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 살다
손명찬 지음, 김효정(밤삼킨별) 사진.손글씨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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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과 아름다운 사진을 만난다는 건 큰 행복이다. 글로 인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사진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평소의 난 소설을 더 많이 읽으며, 소설 속에서 다른 사람의 생을 알아가지만, 가끔씩 읽는 에세이의 아름다운 글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이번에 나의 마음을 빼앗은 책도 밤삼킨별의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저자 손명찬의 짧은 생각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저자의 짧은 글은 시 같기도 하고 그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생각들이 조각조각 나타나 있는 것 같았다. 무릇 글이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상상속에 피어나는 소설도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고,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그 글들은 독자로부터 외면을 당하기 마련이다. 책을 읽는 밤시간동안 좋은 글을 발견하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SNS에 메모하는 애정까지 보였다. 그만큼 내 마음을 사로잡은 글들이었다.

 

 

책속의 글들이 특별히 마음속에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아무래도 자신이 처한 상황, 주변 환경,책을 읽는 분위기, 그 순간의 느낌이 아주 큰 작용을 해 글들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올 것이다. 사진이 아름답다며 읽기 시작한 책에서, 글들이 빛을 발했다. 글에 교감하고, 책에 교감하는 순간이었다.

 

 

 

짧은 글들이기 때문에 그만큼 여백이 많은 글들이다. 작가의 마음이 들어 있는 짧은 글 속에서 작가가 느꼈던 생각들을 만날 수 있었다.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인생을 다시 사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한다. 작가도 힘든 일을 겪어서 인지, 고통 속에서 나오기까지 힘겨운 시간을 견뎌내서인지, 그의 글들은 피상적이지 않았다. 그의 진심이 들어 있었다. 그의 진심은 책을 읽는 우리 마음에까지 와 닿았다. 닿음, 이라는 말을 막상 써놓고 보니 이게 맞는 단어인가 한참을 들여다 본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에 내 진심이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일 필요할까, 문득 생각해본다. 나는 진심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에게 닿지 않을때, 내 생각보다 서서히, 너무도 더디게 닿을때 느끼는 안타까움이 생각났다. 또는 저자가 썼던 짧은 글들 중 '내려 놓음'이라는 제목에도 눈길이 간다.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했고, 또한 가지고 있다. 물건 뿐만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누군가의 마음에서 떠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때로는 내려놓음도 필요하지만, 적절한 순간에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을 발견하기도 한다. 말이건, 마음이건, 내려놓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걸, 나는, 요즘, 새삼, 느끼고 있다.

 

 

생각들이 모여 숲을 이루면

그 속에 오솔길을 하나 만들어두세요.

그리고 생각이 복잡해지면

언제든 그리로 들어가 산책하세요.

들어서서 차분히 걷기만 하면 됩니다.

'나'를 만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길을 걷다보면 분명해집니다.

생각의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습니다. (66페이지, 생각의 중심)

 

생각의 중심 속에 요즘 내가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각들이 참 많은 요즘이다.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위의 글에서처럼, 생각들이 모여있는 숲 속 오솔길을 조심스럽게 걷고 있다. 마음이 갈수록 침잠해지나, 그 길 속에서 나를 만나고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사람일까 싶다. 아는 사람일까 가까운 사람일까. 곁으로 다가가는 사람일까 곁에서 떠나가는 사람일까. 새로운 만남의 사람일까 추억속의 사람일까. 아무래도 사랑한 사람을 더욱 사랑해야겠다. 더늦기 전에 사랑할 사람 수를 좀 더 늘려야겠다. 얼른, 사랑 속도를 좀 더 올려야 겠다. (130페이지, 아무래도 더 사랑해야겠다, 중에서)

 

 

밤에 책을 읽다가 발견한 문장들이다. 지금의 내 마음을 너무도 대변하는 문장이었기에 이 문장들을 SNS에서 남겼다. 위의 문장들에서처럼 내 자신에게 하고 있는 질문들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있어서 사는게 행복하다고 느꼈지만, 또한 그 사람들 때문에 아파하는 내 모습이 보여 나는 최근에 이 질문들을 머릿속에 계속 담고 다녔었다. 해답을 찾지 못해 계속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 조각들이다. 생각들은 조각조각 흩어졌다가도 다시 모여들고, 다시 흩어지기도 했다.

 

 

그렇다. 방법은 저자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 수를 늘리고 내 사랑의 속도를 올리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아름다운 별, 지구라는 별에서 나 또한 여행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사랑스러운 날들일 것이며, 내가 생각하는 만큼 행복할 것인 아름다운 별에서 나는 또하나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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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PD의 미식 기행, 여수 - 제대로 알고 마음껏 즐기는 오감 만족 우리 맛 여행
손현철.홍경수.서용하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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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하면 버스커버스커의 '여수밤바다'라는 노래가 떠오르듯, 여수에 관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책을 만났다. 바로 『세 PD의 미식 기행, 여수』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사실 내가 사는 곳과 여수가 먼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자주 가본 곳은 아니었다. 여수를 맨처음 가본게 언제였던가. 중학교 2학년때 수학여행을 떠나 여수 오동도를 들렀을 때였을것이다. 어렸을 적이라 그때의 여수 오동도는 어마어마하게 크게 보였다. 하지만 다시 가본 오동도는 너무 아담했다. 그만큼 우리가 자랐다는 것이고, 우리의 눈높이가 커졌다는 것일게다.

 

 

그리고 가본게 7~8년전쯤 크리스마스 이브때 갑자기 일출을 보러가자며 떠난 곳이 여수 향일암이었다. 퇴근하고 출발했던터라 막 밟아 다녀온 뒤 속도위반 딱지가 두 개나 나와 출혈이 심했던 기억이 있다. 그곳 향일암 근처 민박에 숙소를 잡고, 내 생일이 가까워 아들 녀석이 학원에서 만든 케이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새벽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러 향일암에 올랐었다. 일출을 보고 난뒤 하룻밤 묵었던 민박집 식당에서 이른아침 게장 백반을 먹었다. 원래 가족들이 간장게장을 좋아해 자주 먹긴 했지만 여수 향일암 숙소에서의 간장게장은 정말 꿀맛이었다. 다른 곳과 다르게 우리집에서나 여수 향일암 게장은 주로 돌게로 담는다. 크기가 작아 먹을게 별로 없을 것 같지만, 게딱지 하나씩을 발라 그곳에 밥알을 넣어 비벼먹는 맛은 뭐라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아침을 게장 백반으로 먹고 여수를 구경하다가 시장통에 들어가서 또 점심을 먹은게 게장이었다. 먹고 너무 맛있어서 몇만 원어치 사가지고 오기도 했다.

 

이처럼 여수에 관한 추억은 게장 때문에라도 다시 가고싶은 곳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가본건 여수 금오도의 비렁길이었다. 그때는 도시락을 준비해 가 산 속에서 점심을 먹고 부랴부랴 배를 타고 나와야 했기 때문에 다른 음식은 먹어보지 못해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어딘가에 가족끼리 여행을 다닐때 그 지방의 음식을 사 먹기 보다는 바리바리 챙겨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 지방 고유의 음식을 맛보지 못한다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다. 먹을거리 짐 없이 가볍게 떠나자고 해놓고도 여행을 준비하다보면 기본적인 먹을거리를 준비하게 된다. 또 돈도 절약할 겸 준비해 간 음식을 먹는 것이다.

 

 

 

『세 PD의 미식 기행, 여수』는 제목 그대로 KBS 방송국의 세 명의 피디들이 여수의 미식 기행을 떠난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을 때 거의 배고플 때 읽었는데,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있는 음식 이야기, 음식 사진들을 보며 침을 꼴깍 삼키며 보았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간장 게장, 집 근처에 있는 갯장어 샤브샤브를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채소가 들어있는 육수에 갯장어르 넣으면 꽃처럼 하얗게 피어오르던 갯장어가 몹시도 먹고 싶어졌다. 책을 다 읽자마자 먹으러 가자고 해야지, 한여름인데 한겨울에 나오는 생굴은 또 왜 먹고 싶은건지, 아마 책 속에 있는 굴 사진과 굴 이야기 때문이었으리라. 각굴을 구워먹는 것보다 생굴을 더 좋아하는터라 몹시도 겨울이 기다려졌다.

 

서대회는 또 어떤가. 싱싱한 서대를 잘라 접시에 내어 놓으면, 그것을 매콤한 겨자에 찍어먹으면 그것 또한 맛이 고소하니 너무 좋다. 서대회가 목포 쪽에서 많이 나오는 생선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여수에서 많이 나오는 회이며 음식이라고 하니 여수에서도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군평선이라는 생선은 우리가 딱돔이라고 부르는 생선이 아닌가 싶다. 가시가 크고 많아 살을 잘 발라야 하는 것과 사진에서 보는 군평선이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물론 내 생각이 틀릴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군평선 소금구이 맛도 궁금하다.

 

 

나는 목포에서 십 대와 이십 대를 보냈다. 그래서 목포 음식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안다. 신안 섬 출신이라 생선이나 회를 좋아하고 아무래도 그쪽 음식이 더 입맛에 맞다. 세 분의 PD들이 목포 편 미식 기행 책도 펴냈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았기에, 목포 편이 사실 더 궁금하다. 목포의 어떤 음식들을 소개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은 여수에서 나오는 음식들보다 거의 목포에서 나오는 음식들이다.

 

 

여수 편에서 나오는 서대회 같은 경우도, 내 개인적 취향은 회무침을 한 음식보다는 깨끗한 회 그 자체를 좋아한다. 매운탕 보다는 지리를 더 좋아하기도 하고. 갓 김치 또한 여수 돌산 갓 보다는 재래 우리가 조선 갓이라 부르는 갓김치를 더 좋아해 김장할때마다 담아 먹고는 한다. 나에게 회는 민어회 만한 게 없다. 여름에 친정 부모님 생신이 한 달 차이로 있어서 두 분 중의 한 분의 생일 때는 늘 민어회를 주문해 민어회와 민어탕을 먹어야 여름을 나는 것 같다. 이 또한 여수와 목포 출신의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랄까.

 

 

여수엑스포가 열린 뒤로 여수를 방문하지 못했다. 여수의 구석구석, 섬 까지도 다니며 음식 기행을 한 세 피디들 덕분에 여수 곳곳의 음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다음 여수 여행때는 이 모든 음식을 몇 가지씩 꼭 사 먹어 보리라 다짐까지 했을 정도다. 책에서 소개하는 소설가 한창훈 씨가 여수 출신이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거문도에 실제 거주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거문도는 멀리서만 바라보고 가보지는 못했는데, 소설가가 계시는 거문도에 가서 삼치회를 맛보고 싶기도 하다.

 

여수의 음식 들을 소개하며 여수의 역사, 문헌 속에 나오는 여수의 음식들 이야기를 들으며, 여수로 음식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책 속에서 소개하는 음식점들과 맛을 책으로 보다는 여수에서 직접 만나고 싶었다. 음식 기행으로 된 책을 만나니 여수의 새로운 모습을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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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호랑이가 온다
피오나 맥팔레인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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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노부부가 서로 의지하고 살아간다는 건 커다란 행복인것 같다. 공원을 걸을때나 길을 걸을때 노부부가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걸 보면 참 좋아보이는 것이 그런 이유이기도 할것이다. 칠순이 넘은 시부모님은 시골에서 생활하시는데, 그나마 부부가 같이 계시니까 며느리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안심할 수가 있다. 하지만 만약 혼자 살고 계신다면, 건강은 괜찮으신지 자주 전화도 드려야 하고, 자주 찾아 뵈어야 할 일이다.

 

 

처음 『밤, 호랑이가 온다』라는 제목을 보았을때, 추리소설이 아닌가 했다. 칠십이 넘은 노인이 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호랑이가 거실을 걷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꿈이려니 했지만 주인공이 느끼는 것은 꿈이 아니었고, 실제 거실에 호랑이가 있었던 느낌이 들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호랑이가 나타나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타났을때, 호랑이가 더 자주 보인다는 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뭔가를 노리고 온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었다. 호기롭게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책을 읽어갈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불편해져 왔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생길수도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루스는 칠십이 넘은 할머니로 바닷가의 별장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자식들은 아들 둘이 있지만,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어느 날 밤, 잠을 자다가 호랑이 소리를 듣고, 아들 제프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다가 깬듯한 목소리였고,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루스의 말에 꿈을 꾼게 아니냐고 말을 건넸다. 제프리의 행동은 어쩌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들이기도 했다. 밤에 잠을 자다가 전화벨소리가 울리면 나이 드신 부모님들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깨게 된다. 어딘가라도 아프시나 하고 귀기울여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지만, 호랑이가 나왔다는 어머니의 말에 아마도 꿈을 꾼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게 우리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프리다라 불리우는 덩치가 큰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정부에서 보낸 요양사라고 하며 매일 오전 두 시간씩 루스 곁에 머물며 루스의 삶을 뒤흔들어 놓는다. 루스가 느끼는 프리다는 다정했고, 집안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깔끔하게 청소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외로웠던 루스는 프리다의 다정함이 마음에 들었고, 매일 그녀를 방문해 곁에 머무는 것이 좋았다. 프리다가 루스의 집에 왔어도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정글의 냄새와 킁킁거림, 정글의 열기는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점점 기억들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토록 깔끔했던 루스는 어느날엔가 머리가 가렵다는 것을 느끼고 몇 주일 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매일 아침에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던 프리다가 사실은 둘째 아들 필립의 방에서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프리다에게 자신의 집에서 나가라고 하지만, 프리다는 루스가 그녀의 집에서 머물도록 허락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억을 믿을 수 없고, 프리다도 믿을수 없어졌다. 하지만 어느샌가 자신의 모든 기억들이 뒤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프리다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졌다.

 

 

 

 

나이 먹은 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벗이라고 한다. 외로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말벗 만큼 그들이 덜 외롭게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시골에서 혼자 사는 노인분들에게 사기를 쳐도 그분들이 자꾸 사기를 당하는 것은 알고도 그러는 것이라고 할 정도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마음을 훔쳐 물건을 강매하고가도, 외롭기 때문에, 물건을 팔기 위해 애교를 부리고 웃음 짓고, 노래를 불러주는 게 싫지 않다고 한다.

 

 

이처럼 루스도 외로움을 견디기에 프리다가 싫지 않아 그녀를 곁에 머물게 했을 것이다. 루스에게 일어난 일들이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어쩌면 어딘가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외로운 노인 곁에 머물면서, 노인을 도와주는 척 하며 마음을 훔쳐 또는 다른 것을 훔쳐 달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멀리서 안부 전화만 했던 자식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전화로 나누는 말 속에서 별일 없으려니 하는 건 자식들의 생각뿐일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한동안 멍해 있었다.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고, 어쩌면 이러한 결말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했지만, 오래도록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아직 젊은 작가인데도, 모호해지는 기억들 속의 파편들,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이에 대한 노년의 마음을 정교하게 표현해 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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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빛나거나 미치거나 - 전2권
현고운 지음 / 테라스북(Terrace Book)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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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기를 읽는 일은 역시 즐겁다. 내 사랑이 아니어도, 내가 못다한 사랑을 다시 하는 듯한 느낌을 갖기 때문에 한번씩 로맨스 소설을 읽어줘야 한다. 이런저런 일로 딱딱해진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일도 로맨스를 읽는 일이다. 로맨스 소설을 한 번씩 읽고 나야지 세상을 사랑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사랑 밖에 난 몰라가 되는 식이다.

 

현고운이 돌아왔다!

현고운 작가를 알게 된 것이 오래전 일요 아침 드라마로 방송되었던 『1%의 모든 것』이었다. 로맨스 소설을 드라마화한 것인데, 일요일 아침을 설레고 즐겁게 만들어 주어서 일요일 아침마다 기다렸던 드라마였다. 드라마가 재미있어 소설도 읽었고, 그 후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어왔다. 작가의 작품은 다 좋았다. 다만 몇 년전에 출간된 『아내를 구하는 4가지 방법』만은 예외였다. 현고운 작가 소설이 맞나 싶을 정도여서 실망을 했었다. 하지만 고려시대의 역사물로 돌아온 현고운 작가의 신작을 읽으면서, 역시, 실력이 어디가지 않았구나, 다시 현고운 소설로 돌아왔구나 싶었다. 여전히 설레고, 여전히 미소지으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로 쓴 이야기는 역사물로 고려의 네 번째 황제인 광종(왕소)의 이야기이다. 광종에게 부인이 두 명 있으며, 두 명의 부인과의 혼인 모두 족내혼(대목황후는 이복누이, 경화궁부인은 조카)이었다. 광종과 대목황후에게는 혼인후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후에 태어난 아들(경종, 제5대 황제)이 있었다. 작가는 이 점에 착안하여 광종에게 좋아하는 여인이 따로 있었을 것이라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작품이다.

 

조선의 왕들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알지만, 고려의 왕들은 왕건 외에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신랑은 고려 왕들도 순서대로 다 외우고 있더라만). 잘 기억하지 못하는 고려의 왕들 중 광종, 즉 왕소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물론 역사적 사실외에 그의 개인적인 감정, 행보 등을 아는 일은 소설적 장치로써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 낸것과도 같았다. 책의 시작은 태조 왕건이 재위하고 있던 시절, 첫째 황자 왕무(혜정)에게 다음 황위를 물려주려 하는 와중에, 제국의 가장 위대한 황제가 될수도 있었을 왕소가 장자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며 왕소에게 조의선인의 수장으로서의 신물을 내린다. 조의선인을 움직일수 있는 수장의 신물인 흑패를 왕소에게 준건 다음 황제를 잘 보필해달라는 황제의 뜻이었다.

 

위나라때부터 수도였던 개봉의 한 상단. 중원에서도 이름난 상단의 양딸인 신율은 오라비 양규달이 왕야의 양딸을 건드려 오라비를 살려주는 조건으로 왕야의 부하인 곽장군과 혼인을 해야할 처지가 되었다. 신율은 혼인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려의 사내와 혼인을 먼저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에 신율을 보살펴 온 백묘 할멈은 저잣거리에서 신율 아가씨의 신랑감을 물색한다. 사내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납치라도 해야할 판이다. 상단에서 일하는 장백산과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신랑감을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사내를 발견하고는 그를 납치하기에 이른다. 수면향으로 그를 납치해 와 그에게 혼례복을 입히고 잠에서 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숙부 왕식렴이 보낸 자가 아니란 것에 안도하고, 어린 소녀가 가짜 혼인을 해달라며 거래를 하려 한다. 가짜 혼인만 해주면 그가 원하는거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가족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어린 소녀가 자신처럼 외로운 사람처럼 보여 혼인을 하게 되었다. 혼례식이 끝난후 그는 신율에게 혼인은 계약 종료되었으니 자신을 잊으라 말하며 그녀의 입술에 짧은 입맞춤을 했다. 떠나는 그에게 신율은 행운의 부적이라며 작은 비단 주머니를 건넨다.

 

개경 정주의 한 저잣거리. 돈깨나 있어보이는 집안의 도령 행색으로 그곳을 지나던 신율에게 젖먹이 아이를 안고 있는 한 여인을 사라며 가격을 부른다. 노비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사람을 살고 파는 것을 싫어하지만 딱해보며 흥정을 하고 있을때, 역시 정주의 저잣거리를 자신의 흥정을 바라보는 한 사내를 발견했다. 개봉에서 그녀가 납치한 사내가 그곳에 있었다. 드디어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찾았다. 그들의 인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소설속에서 남장여자 나오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데, 이는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독자들도 그런것 같다. 남장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커피 프린스 1호점』도 그렇고,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았나. 이 책에서는 다른 이들은 신율이 저잣거리를 다닐때는 남장하고 다닌다는 걸 다 알고 있지만, 왕소만 모르는 것이다. 왕소는 여자애처럼 볼이 발갛고, 하얗고 말간 얼굴을 한 신율이 당연히 남자라 여기고 신율과 닿았을때 가슴이 쿵쿵 뛰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왕소는 신율에게 의형제를 맺자며 형님이라 부르라 한다. 왕소가 오래전에 장난처럼 가짜 결혼식에 응해줬던 그 소녀라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말이다.

 

 

역사속 인물을 로맨스 주인공으로 내세웠음에도 과하지 않았다. 마치 물 흐르듯 정쟁의 한복판에 서기도 하고, 혈육간의 황위를 위한 싸움에서도 고려를 원하는게 진정 어떤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련의 로맨스 소설에서의 결말은 해피앤딩이다. 그것도 결혼하고 아이낳고 잘 살았습니다, 같은. 물론 이 소설도 해피앤딩이지만, 소설속에서 신율은 그가 황자이므로, 황실의 사람이므로, 황실속에 속하고 싶지 않아했다. 그저 그를 사랑하는 한 여인으로 남고 싶어 했다. 어쩌면 이럴수도 있었으므로

 

초기작의 느낌으로 다시 돌아온 현고운의 소설을 읽으며 고려의 제4대 황제인 광종과 그의 숨겨진 여인 신율에 대한 러브스토리를 읽으며 며칠동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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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의 계절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바버라 킹솔버 지음, 이재경 옮김 / 비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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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신랑과 함께 텃밭에 다녀왔다. 신랑이 바쁜 직장생활을 하며 주말에만 겨우 다니는 텃밭이라 나는 이 주만에 가 보았는데, 텃밭은 거의 풀밭이 되어버렸다. 흙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유기농 텃밭을 가꾸겠다며 제초제를 쓰지 않았더니 생긴 폐해였다. 또한 작년에 비해 고추 또한 병이 들어서 빨갛게 익어가면서 물러져 떨어져 버리고 있었다. 100주 이상의 고추 모종을 심었는데 막상 수확의 계절이 다가와 병들어 있는 고추들을 보니 안타까워 견딜수 없었다. 생태도 좋지만 벌레를 잡는 약을 했어야 하나 싶었다.

 

 

고추는 포기하고 노랗게 익은 참외만 한 포대 따 왔다. 우리가 먹으려고 이것저것 심어 유기농으로 키워 수확을 보는 일은 즐겁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밭에서 얻으면서 자연의 생태에 피해가 가지 않은 한에서 과일 등을 수확한다는 일은 큰 기쁨이다. 구입해서 사 먹을 때와 우리가 직접 기른 과일을 먹는 일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토마토나 참외와 고추 수확의 차이점을 보며 자연을 지킬 것인가, 조금쯤은 포기할 것인가 고민이 되기도 했다. 이에 나는 작품 속 주인공들의 자연을 고스란히 지키기 위해 애썼던 세 여성들의 생각들이 들어있는 『본능의 계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생태주의 작가이자 과학저널리스트, 생물학자 또는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바버라 킹솔버의 『본능의 계절』은 생태주의를 표방하는 그녀의 주장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작품이었다. 작품속 배경은 미국의 남부 애팔레치아 산맥의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세 여성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포식자들' 속의 주인공 디아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깊은 산속의 통나무집에서 은둔하는 야생동물 연구가이다. 디아나는 산림감시원으로 일하면서 코요테의 흔적을 쫓다가 역시 코요테를 추적하는 젊은 남자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다른 이유로 테를 추적하는 추적자와 먹이사슬 중에서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코요테의 삶은 별다를게 없었다. 디아나는 은 남자를 향한 마음을 감출수 없었지만 그로 인해 고뇌하는 자신의 삶이 달갑지않았다.

 

'나방의 계절'에서는 도시에서 곤충학자였던 루사가 시골의 농장 후계자와 결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콜이 죽어버리고, 아무도 그곳에서 남아 있지 않을것이라는 가족들 즉 콜의 누이들 틈에서 남아 점점 농장생활에 적응해가며 그녀의 삶을 사는 이야기이다.

 

 

 

'옛날 밤나무'에서는 오래전에 밤나무를 연구했지만 병으로 다 죽고 다시 새로운 종의 밤나무를 키워보겠다는 괴팍한 노인 가넷의 이야기이다. 가넷은 옆집에 사는 내니의 유기농 사과를 키우겠다며 자신의 농장과 내니의 농장 사이의 잡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곳에 제초제를 뿌리려 한다. 그로 인해 두 노년의 내니의 가넷은 다투면서도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이처럼 세 이야기가 교차 진행되지만, 세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저마다 조금씩 연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관계가 조금씩 얽혀져 있는 것과 그들의 자연의 생태환경을 생각하는 깊은 관심과 애정을 엿볼수 있었다. 그들의 자신의 상처를 자연 속에서 찾았고, 자연속에서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만 살아갈 수 없는게 또 인간 사이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간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지만, 또 인간 관계에서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 이처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람과 화해하는 모습에서 자연속에서 위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오늘에 감사하고, 새들이 안전히 둥지에 깃든 것에 감사하고,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인생에 감사합니다. (435페이지)

 

 

제목만 보면 19금 스러운 내용이 가득할 것으로 보인다. 표지도 마찬가지였고, 『본능의 계절』이라는 제목 때문에 밖에 나갈때 책 표지를 따로 입혀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었다. 물론 산림감시원인 디아나가 산속에서 혼자 생활한지 2년이 넘었고, 자신보다 거의 이십 년 차이가 나는 젊은 남자를 보고 욕정을 느껴, 달이 차오를 때마다 자신이 여성임을 느껴 그를 원했던 내용은 자주 있었지만 그것도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달이 기울고 달이 차오르듯 디아나의 육체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 변화가 자신에게 찾아왔을때 숙명처럼 디아나는 받아들였고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

 

이 또한 자연의 섭리인것을. 자연의 위대함, 자연의 소중함. 생태 환경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까지. 우리는 생태주의를 외치는 주인공들의 삶을 보며 우리의 삶을 뒤돌아 볼 시간을 갖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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