으로 되어 있어서 작가가 정말 그 무렵쯤 출간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것은 아니고 출판사에서 오래된 희곡을 발굴 편집해서 출판한 것이 그해란 말인 것 같다. 그래서일까? 대사의 어법이 좀 올드하다. 이를테면 어미를 우나 소로 종결하는 경우가 많다. 또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안중근 의사에 대한 비교적 초창기 텍스트였을 것이다. 뭐 그런 것만 빼면 내용면에선 상당히 충실하게 잘 쓴 대본이라고 생각한다. 


총 4막으로 엮어져 있는데 한 막이 시작할 때마다 그 막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나 느낌을 자세히 적고 있다. 특히 3막 같은 경우엔 다른 막에 비해 짧기도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으로 썼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작가가 얼마나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썼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알겠지만 안중근 의사는 김구나 윤봉길, 유관순 등과 함께 걸출한 독립운동가다. 작품을 읽으면서 독립운동가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무엇보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데 성공했다. 작품에선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그의 연보를 보면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학문보다는 사냥에 소질이 있었고 나중에 명사수가 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런 것만 봐도 독립운동은 그냥 마음만 먹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겠구나 싶다. 언제나 그렇지만 준비된 자가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마을 예배당에 순회 연설을 온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문명개화와 국권회복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조국 독립에 헌신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조국 독립에 헌신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곧 가족을 버린다는 의미다. 그때 안중근에겐 손이 한창 필요한 어린 자녀들이 셋이나 있었다. 극 중 아내가 남편이 너무 보고 싶어 큰아들과 함께 만나러 블라디보스토크에 오지만 안중근은 나는 가족이 없다며 싸늘하게 돌려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는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족을 보길 원치 않았다. 물론 나중에 어머니가 지어 준 수의를 받긴 하지만. 당시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가족을 떠났지만 이렇게까지 매몰차야만 했을까, 그렇게 하는 당사자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러기는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 안중근은 가족을 모른다고 했을까. 가족을 끌어안는 순간 자신의 독립의 의지가 꺾일 것을 저어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이 밝혀지면 가족들이 어떤 위해를 당할지 몰라 그렇게 했을 것이다. 독립운동가가 된다는 건 역시 보통의 의지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그는 이토 히로부미 즉 일본을 지극히 미워하고 경멸했다. 그 마음은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는 것 이상을 넘는다. 그래야 죽일 수 있을 테니까. 솔직히 당시 일본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 싫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들은 불특정 다수를 미워했다기보다 특별히 한 사람을 미워했을 것이다. 얼마큼?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리만큼. 그래야 죽일 수 있을 테니. 또한 아무나 죽이지 않았다. 조선 통치의 뇌관이었던 그 사람을 사살해야 일본을 무너뜨릴 수가 있다. 저격을 잘못하거나 일본의 피라미를 죽여봤자 아무도 안 알아주며 오히려 더 큰 화를 입을 것이다. 그러므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일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누군가? 조선통감부의 초대 통감이다. 당시 이 사건은 중국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나중에 그가 죽고 나서 사당을 지을 만큼 존경받는 인물이 된다. 


자신의 생의 마지막 날, 마지막 시를 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가 세상을 살 수 있는 건 어쩌면 그날과 그 시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인도 모른다. 그것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두렵고 낙심돼서 어떻게 살겠는가. 현대에 들어와서 사형수들은 자신이 어느 날, 언제 죽을지 전날까지도 모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만 해도 그게 명시되어 있었는가 보다. 그가 죽은 날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다. 전날 그는 물론이고 세 명의 감방 동료들 즉 우덕순과 조도선, 유동하는 잠을 자지 못했다. 날이 밝으면 한 사람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고, 살아 있는 사람은 그것을 지켜볼 것이다. 삶과 죽음이 가까이 있으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멀면 또 얼마나 먼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날 그들은 아침 9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조반으로 빵과 삶은 계란, 단무지 한 조각씩을 나눠 먹었다. 그야말로 그들에겐 최후의 조찬이다. 그들이 먹은 것 고스란히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갈 사람에게 터무니없이 형편없는 식사였을텐데 말이다. 


왜 그에겐 평범한 날들과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적인 행복이 주어지지 않았던 걸까.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죽어 마땅한 존재라고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민족이 그토록이나 경멸하고 미워했던 사람을 죽였는데 영웅인 양하지는 않더라도 자책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가 자책을 했다는 건 어쩌면 신앙인으로서의 양심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또 어쩌면 그가 죽을 때까지 해박한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동양평화론'을 썼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즉 그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경멸과 미움은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대의 때문인 것을 증명해 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 '동양평화론'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죽기 바로 직전 "나는 동양평화를 위하여 한 일이니 내가 죽은 뒤에라도 한 . 일 양국은 동양평화를 위하여 서로 협력해주기를 바란다."며 천주께 기도한 후 순국했다고 한다. 처형이 조금만 늦춰졌다면 완성하지 않았을까. 요즘의 한일 양국 간의 갈등을 생각하면 그의 미완성은 뭔가를 시사하는 것도 같다. 정녕 양국이 평화 공존할 날이 올까.  


아무튼 이만한 정신, 이만한 태도로 무장하지 않으면 독립운동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작품은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교회가 순교자의 피로 세워졌다면 나라의 독립은 순국의 피로 세워졌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그분들의 희생과 노고를 잊지 않는다면 우린 분명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우리 가슴속에 존경하는 독립운동가 한 사람쯤 품지 않고 산다면 그 또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판물로든 공연이나 영상으로든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독립운동가의 삶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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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9-30 19:19   좋아요 0 | URL
쓰진 않았지만, 일본도 일본이지만 우리나라는 왜 제나라도
제대로 못 지키고 사나 싶어요. 사실 그게 더 화가나는 일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앗기지 않고 살아가는 걸 보면
그건 역시 우리나라 특유의 민졳성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이 좋아 독립운동이지 아무나 할 수 있겠습니까.ㅠ

2019-09-29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30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04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04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9-2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곡이라서 그런지 뮤지컬로 나온 작품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네요.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stella,K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19-09-30 19:33   좋아요 1 | URL
서니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셨죠?
또 시작된 한 주도 힘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김구 큰작가 조정래의 인물 이야기 4
조정래 지음, 김재홍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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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위인 전기 꽤 읽고 자랐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어린이 위인 전기는 그 구성이나 디자인이 나 때와는 확실히 다르단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림도 다채롭고 흥미 돋게 만드는지.   

 

올해가 3.1 운동 100주년이니 이런 책은 좀 의도적으로라도 읽어줘야 할 것도 같은데 역시 게으른 나는 어떤 필요에 의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결국 일이 무산되는 바람에 의도적으로 읽어 준 셈이 됐으니 부끄러움은 면했다고나 할까? 그것도 이 책 완독 20 페이지 정도를 남겨놓고 무산이 된 것을 알았으니 그렇다고 책을 덮을 수는 없었다.

 

어린이 위인 전기로 읽어도 이렇게 뭉클한데 성인용으로 읽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더구나 이달부터 S 본부에서 아침 방송 때 김구의 증손과 모 탤런트가 그 옛날 증조할아버지 의 상해 임시정부 루트를 따라가는 방송을 했다. 그것과 겹쳐 이 책이 주는 감동이 배가가 됐다. 

 

최근 <스카이 캐슬>이란 드라마를 통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까발리기도 했지만 선생이 살았던 시절에도 못지 않았나 보다. 천한 신분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천출도 공부만 잘하면 입신양명할 수 있다는 기대에 과거 시험을 보지만 그는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했다. 그것도 그가 실력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온갖 입시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린 과거에 선생 같이 천한 출신은 아무리 똑똑해도 꿈도 꿀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마음을 추스리고 관상 같은 돈도 벌 수 있는 실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공부를 하기로 했는데, 그는 그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관상이 얼마나 안 좋은 상인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비록 관상은 안 좋지만 마음만큼은 넉넉하고 큰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 먹는다. 역시 사람의 마음은 운명을 뛰어 넘는 뭔가의 강력한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는 무엇보다 교육 사업에 힘을 썼다. 나라가 일본의 손에 넘어갔는데도 대다수의 백성들은 그게 뭘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그것은 인간의 게으름과 무지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인간의 무지함을 깨우쳐 국민의 주권을 되찾는 일에 평생을 바친다. 또한 그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 사상에 심취했고 후엔 기독교 신앙을 갖고 독립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그의 인생을 보면 역시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은 하늘(하나님)의 뜻에 있는 것 같다. 그는 몇 번의 투옥과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름도 몇 번을 바꿔 우리가 기억하는 김구로 남는다. 하지만 가장 뭉클한 장면은 상해로 넘어가 당대 쟁쟁한 독립 운동가들 이를테면 안창호와 안중근, 이봉창과 윤봉길 등과의 교우와 활약상은 정말 영화를 보는 것처럼 뭉클한데가 있다. 특히 이봉창이 일본 천황 암살에 실패 하지만 이 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훗날 윤봉길 의거를 돕는 과정은 어떻게 이런 영화같은 장면이 있을 수 있을까 읽으면서도 가슴이 찡했다.

 

의거가 있기 전 둘은 식사를 함께 한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윤봉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임에도 그는 너무나 태연하게 밥을 먹었고, 김구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를 지켜봐야 했다. 이 두 사람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지 감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한 사람은 이미 속세를 벗어났고, 한 사람은 나라를 구해야 하는 대의명분하에 동지의 죽음을 그저 지켜봐야만 한다. 이들의 마음의 거리는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안에서도 우주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것이다.

 

또한 둘의 시계를 바꿔 갖는 장면. 즉 윤봉길은 그 무렵 마침 새 시계를 갖고 있었고, 김구는 낡은 시계를 가지고 있었다. 윤봉길은 자신은 이제 몇 시간 후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니 새 시계가 필요 없다며 기꺼이 김구의 낡은 시계와 바꿔 갖는다. 그리고 죽어서 다시 만나자는 말도 남긴다. 하지만 실제로 김구가 윤봉길을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에서 만나기까지는 얼마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문득 이즈음을 읽고 있는데 김구를 비롯해 당대 독립운동가들은 그렇게 정말 조국의 독립에 몸을 바친 걸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을까? 갈등이 없었을까? 순간 순간 몰려오는 두려움과 피곤함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런 인간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들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인간은 그렇게 순간 순간 연약한 존재다. 그때마다 다 잡고 이루어냈을 독립이었을 테니 그들의 희생이 어찌 값지다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얘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나라면 얼마를 버텨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이런 독립운동가의 말할 수 없는 희생이 있어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란 또는 한국이란 국호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매일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비리와 파벌 싸움 등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는 독립 운동가의 후손답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나라는 그냥 지켜지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하면 그들의 희생에 값하며 후손으로 사는 것이 될지 매일 매 순간 생각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만 같다.

 

김구는 그토록이나 바라던 조국해방의 그날을 보긴 했지만 그 이후 하나된 조국을 보지 못해 포효하는 듯한 울음을 삼켜야 했다. 그것도 부족해 안두희의 총탄에 암살을 당해야 했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서글픈 불행이랴. 또 어쩌면 그가 그렇게 갔기 때문에 그의 행적과 뜻은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그는 나에게 '마음 넓게, 우직하게' 살아간 분으로 기억됐다. 제발 그를 비롯해 독립 영웅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우리가 잘 살아내야 한다고 이 독립 운동 100주년이 되는 싯점에 그분들의 영혼에 머리숙여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더불어 이 뜻이 어린 후손들에게도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작가나 독자들이나 노력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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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9-03-25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혹시 왜수만복(倭水滿腹)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이 단어를 쓰시고 나서
임진왜란 상황을 설명하신 이야기인데 너무 끔찍해서 잊혀지지 않는 말입니다.

이순신장군, 김구선생, 안중근의사 같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없었다면
악마의 얼굴을 한 일본 놈들의 치하에서 아직도 종노릇하고 있을겁니다.
얼빠진 뉴라이트들은 일본이 조선 근대화에 도움을 주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지만
그 놈들은 구한말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었거나
이후 그 밑에서 마름질하던 놈들의 후손들이 틀림없습니다.

지금도 잘 나가는 정신나간 현역국회의원이 일본자위대 기념행사에 참석했던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던 일이 있습니다.
이런 인간들이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면 국민들이 탄 배가 침몰되고 있는데
또 다시 머리를 만지고 마사지나 받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보수, 진보를 떠나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초개같이 던지며
독립운동, 아니 독립전쟁을 치른 김구선생님의 높은 뜻을
후손된 우리는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stella.K 2019-03-25 18:12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그 옛날 독립 선조들은 자신을 이렇게 헌신했는데
과연 나라가 어려움에 빠지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제발 조상의 뜻에 누가되면 안될 텐데 한숨만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는 스스로 나라를 팔아 먹은 적전 또한 있는지라
앞으로 그런 정신나간 일을 하지 말라는 법 없죠.
부지런히 이런 책이라도 열심히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구 선생 이야기는 가슴 저미면서도 너무 멋있는데
왜 영화를 안 만드는지 모르겠어요.ㅠ
긴 글 고맙습니다.^^

syo 2019-03-26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국사 공부하면서, 요런 책들을 더 잘 읽을 수 있는 소양이 쌓이고 있는 중이에요. 흥미도 막 생기구요. 그야말로 주입식 암기 교육의 혜택(?)입니다.....

stella.K 2019-03-26 10:26   좋아요 0 | URL
ㅎㅎ역사는 시큰둥 하다더니 잘 됐군요.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요 시대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지더라구요.
어린이 위인 전긴데도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어른도 혹할만큼...^^

2019-03-29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30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설 보다 : 봄-여름 2018 소설 보다
김봉곤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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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한다. 이 말은 적어도 30년 전부터 있어 온 말이다.

정말 책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한다. 이 책을 보니 왠지 그 말이 더 실감이 난다. 예전에 이런 사이즈의 책은 시집 외엔 나오지 않았다. 그것도 바로 이 문지를 콕 찝어 얘기하는 거다. 그런데 소설이 이렇게 나온다는 게 왠지 책 안 읽는 시대에 뭔가의 자구책인 것 같아 마음이 짠하고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그것도 작가 한 사람이 아니라 무려 네 사람의 작품을 담았다. 게다가 인터뷰까지 들어가 있다. 마치, 이렇게까지 만들었는데 늬들(독자들)이 진짜 안 읽을 거니 하는 것도 같다. 또 가격을 얼마나 착한가? 오지게 착하다.

 

더구나 잡지 형식이다. 격월이나 계간처럼 정기적으로 나온다. 또 문고본으로도 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한 30년 전 삼중당 문고와 범우사의 문고본이 생각이 난다. 거의 쌍두마차 아니었나? 그러다 책의 고급화 전략에 따라 거의 사라지다 얼마 전부터 다시 나오는 줄로 알고 있다. 반갑긴 하다. 휴대하기도 좋고. 무엇보다 나 같은 경우 마음은 있으나 소설을 생각 보다 많이 읽지 못해 요즘 작가들이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에게 이 책은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니 좋다. 다른 책을 사는 김에 끼워서 샀다. 7, 8천원만 해도 안 샀을 거다. 

 

좋기는 한데 한편으론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들이 장편을 잘 안 쓴다고 하는데 더 안 쓰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도대체 신인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알 수 없지만 좀 스폰서 제도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이 좀 안 팔리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학상이나 타야 겨우 작가를 알아 보는 구조니 이 문학상 한 번 타 보겠다고 난리 브루스를 칠 작가지망생들만 늘려 놔서야 되겠는가? 그런 시상 제도에 의존하지 말고 잘 쓰던 못 쓰던 꾸준히 쓰고 가능성 있는 사람을 발굴 계속 후원한다는 쪽으로 흘러주면 좋겠다. 지난 몇년 간 우리 문학계는 많은 자성과 비판, 질타들이 오고 갔을 텐데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이런 얇은 책을 통해 요즘 작가들의 작품 성향을 알 수 있게 된 건 반가운 일이다. 어떤 독자는 특정 작가에 대해 작품이 나오면 막 환호하고 그러던데 난 뭘 몰라서 그런지 환호할 정도인가? 의아하다. 그러나 누군가는 환호해 줘야할 것이다. 그래야 그 작가가 클 수가 있다. 요즘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이 외국어로 번약되는 경우가 빈번해졌나 본데 반가운 일이긴 하다. 이것도 다 한류의 영향은 아니겠는가? 케이팝은 물론이고 음식, 영화, 뷰티쪽에서 강센데 문학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있겠는가. 제발 문학에서도 한류 열풍이 불기를 기대해 본다.

 

작년에 김봉곤 작가를 처음 발견했다. 물론 그의 작품을 읽어 본 것은 아니고 무서운 신예 작가라고 치켜 세우던데 그때 그의 책 표지가 제법 심쿵했다.  

 

그런 소설이 있기는 한다. 책에 나온대로 온전히 자신을 재료삼아 쓰는 이야기. 화자가 곧 작가 자신이어서 어디를 갔으며 무엇을 했는지를 시시콜콜하게 밝히는. 나도 한때 습작이긴 하지만 그렇게 써 본 적이 있기는 하다. 쓰는 작가로서는 이것만큼 사실적이고 잘 아는 이야기가 어디 있겠는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뭔가 작두를 타는 느낌이다. 과연 이래도 되는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작가는 게이로서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귄 이성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니 오래 전 어느 연예인이 우스갯 소리로 한 말이 생각났다. 그럼 남자가 여자 좋아하지 남자 좋아하겠냐고 했던 말. 그건 자신이 바람둥이로 오해 받는 게 싫어 애둘러 말한 건데 그때는 그런 농담이 통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요즘 똑같은 말로 사람을 웃기려고 한다면 뜨아할 것이다. 요즘은 성적 취향이 고려되는 시대니까. 

 

내용에 보면 화자의 이성 친구 혜인이 갑자기 자신에게 가슴을 밀착시켜 빤히 쳐다보더라는 설명이 나오던데 문득 그녀는 왜 그랬을까 싶다. 적어도 독자인 나는 화자가 신기하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정말 이성에 관심이 없는 거니? 뭐 그런 의아함. 다시 한 번 보라는 의미에서 그러지 않았을까? 성적 취향이야 감히 뭐라고 얘기는 못하겠다만 난 좀 보수적이라서 그런지 자꾸 이성간의 관계가 줄어드는 것이 못내 아쉽다. 이러다 다음 세기 땐 역전이가 돼 오히려 이성간의 관계가 특이해 보이는 것으로 변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창조주가 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는지 재조명 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제일 재밌고 의미있게 읽은 건 조남주의 <가출>이다. 나도 읽으면서 얼핏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생각이 났다. 부재로 인해 그 사람을 다시 한 번 재인식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런 심리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아버지의 부재가 가족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게 또 그닥 불행하거나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오히려 하나로 모이는 계기가 된다. 어머니는 평생 살림하느라 이골이 났건만 그래도 가족회의를 위해 가족이 모인다고 먹일 반찬을 해 대는 걸 보면 그것 밖에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건 거의 본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평생 뼈빠져라 가정에 헌신했으니 마지막으로 내 멋대로 살아보겠다고 해서 가출한 건데 이게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가장의 무거움, 굴레. 자유에 대한 갈망. 그렇더라도 가장이 된 건 오래 전부터 당신 자신의 선택이니 끝까지 지키면 안 되는 걸까? 뭔가 이제까지 그럭저럭 지켜왔던 삶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것 같아 짠했다. 하지만 일시적이더라도 그런 기간은 필요한 것 같긴하다.

 

이내 더 잘 된 건 가족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가출로 인해 그동안 억압된 것들이 뭔지 모르게 자유로워지면 새로운 질서가 생기려고 하고 있다. 우린 그 누군가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도 그 누군가가 없이도 잘 사는 존재들이다. 무엇보다 우린 누군가 가출하면 클 나는 줄 알고 일탈이라며 죄인, 부적응 뭐 이런 이미지를 덧씌우기 좋아하는네 여기선 오히려 긍정적인 면들이 보인다. 그건 또 아버지가 어딘가 살아 있다는 수신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전혀 찾을 수 없다면 그런 긍정적인 변화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또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새들은 죽을 때가 되면 무리를 떠나 홀로 있다 죽는다고 하던데,  자신이 죽을 때 남아 있는 가족들이 사별의 슬픔을 덜 느끼게 해 주려면 가출도 괜찮은 방법이겠다 싶은 것이다. 나의 죽음으로 인한 부재를 가족들에게 미리 학습시켜 주는 것이다.  우린 애정의 집착을 떠나 그 사람이 그곳에 잘 있겠거니 하는 믿음을 가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김혜진의 <다른 기억> 역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 믿는 것이 정말 올바른 믿음인 건지, 소문과 추측만 가지고 그 사람을 그렇게 보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 사람은 이렇게 반듯하고 흐트러짐 없고, 힘든 상황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려고 하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변절자, 악덕업자, 천하의 죽어 마땅한 사람으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어떤 게 그의 진실된 모습인지 시간만이 그 진실을 밝혀 주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몰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이 등장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 그 질서에 순응 못하면 짤리거나 그만두는 건 확실히 폭력적 상황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다는 걸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흘러 간다는 것을 또 한 번 각인시켜준 소설이다. 또한 세상의 가짜 뉴스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나약한 인간을 잘 묘사한 것 같아 좋았다. 내가 좋다고 말하는 건 생각할 꺼리를 줘서 좋다는 거다.

 

정지돈은 나에게 언제나 그렇듯 잘 이해가 안 되는 작가다. 그러다 어느 무가지에 짧은 소설을 연재하는 것을 보고  꽤 색다른 느낌이었다. 작가가 이렇게도 쓰는구나 하는 새로운 자각 뭐 그런. 그러다 이 책에 실린 그의 작품을 읽고 예전에 읽었던 <내가 싸우듯이>이가 생각이 났다. 보통 작가들은 현실에서 문제 의식과 부조리함 뭐 그런 걸 끄집어 내지 않나? 그런데 이 작가는 무슨 문화계 르포르타주 형식이라고나 할까? 일반인들이 문화계 전반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니 이렇게라도 접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면 있는 거지만 난 왠지 작가의 특이함이 긍정도 부정도 못하겠다. 하나 확실한 건 난 이 작가와 친해지기는 힘들겠구나 하는 것. 

 

그러지 않아도 그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것을 뒷받침 해 주었는데, 인터뷰어인 김신식(이 사람은 또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문학평론가인가? 아님 출판사 편집 일을 하나? 이런 거 정도는 밝혀주면 좋을텐데)이, '...지돈 씨가 염두엔(이거 오타 같다. '염두해' 아닌가?) 둔 향후 계획을 공유 해'달라니까 그가 그런 말을 한다. "미래를 생각하진 않습니다. 너무 무섭기 때문입니다." 한다. 그래도 이 작가가 어디까지 가나 궁금하긴 하다.

 

얼마 전, 2019년 봄-여름호가 나왔나 본데 기회있는대로 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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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3-1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책 읽기를 하고 계시는군요.

김봉곤 작가의 출현이 어쩌면 문학계에 새 바람을 불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게이들의 사랑이야기 자체도 새롭지만 작가 자신이 게이임을 드러냄 또한 흔한 일이 아니라서요.
낙서처럼 막 쓰는 듯한 글 스타일이 노래로 말하면 꼭 랩을 듣는 듯하더군요. 저는 적응이 잘 되지 않더군요. 김봉곤의 <여름, 스피드>를 읽고 나서 든 생각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stella.K 2019-03-18 14: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김봉곤은 좀 적응이 안 되더군요.
무슨 사소설이라고나 할까?
물론 가끔 사소설이나 자전 소설이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소설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선 혹 할만하다 싶기도 해요.
이런 소설도 먹히는 세상이 되었구나 싶어서.
솔직히 저도 이렇게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거든요.
역시 사람은 간사한 것 같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2019-03-18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8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왜 니나 그리고르브나의 무덤을 찾아갔나
송영 지음 / 문학세계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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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 오래 전부터 들어 본 이름이긴 했다. 하지만 난 언제나 그렇듯 우리나라 대표 작가들, 그것도 80년대 활동한 작가들 외엔 그다지 아는 바가 없다. 물론 그도 이때를 전후로 활동했을 것이다. 내가 이제야 그를 알아봤다는 건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긴 내가 이름만 알고 책 한 권 읽어보지 못한 작가가 어디 송영뿐이랴? 그렇게 생각하면 그는 차라리 늦게나마 운이 좋은 작가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작가는 지난 2016년도에 유명을 달리했고, 이 책은 그의 유고집이다. 그가 아직도 살았다면 게으른 독자인 나는 여전히 그를 외면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알고 봤더니 나름 꽤 유명한 작가겸 예술가다. <땅콩 껍질의 속의 연가>란 제목은 나도 들어 본 것 같다. 이게 난 영화 제목만으로 알고 있는데, 베스트셀러 소설이고 후에 뮤지컬과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밖에도 몇 편의 소설이 있긴 하지만 알려진 명성에 비하면 과작이고, 클래식과 바둑에도 조예가 깊다고 한다. 또한 책 제목에서 얼핏 알 수 있듯이 작가는 러시아 문학에 심취하기도 했다. 책에도 나오지만 <의사 지바고>를 무려 3번이나 읽었고, 표제작인 <나는 왜 니나 그리고브나의 무덤을 찾아갔나>에선 러시아 현지의 어느 문학 회의에서 대학교 때 읽은 톨스토이의 <참회록>아니면 <인생독본>을 읽고 전율하다시피 했다며 작가의 러시아 문학 사랑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이 단편집의 특징이라면 맨 마지막에 나오는 <투계>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겼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친했던 자신의 둘째 형이 눈앞에서 죽고 그로인한 충격으로 아버지가 정신분열을 앓게 된 사연. 탈영해 7년 동안 숨어 살다가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이야기와 표제작을 비롯해 <라면 열 봉지와 50달러>, <금강산 가는 길> 같은 경우도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시시콜콜하게 이야기 한다.

 

이를 두고 장석주는 해설에서 왜 송영의 소설 세계는 원체험을 되풀이하고 변주한다고 썼는지 모르겠다. 그는 또 사적 체험이 작품의 모티프를 이룬다고도 했는데, 솔직히 이건 여타 소설가들이 많이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볼 때 송영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옮겼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본명을 밝힐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니셜을 사용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등장인물은 실명을 그대로 사용했다. 예를 들면 최인호 같은 작가는 이름 그대로 나온다. 물론 그래봐야 아주 짧게 나오지만 뭔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도 같고 약간의 흥미와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또 어찌 보면 작가가 그렇게 한 것은 그리도 경외해마지 않았던 <의사 지바고>처럼 리얼리즘을 추구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여기서 우린 무엇을 소설이라 하며, 소설은 어때야 하는 것인가를 좀 더 진지하게 물어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일단 소설에 붙는 용어가 다양해졌다. 순수소설, 장르소설은 기본이고, 비소설, 논픽션 소설, 르포 소설, 일명 교양 소설이라 부르는 자전 소설에 에세이 소설 등 이 모든 것을 어떻게 구분해야할지 대략 난감해졌다.

 

무엇보다 송영의 작품들은 장석주의 말마따나 심심할 정도로 사건이 없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 따라 지루할 수도 있고, 기승전결을 따지고, 플롯과 장르 따지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소설이냐며 읽다가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나 역시 좀 지루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흥미롭게 읽었다. 한 작가의 삶의 기록으로서의 소설로 읽힌다면 말이다. 어차피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소설이라면 굳이 그것을 모티프로 하고 변주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냥 나의 있는 그대로 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소설은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래 전 나도 소설가을 쓰고 싶어 했던 적이 있었다(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때 누가 그렇다면 무슨 소설을 쓰겠냐는 말에 대답을 못한 적이 있다. 그건 정말 말문이 막혀서가 아니라 나도 송영 같은 사실주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그땐 그런 것도 소설로 볼 수 있는지 확실하게 장담할 수가 없어 말할 수가 없었다. 자전 소설이라면 모르겠는데. 그리고 설혹 있다고 해도 뭉뚱그려서 자전 소설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만큼 소설을 보는 시야가 그리 넓지 못했다는 얘기다. 하긴 카프카의 소설은 미완성 소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그 자체로도 소설이라고 본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나라 같은 문학 풍토에서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이런 되다만 소설을 감히 들이 대냐고 화를 내야 맞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느 문학상 후보에도 들지 못하고 몇 줄 읽다 자동 폐기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완성 소설은 이 소설집에도 나온다. 이를테면 첫 번째 수록작 <화롄의 여인>이나 <나는 왜 니나 그리고르브나의 무덤을 찾아 갔나>가 그것인데 그에 대한 작가의 변이 작가노트에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습작 같은 느낌도 드는데 우린 또 습작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가? 습작이야 말로 미완성 작품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어쩌면 우린 그 작가의 완성작 보단 이런 습작 또는 미완성작에 더 주목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완성작은 어찌 보면 독자와 평론가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듬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책으로 나오기 전 편집자 같은 타인들이 초고라고 받는 작가의 작품은 사실 작가에겐 최소한 재고를 거친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니까 습작 또는 미완성작은 어떤 의미에서 작가에겐 최초의 초고(?).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쓴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원고. 그것을 보는 건 좀 더 의미가 있을 것도 같다. 이를테면 정사 보단 야사가 더 흥미롭고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는 이치와 같지 않을까.

 

사실 작가는 처음부터 어떤 소설을 쓰겠다고 해서 쓰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큰 그림을 그리고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자신이 뭘 추구하는지도 모르고 단지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욕망을 가지고 블록을 쌓듯이 한 작품, 한 작품 쓸 뿐이다. 그러다 보면 작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비로소 자신도 알아듣고 그때야 비로소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말하지 않을까?

 

사람들 저마다 자신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게 그 사람을 말해주기도 한다. 작가와 작가가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건 바로 그런 것일 게다. 작가가 아닌 사람은 말만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말을 글로 쓴다. 말은 휘발성이 있지만 글은 문자로 남는다.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글은 나를 세우는 글이어야 하고, 자기 성찰적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물며 그것을 소설로 풀어내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또 그런 의미에서 장석주의 해설은 너무 기존의 소설의 틀에서 작가의 글을 풀이한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웠다. 다른 장르는 몰라도 소설은 언제나 열린 사고를 가지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가가 성공한 작가일까? 난 솔직히 작가가 작품에서 어떤 문인 협회에 가담하고 그 덕에 중국도 가고(화롄의 여인), 러시아도 가고(나는 왜 니나 그리고르브나의 무덤을 찾아갔나), 금강산도 가고(금강산 가는 길), 몇몇의 우리가 잘 알만한 작가들과 교류했다는 게 부럽긴 했다. 하지만 그게 반드시 성공한 작가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궁극적인 건 아닌 것 같다. 독자로서 어떤 작가의 작품을 한 번 읽어주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작가가 구축하는 문학을 이해하고 지켜봐 주는 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독자를 한 명이라도 가진 작가가 있다면 그 작가야 말로 행복하고 성공한 작가는 아닐까? 송영. 그가 지금도 살아 여전히 작품 활동을 했더라면 오래 지켜보고 싶은 작가임에 틀림없다. 사람이 잊힌다는 게 제일 서럽다는데 작가는 내게 너무 늦게 온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동시에 유고집이란 이름으로 만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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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4-18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로필사진 바꾸셨군요. 어느 집 앞 자전거네요.
stella.K님, 즐거운 수요일 보내세요.^^

stella.K 2018-04-18 16:15   좋아요 0 | URL
ㅎㅎ 네. 좀 지루한 것 같아서요.^^

2018-04-18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4-18 17:58   좋아요 0 | URL
ㅎㅎㅎ 할렐루야! 알겠습니다.
꼭 첫번째 독자로 모시도록하겠습니다.ㅋㅋㅋ

페크(pek0501) 2018-04-19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이상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점을 정확하게 포착해 그것에 대해 깊게 이해하게 되어 소설을 쓰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안 비밀을 독자들에게 터뜨려 주겠어.‘ 하는 생각으로. ㅋ

stella.K 2018-04-20 14:27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죠. 그런 이유로 소설을 쓰기도 하죠.
그러고 보면 언니도 뭔가 생각해둔 소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터뜨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