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연 날개달린 그림책방 47
김민우 지음 / 여유당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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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설날이다. 설하면 떠오르는 놀이 중 대표적인 것이 연날리기다. 연날리기의 기원에 대해 궁금해 자료를 찾아봤다.


옛기록에 의하면 본격적으로 연을 날리는 시기는 정월 초하루(설날)부터 대보름까지였으며, 그 이후 연을 끊어서 날린 후에는 더 이상 날리지 않았다고 한다. 


연날리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647년 선덕 여왕이 죽고 진덕 여왕이 즉위하자,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켰고, 김유신 장군이 반란군을 평정하기 위해 연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활용했다는 내용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참조)


그림책을 읽을 때 처음에는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다음 볼 때는 그림책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본다. 매번 그렇게 하는 건 아니지만 요새는 그 비중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김민우 작가의 <하얀 연>은 설날을 앞두고 선물처럼 찾아온 그림책이다. 하얀 연이 그려진 표지를 보고 있으니 어렸을 때 아빠와 형과 연을 날렸던 기억이 재생되기 시작한다. 

그림책의 좋은 점은 나조차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기억들을 다시 이어준다는데 있다. 


<하얀 연>에는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세상에 하나뿐인 하얀 연이 나온다. 그림책 표지에 그려진 바로 그 하얀 연이다. 그림책 속 주인공인 나와 동생은 연을 날리며 놀이에 흠뻑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림책에 그려진 어린아이들의 표정만 봐도 얼마나 신났는지 그 생생한 기쁨이 보는 이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을 쓴 스튜어트 브라운과 크리스토퍼 본은 놀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삶이 즐겁지 않은 이유는 놀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놀이는 인생에 흥분과 모험을 되살리고, 낙관적인 생각을 갖게 하며, 창의성과 혁신의 핵심이다. 놀이는 더 이상 비생산적이고 시간 낭비가 아니다. 세상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아를 찾는 통로이자 우리 삶의 성공과 행복을 위한 촉매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연날리기에 몰입한 어린아이들은 건강하게 성장해 나갈 것이다. 자신들이 날려보낸 연처럼, 부모의 품을 떠나서도 각자의 길을 씩씩하게 찾아갈 것이다.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세상에서 하나뿐인 하얀 연도 저 높은 곳에서 그들을 지켜봐 줄 테니 말이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어린아이들의 놀이와 성장을 이어준 하얀 연을 그림책에서 꺼내와 삼남매와도 날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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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내러티브 - 더 이상 단순한 동화가 아니다
하마모토 다카시 지음, 박정연 옮김, 이정민 감수 / 효형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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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단순한 동화가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모두의 이야기였다.'

표지를 펼치면 바로 보이는 두 문장은 <신데렐라 내러티브>의 시작부터 마지막을 관통하는 핵심 문장이다.

책을 읽으면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신데렐라의 구조와 서사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1950년, 월트 디즈니 버전이다. 샤를 페로의 <샹드리용> 이야기를 미국판으로 만들어 전세계에 확산시킨 것이 디즈니의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한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그 당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시대상과 맞물려 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서사가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데렐라에는 인물의 개인적인 성공과 더불어 꿈과 행복의 실현이라는 미국인의 사고 방식을 잘 담아내었으니 말이다.

샹드리용(궃은 일을 도맡아 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민담으로 전해져 오던 것을 샤를 페로가 그의 동화집 옛날 이야기에 수록하면서 기록되게 된다. 세계의 많은 민담이 그렇듯 신데렐라 이야기도 구전과 서승이 반복되면서 현재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신데렐라 내러티브>에서는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 이야기를 소개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도 기록되어 있는 고대 이집트의 <로도피스의 신발>에서 출발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각 나라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보다보면 '신발'로 인해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예부터 신발은 남녀간의 화합을 상징하는 의미였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단순하게 알고 있던 신데렐라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신데렐라의 기원부터 시작해 각 챕터마다 들어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글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베일'을 주제로 자신의 모습을 감춰 온 여성들의 이야기, 계모는 왜 항상 가해자의 역할인가?, 백설공주의 숨겨진 비밀 등에 대한 이야기가 <신데렐라 내러티브>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조금 충격적이었던 부분이 <백설 공주>의 원작에서는 계모가 아닌 친어머니가 백설 공주를 죽이려고 하는 부분이었다. 당시 이 이야기를 본 독자들의 강력한 비판으로 인해 그 후에 계모로 수정되어서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한다.

계모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백희나 작가의 최신작 <연이와 버들도령> 그림책도 떠오른다. 가족 제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기 위해 계모라는 표현 대신 '나이든 여인'이라는 표현을 쓴 부분이 그렇다.

2022년에도 신데렐라 이야기는 현대의 가치관에 맞춰 새롭게 변주되어 또 다시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고 있다.

#신데렐라내러티브

#하마모토다카시지음

#효형출판

#더이상단순한동화가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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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나라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마리트 퇴른크비스트 그림, 김라합 옮김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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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린이가 최소한 한 명의 어른과 바람직한 정서적 유대를 가져야만 안전함을 느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삶을 견디기 어려울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그래서였을까. 다리가 불편한 예란의 옆에 백합줄기 아저씨가 있었던 것은. 

<어스름 나라에서>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생각이 그대로 묻어난 그림책이다. 

원래는 그의 단편동화였던 작품이 마리트 퇴른크비스트의 그림을 얹어 그림책으로 출간되었고 어스름한 저녁에 <어스름 나라에서>를 읽고 있다.


표지에 그려진 예란과 백합줄기 아저씨가 클라라 교회 첨탑을 날아가고 있는 장면은 어스름한 색감과 잘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들은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표정이 즐거워 보이는 것을 보니 그곳이 어디든 따라가고 싶어진다. 


표지만 한참을 바라봐도 좋을 수가 있다니. 리사 아이사토의 <삶의 모든 색>을 처음 봤을 때도 표지만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책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표지만 보고 나름대로 이야기를 그려보는 것도 그림책을 보는 나만의 즐거운 방법이다. 


예란과 백합줄기 아저씨가 날아가는 모습에서 마르크 샤갈의 대표작 <도시 위에서>가 떠오른다. 샤갈이 결혼 직후에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는 <도시 위에서>는 자신과 아내 벨라를 공중에 떠나니는 모습으로 표현해 행복한 그의 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들의 아래 보여지는 마을은 샤갈의 고향인 비테프스크다. 


샤갈이 그의 고향인 비테프스크를 떠올리며 마음의 안정을 얻었듯이, 예란은 어스름 나라를 다녀오며 자신의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중요한 것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말했듯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한 명의 사람이 곁에 있었다는 점이다.

예란에게는 백합줄기 아저씨가, 샤갈에게는 그의 아내 벨라가 있었듯이.


그림책에 나오는 클라라 교회와 크로노베리 공원이 궁금해 찾아봤는데 물리적인 거리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걸로 나온다. 하늘을 날아서 갔으니 그 정도 거리가 무엇이 문제이랴.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첫 장면은 침대에 앉아있는 예란의 모습이다. 예란은 침대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다리를 다치기 전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을까. 신나게 뛰어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있을까. 


"아무래도 예란은 다시는 못 걷게 될 것 같아요."라고 아빠에게 말하는 엄마의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이 첫 장면 그림에서 보여지는 것 같다. 희망이 보이지 않고 절망스러울 때, 땅거미가 지는 어스름한 순간 백합줄기 아저씨가 나타난다.


어스름은 조금 어둑한 상태, 또는 그런 때를 나타내는 단어다. 프랑스에서 말하는 '개와 늑대의 시간' 말이다. 해질 무렵이면 저 너머에서 다가오는 그림자가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이 안되는 시간, 하지만 예란에게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존 버닝햄의 그림책 <알도>에서처럼, 견디기 힘들 때 우리는 상상 친구를 불러낸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을 견딜 수가 없기에.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는 아이가 만들어낸 상상의 공간인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다녀오며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과 그런 자신을 지지해주고 그저 말을 들어주는 친구의 존재가 <어스름 나라에서>에 잘 그려져 있다. 


백합줄기 아저씨는 예란이 못할 것 같다고 말을 하면 항상 이렇게 말해준다.

"괜찮아. 어스름 나라에서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아."


'괜찮아'라는 말이 예란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괜찮다'고 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백합줄기같은 존재였는지 되돌아본다. 아마 많은 경우에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어스름 나라에서>를 만나서 다행이다. 


첫 장면의 그림과는 다르게 마지막 장면에서는 침대에 앉아있는 예란의 얼굴 위로 환한 빛이 내려앉는다. 그 모습에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밤 나도 어스름 나라에 가볼 수 있을까. 기회가 된다면 나도 예란과 백합줄기 아저씨의 손을 잡고 어스름 나라에 다녀오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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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릴리 머레이 지음, 세라 메이콕 그림, 김지연 옮김 / 반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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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 릴리 머레이 지음, 새라 메이콕 그림, 김지연 옮김, BARN]
제목부터 긴 여운을 남기는 그림책 한 권을 만났어요. '사랑은'이라는 제목 뒤에 써져 있는 글을 누가 지워버린 것만 같습니다.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요?
행복만큼이나 기분 좋은 단어지만 그 누구도 명확하게 이야기 할 수 없는 단어가 '사랑' 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릴리 머레이가 쓴 <사랑은>이라는 그림책은 이런 의문에 시적인 표현으로 답을 해줍니다. 동물들을 등장시켜 조용하지만 힘있게 사랑에 대한 다양한 말들을 전해주지요.
표지를 천천히 살펴봅니다. 황제 펭귄 두마리가 머리를 모으고 펭귄 아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네요. 자연스럽게 하트 모양이 만들어집니다. 펭귄이 생각하는 사랑의 뜻은 무엇일지 궁금해지네요.
이 그림책을 보고 있자니 맥 바넷의 그림책 <사랑 사랑 사랑>이 떠오릅니다. 그림책 아틀리에 36.5 모임에서 함께 읽었는데 정말 좋았던 기억이 있거든요. <사랑은> 그림책도 모임에 가져가 한 장면씩 돌아가며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마음이 한결 평온해질 것 같아요.
릴리 머레이의 글도 좋지만, 새라 메이콕의 그림도 환상적입니다. 앞표지의 그림도 좋지만 저는 어두운 밤에 토끼들이 사랑에 대해 속삭이는 장면이 가장 좋았어요. 그림에 녹아드는 문장도 그렇고요.
"하지만 때로는 아무런 것도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길고 느린 시간을 쓰는 것이기도 해요."
그림책을 본 분들은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을 지 궁금합니다. 혹시 저처럼 토끼 장면을 좋아하는 분 계신가요? 보고 있으면 마음이 달달해지는 그림책 <사랑은> 추천합니다^^
황제펭귄, 문구: '사랑은'의 이미지일 수 있음
7이현숙, 이해중, 외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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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소의 그림동화 294
주나이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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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두껍네!'

주나이다 작가의 <길> 이라는 그림책을 처음 보고 든 생각이다. 초등 그림책 신작 읽기 모임에서 그림책 서평단을 모집하기에 신청했다. 룰렛을 돌렸고 당첨이 되었다. 갑자기 나르시시즘이 발동한다. '역시 난 운이 따르는 사람이군'이라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머리에 떠오른다. 정유정 작가가 <완전한 행복>이라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르시시즘은 굉장히 위험한 거라고 했는데... 이제 자제를 좀 해야겠다.

일반적인 그림책과는 다르다. 무엇이 그리 다르냐 묻는다면 직접 구입해서 보는게 좋다고 말씀드려야겠다. 말로 아무리 설명해도 눈으로 한 번, 손으로 한 번 보는 것에는 미치지 못할 테니까. 그래도 난 친절하니까 몇 가지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드리려한다. 우선 일반적인 그림책과 종이의 두께가 다르다. 그림책 속 페이지는 면지 포함 23장이지만 컷 하나의 종이 두께가 무척 두텁다. 글이 없이 그림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림책 구성이 끝에서 시작해 가운데로 모이는 형태다. 책을 어디 부분을 펼치든 이야기가 이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그림책 <행운을 찾아서>도 이런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사건이 일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 매력적인 부분이다.

빨간색 머플러를 두른 남자 아이가 있는 부분부터 읽어나가도 되고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여자아이 쪽부터 읽어나가도 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디를 펼치든 이야기가 이어지며 우리를 환상의 세상으로 안내한다. 처음 그림책을 볼 때는 당연하게 앞 부분부터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머플러를 두른 남자아이의 뒤를 따라가면서 말이다. 문을 열고 나선 남자 아이 앞에는 순백색의 길이 펼쳐져 있다. 그 길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남자아이가 지나가는 마을들은 동화 속 세상 같다. 어렸을 때 했던 게임 속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림책을 천천히 살피다보면 내가 꿈 속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분 좋은 설렘, 현실 세계의 고민을 잠시 놓아두고 환상의 세상으로 들어가 맘껏 즐기고 싶은 마음이다. 기차 마을, 책 마을, 나무 마을, 폭포 마을, 눈 마을, 우주 정거장 마을 등을 지나서 중간쯤 가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뒤에 그려져 있는 양 갈래 머리를 묶은 여자 아이다.

<길>은 남자 아이가 걸어온 길과 여자 아이가 걸어온 길을 함께 담아서 보여준다. 그러다 둘은 책의 중간에서 서로를 만나게 된다. 길에서 마주한 두 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까? 이제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아니면 얼굴만 마주보고 지나쳤을까? 둘은 함께 길을 걷게 될까? 아니면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될까? 글이 없는 그림책의 매력은 독자의 상상력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글 없는 그림책' 안에서 독자는 자유로움을 맛본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자유. <길>에 나온 다양한 길처럼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는 생각의 길을 펼쳐낼 수 있다.

라울 니에토 구리디의 <두 갈래 길>처럼 우리들 앞에는 무수히 많은 길들이 놓여있다. 우리 인생은 어떤 시점에 놓여진 길을 계속 선택해 가면서 각자의 길을 걸어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예전에 알았던 사람을 놓기도 하면서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것일테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본다. 굉장히 많은 선택의 길이 있었고 그 선택에 의해 나의 삶이 만들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길이 나타날 것이다. 3년 후에 나의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나는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중요한 것은 그림책에 나온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처럼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집 밖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기를 원한다면 움직여야 한다. 나는 더 다양한 세상을 만나고 싶다. 두려움과 설렘을 데리고!

#길

#주나이다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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