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
아밀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F소설을 읽으며 제도나 사회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인물들을 바라보게 된다. 작가의 역할이 중요한 게 소설 속에서 어떠한 인물상을 그리느냐에 따라 독자들이 받아들이는 게 변한다고 본다. 여성의 역할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도 이러한 작품들을 많이 접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에 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된 작품이다. 페미니즘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작품 속 인물들을 보며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밀 작가는 앞서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로 먼저 만났다. 영미문학 번역가로서 느끼는 다양한 생각들과 음식에 얽힌 의문점들을 맛깔스러운 글로 표현해 언젠가는 작가가 번역한 작품을 꼭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만큼 필명 아밀로 돌아온 작가의 작품집은 꽤 궁금한 작품이었고, 역시 재미있었다.

 


 

 

2018SF어워드 중단편 부문 우수상 로드킬2020SF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 라비4편의 작품이 수록된 작품집이다. 로드킬부터 읽게 되었는데 한 번 책을 읽으면 계속 읽게 되는 마력이 있다.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은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인물들을 말한다. 물론 여성의 입장에서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아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인물상을 그렸다. 나를 가두는 틀에서 벗어나 자기의 생각대로 길을 나아가는 진취적인 모습을 그렸다는 점도 특별하다.


 

로드킬에서 우리는 진화에서 도태된 1급 보호대상 소수인종 여성들을 마주한다. 진화된 여자들은 자궁을 버리고, 유전자를 변형하고, 줄기세포를 이식받고, 장기를 대체할 뿐 아니라 수명 연장 약을 투여받았다. 반면 돈이 없는 여성들은 그런 자연진화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며 살았고 그들이 낳은 딸들이 보호대상으로 분류되어 별도의 보호소에서 강제로 보호되어야 했다. 이곳에 있는 소녀들이 나갈 수 있을 때는 바깥세상에서 온 남자들의 면담으로 선택을 받게 되면 결혼이라는 제도로 얽혀야 가능했다.

 


로드킬에서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문학 작품에서 나왔던 인간과 여성의 미래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우리의 먼 미래는 이처럼 디스토피아 일 수밖에 없는지, 여성이 가진 역할이 출산과 남자의 선택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여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들게 한다. 이 소설에서 소녀는 지금은 없는 여름이라는 계절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소녀와 함께 탈출을 꿈꾼다. 비록 고속도로 밖에서 로드킬이 될지라도 일단 철책을 뚫고 나가야 했다.

 


라비라는 이름을 가진 주술사의 이야기는 옛것과 현재의 것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더 좋은지 의문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열대 부족의 오랜 전통을 이어오던 곳에서 주술사의 손녀인 라비는 할머니의 바람대로 주술사가 되어 살고 싶지 않다. 아이들을 따라 공용어로 말하면 할머니에게 혼났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필요치 않은 주술사가 되기 위한 연습을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식물학자와 인류학자가 찾아와 고대부터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와 사고방식을 알고 싶다고 했다. 식물학자는 난치병 치료제 개발에 도움을 줄지도 모를 식물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고, 인류학자는 고대의 언어와 전통에 대하여 알고 싶어했다. 식물학자나 인류학자가 라비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건 그들의 욕망을 위해서였다. 라비는 전통방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오래전에 체득했다. 그들의 욕망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했다.


 

이 삶이 아닌 다른 삶이 어딘가에 존재하며, 그들에게도 그 삶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희망. 어쨌거나 말은 공평하므로. 말에는 돈이 들지 않으므로. 말은 누구든 아무렇게든 쓸 수 있다. 따라서 말은 무엇보다 먼저 왔다. 사물보다 먼저 이름이 왔다. 돈보다 먼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이 왔다. (64페이지, 라비중에서)

 


외시경이라는 작품도 좋았다. 유명한 문학 평론가 겸 교수인 남편이 아내인 작가를 언어 및 성적 폭력을 일삼는 내용이었다. 남편은 아내를 자기의 그늘 아래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데 읽는데 어떤 추리소설이 떠올라 몹시 불편했다. 그러나 작가인 여성은 우리의 우려와는 다르게 자신의 바라보던 것을 믿고 그 의지를 실현한다. 바꾸지 못할 것은 없다. 다만 칼과 걸레를 들고 욕실 청소를 제대로 하겠다는 여자의 모습은 섬뜩하다. 그런데도 후련한 이 마음은 무엇일까.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 공희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설화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쩐지 서글픈 내용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느 한순간에 이처럼 사라지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공물을 바칠 때 동물이 아닌 사람을, 그것도 살아있는 처녀를 바친다는 설화가 몹시 불편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데 왜 처녀여야 하는지 심청이처럼 아득한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옛이야기와 현재 또는 미래의 어느 공간에 속한 이야기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운명을 탓할 게 아니다. 우리 삶은 우리 스스로 개척해가는 것이다. 읽어보시라, 반할 것이다!


 

#로드킬 #아밀 #김지현 #비채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장르문학 #SF #SF소설 #단편소설 #SF어워드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8-06 15: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브리즈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8월 건강 잘챙기세요 ^ㅅ^

그레이스 2021-08-06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mini74 2021-08-06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초딩 2021-08-06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서니데이 2021-08-06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한국 정원 기행 - 역사와 인물, 교유의 문화공간
김종길 지음 / 미래의창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 물었다.

우리 옛 정원 보는 법을…….

 

다만, 이렇게 답했다.

오감을 열어젖힐 것,

풍경 바깥을 살필 것,

그 속을 거닐 것,

나직이 읊조릴 것, 가만히 응시할 것, 깊이 침잠할 것……. (4페이지, 프롤로그 중에서)


 

금요일 퇴근 후, 담양 가사문학면에 위치한 소쇄원을 지나 텃밭에 가서 23일을 지내고 온다. 오래전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다녔었고, 신랑과 둘이서도 소쇄원을 풍경을 보며 옛 정원을 거닐었다. 친구들과도 함께 거닐던 곳인데 책 속에 거론되는 곳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자주 다니지 못했지만, 재작년엔 민간정원을 꽤 다녔다. 메모지에 붙여 두고 다니고 싶은 곳을 골랐다. 개인이 만든 정원은 다 달라서 그들만의 열정과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와 다르게 옛 정원은 정말 아름답다. 색이 바랜 목재와 문살의 문양을 상당히 좋아한다. 더구나 정원은 계곡이 있고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정자가 있기 마련이다. 소쇄원 제월당에 앉아 본 사람은 안다. 스치는 바람을, 주변의 열린 풍경을. 마음이 저절로 평온해진다.


 


 

조선의 3대 민간 정원인 윤선도의 보길도 부용동 원림과 양산보의 담양 소쇄원 그리고 정영방의 영양 서석지부터 우리를 정원으로 안내한다. 고산 윤선도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왕을 구하려 강화도로 향하다 왕이 삼전도에서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 섬의 수려한 광경을 보고 가던 길을 멈춘 곳이다. 저자는 윤선도를 가리켜 우리나라 최고의 정원가라고 일컬었다. 고산은 머무는 곳마다 아름다운 산수에 정자를 짓고 연못을 만들어 자연과 교감하는 생활을 즐겼다. (40페이지) 역사를 살펴보며 정원을 만들게 된 경위를 설명해 이해를 도왔다. 더불어 보길도 부용동 원림 관람법을 설명한다. 낙서재를 제일 먼저 찾아 소요한 후 지루해지면 세연정을 찾을 것과 산책을 하며 해질 무렵에 동천석실에 올라 바라볼 것을 권한다. 기왕이면 하룻밤을 묵어가며 천천히 보는 게 좋다고 했다.


 

소쇄원은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죽게 되자 고향에 내려와 소쇄원을 지어 은둔하였다. 소쇄원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모두 찾아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몸의 모든 감각을 열어젖히고 천천히 음미하는 게 좋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몇 번을 지나쳤는데 여름이 가기 전 소쇄원을 아주 천천히 거닐고 싶었다. 저자가 설명한 대로 담장 하나에도 의미를 두고, 마음을 열어 거닐 것이다. 영양 서석지의 핵심은 연못의 상서로운 돌들이다. 이곳의 돌들은 외부에서 옮겨 온 것이 아니라 연못 바닥에 있던 석영사암층을 활용하여 연못을 조성했다.

 


별서는 대개 담장도 문도 없을 정도로 개방적이다. 서울과 지방이 조금씩 다른데 서울의 별서로는 석파정, 성락원, 부암정, 옥호정 등인데, 이들은 주거가 가능한 살림집의 기능을 갖춘 곳이다. 반면 지방의 별서는 살림집 기능은 거의 없고 정자 중심의 시설로 간단히 휴식을 취하고 기거할 수 있다는 게 다르다. 별서로는 안동 만휴정, 예천 초간정, 담양 명옥헌, 대전 남간정사, 강진 백운동 별서, 강진 다산초당, 화순 임대정이 있다.

 


정원이 있는 고택 등도 자주 다니곤 하는데 오래전에 방문했던 강릉 선교장을 잊지 못한다. 방문했을 때는 선교장에 관한 지식이 없이 갔었는데 이 책에서 보니 선교장이 생긴 그 의미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별서나 정원들은 모두 빼어난 위치와 조망, 경관을 가지고 있다. 탁 트인 장소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국 정원은 처음엔 서먹하나 점점 은은한 매력에 빠져들게 되고, 중국 정원은 첫인상은 서글서글한데 왠지 마음 두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중국 정원은 인공으로 자연을 만들고, 일본은 집 안으로 자연을 끌어들이고, 한국은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고. (5페이지)

 


옛 정원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책 속에 수록된 모든 장소를 가보고 싶다. 몇몇 장소는 직접 검색을 해보고 휴대폰 메모 기능에 저장해두었다. 책 한 권을 들고 정원 기행을 떠난다면 좋겠다. 방문하기 전, 책으로 정원이 생긴 의미를 파악하고 가게 되면 정원에 대한 아름다움의 깊이를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한국정원기행 #김종길 #미래의창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정원기행 #민간정원 #별서정원 #한국의정원 #한국사 #한국역사 #한국문화 #부용동 #소쇄원 #서석지 #한국정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석이 발표한 모든 작품을 검토하여 백석 시의 정본과 원본을 확립한 시집이다. 이번에야말로 백석의 시를 제대로 알 수 있겠다 싶었다. 잘 알지는 못하나 그의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나라의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있는 듯하다. 한국의 언어이지만 평안도의 사투리로 쓰인 시들은 다소 이해되지 않는 단어도 있지만 최대한 풀이하여 쓰인 시라 그 의미가 더 크다.


 

시집의 뒷부분에는 시가 발표된 원문이 표기되어 있어, 앞부분의 시와 비교할 수 있게 했다. 같은 언어인데도 시대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사투리 또한 이해 불가능한 것도 있어 단어를 알아가는 것 또한 의미 있었다.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었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21페이지, 전문)

 


비 오는 날의 비 냄새를 좋아한다. 약간은 비릿한 냄새로 흙을 적시는 비가 냄새를 피워 올린다. 백석은 그 느낌을 개비린내라고 표현했다.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시였다. 일주일 가까이 비가 내려 비 비린내를 맡을 새도 없었다. 대지를 적시는 풍경 앞에 서 있는 시인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별 많은 밤

하누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즞는다 (47페이지, 청시靑?전문)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99~100페이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부문)

 


백석의 이름만 알았을 뿐 백석의 시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어느 때, 백석의 시 제목을 딴 출판사 서포터즈를 하며 백석 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는 전자책으로만 갖고 있어서 시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이제야 비로소 시를 제대로 읽는 느낌이다.


 

구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과 있는 것과 없는 것과 한 줌 흙과 한 점 살과 먼 넷조상과 먼 훗자손의 거륵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 것


 

내 손자의 손자와 손자와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 수원백씨 정주백촌의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 많은 호랑이 같은 곰 같은 소 같은 피의 비 같은 밤 같은 달 같은 슬픔을 담는 것 아 슬픔을 담는 것

(135페이지, 목구부문)

 

 

 

백석 시에서 방언과 고어를 더러 구사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옮기는 작업이 피요했다고 한다. 낯선 단어지만 옛 사람들이 사용했을 단어를 비교해 보는 시간도 되었다.

 


백석의 작품을 더 알고 싶다면 저자 고형진이 엮은 백석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정본 백석 시집외에도 정본 백석 소설?수필,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 백석의 연인 김자야 여사가 털어놓는 내 사랑 백석오 함께 읽으면 될 것 같다.













 

#정본백석시집 #백석시집 #백석 #고형진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시집 #시집추천 #한국시집 #한국시 #사슴 #나와나타샤와흰당나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1-07-12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석시 좋아하는데 정본이 나왔군요. 나타샤도 좋고.ㅎㅎ 전 여우난골족이란 시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어린시절 기억때문인지. 아이 어릴적 준치가시랑 개구리네 한솥밥 그림책으로 보곤 했는데 … 좋은 책들 추천 고맙습니다 *^^*
 
데카메론 프로젝트 -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빅터 라발 외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된 후 우리의 삶은 많은 부분이 변했다. 함께 거주하고 있는 가족 외에는 만날 수가 없었다. 세계의 여러 나라는 봉쇄조치를 취했다. 나라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태였다. 기껏해야 몇 달이면 될 것 같았는데 그 시기가 일 년이 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백신 접종률이 29% 정도 된다고 하고 연말이 되면 집단 면역이 형성될 거라고 예상했다. 내년에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데 변이가 계속 나타나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미뤄놓은 것들을 하는 거였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했다. 최소한의 거리를 움직이는 여행을 하고 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사 먹는 것보다는 포장을 해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캠핑이 각광 받는 이유도 그것의 일환이다. 가족끼리만 있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한 것이다.

 


 

 

팬데믹 상황이 되면서 흑사병을 떠올렸다. 조반니 보카치오는 흑사병을 피해 도시 밖으로 피해 별장에 모인 10명의 젊은 남녀가 10일간 주고받은 100편의 액자소설 형식의 이야기 데카메론을 썼다. 20203월 갑자기 서점에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팔리기 시작하자 뉴욕타임스에서 격리 중에 쓰인 신작 단편소설을 모아 현재의 데카메론을 만들고자 기획하여 나온 작품집을 발간했다.

 


마거릿 애트우드, 레일라 슬리마니 등의 작가들이 단편이 수록된 작품이다. 그렇게 나온 29편의 작품은 현재의 우리를 비춰준다. 코로나 때문에 아파트 이웃이 사라지기 시작하며 느끼는 두려움을 보며 심각했던 나라의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데이비드 미첼의 바란다고 해서에서는 교도소의 격리된 코로나 감염자가 나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밀집해 있는 교도소에서 수많은 감염자가 속출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격리 중인 수감자로 2층 침대에 아시아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며칠에 한번씩 찾아오는 의사 또한 중국인 웡 박사였다. 2층 침대의 아시아인의 말소리,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등 환각증세에 시달리는 감염자는 나중에야 혼자 격리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확진자와 접촉한 경우와 외국에서 들어온 경우, 2주간의 격리 생활을 하게 된다.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격리 생활은 상당히 힘들다고 한다. 소설에서도 그런 내용이 나왔다. 브라질의 언론인 겸 소설가 줄리언 푸크스의 죽음의 시간, 시간의 죽음에서는 아파트에 격리된 한 사람을 비춘다. 사망자 수가 1,001명으로 집계된 날, 창가에서 이웃 아파트의 풍경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들이었다. 살아 있으면서 죽음의 죽흥성을 경험하는 것. 고통과 불행, 당혹스럽고 두렵고, 지루해지고 절박함의 순간들을 말하고 있었다. 폐소공포증까지 찾아오는 날이면 간절해지는 것들이 있다.

 


마치 어느 모퉁이에서 어둡고 아주 오래된 무언가가 나를 공격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을. 그럼에도 나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기를 갈망했다. 누구라도 좋으니 내가 아닌 누군가, 내가 모르는 낯선 누군가의 얼굴을. 그저 마스크나 창문에 가려지지 않은 인간의 얼굴이면 충분했다. (304페이지, 줄리언 푸크스, 죽음의 시간, 시간의 죽음중에서)


 

존 레이의 열린 도시 바르셀로나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통행금지된 상황에서 개 산책은 허용되자 그것을 이용해 개를 빌려주고, ’여행을 위해 얼마간의 요금을 받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여러 사람에게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다가 한 여자를 만나 좋아하게 되었다. 봉쇄조치가 해제되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자 그 여자와의 만남도 끝나자 봉쇄조치가 해제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을 담은 이야기였다.

 


 

 

사실 저도 이 전염병이 곧 끝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저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109페이지, 마거릿 애트우드,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중에서)


 

이 상황이 모두 끝나면, 우리는 가끔 여기서 산책을 할 수 있겠지. 공원에서 끝없이 트랙을 도는 대신 말이야. (52페이지, 카밀라 샴지, 산책중에서)


 

우리의 평범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활보하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환담하던 기억이 마치 꿈처럼 아스라이 떠오르는 것 같다. 설마 이대로 계속되지 않겠지, 하는 두려움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여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고 간절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 상황에 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가 가진 이 고통을 이기는 방법 하나, 이 책을 읽는 일도 포함될 것이다. 두려움과 고통에서 희망을 말하는 소설이므로!


 

#데카메론프로젝트 #소설 #소설추천 #인플루엔셜 #책리뷰 #도서리뷰 #마거릿애트우드 #레일라슬리마니 #케이틀린로퍼 #리브가갈첸 #파올로조르다노 #팬데믹앤솔로지단편집 ##책추천 #영미소설 #영미문학 #팬데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라는 제목만으로 나는 작가의 소설에서 보았던 것처럼 환경에 대한 르포식 에세이일거라 생각했다책을 받고 읽어보니 여행 에세이였다작가가 여행했던 장소의 기억들을 소환해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게 만든다또는 여행에 대한 간절함이랄까여행 에세이에서 여행의 간절함을 느꼈다우리는 지금 외국 여행을 갈 수 없고그저 여행의 기억들만 떠올릴 뿐이다.


 

작가는 출판사의 편집자 겸 작가로 커리어를 쌓아가던 중 대학 때부터 알았던 친구가 머물고 있는 뉴욕으로 향하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3주일간의 뉴욕 여행은 인생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서의 미래를 꿈꿔보는 일이었다뉴욕의 곳곳을 둘러보면서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지제국주의가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들의 유물을 보며 드는 생각들을 말한다.

 

 

 

센트럴파크에 소풍을 가서 오래된 펜스에 버려진 토끼 인형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버려진 물건들을 사진으로 담았다사진 찍던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그 순간을 기억하려 찍은 사진이 3백 장을 넘어간다고 한다. ‘잃어버린 것쓰고 버린 것에 적용하여 작가가 느끼는 아름다움에 부합(符合)하여야 했다.


 

여행은 이처럼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오랜 친구를 만나러 뉴욕으로 향했던 발걸음이 여행의 출발점이었다몇 달 뒤 새로 만난 친구의 교환 실습에 함께 따라가 독일에서 한 달 동안 지내게 되었다독일의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유서 깊은 소도시로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국경에 있는 곳이었다마을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면 네덜란드로 갈 수 있는 곳 아헨에서의 기억들도 삶의 한 부분에서 중요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여행지의 경험은 작가에게 소설의 중요한 인물과 장소주제를 나타내기도 한다독일의 아헨에서 여행했던 경험들이 시선으로부터,에서 주인공이 머문 공간으로 만들어져 우리를 그 공간을 떠올리게 했다이처럼 작가가 서 있던 장소바라보던 풍경그 순간의 생각들이 소설에 나타나 우리를 상상력의 세계로 이끈다.

 

 

 

친구들과 함께 드라이란덴푼트에서 독일과 네덜란드벨기에 세 나라의 국경이 한 점에서 만나는 꼭짓점을 표시한 경계석을 보고 느꼈던 감정은 경험한 자만의 소중한 감정일 것이다문득 재작년 가족들과 함께한 태국의 치앙마이 여행에서 미얀마라오스태국의 접경지대를 잇는 골든트라이앵글을 보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함께한 사람들과의 순간은 오래도록 그 기억 속에 머물게 한다작가가 뉴욕을 다녀온 후 뉴욕 앓이를 하다가 아헨을 다녀오면서 다시 시작된 그 장소의 앓이는 그 기억들 속에 있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를 만나러 엄마와 함께 오사카 여행을 하고영화이벤트로 런던을 다녀온 이야기들을 작가만의 시선으로 풀어내었다누군가의 여행은 여행에 대한 마음을 더욱 간절하게 만든다그 장소를 가고 싶은 마음좋은 사람과 어딘가를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외국을 마음대로 갈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간절해지는 게 아닐까.

 

 

 

여자들의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세계 곳곳의 여자들의 삶에 대해여자 이름으로 된 제목의 소설들을 많이 쓴 것은 그래서인 것 같다(중략) 세계가 이렇게 망가지고 무너져가는 것은이 세계를 복원하고 개선할 가능성을 가진 여성들이 교육과 사회 활동의 기회를 얻지 못해서가 아닐까 두려워하며 추측하기도 한다그 여성들이 잃은 가능성은 결국 인류가 잃은 가능성이 될 확률이 높아 조급해지지만여성이 극도로 억압받는 지역에서도 의미 있는 움직임들이 보이고 먼 곳에서도 지지를 보내기 예전보다 쉬워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희망이다. (227페이지)

 


온 몸을 검은 천으로 휘감은 부르카 차림을 한 여성을 보며 느꼈던 감정과 미국식 여성 혐오를  접하고 떠올랐던 감정들은 작가의 소설 속에서 아시아 여성을 대변할 수 있었다존중을 누리는 시대가 되길 바라고 모멸 대신 안전을 얻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람이 그대로 마음속에 스몄다.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는 만큼 정세랑 작가의 소설이 좋다작가가 가진 그 시선의 올곧음이 좋다소설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다정하고 따스한 작가의 언어들이 좋다.

(         )만큼 (정세랑)을 사랑할 순 없어!


 

#지구인만큼지구를사랑할순없어 #정세랑 #위즈덤하우스 #책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에세이 #한국에세이 #에세이추천 #정세랑에세이 #여행에세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