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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소 ㅣ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읽다보니 소설 속 주인공 중에 작가 자신이 투영된 인물들이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사강은 일반적인 통념이나 고정 관념에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사랑을 계속 이야기하는듯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외롭게 느껴지기도 할 때가 있다. 작가에 대해 검색을 하다보면 첫번째 남편이 「어떤 미소」 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기도 하는데( 그럼 뤽인가? ), 「어떤 미소」 가 1956년에 나왔고, 첫번째 결혼은 1957년에 했으니 시기상으로 비슷한 거 같기도 하다. 더욱 작가의 삶이 궁금해졌다.
어떤 미소
UN Certain Sourire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소담출판사
프랑수아즈 사강(Francoise Sagan)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coise Quoirez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 ‘사강’을 필명으로 삼았다.
1935년에 프랑스 남서부 카자르크에서 태어난 프랑수아즈 사강은 사업가인 아버지를 둔 부르주아 출신이었다. 1951년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하고, 리옹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후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3개월도 못 다니고 퇴학당했다. 지드의 소설을 읽고 , 양가의 처녀로는 발디딜 곳이 못되는 카페를 출입하고,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시며 재즈를 즐기는 그녀에게 어머니는 들개 같다고 탄식했다. 자크 프레베르의 시"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 그곳에 그대로 계시옵소서 / 저희는 이 땅 위에 그대로 있겠습니다 / 이곳은 때로 이렇듯 아름다우니......"하는 시구를 불경스럽게 읊조리고 다니던 반항적이고 조숙한 소녀였다.
1954년,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고 첫 시험에서 낙제한 후, 그 해 여름 바캉스를 즐기다가 요트사고가 나고, 회복을 위해 침대에 누워있으며 2개월만에 소설을 쓴다. 19세에 발표한 이 장편소설 『슬픔이여 안녕』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그녀는 1954년 프랑스 문학비평상을 받았다. 그 뒤 『어떤 미소』(1956), 『한 달 후, 일 년 후』(1957),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신기한 구름』, 『뜨거운 연애』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냉정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인간의 고독과 사랑의 본질을 그려낸 사강의 작품들은 자유로운 감성과 섬세한 심리묘사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프랑스 소설가 프랑수아 모리악은 사강을 두고 "유럽 문단의 매혹적인 작은 악마"라고 펴했으며 "지나칠 정도로 재능을 타고난 소녀"라고 불렀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사강은 당시 '천재 소녀'로 불리우며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세계적인 명성과 부를 얻는 그는 3~4년동안 인세로 5~6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번 돈으로 경주용 고급 스포츠카 재규어를 사고, 표범 모피코트를 구매했으며, 뒤셀도르프에 별장을 샀다.
스피드광이었던 그녀는 1957년에 교통 사고를 당한다. 한때 신부가 임종 미사도 하고 '사강, 교통 사고로 즉사하다'라는 뉴스가 전 세계에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소생한 그녀는 3개월간의 병상 생활에서 죽음과 인생, 사랑에 대한 깊은 반성의 기회를 갖게 된다. 퇴원 후 20세 연상의 매력적인 편집자(M. Guy Schoeller)를 만나 첫눈에 반해 곧장 결혼한다. 그녀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애당초 거짓말하는 것에 쾌감을 느껴왔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인터뷰에서는 "모르는 것은 쓸 수가 없다. 느끼지 못하는 것도 쓸 수가 없다. 체험하지 않은 일은 쓸 수가 없다"고 말한 것을 보면 소설에 그녀의 인생의 경험이 녹아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Françoise Sagan & M. Guy Schoeller
1962년에는 패션 모델을 한 적이 있는 젊은 미국 조각가(Robert Westhoff)와 재혼하여 아들까지 낳았지만 곧 별거하고 이혼한다. 이후 그와 동거 생활을 시작하여 7년을 함께 살았다. 사강은 이 시기에 전직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스타일리스트였던 Peggy Roche와 성적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고. 이렇게 그녀는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도박, 자동차 경주, 약물중독 등으로 ‘사강 스캔들’이라는 말을 낳으며 자유분방한 생활로도 유명해졌다.
Françoise Sagan & Robert Westhoff
말년에 사강의 생활은 사막처럼 황폐해져간다. 신경 쇠약, 노이로제, 수면제 과용, 정신병원 입원, 나날이 술로 지새우는 생활이 거듭되면서 도박장 출입이 잦아졌다. 집을 담보로 잡히고 도박 밑천을 마련하는가 하면, 하룻밤새 몇억 원 상당의 인세를 날려버리곤 하다가 파산했다. 급기야 프랑스 도박장에는 5년간 출입 금지 선고를 받고 도버 해협을 건너 런던까지 도박 원정을 갔다. 결국 빚더미 속에 묻히게 된다. 도박이야말로 일종의 정신적인 정열이라 했던 사강은 그렇게 많은 돈을 잃고도 돈이란 본래 있던 장소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태연히 말했다. 그 모든 생활과 성격의 파탄은 그녀의 견딜 수 없는 고독이 빚어낸 부산물이라고 한다. 50대에는 마약 혐의로 법정에 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 무절제한 생활의 대가는 비참했다. 어느 날인가는"이제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지금 비디오 카세트를 하나 사고 싶지만 내겐 그 돈이 없다"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그런 폐인지경에서 사강을 구원한 것은 아들 도니였다. 그녀는 세상에서 아들만이 자기를 비판할 권리가 있는 오직 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재생을 결심하기도 했다. "나는 사람이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을 내 손에 거머쥐었다. 지난 날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나는 인생을 즐겼다. 그렇게 오랫동안 인생을 즐겼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2004년 사강이 병환으로 별세하자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는 가장 훌륭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 중 한 사람을 잃었다”며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