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도에서
- 문 덕 수 -
새벽 꽃물살
한 발짝씩 설렌 뒷걸음 그만 헛딛어
멀리 거문도 한 자락에 붙들렸나
풍란은 10리 밖 향 잡으며 더욱 맵고
바위틈 동백꽃은 뉘 슬픔 피를 뿜네
갈매기 가마우지 흑비둘기 못다 핀 꿈이더냐
짙은 태고의 운무 속을
상백도 하백도 신기루로 비치더니
한겹한겹 스스럼없이 제 몰골로 발가벗더라
매,거북,석불,쌍돛대,남근
각시,쌍둥이,삼선,병풍,오리섬
벌리고 오므리고 안고 없고 비키며
설흔아홉 아니 아흔아홉 빙빙 돌다가
뒷걸음질 꽃품 한올 물이랑에 걸렸나
쪽빛 천년을 남몰래 멱감다 들킨 볼모
언제 풀리리, 저렇듯 제 몸 깍고 다듬는 영겁의 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