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한국 여성의 인권 투쟁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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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성학 강의를 처음 들은 건 90년대가 막 시작 되고나서였다.

이 여성학이란 학문이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가 언제부터였을까? 멋대로 말해보자면 70년대 말 80년 대 초쯤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따지자면 난 10년 후에 강의를 처음 들었다는 말이다. 그때 무슨 강의를 들었는지 기억나는 건 없고, 딱 하나 기억나는 건 여성학은 양성이 평등해지면 없어질 학문이기 때문에 영어로 표기하면 이론을 뜻하는 logy란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고 했다. 즉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우리나라 언어 표기상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듣는 여성학 섭섭하게 여성학은 학문이 아니라니. 그렇지 않아도 여성이 뭐하나 제대로 대접 받는 것도 없으면서 이런 것조차도 차별을 받는구나 싶기도 하고, 먼 미래의 일이긴 하겠지만 양성 평등이 이루어지면이란 전제가 있으니 희망을 가져 봄직도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얼핏 했던 것도 같다. 그로부터 30년 정도가 흘렀다. 격세지감이다. 그땐 교양 정도로만 생각했던 페미니즘이 30년이 흐른 지금 이렇게 뜨거울 거라곤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이 책을 들었을 때 정말 근질근질했다. 읽고 싶어서. 제목이 확 끌리지 않는가? 더구나 저자가 그 유명한 강준만이다. 사실 난 그렇게 저자가 유명해도 그의 책을 읽어 본 기억이 없다. 이 책으로 그의 필력을 접하게 되었으니 차라리 근질근질이 아니라 두근두근해야 맞지 않을까?

 

얼핏 제목만 읽으면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남성들의 이야기인가 싶어 내심 반가울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건 가부장제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과격한 방식의 페미니즘은 오빠들이 허락해 줄 수 없다.’는 식으로 독재가 허락한 민주주의’, ‘회장님이 허락한 노동운동’, ‘백인이 허락한 흑인운동뭐 이런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에서의 페미니즘은 아니란 소리다.

 

나 역시도 주위에 가끔 페미니즘에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을 본다. 남자가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다. 여성으로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갑자기 본의 아니게 언쟁이라도 해 보라. (물론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이 인간은 별 수 없는 마초라는 걸 알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면 여자는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남자라고 해서 다 여자들에게 우호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필터링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남자들 중엔 진정으로 여성의 문제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을 교묘히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써 먹는 사람도 있더라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분노하기도 하지만 또 어찌 보면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인간 세계는 그런 거니까. 아무리 순수한 마음에서 페미니즘이나 여성 문제를 이해한다고 해도 어차피 남자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뼛속까지 여자로 거듭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일 아닌가.

 

이 책은 제목은 그렇긴 하지만(나 개인적으론 이 제목이 왠지 마음에 든다) 지난 1990년대로부터 최근까지 여성 문제의 쟁점을 연대순으로 짚어 본 책이다. 매번 저자에게 놀라긴 하지만, 저자는 또 언제 우리나라의 여성문제를 이렇게 시대별로 꿰었을까? 저자의 근면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득, 페미니스트는 타고나는 것일까?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한국인인 것처럼, 페미니즘의 시대에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물론 그 아이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가 결국 페미니스트가 되도록 만들겠지만, 결국 여성의 권리를 주장해야 비로소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남자지만 나 보다 더 많이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내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페미니즘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공부하고 분발해야 되는 것이다.

 

궁금하다. 이렇게 페미니즘이 뜨거운 건 우리나라만의 현상인건지, 아니면 미국이나 유럽 같은 나라에선 이미 지나간 것을 우리나라는 이제야 맞이한 건지. 이렇게 페미니즘 열풍이 불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민주화 운동 때 함께 일어났어야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그랬다면 우리나라는 지금쯤 완전한 선진국 대열에 올라있지 않을까?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선진국이란 나라치고 여성이 사회에서 소외되는 일은 없다.

 

읽다보면 이토록 치열하고 맹렬했었나 싶기도 하다. 그것은 해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왜 이제와 이토록 치열하고 맹렬해야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유시민의 말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장관 재임시절 해일이 몰려오고 있는데 조개나 줍고 있느냐며 여성의 문제를 별 것 아닌 양 취급했었다. 물론 유시민뿐이었겠는가? 보수든 진보든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최근 김어준을 비롯한 3인방이나 탁현민 같은 사람이 보여준 언행들을 보면 여자에 대해 이토록이나 무지할 수가 있을까?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유시민의 말이 이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앞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사람이 정치하도록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메갈리아나 워마드와 일베 같은 극우 단체들의 미러링을 내세운 격렬한 싸움 그리고 최근의 미투 운동과 이를 저지하거나 역미투 운동들을 보면 이제 남자와 여자는 뭔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게 과연 페미니즘 운동인가 싶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면 이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 누구도 장담 못하겠다 싶다.

 

특히 <82년생 김지영> 나오자 그에 대한 대안(?)으로 <82년생 김지영과 72년생 유시민>이 나왔다는 걸 알고 비록 읽지는 못했지만 여자와 남자는 이런 식으로 밖에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걸까?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해일이 올지라도 조개를 주워야 할 때 줍지 못했던 과도기적 현상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게 얼마나 갈는지 모르겠다. 좋은 세상이 오면 서로를 이해할 날도 오지 않을까? 그날이 올 때까지 막연히 견디는 수밖에 없겠다 싶다. 남북관계도 봐라. (물론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이런 날이 올 거라고 누가 감히 생각했나. 남녀관계는 남북관계보다 가깝다. 갈 때까지 가 보고 그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와 길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물론 남자와 여자가 한번 틀어지면 고비사막만큼이나 먼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창세전부터 이 지구에 있게 하기로한 하나님의 작품이다. 이 지구가 존재하는 한 남자와 여자는 공존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잘.

 

그렇지만 지금으로선 페미니즘의 전망이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여성 현대사를 정리한 것이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구체적인 전망까지는 나와 있지 않다. 적어도 지금의 전투적 페미니즘까지가 페미니즘의 끝은 아닐 것이다. 내가 그 옛날 들었던, 양성평등이 이루어지면 없어질 학문이 맞는다면 우린 전투적 페미니즘을 넘어 기필코 양성평등까지 가야한다. 그것은 남자가 아무리 거부해도 할 수 없는 페미니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페미니즘이 이렇게 힘들 게 가야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페미니즘을 잘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린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배려한다면 그런 곳에 굳이 페미니즘을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남자와 여자가 치열하게 싸우는 것만 같아도 또 어디에선가는 남자와 여자가 그럭저럭 잘 지내는 곳도 있지 않을까? 단지 아쉽다면 그런 연대가 제도나 정치로까지 확장되면 좋은 일이겠지. 중요한 건 그런 평화롭고 평등한 인류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다리를 놓으려고 페미니즘이 가는 거라면 할 말은 없다. 아니 잘 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학문이 아니라지만 페미니즘은(사회운동이지 않을까?)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이론을 빌어 여자가 얼마나 많이 소외되고 고통 받아왔는지를 증명하려고 했다. 남성이, 이 사회가 알아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 온 것이다. 과연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얼마만한 학문적 이론이 필요한 것일까? 학문이 사랑을 대신할 수 없는데 우린 사랑을 종종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거나 잊고 그 자리에 온갖 이론과 법과 제도로 덕질을 하며 살아 온 것은 아닐까?

 

물론 페미니즘을 아는 남자가 그것은 전혀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 보다 훨씬 희망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데 무슨 이론이나 법이나 제도가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구 반대쪽 어느 오지의 이름 모를 부족은 페미니즘의 페 자도 모르고 살아도 서로를 위하며 잘 사는 부족도 많다. 그런 것처럼 남자들 중엔 페미니즘의 알고 모르고를 떠나 천성적으로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여자들은 이런 남자에 호의적이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로 이런 공통분모를 넓혀 나가는 것도 페미니즘이 감당해야할 부분이라면 부분이지 않을까?

 

지금은 페미니즘이 너무 힘들게 간다 싶기도 한다. 그래서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힘들어도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때가 되면 좀 유연해지고, 확장적이며 인간 회복의 희망을 보여주길 바란다.

페미니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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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8-31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년대 시작될 때면 제가 초등학생도 되기 전인데 그때 스텔라님은 벌써 페미니즘 강연을 듣고 계셨군요. 선구자시다.....

stella.K 2018-09-01 13:58   좋아요 0 | URL
ㅎㅎ 선구자는 나혜석 같은 양반이 선구자죠.
초등학교 땐 저도 페미니즘 똑같이 몰랐을 겁니다.ㅋ
솔직히 그 강의를 들었을 땐 조금 듣다 말려고 그랬어요.
그냥 교양 정도로 초큼 아는 거지 요즘처럼 이렇게
뜨거울 줄 알았겠슴니까?
암튼 페미니즘 홧팅입니다.ㅎㅎ

cyrus 2018-09-01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좀 읽는다는 남자들도 여성학을 학문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여성학이 인류학, 사회학, 철학, 정신분석학 같은 다양한 학문을 동원하면서 여성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데, 이걸 가지고 여성학이 문제 있다고 생각한 남자를 실제로 만나봤어요. 놀랍게도 그 남자는 저랑 같이 페미니즘 독서모임에 참여했어요.

stella.K 2018-09-01 14:0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그 사람은 여성학이 잘못 됐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여성학을 공부한 거네. 쉽지 않을 걸?!
막 빨려들어가지 않니?ㅋㅋ

나 배울 때만해도 여성학은 그냥 일종의 사회운동
그런 인식이 많았어. 지금도 그렇지 않나?
그땐 그저 이론 정도만 공부하는 거라면
지금은 실천의 시대를 맞은 거겠지.
그때 해일이 일어도 조개는 주워야 했다고 봐.

cyrus 2018-09-01 14:08   좋아요 1 | URL
아마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이 많았어요. 마르크스주의가 페미니즘보다 낫다는 말까지 했는걸요.. ^^;;
 
아버지는 살아있다 - 아버지가 남긴 상처의 흔적을 찾아서
이병욱 지음 / 학지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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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가 '아버지가 남긴 상처의 흔적을 찾아서'다. 그러니까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사람들 그들의 부모가 그들의 생애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추척한 것쯤으로, 이 책에 앞서 <어머니는 살아있다>가 나왔다. 나는 아쉽게도  전작은 못 읽고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다. 당연 오이디푸스컴플랙스적 관점을 견지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만 말하면 좀 무책임한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오이디푸스컴플랙스도 오늘 날 여러 각도에서 연구되어지고 비판할텐데 우린 무조건 아버지와 관련있는 건 오이디푸스콤플랙스로, 어머니는 일렉트라컴플랙스로 너무 도식화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약간의 불만이 없지 않았다. 저자가 너무 많은 인물을 다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전에 최성일 씨가 쓴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이란 책도 그렇지만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을 다룰 수 있을까? 무엇을 가지고 다뤘을까? 인명 사전이라도 옆에 끼고 썼던 걸까? 더구나 저자의 관점이 드러나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드러낼까? 의문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인물들이 그러한 삶을 살게된 것이 마치 아버지 때문인 양 몰고 가는 것 같아서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다. 게다가 한 사람을 다루는데 드는 쪽수의 분량도 들쑥날쑥이다. 이는, 그 사람이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런 삶을 살았다면 (그것이 악한 것이든, 선한 것이든 간에) 타당성을 충분히 입증해야 하는데 과연 충분한가? 의문스럽기도 했다. 또한 그 사람이 그러한 삶을 산 것이 정말 아버지의 영양 때문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읽는 건 그럭저럭 무난했다. 그 사람에 대해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도 많았는데 새로운 측면을 제시하고 있어서, 이 사람한테서 이런 면이 있었나 놀라거나, 이래서 그 사람이 그랬구나. 이해되는 면도 있어서 나름 흥미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고 후에 훌륭한 사람이 된 사례도 있지만 그건 그리 많지 않고 거의 대부분은 아버지로부터 그다지 좋은 영향을 받지 못하고 불행했던 것으로 나와있다. 나는 저자가 왜 이런 사례들을 열거한 것일까를 생각해 보면 오이디푸스컴플렉스 관점에서 저자는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길 주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예로부터 자녀의 양육은 어머니의 소관이지 아버지의 몫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버지들은 늘 아이를 돌보는데 서툴렀고 늘 바깥으로 돌았다. 오죽하면 몇년 전 CF에서 출근하는 아빠에게 어린 딸이 또 놀러 오라고 했을까? 그게 어찌나 공감되던지. 반박할 수가 없다. 즉 씨만 뿌렷다는 것뿐 그것을 거두는 건 여자의 몫일 때가 더 많았다.그러니 아버지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요즘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도 알고보면 부모의 경제력을 빗댄 말인데 우리가 그런 걸 생각한다는 건 어쩌면 오이디컴플랙스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의미로든 부모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온전한 유산을 남겨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설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 유산을 잘 유지 발전시키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까먹는 게 태반인다. 오히려 자수성가하는 사람이 희망이 있다. 내 부모에게선 선한 것이 나올 수 없으니 일찌감치 스스로 자본을 만들고 그것을 늘려갈 생각을 한다. 그런데 비해 부모의 재산을 물려 받아 무엇을 하겠다는 사람은 잘못되면 세상 원망을 하고, 부모 탓을 한다. 게다가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으려는 켕거루 족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부모의 영향을 벗어나 독립해야 하는 건 생애 필연적인 과제 같다. 요즘 아이들 철없는 소리로 그런다지 않는가? 부모님이 자기 키워 준 것 없다고. 다 내가 알아서 큰 거라고. 어찌보면 공없는 소리고, 야박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독립적으로 잘 크고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자식도 어렸을 때나 자식이지 부모가 언제까지나 돌봐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일찌감치 독립시키는 것. 앞으론 이게 자녀 양육의 제일의 원칙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어찌보면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자녀들의 불행한 개인사 겸 정신분석 사례집인지도 모르겠다. 참고해서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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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8-16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산가 부모한테 효도하는 자식이 드문 것이 흥미롭습니다. 부모 덕에 풍족하게 사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돈 벌기 힘든 걸 배우기보다 먼저 돈 쓰는 맛부터 배워서인지.
확실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는 있는 것 같아요. 저를 보고 있으면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부모에게서 독립되지 않은 자식도 문제겠지만 우리가 늙을 때쯤이면 자식으로부터 독립되지 않은 부모가 될 확률이 커요. 90세나 95세까지 살아서 자식에게 의지하려고 할지 몰라요. 병원 좀 같이 가 달라고 한다든지. 혼자 못 간다면서요. 외로우니 집에 좀 와 달라고 한다든지.
자식은 그런 부모로부터 독립해 살고 싶을 거고요. 역전의 관계가 되는 것이죠.

stella.K 2018-08-16 12:51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난 자식에게 신세 안 진다는 말 거짓말이겠죠?
결혹 자식이든 부모든 홀로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아요.
적당히 의지가 되고, 또 적당히 의지하고
그러면서 사는 게 인생인 것 같은데
이 균형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ㅠ

저도 엄마 안 닮았다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아버지 닮았다고.ㅋ

후애(厚愛) 2018-08-17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시원해서 외출하기 딱 좋은 날씨입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책을 읽기에도 좋은 날씨입니다. ㅋ
즐거운 오후시간 보내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stella.K 2018-08-17 16:36   좋아요 0 | URL
네. 한낮에도 습기가 없어서
한결 지내기가 편해졌습니다.
근데 이 무더위가 다음 한 주 정도는
더 간다죠? 그래도 지금까지 겪은 더위만 할까
싶기도 합니다.
후애님도 좋은 주말되시길...!^^
 
Law & Justice 2018.8
고정칼럼지 김관기 외 22인 지음 / 법률저널(잡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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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은 많이 있어왔다. 가장 대표적인 건 법정 드라마일 것이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책도 많다. 그런데 (본다면 문학잡지 외엔 거의 안 보긴 하지만)이렇게 법률 잡지까지 나와주시니 새삼 놀랍고 고맙기도 하다. 

 

내용도 나름 충실해 보인다. 흥미롭기는 아크로폴리스 기행을 담은 내용이나, 영화로 본 법 이야기 맛있는 무비토크가 재미있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 관한 이야기도 재밌었다. 요리로치자면 이런 코너들은 전체 요리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비해 메인은 청탁금지법에 관한 글이나 형사법의 사례와 해결을 다룬 것. 어느 법무법인의 국제중재 팀의 활략상을 다룬 글들이 될 것이다. 그리 두껍지도 않은데 요모조모 잘도 담았다.   

 

요즘 융합이니 통합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알고보면 법이 안 쓰이는데가 없다.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이고, 철학, 문학에 이르기까지. 따라서 본 잡지는 그것에 부흥하고자 종횡무진 뛰어다녔겠구나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내용이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사이드로 다룬 것들이야 충분히 관심유발은 됐지만 정작 중요한 메인 테마들은 좀 그렇다. 그것은 이 잡지가 가지고 있는 한계라기 보단 법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 때문인 것 같긴 하다. 게다가 인간은 어렵고 복밥한 건 피하려고 하는 속성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뭐든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면 그 대상은 어느 땐가 문을 열게 되어있다. 법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모든 사람이 법에 관심을 가질 때까지 이 잡지는 그 노력을 계속 경주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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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8-13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 있군요. 법정 드라마가 재밌듯이 이런 책도 한 번 빠지면 흥미로울 것 같군요.

stella.K 2018-08-13 18:25   좋아요 0 | URL
이런 잡지가 있었구나. 좀 관심이 가더라구요.
법률잡지가 있었나 싶더라구요.
디자인이 아주 세련되지는 않았는데
뭐 앞으로 더 좋아지겠죠.
날씨가 더우니까 리뷰가 잘 안 써지더군요.ㅠ
 
승리의 기술 - 최고의 승부사 트럼프의 이기는 전략
스콧 애덤스 지음, 고유라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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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트럼프를 알게된 건 8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언제나 그렇듯 기업인의 성공 스토리는 변함없는 독자들의 관심 대상이다. 하지만 또 언제나 그렇듯 그런 것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다른 사람으로 옮겨가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공한 사람이 그만은 아닐테니.

 

그리고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 그가 다시 매스컴에 등장했다. 이번엔 부동산 재벌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다. 처음 그가 모습을 드러냈을 땐 조각같은 날렵한 외모였는데 그도 세월의 흔적을 비껴갈 수 없었는지 덩치 좋은 노인의 모습이다. 그때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기업인이 무슨 정치냐고.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둘은 자웅동체 같은 것이긴 할 텐데도 소위 말하는 장삿꾼이 정치를 한다는 건 별로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꼭 아니더라도 트럼프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과는 좀 다르다. 우리나라는 그런 적이 없어서인지는, 또 아니면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건지는 몰라도 역대 미국의 대통령은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뭔가 모르게 기품이 있어 보이고, 뭘 하더라도 점잖고 우아하다. 당장 트럼프의 대통령 후보 시절 적수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보라. 그녀가 얼마나 고상하고 멋져 보이는지. 무엇보다 그 싯점에서 미국도 이제 여자 대통령이 나올 법하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영국도, 독일도, 미얀마도 하다못해 탄핵을 당하긴 했지만 우리나라도 여성 대통령 또는 총리를 내는 판국이었다. 더구나 투표 직전까지만 해도 힐러리는 트럼프 보다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을 깨는 법이 거의 없는 대통령 선거에 힐러리는 고배의 잔을 마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것을 마냥 반가워했던 것도 아니다. 반가워 했던 사람은 트럼프 자신과 가족, 공화당 지지자들 정도랄까? 그의 대통령 당선에 화를 냈던 건 미국 국민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미국 국민들은 자신이 트럼프를 찍은 것을 쉬쉬하고 부끄러워 했던 것일까? 이를 두고 샤이 트럼프라고 했다. 사실 지금까지의 대통령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대통령이 됐지만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게 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트럼프처럼 그야말로 기상천외였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내가 봐도 미스터리고, 악재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의 김정은과 좀 대립했어야 말이지. 둘이 막말을 쏟아 붓는데 북미 그 사이에 낀 우리 남한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이었다.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일까? 

 

그랬던 그들이 지난 북미정상회담 이후 평화 무드다. 좀 얼떨떨하기도 하고, 만화같기도 하다. 물론 언제까지 서로 으르렁거리는 것 보다야 낫지만 순식간에 이러고 나오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은가? 언젠가 TV를 보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보여준 이미지가 좋다보니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가 사실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사람은 역시 권력을 가진 이가 그전에 뭘 했던지간에 조금만 다르게 행동해도 좋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구나 싶다. 동시에 트럼프에 대한 이미지도 좀 달라졌다. 이제까지의 생각은 어디로 가고 그는 어쩌면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 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한동안 빨간 넥타이를 하고 나오지 않았던가?완전 산타 복장은 좀 그럴테니 약식으로 그러고 나와 자기를 그렇게 봐달라는 의미처럼도 해석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하지 못한 것을 해냈다. 그리고 난 또 생각한다. 미국의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하지 못한 것을 트럼프는 했는데 왜 그들은 하지 못했던 걸까? 사실은 할 수 있었는데 안했던 건 아닐까? 자신은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서 대통령의 고귀한 지위를 지켜야 한다며 너무 사렸던 것은 아닐까? 트럼프는 아들 같은 사람한테 온갖 들을 욕, 못 들을 욕을 다 먹어 가면서도 결국엔 김정은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들은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못했던 건 아닐까? 별 오만가지 잡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트럼프를 알게 모르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어떨 때 어땐 액션을 취하는지 TV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자세히 알려주기도 했다. 하다못해 북미회담을 앞두고 판을 깨려고 했을 때도 우린 그의 수를 읽으려고 했다. 사실 그건 그도 일부러 보여준 액션이긴 하다.

 

그가 후보 때나 취임 때 했던 말이 생각난다.그는 미국이 이득을 얻는 길이면 그것이 무엇이 됐던지간에 해 낼 거라고. 그 말은 미국이 이득을 얻는데 방해되는 건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새로운 국수주의자 나셨네 빈정거리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트럼프가 왜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하루아침에 김정은의 손을 잡았는지를. 대통령이 되는데 자존심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것도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그리고 약간 부럽기도 했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 중 그런 대통령이 있었나? 적어도 자존심을 버리면 무엇을 얻는지 생각해 본적은 있을까?

 

그는 절대로 지는 게임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매스컴에서 사라진 이후에 크고 작은 협상과 거래에서 어떻게 자신의 패를 잃지 않으며 상대를 자신 앞에 굴복시키는지를 연구하고 또 연구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길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사실 우리는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동시에 너무 얕봤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에게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내게 친절하고 정감있게 대해주는 사람이 좋긴 할 것이다. 하지만 뭔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알고 싶어지는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난 처세술이나 자기계발류의 책을 거의 안 읽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때문에 평생이 가도 거의 읽지 않을 것 같은 책을 읽었다.저자가 유명한 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자신을 인터뷰하라고 친히 지목한 게 자신이란다. 왜 그랬는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읽으면서 언뜻언뜻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우선 그게 트럼프 방식이었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을 받겠지만 그런 건 트럼프 스타일이 아니다. 그리고 웬지 트럼프 특유의 호기로움 같은 게 저자에게서도 느껴진다. 그러니까 트럼프는 그런 점이 자신과 대등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저자는 트럼프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이런 중립적 인물이 트럼프를 인터뷰하는 게 좋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 난 트럼프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인터뷰를 하고나서 인물 분석을 한 일종의 보고서 형식이다. 뭐 트럼프를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됐던 건 아니지만 내가 이 책에 대한 기대를 너무 많이 했을까?  뭔가 산만한 것이 나와는 좀 안 맞았다. 나중에 트럼프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역대 어느 대통령 보다 가장 많이 기대되고 흥미롭다. 아, 내가 이렇게 변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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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8-0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럼프가 부동산 재벌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 프로레슬링 단체 WWE에 출현한 적이 있어요. 그때 트럼프는 선역 재벌 캐릭터로 나왔는데, 이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ㅎㅎㅎ

stella.K 2018-08-01 19:45   좋아요 0 | URL
헉, 그건 몰랐던 사실이네.
경력이 다양하구만. 뭐는 못하겠어?ㅋ

2018-08-01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8-01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이 작용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김정은이 마음을 열고 나설 타임에 마침 트럼프가 대통령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우리 삶에 운이 작용한다는 생각을 요즘 합니다.


stella.K 2018-08-01 19:50   좋아요 1 | URL
그런데 그 운이라는 것도 자신이 만든다잖아요.
그러고 보면 트럼프는 기가 아주 센 사람 같아요.
허센지 아니면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모든 걸 다스리고 주관하는 것처럼
행세하잖아요.
그게 믿음을 줄지 아니면 미움을 살지 그걸 모르겠어요.ㅋ

레삭매냐 2018-08-0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와 미국 행정부 사이의 괴리가
항상 문제였죠.

민주당 정권-보수정부, 공화당 정권-
진보정부 이런 식의 대립구조가 이번에도
반복되는가 싶었지만 트황상이 파격적으
로 북미정상회담을 성공시켰으니 그것 참.

아마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준비
만으로 1년이 걸렸을 거란 의견에 수긍이
갔습니다.

어쨌든 자기 나름 대로 미국의 국익을
위해 전 세계와 맞짱을 뜨겠다는게 반대할
미국 사람이 있을까 싶네요.

stella.K 2018-08-01 20:0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세계와 맞짱!
미국이 그런 걸 또 좋아하긴 하죠.
어찌보면 가장 미국스런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샤이 트럼프엔 은근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대통령이길 바라는 마음도 있지 않을까요?
트럼프 어깨 장난 아니잖아요.ㅎㅎ

서니데이 2018-08-0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시절의 트럼프 대통령 사진을 본 적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이미지가 금방 떠오르지는 않네요. 많이 보아서 익숙한 이미지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시간이 많이 지났고, 그리고 사업가와 정치인이라는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그 때와 지금 시기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도 달라질 수 있을거예요.
stealla.K님, 더운 밤입니다. 시원하고 좋은 금요일 보내세요.^^

stella.K 2018-08-04 18:36   좋아요 1 | URL
ㅎㅎ 젊었을 때 아주 잘 생겼어요.
지금도 인터넷 어디엔가 찾아 보면 있을 것도 같은데...
배우 같이 잘 생겼죠.
그런데 늙어서는 진짜...
원래 젊었을 때 잘 생긴 사람이 늙어서도 잘 생기긴 힘들죠.
반대로 젊어서 인물이 그러면 나이들어 나아보이는 경우도 있구요.ㅋ

오늘은 어제보다 다소 좀 덜 더운 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더운 거긴하지만 그동안 쩔쩔 끊은 것에 비하면...
서니님도 좋은 주말 보내십쇼.^^

2018-08-11 0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1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1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8-11 16:02   좋아요 0 | URL
선물번호를 어디서 찾니?
잘 모르겠네...
이거 하도 안 해 봐서 기억이 나질 않아.ㅠ

cyrus 2018-08-11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님 이메일 계정에 북 기프티콘 메일 안 왔어요? 제가 누님한테 북 기프티콘을 보내면 누님 이메일 계정에 제가 보냈다는 사실을 알리는 메일이 와요. 아마도 그 메일에 선물번호가 있을 거예요.

stella.K 2018-08-11 16:38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야. 이메일로 오는 거지?
그게 안 왔다는 거 아니니...
이 문제 때문에 유레카님 때도 내가 알라딘에 전화해서
뭐라고 했는데 자기네들도 그걸 잘 모르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받긴 했는데...
하다못해 이달의 당선됐다는 메일도 꼬박꼬박 오잖아.
그런데 기프티콘은 항상 걸려.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선물번호 너도 잘 모르겠지?
천상 월욜날 전화로 알아보는 수 밖에.ㅠ

cyrus 2018-08-11 16:53   좋아요 0 | URL
제가 기프티콘을 받았을 때 메일로 왔고요, 그 메일에 선물번호가 있었어요. 자주 받지 않아서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제 기억으로는 선물번호가 메일에 있었어요.

기프티콘 취소하고 집으로 보낼까요? 그게 더 편하겠어요. ^^

2018-08-11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8-11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등록대기‘ 상태인데 취소가 안 되네요.. ^^;;

cyrus 2018-08-11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핸드폰 번호로 다시 전송할께요.

stella.K 2018-08-11 19:22   좋아요 0 | URL
아, 지금 왔어. 등록할게. 고마워.^^

cyrus 2018-08-11 19:23   좋아요 0 | URL
다음부터는 핸드폰 번호나 이메일 주소로 보내야겠어요.. ^^;;

cyrus 2018-08-11 19:29   좋아요 0 | URL
등록완료 확인했어요. 이쯤되면 나한테도 등록완료 메일이 와야하는데 아직 안 왔어요. 메일 수신이 좀 늦네요..

stella.K 2018-08-11 19:2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럼 다음에도 또 선물해 줄 거야?
내가 동생 하나는 잘 둔 것 같아.ㅋㅋㅋㅋ

선물 받으면 연락할게.
좋은 주말 보내라.^^
 
나를 사랑하느냐
옥한흠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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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한때나마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다는 건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목사님의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건, 그분이 암 투병 때문에 잠시 강단을 떠나 있다가 다시 복귀한지 얼마 안 되는 때였다.

 

먼저 다니던 교회도 있었지만 웬지 교회를 옮기고 싶었다. 교회를 옮길 요량이라면 교회를 어디로 하면 좋을까 한동안 투어를 다녀보는 것도 좋을 텐데 여기 저기 쑤시고 돌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목사님의 교회를 다니기로 했다. 왜 그랬는지는 그때도 모르고, 지금도 모른다. 취향이라고 하기엔 이 새로운 교회가 나와 맞느냐면 꼭 그렇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이 교회를 다니면서 당했던 설움과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생각하면 교회는 함부로 옮기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물론 그러기엔 내가 교회라는 속성을 너무 몰랐던 거겠지만. 아마도 내가 이 교회를 오래도록 다닐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는 목사님의 설교 때문이란 걸 부인하지 못하겠다. 목사님의 설교의 깊이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그만큼 쉽게 들리는 설교도 아니다. 정말 쉼호흡을 크게 한번하고, 각잡고 들어야 들릴 수 있는 설교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내가 목사님의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때는 20대 중반무렵이었다. 그 나이에도 깊이를 추구하는 사람이 없으란 법은 없겠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20대는 20대다. 가끔은 목사님의 설교가 버거울 때가 있었다. 그때는 내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때이기도 했는데, 교사란 이유만으로 주일학교 예배에 참석해야 했던 나는 가끔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목사님이 주관하시는 예배를 따로 참석하지 않는 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목사님은 강단으로 복귀를 했다고는 하지만 주일 날 하루 네 번있는 예배를 다 주제하시는 건 아니었다. 거진 대부분은, 정말 가물에 콩나기를 제외하고 목사님은 1부 예배만 주제를 하셨고 나머지는 녹화 설교로 대치했다. 그런데도 그 녹화 설교를 들으러 원근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걸 보면 목사님은 정말 난 분이란 생각이 들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목사님의 설교를 거부한 나 같은 신자가 있었다는 건 확실히 목사님의 불행인지도 모르고, 나는 문제적 신자임에 틀림없다.

 

목사님의 설교는 그야말로 지성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목사님 이전에 또 목사님 이후에도 명설교가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자칫 크리스찬 지성을 대표하는 C.S 루이스나 20세기 초 명설교가였던 로이드 존스 목사에 비견되기도 했다. 그분이 그만큼 탁월한 설교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 있었을까?

 

목사님은 살아생전에 남의 교회나 여타 집회에 강사로 나선 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것을 사람들은 당신이 지병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문을 대신한 지난 2006년도에 월간 <디사이플>과의 인터뷰를 보면, 목사가 유명해지면 여기저기서 설교 청탁을 많이 받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목자로서 내 교회 교인들을 챙기는 건 자연 소홀하게 된다. 목사님은 양심상 그것을 감당할 수 없으셨다. 그러니 당신의 병 때문에 외부 청탁설교를 응하지 못했다는 건 그분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목사님은 또 그런 말씀도 하셨다. 좋은 설교란 회중이 의무적으로 들어주는 설교가 아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들리는 설교라고. 아뿔사! 나는 앞서 그분의 설교는 마음을 정제해야 비로소 들리는 설교라고 했다. 이거 원, 목사와 성도간에 이렇게 생각이 달라서야...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를 위해 그 어미가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 듯, 저 역시 만족할 수 없으나 비슷한 몸부림을 친 것 같습니다. 그러한 까닥인지 저는 설교를 즐거운 소명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무거운 십자가로 생각하는 체질이 되었습니다. 행복한 설교자의 자격을 잃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난 어미가 자식을 위해 좋은 음식을 만들어주면 한사코 안 먹겠다고 떼쓰는 어린아이와 같았다는 말도 될 것이다. 목사님의 설교가 그렇게 어려운 거라면 난 몇번 듣다가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목사님의 설교는 기꺼이 나의 무릎을 꺽고, 들어 청종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늘 몸이 안 좋으셔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어느 때고 목사님의 설교를 만족하게 들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아쉽고, 감질나고, 너무 귀해 주일 날 목사님이 설교를 들을 수 있는지 아닌지가 늘 초미의 관심사였다.  

 

목사님은 남들보다 일찍 은퇴를 하셨는데, 보통 다른 교회 같으면 원로 목사를 위해 1부 예배 정도는 원로 목사가 설교를 하거나 어쨌든 교인들이 그 존재를 잊지 않도록 배려를 하는데 목사님은 은퇴하고부턴 정말 사정의 사정을 거듭해야 겨우 한 번 응낙을 할 정도였다. 이를테면 송구영신 예배나 부활절 연합 예배 같은 아주 특별한 때 말이다. 어찌보면 그분의 말년은 은둔자의 설교자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목사님의 설교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때가 왔다. 오랫동안 암과 투병하신 것을 생각하면 역시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지만, 인간의 평균 기대 수명이 80을 넘는 상황에서 그분의 부고 소식은 정말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이젠 가물에 콩나기로도 그분의 설교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제일 아쉬웠다.

 

그날을 확실히 기억한다. 목사님이 돌아가시던 날을 말이다. 늦은 밤부터 유독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태풍이었을까?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그전부터 오늘, 내일하신 상황이긴 했지만 성경의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지 않은가? 목사님도 그런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바람이 홀연히 목사님을 천국으로 인도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른 아침 바람이 겨우 잦아들자 교회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돌아가셨다고. 당연히 나는 목사님의 교회 교인으로 목사님 영전에 꽃을 헌화하고, 그 돌아오는 주일은 눈물의 예배를 드렸다. 

 

그로부터 1년 후 추모의 의미를 담아 이 책이 나왔다. 78년도에 개척하시고 은퇴하실 때까지 몇 번의 설교를 하셨을까? 그중 10편의 설교를 묶었으니 옥중의 옥에 해당하는 설교일 것이다. 몇 편은 나도 기억이 어럼풋한데, 목사님이 언제 이런 설교도 하셨나 싶은 설교가 다수다. 그런 걸 보면 그 옛날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하필 땡땡이 쳤을 때 하신 설교인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내가 목사님의 교회를 다니기 전에 하신 설교인지도 모른다.

 

난 이 설교집을 발간 당시 샀고, 최근에서야 읽었다. 감회가 새롭다. 마치 타임 캡슐을 꺼내 보는 느낌 같기도 하고, 멀리 시간의 바다를 돌아 도착한 병속의 편지를 꺼내 보는 느낌이다. 목사님이 천국에서 나에게 편지를 보내주신 것만 같다.

 

나도 내가 이렇게 오래 신앙생활을 하게될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젊었을 때 지어 볼 수 있는 죄는 다 지어보고, 할 수 있는 방탕은 다 해 보고 이 나이쯤 해서 신앙생활을 할 걸 그랬다고 농담으로 말하곤 하는데, 그건 정말 농담이다. 내가 그 어린 날 신앙을 갖지 않고, 젊은 날 교회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만큼이라도 사람 구실을 했겠나 싶다. 추억도 교회에서 쌓은 게 90% 이상이다. 하지만  신앙 생활을 오래하면 어쩔 수 없이 타성이 붙는다. 그럴 때 목사님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설교의 여러 가지 구성 요소들이 있겠지만 성도들의 신앙을 독려하는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목사님의 육성을 듣는 것만 같고,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만 같다.

 

목사님의 설교는 지성주의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목사님으로선 그럴수 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그때 한국 기독교는 너무 은사주의로 흐르고,  무당이 신내림을 받듯 강력한 성령 체험과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신앙이 팽배했다. 그것을 당신은 굉장히 경계하셨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은혜는 늘 삶속에서 지속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세월이 흐르고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분명 기독교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그러다보니 성령의 역사하심을 제한하거나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점은 좀 아쉽긴 하지만 목사님이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책을 덥고나니 목사님 설교는 일생에 한 번이겠구나 싶다. 천국에 가도 목사님의 설교는 못 듣겠구나 싶다. 평생 지고가야 할 십자가로 여기셨고, 살아생전에도 설교를 한사코 거절하셨었다. 천국은 십자가가 풀어지는 곳이다. 비로소 안식하는 곳이다. 그런 목사님이 천국에서 설교를 하실 리 없다. 목사의 설교가 필요한 건 지상에서지 천국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그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 어찌 축복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너도 곧 천국에 이를테니 그때까지 신앙생활 잘하고 있으라고, 신앙생활은 항상 전진이지 퇴보란 있을 수 없다고 그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사람 한 사람쯤 품어 보는 것도 괜찮은 인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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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8-07-27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신교 신자가 아니고 앞으로도 될 생각이 없지만 스텔라님의 이 글을 읽고 나니 그 분의 설교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더운데 건강 조심하시길..

stella.K 2018-07-27 19:42   좋아요 0 | URL
이거 영광인데요?ㅎㅎ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언제고 기회되시면 꼭 한번 들어보세요.
설교집 읽어보셔도 좋구요. 고맙습니다.^^

2018-07-27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7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7 1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7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0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