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이 다 되도록 책은 사볼만큼은 다 사보진 못했지만 틈틈이 한 두권씩 사는 책들도 이제 둘데도 마땅찮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누구들 권장으로 싼 값에 책을 버린다는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장서의 의욕 때문에 책장의 옥탑방까지 꾸미게 되었는데도 책들을 훑어보면서 산다. 

  어느해던가 간송미술관 들러서 최순우 옛집을 갔을 때 그곳 여직원 한 분이 알아보고 손주도 안데리고 혼자 오셨다고 하면서 책 한권을 준다. <성북동2> 성북구청에서 발행한 책인데 나중에 알고보니 최순우 옛집에 관계한 분들이 쓴 글이다. 그 이후 <성북동1>을 찾아 보았으나 비매품이라 구할 수 없었다.  그리고도 몇해가 흘러갔다. 하루는 허술수로 헌책방 인터넷 모듬인곳에 <성북동1>을 찾아보니 이런, 1은 없고 그 사이 <성북동3>이 나왔고 비매품이 아닌 <성북동 길에서 예술을 만나다>란 책이 처음 책을 만든 이들이 저자로 되어 있었다.

 <성북동3>은 역시 성북구청 발행이고 비매품 인데 헌책방에서 2천원에 판매 하고있어 그곳엘 찾아갔다. 책 값은 2천원인데 배송비는 2,500원이라 좀 아까운 생각도 들은 차에 그곳이 우리집과 멀지 않은 관계로 찾아갔는데 창고가 따로 있어 바로 구매할 수가 없어 주문만 해놓고 돌아와서 혹 다른 책은 없을까 싶어 찾아보다가 몇 권 발견하고 메일로 주문 했더니 다음 다음날에 살 수 있다고 해 이틀 뒤에 책을 사 왔다.

  이영순 선생 장시 3권이 세트로 나온게 상당히 싼 값이었다. 예전에도 이 책을 구하려 했으나 한권 발견하여 2만원에 시집 한 권을 구하고 비싸서 더 못 사고 있던중 <이영순 시선>이 서울대 근처 헌책방에 있다고 해 찾아간 적이 있었다. 저자가 동명이인의 여류시인이 있어 확인 하고 사려고 가서 보니 내가 찾던 분의 시선집이라 냉큼사면서 조병화씨의 수필집 한 권이 있어 못보던 책이라 보지도 않고 사왔는데 이런, 이 책이야말로 조병화 시인과 이름이 같은 여자분이 쓴 책이라 실소하고 어느 구석에 처 박혀 있지만, 엉뚱한 곳에서 세권 세트의 이영순 시집을 구했다.

  손주 녀석이 중학 1학년때 교내 시화전에 출품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녀석이 그림에 이어 시까지 좋아하나 하고 가급적 구하기 힘든 시집을 찾는데 더 마음이 쏠리기도 하였다. 

  예전 1950년대에 신문에서 오려두던 시절에 알던 시인중에 유명한 시인들이 많았지만 그 이후 군대에 갔다 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서 시작한 것이 그림이다보니 한동안 책과 거리가 생겼는데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아이들도 결혼한 이래 탐서의 마음을 갖게 해 준것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한 <명동 이야기>展이다. 그 이전에도 청계천 헌책방을 다니긴 했어도 인터넷이생긴 이래 집에서도 헌책방 여기저기 찾을 수 있어 편리하게 책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1959년 경향신문에 게재됬던 이석현 시인의 <봄비>란 시를 좋아 했는데 잡지에서 몇 편 본것 같은데 시집은 찾을 수 없던중 어느날 인터넷에서 이분이 동화와 동시도 쓰고 카톨릭 계열 잡지에도 실린 시가 있는것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는데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문학 활동을 하다가 작고하신것을 알고 아쉬워서 남기신 책들을 찾다가 이민 가시던 해에 출간한 시집 [들리는 소리]를 구하게 되어 얼마나 반갑고 고인을 만난듯이 기뻐하던 탐서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했었다.

  그 시절 신문에 시를 발표한 시인으로 고원 시인, 김선현 시인, 김상화 시인, 이덕진 시인 유정 시인 들이 계셨는데 고원 시인과 김선현 시인은 미국으로 이주해서 어쩌다가 고원 시인의 시집 [무화과 나무의 고백] 과 [물너울] 시집을 구할수 있었고 김선현 시인의 마지막 시집인 [마지막 시인]은 제작중에 작고하시어 유고 시집이 된것을 구하기도 했었다.

  얼마전에 알라딘에 들어왔다가 [OO의 즐거움]이란 책을 발견하고 손주 생일 선물 미리 사면서 이 책을 샀다. 본문을 읽다보니 탐서하는 마음씨 때문인지 글솜씨가 매우 수려하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옥의 티가 발견되기도 하고 또 티가 내밀기도 해서 즐거움은 반감 되기도 했다.

  본문 들어가기전에 30면의 화보에 실린 책들을 보면서 내게 있는 책을 발견하면 반갑고 내가 미쳐 구하지 못한 책을 보면 마음 아프고 어떤 친구녀석이 집어간 책을 보고는 가슴이 아리고 그러다가 문득 발견한 책이 있는데 경문출판사가 발행한 [세익스피어전집] (1971년)이라니?

  경문출판사라면 내가1966년에 설립한 회사인데 그해라면 이미 문 닫고 그림 할 때인데 이게 무어야 하고 보니, 徽文出版社(휘문출판사)를 경문출판사라고? 어딘가에 들어가보니 그곳엔 징문출판사(徵文出版社)라고도 써 있는걸 발견했다. 휘와 징은 한문이 비슷해서 그런다쳐도 경문이란

무어야, 징이 경으로 둔갑 했는감?

  전에는 학교에서 한문을 안 가르쳤지만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한문을 배우는데 책을 쓰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한문을 몰라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는건 초등학생들이 알면 무어라 할까?

  또 화보에는 사진에 三中堂(삼중당)이라고 되있는데 본문에는 삼중當이란다.

  휘문출판사는 7,80년대 번역물을 많이 취급하던 곳인데 내게도 [앙드레 지드 전집]과 [니이체전집]등이 있지만 휘가 징이요, 징이 경이라니....

  언젠가도 쓴 적이 있지만 어느 신문 기자의 기사에 實物(실물) 을 賣物(매물)이라고 쓰기도 해 신문사에 알려주었는데도 바로 고치지 않은적도 있지만.

 나이 먹어서 탐서는 이제 고만해야 될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통문관 책방비화]는 보고도 싶고 갖고도 싶네. 생존해 계실때 통문관을 들락거리면서 그 책을 지나쳤다니 생각만 해도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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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6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으로 산 < 님의 침묵>은 1964년, 당시 군에 있던 내가 며칠 서울에 다니러 왔을 때 청량리역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리어카에 헌 책을 파는 것이 있어 둘러 보다가 헐어빠진 <님의 침묵>을 발견해서 샀다. 아마도 군대 졸병이 아니였으면 이런 헌 책을 사지 않았을 것 같다.

  당시에는 헌책방이 청계천 근처 즐비했지만 버스정류장 근처에도 리어카 행상이 좌판을 리어카위에 펼쳐놓고 헌책을 파는것을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이 책은 표지도 낡았고 뒷 표지도 刊記간기도 없는 낡은 한성도서에서 발행한 시집인데 제대후 몇 년 지나 헌 책 표지를 떼어내고 양장본으로 꾸며 책장에 지금도 꽂혀 있는 시집이다.

  작년인가 혹시 이 책의 간기는 어떤건가 싶어 인터넷을 헤매이던중 두 분의 글을 발견하였다.

  한 분은 서울대 명예교수 김용직씨가 <불교평론>에 쓴 글을 발견하였는데

  - 제3판 <님의침묵>은 1950년 4월에 둘째 판을 낸 한성도서에서 발행 되었다. 라고 쓰여 있고 이 책이 원본과 다르고 글자를 잘못 읽은경우,  단어의 뜻이 잘못된 경우, 한 작품에서 한 연을 송두리채 누락시킨 경우, 등등을 지적하셔서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을 펴 놓고 확인해 보니 내가 소장한 책과 동일한것을 발견하고 책 뒤에다 1950년 4월이라고 써 놓고 누락된 곳엔 연필로 써 넣기도 했는데 그러니까 내가 소장하고 있는 <님의 침묵>은 한성도서 가 초판은 1934년에 발행하였고 1950년에 재판을 찍은거라는걸 알게 되었다. 한 연 4행을 빠뜨린 바람에 초판보다 한 페이지가 줄었다니까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요즘 초판본 복제한 책이 많이 나와 <님의 침묵> 초판본을 주문해서 사서 틀린 부분을 확인하려고 구입을 했는데 초판본의 간기를 보니 1950년 4월 5일로 되어 있어 아연해 버렸다. 그러니까 내가 소장한 <님의 침묵>이 초판본이란 말인가 그럼 김용직 교수가 말한것 무얼까하고 또 찾아 보았는데 문제는 이 책을 만든 회사가 초판은 일제시에 발행했고 해방후 첫판이니까 재판을 초판이라고 간기에 적은것을 알게 되었다.

  재판을 초판이라고 발행한 출판사도 문제이고 누락된 부분을 그대로 둔체 초판본 복제품이라고

고대로 만든이도 별도 원고지책? 보다 누락된 곳 틀린곳을 알려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니까 한성도서가 말하는 초판본이 두 권이어서 누락된 부분을 세로 글씨체로 프린트해서 끼워 손주에게 주고 이번엔 국내 최초의 초판을 출판한 회동서관의 <님의 침묵>을 사서 구색을 맞춰 놓은 내일 모래가 팔십인 노인의 욕심.

 

  또 한 분은 만해사상연구회 회장인 전보삼 신구전문대 교수가 발표한 『<님의 침묵>을 통해 본 시집출판의 문제점』을 읽어 보면 우리는 너무 오류가 많은 시집을 읽었고 너무 안일한 출판인들의 영리한 마구잡이식 출판을 개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1950년판 한성도서 <님의 침묵>은 100여 곳 이상의 오류가 지적되고 있으며 그 중 대표적인것만도 25편의 시에서 28 행의 오류를 열거하였다.

  이 분이 1926년 회동서관 초간이래 1981년 말까지 26개 출판사의 31종의 <님의 침묵>의 잘못된 부분을 출판사별 시 제목, 페이지 ,행의 시 정오표를 보면 이럴수 있나 싶을 정도다. 그 이후 25년이 흘렀으니 또 얼마나 오류가 지속되었을까 걱정도 되고 예전에 출판에 종사했던 사람으로 자괴감이 든다.

 

  이런중에 발견한 <님의 침묵>이 있다. 1996년에 발행한 수정출판사 판이다.

  편자는 위 전보삼 씨인데 시집과 수창음반이 제작한 테이프가 함께 포장되어 있었는데 시집은 가로 편집이고 시집 순서는 음반 때문인지 원 시집과 다르게 편집되어 있었다.

  우선 시집 출판의 문제점을 지적한 전보삼씨 발표문과 대조 해 보았더니 네군데의 오류를 발견 했다. 하나는 '티끌이 띠끌' 로 인쇄 되 있었고 나머지 세 개는 발표한 논문의 誤字 같았다.

 

  한성도서주식회사는 1920년에 설립하여 1925년부터 시집과 소설을 출판했고 종각역 근처의 한성도서주식회사 터 기념표석에는 1957년까지 존속했다고 하는데 헌책방에서 1958년 <님의 침묵> 8판이 있는것을 발견했다. 7년여를 발행한 책의 오류가 8판에 이르기까지 교정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김용직 교수의 3판 이란 회동서관 초판과 한성도서의 초,재판을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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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서

                                                               - 조 병 화 -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서 길을 떠나온 세월, 73년,

          변하지 않는 것은 나의 외로움뿐,



          많은 길을 걸어왔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연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맹세도 변하고, 약속도 변하고, 사랑도 변하고,

          욕망도 변하고, 나라간의 조약도 변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의 외로움뿐이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찾고 의지해 온 것은

          나의 외로움,

          그 외로움을 경작해온 나의 길뿐이옵니다

          오, 순수한 이 고독,



          흔들리지 않는 불변의 영혼이여

          준엄하여라.  



                                                            (1993. 4. 17) 

                                                -제 39숙 『잠 잃은 밤에』에서   

                                                     조병화 문학관에서 온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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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전화 

                                            - 조  병  화 - 

                     국제전화로 이따금 소식을 알리는
                     너희들의 가는 목소리는
                     먼 이승에서 이곳 저승으로
                     캄캄한 직선을 타고 올라오는 듯한
                     목소리

                     순간, 이렇게라도 서로
                     안부 전해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러다가 아주 줄이 끊어진
                     저승으로 훅, 올라가버리면
                     그나마도 들리지 않겠지,
                     하는 생각에
                     그저 고마운 눈물이 나오곤 해요

                     이러질 말자, 다짐하면서도
                     늙어지면서 약해진
                     할아버지의 눈물
                     너희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찔금찔금 나오는 걸 어찌하리

                     너희들에게 존경받는 일을 했는지
                     부끄러운 일을 했는지
                     한번도 따져 본 일 없이
                     단숨에 이곳까지 올라와 버린
                     나의 생애
                     스스로 스스로를 생각해 볼 때
                     스스로 부끄러워질 때가 많다

                     지금도 이곳인가, 저곳인가,
                     나의 혼은 아직
                     일정한 장소를 잡지 못하고 있지만
                     먼 길을 부지런히 찾아 올라온 것뿐
                     항상 더듬거리던 고독한 혼자가 아니었던가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기 서울 혜화동이세요?
                     먼 그곳, 너희들의 가는 목소리
                     암, 아직은 혜화동이다. 

                                                                             (1983. 4. 18 )


                                                                       조병화, 『머나먼 약속』

 

  매주 한편의 시를 읽는다. 따로 시집을 사서 볼 때라도 매 주 시 한 편을 마음 저리게 읽는다.
  조병화문학관에서 보내주는 조병화 선생의 시는 어떤 시라도 가슴을 파고 든다.
  지척에 있어도 소식이 없을때는 적적하기는 마찬가지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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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6-02 07:40   좋아요 0 | URL
울림을 주는 시입니다. 문득 부모님께 전화드려야 겠다는 생각 해봅니다.
투표하고 왔습니다.

水巖 2010-06-02 19:02   좋아요 0 | URL
부모님들이 반가워 하시죠? 전화 왔다는 사실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인줄 아세요?

꿈꾸는섬 2010-06-02 17:3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가슴에 파고드는 울림이 있어요. 저도 오늘은 부모님께 전화를 해야겠어요.^^

水巖 2010-06-02 19:04   좋아요 0 | URL
현수는 괜찮죠?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전화로 찾는 목소리는 더 없는 행복이랍니다.
 


                        설날 아침

                                             - 김  동  리 - 


          새해라고  뭐  다른  거  있나
 
         
아침마다  돋는  해  동쪽에  뜨고

          한강은  어제처럼  서쪽으로  흐르고

          상 위에  떡국  그릇  전여  접시  얹혀  있어도

          된장찌개  김치보다  조금  떫스름할  뿐

          이것저것  다  그저  그렇고  그런  거지

          그저  그렇고  그렇다  해도  그런대로

          한  해  한  번씩  이  아침에  나는

          한복으로  옷이나  갈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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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3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