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언어 - 더없이 꼼꼼하고 너무나 사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어 500
나카무라 구니오 지음, 도젠 히로코 엮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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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인터넷에서 발견하고 600페이지가 넘는 것을 보고 솔직히 좀 식겁했다. 어느 정도 도톰한 책을 선호하긴 하지만 6백 페이지는 좀 부담스럽다. 하지만 하루키의 많은 저작물을 생각할 때 6백 페이지는 결코 두꺼운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발췌독을 하게 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웬걸, 막상 받고 보니 풋 웃음이 나왔다. 책 모양이 좀 특이한데, 손바닥만 한 단어 카드 묶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정말 "야레야레, 하루키."란 말이 절로 나온다. 여기서 야레야레란 "이런, 이런" 뜻이라고 한다. 


사실 난 하루키의 작품을 그리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한 번씩 하루키에 관한 책이 나오면 관심이 간다. 세상엔 저명한 작가들도 많고 그 작가의 저작물은 물론이고 그에 관한 책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하루키만큼 많이 나오는 작가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하루키 한 사람에 대한 부가가치는 생각보다 큰 것 같다. 오죽하면 이젠 하루키스트 또는 무라카미 주의자란 말이 있을까. 이만하면 (전에도 느끼긴 했지만) 그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도대체 하루키가 누구라고 글 깨나 쓰는 먹물들은 그에 관한 책을 쓰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일까. 이 책도 보라. 사전식으로 정리하긴 쉬운 일인가.


그런데 반해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막상 하루키 자신은 자신이 이룬 문학적 업적에 대해 덤덤한 자세를 견지한다. 그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특별한 표정이 없다. 웃는 얼굴도 없지만 찡그리는 것도 없다.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을 수 있을까? 그렇게 많은 책을 쓰고 번역을 했음에도 글쓰기가 천명인 양 흔들림이 없다. 그렇게 많은 책을 냈다면 앓는 소리나 잰 척을 해도 누가 뭐랄 사람도 없을 텐데 그는 항상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난 그저 내가 할 일을 할 뿐인데 뭐가 문젠 가요 하는 식이다. 글쎄, (너무도 유명한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젊었던 어느 날 야구장에서 튀어 오르는 야구공을 보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날부터 글을 썼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 마음을 매일 골 천 번을 먹어도 끝내 어느 지점에서 절필하고 문단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작가도 수두룩 빽빽한데, 어떻게 하루키는 나이 70이 넘도록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그처럼 많은 사람들의 총애를 받는 작가가 될 수 있는지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는 야구공이 튀어 오르는 순간 우리가 모르는 번개를 맞았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되기로 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 번개 말이다.


아무튼, 그런 하루키의 한결같음을 재수 없어하는 사람도 있는가 보다. 하지만 하루키가 그와 정반대의 사람이 되어도 똑같이 싫어하지 않을까? 또 누구는 하루키가 그런 자세를 유지하는 건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이 배어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앞서 말한 대로 그의 작품을 별로 즐겨하진 않지만 하루키 자체는 존경하는 쪽이다. 이 세대가 어떤 세대인가? 책을 정말 안 읽는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일본도 책을 안 읽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럼에도 하루키는 그것에 크게 상관하지 않고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꾸준히 글을 썼고 책을 냈다. 내가 그를 존경하는 건 그것이다. 그의 문학적 업적 때문도 아니고, 그가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기 때문도 아니다. 꾸준히 책을 낸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어떤 신인 작가 또는 작기 지망생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많은 책을 냈어도 그의 시작은 데뷔작 한 권에서 시작이 되었을 테니까.   


그는 이제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하나의 왕국을 건설했다. 그야말로 하루키 월드다. 거기에 하루키스트도, 무라카미 주의자도 있는 건 당연해 보인다. 우리는 일본의 모든 것을 싫어할 수 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하루키만큼은 싫아할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하루키만 추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역시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갖기까지 실상 미국 문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니까. 특히 스콧 피츠제럴드.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스트, 하루키언을 자처할 때 그는 피츠제럴드언이었다. 그는 미국 문학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미국 작가들의 작품만 번역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루키를 따라서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책을 보면 하루키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번역을 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그는 번역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하루키스트가 되려면 정말 바쁘겠구나 싶기도 하다. 영어도 잘하고, 번역의 기술도 배워야 할 테니. 뭐 그게 아니어도 하루키가 좋아한다는 미국 문학은 꿰뚫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에 관한 책들이 많기도 하지만 이렇게 사전식으로 일목요연하게 나오기는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개인적으론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저마다 온도차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키에 대해 웬만큼 아는 사람은 이 책이 뭐 대단한가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은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취약한 점도 없지 않다. 즉 내가 알고 이해한 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장편 같은 경우 이 사람이 그 사람 같고, 내가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 맞나 작가의 서사를 따라간다는 게 가끔 버거울 때가 있다. 물론 독자의 자유 중 오독의 자유도 있다지만 딴 데 가서 남의 다리 긁고 있는 것도 작가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그 책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어느 정도 알면 오독률을 줄여 볼 수도 있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읽은 척할 수도 있을 테니 이런 책 한 권쯤 옆에 끼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매 페이지마다 삽화가 그려져 있는데 그것도 꽤 즐길만하다.

 

참, 우리가 언제부턴가 자주 쓰는 '소확행'은 알고 봤더니 하루키가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글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 뜻으로 처음 쓰기 시작한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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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0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0-10 19:4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정말 작죠?
소설 싫어하는 사람은 하루키 정말 최악일 수도 있어요.
실제로 오래 전 저 아는 사람은 읽다가 머리에 쥐났다고 하더군요.
근데 전 이 책 정말 괜찮았어요.아무 생각없이 읽기만 하면 되니깐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