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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이 작년 말로 해체했다. 꼭 10년만의 일이라고 한다. 해체 이유가 쿨하다. 진정한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음악의 완성도가 정점에 이르렀다고 생각될 때 떠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나 뭐라나.

 

그러고 보면 참 많이 다르다 싶다.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무슨 그룹이 해체한다고 하면 내부 불화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하다못해 그렇게 위대하다던 그룹 <비틀즈>도 불화설로 해체하지 않았나? 10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인데 그들를 좋아했던 대중들로선 아쉬움이 클 것이다. 아직도 이들이 쏟아 놓을 음악은 많지 않나? 2, 30년 하는 밴드들도 많은데 10년이면 긴 기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더 이상 이들의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하다.

 

이들의 마지막 공연이 작년 말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있었다. 나는 뒤늦게 TV 다시보기로 최근에서야 봤다. 그들이 처음 데뷔 무대도 이곳이었다. 2008년 '헬로 루키'란 신인 발굴 프로젝트에서. 그 무렵 '싸구려 커피'와 '별일없이 산다'를 들었을 때의 충격이란. 한마디로 신선했다. 내가 중학교 시절 그룹 <산울림>의 음악을 처음 들었는데 그때 생각이 났다. 솔직히 그때 '산울림'의 음악은 좀 낮설었다. 무슨 동요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가요라고 할 수도 없고. 성인 동요쯤 된다고 해야하나? 의아스러웠고 그런 노래라면 나도 만들겠다 싶은 것도 있었다. 특히 그들의 공전의 히트곡 '산 할아버지' 같은 경우. 그런데 나이들어 다시 들어보니 이건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런 충격과 느낌이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고스란히 다시 떠오른 것이다. 이들의 음악과 <산울림>의 음악은 색깔이나 취향이 좀 다르긴한데 분명 당대의 음악이 추구했던 것과는 명백히 차별됐다. 바로 그런 점에서 <장기하...>에서 '산울림'의 데자뷰를 느낀 것일 테고.

 

글쎄, 굳이 <장기하...>와 <산울림>이 같은 거라면 성인 아이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몸은 이미 성인이 됐지만 정서나 감정까지 성인이 되지 않고 철없는 아이로 남아 그 느낌과 시각으로 세상을 노래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의 공통점은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는 것 아닐까? 사랑하면 실연이 따라오는 법인데 실연을 겪고나면 어른으로 되어버리는 거니까.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의 사랑을 노래하던가.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면 <산울림>은 아예 어린 아이의 시선 그 자체라면 <장기하...>는 루저라는 거다. 루저의 삶을 노래하고 나아가서 루저가 뭐 어때서 하는 당당함 내지는 저항을 얘기한다. 어찌보면 세상에 잘 나가는 사람에게 늬들이 루저를 아냐고 묻는 것도 같다.

 

이들의 음악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난 이들의 초기 음악 몇 곡 외엔 잘 몰랐다. 공연을 보면서 이들이 참 많은 곡들을 만들었구나 새삼 놀라웠다. 그리고 그 곡들은 초기의 곡들 보다 훨씬 발전되고 스킬이 좋아졌다고나 할까? 그냥 이야기하는 것처럼 중절대는 것도 좋았다. 

 

방송은 1시간 남짓이지만 실제 공연은 못해도 한 시간 반 이상은 하지 않았을까? 이들이 걸어 온 발자취를 보여주는데 처음 데뷔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말쑥하고 더 젊어뵌다. 특히 팀의 리더 장기하가 평소 조금 독특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실제 공연 모습을 보니 생각 보다 더 독특한 느낌이다. 무대에서 전혀 쑥스러워하거나 굳이 잘 보이려 하거나 꿀리는 것이 없다. 그게 카리스마라면 카리스마이긴한데 본인은 카리스마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10년 동안 늘 같이 하다가 이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는데 멤버들 저마다 어느 길로 갈 건지 알려지지 않아 좀 궁금하기도 하고 은근 걱정도 된다. 참고로 장기하는 큐레이팅 공연을 할 거라는데 나머지는...? 이러다 몇 년 있다 재결합할 것은 아닌지? 아무튼 잘 갔으면 좋겠다. 

 

특별히 이 무대는 주최측에서 '박수칠 때 떠난다'란 타이틀을 붙여줬다고 한다. 이건 분명 영화 제목을 패러디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박수칠 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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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3-11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2008년 초반부터 군에 입대했어요. 그해에 일어난 모든 사건과 이슈가 정확히 뭐 있었는지 몰라요. 내무반에 있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누군지 처음 알았어요. 이 밴드가 나왔을 당시에 대중의 충격적인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저는 그거 보면서 ‘그냥 특이하게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구나’ 정도로 생각했거든요. ^^

stella.K 2019-03-11 18:00   좋아요 0 | URL
충격적이었나? 그런 것도 같고.
<산울림>이 처음 나왔을 때 꽤 유명했거든.
그때 유행하던 음악과 괘를 달리했으니
그 특이함에 사람들이 놀랐지.
그래도 그 보다는 덜하지 싶기도 해.
2008년도면 어느 정도 음악의 다양성이 추구되던
시절이었으니. 그래도 인디 밴드 치고는 갑이지.
더구나 장기하가 서울대 출신이잖아.
노래 부르는 스타일도 독특하고.
나중에 기회되면 한 번 봐봐. 팬들이 꽤 있어.
그리고 혹시 인디 음악에 관심있으면
목요일 밤늦게 KBS1에서 하는 <올 댓 뮤직>함 보고.
<스페이스 공감> 본 딴 거긴한데 우리나라 음악이
이렇게 다양한가 새삼 놀라.^^
 

내러티브는 빈약하면서 오로지 출연 배우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의 만으로 승부를 걸려고 하는 드라마가 있다. 또 이를 두고 절제된 대사라고도 하고, 시 같은 대사라고도 하는데 그거 다 개풀 뜯어먹는 소리다. 내러티브가 있고, 캐릭터가 있고, 절제된 대사, 시 같은 대사는 그 다음에 나와도 된다. 그런데 그걸 거꾸로 하는 작가가 있으니 그러고도 꼴에 인기 작가라니 그거 언제까지 우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100분 토론>에 김지윤 씨가 진행자로 전격 발탁이 되었나 보다. 난 그녀를 K 본부 <세계는 지금>에서 처음 봤는데 특출나게 잘 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나쁘지 않게는 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100 토론>을 진행한다니 그런 시사 프로는 남성의 전위물 아니었나? 그런 점에서 새삼 격세지감이란 생각이 들고,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잘 하라고 응원은 하고 싶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그 시간 잠을 자기 때문에 볼 수 없다는 것. 그러니 응원만 한다는 것 뿐이다. 그녀는 나에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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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7-25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답! ㅁㅅㅌ ㅅㅅㅇ?

stella.K 2018-07-26 10:02   좋아요 0 | URL
ㅎㅎㅎ 뭐라고 쓰신 겁니까?
난 초성은 영...ㅠ
뭐라고 쓰신 건지 비밀글로 꼭 알려주십쇼. 쇼님!^^

stella.K 2018-07-26 19:20   좋아요 0 | URL
아, 이제야 알겠군요.
맞아요! 스요님도 그렇게 생각하죠?
진짜 나중에 욕 나오더라구요.
시청자를 기망해도 유분수지 하면서...ㅋㅋㅋ

syo 2018-07-26 20:44   좋아요 0 | URL
전 안보고 찍은 건데요 ㅎㅎㅎ 그냥 설명하시는 정황이 그런 것 같고, 원래 제가 그 작가 멜로에서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단 한번도 공감해본 적이 없어서요 ㅎㅎㅎ

stella.K 2018-07-27 10:22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작가 그다지 좋아하진 않아요.
이번 드라마는 개화기를 배경으로 해서
좀 볼까 했는데 도무지 못 보겠더군요.
도대체 말이 되야 말이죠.
아무리 드라마가 배우와 대사 뜯어 먹는 일이라지만
너무 심하다 싶더군요.
또 비슷한 일군의 작가들이 있어요.
그런 유명 작가의 작품에 못 나와서 몸살 난 배우들 보면
좀 거시기 하기도 하구요.ㅋ
 

 

몇 주간에 걸쳐 tv 다시보기로 이 드라마를 봤다. 

알다시피 이 드라마는 일본의 드라마를 각색한 작품이다. 일본은 이미 미미 여사를 비롯해 일군의 사회파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가 있지만, 드라마에서도 이런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가 있구나 약간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드라마에서의 특징은 핏줄로 맺어진 직계가족이 아니라 유사가족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입양되거나 유괴를 통해 전혀 핏줄로 연결되어지지 않는다. 보다보면 예전처럼 핏줄로 이어진 보수적인 가족 형태는 점점 중요하지 않거나 사라질 거란 암울한 암시마저 갖게 한다. 내가 왜 이런 표현을 쓰냐면, 핏줄로 맺어진 아니 그것을 중시하는 가족일수록 지금까지 너무 많은 고통당하고 앞으로 그럴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 이혼이 늘고 재혼에 삼혼까지 늘어나는 추세라면 예전처럼 초혼에서 이루어진 가족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그랬을 때 앞으로 우리의 가족은 어떤 형태를 띌 것인가? 드라마는 바로 이점을 주목했던 것 같다. 그렇게 변화된 또 변화할 세상에서 모성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가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것은 아닐지? 

 

사실 세상에 어떤 여자도 완벽히 준비된 상황에서 엄마가 되는 사람은 없다. 오로지 완벽히 준비된 엄마는 주인공 강수진의 양모인 영화 배우 차영신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녀 조차도 처음부터 엄마의 길을 알고 갔던 건 아니라고 고백한다. 즉 엄마는 처음부터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  

 

그녀는 성공한 영화 배우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그래서 수진 외에도 두 명의 아이를 더 입양한 완벽한 커리어우먼이고 비혼모다. 그녀에게 완벽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정도랄까? 하지만 그도 문제는 안 돼 보인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어차피 세상은 이제 핏줄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다. 그러니까 드라마는 내내 모성이란 건 출산에 있지 않고 알지 못하는 어떤 운명적 만남과 기르는 과정에서 생긴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해 의도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핏줄에 의한 모녀 관계는 자꾸만 상처 받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것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 혜나와 그녀의 생모 자영이다. 자영은 원치않는 임신으로 애를 낳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당했다. 또 그로인해 불안하고 분열적인 양육 태도로 혜나를 키웠고 그에 따라 혜나는 학대와 방임을 반복하며 산다. 그런 점에서 배우 차영신과 자영이 다른 점은, 영신은 비혼모지만 자영은 미혼모라는 점이다. 

 

적어도 이 드라마에선 비혼모는 결혼은 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자의적으로  키운다는 것이고, 미혼모는 원치 않는 임신로 인해 아이를 낳아 불안한 환경속에서 키운다는 것이다. 또한 비혼모는 아버지가 없이도 아이를 얼마든지 잘 키웠고, 미혼모는 상대 남자에게 버림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거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방치된 약자다.

 

차영신은 남편 대신 자신의 비서겸 아이들을 지켜 줄 집사 재범을 고용할 뿐이다. 문득 차영신의 집을 보면 몇해 전에 읽은 샬롯 퍼킨스의 <허랜드>가 생각이 난다. 제목에서도 암시하듯 그곳은 여자들만 사는 나라다. 그것의 축소판 내지는 또 다른 변형이 이 드라마의 영신의 집이라는 것이다.

 

런 이상 사회의 전제는 경제력이다. 그것은 한 나라를 또한 한 가정을 이루는 주춧돌이다. 여성들이 경제력을 갖추게 되면 결혼을 굳이 하려하지 않는다는 건 거의 자명하다. 지금도 적지 않은 많은 여성들이 아이는 원하지만 남편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남자는 자신의 나라 또는 가정을 지키는 방패막 내지는 집사 정도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건 꼭 여자의 성공여부와 상관이 없어보이기도 하다. 유사이래로 여자가 시집을 가야했던 이유중 하나는 남편의 보호였으니까. 대신 댓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남자의 아기를 낳아야 하고, 남자와 그의 집안에서 있을지도 모를 온갖 학대와 수모를 견뎌야 한다는  전제도 포함이 된다. 그러나 여자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근거가 마련이 되면 남자의 위상은 그렇게 규정되어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진이 혜나를 유괴해 쫓기는 입장이 되고 영신의 집으로 피신해 들어갈 때 영신은 무조건 누구의 아이냐고 다그쳐 묻지 않고 모성으로 품어주고, 그녀가 쫓기는 상황이라는 걸 알았을 때 여성 특유의 기지를 발휘해 보호해 주고 법정에선 옹호까지 한다. 즉 여성 특유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비해 작가는 혜나의 생모 자영을 끊임없이 불행한 인물로 몰고가고 있는데, 그게 단순히 생모 즉 핏줄의 개념을 부인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뭔가의 의미가 더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지금까지 핏줄로 맺어진 모녀관계는 사회의 무관심으로 인해 끊임없이 상처받아 왔음을 드러마는 각인시키려 했던 것 같다. 그녀는 아이를 잃어버린 피해자지만 동시에 아이를 학대 방치했다는 점에서 법에서 자유하지 못하다. 누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당연 남자고, 남자며, 남자다. 생물학적이며,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집행권한을 행사하며, 아이를 방임하고, 아이를 유괴한 여자를 법 아래 세우려고 하는 남자 말이다.     

 

남자에 의해 가정을 세우고 지켜지는 시대는 종식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 그렇게 됐을까? 이미 핏줄로 연결된 가족 형태가 와해됐을 때부터일 것이다. 그러니까 예전에 가족중 누가 아이들 데리고 들어오면 누구의 아이냐고 묻던, 그것이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그건 남자의 질문이지 여자의 질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신은 수진에게 혜나의 존재에 대해 묻지 않았던 것이고.

 

어쨌거나 핏줄에 의한 가부장적 가족 형태는 그 힘을 상실했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을 수 없고 기를 수 없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신 국가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다. 남자들은 이제 가부장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고, 여자 역시도 혼자의 몸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  

 

원하든 원치 않던 한 여자가 임신을 했다. 남자가 책임을 져야하는 데 책임을 지지 않는다.(이제 남자에게 그것을 묻는 것도 고루해 보인다.) 그랬을 때 여자는 언제까지 불행한 미혼모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남자가 죽일 놈이든 살릴 놈이든 그것의 판단은 차치하고, 먼저 국가가 신속하게 이 모자를 보호해 주고 사는데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데 드라마는, 어쨌든 혜나의 생모는 아동학대죄를 지었고, 수진은 혜나를 자신의 삶에 떠 안았지만 그러는 순간 아동 유괴범이 됐다. 남성을 상징하는 국가 공권력은 이 두 여자를 어떻게 해서든 법의 심판대에 세우려 했고, 실제로 세웠다. 하지만 그 순간 국민을 수호해야 하는 공권력은 이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무능함을 드러낸다.  

 

인구가 점점 감소하고 있다. 언제까지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는 걸 남자에게만 맡길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꼭 국방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국가의 모든 면에서 소외되어 왔다. 그런 여자들이 아이를 낳아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에 헌신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이번 정권도 아이의 양육 수당이나 모자 보건에 힘을 쓰는 모양새를 취하긴 한다. 하지만 정작 미혼모 보호엔 여전히 미온적이다. 언제까지 여자가 남자의 동의나 도움없이 아기를 낳는 걸 부끄러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왜 그들이 미혼모의 자식이란 이유만으로 사회의 그늘속에 방치되고 범죄에 노출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들도 똑같은 대한민국의 자식인데 말이다.  

 

샬롯 퍼킨스는 국가가 아이들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것을 자신의 소설에서 이미 오래 전에 주장했다. 이것에 우리나라는 얼마나 동의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소설이 20세기 초에 나온 것을 생각하면 이미 100년이나 된 질문이다. 거기에 아직도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과연 우리나라 만세다. 그러나 어느 때가 되면 그에 합당한 대답을 해야할 것이다. 반드시. 그때가 되면 미혼모란 말은 우리 사전에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대신 비혼모가 그 자리를 대치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이 드라마는 묻는다. 모성이 개인을 구원할 수 있느냐고. 거기에 구체적으로 답하는 건 아니지만 희망적인 물음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것은 모성을 포함한 여성성이다. 여성성은 연대하고, 연합하길 좋아하며, 인내하고, 생명을 품고 나눈다. 그러기 때문에 드라마의 차영신의 집과  소설 <허랜드>는 세상의 어떠한 오해와 질시속에서도 평화롭게 유지될 수 있었다. 

 

링컨은 그렇게 말했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바라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그 말은 훌륭한 말 같긴 하지만 언제나 유효하진 않다. 그때는 그 말이 통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적어도 우리 여성들은 국가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하고 요구해야 한다.

 

물론 그런다고 국가가 신속하게 움직일 거라고 기대해선 안 될 것이다. 오랫동안 가부장에 매어있던 나라다. 그 역사가 무려 5천년이 넘는다. 그런데 비해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기 시작한 건 100년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연대부터 하라. 드라마의 마지막회를 보면 혜나가 그처럼 많은 엄마를 감당할 수 있을까란 대사가 나온다. 그러니만큼 혜나가 많은 유사 엄마를 거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엄마는 꼭 하나여야할 필요가 있을까? 될 수 있으면 엄마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연대의 의미도 된다는 소리니까.

 

내 아이, 남 아이 나누지 말고, 우리 아이로 서로 돌봐야 한다. 미혼모가 애를 낳거든 손가락질부터 하지말고 나라 위해 크게 될 아이라고 격려부터 해 줘라. 그건 다 우리도 가부장의 사고에 길들여졌던 결과일 뿐이다. 그것에 지지 말아야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이제 여자가 해야한다.

 

드라마가 다소 억지스런면도 없지 않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혜나 역을 맡은 허율이란 아이의 연기가 볼만하다. 김새론 이후 연기신동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특별히 차영신 역을 맡은 이혜영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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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7-21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 문화와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이 많아지면 소외되는 대상이 성소수자예요. 성소수자는 결혼하기 어려워요. 대통령이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나중에’ 생각해보겠다고 말씀하셨으니 성소수자가 ‘국민’으로서 국가 정책 혜택을 누리는 사회가 실현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해요. ^^;;

stella.K 2018-07-22 19:35   좋아요 0 | URL
근데 미혼모 문제는 시급하다고 생각해.
적어도 그들이 사회의 냉대는 받지 말아야지.
미혼모 문제라기 보단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솔직히 미국이나 유럽만해도
미성년자가 아기를 낳아도 학교 탁아방에
아이를 맡기고 공부를 한다잖아.
우리나라는 학교부터 그만 두거나 휴학을 해야 해.
고등학교나 대학에 탁아방이 있는 걸 상상을 못하는 거지.
이제 여성이 아이를 낳는 건, 미성년일 때 낳거나
가임기 때 아기를 낳지 않거나 양극단을 보일 거라구.
이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필요한데.
난 이 드라마가 뭔가의 기폭제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더라구.

페크(pek0501) 2018-07-21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더, 봤어요. 다 보진 못했고 반 정도 본 것 같아요. 괜찮았어요. 아이를 낳은 어머니가 꼭 아이를 키우는 게 최선은 아닌 경우에 해당했지요.

stella.K 2018-07-23 10:17   좋아요 1 | URL
이 드라마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요.
핏줄을 중시하는 가부장적 사고 방식은 이제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가장 흔한 소재
탄생의 비밀 같은 이런 거 그만하고
정말 사회의 문제가 될만한 걸 발굴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많은 것들을 시사하죠.
마저 보셨으면 해요.
이보영, 허율, 이혜영의 연기가 정말 좋아요.
그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어요.^^

후애(厚愛) 2018-07-24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는 못 봤지만 책으로는 꼭 봐야겠어요.^^
더위조심하시고, 물 자주 드세요.^^

stella.K 2018-07-24 17:59   좋아요 0 | URL
네. 꼭 보세요.
고맙슴다.^^
 

동생 심부름으로 세금도 낼겸 마트에서 필요한 물품 몇 가지를 사고,

그 앞 분식점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순대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세금 고지서 액수는 17만 얼마쯤 되서 20만원 중 거스름 돈이 2만 얼마쯤 될 것이다.

천원짜리 몇장이 지갑에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이놈의 돈을 집에 와 추스르는데 만원짜리는 없고,

천원짜리 몇 장과 동전 몇 개가 전부다. 

중간에 D님께 내 책 보내드리려고 미리 준비한 돈으로 부친 게 전분데,

어찌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이제 돈도 흘리고 다니나?

 

찝찝하다. 

이걸 누구에게 말도 못하겠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다.ㅠ

 

 

책을 읽은 건 아니고, 내가 보는 올레 TV에서 일드로 방영해 주는데 서비스가 이달 말로 종료한다기에 부지런히 챙겨봤다.

총 10부작이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게 현지에서 방영하기는 무려 2010년이다.   

 

처음엔 한 두 편만 보다가 말아야지 했다. 그런데 보다보니 5, 6편을 보게 되었고 이왕 보는 거 끝까지 봐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국내 드라마 같으면 그렇게 오래된 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 약간의 중독성이 있다. 일본의 아기자기한 문화도 엿볼 수가 있고, 무엇보다 범죄 수사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즘도 깔려있다.

 

그들의 수사기법이란 게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장면은 우리나라가 더 앞서있지 않을까? 꼭 옛날 수사반장을 보는 것 같다. 순전히 주인공 가가 형사와 수사팀의 직관과 추리로 범인을 잡는 형식인데, 현실이라면 좀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뭐 그냥 드라마니까 봐 줄만 하다.

 

재밌는 건, 일본에도 붕어빵이 있었다는 사실. 그렇다면 이 붕어빵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건너 온 걸까?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 간 걸까?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선 포장마차나 어느 가게 한 귀퉁이에서 팔지만, 일본은 전문 가게로 운영되고 그것도 줄 서서 사 먹는다는 것. 물론 그 가게가 유명해서인지도 모르고, 벌써 8, 9년전 일이니 지금도 줄 서서 붕어빵을 사 먹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렇게 줄 서서 사 먹는데 막상 사는 양은 그렇게 많지 않다. 주인공 가가 형사의 경우 하난가, 두 개를 사려고 지폐도 아닌 동전을 세고 있었다. (그의 캐릭터가 엉뚱하고 우습기도 한데, 돈을 세다 모자라니 조카가 꿔 주겠다고 하는데 굳이 은행에 가 돈을 찾아 올 테니 자리를 봐달라고 한다) 그것도 꼭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가게 주인인지 종업원인지가 꼭 그 앞의 손님까지만 주문을 받고 영업 종료를 선언하는데, 딱 한 번 성공하던가? 우리나라 같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악성루머 퍼트리지.ㅋ

 

아무튼 괜찮은 드라마였다. 이달 초무렵부터 보기 시작해서 이달과 함께 완방한다. 정말 저질체력이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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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9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5-29 16:15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제가 칠칠맞게 어디 가 돈을 흘리고 다닐 사람이 아닌데.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그런 일이 생기면 꽤 찝찝해요.
그렇다고 역추적이 가능한 상황도 아니예요.
좀 지나고 보니까 생각나더라구요.
그냥 없는 셈 쳐야죠.
그렇지 않아도 동생이 미안했던지
거스름 돈은 됐다고 했거든요. ㅠ

cyrus 2018-05-29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살 수 있다는 마음에 너무 기분이 up되어 있다가 지갑을 열어 보고 돈이 부족한 걸 깨달았을 때 깊은 절망감이란.. ㅎㅎㅎ 진짜 그 상황이 되면 OTL입니다.

stella.K 2018-05-29 19:0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맞아. 깊은 절망감이지.ㅠㅠㅠㅠ
그런데 그건 책을 살 수 있어도 마찬가진 것 같아.
방금 중고샵에서 정말 사고 싶은 책 한 권 발견했어.
그런데 난 얼마 전에 책을 샀거든.
그래서 이달 치 할인 서비스는 다 받았거든.ㅠ

아, 그건 그거고, 왜 만원짜리는 흔적도 안 보이느냔 말야.ㅠㅠ

서니데이 2018-05-29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만원 한 장 없어졌어요. 계산을 하려는데, 없는 거예요.
그래서 카드로 결제를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가 없어서 기분이 이상했어요.
어쩐지 칠칠맞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없어질 게 아닌데 없어져서요.
요즘 만원 실종을 겪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요.
저는 못 찾았지만, 나중에라도 그 때 그 만원 다시 찾으시면 좋겠어요.
stella.K님, 오늘 저녁부터 밖에 비가 꽤 많이 오고 있어요.
빗소리 들리는 편안한 밤 되세요.^^

stella.K 2018-05-30 11:02   좋아요 1 | URL
이거 왠지 동병상련 같아 저는 좀 위로가 되는데요?ㅎㅎ
저도 그런 생각했어요.
어디선가 나오던가 아니면 그때 내가 이거했었지 하며
깨달음을 얻던가.
괜찮아요. 칠칠 맞기는요. 살다보면 다 그런 거죠.
남은 그 보다 더한 돈도 사기당하고 그러는데요 뭐.
그렇게 생각하자구요.ㅋ
비는 매주 오네요. 가물지 않아서 좋은 것 같습니다.^^

비연 2018-05-3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참자.. 재미있죠. 아베 히로시가 묘한 매력이 있고...
그나저나 돈... 어디로 간 걸까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

stella.K 2018-05-30 11:05   좋아요 0 | URL
참, 비연님 추리소설 좋아하시죠?
재밌더라구요. 정말 아베 히로시 독특하면서도
힘들이지 않는 자연스런 연기가 좋더군요.

괜찮아요. 할 수 없죠.
그냥 계산을 잘못 했겠거니 합니다.
대신 이런 일 다신 있지 말아야죠.ㅠㅋㅋ

희선 2018-05-31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붕어빵은 어디에서 먼저 만들었을까요 그래도 한국은 붕어빵이라 하지만 일본은 다이야키라고 해서 다이는 도미(생선 이름은 알지만 먹어본 적은 없군요)를 나타내요 붕어빵 예전보다 비싸지기는 했지만 일본에서 파는 다이야키가 더 비쌀거예요 원작소설에는 그런 부분 없었던 것 같기도 한데, 드리마에는 재미를 주려고 넣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가가는 다른 사람이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는 걸 잘 보려고 하지 않나 싶어요


희선

stella.K 2018-05-31 13:0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군요. 사실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 붕어빵이 있기 전 풀빵이란 게 있었어요.
70년대 초반에 나온 걸로 알고 있는데
빵틀은 지금의 붕어빵과 크게 다르지 않죠.
그런데 워낙에 기술이 없어서 정말 풀 같이 질척하다고 해서
풀빵인 거죠. 그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진화해서
지금의 붕어빵이 되지 않았나 해요.
희선님은 책으로 읽으셨군요.
드라마가 매력적여서 책으로 읽어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난 노희경 빠다. 그런 내가 이 드라마를 안 볼 리가 없다. 물론 노희경 말고도 잘 쓰는 작가들은 많다. 하지만 작품은 항상 좋은 건 아니다. 그래서 가끔은 보다가 다른 데로 채널을 돌리거나 영화를 본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난 이 작가가 김수현 작가만큼이나 아니 그 보다 오래 작품을 썼으면 좋겠다.

 

노희경 작가는 이번엔 경찰 지구대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썼다. 이 작가는 또 언제 거친 경찰 지구대를 조사를 했을까? 놀랍기도 하다.

 

드라마의 기능중 하나는 사회적 기능일 것이다. 이 드라마는 어쩌면 그녀가 쓴 작품중 가장 사회성이 짙은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요즘  한창 이슈인 미투 운동에 부응이라도 하듯 성폭력을 다루기도 한다. 물론 지금까지 드라마가 직간접적으로 여성의 성폭력을 다뤄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투 운동 때문일까? 노 작가가 성폭력을 다뤘다는 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지구대 시보인 한정오(정유미 분)는 고등학교 때 성폭력을 당한 전력이 있다. 단순히 스펙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경찰 시험을 통과했을 때만해도 성폭력 사건은 그녀가 수시로 접해야 할 사건이라는 걸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사건을 다룰 때마다 옛 상처가 건드려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 그녀가 경찰로서 일하려면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진정한 경찰로 거듭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난 13회였던가? 어느 학교에서 성폭행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건을 지구대에서 초동대처를 잘해 무사히 잘 넘어갔다. 그로인해 그 학교 학부모들은 지구대 경찰관들이 치하를 받는 자리를 마련했고, 그 자리에 한정오도 함께한다. 그때 한 학부모였던가? 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지구대 사람들에게 형식적인 조언을 부탁한다. 그러자 그들 역시 형식적인 답변을 하거나 그냥 넘겨버릴 뿐인데 유독 한정오는 심각한 어조로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해 오히려 학부모들로부터 심한 질타를 받는다.

 

한정오는 좀 더 적극적인 성교육을 통해 성폭력에 취약한 학생들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는데, 오히려 듣는 학부모는 마치 한정오가 자신의 아이가 잠재적 가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 같아 반발을 한 것이다. 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징계를 받도록하겠다고 들고 일어나는 정도가 되어버리고 만다.

 

사실 한정오의 입장에선 경험(?)에서 나온 실질적인 조언이었임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성폭행이 날로 심해져 가는 것은 알겠는데 설마 내 아이가 성폭행 가해자나 또는 피해자가 될 거라고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성폭행은 가해든 피해든 다 남의 일인 것이다. 

 

한정오의 조언 중에 남자 아이들도 이젠 콘돔 사용법을 익혀야 하고, 학교에서도 이를 적극 가르쳐 줘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된다면 사후 피임약을 사용할 것을 홍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조언을 들을 준비가 안 돼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정말 우리나라 성교육의 실태는 어디까지 왔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난 얼마 전에 읽은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이 생각이 났다.

 

부모가 내 아이를 붙들고 성교육을 가르칠 수 없으니 학교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조차 제대로 가르칠 리 만무하다. 결국 아이들은 야동을 통해 배운다. 그러나 야동은 야동일뿐 그건 성교육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내 아이는 야동도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대다수다. 학교에서 가르친다고 해도 적극적이 아닌 소극적인 대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성폭행을 어디서부터 줄여 나가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 부모들이 이 책에서 소개한 뉴질랜드의 진보적인 성교육 방법을 소개 받는다면 어떨 것인지 일견 궁금하기도 하다.

 

네덜란드 정부는 22세 모든 여성이 부모의 동의 없이도 무료로 골반 검사, 피임, 낙태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중략) 또한 네덜란드에서는 친밀한 신체 접촉을 할 때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자위와 오럴 섹스, 동성애, 오르가슴을 공개적인 토론 주제로 삼았다. (중략) 네덜란드 정부는 성교육 커리큘럼에 상호작용기술을 추가하여 어떻게 하면 기분 좋은지 상대방에게 정확히 전달하는법과 분명하게 경계선을 긋는 법을 가르쳤다. 그 결과 2005년에는 네덜란드 청소년 다섯 명중 네 명이 첫 번째 성경험은 자신이 한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즐거웠다고 답하게 되었다.(351~352p)  

 

나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노 작가가 그 부분을 다룰 때 혹시 이 책을 참조하여 쓰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이 책 생각이 많이 났다. 사실 이 책은 성교육 자체를 다룬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 교육을 성교육에서부터 담아내자는 취지가 더 강하다. 그리고 꼭 우리나라가 네덜란드의 성교육 방법을 따라가자는 것도 아니다. 분명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에 맞는 성교육이 있을 것이다. 그게 좀 더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정말 우리의 아이들이 콘돔 사용법을 알게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더 빈번한 성행위가 이루어질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 누구는 원치않는 임신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사후 피임약이 있다는 것을 알면 피해를 최소화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할 생각과 의지가 있다면 성폭력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것은 그냥 기분 더럽다. 엿 같다. 그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디어에서도 성폭력을 다루면 사건에만 치중해서 보도하지 그 당사자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선 간과하거나 소극적으로만 다루고 만다. 물론 일견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실수로 뒤통수를 맞아도 사과를 받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인데, 왜 성폭력을 당하고도 말할 수 없고, 그에 합당한 사과를 받을 수 없느냐는 것이다.

 

나는 요즘 김형경의 <세월>을 읽고 있다. 알다시피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그녀 역시 과거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바로 이 책 1권 거의 말미에 보면 그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는 이 책에서 그 사실을 고백했을 때 단번에 쓰지 않았다. 그 부분을 고백해야 할 부분에서 작가는 일단 팬을 놓을 수 밖에 없었고, 몇번인가의 쉼호흡 끝에 그 부분을 써 내려갔다. 

 

그녀가 성폭력을 당했던 것은 역시 모르는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대학 때 연극 서클의 선배로부터 당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것도 술이 취해 여관방에서. 모르는 사람들은 그러게 술은 왜 마시냐고. 그러니까 당하는 것 아니냐고. 여자에게 고의성의 혐의를 두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게 여자의 음주가 성폭력을 은폐하거나 축소시킬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을까? 여자가 의지적으로 마셨던 것이 아니라, 가해자쪽에서 의도적으로 마시게 한 것이라면 어떻게될 것인가? 그리고 책은 다분히 그런 의도가 있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성폭력 피해 순간을 묘사한 장면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 그 남자가 이제부터 자신에게 하려는 행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한꺼번에 알아차린다. 그 여자는 몸을 비틀며 소리 지른다. 그 남자는 여자의 두 손을더 힘껏 누르며, 제 입으로 비명을 지르는 여자의 입을 막는다. 여자는 고개를 뒤튼다. 입에 와 닿는 그의 입을 견딜 수 없다. 그는 점점 더 난폭해지고, 그 여자는 점점 더 필사적이 된다. 이런 일을 당하려고, 이런 모욕을 당하려고, 넉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어머니의 돈으로 등록을 한 것이 아니다. 여자는 그런 생각을  한다. 

그건 전투다. 삼십 분, 혹은 한 시간쯤 지속되는 전투.

그 여자는 손이 묶이고 몸이 짓눌리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몸을 비틀어 달아난다.

                              (중략)

여자는 다시 잠을 깬다. 그 남자가 또 그 여자 위에 있다. 그제야 그 여자는 자신의 어리석음과, 위험을 감지하는 기능이 잘못된 그 대책 없음을 깨닫는다. 그가 포기한 것이 아니었구나, 그저 잠깐 휴식이었던 모양이구나. 공포는 두 배쯤 되고 절망은 세 배쯤 된다. 그래도 그 여자는 최선을 다해 피한다. 다시 손이 머리 위로 묶이고 몸이 짓눌리고 입으로 입이 틀어막힌다. 고개를 저으며, 몸을 비틀며, 다리로 허공을 차며......

                                                                    (429~430p)

 

 

이책의 주인공 그 여자는 한 날 한 방안에서 같은 남자로부터 두 번의 성폭행을 당한다. 말 그대로 여자는 어리석은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싫을 것 같으면 1차 성폭행이 있고 당장 자리를 피하지 왜 2차까지 갔느냐. 두 번 해 주길 기다린 것 아니냐고 자기식의 왜곡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성폭행 가해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상대가 소극적이니까 내가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하는 망상. 그러나 나중에 주인공이 어떤 피해의식을 갖게 되는지 보자.

 

그때부터 그 여자에게 성이란 다만 부정적이고 불길한 무엇이 아니라 전투이고 치욕이다. 전투중에도 패전군의 부대에서 치르는 전투다. 내내 수세에 몰리다가 온몸에 상처를 입고 탈진하여, 두 팔을 들고 투항하거나, 힘들게 모욕을 참아내거나, 혹은 혀를 깨물고 자결하는 게 차라리 더 낫지 않을까 싶은, 그런 전투다. 하늘을 향해 배를 들어내고 자빠지면, 그것만으로도 치명적인 패배가 되는 거북이나 말똥구리나 풍뎅이같은, 그런 전투다. 그렇게 성은 부정적이고 왜곡된 형태로 자리 잡는다. 그 후로도 오래도록.    

                                                                         (431p)  

 

이렇게 성폭행으로인한 상처가 깊은데 여자가 겉으로 반응하는 건 굉장히 소극적이다. 훗날 그 여자가 남자에게 했던 말이 뭔줄 아는가?

"그 일은 없었던 걸로 생각할게요. 그러니 내게 부담 갖지 말아요." (445p) 

 

그러면 남자들의 거의 대부분은 그 말을 믿거나, 내가 그렇게 별것 아니었나? 오히려 더 자신을 증명하려 들거나 둘중 하나일 거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소극적인 반응만 가지고는 이 여성 성폭력 피해는 해결할 수 없다.

 

이 소설이 처음 나온 건 1995년이다. 그로부터 20년이 훨씬 넘어서야 미투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투 운동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운동이 아니다. 그동안 성폭력 사건은 많이 있어왔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 문제는 그냥 하나의 사건으로만 인식될뿐 인식의 변화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김형경 작가는 요즘의 미투 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작가는 그것을 고백하면서 우리나라의 전래 동화 '선녀와 나무꾼'이 얼마나 남성주의적 사고로 쓰였는가를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남자의 나뭇꾼의 시각에서 쓰였지 옷을 잃어버린 선녀의 입장을 하나도 대변하지 못하며, 오히려 최초의 성폭행 문학이며, 아름답고 슬프지만라고까지 냉혹하고 잔인한 이야기라고 지적한다. 

 

나는 그것과 더불어 뻑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남녀가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 여관이나 모텔에서 다음 날 침대에서 벌거벗은 채 잠에서 깨는 그렇고 그런 클리셰도 없어졌으면 좋겠다. 클리셰가 없을 수 없겠지만 이건 단순한 클리셰가 아니다. 이거야말로 전형적인 남성주의적 연출 방식이며 여자들이 은근  성폭력을 원하고 있다고 조장하고 있는 것 같아 불쾌하다. 남자는 여자가 원치 않으면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지 말아야 하다. 하지만 부부끼리의 성폭행은 또 얼마나 많은가.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서, 사실 한정오는 옳은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아니 적어도 성교육에 새로운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문제는 그런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에 학부모들이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또 좀 꺼림한 건, 드라마에서 학부모로 설정된 대부분은 엄마들이라는 것. 이해 못할 것은 없지만 아버지들은 예나 지금이나 늘 성교육의 사각지대에 있다. 또한 그로인해 징계를 받지 않으려면 한정오는 학부모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정말 엿같은 경찰 세상이다.

 

그런데 경찰은 그들만의 위로의 방식이 있는 것 같다. 사수인 오양촌(배성우 분.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좀 깡패스럽다)이 한정오를 나무라는듯 하지만 현실적인 충고를 한다. 그런 식으로 학부모를 흥분시킬 것이 아니라 정하고 싶다면 교육청 홈페이지에 얘기하고, 너는 하나라도 범죄에 대해 연구하라고. 하지만 난 너의 뾰족함이 좋다고. 배성우를 아주 좋아하지 않지만 이 드라마에선 그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낸다. 이 드라마를 통해 경찰의 애환을 드러내주니 요즘 경찰들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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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30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5-01 14:57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전 남자들이 자기 할 거 다해놓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자기 합리화하고
왜곡하는 거 그것부터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남자는 할 말없느니까 나중엔 나 좋아하냐고
그러던데 말인지 막걸린지 질리겠더군요.
남자도 성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의 아픔이 어떤 건지 똑바로 봐야하구요.
남자적 사고 방식의 이야기 구조도 좀 발라내야 하구요. 흐~

서니데이 2018-04-30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드라마 이제 끝난건가요. 한번도 못봤네요.;;
오늘까지 4월인데, 이제 1시간도 채 남지 않았어요.
오늘은 바람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었는데, 어제보다 기온이 조금 더 올라갔더라구요.
stella.K님, 4월에는 좋은 시간 보내셨나요.
5월에는 기다렸던 기쁜 일들이 자주 찾아오는 시간 되셨으면 좋겠어요.
편안한 밤 되세요.^^

stella.K 2018-05-01 14:49   좋아요 0 | URL
아뇨. 아마 이번 주에 종영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런 드라마는 드라마 잘 안 보시는 서니님이라도
한 번 봐 줄만하죠.
나중에 tv다시보기로라도 함 챙겨보세요.

고마워요. 서니님도 멋진 5월 되세요.^^

페크(pek0501) 2018-04-30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라서 여자로 태어나서 슬픈 일, 괴로운 일은 정말 싫은데 현실은 그렇더군요.
미투 운동을 관심 있게 보면서 너무 많은 폭로에, 너무 많은 상처에 충격을 받았어요.
어떻게 여자라고 해서 늘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할까요? 남자들은 2차, 3차 가서 술을 마셔도 되고 여자는 그렇게 하면 욕 먹고... 이 불공평함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남자들을 단체로 교육시켜야 할까요?

stella.K 2018-05-01 14:53   좋아요 0 | URL
<세월>이란 소설 읽으면서 할 수만 있으면
이 남성주의 편향의 이야기가 뭔지 싹 속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끔찍한 세상을 만든 건 남자면서
여자들에게만 조심해라 그러는 거 옳지않다고 봐요.
성교육은 남자들이 더 많이 구체적으로 받아야 할 텐데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어요.ㅠ

cyrus 2018-05-01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폭력 사건을 바라볼 때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편견의 문제점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줘야 해요. 이렇게 알려줘도 일부 부모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stella.K 2018-05-01 19:03   좋아요 0 | URL
맞아. 이 드라마 보면서 없는 얘기 썼을 리는 없고
의식의 변화가 이렇게 어려운 걸까 싶기도 하더군.ㅠ

transient-guest 2018-05-05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현재의 사회구조와 왜곡된 힘의 논리라면 ‘남자라서‘ 더더욱 성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단순히 섹스와 임신을 다루는 차원이 아닌 보다 더 감성적으로 다뤄져야 하는데 문제는 그걸 제대로 가르칠 사람이 없다는 거죠. 저는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인 관념에 치우친 성교육도 큰 문제라고 봐요.

stella.K 2018-05-05 19:00   좋아요 0 | URL
이렇게 말하면 좀 외람되긴 한데
남자들은 아랫도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서
그것으로 여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내가 몇 명을 평정했노라고 자랑하잖아요.ㅋ

혹시 기회되시면 저 소설 읽어보세요.
작가가 되게 잘 썼구요,
남자들이 여자를 쟁취하는 방식이 이런 거겠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자는 좀 더 인격적이고 잰틀하길 바라는데.
근데 일견 작가가 말하는 그 남자가 나름 순수하기도 해요.
제가 알기론 영화평론가 하재봉으로 알고 있는데,
문제는 그 순수가 남자가 생각하는 것과 여자가 생각하는 게
다르다는 거죠.
여자가 볼 땐 독선, 독점이런 것으로 보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