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이는 가로수가 무슨 나무야?

회화나무.

그럼 그 길로 그냥 쭉 걸어와. 그러면 회화나무 가로수가 끝나고 버드나무가 시작되는 곳이 있을 거야. 세 번째 버드나무 아래서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103페이지)


 

소설 속 연인이 나누는 대화 같다. 저자가 세 번째 버드나무 아래에서 기다린다고 한 줄 알았으나 나무를 잘 아는 저자에게 친구가 한 말이었다.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하고 찾아가는데 길치인 저자가 헤매고 있을 때 친구가 보이는 나무를 물어보고 가까운 나무 아래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거다. 소설 속 문장처럼 아름다운 풍경이다. 인사동에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대부분 간판을 보고 찾아가게 된다. 그렇지만 저자는 어떤 나무인가를 말해야 이정표 삼아 찾게 된다.


 

숲을 걷는 것을 좋아하고 풀과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저자의 책이다. 국립수목원에서 일하고 있어서 나무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나타내는 것보다는 독자들을 나무들과 풀꽃을 이용해 초록의 숲으로 이끈다.


 


 

 

산골에서 살았던 저자는 들과 숲이 놀이터였다. 엄마를 따라 일하다가, 숲속에 들어갔다가 풀과 나무들을 보고 이름을 기억했고, 그 이름을 잊지 않았다. 지금도 저자는 포도를 따고 나물을 캐다가 꽃비를 맞는가 하면, 부모님의 못자리를 돕다가 산에 올라 졸참나무며 상수리나무, 굴참나무의 꽃가루를 마주한다.


 

늦잠을 자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가지 못하자, 뒷산에 올라 숲속의 식물들을 바라본다. 야생화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산 초입의 계곡 주변으로 현호색을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갈퀴현호색의 향기보다 못하지만, 그 향기가 좋다는 현호색이 궁금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휴대폰을 옆에 두고 책에서 언급한 식물들을 검색하며 읽었는데, 현호색의 색감이 내가 좋아하는 색이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식물들의 이름을 알게 되면 볼 때마다 반갑다. 풀 속에서도 찾게 되고 발견하면 더할 수 없이 기쁘다. 오래전에는 알지 못하던 나무와 풀꽃들의 이름을 지금은 조금씩 기억하고 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니 저절로 알게 되었다. 가로수로 사용되는 나무, 꽃에 관심을 가지니 그런 것 같다.

 


숲과 나무에 관한 이야기만 한 게 아니다. 부모님을 도우며 느꼈던 것들과 어렸을 적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것들에 대한 기억을 말했다. 잔잔한 글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그중의 하나가 우리 집 사용 설명서. 시골에 가야 해 집을 며칠 비워야 하는데, 친구가 주말에 집을 쓰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하며 집 사용 설명서를 썼다. 다정다감한 성격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현관 자물쇠의 잠금 방향과 가스레인지 한쪽이 고장 났다는 것, 집에 바퀴벌레가 나온다는 것, 보일러 사용법 등을 적었다.


 


 

 

그런 세심한 성격이 풀꽃을 보고 혼자서 관찰해오다가 쇠뿔현호색이라는 신종을 학계에 발표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관찰하고 즐겼던 결과다.


 


 

 

대구에서 강원도 횡성군 둔내로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는 인상적이다. 시외버스는 중간에 휴게소에 내려 십여 분을 쉬게 되는데 한 남자가 출발할 시각이 다되어 들어왔다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다시 나갔다. 지갑을 찾을 수 없었던지 주머니를 계속 뒤지는 듯 동전 소리가 났다. 조용히 만원권 두 장을 빼 주머니에 넣고 그 사람의 옆자리로 갈 타이밍을 쟀다. 용기를 내 그 사람 옆자리로 가 돈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이 만원을 건넸다. 언젠가 만원권은 있는데 동전이 없어 바꿔 달라고 했다가 도움을 받고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에게 베푼 것이다. 그 빚을 갚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는 마음 씀씀이가 아름다웠다.


 


 

 

늦겨울 학교 운동장을 돌다가 몽당연필을 발견하고 어릴 적 아버지가 깎아주시던 몽당연필을 떠올렸다. 산골이라 학용품이 여유롭지 못해 쓰던 공책의 나머지 부분을 새로 만들어 주시던 아빠. 연필을 직접 깎아주셨고, 몽당연필이 되면 볼펜에 끼워 쓰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걸 보며 나도 어릴 적 몽당연필을 쓰던 때를 떠올렸다. 연필을 잃어버려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아이들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들. 지금은 사무실에서도 몽당연필은 그냥 버리게 되던데,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처럼 유리병에 모아두었던 몽당연필들도 어쩐지 아름다운 정경처럼 보였다.


 

책 속에서 식물 이름을 거론할 때 그 식물의 사진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에 책에 나왔던 식물 사진이 가나다순으로 수록되어 있어 무척 반가웠다. 내가 알고 있는 식물과 그렇지 못한 식물들의 이름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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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11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무 이야기 몽당연필 이야기. 다 좋네요 ~ 역병이 좀 잠잠해지면 여유롭게 어디든 가고 싶어지게 만드네요 *^^*

Breeze 2021-08-18 09:06   좋아요 1 | URL
정말요. 어디든 나다니고 싶습니다. ^^
 
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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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책을 처음 읽은 후가슴을 울리는 문장들에 반했다단편도 좋지만장편이 더 좋은 나는 작가들의 장편을 기다린다그것도 자주목마른 사람처럼 자꾸자꾸 기다린다최은영의 소설이 그랬다첫 장편 소설이라는 점도 좋았다.


 

여성 서사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나부터 우리 엄마엄마의 엄마인 할머니할머니의 엄마까지대부분 엄마의 엄마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소설은 많은데 할머니의 엄마까지는 그 대상에 든 적이 드물다할머니가 우리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할머니도 한때는 엄마를 애타게 찾는 아이였고 할머니에게도 엄마가 존재했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지연은 이혼 후열 살 무렵 할머니의 집에 갔었던 기억을 가지고 희령으로 향한다마침 희령에 소재한 천문대 연구원을 구하고 있었다자기의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다잘못한 건 남편이었는데 이혼하는 걸 바라지 않고 남편을 두둔하는 아빠와 엄마를 피해 멀리 달아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가까운 사람이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경우였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가끔은 그런 상상을 한다. (14페이지)

 


퇴근 후 동네를 산책하다가 한 할머니를 만났다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미소 짓던 분이었다자신의 손녀딸과 닮았다며 딸의 딸 이름이 이지연이라는 것과 딸 이름은 길미선이라고 했다자신과 엄마의 이름이었다열 살 때 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지연이 무슨 이유로  20년이 넘도록 왕래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던 장면이었다할머니를 알아보지 못하였다면 딸과 왕래를 하지 않았다는 건데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 의문이 들게 했다.

 


어색함을 뒤로하고 약속을 정하여 할머니 집에 갔다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미소 짓는 두 여성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지연은 할머니의 엄마즉 증조모와 얼굴이 닮아 있었다그때부터 할머니에게서 할머니의 엄마 이야기를 듣는다증조모는 백정의 딸로 태어나 광복이 되기 전결혼하지 않는 처녀를 구하러 다니는 군인들의 눈을 피해 증조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증조부는 양인 신분으로 할머니의 당찬 모습이 좋아 보였고백정의 딸이라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옛날 여성들은 옳지 않아도 옳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였고자신이 참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성격이라는 건 은연중에 드러나기 마련이다도저히 참지 못하겠다고 여기는 순간 발현되는 것이다백정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토록 다정하게 대해주던 이웃 사람들도 증조모를 수군대며 없는 사람 취급했다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새비 아주머니 덕분이었다새비 아주머니는 증조모에게 삼천이라고 불렀고 서로 다정하게 대했다가족 때문에한국전쟁으로원하지 않는 이유로 이별을 하게 되며 서로 더 애틋해졌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함께해 온 여성들의 이야기다새비와 삼천이의 우정을 이어오며새비의 딸과 삼천이의 딸인 할머니그리고 그 딸들과딸들의 딸 이야기다. 4대의 여성을 통해 질곡의 역사를 건넌다.


 

상처를 치유하려고 향했던 희령에서 할머니의 엄마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려고 했고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대부분 타자가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화자를 달리하여 말한다면 이 소설은 지연이 할머니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독자에게 들려주는 식이다그러니까 할머니가 할머니의 엄마를 부를 때는 우리 엄마고새비는 새비 아주머니삼천이는 증조모로 칭한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신이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을 때 자식에게 그것을 대물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견디기 힘들어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 참고 인내한다옳지 않은데도 그것을 자식에게까지 바란다는 것이 문제다바람피운 지연의 남편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게 했을 지연을 질책하는 것처럼자신도 버거운 경험을 했음에도 딸에게도 같은 걸 바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나는 기억되고 싶을까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82페이지)

 


첫 문장부터 이 책에 빠질 거라는 걸 예감했다할머니에게로 이어진 여성들의 삶이 슬펐다이들의 삶이 안타까웠고 그들의 바람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무엇보다 그 시간을 함께 건너온 새비와 삼천이의 우정이 애틋했다안녕을 바라면서도 처지가 달라 연락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정도 마음이 아팠다.


 

살아가면서 새비와 삼천이 같은 친구가 있는 것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친구 지우에게는 할 수 있었듯 단 한 사람의 친구면 충분했다새비와 삼천이처럼그들 혹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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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 꿈 백화점 2 - 단골손님을 찾습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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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꿈을 꾸었을 때발이 떨어지지 않아 도망가야 하는데 도망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서 있었을 때가 있었다그때의 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안했다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두려움을 안고 있어야 할 때다어느 때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가야 할 곳을 헤맨 적도 있었다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도 있다꿈에서 깨어 비로소 안심하는 경우다.


 

만약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꿈을 꾼다면 자기 눈으로 보았던 장면들이 나타나지 않을까그리운 사람들기억 속의 풍경들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꿈속에 찾아와 그를 과거로 데려갈 것 같은데꿈속에서조차 앞이 보이지 않다면 그것처럼 막막한 것도 없을 것 같다그런 그가 느끼는 감정은 그저 그로 봐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앞 못 보는 사람이 아닌 박태경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페니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근무한 지  1년이 넘었다일한 지  1년이 지나면 달러구트님과 연봉 협상할 수 있으며국가에서 내주는 꿈 산업 종사자가 되어 컴퍼니 구역에 갈 수 있다꿈에 부풀어 있는 페니에게 다른 사람들은 민원관리국에 가고 싶지 않다며 말한다어딜 가나 민원 부서는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이들은 꿈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고 싶다백화점에서 눈꺼풀 저울로 꿈값을 받는 것도 다양한 감정들이다컴퍼니 구역을 갈 수 있는 열차와 매점에서는 자양강장제로 월요병 치료제를 팔기도 한다월요병 치료제 뚜껑엔  ‘오늘만 출근하면  3일 연휴라고 상상하면서 들이키세요.’, 또는  ‘부장님이 오늘 출근을 안 한다고 상상하면서 들이키세요.’ 라고 되어 있다.


 


 

 

페니가 달러구트 님과 함께 민원관리국에서 받아온  3단계 민원이  792번 단골손님의  ‘왜 저에게 꿈까지 뺏어가려고 하시나요?’페니는 달러구트 님과 연봉협상을 할 때 올해 계획으로 발길을 끊은 단골손님을 되찾겠다고 했었다. 그 결과로 6년 전 사고로 앞을 못 보게 된 손님이 꿈에서조차 앞이 보이지 않는 날이 생겨 그의 큰 즐거움을 앗아간 민원을 해결해 보기로 했다.


 

루시드 드리머였던 한 여성은 스무 살이 지나자 꿈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다른 사람처럼 기억하지 못했다꿈속이 즐거워 학교에 가지 않는 휴일에는 좁은 방 안에서 내내 잠만 자도 좋았던 그녀였는데 말이다지난 시절 꿈속에서의 일이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 일까봐 두렵고 슬펐다달러구트는 파자마 파티를 기획하고 초대장을 전달하는데전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은퇴 후 무기력증에 빠진 여성이 그 한 명이었다.


 


 

 

페니가 초대장을 전달하기 위해 방문한 녹틸루카의 세탁소는 추억 결정이 박힌 벽의 빨랫줄에 빨랫감을 비추면 추억들이 내뿜는 빛에 빨랫감을 말릴 수 있는 곳이었다.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포근하게 달래주는 힘이 있는 장소였다.

 


지난날 미래를 향해 달렸던 날들의 기억그리움 가득한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을 갖게 하는 꿈 설계자들의 이야기까지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상상의 세계에 빠지게 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꿈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 1권이 사람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는 의도였다면 두 번째 작품은 삶의 희망을 갖고 현재를 즐기라는 의미가 강하게 느껴졌다아픈 기억잊고 싶지 않았던 기억힘든 과거였을지라도 그 순간이 가장 소중했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을 강조했다. 소중한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훨씬 풍성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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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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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혼을 집어넣은 건축물은 건축가의 마음이 담겨 있는 법이다. 건축설계에서부터 살고 싶은 집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 마음이 투영된 건물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집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는 문이다. 안과 밖을 경계하는 것 중의 하나가 문이고 손잡이다. 건축을 이루는 자재 중 문과 문손잡이에서도 그 마음이 드러난다. 안과 밖의 경계에서 들어갈 수 있는 것과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있다. 집 안과 집 밖의 건축 자재가 다른 이유와도 같다.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들어오지 않는 것, 들어오지 못하는 것을 등 뒤에 남기고 자기만 안에 들어간다는 얘기니까. (336페이지)


 


 

 

대학을 졸업한 사카니시 도오루는 존경하는 무라이 슌스케의 설계사무소에 편지를 썼다. 졸업작품으로 만들었던 휠체어 생활이 가능한 소형주택 플랜을 동봉하였고, 몇 년 동안 신입사원을 뽑지 않던 사무소에 입사하게 되었다. 매년 여름이면 기타아오야마의 사무소는 반쯤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고 아오쿠리 마을에 있는 여름 별장으로 이동한다.


 

무라이 설계사무소가 신입사원을 뽑은 건 국립현대도서관건립을 앞두고 설계 경합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슌스케를 비롯해 여름 별장으로 옮긴 직원들은 그동안 추진해왔던 업무를 진행함과 동시에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작업도 함께 시작한다. 여름 별장의 분위기는 물 흐르듯 고요하다. 어수선하지 않다. 고요한 숲속에서 각자의 맡은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건축물을 설계할 때 건축물을 이루는 전체적인 아우트라인을 잡고 세세한 것들은 나중에 하는 게 아니라 의자나 책장의 재질 및 모양을 동시에 작업하고 있다. 작업 진행 상황을 직원들과 공유하고, 이용하는 사람에게 불편함이 없어야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들과 경합을 벌이는 후나야마가 도서관 관계자의 시점에서 공간을 구획한다면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이용자들의 동선에 맞게 설계한다는 점이 달랐다. 즉 그것을 누구에게 맞추느냐에 따라 건축물이 달라진다는 것을 표현하는 장면이었다.

 


집을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설계할 때 불이 잘 나지 않을 집, 지진에 무너지지 않을 집, 그런 것에 가능한 한 신경쓰지. 그것이 건축가에게는 중요하거든. 그렇지만 말이야, 만일에 도쿄 전체가 전부 불타버리는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내 집만 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건 좀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아. (202페이지)

 


사카니시는 30년 전의 슌스케를 추억한다. 여름 별장이 있던 아오쿠리 마을. 새벽에 눈을 떠 선생님이 나가시던 모습을 떠올리고, 식사를 준비하여 직원들과 나눠 먹었던 것. 새들의 소리로 이름을 알아맞히고 숲속의 소리에 귀 기울였던 시간이었다. 스물세 살의 사카니시가 세 살 연상의 마리코를 좋아하면서도 유키코와는 편한 관계를 이어오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작가 노미야 하루에를 만나고 돌아오는 어두운 밤길에 보았던 반딧불이의 초록빛 항연은 숲속의 아름다움이 제대로 표현되었다.

 


 

 

건축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건축물은 자신의 이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몇 달에 걸쳐 실측하고 설계도를 그렸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건축설계를 한다는 것은 분명 자부심이 있을 테니 말이다.


 

건축물에 대한 애정. 건축을 배우는 사람의 자세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건축가의 마인드를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한적한 여름 별장의 풍경이 그려지고, 그 공간에서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의 회상에서 가슴 가득히 스며드는 감정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읽은 작품은 더 아름답다.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다워서 자꾸 눈물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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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다섯 마리의 밤 -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채영신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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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오래전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추운 밤에 개를 끌어안고 잤대. 조금 추운 날엔 한 마리, 좀 더 추우면 두 마리, 세 마리 ……. 엄청 추운 밤을 그 사람들은 개 다섯 마리의 밤이라고 불렀대. (209페이지)


 

추울 때 동물을 끌어안아 본 적 있는가. 털로 뒤덮인 동물과 몸이 맞닿아 있으면 저절로 온기가 생긴다. 개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덮어 보호하려고 한 경우도 많다. 추운 밤, 개를 끌어안고 자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을 생각해보게 되고, 여기, 개 다섯 마리의 밤이 필요한 주인공들이 느꼈을 추위 혹은 고통을 생각해보게 된다.


 

 

 

박혜정은 폐가에서 진행된 살인 재연 장면을 보고 아이들에게 친절했던 권 사범이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의문이다. 권 사범이 죽인 아이들은 모두 박혜정의 아들 세민을 심하게 괴롭혔던 아이들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알비노인 세민을 못살게 굴었다.

 


알비노에 대한 것들을 아이들을 통해 전하는 사람이 세민과 같은 반, 안빈의 엄마였다. 안빈엄마는 백화점에서 일할 때 박혜정을 알게 되었으며, 그녀를 안쓰럽게 여겨 가까이 지냈다. 동네 아파트가 비었을 때 이사까지 하게 했으나 몇 달 가지 않아 뼛속 깊이 후회했다. 세민과 안빈이 같은 반이 되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아들이 자꾸 세민에게 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학예회 때 연극을 하기로 했는데 세민이 대본을 만들기로 했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장인 안빈을 제쳐두고 감독까지 한다고 하니 교사까지 싫었다.

 


안빈엄마는 자기가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해 아이는 어떻게든 자기와는 다른 삶을 살길 바랐다. 그래서인지 가진 자들을 질투했고, 안빈 보다 더 나을 게 없다고 여겼던 세민을 미워했다. 안빈엄마는 아들을 닦달하고 자매 같았던 박혜정과도 멀어졌다.


 


 

 

소설은 학교 폭력, 허위사실 유포, 성폭력, 종교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아픈 언니를 두고 엄마가 했던 행동에 왜 박혜정은 가만히 있었는지. 누구보다 그 상황에서 탈출해야 했음에도 그 집에서 머물렀는지 답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될 수 없었다. 언니만 아프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삶도, 자기도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지 고민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기억일 뿐이었다.

 


세민이 요한이라고 부르는 권 사범이 속한 종교도 그의 어머니도 또 다른 폭력의 역사다. 아이를 위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어디까지인지 의문이 들게 했다. 아이가 죽고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자 형의 현신이라며 대하면 누구라도 힘들어했을 것이다. 세민이 그들이 찾는 성별자임이 틀림없다고 여기는 것이나 휴거나 구원을 기다리는 그들의 종교는 그저 폭력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성별자가 변제할 어린 양이라는 사실을 감쪽같이 감추고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려고 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녀는 손바닥을 살짝 오므렸다. 피가 손금을 따라 진득하게 흘러 내려와 손바닥 한복판에 고여 들었다. 그녀는 물끄러미 그 피를 쳐다보았다. 엄마에게 그 질문을 던지던 순간 아들이 떠올렸던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꼭 한 가지를 없앨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면 세민은 무엇을 없애고 싶을까. 그 나이에, 열두 살밖에 안 된 나이에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고 싶은 걸 곰곰이 궁리했을 아들을 떠올리자 온몸의 피가 싹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39페이지)


 

박혜정이 아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어떻게든 보상받을 줄 알았다. 물론 여기에서 보상은 정신적인 것을 가리킨다. 세민이 종교인들을 손님이라며 환대했던 것처럼, 그들이 구원을 바랐던 것처럼, 박혜정에게도 어떤 영향이 미칠 것 같았다.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 아들에게 모든 걸 말할 줄 알았다. 아들에게 진실을 말하므로써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부풀었던 것 같다.


 


 

 

작가는 상당히 냉정했다.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았다. 그저 그들에게 찾아온 고통만큼이나 그것을 겪게 했다. 구원이란 그들에게는 너무 멀었다. 작은 온기마저 내주지 않았다. 그게 슬펐다.


 

. 인터넷 서점에서 보이는 카드뉴스는 상당히 참신했다. 소설의 내용을 아우르면서도 지금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다른 아이를 험담하고 아들을 닦달하는 어떤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게 했다. 여태까지 보았던 어떤 홍보보다 재미있었다. ‘지금까지 이런 카드뉴스는 없었다....’로 시작하는 유행어가 떠오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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