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루프 창비교육 성장소설 11
박서련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소년 소설은 그 시절을 지나온 어른이 쓴 소설이 대부분이다. 청소년기를 지나는 자녀를 위해 쓰는 경우도 있다. 작가가 청소년 시절에 쓴 소설은 어떨까. 청소년기를 지나며 글을 써 온 작가의 작품은 뭔가 다르다. 작가는 부끄럽다고 했지만, 현재에 썼다고 해도 좋을 소설이었다. 글 잘 쓰기로 소문난 작가가 청소년 시절부터 글을 잘 썼다는 걸 증명하는 작품이었다.

 


데뷔 전 청소년 시절에 쓴 소설 두 편을 포함해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시기를 달리하여 쓴 소설을 분리해 작가의 말을 써 소설을 썼던 시기와 작품이 내포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다양한 주제로 쓴 박서련의 소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부의 소설 세 편은 아이돌인 소녀가 어떠한 사건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으며 친구가 되고 싶은 소녀와의 이야기를 다룬 솔직한 마음과 폐업을 앞둔 극장의 딸인 의 마음이 담겨 있는 안녕, 장수극장, 좋아하는 오빠가 아빠 역할을 하는 소꿉놀이할 때 엄마가 되고 싶은 아이가 양 갈래 머리를 하고 어린이집에 갔으나 자기와 같은 머리를 하고 온 친구를 보고 껌을 몰래 붙여 놓은 엄마만큼 좋아해가 있다.

 


기억에 의존해 쓰는 이야기는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아껴두었던 기억 조각들을 소설에 풀어놓고 삶의 변주를 시작한다. 기억과 소설 속 이야기가 혼재하여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철원이 고향인 작가는 학교에서 졸다가 악몽을 꾸었던 기억과 사라져가는 옛 것들에 관한 기억을 소설에 나타냈다. 작가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고 해야겠다. 한때는 번성했던 장수극장은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잊히고 있다. 그게 아쉬워 마을 축제 때 극장에 관한 추억들을 저마다 이야기하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특별한 시간을 선사했단 각자의 추억들은 선물처럼 다가왔다.

 


2부는 상상력에 기대 쓴 작품으로 두 편의 소설이 수록됐다. 달을 바라보기만 했지 달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 것 같다. 가구 단위로 이주 지원자를 모집해 달 사람이 된 청소년의 이야기 보름지구와 타임 루프에 갇힌 한 소녀의 이야기 ---가 있다. 고백을 받아들일 때까지 무한정 계속되는 하루. 그것 또한 스트레스일 것이다. 하지만 고백을 하고 말 거라는 강한 의지가 표현되어 있었다. 고백을 하고 싶은 사람은, 고백을 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법이다. 그게 거절이든 승낙이든.

 


3부는 작가가 청소년 시절에 발표한 작품이다. 가시는 손톱에 박힌 가시가 엄마의 속눈썹이었음을 알게 되며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는 감정을 말하고, 발톱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새엄마와 함께 살아야 하는 소녀가 등장한다. 새엄마가 임신한 걸 알게 되고 목욕을 하고 나오는 새엄마의 발톱을 깎아주려는 소녀의 마음이 예쁘다. 가족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문득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가족의 탄생>이나 일본 영화 <어느 가족>이 떠오른다. 피를 나눈 사람만이 가족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함께 살면서 마음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가족이 되는 것 같다.

 


*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과 구절

-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은 안녕, 장수극장이다. 사라져가는 것에 관한 아쉬움을 담은 소설이었다. 경영이 어려워 문을 닫게 된 장수극장은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중학교 축제 시간에 인터뷰 장면을 담았던 것은 상당히 의미 있었다. 소중한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두면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 마음에 드는 구절

달에 사는 우리는 달을 향해 소원을 빌 수 없죠. 추석날 하늘에서 지구를 볼 수도 없어요. 그래서 여기서는 지구 사람들이 기념하는 명절과 똑같은 추석을 보내는 게 불가능해요. 그렇지만 그게 우리가 이 명절을 기릴 수 없다는 뜻은 아니에요. 제 생각엔... 중요한 건, 우리가 노력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같아요. 같을 수는 없지만, 노력은 해야 한다고요. (120페이지, 보름지구중에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사라지고 없다고 생각해보라.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고백루프 #박서련 #창비교육 ##책추천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청소년 #청소년소설 #청소년소설추천 #성장소설 #문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마인더스 오브 힘
콜린 후버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인 실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만약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면 극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한 사람을 죽게 했다면, 그것도 사랑하는 연인이었다면 말이다.

 


5년 동안 감옥에서 복역 후 출소한 케나 로완의 후회와 용서,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케나 로완은 모든 사건이 있었던 마을로 돌아왔다. 케나는 과거 서점이었던 술집에서 스코티의 친구 렛저 워드를 만났다. 스코티가 죽기 전에 만났다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코티의 부모 패트릭과 그레이스가 사는 집 건너편에 살면서 케나의 딸 디엠을 보살피고 있었다. 디엠을 위하는 게 어떤 것인지를 깊게 생각한다. 스코티의 부모는 케나가 디엠을 몰래 데려갈까 봐 겁나고 케나는 그들이 딸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게 슬프다.




 


전체적으로 슬픔이 짙게 깔려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이 케나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렛저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패트릭과 그레이스가 있다. 다섯 살이 되는 디엠은 자기에게 엄마가 왜 없는지, 엄마의 존재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디엠을 그리워하는 케나, 그런 케나를 지켜보는 렛저, 디엠을 뺏기기 싫은 스코티의 부모.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의 감정이겠지만 이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생각해보면 뻔한 이야기인데도 케나의 감정에 이입되어 눈물이 나왔다. 스코티를 그리워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렛저에게 향하는 마음을 거둘 수 없고, 스코티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디엠과 만나지 못하는 엄마인 케나의 입장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 예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화해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한 까닭이었다.

 


콜린 후버의 소설은 처음이다. 그런데도 오래 읽어왔던 것처럼 친근하고 인간 사회의 관계와 감정을 잘 담아낸 것 같았다. 디엠을 위해 어떤 게 최선의 방법인지 생각한다는 소설 속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케나가 감옥에서 아이를 낳아야 했을 때도 스코티의 부모가 디엠을 잘 길러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처럼.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자라서도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내 앞에 세나가 있다면 에이미처럼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보고 일자리를 줄 수 있었을까. 사랑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불가항력적인 것 같다. 케나가 스코티를 죽게한 여자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진 걸 보면 말이다. 케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패트릭과 그레이스의 마음을 움직이려 애썼던 렛저의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다.


 

로맨스 소설이 가지는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콜린 후버의 다른 소설도 궁금해졌다. 사랑과 우정, 불가항력적인 사랑, 그럼에도 삶의 애환이 녹아 있는 감정들이 살아있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리마인더스오브힘 #콜린후버 #미래지향 #REMINEDERSOFHIM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영미소설 #영미문학 #로맨스소설 #로맨스소설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랑데부 - 이 광막한 우주에서 너와 내가 만나
김선우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랑데부라는 제목이 좋았다. 김선우라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가를 검색해보니 화가라고 했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작가들 외에 내가 화가를 아는 이름이 얼마나 있던가. 스스로 날기를 포기해 멸망한 도도새를 작품 속에 그리는 화가가 김선우다. 그가 그린 그림이 궁금했고, 그가 그림을 그리며 했던 생각들을 엿볼 수 있을까 싶어 읽게 된 책이다.

 


김선우 작가를 말하자면,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연 최연소 화가이며, <모리셔스 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작품이 서울옥션에서 11,500만 원에 판매되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작가다. 랑데부라는 뜻과 너무 어울리는 제목이다. 작가의 그림을 보고 글을 읽으며 랑데부하는 느낌이었으니까.





 

그의 그림에서 도도새를 본다. 지금은 멸종하고 없는 상상의 새. 날지 못하는 새는 바닷속, 혹은 숲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그림에서 아련함을 느낀다. 그리움의 감정이 짙게 배어 있다.


 

저는 갑갑한 현실을, 자유로운 새가 날개를 잃고 인간의 몸속에 갇힌 새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했습니다. (27페이지)

 


김선우 작가는 작품을 이해하는 방법을 말한다. 어떤 예술가의 작품이 이해가 되지 않고 더 깊이 교감하고 싶으면 작가노트를 찾아보라고 했다. 작가노트는 작품이 태어난 근본적인 시작점이자 결말인 동시에 그 결말 이후의 이야기에 대한 예언이라고 했다. 미술작품을 볼 때 작가가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을 설명으로 읽고 그림을 보면 마음속 깊이 들어온 느낌을 경험한 것처럼 말이다.


 

도도새는 작가의 작품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별을 품에 안고 있는 도도새, 저 멀리 보이는 반짝이는 별, 바다에 누워서 유유히 수영하는 도도새. 새끼들을 달고 나는 도도새도 있다. 불안과 방황의 시간을 거치는 모든 순간이 담겨 있는 모습들이다. 때로는 외롭고, 멀리 떠난 낯선 장소에서의 시간도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으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삶은 어쩌면 캄캄한 바닷속으로 던져지는 것과 다름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표류하고 방황하게 되지만, 바로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직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을 대하는 목적과 용기를 얻게 되는 게 아닐까요. 삶의 비극 앞에서 당당하게 대적했던 니체의 한마디처럼요. (127페이지)


 

니체를 좋아한다는 작가의 말이다. 삶이란 거친 파도와 같다.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일들 때문에 고민하고 방황하지만 결국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그림일 수도 있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

 


 

#랑데부 #김선우 #흐름출판 ##책추천 #에세이 #에세이추천 #예술에세이 #미술에세이 #화가김선우 #문학 #한국문학 #한국에세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원, 은, 원
한차현.김철웅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겟 아웃을 모티프로 한 소설 늙은이들의 가든파티의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작가의 작품 중에 자주 나오는 한차연이 역시 주인공이다. 한차현 작가는 SF와 인간 복제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건넨다. 미래지향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해도 좋겠다.


 

은원만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은원은 어디 있을까.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엇을 하기에 며칠째 전화 한 통 못 받고 있는 것일까. (17페이지)


 

스물아홉 살 청년 한차연은 물류센터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다섯 살 연상의 은원을 만났다. 만난 지 600일 기념으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뒤 은원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은원이 다니던 회사에도 출근하지 않았고, 은원이 살았던 집은 일상의 냄새가 그대로 배어 있었다. 다만, 은원만이 사라졌다. 은원의 유일한 친구 성이연을 찾아갔다가 의외의 인물을 만나고, 모든 기억을 잃은 은원을 병원에서 다시 마주했다.


 

은원은 정말 은원일까. 기억만이 사라졌을 뿐 예전 은원과 같은 사람일까. 차연이 혼란스럽다. 또는 두렵다. 은원을 다시 만난 이후로 하루 또 하루, 어느결에 나쁜 풀처럼 싹트고 자라고 번진 혼란이다. 곁에서 걱정해주고 격려해주는 친구들이 눈치챌까 봐 혼란스러운 두려움이다. (133페이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는 인간을 위해 장기기증을 하는 클론이 나오는 작품이다. 인간을 위한 도구처럼 이용하는 걸 보며 상상력의 산물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들었었다. 은원, , 에서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돈을 들고 찾아오는 인간들을 위해 인간 복제를 하는 내용이다.


 

죽은 딸을 다시 살리기 위해 복제에 성공했다면, 그 아이는 나의 딸일까, 아닐까. 몇 번의 복제 실패로 딸을 살리겠다는 희망을 잃고 인간의 존엄을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은원이 내가 알던 은원이 맞는 건지 의심하며 소설은 새로운 전환점에 서게 된다.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 인간의 위치는 위협을 받을지도 모른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고, 인간의 목소리를 그대로 구현하는 AI의 등장은 썩 반갑지만은 않은 것처럼. 작가는 이 작품을 가리켜 연애소설이라고 했지만, 연애소설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연애소설이기 전에 인간의 존엄성을 묻는 소설이다. 인간과 똑같은 복제인간을 사랑하게 된 차연. 사랑했던 은원과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던 일련의 과정으로 다시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은연중에 배운 과거 은원의 삶을 그대로 살아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니 연애소설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감정이라는 것도 배우는 거라는 걸 다시 실감한다. 영화감독 김철웅과 함께 쓴 소설이라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은원은원 #한차현 #김철웅 #나무옆의자 ##책추천 #소설 #소설추천 #문학 #한국문학 #한국소설 #SF소설 #연애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도 #최진영 #한겨레출판

 

불법 쓰레기 같은 남자가 어두운 밤거리를 걷는다. 여관 간판을 보자 등을 돌렸다가 다시 여관으로 들어선다. 그를 부르는 목소리. 그와 마지막을 함께 보낼 공간이다. 여관에 들어서서 벽에 기대앉아 지난 삶을 반추한다. 여섯 살의 기억, 물을 마시고 죽은 아버지, 이후 산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시절. 고아원의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작 원도에게는 무심했던 어머니.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라는 가르침을 주었던 산 아버지의 기억이 그를 짓누른다. 피할 수 없는 기억 중에 죽은 아버지가 있었고, 유경이 있었으며 그녀가 있었다. 그의 기억 속 버튼 하나로 원도를 박살될 시소가 있었으니 장민석이라는 존재다.


 

장민석은 고아원의 아이였다. 부모가 있었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아원에 맡겨졌던 아이. 바른말과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아이였다. 장민석이 원도와 같은 반찬을 싸오면서 관계는 비틀어진다. 의식했지만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까. 이후의 원도는 장민석을 미워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장민석이 원도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겉잡을 수 없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자기에게 무심했던 엄마가 장민석에게는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 싫었다. 창을 내다보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 심한 질투를 불러일으켰다. 그 장면을 몰래 지켜보는 원도를 상상해보라.




 


그가 아닌 장민석을 선택했던 그녀 때문에 원도는 상처받았다. 장민석을 더 미워하게 되었다. 마치 장민석이라는 존재는 있어서는 안 될, 그의 모든 것을 훔친 인간으로 비쳤을 것이다. 원도는 왜 살아 있는가, 왜 죽지 않았는가에 대한 고민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 이유를 탐색해보는 과정이었다.


 

나는 왜 살아 있는가.

이것이 아니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이다. (80페이지)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은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처럼 비친다. 탐탁치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상한 짓 하면 절대 안 된다.’던 여관 주인의 말을 흘려들으며 바지를 고리로 만들어 목을 밀어 넣던 그를 발견해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그때까지도 그는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죽기 직전에야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많은 작품에서 보아왔던 케이스다. 원도는 어떻게든 살고 싶은 이유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살 힘을 얻기 위해, 왜 죽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을 하고 또 했을 것이다.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을까. 십일 년 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소설은 중고 서점에서 정가의 서너 배가 넘는 가격으로 판매될 정도로 사람들이 찾아 읽던 도서였다. 이 책을 찾는 독자들 또한 왜 죽지 않았는가, 그 이유를 알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살고자 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최진영이라는 작가의 글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진영 작가의 행보를 마치 걸음을 걷듯 밟아온 독자로서 원도의 복간 소식은 반가웠다.


 

원도는 끊임없이 묻는다. 왜 사는가, 왜 죽지 않았는가. 답을 찾으려 길을 헤매는 그를 붙잡는 건 질문에 대한 답을 기다리는 당신이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당신 곁에 있는 우리. 살고자 붙잡는 존재. 살아갈 힘을 얻는 존재 때문이었다. 나를 기다리는 존재 때문에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그러므로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원도 #최진영 #한겨레출판 #나는왜죽지않았는가 ##책추천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문학 #하니포터 #하니포터8#개정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