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다 보면 예기치 않는 분야의 책을 의도적으로 읽기도 한다. 이를테면,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극장가에 영화 <캐리>가 들어왔다. 이 영화는 알다시피 스티븐 킹의 원작을 영화화 한 것으로서 장르는 호러다. 하지만 그 영화는 청소년 이하 관람 불가라 볼 수가 없었다 

 

영화가 청소년 이하 관람 불가판정을 받게 되는 경우는 선정성 때문인데 가끔 그 선정성의 기준이 애매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영화가 선정성이다라고 하면 으레 노출 수위를 생각하지만 영화 <캐리>가 불가판정을 받은 이유는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무서운 영화가 아이들의 정서에 미칠 것을 고려해서 불가 판정을 내린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영화가 상영될 무렵 책도 함께 번역돼서 나왔는데 그렇다면 어린이에게 영화를 못 보게 했으니 책도 팔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 서점에서 비교적 손쉽게 그 책을 구입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영화는 안 되고 책은 된단 말인가?

 

하긴 영화 보다 책이 단속이 덜 한 건 사실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극장 아니면 영화를 볼 수가 없고 극장 수도 몇 되질 않으니 청소년 이하를 걸러내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아이들은 말도 잘 들어서 그렇게 보지 말란 영화는 보지 않는다.

 

이렇게 영화는 볼 수 없으면서 책은 볼 수 있는 이 작품이 아이들 사이에서 어떻게 인식되었느냐는 좀 생각해 볼 일이긴 하다. 사실 그 작품이 선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피가 낭자한 것도 있겠지만 사춘기 여자 아이의 월경을 직간접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같은 또래 여자 아이들에겐 더 민감한 사항이었다. 그러니 그 작품은 남자 아이들에겐 호기심이었고, 여자 아이들에겐 민감했던 책이었다. .

 

지금은 영양 상태가 워낙 좋아서 여자 아이들이 초등학교 3, 4학년이면 첫 월경을 한다지만, 당시는 이르면 초등학교 6학년 늦어도 중학교 1학년 전후해서 대부분 시작한다. 가뜩이나 월경을 언제 시작하게 될지 은근 예민할 때니 그 책에 예민했던 건 당연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의 민감함을 자극한 아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나였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책을 읽고 싶어 읽겠다는데 그 누구의 제제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더구나 학교에선 보지 말라는 것도 아닌데 못 볼 이유가 없지 않는가?

 

난 그 작품이 무섭다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단순히 주인공이 월경을 하느냐 마느냐 가지고 같은 반 남자 아이들을 의식해서 못 본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그런데 내가 어쩌다 부주의하게 책상에 그 책을 올려 놓으면 아이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빨리 책상 속으로 집어 넣으라고 종주먹을 하는 것이다.          

 

물론 여자 아이들이 왜 그런지는 모르는 바는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확실히 좀 난센스긴 했다. 어차피 월경이 시작됐거나 시작할 운명들 아닌가? 그게 쉬쉬한다고 감춰질 수 있는 문젠가? 그리고 그때 여자 아이들이 그 책에 민감했던 것을 보면 얼추 월경을 시작했다는 말일 수도 있는데 그런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면서 물어보면 아니라고 딱 잡아떼는 것보다 아예 누가 무슨 책을 읽던 관심 없다가 더 확실한 방어책은 아니었을까?

 

하긴, 나도 이제 고백하는 거지만 그때 내가 그 책을 굳이 사서 본 이유는 꼭 작품이 어떤지,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하는 고상한 목적이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책을 고를 때 그런 것을 고려해서 고른다지만 사실은 반 아이들에게 은근 관심을 끌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그러니 내 책상 위에 살짝 올려놓고 치우는 것을 잊은 양 멍하게 있다가 같은 여자 아이들로부터 원성을 샀던 게지. 그래 놓고 내린 결론은 난 공포물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그 책을 반도 못 읽고 덮어버렸다. 재미도 없거니와 내가 아직 그 책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숙되지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표지라도 좋았다면 어떻게든 끝까지 읽었을지도 모른다. 돼지 피를 덮어쓴 주인공의 몰골을 표지로 쓸 생각을 했다니? 그건 좀 그렇지 않은가?

 

                                            

                                 <캐리>가 우리나라에 처음 초판이 나왔을 때 영화 광고 사진을

                                            그대로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나의 독서가 꼭 많은 사람들의 눈을 잡아 끌 필요는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단 한 사람의 눈을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나의 과시용 독서는 성공이다. 그 시절 나는 그렇게 <캐리>를 읽는 것에 실패했지만, 어떤 책 하나로 내가 좋아하던 남자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건 당시 계림문고는 흥행에 성공을 했는지 어린이용 추리물을 새롭게 내놓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이 추리물도 당시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셜록 홈즈 아니면 괴도 루팡이 전부였으니까. 그것을 어린이 입맛에 맞게 편집해서 팔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시절 난 내 바로 앞에 앉은 남자 아이를 좋아했는데, 그 아이는 확실히 마성의 아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 아이라면 이 아이를 좋아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뭔가의 매력이 있었으니까. 보통 그런 아이를 두고 여자 아이들은 바람둥이라고 하고 또 그런 바람둥이 아이를 내가 좋아할 리 없다. 그런데도 어느 새 나 역시 그 아이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성의 아이랄 밖에.

 

생각해 보면 나도 이 아이의 눈이 띄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던 것 같다. 하지만 난 뭐 하나 특별하게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남과 같이 공부를 잘 했던 것도 아니고, 특출 난 제주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책 하나 열심히 읽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난 바로 이 따끈 따끈한 추리물로 그 아이를 사로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남녀 구분 없이 추리물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그땐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 보다 압도적으로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처음 나오기 시작해서일까? 남자 아이들도 아주 열광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난 그런 책을 일부러 그 아이가 알아줬으면 해서 거의 눈만 보일 정도로 높이 올려서 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건넸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마성의 아이는 확실히 하는 짓도 남 다르긴 했다. 그냥 빌려 달라고 말로 해도 되는 것을 굳이 검지 손가락으로 나의 미간을 톡 건드리더니 , 그 책 좀 빌려 줄래?”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르긴 해도 제간엔 내가 하도 책을 열심히 읽고 있으니 그냥 말로 해선 알아 듣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런 제스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참 묘했다. 그 아이의 그런 반응을 내가 좋아해야 하는 건지 싫어해야 하는 건지 잘 분간이 가질 않았다. 그렇게 고대해서 얻어낸 기횐데 그저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라 잠시 혼란이 왔을 뿐이었다. 내가 원하던 순간이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기다렸다는 듯 격하게 반응을 하면 얼마나 값 싸 보이겠는가? 그래서 무심한 듯 시크하게, “그래. 다 읽고 빌려줄게. ” 했다. 이게 중요한 거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그 아이의 여자가 될 수 없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그런 아이와 사귀려면 미모는 기본이고 공부도 잘 해야 하는데 미모는 고사하고 공부를 못했으니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할 리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더라도 남이 좋아하는 아이를 나도 좋아한다는 건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가질 수 없다면 시크하게 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좋은 사람은 또 오는 법이니까.     

 

사실 마성의 아이라고 해서 그 친구가 특별한 뭔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건 아니다. 좀 짓궂은 데가 있어서 그렇지 활달하고 그저 남자다운 박력이 있는 그런 아이였다.

 

그래도 워낙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이였으니 이 친구가 과연 누구를 좋아하느냐가 관심사였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학년이 거의 마쳐갈 무렵 어떻게 하다가 그 친구가 좋아하는 아이가 누구인지가 밝혀졌다. 그리고 그것이 밝혀졌을 때 과연 그 아이라면 그럴만하다.’ 싶었다. 상대 아이는 정말 나 보다 예쁘고 공부도 잘 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 아이도 그 친구를 좋아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은근 새침하고 자기 속내를 쉽게 드러내는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당연히 좋아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것을 아는 순간 그 친구는 나에게 있어서 더 이상 마성의 아이가 아니었다. 그냥 바람기가 많은 그런 아이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게 꼭 아니어도 우린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져 중학교를 가야 한다. 그때는 남녀 구분이 확실했으니 중학교를 가면 지금만큼 이성교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 친구와 사귈 수 없다고 해도 크게 손해 볼 것도 없었다.    

 

그래도 부인할 수 없는 건 그 아이가 나를 어느 정도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거다. 그건 단순히 내가 치마 두른 여자 아이여서 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의 미간을 톡하고 건드릴 만큼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 인상적이어서는 아닐까  

 

나 역시 책 읽는 사람은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 마침 집에서 가까운 양재 시민의 숲을 친구와 함께 간 적이 있다. 그때 우연히 격자무늬 등받이가 있는 벤치에 웬 키가 훤칠한 흑인 남자가 책을 읽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찌나 인상적이던지 한동안 곁눈질하며 본적이 있다.

 

이렇듯 책 읽는 사람은 시선을 고정시키는 마력이 있다. 꼭 그렇게 숲 속의 벤치가 아니어도, 하다못해 지하철을 탓을 때 스마트폰을 보거나 무심한 표정들 속에 누군가 꼭 한 사람은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 포착이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이 보고 있는 책이 무엇일까와 함께 그 사람이 뭔가 모르게 달라 보이는 것이다  

 

누구를 유혹하고 싶은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줘라. 좋아한다고 무작정  들이대는 것 보다 그렇게 책을 보며 무심한 듯한 표정이 오히려 상대의 애간장을 태우는 것이 될 수가 있다.

 

, 물론 책만 본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맞는 코디도 필요하고 포즈도 필요하겠지. 명색이 사람을 유혹하는 것인데 아무렇게나 대충은 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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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5-1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석하게도 저는 유혹하고 싶은 사람이 없사옵니다. ㅋㅋ
언젠가 들은 소린데 지적인 여자에게 남자가 호감을 갖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합니다.
똑똑한 남자에게 호감을 갖는 여자들이 있는 반면에요.
오히려 똑똑한 여자를 싫어한다고도 해요. 백치미 있는 여자가 더 매력적일 수 있나 봐요.
물론 사람 나름이겠죠?
으음... 책을 읽고 있으면 여자든 남자든 그건 분위가 나죠. 맞아요. 이걸 왜 저는 젊은 시절에 몰랐는지 모르겠어요. 애석해라... 님의 글을 진작 봐야 하는 거였는데...

참, 제의 받으신 좋은 소식을 축하드립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시길 응원합니다. ^^


stella.K 2014-05-11 18:5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얘기 들어본적 있어요. 저는 백치미는 아닌 것 같고...ㅋㅋ
그럴 수 없다면 남자들은 대체로 잘 웃는 여자를 선호한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런데 여자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너무 잘 생긴 사람은 보기는 좋은데 왠지 사귀기엔 부담스러운 것 같아요.
이 글 쓰면서 저의 남자 취향에 대해서 다시 생각 보게 됐어요.
전 썼던 것처럼 활달한 사람을 좋아하고 뭔가 분위기를 알고 자상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