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김지현 지음, 최연호 감수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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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용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만들었다. 거기에 감자를 많이 넣고 양파, 당근, 대파, 오이고추를 썰어 넣었다. 소금과 후추로만 약하게 간을 하고 뭉근하게 끓였다. 돼지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나 김치볶음밥을 먹을때 곁들여 먹으니 좋았다. 일명 감자 수프. 김지현 작가의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를 읽다가 미하엘 엔데의 『마법의 수프』를 읽는데 문득 수프가 먹고 싶어졌다. 넣고자 하는 재료를 넣어 마치 마법의 수프처럼 배불리 먹을 것을 만들고 싶었다. 물론 맛이 있었다. 마치 소설의 마법의 수프처럼 뭉근하게 끓인 감자 수프는 속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문학작품들 속에서 수많은 요리법이 나온다.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요리나 빵 종류 등도 나와 그게 무엇일까 검색해 보기도 한다. 문학 작품을 읽어왔고,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번역가로 활동하는 이에게 소설 속 요리법은 호기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음식의 이름을 한국의 정서에 맞게 번역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는 문학 작품 속에서만 존재하는 음식들을 한국어에 맞게 옮겨져 오고 알 수 없는 그 맛에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금 소설 속 음식들을 읽으며 소설을 생각하고 작가가 창조한 음식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생강빵이라는 건 아이들과 함께 보던 애니메이션에서 먼저 보고는 아기 모양의 빵을 어떻게 먹는단 말인가 고심했던 적이 있었다. 문학 작품속에서는 진저브레드로 나와 있지만 생강빵이라고 번역하는 것에서 번역 작가가 어떤 것을 바라보느냐, 우리 만의 고유한 언어의 탄생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다. 물론 번역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만들어내야 하는 고충도 말하고 있다. 번역가로서의 무거운 책임감까지 엿볼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번역가는 참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월귤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영어 단어로는 블루베리나 링곤베리로 표현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단어가 없었다. 블루베리는 그냥 블루베리로 불리고 링곤베리는 월귤로 불리는 모양인데, '월귤'이라는 단어는 또 얼마나 예쁜가. 달 같은 귤모양으로 보아야 하나. 링곤베리에 대한 설명을 듣는데, 어렸을 때 뒷산에서 따먹곤 했던 정금나무 열매가 떠올랐다. 알프 프레이센의 『호호아줌마가 작아졌어요』에 나오는 링곤베리 즉 월귤나무 열매가 정금나무 열매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블루베리보다는 살짝 열매가 작고 익으면 진한 보랏빛으로 변해 새콤달콤했던 과일로 기억된다. 


이처럼 언어의 사용은 매우 중요하다. 월귤나무로 굳어진 링곤베리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 이름만으로도 상당히 예쁘고 월귤나무 열매가 맛있을 것만 같다. 호호아줌마처럼 월귤나무 열매를 따다가 잼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최근에 『하이디』 나 『작은 아씨들』, 『다락방의 꽃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키다리 아저씨』,『빨간머리 앤』 등을 다시 읽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소설을 나이가 들어 다시 읽는다는 건 그 시절의 추억을 읽는 것과도 같다. 그저 책을 읽을 때 음식에 대한 부분을 보며 참 거창하게 식사를 하는구나 싶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빨간머리 앤』에서 앤이 다이애나에게 식사 대접을 하는 장면은 외국의 식사 문화에 대하여 엿볼 수 있다. 주스와 케이크, 차를 대접하며 친근한 관계로 다져진다는 것을. 물론 앤은 다이애나에게 나무딸기 주스라며 주었지만 그것이 마릴라 아주머니가 넣어둔 포도주 였음이 나중에야 드러나 배리 부인이 다시는 다이애나와 놀지 못하게 만들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앤에게는 마음 아픈 일이었다. 물론 내가 배리 부인이었어도 똑같이 행동했겠지만 말이다. 






외국의 소설을 읽을 경우 '돼지고기 파이'가 나올때 돼지고기 파이를 차게해서 먹는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맛이 없을 것 같다. 돼지 기름을 제거 했겠으나 뜨거운 것을 먹을 때와 차가운 것은 어쩐지 기름이 많이 배어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애니드 브라이튼의 『세인트클레어의 말괄량이 쌍둥이』에서는 정어리 샌드위치까지 먹는다. 기숙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먹는 음식은 무엇을 먹어도 맛있을 것이다. 하지만 돼지고기 파이나 정어리 샌드위치의 조합이 나에게는 썩 달갑지 않다. 정어리 통조림은 김치찌개용으로 생각되는데 문화의 차이인가도 모르겠다. 


식전 음식과 메인 요리, 디저트의 순서대로 문학 작품 속 음식들을 말했다. 아울러 번역가로서 우리나라의 정서와 맞는 단어를 찾으려 애썼다.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다양한 음식을 바라보는 방법도 이야기했으며 그 시절 우리가 읽었던 소년소녀 소설의 추억과 함께 한 산문이었다. 문학 작품 속 음식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좋은 것 같다. 상상 속에서만 그려왔던 음식의 실체와 그 나라에 얽힌 문화를 함께 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더불어 책 속의 또다른 책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읽은 책은 다시 읽고 싶었고, 읽지 않은 책들도 읽어보고 싶었다. 역시 책은 또다른 책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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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 - 수상 작가들이 뽑은 베스트 7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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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꾸준히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어왔다. 내가 알지 못했던 작가의 작품을, 혹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읽는 즐거움을 누렸다. 이 책은 젊은작가상 1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출간해 온 제1회부터 제9회까지의 수상 작가들이 뽑은 베스트 7편이 수록된 특별판이다.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했으니 기억이 나지 않은건지 읽지 않은건지 생소한 작품들도 보였다. 


수록된 작품은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 손보미의 「폭우」, 이장욱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 황정은의 「상류엔 맹금류」,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 강화길의 「호수-다른 사람」이다.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으며 생각한 건 역시나 그때도 백 퍼센트 이해하지 못했던 소설은 지금도 백 퍼센트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소설을 재독하는 사람들은 좋은 작품을 다시 읽고 감동을 받고 싶기때문이다. 이번에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을 다시 읽으면서 느낀 건 그때에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꼈다. 장기간의 장마는 모든 것을 물 속에 가둔다. 언제나 불이 더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물 또한 더 무서운 존재라는 걸 알았다. 쉬지 않고 내리는 물 속에 잠긴 아파트를 상상해 보았다.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아파트이나 자기가 살고 있는 층 아래까지 물이 차올라 죽은 엄마를 꽁꽁 싸매어 문으로 만든 배 위에 올려 물 위를 움직이는 느낌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모든 것이 물에 잠기고 살아있는 생명체라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가 느꼈을 두려움과 허망함에 떨림을 감출 수 없었다. 


이번에 특별하게 읽은 작품은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와 이장욱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다. 우리는 소멸된 어떤 것들을 향하여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마지막 황세손인 이구를 바라보는 건축과 혁명에 대한 생각들의 경계를. 그리고 호수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두려움을. 그러고보면 「호수-다른 사람」 또한 상실된 것을 향한 물의 두려움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인가.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사람처럼 많은 영향력을 주는 것도 없으니.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에서는 십 년도 전에 연락을 끊었던 친구에게서 온 전화. 장례식장에 화환을 가지고 출발하며 느끼는 감정들을 말했다. 누군가의 생명이 오늘내일 할 거라고 장례식에 쓸 화환을 준비해달라는 사람은 어떤 이 일까. 그걸 지켜보기 싫어 장례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맴도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과거의 어떤 기억을 떠올렸다.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떠났으나 어쩐 일인지 긿을 잃어 계속 헤매고 돌아다녔던 일을. 그리고 돌아가신 다음에야 길을 찾아 장례식장으로 향했었던 일을. 누군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과 타인들이 어이없어 헤어지겠다고 생각했던 여자한테 전화를 거는 김. 죽음이 주는 황망함에 구애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강화길의 「호수-다른 사람」은 폭력 피해자가 폭력 가해자와 호수에서 마주선 감정들을 말하고 있다. 폭력에 대하여는 문학작품 속에서 자주 문제시되고 있다. 친구가 사고를 당했던 날 저녁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추궁을 하는 친구의 연인과 길을 걸으며 역시나 데이트 폭력을 일삼았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예의바르고 분위기를 이끄는 남자였지만 그 예의바름에서 나오는 불편함을 느꼈었다. 그 남자와의 동행은 역시 불편했다. 마지막 결말이 무엇인가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것이 맞는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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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파수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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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사회파 미스테리에서 점점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소설이 나오고 있다. 아마도 작가의 나이때문일 수도 있는데, 이러한 변화는 반갑다. 사회파 미스테리 라는 장르에 갇혀있지 않고 인간다운 면을 부각시키는 건 분명 변화의 바람이다. 책을 많이 읽다보니 작가가 새로운 시도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나, 작품이 실망스러울 경우 역시  비슷한 느낌의 책을 계속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하지만 심혈을 기울여 이처럼 변화된 내용의 책을 썼을 때 감동을 받게 되면 작가에 대한 애정도가 더 깊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작가는 이번에 녹나무에 깃든 이야기를 한다. 녹나무는 한번도 본적은 없으나 어느 소설에서 주인공이 녹나무 남楠(검색해보니 한자가 두 개 있다)이라는 한자를 써서 기억하고 있는 수준이다. 주인공 이름 때문인지 그리 크지 않은 나무라 여겼으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속에서 접하는 녹나무는 상당히 거대하다. 몇 백년은 된 나무라 가운데에 홈이 파여 사람이 들어갈 수도 있는 구조다. 그곳에 앉아 사람은 기념이라는 의식을 거행한다. 여기에서 녹나무는 소원을 들어주는 신비한 나무다. 그런데 왜 기원이라고 말하지 않고 기념이라고 말하는가. 주인공 레이토가 알아내야 할 진실이다. 어느 누구도 기념이라는 뜻을 알려주지 않았고, 녹나무의 신비함에 대해서만 말해주고 있다. 






나오이 레이토는 녹나무 파수꾼이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신비한 힘을 가진 녹나무를 지키고 기념을 원하는 사람을 그곳으로 안내하는 일을 한다. 녹나무의 신비한 힘에 이끌려 오는 사람들은 전원 예약을 해야만 올 수 있고, 주로 그믐 날과 보름달이 뜰때 집중되는 것을 발견했다. 레이토는 주거침입, 기물파손, 절도미수 때문에 유치장에 갇혔다. 꼼짝없이 감옥에 가야 했지만 변호사가 찾아와 누군가의 말을 건넨다. 감옥에 가지 않게 꺼내어주겠다고 말한다. 단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해야한다. 


레이토가 만난 사람은 60대 정도의 나이대로 자신의 이름을 야나기사와 치후네라고 밝히고 오래된 사진을 건네주었다. 할아버지인 소이치가 치후네 씨의 아버지이며 레이토의 어머니 미치에가 이복자매라고 했다. 즉 이모였다. 야나기사와 가문은 대대로 월향신사의 녹나무를 섬겨왔다. 즉 녹나무의 신비함을 지키고 순전히 예약제로 다른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를 하게 했다. 


레이토가 녹나무 파수꾼으로 일할 때 처음으로 방문한 사람이 사지 도시아키였다. 그가 가고 난뒤 사지 유미라는 여성이 찾아와 아버지가 여기 왜 왔는지, 바람을 피우고 있지는 않은지를 물었다. 기념에 대해 물어보지만 레이토는 알 수 없었다. 동네 목욕탕에서 나이 든 사람에게 기념에 대해서 묻지만 녹나무의 신비함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섣불리 발설하면 안된다며 거절하였다. 기념을 하러 온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하는 것인지, 녹나무는 어떤 신비한 힘이 있는지 레이토 또한 궁금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실 이러한 내용의 소설이 흔치 않다. 아마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달리 일본에서는 비슷한 내용의 소설들이 꽤 많다. 미신을 많이 믿기 때문일텐데, 읽다보면 어느새 빠지고 만다. 우리들의 할머니가 전해주었음직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레이토가 유미와 함께 녹나무의 기념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은 어떠한 염원을 하는지 찾아가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더불어 레이토의 탄생 배경과 치후네 씨와 어머니 미치에 그리고 할아버지인 소이치와의 관계를 말한다. 녹나무의 기념은 가족간에만 가능하다. 기념을 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라는 증서 즉 호적등본을 제출해야만 가능했다. 






문제아로 여겨지는 레이토가 녹나무 기념에 대한 것을 알아가며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깊게 깨닫는 시점이 온다. 수많은 소설에서 나타나듯 레이토의 성장을 다룰 뿐만 아니라 신비한 힘을 경험하게 된다. 더불어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로 인해 발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소설에서도 이 것 때문에 비밀에 부치고 순수한 예약제로만 운영하였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이라는 건 없습니다. 어디에도 없어요. 어떤 사람이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만은 똑똑히 기억해두도록 하세요. (476페이지) 


녹나무의 신비함과 가족의 힘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레이토에게 월향신사의 관리인 즉 녹나무 파수꾼으로 일하게 한 것도 그가 가족이기에 가능했다. 또한 레이토가 치후네 씨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게 된 것도 가족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어머니 세대에서 화해하지 못했던 것을 비로소 지금에서야 화해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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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ehyun 2020-04-10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나무는 제주도에 많이 자랐다고 하네요. 수명도 1000년에, 40미터까지도 자랄 수 있는데 녹나무 특유의 향 때문에 제삿날 조상의 혼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집 주위에 심지 않았다는 군요.
또 귀신을 쫓는 나무라 하여 각종 연장을 녹나무로 만들었답니다. 결이 치밀하고 고와서 불상을 만들기에 아주 좋다고도 해요.쓰임이 많은데 심지는 않았나 봅니다.
오염물질흡착 능력도 탁월하다니 가로수로 심으면 아름드리 나무를 볼 수도 있겠지요

Breeze 2020-04-22 21:21   좋아요 0 | URL
집 주위에 심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군요. 불상 만들기에도 아주 좋다니 쓰임이 아주 많았었네요. ^^
 
이노센트 와이프
에이미 로이드 지음, 김지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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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의 경우, 살인자가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잘생긴 미남이었을때 그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고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들을 보이곤 한다. 이미 사형수로 복역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존재할까 싶지만 미국 같은 경우 사형수가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이 듣긴 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서맨사가 이렇듯 순진한 여성인가. 어쩌면 얼굴 한번 보지도 않고 사형수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의아했다. 혹시 서맨사가 남녀 관계에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나.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영국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느 서맨사. 어린 소녀를 죽여 사형수로 복역 중인 데니스 댄슨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며 그와 사랑에 빠졌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형수의 입장에서 자기에게 편지를 보내는 여성을 대상으로 사랑을 고백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은 들지만 어린아이를 죽인 남자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서맨사를 보며 사랑이란 이렇듯 그 순간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일까. 생각되었다. 서맨사 뿐만 아니다. 데니스가 결백하다고 믿는 여성들이 많았다는 게 문제다. 데니스가 결백하다는 걸 세상에 알리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캐리 또한 그 중의 한 명이었다. 




편지로 사랑을 확인한 서맨사는 영국에서 미국의 앨투나로 향한다. 물론 데니스를 만나기 위해서다. 손과 발목에 사슬을 찬 채로 구멍이 뚫린 플라스틱 판을 사이에 두고 데니스를 바라보게 되었다. 손목과 발목에 쇠사슬을 찬 죄인은 그만큼 위험한 인물이라는 거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눈을 맞췄을때 어색한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들을 보며 진짜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일까. 못내 의심스러웠다. 


서맨사는 데니스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물론 그 들을 가로막는 플라스틱 판을 사이에 두고서 였다. 결혼식이라 하여 키스를 할 수도 없었고 뚫린 홈 사이로 손가락을 마주 댈 뿐이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캐리는 데니스가 결백하다는 걸 순수하게 믿었다. 서맨사와 데니스의 결혼식을 옆에서 다 거들어 줄 정도였다. 그리고 홀리 마이클스를 죽인 진짜 범인이 나타나 데니스는 풀려났다. 사형수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된 것이었다. 무려 21 년 만에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다. 데니스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안고 있는 서맨사는 그의 결백이 반가웠고 호텔에서 첫날 밤을 지낼 때도 몹시 떨었다. 데니스는 이후에도 서맨사에게 제대로 된 사랑의 표현을 하지 않았다. 대신 여러 사람들이 있는 경우에만 다정한 척 굴었다. 


여기에서 생각할 수 있는 건 그가 진짜 샘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다. 많은 여성들이 면회를 왔었고 그 중의 한 명, 이를 테면 어렸을 때부터 알아왔던 린지라는 여성과 사귀는 사이일까, 샘은 의심과 질투를 하게 된다. 또한 어떠한 이유로 샘을 사랑하지 않고 보여주기 위한 사랑일 수도 있었다. 


샘은 데니스와의 신혼생활이 몹시 불안하다. 그가 죽였을 수도 있는 많은 어린아이들의 시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데니스는 정말 결백한 것일까. 마을에서 사라진 많은 아이들은 누구의 짓이였는가. 왜 데니스는 알코올 중독때문에 폭력적이었던 어린시절의 집인 레드 리버로 돌아왔는가. 단 2주 뿐이라 여겼지만 데니스의 일련의 행동들이 샘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죽은 고양이를 묻어주러 간 숲 속에서 데니스가 사랑했던 것들을 기념한 무덤들을 발견한 뒤 데니스에 대한 의심이 갈수록 커지기만 한 샘은 지하 태풍피해공간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때부터가 소설의 절정을 이룬다. 샘의 불안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까지 전해져 몹시 불안한 경험을 하게 되는 거다. 데니스가 알게 되지 않을까. 데니스는 정말 결백한 것일까. 절정과 결말에 빨리 이루어져 순식간에 끝난 느낌이어서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떨림이 그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이 방식이 맞아. 샘은 데니스와 손깍지를 끼면서 생각했다. 데니스에게는 늘 이 편이 더 나았다. (444페이지)


추리소설 좀 읽었거나 눈치가 빠른 사람은 이 마지막 문장의 의미를 바로 알아챌 것이다. 숨이 멎을 듯한 매력을 뿜어내는 데니스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는 샘의 마음을 난 여전히 100% 동의하지 못하겠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결말에 이를수록 매력이 넘쳤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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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0 소설 보다
김혜진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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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을 이끌어갈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찾아 읽으려 한다. 그 일환으로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꾸준히 읽어왔고, 작년부터 출간된 문학과지성사의 계절별 '소설 보다' 시리즈를 읽게 되었다. 이왕이면 장편이 좋지만 새로운 작가들이 꾸준히 발표하는 단편 읽는 재미가 크다. 그리고 최근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소설을 쓴 장류진 작가의 이름이 보여 더 반가웠다. 장류진 작가가 쓴 작품을 몇 편 읽지 않았지만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일의 열정과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수록된 작품 「펀펀 페스티벌」도 다르지 않았다. 직장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주 자세하게 표현해 읽는 재미가 컸다.  「펀펀 페스티벌」은 연말 송년회를 앞두고 5년 전 세명그룹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는 소설이다. 기업은 다재다능한 인재를 뽑기 위해 심층 면접을 하기도 한다. 1차 서류전형과 2차 인적성 검사를 마치고 3차는 2박3일간의 합숙 면접을  마지막 면접이었다. 노래를 좀 했던 유지원은 밴드팀에 들어 보컬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거기엔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이찬휘이라는 가수가 있었다. 외모가 출중하여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도 눈여겨 보았던 이찬휘였다.

 

 

 

외모는 여러모로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TV 속에 나오는 배우나 아이돌 가수들도 일단 잘생기면 한몫을 하고 들어가는 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게 마련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회사에서 합숙 면접을 하는 이유는 여러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이라든가 제한된 환경에서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밴드팀에서 노래를 꼭 잘하는게 중요한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공연 직전, 마치 딴지를 거는 것처럼 노래를 지적한 이찬휘 때문에 지원은 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송년회 날 영어 가사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면서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이찬휘를 바라보는 유지원의 냉소가 인상적이었다.  

 

5.18을 다루는 내용은 언제나 아프다. 실제로 겪지 않았지만 수많은 매체에서 나오는 내용으로 인해 아직도 고통속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름도 생소한 한정현 작가의  「오늘의 일기예보」라는 소설이다. 내용은 로맨스 소설의 제목처럼 달달하면서 내용은 그러지 아니하였다. 고모와 오스칼이라 불렀던 제인과 그리고 복수와 나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던 고모는 소위 학생운동을 하다가 경찰관들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른다. 보나를 데리고 한강변으로 가 강 속으로 걸어들어갔던 고모를 아빠는 그런 일을 당하고 어떻게 한국에서 사느냐며 말한다. 아빠는 고모를 여동생이라 보지 않고 그런 일을 당한 여자 쯤으로 치부했다. 보나는 옆집에 사는 오스칼을 닮은 제인을 좋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제인이 트렌스 젠더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처음 알았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언제나 천진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말하지 못할 사연들이 있어도 나는 그 시절 어떤 시간들에 대해선 여전히 귀여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저런 말 못 할 기억이 이젠느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살겠다는 다짐을 만들기도 했다. (123페이지,  「오늘의 일기예보」 중에서)

 

동물을 예뻐하는 사람은 어쩐지 모든 사람에게도 다정할 것 같다. 동물에게도 잘하는데 하물며 사람에게는 얼마나 잘할까, 라는 기대감이 생기는 걸까. '나'는 골목길의 교회 앞에서 고양이 태비에게 먹이를 주다가 '너'를 만났다.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고 그들을 구해주려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 '나'가 사는 동네는 재개발이 한창이었고, 재개발이 열리는 공청회에서 '너'를 만났다. 길고양이들에게 안식처를 주는 행동과 달리 재개발 지역에서 이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냉정한 말을 하는 걸 보고 다름에 대하여 생각한다.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길고양이들에게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대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너'를 따뜻한 사람이라 여겼던 거다. 그러니까 그 밤에 내가 실감한 건 너와의 간극이고 격차였다. 그것에 비하면 내가 너라는 사람에 대해 염려하고 걱정했던 다른 모든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얼마간 체념하는 심장이 되었고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34페이지,  「3구역, 1구역」 중에서) 투자를 목적으로 한 사람들은 재개발이 확정되어 시세 차익을 얻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나 또한 그런 마음이 없잖아 있다. 지금의 트렌드 때문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옛것이 자꾸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 오래된 주택 특히 한옥을 개조하여 카페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왕이면 그런 곳으로 가 우리의 옛 것을 즐기는데 이러한 것들이 자꾸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차가 지나갈 수 없는 오래된 골목길의 높다란 계단도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면 아름다운 골목길이 된다.

 

물론 이 소설이 그러한 바람을 다루는 건 아니다. 간극과 격차에 대한 것이다. '너'와 '나'와의 격차가 커도 나는 너의 청을 거부하지 못한다. 고양이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너를 알 것 같아도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은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을 자신이 쉼터라 불리는 장소에서 돌보아도 오래된 것을 부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너'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세 편인 소설속에서 새로운 작가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젠더와 과거의 역사의 재현, 오늘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그것에 대처하는 다양한 접근이었다. 무엇보다 소설이 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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