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 1~2 - 전2권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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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유혹에 견디지 못하고 젊은 남자를 탐하거나, 탄창이 비었다고 생각하고 방아쇠를 당겨 누군가를 죽게 하거나, 자기의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거짓 진술을 하는 경우 말이다. 자기에게 불리한 것을 감추는 것도 어쩌면 본능에 가까운 자기 보호일 것이다. 사건을 해결해나가면서 가장 어려운 게 진실을 숨기는 거다. 자기에게 유리한 것 만 말하고 빠져나가려고 한다. 아마 우리에게 어떤 상황이었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계적인 유명한 작가로 이름을 알린 마커스 골드먼의 새로운 활약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가장 좋아하는 친구이자 멘토인 해리 쿼버트의 사건을 함께 해결했던 페리 게할로우드 경사와 함께 다시 사건을 되돌아보는 형식이다. 11년 전, 한 여자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알래스카 샌더스는 영화배우를 꿈꾸던 젊은 여자로 미스 뉴잉글랜드 선발대회의 우승자였다. 그녀는 왜 살해되었는가. 바지 뒷주머니에 있던 쪽지는 복수로 인한 살인을 짐작하게 되고 알래스카의 남자친구인 월터 캐리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다. 차 후미등의 깨진 조각, 버려진 캠핑카 안의 스웨트셔츠에 묻은 피. 파란색 차. 모든 증거물이 월터를 가리킨다.




 


살인범으로 특정되면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인간의 심리일 지도 모른다. 용의자에게서 추가 증거를 찾고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 타인을 가리키는 새로운 증거가 나와도 알아채지 못한다. 우리의 시선은 한 곳에만 머물러 있다.


 

해리 쿼버트의 사건을 해결한 페리 게할로우드 형사를 마주하고 그가 11년 전의 사건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이 일어난 1999년과 2010년이 번갈아 가며 긴박한 상황이 펼쳐진다. 다른 한편으로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 출간된 뒤로 해리 쿼버트는 자취를 감췄다. 해리 쿼버트의 흔적을 쫓는 동시에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을 재수사를 돕는다. 경찰의 강압적인 취조에 거짓 자백을 하고 한 사람을 목숨을 잃었고 한 사람은 11년째 복역 중이었다. 타고난 능력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탐문 하던 그들은 사건의 진실에 다다른다.

 


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놓치는 게 있기 마련이다. 그들이 11년 전에 간과했던 것. 예를 들면, ‘알래스카가 무엇 때문에 마운트플레전트로 왔는지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세일럼을 떠났는지놓친 것들을 찾아야 했다. 추리소설의 장점이 진범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인간의 다양한 생존 방식을 바라볼 수 있다. 그들이 놓쳤던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찾으며 비로소 조각이 꿰맞춰진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안에 갈매기 한 마리를 갖고 있어. 쉽고 편하게 살려는 성향 말이야. 자기 안의 그런 유혹과 늘 맞서 싸워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 사람들은 대부분 군집을 이루어 살려고 하지만 자네는 달라져야 해. 자네는 작가이기 때문이야. 작가들은 외따로 떨어져 사는 존재들이야. 내 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돼. (1, 388페이지)

 

자네는 이제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할 시간이야. 재능도 있고, 끈기도 있어서 언젠가는 이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가 될 사람이야. (2, 220페이지)

 


마커스 골드먼은 조엘 디케르의 분신으로 여겨진다. 그가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은 결단력이며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다. 특유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진실을 찾는 방식도 인간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 소설 속 마커스의 멘토인 해리 쿼버트는 마커스가 직업인으로 안주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작가만의 공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커스가 작가로서 좋은 작품을 쓰기를 바랐다. 친구라는 관계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고 또한 깊은 이해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조엘 디케르의 다른 소설들처럼 흡입력이 좋았다. 사건 해결이 빠르게 전개되고, 과거에 머물고 있어 현재의 연애사에 집중하지 못하는 그를 지켜보는 즐거움도 컸다. 범인을 찾아 진실을 찾는 과정, 친구와의 우정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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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우울 - 우울한 마음에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다
이묵돌 지음 / 일요일오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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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서 우울증처럼 흔한 병이 있을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날씨가 흐릴 때 혹은 기분이 울적해지면 우리는 우울하다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괜히 그 사람의 마음을 살폈던 거 같다.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우울증의 원인이 될 것이므로.

극단적인 우울까지는 아니어도 현대 사회에 적응하려면 어느 정도의 우울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저자는 자신이 겪은 우울장애에 대하여 말한다. 우울증을 숨기기보다는 감기나, 일상적인 병처럼 드러내어 표현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보기에 우울증이라는 것은 해결하기 힘든 거로 인식한다. 하지만 저자처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면 분명히 효과를 보는 것이 있을 것 같다. 이걸 아는 사람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우울에 대한 글을 썼지만, 정작 우울증에 대한 해답은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누군가 상대방이 원하는 답을 주면 얼마나 좋겠냐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타인을 이해해보려는 마음일 것이다. 우울장애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작업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이므로 우울에서 벗어나기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우선 작가를 이해해보자. 저자가 다섯 살 때 죽은 아빠와 너만 아니었으면 내 인생은 달랐을 거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초등학교 때 엄마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혀 자살 시도를 한 후에야 병원을 나갈 수 있었다. 가정폭력과 학교에서의 따돌림과 학교폭력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우울을 극복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지금 우울해 죽겠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 의미 없이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쪽이 나았다는 정도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배타적인 태도로 주위의 모든 인간관계를 등지고, 취미와 일들을 접어버리는 얘기가 아니다. 해결해보려는 노력은 못 할지언정 날 더 우울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는 것. 내가 생각하는 빼기의 미덕이다. (209페이지)

 

우울장애를 극복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저자는 2018년 술에 취해 다량의 수면제를 삼켜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 그 무렵의 그는 진심으로 죽고 싶었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삶을 선택했다. 살아있다는 게, 숨을 쉬고 있다는 게 좋은 일이었다는 것을 느꼈기를 바랐다.

 

우울한 사람은 노력하지 않아서 문을 못 여는 게 아니다. 스스로 문을 열 수 없기 때문에 우울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우울장애라고 하는 것이다.

극도로 우울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냉철한 판단이나 문제 해결 능력 따위가 아니다. 그보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며, 믿음에 대한 되새김질이다. (220페이지)

 

하루하루 살아내다 보면 내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까. 나를 지켜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희망적인 마음을 갖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신의 우울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일 또한 중요하다. 왜 우울한 것인지 그 원인을 찾고 극복하려는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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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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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주제는 벽으로 둘러싸인 비밀의 도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구축하는 힘이다. 인간은 그것을 이루는 다른 존재와 서로 협력하며 때로는 각자의 힘으로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며 여기, 또 다른 삶이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의 존재를 이루는 몸과 영혼이 분리된다면 그 세계는 어떻게 될까. 다른 세계에서 그림자가 실제 인물을 대신하여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벽 안의 도시에 사는 인물들의 변함없는 삶은 단조로울 것 같다. 그럼에도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오늘을 살 것이다.


 

1985년에 발표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서문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하루키가 1980년 문예지에 발표한 중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한 획이며, 2023년에 4월에 발표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또한 동명의 중편소설이 확장된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다.





 

열일곱 살의 소년 는 열여섯 살의 소녀 로부터 그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는 들어가기가 어려울뿐더러, 문지기에 의해 그림자를 떼어놓아야 했다. 홀로 남겨진 그림자는 본체와 합체되지 않으면 머지않아 죽을 운명이다. 문지기 또한 그림자가 없지만, 도시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는 그 도시에서 진짜 와 만나는 상상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던 는 중년의 남자가 되었다. 진짜 를 만나고 싶었던 마음이 도시로 불러들였던 것일까. ‘는 그림자를 떼어놓고 도시의 도서관에서 꿈 읽는 자가 되었다. 도서관에 있던 열여섯 살의 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를 위해 약초차를 내주고 꿈 읽는 것을 도왔다.


 

도시 바깥으로 가려던 그림자는 웅덩이에 빠졌다. 현실세계로 돌아온 는 일하던 출판사에 사표를 내고 꿈속에서 보았던 도서관의 관장이 되어 도쿄를 떠난다. 그를 면접했던 전 도서관장 고야스 씨의 도움을 받아 관장 업무를 알아간다. 고야스 씨의 비밀을 알게 되며, ‘옐로 서브마린초록색 요트파카를 입은 특별한 소년과 가까워졌다. ‘는 휴관일인 월요일이면 고야스가의 무덤으로 가 도서관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했다. 그 후 역 근처 이름 없는 커피숍에서 블루베리 머핀과 함께 블랙커피를 마시는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옐로 서브마린소년이 도시의 지도를 건네기 전까지는.


 

소년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책을 독파해나갔다. 소년이 읽은 책 리스트는 실로 다양했다. 다양한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두었던 소년은 하나의 자립한 도서관이 될 수 있었다. 궁극의 개인 도서관. 소년은 에게 중요한 인물이었다. ‘는 소년이 다른 세계로 건너기 위한 매개체가 되었다.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 사라지며 소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나의 세계를, 또 다른 세계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고, 마음과 의식의 흐름으로 소통하는 관계에 이르렀다.


 

도시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은 영혼이 앓는 역병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쪽 세계와 안쪽 도시를 가르는 벽은 원래를 붙어있던 그림자와 몸체가 분리해야 했다. 하나의 몸체에서 분리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분리의 세계였으며 기억과 망각, 현실의 삶을 분리하는 역할을 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마찬가지로 소설에서 이름이 나오는 인물은 한정적이다. 관장 고야스 씨와 사서 소에다 씨 정도다. 그 외 인물에게는 모두 이름이 없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무의 세계, 무의 존재를 말하는 것 같다. 완전과 불완전의 세계, 몸체로 존재하지만 언젠가는 무의 존재, 즉 마음과 의식만으로 존재하게 될 세계 말이다하루키가 구축한 세계는 다른 작가에게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세계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와 혼재해 영원히 존재하는 세계다. 다만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무한히 있는 시간 때문에 어제, 오늘과 내일을 구별하지 않아도 된다. 원하는 대로 떠날 수 있는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세계다. 가상의 세계를 꿈꾸는 어른들의 판타지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함께 읽으면 더 확장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비슷한 포맷이므로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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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뛴다
유준상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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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준상을 떠올릴 때면 열정적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단면적인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여 매진한다. 아마 그의 어떤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어 그를 인터뷰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말투와 습관에서 배어나는 열정적인 몸짓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배우를 하던 이십 대 때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쓴다는 거였다. 꾸준한 습관은 성공의 지름길인가 보다. 공연하기 직전의 마음가짐과 공연을 마친 후의 느낌을 적어 노력의 발판으로 삼았던 것은 우리가 배울 점이다. 자기를 뒤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잡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나를 위해 뛴다는 배우로서 그의 노력과 열정을 엮은 글이다. 아울러 뮤지컬 바넘 : 위대한 쇼맨공연 막간에 쓴 일지가 수록되어 공연장 대기실에 있는 마음가짐을 엿보게 한다.

 


배우의 이미지가 좋아 오래전부터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내가 보았던 작품 중 기억나는 가장 히트작은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경이로운 소문이 아닐까 한다. 경이로운 소문을 볼 때 다시 한번 배우에게 놀랐다. 가모탁 역을 위해 그가 했을 모든 노력과 열정이 엿보여서다. 나이가 들었어도 젊은 배우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그의 마음이 짐작되었다. 그가 노력한 만큼의 대가로 드라마는 큰 인기를 얻었다.





 

외국의 액션 배우들의 경우 오십 대가 넘어 달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었다. 마음과 달리 몸은 나이를 거스를 수 없다는 마음이 들어서일 것이다. 배우 유준상도 나이 들어간다는 것,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는지 글 곳곳에 그런 마음이 엿보였다. 나이를 거스를 게 아니라 나이에 순응하고 그에 맞는 역할을 하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배우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었을 거로 짐작된다. 다른 배우들보다 더 열심히 연습한 결과를 나타내는 일. 아마 배우 유준상이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나는 어디에서 출발하였고, 어떤 뜻을 품고 있는지, 뜻을 어떻게 풀어가고, 어떻게 삶에 반영할 것인지 끊임없이 묻는다. 마음의 빈번과 싸워야 한다. 나이 듦에 대한 신비로움과 맞서야 한다. 부끄럽지 않게 나이를 맞이하기 위해 오늘도 힘든 몸을 이끌고 지친 영혼을 달랜다. 나를 깨우친다. 변함없이 열정적이어라. 그게 무엇이 되든 간에. (21페이지)


 

얼핏 그가 음악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은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의 음악을 들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글로 읽어 보니 한번 들어봐야겠다 싶었다. 뮤지션 유준상의 목소리는 감미롭다. 음악과 그가 만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좋다고 여기지만, 사람들이 모른다, 고 그는 말한다. 아무래도 배우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그는 창작 뮤지컬 그날들의 무대를 십 년째 오르는 배우이기도 하다. 한 작품을 십 년간 계속 한다는 것,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는 자주, ‘이제 좀 알 것 같다.’라고 말한다. 알고자 하는 거에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는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삶이 그렇지 않은가. 뭔가 좀 알 것 같다고 여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경험투성이다. 그의 아낌없는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우리가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와 같지 않을까. 세상 사는 이치를 다 알 수는 없는 법이다. 나이가 들어도 배워야 하는 것들이 많다.


 

나이를 먹으면 좋은 현상도 있다.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조금 돌아가게 되더라도 천천히 가는 여유가 생긴다. 나이 든다는 건 결국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는 삶의 통찰력을 얻게 된 것이다. (155페이지)

 


3개월간의 공연일지는 그가 공연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었다. 스스로 기운을 북돋우고 소리 훈련을 통해 공연을 위한 컨디션을 유지했다. 스스로 파이팅을 외치며 공연을 만들어갔다. ‘를 향한 응원과 격려. 우리를 위한 응원과 격려의 외침이었다.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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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사들
안 세르 지음, 길경선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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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대상으로 성 상품화하여 남자의 시선에서 쓴 소설이 많다.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편협한 인식에 피해를 본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여성은 남성의 지배하에 유린당하고 버려진다. 만약 반대의 상황이라면, 통쾌하지 않겠나.


 

남자아이들이 굴렁쇠를 쫓느라 깡충대며 발을 구르고, 여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열리는 무도회를 준비하는 듯한 텅 빈 대저택의 풍경. 이들은 가정교사다. 맞은편 저택에 있는 가정교사 이네스는 노인의 돌보라며 보내졌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이네스. 그리고 망원경으로 가정교사들을 훔쳐보는 이는 노인이다. 가정교사들은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듯하다. 지켜보는 시선에 답을 주듯 유혹의 몸짓을 보낸다. 이들이 오스퇴르 부부의 밑에서 가정교사로 일한 지 3개월이 되었다.





 


가정교사들은 정원을 가로질러 철문 안에서 밖을 지켜본다. 지나가는 남자들을 물색해다. 금빛 철문을 열고 들어오기만 하면 초원을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남자가 숲속으로 도망치면 그들은 달려간다. 덫에 걸린 사냥감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그 남자는 몸이 꽉 잡힌 채 여자들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모든 상황에 무심한 오스퇴르 부인과 그들을 지켜보는 오스퇴르 씨의 행동이 놀랍다. 권태에 빠진 부부가 선택한 가정교사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교태의 몸짓과 남자아이들의 굴렁쇠 놀이를 지켜볼 뿐이다. 그들의 광란의 기행은 오스퇴르 씨에게 강렬한 기쁨을 선사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폭탄이 이 집 위로 떨어져야 삶이 갑작스러운 전환을 맞고, 철문이 활짝 열리고, 나무들이 뽑히고 집이 자리를 바꾸면서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게 되는 걸까? (117페이지)



가정교사들은 영화 <미나리> 제작사에 의해 영화화될 예정이며, <오징어 게임>의 정호연 배우가 가정교사 중 한 명으로 캐스팅되어 화제가 되었다. 단편소설 부문 공쿠르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안 세르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 비평계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다만 욕망과 권태에 대하여 날 것의 감정을 표현했으며, 그들의 존재는 누군가의 시선이라는 것을 말했다. 노인이 망원경을 거두고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자 가장 우위에 있었던 가정교사들의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고 작아졌다. 시선의 유무와 감정의 상관관계를 표현하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시선이 존재하는 한 그 시선에 따라 힘을 갖기도, 존재할 수도 있는 모양이다.

 


이 소설을 읽은 지가 두 달 가까이 된다. 쉽게 읽은 것 같았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 리뷰를 쓰려하니 어떻게 써야 할지, 소설에서 내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두 달 동안 한글 파일을 열었다가 닫기를 여러 번. 마무리하려는 지금도 내가 했던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 이상 이 감정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관음증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는 어떤 느낌을 줄 것인지 기대해 볼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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