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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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주제는 벽으로 둘러싸인 비밀의 도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구축하는 힘이다. 인간은 그것을 이루는 다른 존재와 서로 협력하며 때로는 각자의 힘으로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며 여기, 또 다른 삶이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의 존재를 이루는 몸과 영혼이 분리된다면 그 세계는 어떻게 될까. 다른 세계에서 그림자가 실제 인물을 대신하여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벽 안의 도시에 사는 인물들의 변함없는 삶은 단조로울 것 같다. 그럼에도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오늘을 살 것이다.


 

1985년에 발표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서문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하루키가 1980년 문예지에 발표한 중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한 획이며, 2023년에 4월에 발표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또한 동명의 중편소설이 확장된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다.





 

열일곱 살의 소년 는 열여섯 살의 소녀 로부터 그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는 들어가기가 어려울뿐더러, 문지기에 의해 그림자를 떼어놓아야 했다. 홀로 남겨진 그림자는 본체와 합체되지 않으면 머지않아 죽을 운명이다. 문지기 또한 그림자가 없지만, 도시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는 그 도시에서 진짜 와 만나는 상상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던 는 중년의 남자가 되었다. 진짜 를 만나고 싶었던 마음이 도시로 불러들였던 것일까. ‘는 그림자를 떼어놓고 도시의 도서관에서 꿈 읽는 자가 되었다. 도서관에 있던 열여섯 살의 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를 위해 약초차를 내주고 꿈 읽는 것을 도왔다.


 

도시 바깥으로 가려던 그림자는 웅덩이에 빠졌다. 현실세계로 돌아온 는 일하던 출판사에 사표를 내고 꿈속에서 보았던 도서관의 관장이 되어 도쿄를 떠난다. 그를 면접했던 전 도서관장 고야스 씨의 도움을 받아 관장 업무를 알아간다. 고야스 씨의 비밀을 알게 되며, ‘옐로 서브마린초록색 요트파카를 입은 특별한 소년과 가까워졌다. ‘는 휴관일인 월요일이면 고야스가의 무덤으로 가 도서관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했다. 그 후 역 근처 이름 없는 커피숍에서 블루베리 머핀과 함께 블랙커피를 마시는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옐로 서브마린소년이 도시의 지도를 건네기 전까지는.


 

소년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책을 독파해나갔다. 소년이 읽은 책 리스트는 실로 다양했다. 다양한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두었던 소년은 하나의 자립한 도서관이 될 수 있었다. 궁극의 개인 도서관. 소년은 에게 중요한 인물이었다. ‘는 소년이 다른 세계로 건너기 위한 매개체가 되었다.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 사라지며 소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나의 세계를, 또 다른 세계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고, 마음과 의식의 흐름으로 소통하는 관계에 이르렀다.


 

도시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은 영혼이 앓는 역병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쪽 세계와 안쪽 도시를 가르는 벽은 원래를 붙어있던 그림자와 몸체가 분리해야 했다. 하나의 몸체에서 분리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분리의 세계였으며 기억과 망각, 현실의 삶을 분리하는 역할을 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마찬가지로 소설에서 이름이 나오는 인물은 한정적이다. 관장 고야스 씨와 사서 소에다 씨 정도다. 그 외 인물에게는 모두 이름이 없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무의 세계, 무의 존재를 말하는 것 같다. 완전과 불완전의 세계, 몸체로 존재하지만 언젠가는 무의 존재, 즉 마음과 의식만으로 존재하게 될 세계 말이다하루키가 구축한 세계는 다른 작가에게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세계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와 혼재해 영원히 존재하는 세계다. 다만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무한히 있는 시간 때문에 어제, 오늘과 내일을 구별하지 않아도 된다. 원하는 대로 떠날 수 있는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세계다. 가상의 세계를 꿈꾸는 어른들의 판타지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함께 읽으면 더 확장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비슷한 포맷이므로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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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뛴다
유준상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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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준상을 떠올릴 때면 열정적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단면적인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여 매진한다. 아마 그의 어떤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어 그를 인터뷰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말투와 습관에서 배어나는 열정적인 몸짓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배우를 하던 이십 대 때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쓴다는 거였다. 꾸준한 습관은 성공의 지름길인가 보다. 공연하기 직전의 마음가짐과 공연을 마친 후의 느낌을 적어 노력의 발판으로 삼았던 것은 우리가 배울 점이다. 자기를 뒤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잡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나를 위해 뛴다는 배우로서 그의 노력과 열정을 엮은 글이다. 아울러 뮤지컬 바넘 : 위대한 쇼맨공연 막간에 쓴 일지가 수록되어 공연장 대기실에 있는 마음가짐을 엿보게 한다.

 


배우의 이미지가 좋아 오래전부터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내가 보았던 작품 중 기억나는 가장 히트작은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경이로운 소문이 아닐까 한다. 경이로운 소문을 볼 때 다시 한번 배우에게 놀랐다. 가모탁 역을 위해 그가 했을 모든 노력과 열정이 엿보여서다. 나이가 들었어도 젊은 배우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그의 마음이 짐작되었다. 그가 노력한 만큼의 대가로 드라마는 큰 인기를 얻었다.





 

외국의 액션 배우들의 경우 오십 대가 넘어 달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었다. 마음과 달리 몸은 나이를 거스를 수 없다는 마음이 들어서일 것이다. 배우 유준상도 나이 들어간다는 것,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는지 글 곳곳에 그런 마음이 엿보였다. 나이를 거스를 게 아니라 나이에 순응하고 그에 맞는 역할을 하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배우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었을 거로 짐작된다. 다른 배우들보다 더 열심히 연습한 결과를 나타내는 일. 아마 배우 유준상이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나는 어디에서 출발하였고, 어떤 뜻을 품고 있는지, 뜻을 어떻게 풀어가고, 어떻게 삶에 반영할 것인지 끊임없이 묻는다. 마음의 빈번과 싸워야 한다. 나이 듦에 대한 신비로움과 맞서야 한다. 부끄럽지 않게 나이를 맞이하기 위해 오늘도 힘든 몸을 이끌고 지친 영혼을 달랜다. 나를 깨우친다. 변함없이 열정적이어라. 그게 무엇이 되든 간에. (21페이지)


 

얼핏 그가 음악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은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의 음악을 들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글로 읽어 보니 한번 들어봐야겠다 싶었다. 뮤지션 유준상의 목소리는 감미롭다. 음악과 그가 만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좋다고 여기지만, 사람들이 모른다, 고 그는 말한다. 아무래도 배우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그는 창작 뮤지컬 그날들의 무대를 십 년째 오르는 배우이기도 하다. 한 작품을 십 년간 계속 한다는 것,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는 자주, ‘이제 좀 알 것 같다.’라고 말한다. 알고자 하는 거에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는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삶이 그렇지 않은가. 뭔가 좀 알 것 같다고 여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경험투성이다. 그의 아낌없는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우리가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와 같지 않을까. 세상 사는 이치를 다 알 수는 없는 법이다. 나이가 들어도 배워야 하는 것들이 많다.


 

나이를 먹으면 좋은 현상도 있다.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조금 돌아가게 되더라도 천천히 가는 여유가 생긴다. 나이 든다는 건 결국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는 삶의 통찰력을 얻게 된 것이다. (155페이지)

 


3개월간의 공연일지는 그가 공연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었다. 스스로 기운을 북돋우고 소리 훈련을 통해 공연을 위한 컨디션을 유지했다. 스스로 파이팅을 외치며 공연을 만들어갔다. ‘를 향한 응원과 격려. 우리를 위한 응원과 격려의 외침이었다.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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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사들
안 세르 지음, 길경선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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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대상으로 성 상품화하여 남자의 시선에서 쓴 소설이 많다.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편협한 인식에 피해를 본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여성은 남성의 지배하에 유린당하고 버려진다. 만약 반대의 상황이라면, 통쾌하지 않겠나.


 

남자아이들이 굴렁쇠를 쫓느라 깡충대며 발을 구르고, 여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열리는 무도회를 준비하는 듯한 텅 빈 대저택의 풍경. 이들은 가정교사다. 맞은편 저택에 있는 가정교사 이네스는 노인의 돌보라며 보내졌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이네스. 그리고 망원경으로 가정교사들을 훔쳐보는 이는 노인이다. 가정교사들은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듯하다. 지켜보는 시선에 답을 주듯 유혹의 몸짓을 보낸다. 이들이 오스퇴르 부부의 밑에서 가정교사로 일한 지 3개월이 되었다.





 


가정교사들은 정원을 가로질러 철문 안에서 밖을 지켜본다. 지나가는 남자들을 물색해다. 금빛 철문을 열고 들어오기만 하면 초원을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남자가 숲속으로 도망치면 그들은 달려간다. 덫에 걸린 사냥감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그 남자는 몸이 꽉 잡힌 채 여자들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모든 상황에 무심한 오스퇴르 부인과 그들을 지켜보는 오스퇴르 씨의 행동이 놀랍다. 권태에 빠진 부부가 선택한 가정교사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교태의 몸짓과 남자아이들의 굴렁쇠 놀이를 지켜볼 뿐이다. 그들의 광란의 기행은 오스퇴르 씨에게 강렬한 기쁨을 선사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폭탄이 이 집 위로 떨어져야 삶이 갑작스러운 전환을 맞고, 철문이 활짝 열리고, 나무들이 뽑히고 집이 자리를 바꾸면서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게 되는 걸까? (117페이지)



가정교사들은 영화 <미나리> 제작사에 의해 영화화될 예정이며, <오징어 게임>의 정호연 배우가 가정교사 중 한 명으로 캐스팅되어 화제가 되었다. 단편소설 부문 공쿠르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안 세르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 비평계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다만 욕망과 권태에 대하여 날 것의 감정을 표현했으며, 그들의 존재는 누군가의 시선이라는 것을 말했다. 노인이 망원경을 거두고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자 가장 우위에 있었던 가정교사들의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고 작아졌다. 시선의 유무와 감정의 상관관계를 표현하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시선이 존재하는 한 그 시선에 따라 힘을 갖기도, 존재할 수도 있는 모양이다.

 


이 소설을 읽은 지가 두 달 가까이 된다. 쉽게 읽은 것 같았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 리뷰를 쓰려하니 어떻게 써야 할지, 소설에서 내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두 달 동안 한글 파일을 열었다가 닫기를 여러 번. 마무리하려는 지금도 내가 했던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 이상 이 감정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관음증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는 어떤 느낌을 줄 것인지 기대해 볼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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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
하재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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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서야 표지 속 사진이 보였다. 현재의 딸과 과거의 엄마 사진이 맞닿아있었다. 엄마가 엄마이기 전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딸은 다음 챕터에서 여성학과 젠더에 대하여 논한다. 여성 작가의 책을 예로 들어가며 성차별이 가져오는 문제를 돌아본다. 과거의 여성, 엄마들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일들의 불합리함을 현재의 여성들에게 일깨운다. 현재의 여성들은 왜 그렇게 살았느냐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들의 시절에는 당연하게 여겼다. 결혼하기 전에는 한 집안의 딸이었던 엄마가 며느리이자 아내, 엄마가 되면서 자유의지는 빛을 잃었다. 이 글을 쓰기 전 엄마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작가는 엄마에게 질문을 하면서 비로소 엄마를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딸이 엄마를 기억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 방법을 알기 전 엄마가 돌아가셔서 안타깝다. 엄마랑 함께 여행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닐 여유가 생겼는데 엄마는 계시지 않는다. 딸의 시선으로 엄마의 삶을 기억하려는 작업은 엄마를 이해하는 작업과도 같다. 삶이 바빠 엄마와 소원했던 시간을 지나 육성으로 듣는 엄마의 삶을 이해하는 시간이자 영원히 간직될 엄마의 기록이다.





 

작가인 딸이 엄마가 자라온 삶을 듣는다. 어른들의 선택으로 아빠와 결혼하게 된 엄마가 겪어야 했던 일들. 가족이라는 이름 뒤에 자행되는 또 다른 폭력이었을 수도 있다. 사랑했던 할머니의 행동을 엄마의 육성으로 들으며 갈등해야 했을 입장도 이해가 된다.

 


기나긴 문학사에서 소수자인 여성 작가의 책을 읽었더라면, 버지니아 울프의 선언처럼 여성이 글을 쓸 수 있으려면 먼저 집 안의 천사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천사와 괴물 둘 다 죽이는울프적인 행위로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더라면, 그리하여 여성 작가가 되는 것은 저 다락방의 미친 여자들로부터 이어져온 계보의 말단에 나를 위치시키는 일임을 깨달았더라면 나의 삶과 글은 달라졌을까? (73페이지)


 

유년 시절부터 살아온 집과 그리운 시절에 관한 이야기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먼저 읽으며 작가가 가진 집에 관련된 기억의 편린에 공감했다. 좁은 집에서도 안방을 차지한 할머니와 자기만의 공간이라고는 부엌뿐이었던 엄마를 기억하는 방법이었다. ‘엄마의 삶을 경청하고 해석하고 감응하려는 작업이라고 표현했으며 엄마의 삶을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해석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여성학적 측면에서 엄마의 삶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순응하며 살아왔던 과거의 삶이었다면 지금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이야기는 단지 우리의 과거, 경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이거나 해방일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 (14페이지)


 

오래전에 엄마가 건강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자매들과 자주 이야기한다. ‘엄마가 그때 그랬어.’ 때로는 아빠 원망도 해보지만, 어쩌겠나. 이미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 것을. 엄마의 기록이 사진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음성으로 된 것들을 남겨 놓았으면 좋을 뻔했다. 후회되는 것들이 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았던 날들을.

 


할머니, 어머니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삶에서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들의 언어는 숨겨졌고, 그것이 마음을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말을 한다는 것은 자기를 표현하는 일이다. 누구의 엄마도 아닌 누구의 아내도 아닌 한 사람으로 존재하며 경험했던 이야기들은 오늘을 살아야 할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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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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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은 오래도록 슬픔에 침잠해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모든 장소, 모든 순간에 사랑했던 사람이 마치 환영처럼 떠오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희미해져 조금씩 일상에 적응한다.


 

몇 달 전 시어머니 사십구재 때 시누이가 날아가는 새를 보고, 엄마가 오셨나보다고 하길래 의외라고 여겼었다. 당신 남편이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도 새가 날아와 남편이 인사하러 왔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시누이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여동생이 엄마 산소에 벌초하러 갔다가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든 걸 보고 우리 엄마 왔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김달님의 에세이에서도 나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연달아 잃은 작가의 가족들이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모든 순간에 찾아온 것들을 보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왔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이어져 온 건 모르겠으나 우리는 사랑했던 사람이 우리 곁에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리움의 새로운 표현 방법이다.





 

나는 그런 게 좋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가 어떤 삶들과 함께 살아가는지 구체적으로 감각하게 되는 순간이. 내가 모르는 인생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찾아오던 놀라움과 부끄러움. 그와 동시에 또렷하게 생겨난 삶에 대한 애정과 의지가. (91페이지)


 

작가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그 말을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니라 새겨듣고 글로 나타낸다. 사람 사는 이야기 듣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내가 모르는 인생을 듣고 발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힘을 얻기도 한다. 우리가 모르는 삶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친구들과 방콕에 갔던 부분이 있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할머니를 매일 보러 다니다가 훌쩍 떠났던 방콕 여행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는 내용이었다. 친구들과 여행 가서 함께 함께 콘서트를 보고 그 여운을 함께했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친구들과 외국 여행 갔던 게 생각난다. 다녀와서도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면 그때였기에 가능했던 일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은 있으나 각자의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하고 때로는 이별도 한다. 영원한 사랑이 없듯 영원한 우정이 없을 수도 있다.

 


작가에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커다란 산 같은 존재였나 보다. 전작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말하는 것 같다. 사랑했던 분이라 상실감이 컸을 거로 생각된다. 지금도 그리워하는 감정이 느껴져 책을 읽는 나도 애틋해졌다.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퇴근 시 알람을 맞춰두고 이어폰을 꺼내 두 시간을 함께한다. 음악 듣는 게 좋다. 좋아하는 음악이 있으면 구매하여 보관해두고 듣는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작가도 라디오로 시작하는 하루를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사람들이 보낸 사연을 듣고 있으면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여기게 된다. 동 시간대에 어떤 장소는 비가 내리고 어떤 장소는 해가 쨍쨍,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토론토에서 혹은 유럽에서 듣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장소에서 각자의 감정으로 한 곡의 음악을 들으며 위로받는 시간. 왜 라디오를 듣는지 그 이유가 드러나는 글이었다.


 

타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와 다르지 않은 삶에 안심하는 것 같다. 오히려 힘을 얻는다고 해야겠다. 상실의 슬픔도, 삶의 기쁨도 누군가와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을 글에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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