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안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문실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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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만큼 복잡한 관계도 없다. 평생 다시 보지 않을 거라고 떠났던 사람들도 결국 돌아오는 곳이 가족의 품이다. 이 세상에서 타인 말고 나를 품어줄 유일한 것이 가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가족의 형태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창비교육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테마소설이 우정을 테마로 한 소설과 함께 출간되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작가 정지아를 비롯해 손보미, 황정은, 김유담, 윤성희, 김강, 김애란의 단편을 만날 수 있다.




 


정지아의 말의 온도는 딸이 어머니를 돌보려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를 위한 음식을 만들며 어머니를 이해하는 내용이다.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어도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던 어머니였다. 어머니도 좋아하는 음식인 줄 알았던 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이가 들어 호강한다는 어머니의 말이 사무쳤다. 오래전 엄마에게 가족을 위해 매일 매끼 음식 만드는 게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가족을 위해 음식 하는 게 무엇이 힘들겠냐고 반문하시던 게 생각이 난다. 내가 엄마를 위할 여유가 생겼을 때 곁에 계시지 않은 게 아릿하다.

 


손보미의 담요는 아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아빠가 처음으로 같이 가 본 게 파셀의 콘서트였다. 공연장의 사고에서 아들을 잃은 장은 죽은 아들의 담요를 끌어안고 생활한다. 파출소에서 일하는 그는 혼자서 순찰차를 몰고 순찰 구역을 돌았다. 놀이터에서 술 취한 어린 커플에게 아들의 담요를 건네준 이야기에서 슬픔을 이겨낸다는 건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된다.

 


김유담의 멀고도 가까운은 엄마와 오촌지간인 보배 이모를 바라보는 내용이다. 구워져서 나온 도자기에 그림을 입히는 작업을 했던 엄마와 동네 여자들이 모였다. 그중에 보배 이모도 있었는데 엄마는 많이 배운 보배 이모를 질투했던 거 같다. 현재 뉴질랜드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듯한 보배 이모와 남자친구 은호의 말에서 평범함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보이는 것과 감춰진 것들을 깨달을 마음의 준비가 된 탓일까.

 


윤성희의 유턴 지점에 보물 지도를 묻다는 이니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함께 보물 지도를 들고 떠났다가 돌아온 이야기다. 각자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떠났다. 각자의 장점을 보태면 못할 것이 없다는 건 삶의 진리다. 김강의 우리 아빠는 인구 부족을 위해 국가가 나서 우리 가족사업에 참여한 우리 아빠의 이야기다. 노인 인구는 늘어가지만, 아이들은 좀처럼 태어나지 않은 우리 현실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김애란의 플라이데이터리코더는 어느 날 섬에 노란색 비행기 하나가 추락한 후, 블랙박스를 보고 엄마라고 했던 삼촌의 말을 듣고 엄마라고 부르던 소년의 이야기다. 몇 마디의 말과 울음으로 표현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나타난 소설이었다. 우주의 물질이어도 인간처럼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애틋함이 느껴졌다. 황정은의 모자는 더 애틋하다. 모자가 되어 버리는 아빠 때문에 자주 이사 다녀야 하는 딸들은 아빠가 왜 모자가 되는지 알고 싶다. 좋아서 모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아버지의 말이 인상 깊다. 딸에게 가해졌을지도 모르는 폭력을 신고하러 갔던 파출소에서 모자가 되어 버린 그 심정은 오죽할까. 나이가 들면 한 사람의 인간이라기보다 사물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무관심한 사회 혹은 가족 관계를 돌아보라고 하는 것 같다. 인간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고단함이 엿보인다. 더불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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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 - 99가지 강박으로 보는 인간 내면의 풍경
케이트 서머스케일 지음, 김민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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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농막에서 하룻밤 자는데 밤새 깊은 잠을 못 잤다. 누군가 방충망 문을 열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열린 문으로 뱀이 들어와 어딘가 똬리를 틀고 있다가 공격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한번 그 생각을 하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등산 갔을 때도 그랬다. 항상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나무 이파리들 사이에서 뱀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긴장하며 다닌다. 몇 년 전, 한라산 산행 시 길에 있는 뱀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있다. 어렸을 적 일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뱀에 관한 어떤 사건이 있었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나는 뱀 공포증(ophidiophobia)이 맞는 것 같다. ‘높은 곳 혹은 뱀에 대한 공포가 우리 뇌에 박혀있는 이유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뱀에 물리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공포증이 있다. 살아있는 것들, 개나 거미, 고양이, 곤충, 조류나 쥐 공포증 등이다. 또한 물건에 대한 공포증에서부터 강박증과 광기에 사람들은 오늘도 두려워하고 치료를 받는다. 단추공포증이라는 걸 들어본 적 있는지 궁금하다. 스티브 잡스가 터틀넥 스웨터를 입는 이유가 단추공포증 때문이었으며, 단추공포증이 버튼 없는 마우스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배우 소지섭의 경우는 풍선공포증으로 '풍선만 보면 뱃속이 펑 하고 터질 것 같다.' 라고 했다. 공포증을 겪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말이다.

 





휴대전화 의존도와 심각한 중독은 아마 많은 사람이 느끼고 있을 거다. 휴대전화를 놓고 출근했을 때의 불안감을 생각해보면 된다. 휴대폰에 너무 의지하는 것 같아 멀리하고자 해도 잘 안된다. 중요한 연락을 놓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세계적으로 휴대전화 의존도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2012년에는 휴대전화를 약물을 제외하면 아마도 21세기에 가장 심각한 중독일 것이라고 묘사한 연구도 있다. 책에서도 나왔지만, 휴대전화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물건이 되었다. 연락처며 여행 시 번역기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음악 감상 및 영화 보기, 길 찾기 기능, 독서, 생필품 구매 등 다양한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므로 없으면 상당히 불편한 물건이 되었다. 중독에 이르는 거 같지만 생필품에 가깝다. 만약 휴대전화가 없어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언 매큐언의 견딜 수 없는 사랑에서 드클레랑보증후군, 즉 색정광인 남자가 등장해 다른 남자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기를 사랑한다고 여긴 남자의 죽음을 사주하기까지 하는데 소설에서는 그 연인마저 남자를 믿지 못한다. 정신병원에 입원해도 쉽게 변하지 않은, 집착과 광기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대량 출판의 시대에 희귀 서적은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수집가들을 유혹했다. 세상에 딱 한 권밖에 남지 않은 책을 소유하는 것은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그 책을 소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딱 한 권 뿐인 책을 갖게 되면 왠지 저자의 영혼을 손에 넣는 기분이었다. (193페이지)

 


좋은 책, 갖고 싶은 책을 만나면 가져야 안심한다. 세상에 딱 한 권밖에 남지 않은 책이 있다면 그걸 소유하기 위해 어떤 행동이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일에 치여 지금은 덜하지만, 책을 많이 읽고 구매할 때는 서적수집광에 가까울 정도로 책에 빠져 살았다. 플로베르의 책에서 책 거래상을 서적수집광이라고 묘사했다. 서적 수집이 네덜란드의 튤립광에 맞먹을 정도로 열풍과 광기가 대단했다고 하니 삶을 송두리째 버릴 각오까지 하게 되는 거 같다.

 


99가지의 강박으로 보는 인간 내면의 풍경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두려움은 공포로, 집착은 광기로 이어지는 인간 내면의 단면들을 보는 것 같았다. 다양한 감정의 형태와 그로 인한 공포와 광기에 관한 내용으로 우리의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했다.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지 알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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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파더스 클럽 - 육아일기를 가장한 아빠들의 성장일기
강혁진 외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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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십 대, 이십대, 혹은 아이의 육아를 제대로 하고 싶다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 있다면 육아에 전념하던 때다. 아이에게 매달려 있던 시기, 잠 못 자던 시절이다. 물론 돌아간다면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싶기는 하다. 많이 안아주고 짜증 내지 않고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루하루가 전쟁인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쓴 글 모음집이다. 육아일기를 가장한 아빠들의 성장일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아빠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엄마들의 육퇴시간이 생긴 걸 보면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여전히 육아는 힘들다. 직장생활과는 별개로 퇴근 후 집안일과 육아에 지친 엄마 아빠들의 고군분투가 아이를 키웠던 시절로 돌아가게 했다.

 


다섯 명의 아빠들이 모여 돌아가며 육아일기를 발행했다.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저녁 9시에 발행되는 썬데이 파더스 클럽회원들의 이야기에서 고단하지만 행복한 모습을 발견한다. 아이가 커 가는 시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안타까울 정도로 무척 빠르게 큰다는 사실을 알면 더없이 중요한 시간이다.

 


처음 썬데이 파더스 클럽을 결성할 때부터 아내의 육아휴직에 이어 아빠의 육아휴직에 따른 고군분투가 이어진다. 아빠들의 레터와는 별도로 뒷 장에는 엄마들이 아빠들을 바라보는 일기가 실려 있어 더 풍부한 경험을 하게 한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함께 웃고 우는 경험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더 자주 안아주고, 더 자주 아이 볼에 입 맞추고,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35페이지)

 


아이는 이미 내 삶으로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 존재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가 그저 함께만 있어도 행복한 존재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하루 5분이라도 그 사실을 깨치며 설레고자 한다. (54페이지)

 


아이의 탄생은 부모의 삶을 훨씬 풍부하게 만든다. 물론 고단하기도 하지만 삶의 기쁨을 주는 원천이다. 아이의 돌봄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해서 아이 낳는 걸 미루는 부부들이 많다. 이제 엄마와 아빠로서의 삶을 돌아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이가 자라는 것만큼 부모도 훨씬 성장하게 되니 말이다.

 


좋은 아빠가 된다는 건 삶에서의 피버팅을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피버팅을 잘하는 사람은, 아빠로서의 삶과 더불어 한 인간으로서의 삶 역시 굳건히 다져가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굳건해야 아이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라는 중심축을 지지하는 발이 단단해야 아이를 향해 움직이는 다른 발도 재빠르게 움직이며 피버팅할 수 있다. (167페이지)

 


지난 달 중순에 아이 아빠가 된 직원이 있다. 아들이라며 얼른 키워 함께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하던 직원은 아이가 밤에 자지 않아 힘들어한다. 얼굴은 피곤해 퀭하지만 아이를 돌보는 일이 즐겁다고 말한다. 우리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백일 정도가 되면 밤낮을 가려 잠을 잘 거라고 말해준다. 축구하는 게 큰 즐거움인 직원은 현재 축구를 못해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다고 말한다. 힘내라며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직원뿐만 아니라 아빠들이 육아에 참여하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이야기에 공감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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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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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어렵고, 엄마가 아파 아이들이 많거나 어떠한 사정으로 할머니 혹은 친척에게 맡겨진 아이들이 많다. 성인이 되어도 부모와 데면데면하는 사이가 되던데, 경험이 없기에 그 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할머니도 아닌, 거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맡겨진다면 버림받았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는 것밖에는.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소녀가 있다. 일요일 미사 후 아버지는 집이 아닌 엄마의 고향으로 소녀를 데려간다. 언제 데리러 온다는 말도 없이 떠난 집에서 불안한 하루를 시작한다. 긴장한 탓에 침대에 오줌을 싸도 아주머니는 습기 때문이라며 젖은 매트를 밖으로 꺼내 비누와 따뜻한 물로 세탁해 햇볕에 말린다. 킨셀라 아저씨도 아주머니의 말에 동조하는 다정한 면모를 가졌다.




 


소녀는 킨셀라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내 집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엄마와 아빠보다 더 보살핌을 받았기 때문에 어쩌면 집에 돌아가기 싫었을 것 같다. 그걸 시기라도 했을까. 아주머니에게 줄 물을 받으러 우물에 갔다가 누가 잡아당기는 듯했다. 집에 돌아가기로 했던 날보다 조금 늦춰졌지만,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겼다.

 


어른 보다 아이가 감정에 예민한 편이다. 누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금방 깨닫는다. 부모가 줄 수 없는 것을 타인에게 받았다는 게 안타깝지만,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킨셀라 아저씨가 내 손을 잡는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내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69~70페이지)


 

아이랑 함께 걸으면 아이의 보폭에 맞춰 걷는 게 당연하다. 아이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은 상대방의 발걸음을 신경 쓰지 않는다. 작은 배려가 아이에게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밀드러드 아줌마와 킨셀라 아저씨의 보폭을 생각해보면 된다. 어떤 사람이 아이를 배려했는지 말이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왜 자꾸 잊어버리는지 모르겠다. 과도한 호기심이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법이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하는 건 아니다. 소녀가 듣고 싶지 않았던 말, 하지 않았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는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라고 했다. 킨셀라 아저씨의 슬픈 웃음소리가 마음 아프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저씨와 함께 우편함까지 빨리 달리기 속도를 쟀던 것처럼, 아이는 킨셀라 아저씨를 향해 내달린다. 아저씨 품에 안기며 아빠라고 부르는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을 붙든다. 쿵쾅거리는 심장의 헐떡임만큼 아이가 아빠라고 부르는 말이 짐작되어서 마음이 울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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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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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말하는 듯한 소설을 읽을 때면 마치 우리 주변 인물과 마주 앉아 있는 듯하다. 상실을 겪은 이에게 안부를 묻고 가만가만히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별다른 말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저 말없이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옆에 앉아 있다가 조용히 일어서 제 갈 길을 가도 다음에 만나면 또 의지가 된다.

 


이주란의 소설이 그렇다. 어느 날의 나에서도 느낀 바지만, 이번 소설에서도 그걸 느꼈다. 소설집이되 마치 연작처럼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느낌의 소설이다. 어머니를 잃고, 남편을 잃고, 직장을 잃은 상실감에서 그저 말없이 지켜봐 주는 것이 사실은 힘들다. 무슨 말인가를 건네야 할 거 같고, 위로의 말이랍시고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주란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묻지 않는다. 하고 싶으면 하겠지, 하고 기다려줄 줄 안다. 문득 그런 마음이 부러웠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기다림이 부족한 것도 같다.




 


잘 도착했나요?

.

별일은 없고요?

기차 타고 조금 오는데 별일은요.

아무튼 잘 가셨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저도요. (46~47페이지, 별일은 없고요?중에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함께 서울에서 만나 문자를 나눈 관계. 안부를 묻는 그 한마디가 정겹다. ‘별일은 없고요?’라는 문장에서 많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염려와 안타까움, 혹은 무관심을 빙자한 관심 같은 것들. 아랫집 아저씨의 방화로 그 집에서 살 수 없게 된 수현은 직장 동료의 집에서 머물다가 고향도 아닌 곳의 원룸에서 살고 있는 엄마에게 신세를 졌다.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무심한 질문과 더 이상 묻지 않는 엄마 때문에 그곳에서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의 일손을 돕고, 엄마 회사의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상이 편해 보였다.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잊고 싶은 것을 잊는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며칠을 함께 지내기만 했을 뿐, 가족이 아닌 사람과 살아본 경험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집에서 애도의 기간을 보내는 주인공과 함께 머무는 아주머니가 있다. 함께 동네를 거닐고 캔맥주를 마실 수 있는 관계. 때로는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처럼 가까운 장소에서 함께 돕고 함께 음식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더불어 사는 인간의 삶을 보는 듯하다.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옆집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경험했기에 알 수 있는 감정들일 것이다.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다는 문장이 와닿는다.

 


사람이 다 다르다는 것이 가끔은 무섭게, 그래서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나요? 저 역시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상대방의 입장이 되려고 노력했고 상대의 감정을 잘 모르겠다고 느껴질 땐 조심스레 질문을 더 해보거나 그것을 거부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듣기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자주 실패했습니다. (184페이지, 이 세상 사람중에서)




 


남편을 잃고 집안에 갇힌 것처럼 지낸 주인공에게 첫사랑인 남자의 이메일은 집 밖으로 나가게 한다. 국숫집과 추억 때문에 상실의 시간을 견디는 이에게 때로는 타인의 조용한 침범이 힘을 줄 때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말없이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자주 놓치는 것이다.


 

어른에서 아줌마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내가 지금 나눠 받고 있다는 무자비한 따뜻함 때문이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힘들 때는 속도를 늦추고 멈출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며 밀려드는 감정을 표현한 말이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이렇게 또 세상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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