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레퓨테이션: 명예 1~2 세트 - 전2권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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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TV 시리즈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원작자 세라 본의 신작 소설이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레퓨테이션: 명예는 영국의 노동당 하원의원이 집 현관에 잠금장치를 여러 개 설치하고 지역구 사무실에 테러에 대비한 패닉룸을 마련했다고 밝힌 실제 기사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소설이다.

 


엠마 웹스터는 노동당 하원의원으로 리벤지 포르노법안을 통과시키며 여성 인권을 위해 싸우는 인물이다. 푸드 뱅크에 가야하는 아이들, 즉 엠마의 학생들의 가난에 분노했기 때문에 지방 의회의 정치에 입문했다. 엠마는 지역구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한편, 트위터(X) SNS에서 악플에 시달린다. 정치인이지만 여성으로 두려움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한 것 같다. 딸 플로라가 자기를 괴롭히던 레아의 나체 사진을 찍어 다른 아이에게 보내면서 사건화된다. 함께 리벤지 포르노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언론의 역할을 했던 마이크로부터 딸의 기사를 쓰겠다는 말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마이크가 여성 의원 3명이 사는 집 계단참에 떨어져 죽은 사건이 발생하여 엠마 웹스터는 살인 사건 용의자로 경찰에 붙잡힌다.





 

소설에서 강력하게 표현하는 주제는 여성 정치인으로서 미디어에 노출된 삶과 악플, 언어폭력, 살해 협박에 관한 두려움과 공포다. 자녀를 언론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고 정치인으로서 자신도 보호해야 한다. 명예를 지켜야 했다. 정치인으로서,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명예가 실추되는 걸 막아야 했다. 정치인이 하나의 사건으로 미디어에 노출되면 그들의 가족의 일상이 무너진다.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기나긴 법정 싸움이 시작되었다. 왕립기소청은 엠마가 마이크를 의도적으로 살해했을 거라고 유죄를 주장할 것이며 엠마의 변호사는 배심원단의 마음을 무죄로 이끌어야 했다. 엠마는 명예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언론이 보고 싶어 한 장면은 내가 극도의 불안을 표출하는 모습이었다. 취재진의 무례한 태도가 생방송으로 고스란히 나가더라도 언론은 독자와 시청자를 흥분시킬, 급격히 전개되는 감정적 스토리를 원했다. 세상의 이목을 받는 여성은 과거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반드시 협조해야 한다. 그 중요한 사실을 잊은 탓에, 나는 언론이 내게서 등을 돌리는 상황을 맞게 될 터였다. (1, 261~262페이지)


 

사건이 발생하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두 갈래로 나눠진다.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말이다. 같은 여성 의원으로 한 집에 살았지만 정작 중요한 시점에 기소청에게 호의적인 증인이 된 줄리아가 있는 반면, 클레어는 함께 살던 집을 나와 거처할 곳이 마땅찮았던 엠마에게 방 하나를 내주고 재판이 있을 때마다 힘이 되어 주었다. 증인의 답변에 따라 배심원들의 생각은 엠마를 살인자로 보기도, 동등한 직업인으로 보기는커녕 성적인 용어로 성적 대상으로 보았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 부분에 여성 배심원들의 마음이 움직였을 거로 보였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 마이크와 함께 일했던 기자 레이첼은 엠마가 바랐던 증인과는 달랐다. 오히려 사생활 감시와 스토킹에 대하여 공인이라면 당연한 목표물이 되는 셈이라고 했다. 엠마에게 호의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두려움과 위협당하는 상황에서도 공인으로서 그마저도 이해해야 한다고 여겼다. 생각해보니 TV에 나오는 배우들이나 방송인들에게도 우리는 정치인과 같은 잣대를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다른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공인으로서 어느 정도의 의무는 필요하지 않냐고 말이다.

 


엠마는 하원의원이 되기 전 역사 교사로 일했다. 딸 플로라의 음악 선생인 캐럴라인이 남편과 바람이 나 이혼한 상태다. 전 남편 데이비드와 플로라와 함께 살았던 집을 자신의 방식대로 바꾼 캐럴라인을 불편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상황이다. 딸 플로라를 위해 재판 상황을 알려야 했을 때, 데이비드보다 캐럴라인이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캐럴라인의 입장에서도 엠마는 불편한 상대다. 데이비드를 가로챘다는 죄책감에 엠마의 시선을 견뎌야 하는 입장이었다. 캐럴라인의 입장에서 엠마가 유죄로 확정되어도 나쁠 게 없었다. 하지만 재판 진행 상황을 보며 같은 여성으로서 엠마를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압권이었다. 한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했다고 할 수 있겠다. 여성의 연대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정치인은 자기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언론이 필요하며(도움을 받으며), 언론에 의해 매장당하기도 한다. 정치인과 톱스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수년간 쌓아왔던 명예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현재 인터넷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좋지 않은 일로 연루되었을 때 노출되었던 아이를 걱정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입방아를 찧게 되겠지만 결국은 이해하지 않을까. 엠마의 상황과 두려움을 우리 모두 기본적으로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의 연대가 여성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다. 그걸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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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작품
윤고은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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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사진 한 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캐니언의 프로포즈>라는 사진으로, 스냅사진 작가인 빌 모리의 휴대폰으로 찍었다. 그랜드캐니언의 가장 아름다운 절벽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남자의 프로포즈 장면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 프로포즈하는 커플을 찾았다. 빌 모리의 사진은 큰 인기를 끌어 사람들은 그들이 사진을 찍은 장소를 찾아내 비슷한 구도의 사진을 찍었다. 리나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로 밝혀졌으며 실종 신고를 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사진이 찍혔음을 알게 됐다. 그러나 사진을 찍은 것은 빌 모리가 아닌 로버트라는 사실을 밝혔다.


 

안이지는 로버트 재단의 전화를 받았다. 미술학원 교사로 일하면서 지원금을 받아 예술 활동을 했지만, 그러는 사이 집의 전세금은 점점 내려갔고 현재는 음식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중이었다. 로버트 재단의 창작 프로그램 지원을 받게 되었다. 16주간의 미국 체류 비용과 함께 4주간의 전시회와 함께 전시회 마지막 날에 작품 중 하나를 소각해야 했다. 소각할 작품은 로버트 재단에서 선택한다는 조건이었다.





 

로버트가 다름 아닌 였다는 게 문제랄까. 언젠가 어느 억만장자가 자기가 키우던 반려동물에게 유산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문구용품 회사의 회장 발트만이 자기의 딸 리나의 사진을 찍은 로버트의 영향으로 편안해했고, 로버트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 로버트 재단의 창작 프로그램에 안이지가 참여하게 되었던 거다. 재단에서 로버트와 함께 만찬을 즐기고 산책을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타인들에게 보여주는 행위가 필요했다.

 


소각 시스템은 인간의 삶과도 비슷하죠. 인간은 언젠가 죽습니다. 재활용도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그저 일회용일 뿐이지요. 불타버릴 쓰레기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늘 소각에 대한 두려움만으로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인생을 지레 포기하지도 않고. (181~182페이지)


 

말이 통하지 않은 개와 함께 산책과 식사를 하고 대화한다고 생각해보라. 로버트의 말을 대니가 1차로 전달하고 영영 통역에서 영한 통역으로 안이지에게 전달되는 언어들은 우주 너머로 가는 것 같았다. 재단 이사장인 개를 통해 이익을 취하려는 인간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로버트의 말을 자기들 필요에 의해 전달하고 예술가의 마음을 사려 하지 않았나. 더군다나 예술가의 마음을 훔치려 했다.


 

작가는 16주 동안 작품을 만들고 로버트가 선택한 작품을 소각하게 되는데, 이것은 작가가 작품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구조다. 혼신을 다한 작품이 소각된다고 생각해보라. 애틋하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작품을 지키고 싶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작품은 곧 작가의 마음을 대변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말이었다. 여기에서 드는 생각, 똑같은 작품을 그리면 되지 않겠느냐는 거다.

 


예술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작가가 자기의 작품을 똑같이 그린다고 해서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미세한 차이가 드러날 텐데 작품을 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만 느낄 수도 있다. 어쩌면 작가 자신이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 다급한 상황에서 자기의 작품을 구해왔다고 치자. 원래 소각하려던 작품인지, 다시 그린 작품인지. 어떤 게 진짜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작품은 희귀성이 있어야 유명해지는 법인가. 소각할 때 비로소 작품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인가 보다. 그러한 효과를 기대하고 작품을 소각하는 미술계의 행태를 고발하는 것 같았다. 재단 이사장이라고 개와 마주한 예술가를 상상하니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그들 또한 나름의 방식으로 유지하고 살아가려 애썼던 거다. 자기의 작품 중 하나를 소각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작품을 만들고 그 진가를 찾아 나설 수많은 예술가의 마음을 훔치려고 하지 않았나. 한편의 블랙 코미디 영화 같기도, 게임 같기도 했다. 작가의 마음을 불태우는 작업, 우리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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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냄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9
김지연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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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후각을 잃어버린 K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코로나가 우리 사회에 준 영향력과 파급력은 무궁무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이야기로 변주 될 바이러스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질문을 건네는 듯하다.


 

코로나로 인해 냄새를 맡을 수 없었던 K가 후각이 다시 돌아오며 맡은 건 악취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풍겨오는 악취는 때에 따라 달랐으며 장소 또한 대중없었다. 태초의 냄새가 이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후각은 K의 모든 감각을 잠식했다.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죽었어. 근데 유품 두 가지 중에 딱 하나만 골라서 가져갈 수 있대. 내 비밀 일기가 든 메모리카드랑 내가 자주 입어서 내 냄새가 밴 셔츠. 넌 뭘 가져갈래? (104페이지)


 

이 문장에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답변하자면, 친구의 비밀 일기가 든 메모리카드를 선택하지 않을까. 옷에 밴 친구의 냄새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테고, 메모리카드는 언제든 읽을 수 있으며, 친구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들여다볼 수 있지 않겠나. 짐작하기보다는 진실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맞닥뜨리면 실망할 수도,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모든 감각 중에서 냄새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개인이 느끼는 악취는 편차가 크며, 견디기 힘들 것이다. 후각이 발달돼 만남과 외출 또한 삼가며 타인에게는 예민한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

 


고양이는 후각으로 판단한다. 낯선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 옷장이나 이불 속으로 숨지만, 맡아본 냄새와 비슷한 인간이 들어오면 머뭇머뭇 다가와 발 냄새를 맡는다. 발 냄새를 맡은 후 비로소 눈을 들어 인간을 바라본다. 어떤 인간에게는 먼저 다가가 친해지고 싶다는 몸짓, 즉 꼬리를 친다.


 

식당에서 작업복 차림으로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땀 냄새난다고 투덜대지는 않았는지 떠올려본다. 버스에서 덩치 큰 남자에게 나던 시큼한 땀 냄새에 코를 막았던 때가 떠올랐다. 냄새에 민감한 사람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맡고 싶지 않은 냄새에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진다. 같은 장소에 있어도 후각의 차이는 큰 법이어서 그 괴로움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건축 현장에서 일했던 남동생이 돌아오면 땀 냄새와 흙 먼지 냄새 등이 섞여 있었다. 함께 점심을 먹던 직장 동료가 근처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온 사람을 가리키며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했을 때부터 남동생의 등짝을 때리는 것을 멈췄다.


 

인간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나던 냄새는 인간의 의식 저편에 있다가 어떠한 계기로 다시 나타나기도 하는 걸까. 후각의 유무에 따라 통찰력도 달라지는 것인가 보다. 우리가 잃어버린 삶과 그 이해를 바라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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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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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에 심은 단풍나무가 죽었다. 비가 계속 내리고 난 후부터였다. 초록색이던 나뭇잎이 거뭇거뭇해졌다. 한 달째 내리는 비 때문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 여겼다. 갈색으로 물들어있는 나뭇잎이 내년 봄이 되면 나아질 거라는 마음을 품고 있다. 겨우내 땅속에서 잘 견뎌서 내년에는 초록색 잎을 틔우길 바라고 있다.

 


씨앗에서 움튼 어린 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키 큰 나무 그늘에서 자라 큰 나무가 되어 다른 어린 나무를 감쌌다. 어느 날 두 발로 걷는 인간들이 나타나 나무들을 베었다. 밑동만 남겨진 나무에도 새싹이 나와 자라기 시작했다. 줄기는 둘이나 뿌리가 하나로 얽힌 나무는 사람에게 파괴된 적이 있었다. 나무 또한 인간을 파괴한 적이 있다.




 


장미수는 신복일과 결속하여 다섯 사람을 낳았다. 일화, 월화 금화, 목화, 목수는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금화는 쌍둥이 목화, 목수와 함께 숲속으로 갔다. 금화의 머리 위에 커다란 나무가 입을 벌리듯 기울었다. 쌍둥이는 금화를 빼내려고 했으나 커다란 나무와 금화는 꿈쩍하지 않았다. 어른들을 찾아 나섰던 목화가 다시 돌아왔을 때 목수는 나무 밑에 깔려있었고 금화는 사라졌다. 목수는 그때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해 오래도록 괴로워했다.

 


열여섯 살이 된 목화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사람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놀란 목화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을 구하라는 말이었다. 비슷한 꿈들이 이어지고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무가 지정한 단 한 사람을 구하지 않았을 때 목화는 아프기 시작했다. 신이 내린 벌이었다. 목화는 엄마 장미수와 달리 자기를 소환하는 신이 나무라는 걸 알았다. 목화와 엄마 장미수, 할머니 임천자까지 이어지는 숙명이었다.

 


할머니 임천자가 단 한 사람을 구해내는데 순응했다면, 장미수에게 신은 부당했으며 악의 없이 잔인한 존재였다. 서목화는 첫 소환부터 목소리와 동시에 나무를 느꼈다. 목화는 나무와 사람 사이의 중개로 여겼다. 임천자와 장미수, 서목화가 단 한 사람 만을 구할 때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사건을 떠올렸다. 세월호 사건과 이태원 사고였다. 그 사건에서도 주인공처럼 누군가 단 한 명을 구할 수도 있었을 거다. 모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했을 것이며, 나무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 (155페이지)


 

우리는 오늘을 산다. 내일을 위해 산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를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면 모두 자기를 위해 산다고 할 것이다. 모든 순간, 우리의 삶에 신이 개입한다면 어떨까. 삶과 죽음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맬지도 모르겠다. 내가 구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어야 할 때, 만약 누군가를 해한 사람을 구해야 할 때 거역하고 싶지 않겠는가. 오히려 인간보다 더 영원한 삶을 누릴 생명체, 식물이 인간의 삶에 개입해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지구에 나타난 여러 현상과도 맞물린다.

 


죽음에 대한 애도이면서 신화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무와 인간에 얽혀진 이야기, 대를 이어오는 삶의 책임과 무게, 신이 준 역할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는 고대 신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현재의 삶을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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