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다.

기억이 흐릿하긴 한데, 그때 이미 집엔 계몽사란 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에서 나온 50권짜리 <소년 소녀 명작 전집>이던가 하는 전집류와 같은 출판사인지는 모르겠는데 20권짜리 <어린이 전래 동화>인가 하는 책이 있기는 했다. 둘 다 몇 년 된 책들인데 이 책들은 나를 위한 책은 아니었다.

엄마가 나 보다 먼저 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언니와 오빠를 위해 방문 판매를 온 책 장사에게 그 책을 샀던 것이다. 엄마는 언니와 오빠가 초등학교엘 다니고 있었으니 그런 책 한 질쯤은 두고 읽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땐 또 서열 의식이 강해서 오빠가 나와 동생에게 함부로 그 책들을 만지지 못하게 했다. 읽어야 한다면 꼭 오빠의 허락을 받고 읽어야 했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아직도 한글을 떼기 전이었으니 그 책에 욕심 낼 처지가 못 됐다. 그러니 오빠가 그 책 가지고 위세 부려봤자 나와 동생에겐 그다지 먹히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그래? 그럼 그냥 오빠 가져. 어차피 우린 책도 잘 볼 줄 모르잖아.’ 뭐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서열 의식도 다 같이 욕심 낼만한 것에서 내야 빛을 바라는 거지 한글도 다 못 뗀 조무래기들을 데리고 내 봤자 알아주지도 않는다라는 걸 오빠도 알았는지 나중엔 책에 대해 그다지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전집들은 무료한 날 심심함을 달래기 위한 좋은 놀잇감이 되어 주곤 했다. 이를테면 그 50권 자리를 책꽂이에서 빼서 다 흩어 놓고는 걸레로 깨끗이 먼지를 닦고 1권부터 마지막 권까지 누가 빨리 찾아서 다시 책꽂이에 꽂아 놓나 시합을 하는 것이다. 중간에 두 세 권 정도를 잃어버려서 항상 그 놀이에선 아쉬움이 남았지만 우리 같은 조무래기들에겐 전집류는 그런 존재였다.

나중에 한글을 깨쳤으니 슬슬 읽어 볼만도 할 텐데 나는 왠지 그 전집엔 손이 가지 않았다. 이제 초등학교를 갓 들어갔으니 한글만 깨쳤다 뿐 왠지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제 초등학교엘 갓 들어 간 아이가 <소공자><소공녀>를 어찌 알겠으며, <쿠오레>는 또 어찌 알겠는가? 그런 것들을 읽으려면 적어도 언니 나이쯤 되야 하는데 그때 되면 그 책들은 구닥다리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받았던 생활통지표(그때는 성적표가 아니었다. 통지표였다)에 담임 선생님은 나의 뭘 보고 그런 평가를 내리셨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책 읽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고 쓰셨다.

솔직히 난 그렇게 써 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언니가 읽어줘서 알았는데 언니는 또 뭐가 좋다고 읽으면서 깔깔대고 웃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애 처음으로 받아 본 생활통지표에 국어가 였으니 점수로 치자면 빵점을 맞은 거나 다름없으니 그것과 연관 짓다 보니 웃을 수 밖에. 하지만 그게 웃을 일인가? 오히려 언니라면 가슴 아파하며 격려해줘도 부족할 판에 생판 남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언니도 알고 보면 날 것도 없었다.

솔직히 그 무렵이 70년 대 초였고, TV가 흔한 시절이 아니었는데 그런 시절에 아이에게 전집류를 사 주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그런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언니를 위해 산 그 계몽사 전집을 몇 권 읽고 안 읽었던 것이다.[1] 그러면서 내 통지표에 담임 선생님이 그런 평가 좀 썼다고 킥킥대고 웃을 수 있는 것인가? 하여간 언니라고 하나 있는 게 도움이 되질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 역시도 생애 첫 통지표에 국어 성적이 라는 건 어린 마음에도 충격적이긴 했다. 이런 성적이라면 앞으로 이 험난한 학교 생활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좀 캄캄하긴 했다. 그리고 정말 선생님은 나의 뭘 보고 책 읽기를 싫어한다고 했는지 알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만해도 선생님 말씀은 곧 진리요 법인데 의문을 품었다간 오히려 반항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 그럴 수도 없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나 자신을 두고 봤을 때 선생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글을 남들처럼 빨리 읽지를 못하는 것이다. 아주 천천히 읽는 편인데 그것을 선생님은 내가 책을 읽기를 싫어한다고 본 것 같았다. 책을 천천히 읽는 것과 책을 싫어하는 것과는 다른 것인데 그때 선생님은 나를 좀 더 인내하고 지켜봐 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아무튼 그런 담임 선생님의 평가도 있었고, 언니의 조롱을 받고 나니 확실히 이 부분에서 은연중 열등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언니는 일찌감치 책과 담을 쌓고 살지만, 나는 거북이 경주하듯 빨리 읽지 못하여 많이 읽을 수는 없지만 길게 꾸준히 읽어 지금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언니의 웃음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또한 담임 선생님의 그런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렇게 독서는 시간을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도 봤다. 책을 빨리 읽을 수 있는데 많이 읽지 않는 사람이 있고, 느리게 읽는데 많이 읽는 사람도 봤다. 물론 빨리 많이 읽으면 그 보다 좋을 수야 없겠지만 어떻게 읽든 그것을 시간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짜 책을 읽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성적에 있어서 영원한 는 있을지 모르지만 영원한 는 없다. 나는 훗날 학교를 다니면서 국어에서 썩 괜찮은 성적을 거둔 적도 있으니까. 물론 그것이 내 인생에 스크래치는 좀 남겠지. 그러나 사는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말인데 열등감은 열등감으로 있지 않는다. 무엇이든 자신의 한 가지의 것에 가만히 응시해 보라. 그러다 보면 그것에 휘말리는 나 자신 보단 뭔가 그것을 이겨보고 싶다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나는 바로 그 열등감을 응시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본격적인 독서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1] 사실 이것도 분명치는 않다. 나중에 언니는 그 책을 다 읽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언니가 그 책을 산 초기 때를 제외하고 읽는 걸 보지 못했다. 단지 내가 지금 와 이렇게 밝히는 것은 누가 옳고 그르냐를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객관성 유지 차원에서 밝혀두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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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4-30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나게 빠르셨네요. 저는 초등학교 전에 책 읽기를 조금 좋아하다가 초등학교 입학부터 대학교 입학까지 독서의 공백기였죠. 학업이 분명 관련되었겠지만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독서의 시작은 대학입학이지만 대학시절에는 도서관에서 책만 빌렸지, 독서는 부진했죠. 정작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독서는 대학 졸업과 함께 시작했죠. 저도 왜그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책 읽기 좋은 학창 시절 책을 안 읽다가 남이 책을 안 읽는 그 시절부터 책을 읽게 된 이유를요.

stella.K 2014-04-30 18:31   좋아요 0 | URL
와우, 이 글 올리기 잘했군요.
이렇게 마립간님 댓글도 받고.
제가 빠른 거군요. 전 남 보다 책을 빨리 읽지 못해
무지 열등감 느꼈었는데. 이거 벗어난 거 얼마 안 되요.ㅎㅎ

2014-04-30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30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4-04-30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4학년 때부터 책과 친해지다니... 저에 비해 많이 빠르군요.
원래 4학년 때가 뭔가 알기 시작하는 때가 아닌가 생각해요.
저도 4학년때부터 공부에 흥미를 느끼면서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거든요.

으음... 추천 수도 높고 방문자 수도 200명이 넘고 이제 예전으로 돌아가신 듯하네요.
축하드려요...

stella.K 2014-04-30 18:31   좋아요 0 | URL
제가 빠른 거군요. ㅋ

지지난주부턴가 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