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주일학교를 나와서 시간만 죽이고 있던 어느 날 당시 구독하고 있던 신문에 아기 손바닥만한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여느 때 같으면 너무 작아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뭐 때문인지 그 조그만 광고가 나를 그냥 놔주질 않았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창작을 가르쳐 주는 학원에서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왠지 난 그 학원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글을 시작했던 초두에 글을 쓰려면 학원이나 문화센터를 다녀 보라는 걸 난 그때야 비로소 실행했던 것이다.

 

무작정 등록하고 다녔던 곳이 또 나름 별천지였다.

일반인에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문학계에선 나름 유명한 시인 김정환 선생이 원장으로 계신 곳이었는데, 선생은 80년 대 민주화 운동을 하셨고, 그곳에 포진되어 있는 강사들 대부분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던 작가들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이야기를 하고, 여자는 아기 낳은 이야기와 시댁 식구들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그곳은 모이면 운동 이야기를 했다. 사회적으로 볼 때 한풀 꺾인 것이긴 했지만 아직은 할 이야기가 많은 때이기도 했다. 

 

나는 그곳에 다니면서 막연했던 참여 문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로서 자의든 타의든 시대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군부독재에 맞서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은 다만 글을 썼을 뿐이다.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뭘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그 불꽃 같은 시대 그들의 투쟁을 나 같은 사람이 강건너 불구경 하듯 한 것에 대해 답답해 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름 존경스러운데가 없지는 않지만 이제 지나간 시절 살게 되어서일까? 스스로 영웅인 양 하는 것도 없지않아 보였다.)     

 

아무튼 난 거기서 초급반을 수강했는데, 글쓰기 전반에 관한 강의와 함께 워크숍 작품으로 처음 단편 소설을 완성해서 선생님과 수강생들로 부터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때 초급반을 담당했던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 나는데, 자신이 글을 쓸 사람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 두 가지가 있다고 헸다. 내 안에 분노가 있느냐와 글을 쓰고도 또 쓰고 싶은 욕망이 있느냐. 그때 나는 당연히 분노가 있었다. 그 제자에 대한 분노와 실의가 있지 않았더라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곳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때가 아니면 언제 그런 수업을 들어 보겠는가? 나는 선생님이 좋았고, 나와 함께 듣는 수강생들이 좋았다. 수업이 끝나면 우린 2차로 술과 밥을 먹으러 갔고, 거기서 교실에서 들을 수 없었던 문학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이게 또 언제인지도 모르게 내안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워크숍에서 좋은 평가를 들었던 게 훗날 다시 주일학교로 돌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만일 그 워크숍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위축되어 그 일을 다시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난 어느 틈엔가 다시 연락하겠다던 목사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일학교를 나왔을 당시엔 목사님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목사님 언제고 나에게 연락만 해 봐라. 내가 어떻게 거절할지 본떼를 보여 주겠다고 별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내가 그런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다시 연락하겠다던 그 말을 순수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목사님은 그 해가 다 지나가도록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아마도 안 했다기 보다 못 했을 것이다. 어떤 책임의식 때문에. 나는 다소 낭만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넘어졌던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땐 내가 먼저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고, 나 이후에 그 일이 전혀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듣고 다시 돌아가 그 일을 정상화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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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5-29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창작 학원, 문학 강좌...스텔라 님 의외로 이런 강좌 많이 참여하신 듯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도 그런 강좌는 생각도 못해봤는데 말입니다요..ㅎ

어쨌거나 대단하시다는..


stella.K 2017-05-30 14:08   좋아요 0 | URL
ㅎㅎ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저의 서재에서 야무님을 뵈오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이 길에 뜻을 두지 않았다면
그리고 평탄한 세월만 살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전에 창작은 대학의 문창과나 가야 배우는 것인줄 알았다니깐요..ㅋ
 

그렇게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만 같은 그 일을 나는 해를 넘기고 봄이 되올무렵 그만둬야 했다. 그것은 내가 그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를 도와줬던 제자 하나가 있었다(이 제자는 나의 책 <네 멋대로 읽어라>에 잠깐 언급했었다). 그때 나는 그 아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불행이었을까 아니면 다행이었을까 하필 그 아이는 그해가 고3이 되었던 때였다. 입시를 준비해야 했으니 언제까지나 나를 도와 줄 수는 없었다. 나는 그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말이 나를 도와주는 거였지 일에 대한 욕망이 너무나 커서 자칫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우를 범할 아이 같았다. 즉 선생인 나를 위협할 것 같았다. 바로 그것이 감지될 즈음 그 아이는 좋던 싫던 고3이 됐으니 다행이랄 밖에. 나는 나대로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었다. 

 

그 때는 또 팀을 따로 꾸리지 않고 그때그때 아이들을 차출해서 해왔던 터라 이제부턴 팀도 정식으로 만들고 안정적으로 일(사역)을 해 볼 참이었다. 바로 그 무렵 그 아이가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대학에 당당히 합격을 해서. 물론 가끔 주일학교를 거쳐갔던 아이가 졸업하고 봉사하겠다고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주일학교에선 그 아이에게 보조 교사의 자격을 준다. 그런데 담당 목사는 뭐 때문인지 그해부터 모든 주일학교를 자원하는 사람에게 교사/보조 교사 구분없이 동등하게 교사 자격을 부여했다.

 

모르긴 해도 목사님은 그런 구분을 없애도 별무리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 같았다. 어차피 우리나라 사회는 연공 질서 사회가 아닌가? 더구나 신자의 덕목 중 겸손을 제일로 삼는 교회에서 그것을 능멸하는 일을 일삼을 사람이 나올 거라고는 목사님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우려하던 바가 정확히 1년 후에 나타났다는. 그것도 너무나 큰 호랑이가 되어. 녀석은 마치 자신이 입시 때문에 잠시 선생인 나에게 맡겨놨던 것을 도로 찾겠다는 태도로 팀을 장악하려고 했다. 또한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교사의 권위는 목사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것이다. 녀석은 이제 더 이상 내 앞에서 어리광이나 피우는 조무래기 고등학생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목사님은 교사의 구분을 철폐할지라도 그 아이는 나를 도와 그 일을 잘 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알리없고 설혹 알았다고 해도 워낙에 일에 대한 욕망이 강했기 때문에 녀석은 주위를 찬찬히 살필 겨를 일 없었을 것이다.

 

나와 녀석이 갈등을 겪고 있으니 팀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나와 녀석의 눈치를 보며 불안해 하고 있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녀석은 팀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이런 상황은 처음 겪어보는 것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건 그저 굴러들어 온 돌이 밖힌 돌을 빼겠다는 의도로 밖에는 볼 수 없었고, 조금 강한 표현을 쓰자면 하극상이었다. 이 상황을 목사님께 터놓고 말씀을 드려도 목사님 역시 별 뾰족한 수를 내리지도 못하고 주저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있을 때 일은 공교롭게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졌다.

 

봄방학을 이용하여 1박2일 수련회를 가졌는데 팀의 한 아이가 거기서까지 나와 녀석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속상한 나머지 울음을 터트리더니 급기야 오바이트까지 하고 말았다. 그것도 덩치가 농구선수 같은 아이가.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웃픈 상황이지만 당시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여간 당황스럽지가 않았다. 결국 이 광경은 주일학교 전체 교사들에게 알려졌고, 결국 그 수련회 이후 나와 그 녀석은 소위 말하는 교사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고나 할까? 물론 실제로 교회내에 그런 위원회는 없다. 그만큼 그때 일은 중대사안으로 다뤄졌고 결국 회의 끝에 나와 녀석을 주일학교에서 그만두게 만들었다.  

 

물론 억울하고 속이 상했지만 그것이 최선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내가 제자 녀석 하나를 잘못 가르친 죄도 전혀 없다 할 수 없을 테니 주일학교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부끄럽고 처절한 느낌이 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목사님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없어 주일학교 교사들과 회의를 했다는 게 너무 창피했고, 1년 동안 피 말려 가며 일했던 댓가가 고작 이건가 원망스러웠다. 목사님이 1년만 더 있어 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내가 그 부탁을 들어주지만 않았더라도 이런 일은 내 인생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교사회의에서 녀석을 자르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자르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목사님은 위로조로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쉰다고 생각하라며 몇 개월 후에 다시 부를 테니 그때 다시 돌아와 일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도 별로 위로가 되지 못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한동안 자괴감 때문에 거울을 보기가 싫었다. 그리고 갑자기 남게된 그 많은 시간을 뭘 하며 보내야할지 망막했다. 또한 나에게도 이렇게 떨어질 나락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 일은 나에게 굉장한 희망이었고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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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8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굴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정말 힘들어요. 저 같은 쿠크다스 멘탈을 가진 놈이 교사 일을 하면 오래 못할 거예요.

stella.K 2017-05-28 17:51   좋아요 0 | URL
헉, 쿠크다스...? 그게 뭐지?
가르치는 거 잘 할거 같은데.
과외 한 번도 안 해 봤나?

근데 정말 가르치는 건 쉬운 일이 아냐.
주일학교 교사하는 것도 나는 정말 힘들더군.
남들은 잘도 하더만.ㅠ
그러니 현직 교사들은 얼마나 힘들겠니?
후배 하나가 현직 교산데 이제 제법 관록이 붙었구만 그래도 힘들데.
그래도 그 후배는 정년까지 갈 거야.
지금은 못 산다고 징징거리지만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갔는데.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어.ㅠ

cyrus 2017-05-28 17:59   좋아요 0 | URL
쿠크다스, 이거 과자 이름이잖아요. 그 과자의 두께가 얇아서 봉지를 뜯기만 해도 부러지고, 부스러기가 많이 생겨요. 그래서 쉽게 멘탈이 부서지는 것을 ‘쿠크다스 멘탈(심장)‘이라고 표현해요. 제가 말을 썩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을 안 좋아해요. ^^;;

stella.K 2017-05-28 18:06   좋아요 0 | URL
그거였어? 몰랐네.ㅋㅋㅋㅋ

그렇구나. 나도 좀 그런데.
물론 사석에서 떠드는 거야 요령껏 잘 하는 편인데
청중을 앞에 놓고 무슨 말인가를 하는 건 부담스러.
그래서 요즘도 하루에 한번씩 연습중.ㅠ
 

목사님 권유로 주일학교에 남기로 했던 그해 주일학교 예배에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예배 가운데 짧은 드라마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에 내가 투입이 된 것이었다. 그 일은 주일학교로서도 획기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때 내가 연극을 잘 알고 그 일을 한 것은 것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그런데 왠지 내가 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이유는, 예전부터 습작을 하면 나는 도전하는 글마다 쓰다가 중단하곤 했다. 그게 너무나 괴로워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있어도 일부러 누르고 안 쓰곤 했다. 써 봤자 또 쓰다가 말 걸 써서 뭐하나 꾹꾹 눌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은 맡은 이상 해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글을 쓰는 성실함을 배울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에 글을 쓰는 세번째 방법이 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 나를 몰아 넣어라. 

 

기자들을 보라. 그들이 마감 시간에 맞추기 위해 얼마나 피 말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기사를 잘 쓰고 못 쓰고는 둘째 문제일 것이다. 어쨌든 시간에 맞춰 기사를 쓰지 않는가? 나에게도 그런 것이 필요했다. 연극 대본을 쓰는 일은 그것을 몸에 베게하는데 최적화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난 평소 글을 쓴다면 소설을 쓸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연극 대본을 쓴다는 게 조금은 아쉬운 일일수도 있겠지만 소설이나 희곡이나 글을 쓴다는 건 같은 일이고, 나중에 소설을 쓰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나는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그 일에 최선을 다했다.

 

물론 그때 그 일은 힘들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당시 그 일에 나 말고도 두 분의 선생님이 더 계셨는데 그들은 초반에 조금 하다가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난 그 일이 얼마나 재미었던지 힘든 줄도 모르고 했다. 무엇보다 연극 대본을 쓰면 원고료를 받았는데 나는 그때 비로소 알았다. 작가와 작가 지망생을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원고료를 받으면 작가인 것이고, 이걸 받지 못한다면 그건 작가지망생인 것이다. 그러니 난 이제 더 이상 작가 지망생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내가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했는지 소개해 보겠다.

우선 내가 맡은 일은 목사님 설교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맞는 상황을 연극으로 표현해 줘야한다. 일종의 상황극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엔 굳이 결말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저 주인공이 이래야 하나, 저래야 하나 고민하다가 끝을 내면 나머지는 목사님의 설교에서 답을 찾는 뭐 대충이런 형식이다.

 

그런데 목사님 설교가 돌아오는 주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통은 수요일 정도에 알 수가 있다. 그럼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날은 목금 정도가 된다. 그 이틀 동안 그에 맡는 글감을 찾아야 한다. 이 글감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으로 빨리 찾으면 빨리 쓸 수 있지만 못 찾으면 그야말로 피가 마른다. 나중에 요령이 좀 생겼는데 그 무렵 시중에 <마음을 열어주는 101 가지 이야기>나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 뭐 이런 짧막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유행했었다. 그게 또 그런대로 목사님 설교와 매칭이 되는 부분이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대본은 A4용지 3장을 넘지 않으니 분량 자체는 그렇게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것을 다음 날인 토요일 오후에 아이들과 연습을 해야한다. 하지만 워낙에 짧은 시간이라 연습이랄 것도 없었다. 그냥 동선을 잡는 정도였다. 그러면 아이들은 내가 써 준 대본을 집에 돌아가 밤새도록(물론 빨리 외우면 잠도 잘 수 있겠지) 외우고 다음 날 8시, 10시 두 번 있는 예배를 위해 아침 7시에 만나 다시 한 번 대사와 동선 체크하고 올라가는 그런 식이었다. 

 

앞서 나는 이 작업을 '피 말리는 작업'이라고 했는데 정말 피가 마른다면 그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은 피가 말라도 좋았다. 너무 대본이 안 써질 땐 컴퓨터 모디터를 창문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하지만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렇게 내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짜릿한 쾌감이 있었고, 연극은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미친다더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았다.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좋아했냐면, 애초에 목사님이 그러셨다. 많으면 한 달에 두 번. 그저 평균 한 달에 한 번만 해달라고. 그것을 나는 한 달을 4주로 잡았을 때 세 번까지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러리만치 난 그 일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내가 뭔가에 쉽게 미치는 그런 열정적인 성격이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 일만큼은 열정을 바쳐서 열심히 했다. 

 

누가 나에게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가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못한다고 할 것이다. 그때 내가 하나님께 영감을 달라는 기도를 참 많이 했었다. 목사님 설교는 수요일 날이면 나오지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이틀 정도지. 그 기도 밖에 무슨 기도를 더할 수 있었을까? 사막에 정자를 짓고, 외줄타기가 따로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를 생각하면 선생님을 믿고 밤새도록 대사 외우고, 주일 날 유일하게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일텐데도 그것을 포기하고 새벽에 나와 준 아이들에게 진 빚이 많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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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대회 마감일 하루 이틀 전에 글을 써요. 처음부터 일찍 준비해야하는데, 다른 책들을 읽다보니 시간에 쫓겨서 글을 써요. 성공 확률은 계산해보지 않았어요. 오히려 상황이 쫓기고 있을 때 글이 잘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당첨에 실패한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마감일 1~2주일 전에 준비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

stella.K 2017-05-26 16:55   좋아요 0 | URL
아, 그런 게 있다더군.
왜 시험 공부도 시험 보기 바로 전이나 몇 시간 전이
가장 잘 된다잖아. 그걸 심리학 용어로 뭐라고 하던데...
궁하면 통한다는 뭐 그런 것과 비슷한 거지.
어떤 사람은 책을 일부러 도서관에서 빌려 보잖아.
반납일까지 읽어야 한다는 명분이 생기니까 게으른 사람에게
필요한 거지.
내가 한때 서평 이벤트에 목숨 걸었던 것도 그 이유고.
배운 도둑질이라고 아주 끊지는 못하겠더라.ㅋㅋ
 

 

지금까지 난 글을 쓰는 두 가지 방법을 얘기했다(하나는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써 보는 방법. 문화센터나 창작교실 같은 곳에 등록하는 것).  세 번째 방법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세 번째의 방법을 말하기 전에 나의 이야기를 잠시해 볼까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그전에 여기에 잠깐 잠깐씩 얘기하기도 해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는 얘기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독서를 하기 시작했고 비슷한 무렵 작가의 꿈을 자연스럽게 갖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별다른 재주는 없었고 그나마 글 쓰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제도권 그러니까 무슨 백일장이나 글짓기 대회에서 입선을 해봤다던가, 하다못해 교지에 내 글이 실리는 그런 영광 한 번 누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늘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고, 꿈이 그래서 그런지 주위에서 '너 글 좀 쓰네.'라는 말을 가끔씩 듣기도 했다. (그런 내가 제도권에서 놀지 못했다는 건 어찌보면 아이러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문학 소녀가 아닌 사람이 없고, 문학 소년이 아닌 사람이 없다고 그런 나의 꿈도 한때였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나의 인생 어느 한때 작가의 꿈을 버렸던 때가 있었다.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작가의 꿈을 접었는데, 하나는 어느 날 내가 어떤 책이든 한 번 이상을 읽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면 다른 독자도 나와 같지 않을까? 독자들이 이 한 번 읽을까 말까한 책을 내가 작가가 돼서 쓴다는 게 별로 의미있어 보이지가 않았다. 또 하나는, 당시는 민주화 항쟁이 극에 달하던 때로 한다 하는 작가들은 하나 같이 참여 문학을 했다. 나는 그들이 왜 참여 문학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단지 이제 문학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방황하지 않았다. 대신 어느 틈엔가 나의 의식에 훅하고 들어왔던 게 심리학이었다. 학교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 공부를 잘 해 본적이 없으면서도 심리학 교수가 되는 건 어떨까 꿈꾸리만큼 심리학을 좋아했다. 하지만 난 엉뚱하게도 신학교를 들어갔고 대신 목회 상담학쪽으로 졸업 논문을 쓰고 간신히 졸업을 했다.

 

그 시절 이 분야가 너무 좋아서 당시 다니던 교회 청소년 상담을 자원 봉사하기도 했는데 진짜 상담을 했던 건 아니고 그냥 허울만 좋은 상담원 노릇만 했다. 졸업하고는 (지금의) 교회를 옮겼는데 이곳엔 따로 청소년 상담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 그것도 그 어렵다던 고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이 다니는 부서에. (지금은 그게 중2로 낮아졌지만 내가 교사를 하던 시절은 그랬다.)  

 

2년 정도 교사를 해 보니 나는 가르치는데는 젬병이라는 것을 알고 그만 접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보통 교사를 안하겠다고 하면 주일학교는 적당히 밀당을 하다가 놔주는 것이 관례인데 뭐 때문인지 당시 담당이셨던 목사님이 나를 놔주지 않는 거였다. 나중엔 너무 내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전화대고 찔찔 울기까지 했는데 그러면서도 모르긴 해도 목사님이 이러실 땐 뭔가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목사님이 1년을 제안하시길래 못 이기는 척 그러겠다고 하곤 1년을 더 주일학교에 있기로 했다.

 

어찌보면 난 그 2년 동안 나름 뭔가를 열심히(하는 척) 했던 것도 사실이다. 글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으니 아이들과 주보 만드는 일을 하기도 했고, 집단상담에서 인간관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으니 목사님의 입장에선 내가 뭔가 쓸모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꿇기로 했던 그 1년이 나에겐 엄청난 변화의 계기가 될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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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교내 글쓰기 대회 입상은 여러 번 했지만, 전국구나 지역구 백일장 대회에 입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stella.K 2017-05-24 14:14   좋아요 0 | URL
ㅎㅎ 이글 어제 별로 반응이 없어서 누가 댓글 다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네가 젤 먼저 달았네. 고마워.
사실 6월에 강연 하나가 잡힌 게 있어서 내용을 정리해 보고 있는 중이야.
와, 근데 교내가 어디냐?
말했다시피 난 교지에도 실리지 못했어.
그래서 글을 차분하게 잘 쓰시는구만.^^

cyrus 2017-05-24 14:28   좋아요 0 | URL
‘교내‘라면 초ᆞ중학교입니다. 초등학생 때 제일 자신있는 글짓기 대회가 독후감 대회였어요. 그때부터 리뷰 ᆞ독후감 쓰는 걸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

stella.K 2017-05-24 14:39   좋아요 0 | URL
그렇군.^^

페크(pek0501) 2017-05-23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계신 건가요?

‘참여 문학‘하면 저도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한때 소설에 국가를 상대로 데모하는 장면이라도 꼭 들어가야 하던 때가 있었죠. 현실 반영이라는 차원에서 그랬다기보다 정치적인 게 들어가야 소설답다고 인식되던 때였던 것 같아요. 무슨 유행처럼 모든 소설에 정치와 관련한 글이 들어갔어요. 그런 게 들어가지 않으면 수준 이하로 평가되곤 했었죠.

나중에 알았죠. 꼭 정치적인 게 들어가야 좋은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지금도 심리학에 관심 많아서 신간이 나오면 자세히 검색해 본답니다.

stella.K 2017-05-24 14:20   좋아요 0 | URL
아뇨. 저는 가르치는 게 젬병이라 벌써 그만뒀습니다.
제가 그 시절 주일학교 연장 근무한 것도 가르치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어요.

그죠? 참여 문학이 그런 정치적인 것과도 관련이 있어요.
그 시절 문학이 죽었다고 보는 저의 시각이 틀린 것만도 아니죠?

예전에 심리학이 좋았을 때는 정말 신천지를 보는 것 같아 좋았는데
지금은 좀 시큰둥해요. 사람을 너무 수치화하고 정형화하는 것 같아서 좀...ㅠ
 

자신이 정말로 글을 쓰고 싶다면 이건 적극 추천할만 하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혼자하는 작업이긴 하지만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은 혼자 쓰기란 쉽지 않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보고 글을 쓴다는 것도(과연 있을까 모르겠다. 이건 참고서 같은 거 아니겠는가?) 여간 독한 마음 먹지 않으면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가장 효율적인 건 문화센터나 창작을 가르쳐 주는 학원에 등록하고, 워크숍 작품을 써서 내고 합평을 받아 보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다. 물론 합평을 받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받아서 좋은 소리를 들으면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별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면 의기소침해 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좋은 소리를 듣건  안 듣건 간에 그것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나 같은 경우 좀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원래부터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참가한 워크숍마다(물론 몇 번 되지도 않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은 평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다고 가장 마지막 참가한 워크숍 작품에서 참혹한 혹평을 받았다. 어찌나 창피하고 부끄럽던지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고, 결국 눈물이 질금 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지나놓고 생각해 보면 그렇다고 해서 나의 좋은 글쓰기 위한 노력이나 관심이 조금도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자양분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말하려 하는 건, 그렇게 좋은 강좌를 들을뿐만 아니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있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정보도 공유하며 좋은 경험을 쌓아 나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호회 활동도 권유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느 기간 동안만 가능할 것이다. 결국 글쓰기란 혼자하는 작업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 내가 다닌 마지막 학원에서 함께 들었던 한 수강생은 그전에도 몇 번의 수강 경험이 있었고, 이번에도 또 다시 수강하는 거란다. 그러면서 그는 남의 워크숍 작품은 열심히 읽고 리뷰는 하면서 정작 자신의 작품은 낸 적이 없으며 따라서 누구에게 평가를 받아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런 사람이 나중에 굉장한 작품을 낼 수도 있고, 시간 있고, 돈 있어 그런다는데 뭐랄 사람은 없겠지만 언제까지 그러고만 있을 것인가 의아스럽기도 했다. 내가 그 학원과 안녕을 고했을 때 듣기론 그 수강생은 다음 번에도 수강 신청을 했다나 할 거라나. 

 

물론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 보다 나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어느 한 군데 자신을 종속시키고 더 이상 성장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해 일견 안쓰럽기도 했다.        

 

지금까지 난 좋은 글쓰기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방법과 나의 생각들을 얘기했을 뿐이다. 어떤 방법이 좋은지는 각자가 알아서 찾아 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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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5-2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stella.K 님 잘 모릅니다. 블로그 글도 거의 못 읽었어요. 하지만 stella.K 님 화통한 게 좋습니다. 뭐랄까 여장부 같다고 할까요. 저 같은 쫌팽이는 당당하게 자기 의견 · 속내를 털어놓는 화통한 성품이 부럽기만 합니다.

stella.K 2017-05-20 19:10   좋아요 0 | URL
ㅎㅎ 아유, 왜 그러십니까? 쑥스럽게...
뭐 가끔 그런 소리도 듣긴 합니다만 그런 사람이
취약한 것도 많죠. 뒤통수도 많이 맞고.ㅋㅋ

저도 님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만,
섬세하시고, 꼼꼼하신 분 같습니다.
저에겐 별로 없는 성격이기도 하죠.
앞으로 한 수 배우겠습니다.^^

cyrus 2017-05-21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가를 받을 때 적당한 비판(퇴고해야 할 부분을 알리는 것)은 받을만 해요. 그런데 비판이 너무 많은 것도 안 좋아요. 상대방이 자신의 글을 퇴고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일을 해본 적이 있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글쓴이와 친해지게 됐어요. 그 친구가 저한테 하는 말이 제가 자꾸 퇴고 지적질해서 고칠 때마다 괴롭고, 글 쓰려는 의지마저 줄어들어서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 듣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지나친 지적이 상대방의 능력 향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다행히 그 친구는 지금 기자가 되었어요.

stella.K 2017-05-22 14:52   좋아요 1 | URL
와우, 누군지 좋은 친구를 만난 거네.
이 지적질이라는 게 사람이 받을만할 때 해야
서로 좋은 거지 상대가 그걸 받아들일만한 자세가
안 돼 있으면 못하는 거야.
그런데 지절질 하는 사람도 그래. 이 사람이 정말 상대방의 글에
대해 좋은 의도라면 모르겠는데
골탕 먹일려고 의도적으로 까는 사람 있거든. 그럼 정말 기분 나쁘지.
어떻든 둘 다 그 산맥을 넘을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
그걸 못 이겨내면 글 쓰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