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A Year of Quotes 시리즈 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로라 대소 월스 엮음, 부희령 옮김 / 니케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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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책을 읽다가 '대자연에 대한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긴 불멸의 고전' 이라는 문장으로 월든(Walden)을 읽게 되었었다. 법정 스님은 "소로우의 생활신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간소하게 살라' 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단순하게 살면 살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더 명료해질 것입니다." 라고 소개하며 스님의 『무소유』 와 맞닿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갔었다. 그 당시 '소로우' 로 기억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의 만남이기도 하다. 사실 난 소로의 저서는 「월든」 만 있는 줄 알았다. ( 이는 월든 완독을 여러 번 시도 했던 이유도 크다. ) 



1년 365일 동안 매일 한 편씩, 시대를 초월하는 소로의 명문장을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된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를 읽으며 발췌된 문장들의 출처를 보다가 소로의 저서가 매우 많았음에 놀랐다. 게다가 들어보았던 제목인데 그 작품이 소로의 작품인 줄 몰랐다는 것에 두번 놀랐다. 소로=월든의 공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The Daily Henry David Thoreau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저,로라 대소 월스 엮음,부희령 옮김

니케북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날짜별로 발췌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그 날의 문장을 들춰보게 된다. 따뜻한 봄날의 기운이 느껴지는 문장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겨울동안 어쩐지 움츠러들어있던 것 같은 사유도 봄과 함께 깨어나는 듯 하다. 소로가 이야기한 것처럼 내 안에 내재한 천재성이 나를 어떻게 이끌어가는지 이번 봄에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따스하고 기분 좋은 날이다. 훈훈한 하늬바람 속에 향기가 섞여 있는 듯 하다. 나는 담벼락 옆에 앉아서 다시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낯설어도 기억에 남을 만한 영향을 받으면 우리는 다시 유연해져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 안에 내재한 천재성이 우리를 조금씩 이끌어 갈 것이다. 녹아서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진 흙처럼. 우리 내면의 겨울이 부서진다. 나에게서 서리가 빠져나가고, 나는 활짝 열린 도로가 된다. 쌓여 있던 얼음과 눈이 녹아내리고, 예상치 않게 열린 통로로 밀물처럼 사유가 쏟아진다. 나는 힘이 나서 다시 한번 지구라는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상징적인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물론 내내 걷고 있었어도 나는 아직 지구의 정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 1853년 3월 21일의 일기


'최고의 책들을 가장 먼저 읽어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읽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콩코드강과 메리맥강에서 보낸 일주일(1849)' 란 발췌문을 읽으며 엉뚱하게도 사과를 먹을 때 맛있는 것부터 먹는가, 맛없는 것부터 먹는가.. 란 생각을 떠올리며 웃었다. 맛없는 부분이란 뜻은 아니지만 새로 나온 책들을 읽느라 '최고의 책' 으로 분류되는 고전들을 뒤로 미뤄왔던 것을 떠올리기도 한다. 미뤄뒀던 순서를 앞으로 가져와야겠다며 목록을 떠올려보게 된다. 


「시민 불복종」 은 이 책 뿐만 아니라 다른 칼럼들에서도 많이 읽었던 내용인데 정작 책 전체를 읽어보지는 못했다. 발췌문만 읽어보다보니 전체 맥락이 궁금해지는 책이다. 소로의 책 중 다음 차례에 읽어볼 책으로 '찜'하게 된다.


국가는 인간의 분별력, 지성, 도덕에는 관심이 없고 의도적으로 오직 신체와 감각만을 중요시한다. 뛰어난 재치나 정직함을 내세우지 않고 신체적 힘을 내세운다. 나는 강요받으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내 방식대로 호흡할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 두고 보자. 다수가 지닌 힘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은 나에게 오직 나보다 더 높은 법에 복종하게 할 수 있을 뿐이다. - 시민 불족종(1849) 


『월든』 의 경우 문학사에서 평가받는 지점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처럼 소로우의 구도자적인 모습과 정신적인 통찰을 읽어내는 것,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매우 아름답다는 점, 문명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 세속적인 성공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점들이 있다. 그런데 「일기(Journal)」 (국내 번역제목 「소로우의 일기」) 또한 그렇게 다가온다.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에는 소로우의 일기에서 발췌된 부분이 가장 많다. 미국 노트르담대학교 영어과 교수이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연구 권위자인 저자는 비슷한 시기에 쓰인 글이나, 계절과 어울리는 글들을 잘 배치해두었다. 


QnA Book 이라는 분류의 책들이 많이 나온다. 매일 주어지는 질문에 대해 일기처럼 짧은 글을 적을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기도 하고, 노트이기도 하다. 테마에 따라 질문들이 달라지는데 문득 이 책으로 소로의 글이라는 테마로 '매일 글쓰기' QnA Book 을 해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다. 본격적인 질문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발췌된 소로의 글을 읽으며 그 문장이 전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혹은 같은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본 것에 대해, 그것도 아니면 필사라도 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은 구성이다. 소리내어 읽어보는 것으로도 좋은데, 필사를 해보면 더욱 좋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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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스
나가우라 교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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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홍콩반환을 앞둔 시기인 1996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며, 타인의 시선이 고통스러운, 대인 공포증을 가진 고바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국익에 부합하는 정당한 일이라는 상사의 강요에 농림수산성의 비자금 조성에 가담했고, 비자금 조성건이 드러나자 농림수산성을 떠나야했던 인물이다. '가장 가고 싶던 대학에도, 직장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이렁저렁 임용된 직장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지시받은 대로 움직인 결과, 전부 잃었다.스스로가 그저 공부나 조금 했을 뿐인 무능력자로 느껴졌다 (p17)' 라고 독백하는 인물. 농림수산성에서 나온 후 친구의 소개로 일본 최초의 전문 인터넷 증권회사에 취직한다. 농축산물 지식을 살려 선물 거래나 기업 분석을 하게 된 고바는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끌려 다시 일을 시작한다.



언더독스

나가우라 교 장편소설

블루홀식스



‘언더독(underdog)’ 은 경쟁에서 열세인 사람, 패배가 예상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스포츠 경기 등에서 승리보다는 패배가 예상되는 사람 혹은 팀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거의 '투견(鬪犬)'에서 나온 말로, 승리한 개가 주로 위에 있어서 'top dog'이라고 하였고, 물려서 패배한 개는 아래에 누워 있어서 'underdog'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럼 언더독의 복수인 언더독스는 이야기 속에서 누굴 이야기하는 것인가. 


막대한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제안'이 안전한 일일 리 없다. 정치인과 재계인사, 세계 각국의 관료들과 적지 않은 관계를 맺어온 농림수산성 시절 경험이 강하게 경고했다. 


-p23, 고바


주식이나 선물 거래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이야. 아주 간단히 말하면 자네를 헤드헌팅 하고 싶네. 앞으로 자네가 소속된 회사는 일절 개입하지 않을 거야. 그 점은 양해를 구해놨어. 자네와 나, 대등한 입장에서 내 인생을 건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네. 어떠한가? 들어 볼 마음이 생겼나? 


-p24, 마시모



마시모의 제안을 듣고 '고통과도 같은 자기 연민과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는 고바. 제안을 들은 이상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구르기 시작한 수레바퀴는 이제 멈출 수가 없다. 결국 주인공은 살아남기 위해 순간순간 필사적으로 노력하게 된다. 권총도 제대로 쏴본 적 없는,  '창과 방패가 없는 돈키호테(p396)' 같은 모습이었던 고바였지만 수많은 위기 때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다.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하여 제안자인 마시모는 이렇게 말했었다. 


약한 자이기에 오히려 죽기 살기로 지혜를 짜내고 때로는 엄청난 힘을 보여 주지. 생각해 보게. 자네는 어떤 의미에서는 나와 비슷해. 뛰어난 선견지명과 계획성, 결단력이 있는 데다가 복수심이 뒷받침된 강한 동기까지 겸비했지. 무기력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자신을 모함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향한 분노와 억울함이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았어. 자넨 분명히 한 번 실패했어. 하지만 그 실패는 자네를 더 강하고 신중하게, 그리고 교활하게 만들었을거야. 


-p33, 마시모




소설의 이야기는 두 축으로 전개된다. 1990년대의 고바의 이야기와 2010년대의 고바의 양녀를 비롯한 후대가 부모 세대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나가는 이야기가 번갈아 나온다. 후대가 선대의 비밀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은 고바의 안배다. 주인공 고바가 직접 경험하는 시간에서의 앞을 알 수 없는 사건의 전개를, 2010년대에 사실은 그랬더라.. 라는 식으로 조금씩 비밀의 문을 열어주는 식이라고 할까. 



초반부터 마시모가 살해되어버리지만, 계획은 그대로 진행되면서 팀이 한 개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이 계획에 러시아, 영국, 일본, 홍콩, 미국 등의 여러 나라( 그리고 첩보기관들 )가 얽혀버린다. 여러 나라가 얽히면서 등장 인물들의 배경 또한 얽히고 배신과 배신이 거듭된다. 팀원들간에 서로 의심해야하는 상황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상황이 계속 바뀌는 터라 액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 몰입감이 매우 크다. 탈취 계획의 타깃이기도 한 홍콩 난징은행그룹 산하의 헝밍은행 지하금고에 있는 플로피 디스켓과 서류에는 과연 각국 주요 인사들의 불법 투자와 부적절한 절세용 유령 회사의 활동 기록만 있는 것일까도 궁금한 포인트가 된다. 


그래요. 정말 성가시죠. 바보 같은 사람이었어요. 타로카드의 바보 카드(THE FOOL) 같은 사람. 카드 번호 0번인, 숫자가 없는 남자. 지식욕은 왕성. 그러나 금전욕, 물욕과는 관계가 없으며 아무것도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지. 동료는 있었지만 파벌이나 무리를 만들지도 않았다우.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데다가 정말로 자신의 매력을 깨닫지 못했기에 오히려 타인을 끌어당겼지.


- p402



주위 사람의 이야기는  「언더독스」 의 주인공 고바의 매력을 더욱 드러내준다. 계획을 둘러싼 여러 나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벌이는 모략은 더럽고 치사하다. 그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애쓴 고바는 그 세력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나는 당신들이 더 이상합니다. 더러운 일은 세금에서 나온 예산으로 남한테 떠넘기고, 납치나 살인이 벌어져도 눈감고 모른척하고, 그러면서 결과만 가로채죠(p502)'. 



고바 스스로가, 다른 이들이 그를 언더독이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는 절대 언더독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시작은 언더독이었을지 모르지만, 언더독이 언제까지나 언더독만은 아니니까! 그러기에 이야기의 결말이 더욱 만족스럽다.  



「언더독스」 는 164회 나오키상 후보와 '2020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5위에 오르며 대중의 머릿속에 나가우라 교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이다. 작가의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 네이버카페 리딩투데이 제공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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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만나는 시간 - 오래된 책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다
앨런 제이콥스 지음, 김성환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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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과 그에 관한 에세이를 읽던 중에 그가 「일리아드」 에 대해 써놓은 문장을 발견하고  「일리아드」를 다시 읽을까( 또는 아이와 함께 읽을까 )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고전을 만나는 시간」 을 읽다가 또 「일리아드」 에 대한 글들을 마주한다. 소로가 '문명화되지 않은 자유롭고 야성적인 사유, 그것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라고만 표현해 둔 고전의 의미를 「고전을 만나는 시간」 을 통하여 좀 더 상세하게 만나보았다.


<일리아드>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산 사람을 사물로 뒤바꿔놓는 무시무시한 변환의 과정이다. 


- p74, 「고전을 만나는 시간」 





고전을 만나는 시간

오래된 책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다

Breaking Bread with The Dead

앨런 제이콥스 지음

미래의 창


 「고전을 만나는 시간」 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부터 이디스 워튼의 「기쁨의 집」,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등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50여 권의 책들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저자, 영국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미국의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 등 본문과 관련된 철학가나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이쯤되면 저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저자인 앨런 제이콥스(Alan Jacobs)는 미국 베일러대학교 아너스 프로그램(Honors Program; 최상위권 학생 교육 프로그램)의 석좌교수이자, 영문학자, 작가다. 앨라배마대학교를 졸업하고 버지니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4년부터 2013년까지 휘튼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그는 이 책  「고전을 만나는 시간」 을 통해 그동안 학생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썼던 '고전을 읽는 것의 가치' 를 이야기한다. 이번에는 스승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독자로서 다른 독자들에게. 




과거의 모든 작품들이 다 고전인 것은 아니지만, 고전의 범주에 들지 않는 오래된 책을 읽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저자는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고전에 관한 에세이의 내용을 인용하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사람들이 오래된 책을 읽을 때 경험하게 되는 '친밀감'을 강조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 그는 "고전을 읽을 때 우리는 가금 우리가 항상 알아온( 또는 안다고 생각해온 ) 무언가와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그 작가가 그 말을 제일 먼저 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는 것이다. 이건 커다란 기쁨을 선사해주는 놀라운 경험으로, 기원과 관계, 관련성 등을 발견할 때마다 이런 종류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


- p118




이탈로 칼비노가 말한 그 기쁨은 나도 종종 느낀다. 이를테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을 읽다가 체코의 소설가 카렐 차페크가 '로봇' 이란 단어를 처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소소한 기쁨 같은 것을 떠올린다. 이어서 개인에게 다가가는 '당신만의(your) 고전'의 개념도 인용한다. '당신만의 고전 작가란 당신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고, 그와의 관계에서 당신 자신을 정의하거나, 심지어는 그와 논쟁을 벌이도록 당신을 자극해주는 그런 작가들을 말한다.' 라고 말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만의 고전' 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책이 당신 스스로 생각해보지 못한 것은 물론, 믿고 싶지도 않은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면, 그 책이 당신에게는 고전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주장에 크게 공감하며 밑줄을 그어보게도 된다.



책은 하나의 주제나 개념이 소개되고, 그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왕창 쏟아지는 구성이다. 저자 스스로도 밝혔듯이 체계적이기보다는 '나선을 그리며 상승하는 형태를 모방' 하려고 애쓴 흔적들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인용은  '차이 없는 과거'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장의 키워드는 '배움 | 과거로부터의 교훈' 이다. 


고전은 지금 이순간의 관심사를 배경 소음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배경 소음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그런 것들이다. 


- p120




주제에 대해 운을 떼고, 다양한 고전들과 독자의 사례를 통해 이어지는 이야기들 및 저자의 주장은 매우 공감가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내가 읽는 그 책이 어떤 식으로든 내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독서에 필수적인 맥락을 제공해준다. '. 아. 정말 그렇다! 


이어 '죽은 이들과의 식사는 완수해야 할 학문적 과제가 아닌, 굶주린 모든 사람들이 초대받는 영원한 만찬이 되어야 한다. (p130)' 라고 해당 장을 맺는데, 만찬, 식탁에 대한 비유는 앞장에서부터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최근 고전문학을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이디스 워튼의 책도 관심있게 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책 속에서는 이디스 워튼의 「기쁨의 집(The House of Mirth)」 에 담긴 노골적 반유대주의 성향 때문에 책을 거부한 학생의 사례가 나온다. 작가에게서 자민족중심주의나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등을 발견할 때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시간여행을 하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들이다. '오래된 소설을 집어 들 때 우리는 그 소설가를 우리 세계로 데려오면서 그 사람이 이 세계에 속할 만큼 개화된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소설가의 세계로 여행을 가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p63)' 이라는 것. '작가는 우리의 식탁을 찾는 손님이 아니라 우리가 작가의 식탁을 찾는 손님이다.' 는 문장은 고전에 대해 독자로서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단언컨대, 과거의 목소리(생각)에 놀라거나 심지어는 기분 나빠할 능력을 잃는다면, 진짜 핵심적인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 문헌은 나를 불쾌하게 하니 더 이상 읽지 않겠어" 라고 말하는 건 근시안적 태도일지 모르지만, 잘못된 점이나 자기 의견과의 차이점조차 못 보게 될 정도로 과거의 '위대한 책' 에 대해 경외심을 품는다면, 그것도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p118




「제인 에어」를 새롭게 재해석한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다른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슐러 르 권의 「라비니아」 에 대한 글(p137) 또한 개인적인 호기심을 폭발하게 했다. 각기 다른 시대에 쓰인 작품들을 비교하며 서로 다른 해석, 가치관 등을 풀어내는 글에 해당 책들이 궁금해질수 밖에.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도 펼쳐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어슐러 르 귄의  「라비니아」 도 책 장바구니에 쏘옥. 



20대에 가장 인상깊은 책을 이야기하라고 할 때 나는 「데미안」 과 「작은 아씨들」 을 들곤 했다. 그리고 내가 「작은 아씨들」 을 선택했었던 이유를 다른 독자의 사례에서 만났다. 잊고 있던 기억들도 떠오르며 지금의 내 모습이 그 때 읽었던 책들의 영향도 있었음을 깨닫는다. 


도로시 오즈번과 같은 과거의 실존 인물들과 조우하거나 <인형의 집>의 노라 헬메르나 <작은 아씨들>의 조 마치 같은 허구의 인물들과 마주칠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들과 자신의 가치, 가정, 희망, 두려움 등에 관해 이야기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갑작스럽게 그들과 우리 사이의 불협화음을 인지하게 되더라도 그 불협화음으로부터 달아나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 속으로 곧장 뛰어들어야 한다. 선조들의 태도와 자신의 태도를 비교하는 이 과업은 매우 흥미로운 과정이 될 수 있다. (...) 레슬리 제이미슨이 말했듯이 양자 사이의 긴장은 타닥거리면서 불꽃을 튀기고, 이 불꽃은 빛과 온기 모두를 생성해낸다. 


-p218, 인형의 집에서 내다본 풍경 / 비교 |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타닥거림




저자는 맺는 말에서 '정보의 밀도가 높은 환경이 인격의 밀도가 낮은 개인들을 양산해낸다(p236)' 라고 말한다.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무한한 선택을 제공하는 듯 보이는 세상이 실제로는 선택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놓는데, 이는 정보 환경이 우리를 대신해서 선택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풍부하게 하고 스스로를 더 강건하게 만들기 위해서 죽은 이들에게 관심이란 피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9장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그렇게 획득한 강건함을 활용해 미래와 의미 있는 약속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


우리가 옛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그들은 우리가 극복한 편협함과 사악함의 본보기로서가 아닌 이웃으로서, 심지어는 스승으로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조차 그런 상황이라면 우리도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단순한 관심을 넘어선 사랑을, 후손들에게 바라는 것과 같은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랑을 보내줄 수 있을 것이다. 인격의 밀도를 향상해야 한다는 이 책의 주장은 먼 과거에서 먼 미래로 이어지는 생명의 사슬에서 고리로서 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 앨런 제이콥스




'인격의 밀도를 향상'하기 위해 고전을 읽는 것은  다른 시간대, 다른 세계라는 시.공간상의 차이와 거리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자신의 시대만 아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는 앨런 제이콥스는 오래된 책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자고 권유한다. 이렇게 '과거를 향해 자신을 열어젖힐 때 우리는 마음에 안 드는 옷을 입은 젊은 여성에게 분노에 찬 트위터 메시지를 보내거나, 반감이 가는 트위터 문구를 보고 경솔하게 직원을 해고하거나, 환경 변화에 비생산적인 분노나 전적인 무관심으로 반응하는 우행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며 순간의 충동들, 결코 고요한 마음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그 충동들에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전한다. 고전을 읽을 이유가 현실의 적나라한 모습에서 이해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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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J시네마 던전: BLACK 편 - 범죄·액션·스릴러·공포·역사 J시네마 던전 1
김봉석 / 에이플랫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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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속 리디 페이퍼를 오랫만에 꺼냈다. 이북으로만 볼 수 있는 책을 읽기 위해서다. 「J시네마던전」 시리즈. 이 시리즈는 <씨네21> 기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던 영화평론가 김봉석의 일본영화 리뷰집이다.  「J시네마던전」 은 BLACK, PINK, RAINBOW 이렇게 세 권으로 나뉜다. BLACK 은 범죄·액션·스릴러·공포·역사 쪽의 분야다. PINK는 로맨스·드라마·코미디·청춘·에로 분야를, RAINBOW는 SF·판타지·아니메·B급 분야를 다룬다.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는 「J시네마던전」 의 시리즈 기준으로, RAINBOW > PINK > BLACK 순으로 봤다. BLACK 편의 영화들은 많이 보지 못했기에 오히려 더욱 호기심이 당기는 영화들을 메모해놓게 된다. 게다가 'BLACK' 분야의 영화들은 소설이 원작인 경우도 많아서 관련된 소설들까지 함께 찾아보게 되는 즐거움까지 얻는다.  '일본영화는 워낙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성향도 극과 극이라서,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면 시선에 포획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런 개성적이고 독특한 점들을 보고자 노력했다.' 라던 저자의 의도는 내게로 그대로 전해졌다.




J시네마 던전 : BLACK편

김봉석 지음

에이플랫



저자는 걸작과 평작을 모두 아우른 리뷰라고 소개한다. 각각의 리뷰 안에는 일본영화가 가진 독특한 특성과 영화적 가치는 물론 역사와 시대상, 사회 현상까지 모두 담아내고 있다. BLACK 편은 4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의 범죄,액션 분야는 11편의 영화가, 2부의 스릴러 분야에는 9편의 영화 리뷰가 담긴다. 3부 공포 분야에는 16편, 마지막으로 4부 '역사와 영화, 일본을 말하다' 분야에는 12편의 영화가 등장한다. 



수록된 영화의 목록을 보며 우선 내가 봤던 영화에 대한 리뷰부터 찾아 읽게 된다. 범죄, 액션 분야에서 보자마자 눈에 들어왔던 영화 제목 「고독한 늑대의 피」! 책으로도 읽고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 상영되었던 동명의 영화도 찾아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저자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었다고 하니 그당시 다른 지면에 실렸던 그의 리뷰를 읽었을지도 모른다. 



여성인 유즈키 유코는 영화 <의리없는 전쟁>을 너무나 좋아하여 비슷한 스타일의 소설을 쓰고 싶었고 그렇기에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의리없는 전쟁>을 떠올리게 된다고 설명하는 저자. 


<고독한 늑대의 피>는 히로시마 인근의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야쿠자 조직 간 항쟁을 그리고 있다. (...) 원작소설을 쓴 유즈키 유코는 1968년생으로 원래 기자로 일하다가 2008년에 <임상 진리>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 후카사쿠 킨지의 영화 <의리없는 전쟁>과 아사다 데쓰야의 소설 <마작방랑기>를 좋아했고, 이런 풍으로 남자들의 세계에 대해 쓰고 싶었다던 꿈을 실현시킨 것이다. 치밀한 취재를 통해 완성해낸 <고독한 늑대의 피>는 21세기에 걸맞은 경찰.야쿠자 소설의 걸작이 되었다. 


- p23



치사하고 악랄한 범죄자로서의 야쿠자를 실록-다큐멘터리 스타일로 그려낸 영화 <의리없는 전쟁>(1973)은 야쿠자물의 전형을 바꾸었다고 한다. <고독한 늑대의 피> 도 이 '실록' 스타일을 충실히 따르는 영화라고 한다. <의리없는 전쟁> 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검색을 하다보니  <고독한 늑대의 피> 의 두번째 영화도 나온 모양이다. 야쿠자물이지만 형사가 주인공인 영화. 그리고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신의 원칙을 세운 인물 오가미가 야쿠자만이 아니라 동료인 경찰과도 싸워야 하는, 자신의 영역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고독한 늑대의 일생을 히오카란 인물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의리없는 전쟁> 과 <고독한 늑대의 피> 포스터


저자는 이 영화를 '시종일관 에너지가 들끓는다'고 표현한다. 감독인 시라이시 카즈야의 영화들은 늘 그렇다고 하면서 말이다. 소설과 다른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감독의 고유한 장면임을 이야기하면서 지금 일본영화의 현재를 보고 싶다면 반드시 봐야할 영화라고 전하고 있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을 각색한 <바람의 검, 신선조> 는 회사의 남성동료들이 극찬한 영화였다. '드라마틱한 시대 상황 자체보다는, 그 안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접근한다. <철도원>과 <파이란>에서 이미 경험한 아사다 지로의 작품들은 한없이 낭만적이며서도, 남성적인 강인함으로 중심을 잡는다. 고독하고 쓸쓸하지만 인간의 따뜻함을 결코 잃지 않으려는 갈망이 배어있다.(p185)' 라는 저자의 표현에 끄덕끄덕. 





<훌라 걸스>는 아오이 유우의 매력에 빠져 봤던 영화다. 2006년 일본에서 개봉한 미니 시어터 영화 중에서는 <키사라즈 캐츠 아이:월드 시리즈> 와 함께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영화라고 소개되어 있다. 작지만 알찬 영화라는 설명과 함께.  


훌라 걸스가 공연을 준비하는데 탄광에서 사고가 나서, 한 여성의 홀아버지가 생사의 기로에 서있다고 전해온다. 이런저런 논란 끝에 결국은 공연을 중단하고 돌아가려는데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공연을 하자고 말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춤을 추기를 간절히 원했고, 지금도 그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영화의 이 장면을 들어 일본영화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을 이야기한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의 충돌은, 일본영화에서 가장 빈번히 나오는 장면 중 하나다. 일본에서는 항상 공적인 일이 중요하다. 사적인 상념을 버리고 '잇쇼켄메이'를 해야만 '천하제일'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프로, 장인의 정신이다. 하지만 뒤돌아서면 눈물짓고, 결국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p192) ' ( 아. 그렇구나! )  이런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한국에서 대중적인 영화로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고 하니 더욱 이해가 간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조금씩 관객을 모으는 좋은 영화라고 소개된다. 


책리뷰처럼 영화리뷰 또한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이 영화가 저 영화를 부르고, 원작소설과 연계되며 감독, 배우 들의 이야기까지 어우러지는 종합 선물셋트가 된다. 봤던 영화에는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하고, 몰랐던 영화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다. 결국 PINK 와 RAINBOW 까지 궁금해진다. 메모해두었던 영화도 챙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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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 정여울이 건네는 월든으로의 초대장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해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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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충동적으로 월든 호수의 사진을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는 저자는 '서랍 속에 우주를 숨겨놓은 기분' 이 들면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 사진은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변덕스러운 마음에 비로소 적정 온도를 찾게 해주는 '월든 부적' 이기도 했다. 그렇게 월든 마니아가 된 그는 소로의 모든 것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월든 투어를 떠난다. 그리고 그 기억을, 그 기록, 「월든」 과 함께 하는 일상을 이 책에 오롯이 담아내었다.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정여울이 건네는 월든으로의 초대장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해냄



「월든」 은 내게 있어 완독목표를 몇 번이나 실패하게 만든 애증의 책이다. 마음에 콕 박히는 문장들을 무수히 밑줄을 쳐놓고도 완독했다는 기쁨은 늘 누리지 못했다.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에서 저자 또한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는 문장을 만나자 갑작스럽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이른바 '각'잡고 읽을 준비를 하는 참이었는데!  


「월든」을 한 문장도 빠짐없이 철저히 읽어야 한다는 '고전 필독서 완독' 에 대한 강박관념이 오랫동안 내 의식을 장악했지만, 늘 네 챕터쯤에서 지쳐 떨어 나가떨어지곤 했다. 분명 재미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완독은 어려웠다. 학창 시절, 대학생 시절, 대학원 시절, 조금씩 더 '월든 완독의 길'에 가가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암중모색이었다. 


- p19




저자처럼 「월든」 이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삶에서의 계기는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나는 이 책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를 마중물로 삼아보게 된다.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라는 제목으로 「월든」 에서 건져올린 열정, 산책, 존엄, 간결함, 은둔 등의 키워드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로의 「월든」 을 읽고 난 후 인상 깊에 남았던 기억 중의 한가지는 의자에 대한 것이었다. "나의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의자, 하나는 우정을 위한 의자, 또 하나는 교제를 위한 것이다" 라는 문장말이다. 정여울은 그 문장으로 시작하여 '간결함' 이라는 키워드로 '당신에게는 몇 개의 의자가 필요한가요' 라고 묻는다. 


생활은 간결하게, 자연은 풍요롭게, 내가 「월든」에서 배운 삶의 지혜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생활이 간결해질 수록, 자연은 풍요로워지며, 오염과 파괴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도시인에게 자연은 캠핑처럼 잠시 즐길 수 있는 모험의 대상이거나 요양을 위한 일시적 치유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도시인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쓸모있는 '자원'으로 바꾸어 바라본다. (...) 자연을 있는 그대로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이 그 어떤 효용가치로 환산되지 않는다. 소로는 자연과 얼마나 교감할 수 있는지, 자연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지가 행복의 조건 중의 하나임을 믿었다. 


- p147




또한 스스로의 실수를 너무 오래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너무 오래 간직하지도 않는 마음을 배웠다며, 생활 뿐만 아니라 마음의 간결함까지 생각을 이어간다. 




1장에는 또한 월든 투어의 기록들이 갈색 페이지 속에 담겨있다. 숲 속의 오래된 나무 줄기의 색처럼 느껴지는 갈색 바탕에 가득찬 사진과 메모들은 독자들 또한 월든 호수로, 소로가 있던 곳으로 함께 떠나게 이끈다. 독서 에세이 속에서 여행 에세이를 덤으로 하나 더 읽게 되는 뿌듯함까지. 텍스트 속에만 있던  「월든」 의 내용들이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효과 또한 얻는다. 





2부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월든」 속으로 걸어가다' 는 「월든」 의 생활경제, 「월든」 의 인문학, 「월든」 의 윤리학, 「월든」 의 생태학으로 다시 나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처음에는 그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책인 줄 알았는데, 21세기 현대인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삶의 지혜를 압축해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라고 했다. 그는 적게 소유하고 진정 풍요로운 삶을 가꾸는 법, 통장 잔고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 자연을 경제적으로만 바라보며 착취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 진실로 공생하는 법,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마침내 진정한 영혼의 자유를 꿈꿀 줄 아는 용기를 지니는 법 등 수많은 삶의 지혜와 세계를 바라보는 눈부신 비전을  「월든」 속에서 길어 올려 2부에 꾹꾹 눌러 담았다. 


삶의 시간을 아름답게 수놓는 법을 이야기하는 「월든」 의 인문학 편을 더욱 관심있게 읽었다. 소로가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을 떠날 때마다 귀중품 궤짝에 「일리아스」 를 넣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통해 '책'이야말로 가장 친근하고 일상적이며 삶 자체와 가장 가까운 예술작품이라고 강조했듯이, 저자 또한 「월든」 을 온 집안에 비치해보자고 권유한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마치 인류가 잃어버린 자기 안의 소중한 것들을 매번 되찾게 해주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도 소로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힘겨운 날들의 복잡한 머릿속을 마치 투명한 월든 호수의 차가운 물로 말끔히 씻어내는 듯한 정화와 치유의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p254) 라고 전하면서. 



'조금은 소로처럼', '약간은 월든처럼' 살아가기 시작했음을 느끼던 어느 날의 일상 기록은 읽어가는 내게 잔잔한 미소를 띄우게 했다. 저자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월든도 좋고, '정여울의 문장' 또한 좋다. 삶에 대한 기쁨을 함께 이야기하자고 손짓하는 듯 하다. '오직 자기 삶의 속도를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긍정하는 삶'(p97) 으로 초대한다. 


나의 '조금이라도 월든을 닮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나는 「월든」의 문장을 읽으며 잠이 든다. "당신이 매일 낮과 밤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다면, 마치 달콤한 향내를 뿜어내는 화초들처럼 당신의 하루하루가 향기를 뿜어낸다면, 당신의 삶은 더욱 유연하고, 빛날 것이며, 나아가 영원불멸의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성공이다." 


오늘 나의 삶은 아주 소박하지만 분명 어제와는 다른 향기를 뿜어낸다. 


- p269



'이제 나에게는 억지로 만들어가야 할 타인의 월든이 아니라 항상 내면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월든의 세계가 있음을 믿기 시작했다'(p100) 라고 말하는 저자는 '소로를 만나는 순간, 소로와 만나는 동안, 변화하고, 다듬어지고, 풍요로워지고 , 향기로워진 내 생각의 정원으로 세상살이에 지친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라고 전한다. 그 초대에 응한 나는 그의 생각의 정원에서 산책을 하며 내 삶 또한 최고의 향기를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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