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를 위한 안내서 - 천국과 지옥 그리고 연옥까지 인류가 상상한 온갖 저세상 이야기
켄 제닝스 지음, 고현석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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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은 밤이면, 죽음에 대하여 생각한다. 오늘 잠이 들었다 내일 아침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죽음은 나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게 두렵다. 죽음 이후의 것을 알지 못한다. 죽음 이후에 내가 천국에 갈 것인지, 지옥에 갈 것인지 생각해본 적 또한 없다. 그저 무의 세계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만약 사후 세계가 진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사후 세계의 상상의 산물이 여기 있다.


 

신화와 종교, , 영화, 텔레비전, 음악과 연극, 기타 다양한 사후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신화 속 고대 이집트 사후 세계의 장점은 물건을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이집트의 귀족들은 전차에서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다한 것들과 함께 묻혔을뿐더러 우샤브티라는 작은 인형을 일꾼으로 써먹을 수 있었다. 사후 세계를 위해 인형을 준비하고 부장품들과 함께 묻혔다는 건 그들이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티베트 사자의 서 바르도는 조지 손더스의 소설 바르도의 링컨을 떠올리게 한다. ‘바르도는 티베트어로 죽음과 재생의 경계 상태를 뜻한다. 장례식이 끝난 묘지, 서성거리는 영혼들의 세계.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번 글에서 제대로 파악하게 된 것 같다.


 

신화나 종교 등에서 내세우는 천국과 지옥의 경계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이슬람의 사후 세계에서는 세 가지 질문을 건네는 천사가 있다. ‘당신의 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선지자는 누구입니까?’. 이와 같이 질문했을 때 정답을 말하면 무덤을 넓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데 반해 그 반대의 경우는 망자의 흉곽을 찌그러뜨리고 아흔아홉 마리의 뱀을 무덤으로 기어들어오게 하여 사자를 고통스럽게 한다.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 정답을 알아야 하지 않겠나. 혹시 길을 잘못 들어 이슬람으로 가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여러분에게만 정답을 살짝 알려주겠다. 정답은 각각 알라, 이슬람, 무함마드다.


 

카리브해의 연안 국가들의 노예들 상당수는 자살을 통해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사탕수수 농장주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예들은 랑 기니로 가지 못하고 아이티의 황량한 들판에서 영혼을 잃고 방황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며 노예들을 단속했다. 현재 서양의 대중문화를 장악하고 있는 좀비의 기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119페이지) 할로윈이나 드라마 <워킹 데드>에 등장하는 좀비들이 사탕수수 농장 노예였다니, 마음이 아플 뿐이다. 이처럼 저자는 각 신화와 종교에 깃든 상상력의 사후 세계를 펼친다. 사후 세계의 여행길에서 어떤 상황을 맞닥뜨릴 것인가. 궁금하긴 하다. 물론 과거의 기억 따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밀턴의 실락원은 성경을 사탄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쩔지 생각하면서 쓴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지옥을 떠올릴 때면 유황이 들끓는 불과 그 속에 빠진 사자들이다. 단테의 신곡또한 죽음 이후의 삶을 말한다. 그러고 보면 수많은 작품에서 죽음 이후의 세계를 그린다. 영원할 것 같은 현세의 삶은 너무 짧고, 영혼은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믿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안온한 삶을 사후에서도 바랐다는 점. 죽음이 가진 삶의 통찰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가장 호화로운 사치품의 유혹을 받지만 그것을 누릴 수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떤 곳일까? 천국에도 지옥에서와 같은 테이블, 같은 손님, 같은 접시, 심지어 같은 긴 숟가락이 있다. 하지만 천국에서는 아무도 배고프지 않다. 그들은 서로에게 먹여주기 때문이다. (428페이지)


 

이솝우화를 떠올리게 한다. 천국과 지옥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과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과의 차이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힘든 건 나에게서 오는 번민이 아니라 타인이 주는 지옥과도 일맥상통한다. 타인과의 세계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두렵게 한다. 죽음 이후도 마찬가지다. 살아있을 때 타인을 배려하고 도움을 주었다면 죽음 이후에도 천국에서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거다. 결국 죽음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삶의 지침이다. 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들은 결국 삶의 지침서를 읽는 것과도 같다는 걸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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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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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스콧 피츠제럴드를 생각하면, 우디 알렌의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영화 속 주인공이 파리의 밤거리를 걷다가 1920년대의 한가운데 예술가들이 모여있던 한 장소로 가서 신기한 경험을 하는 내용이었다. 영화에서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가 술을 마시며 파티를 즐기던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이 작품은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좋아하여 번역가로도 활동했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엮은 책으로 술에 기대어 악화일로의 길을 걷던 와중에 쓴 소설과 에세이가 실려 있다. 마지막에야 드러났던 생의 진면목이 아름다움의 형태로 드러났다. 암울한 시대 절망을 딛고 새로운 광명을 찾으려고 애썼던,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1920년대에 피츠제럴드는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어 유럽 여행 중이었다. 성공에 힘입어 자유로운 삶을 꿈꿨던 여행은 알코올 의존증과 신경쇠약을 불러왔다. 피츠제럴드와 젤다의 삶은 여러 작품의 인물과 배경으로 나타났는데, 작품 속에서 우리는 삶의 한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이국의 여행자에서 젊은 부부는 유럽 여행 중이다. 여행 중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데 그중에서 가깝게 지내고 싶은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여행 장소에서 마주치는 부부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켈리 부부가 행복할 때는 행복한 모습으로, 건강이 나빠져 스위스에 도착했을 때는 건강이 좋지 않은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 그 부부와 친해지고 싶지 않다고 여긴다. 자신들과 거울처럼 닮았음을, 그 모습이 자신들의 모습임을 깨닫는다. 작품 속에서 작가의 삶을 들여다본다. 자기의 삶을 작품 속에 투영시켜 더 나은 삶을 도모하고자 함일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한순간에 어그러진다. 바람을 피운 남편은 건강을 위해 멀리 요양을 떠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남겠다고 한 아내를 향한 마음은 절망의 다른 모습이다. 작품의 진가는 오랜 시간이 지나 드러나기도 한다. 크레이지 선데이처럼.


 

무라카미 하루키가 고등학교 때 읽고 깊이 감탄했었던 작품 바람 속의 가족을 보자.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생을 망친 의사가 거대한 토네이도를 만나 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약국을 운영 중이던 의사는 동생의 아들이 머리에 총알이 박혀 목숨이 위태로워도 손이 떨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포탄 소리가 기관총 소리 같은 탁탁거리는 소리로 들렸던 토네이도는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집이 사라진 풍경을 생각해보라. 절망밖에 없는 상황에서 의사는 술을 한 모금 들이키고 조카의 머리에서 총알을 빼준다. 아빠를 잃은 어린 소녀를 생각하는 것 또한 새로운 변화다. 아마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 컸으리라. 희망을 찾아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며 아빠를 잃은 소녀를 딸처럼 생각하며 변화를 꿈꾼다.


 

그의 삶은 새로운 식림(植林)을 필요로 했고,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삶의 토양이 그 숲의 성장을 다시 한번 지탱할 수 있기를 그는 바랐다. 그의 토양은 최고의 토양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귀 기울이고 관찰하는 대신 과시하는 약점을 일찍부터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211페이지, 어느 작가의 오후중에서)

 


아내는 요양 중이고, 빚이 쌓였으며 딸을 돌보아야 하는 작가는 글을 쓰지 못해 고민이다. 산책을 나서 본다. 새로운 풍경을 보면 글을 써지지 않을까, 바깥 공기를 쐬면 괜찮지 않을까. 작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번역한다는 건 남다를 것 같다. 더군다나 20년 전에 번역했던 작품을 다시 엮는 작업은 어떻게 보면 큰 즐거움이지 않을까.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고 다듬어 새로운 작품으로 내놓은 작업 말이다.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피츠제럴드의 후기 작품집이다. 물론 사십 대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작가의 마지막 즈음에 쓴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망가진 3부작을 비롯해 다섯 편의 에세이는 작가의 상황을 좀 더 파악할 수 있게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열정과 활력이 너무 이른 시기부터 끊임없이 졸졸 새기 시작한 그 틈이 어디인지 알아내야 했다. (332페이지, 취급주의중에서)


 

인생이 낭만적인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너무 이른 시기에 거둔 성공의 대가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이를 통해 젊음을 유지하게 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과 돈이라는 주요 목표가 당연시되고 흔들리는 명성이 그 매력을 잃었을 때, 나는 영원한 해변의 카니발을 찾아 꽤 오랜 세월을 허비했다(솔직히 나는 그 세월을 후회할 수 없다). (354페이지, 젊은 날의 성공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피츠제럴드를 좋아했던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영미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번역과 해설, 후기가 수록되어 그 의미가 남다르다. 피츠제럴드의 자전적인 경험이 응축된 후기작품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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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설자은 시리즈 1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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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신작 알림이 뜨자 반가움이 먼저 들었다. 언젠가 신작이 나왔나 하여 인터넷 서점에 정세랑이라는 이름을 검색해본 적도 있다. 애타게 기다렸던 작가가 설자은 시리즈로 돌아왔다. 열 권쯤 출간되면 더 좋을 역사 추리물이다. 더군다나 남장 여자라니, 로맨스 소설 같지 않은가.

 


소설의 배경이 신문왕이 통치하던 통일신라시대다. ‘전쟁이 끝난 통일신라는, 한껏 융성을 향해서 가다가 어느 순간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먼 시대를 거울삼아보는 일은 언제고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는 작가의 말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소설이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설자은 시리즈는 삼국유사 시리즈 다음 버전 같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설자은은 미은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당나라 유학이 예정되었던 오라비 설자은이 죽자 그를 대신에 유학길에 올랐다. 자은과 외모가 비슷하고 머리도 비슷하게 좋다는 이유였다. 셋째였다가 첫째가 된 호은의 이상한 판단 때문이었다. 여러 번 죽을 뻔한 위기를 겪고 드디어 금성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오는 배에서 누반박사가 되려고 했으나 나라가 망해버린 백제 출신의 목인곤을 만났다. 그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추리 형식의 소설이다.

 


배에서 일어난 의문의 죽음과 손바닥에 붉은 글씨가 새겨진 업화 사건, 길쌈 대회의 부서진 베틀, 월지에서 매잡이의 죽음 등 설자은의 식객이 된 목인곤과 함께 활약한다. 속을 알 수 없는 설호은, 산학이 뛰어나 집안 살림을 이끄는 설도은, 죽은 설자은의 연인이었던 산아, 위압적인 몸으로 나의 흰 매가 돼라고 말하는 왕까지 등장인물의 면면도 재미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들과 그들에게 펼쳐질 미래다.

 


일찌감치 자은이 여성이란 걸 알아차린 인곤은 자은을 위해 어깨를 넓게 보일 물건을 만들어 주고 곁에서 자은을 돕는다. 설자은과 한때 연인이었을 거로 보이는 산아의 부탁으로 압화 사건을 해결하고, 자은의 부탁을 산아가 들어준다. 그런 자은이 탐탁찮은 산아의 지아비 진오룡의 견제와 질투 섞인 눈빛은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소설에서 과거의 역사를 알게 된다. 물론 설자은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설자은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의 생활과 생각은 과거의 역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수년간의 자료 조사와 더불어 작가의 상상력으로 빛나는 캐릭터가 탄생되었다. 여성의 몸으로 남성들 세계에서 자신의 역량을 드러낼 독보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자은에게 일어날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갈 인곤과의 티키타카 케미도 기대해볼 만하다.


 

더군다나 다음 시리즈부터는 왕의 매가 된 설자은의 활약이 시작될 터다.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목인곤과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갈 텐데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여성의 몸으로 남자 행세를 하는 설자은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미스테리 소설이 주는 즐거움은 사건의 해결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주인공의 재치가 빛나는 순간이다. 여성을 숨기고 남성으로 살아야 하는 자은의 속마음을 짐작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며, 말없이 옆에서 챙겨주고 배려하는 목인곤의 존재가 이 소설을 더 빛낸다. 역사 속 이야기들과 지명 하나가 하나의 사건, 이야기로 나타나 흥미롭다. 다음 시리즈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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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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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의 클레어 키건이 11년만에 발표한 중편소설로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맡겨진 소녀처럼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오래전 아일랜드의 1985년에 다다라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바라봄과 동시에 아일랜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머무를 수 있다.

 


사십 대를 바라보는 남자가 바라본 세상은 녹록지 않다. 문 닫는 회사들이 속출하고 먹을 것이 부족한 가족들이 있다.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세탁소에는 젊은 여성들이 하루 종일 신발도 없이 세탁 작업을 하며 먹을 것이 충분찮아 보인다. 석탄·목재상 빌 펄롱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석탄 배달을 갔다가 석탄광에 갇혀 있던 한 아이를 발견했다. 하룻밤을 갇혀 있었던 소녀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내와 딸 다섯 명이 있지만 수녀원에서 아이가 받는 취급이 못내 안타까웠다.




 


하루 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가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44페이지)


 

만약 펄롱이 그 아이를 집으로 데려간다면, 그의 삶은 아주 불편해질 것은 당연하다. 수녀회는 그의 딸들이 다닐 학교와도 연관되어 있으며 교회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가 수녀원에서 소녀를 발견하고 돌아왔을 때 마을에서는 벌써 소문이 퍼졌었다. 한 식당의 주인은 그에게 조심하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그들이 가진 힘을 두려워하라는 얘기였다.

 


모든 소설이 그렇듯, 아일랜드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게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직장을 잃은 가족의 아이들에게 동전 몇 개를 주는 일도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추운 날 야적장의 자물쇠가 얼어 모르는 집의 문을 두드렸을 때 친절한 여주인은 끓인 물이 들어있는 주전자를 건네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펄롱의 내면은 복잡하다. 아내 아일린과 다섯 명의 딸들을 사랑하면서도 다른 삶을 꿈꾸었다. 친절을 베푼 여자와의 소박한 삶은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미시즈 윌슨의 배려와 보살핌을 받았던 때, 자기의 아빠가 누구일까 궁금했던 때를 떠올렸다. 가족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면서 어렸을 적 선물로 받고 싶었던 지그소 퍼즐을 갖지 못했던 크리스마스의 쓸쓸함 등을 말이다. 선물을 받지 못했을뿐더러 아버지의 존재를 모르는 어린 소년이 울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라. 아버지의 존재를 애타게 기다렸던 그는 결혼을 한 후에도 미시즈 윌슨에게 자기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어쩌면 부잣집 핏줄일 거라는 희망을 주고 싶었던 걸까. 우연히 누군가의 말에 의해 친아버지를 짐작할 뿐이다.

 


한 남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따뜻하다.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다정한 마음으로 바라볼 줄 알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끌어안을 수 있다. 그뿐일까. 가족을 사랑하는 그는 다른 삶을 향해 자기가 짜놓은 틀 안에서 엇나가지 않는다. 평등한 삶을 바라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세상에 맞설 용기를 얻는 게 아닐까.


 

이 소설은 배우 킬리언 머피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영화를 기다려봐도 좋겠다. 두 번 읽은 소설, 감동의 의미는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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