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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평전 -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그의 이름에는 언제나 얼마간의 부담이 붙어있다.
누구와도 타협을 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의식화의 원흉'이라느니 '사상의 은사'라는 극단적인 평가가 뒤따른다.
진실을 추구하고 바른 말을 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름에 파란곡절한 한국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사람.
그래서 첫만남이 쉽지만은 않다.

조금은 그를 안다고 할지라도, 이처럼 <평전>이라는 두툼한 책을 접하게 되면
혹시 그를 미화하려는 편향된 성격의 자료는 아닌지
한번쯤 떨떠름한 마음으로 앞뒤를 살펴보게 되는 것도
'우상 타파'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그의 일생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러시아 사상가 베르자예프(1874~1948)는 자신의 정신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이유로
인간을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분류했다고 한다.

<리영희 평전>의 저자는 책의 서두에 이 표현을 빌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리영희를 아는 '리영희人'과 '그와는 무연한 사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이 표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말일까?
 


 

'사상의 은사'니 '의식화의 원흉'이니 하는 그간의 평가들은 잠시 흘려듣기로 하고
적어도 그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어떤 '진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 하나만 남겨두고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머리와 가슴을 포맷한 채, 책장을 펼쳐든다.
 
평전[評傳] :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


한국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던 시대가 이 이야기의 배경으로 펼쳐진다.
일제시대, 8.15해방, 6.25전쟁, 4.19혁명, 5.16쿠데타, 유신정권, 군사정권, 민주화 운동,
그리고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시대.

처음부터 매서운 눈매, 백발의 노학자로 각인되었던 그의 이미지는
얼핏 배우 류승용(?)을 연상케하는 눈망울 초롱한 20대 젊은이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격변하는 역사의 장면마다 서서히 자신의 관점과 목소리를 가다듬기 시작한다. 

 


통역장교로 6.25를 겪으면서 '대한민국 군대의 야만성, 부패, 타락, 비인간적 실태'를 목격하고,
언론인(합동통신, 조선일보, 한겨레)으로 사회적 진실과 참상을 고발하며 갖가지 수난을 당하고,
교육자(한양대 신문방송학과)로서 냉철한 '이성'의 글쓰기와 더불어 사회운동에도 앞장을 선다.

그동안 '아홉 번 연행되고, 다섯 번 구치소에 가고, 세 번 재판을 받아 총 1012일의 감옥생활을 하고,
언론계에서 두 번 퇴직당하고, 교수직에서 두 번 해직당하는 파란과 중첩의 수난사'를 경험한다.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이러한 과정 속에 골고루 등장하며 그 의미를 드러낸다.
베트남전쟁과 미국, 중국, 일본, 소련 등 한반도와 관련된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중국어도 해독이 가능했던 뛰어난 어학 실력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빠르고 깊게 시대 흐름을 읽어낼 수 있었던 '언론인'이라는 자리가 큰 역할을 담당한다.
거기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글 하나를 쓰더라도 외국 대사관 도서실까지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하고 개인 스크랩북까지 만들어가며 글을 썼던 그 열정과 성실함.

그러자면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쉬운 말을 가지고 알기 쉽게 써야 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사물·관계를 평이하게 풀어써야 한다. …(추상적인) 이론으로 해명하려 하지 말고 구체적인 증거와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학자·전문가·교수·박사 따위의 자화자찬의 높은 자리에서 '가르친다'는 교만한 자세로서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친절함이 바탕이어야 한다.
- 평전 p.26; 리영희《역설의 변증》,1987
기자 시절 그는 '특급자료'들을 찾아 매주 미국·영국·프랑스 대사관 공보처 도서실 등을 '순례'했다. 거기서 신간, 논문, 정보저널 등을 읽고 복사하고 하나하나 점검해 나갔으니 그냥 앉아서 주어지는 자료만 소화해내는 기자들이나 대학에서 국제관계 연구를 하는 교수들보다도 앞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아가 그는 해외의 인맥까지 뚫어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자료도 입수해 들였다. 그는 이 많은 자료들을 일일이 관리하고 챙겨 스크랩을 만들어둠으로써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했다. 아마도 그는 한국에서 최초로 개인용 스크랩북이라는 것을 만든 사람일 것이다.
- 평전 p.242~243; 조유식 <리영희 그 독한 기자정신의 역정>, 《월간 말》1995.


이러한 내공을 바탕으로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가려진 실상을 <워싱턴포스트>, <뉴리퍼블릭> 등
해외 언론의 기고를 통해 세계에 알림으로써 정치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나아가
크고 작은 특종과 저술을 통해 국내외 외교관계나 정책 실행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뽑혀 미국에서 신문학 연수를 받으면서 해외의 독립운동 단체를 방문한 것이나
귀국 도중 도쿄의 서점에서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발굴하여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의 주요 서작들과 관련 자료에서 발췌된 상당히 많은 분량(평전 전체의 1/2 이상)의 인용문들이
장면 장면마다 생생하게 주인공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1960년대 중반) 그때 그 많은 후배 지식인들이 제기동의 내 집에 모인 까닭은 여러가지지만, 무엇보다 내가 거의 유일하게 국내외 시국정세를 앞서 내다보고, 그것을 설명해서 의미를 밝혀주고 내일의 전망을 예측해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지.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캄캄한 세상에 내가 한 줄이 빛이 되어,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는 상태였지요.
- 평전 p.201; 리영희《대화》311~312쪽. 
그 시대를 암흑으로 몰아가는 권력에 눈이 뒤집힌 자들…(중략)…그런데 그들은 하나의 위대한 우상 을 믿고 있었다. 반反 무슨무슨주의, 냉전논리, 흑백이분법, 총검숭배 따위가 그것이다. 평화는 약자의 도덕이라는 믿음에는 니체 숭배자였고, 권력의 의지만이 최고의 철학이라는 데서는 히틀러의 아류들이었다.
이들에 의해서 짓눌린 백성들은 이성을 믿고, 그 회복을 기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고, 뒤집혀 있고, 일그러져 있는 세상에 이성의 빛이 활짝 비치기를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 평전 p.282; 리영희, 풍운아 <우상과 이성>의 일대기 中
…호소력을 갖고 많은 독자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내용이 추상적·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민족적·인간적 삶을 규정하는 문제적 구조를 제대로 말하기 때문이었다. 그 추상성과 이론을 뒷받침하는 상황성이 있기에 책의 제목으로 《우상과 이성》이 되고, 저자가 투옥당하고 책이 수난을 당함으로써, 이 책은 문제작 또는 명저로 '만들어지고' '역사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었다. 《우상과 이성》은 이제 추상의 논리세계가 아니라 역사의 현실로서 이 시대 이 사회에 굳건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었다.
- 평전 p.289; 김언호 <리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을 만들면서>, 《책의 공화국에서》中

 

우리 사회, 특히 지식인들에게 끼친 그의 영향력이 어떠했는지는 수많은 언급들이 직접 증언한다.

   
  리영희를 '사상의 은사' '생각의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훌륭한 '정보'나 '견해'를 들려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고병권)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자체를 바꾸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

길고 긴 독재정권시대 젊은이들의 "몽롱한 의식에 끼얹은 찬물 한 바가지". (김삼웅 평전 저자)

리영희의 삶이 곧 한국현대사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

한국 진보적 지식인들의 보편적 세계관 형성에 기여했다. (위키백과)
 
   


이러한 영향력 때문에 <르몽드>는 '사상의 은사'라고 그를 칭했지만 뒤가 구린 권력자들에게는 '의식화의 원흉'이라 불리며 탄압을, 보수언론과 보수 성향 지식인들에게는 그 자신이 새로운 '우상'으로 들어섰다는 공격과 비판을 잇달아 받게 된다.

그들에 의해 직장을 잃고 감옥에 수감되고 책들이 금서로 낙인찍혀 감시를 받는 힘든 시간들이 그에게는 오히려 생각을 다듬고 세상을 살피며 더욱 명징한 글을 써내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 땅의 실천적 지식인들에게 반복적으로 되풀이되어 일어났던 서글픈 역사의 아이러니.

독립운동과 사회개혁,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분들이 왜 대부분 '투사'이고 '저항'의 이미지인지, 왜 그토록 반항적이고 모난 사람들처럼 보였는지에 대한 의문들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며 해소되는 느낌이다. 



   
  그는 특히 이념 편향적 사고에 따른 그릇된 용어를 바로잡는데 힘을 쏟았다. 지식인의 역할은 사물의 이름을 정확히 쓰는 것이라는 신념이었다. 《논어》<정언正言>편에 나오는 "정치의 요체는 곧 정명正名(사물의 이름 또는 명분을 정확하게 쓰는 것)"이라는 뜻에 따른 자세였다. -평전 p.227  
   

소통, 서민, 살리기 같은 단순한 용어들마저 그 뜻이 이상하게 변질되어 사용되는 현재와 비교하면
1960~70년대에 이미 이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후배 언론인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요즘 쓰여진 글이 아닌가 시대를 의심케 하는 아래의 내용들은 또 어떠한가.

…식민지적 재산질서를 반영한 지주계층과, 식민지교육으로 '지식인'이 된 '식민지적 엘리트'가 모든 분야의 지배질서의 상층부를 그대로 장악해버렸다. 국내외에서 민족해방을 위해 싸운 애국·독립지사들이 적잖게 있기는 했지만, 그들에게는 국내의 대중적 기반이 없었다. 친일·수구·반민족적 세력은 기득권의 보존이라는 공통적 이해문제로 단결됐지만 개혁을 앞세운 세력은, 대중은 조직화되지 못하고 지도층은 분열되어 있었다.
- 평전 p.385; 리영희《우상과 이성》中, 1997
지난 한 세월 동안 내게는, 이 사회에 '신문지'는 있어도 '신문'은 없었다.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는 넋두리를 인쇄한 '…지紙(종이)'는 내게 조석으로 배달되어 왔지만 '새 소식(신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소식이라는 것도 하나같이 권력을 두둔하는 낡은 것이고, 권력에 아부하는 구린내 나는 내용들이었다. 그러기에 그따위 '신문종이'를 만들어내는 신문인들이 감히 '언론인言論人'을 참칭할 때 나는 그들을 '언롱인言弄人'이라는 호칭으로 경멸해왔다.
- 평전 p.443; 리영희《自由人자유인》中, 1990
다만 나라(민족)의 운명을 그런 사람들에게 맡겨서는 안 됐었다는 우리 국민의 '직무유기'를 개탄하는 것이다.…우리와 일본의 관계를 이런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생각할 뿐 아니라 우리는 해방 직후와 그 후 오늘까지의 미국의 세계관이나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 평전 p.349; 리영희《분단을 넘어서》中, 1984


80년대에 일본 교과서 문제의 본질이 '과거'에 있지 않고 '내일'에 있다고 간파한 글(p.350)이라든지,
1994년에 쓴 <전쟁을 부추기는 자들이 있다>와 같은 글의 내용(p.475), 심지어
"분열주의자이지 통합주의자가 아니거든"이라는 절묘한 표현을 통해 이승만의 실체와 그들의 권력유지 형태를
예리하게 짚어낸 글(p.161~162)들을 보면, 그 지적에 감탄하면서도 어째서 수십년 전에 이미 비판받고 폭로된
그 장면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보기'로 재방송되고 있는지... 황당한 기시감 앞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 평전 p.27~28; 리영희《우상과 이성》서문, 1977



누가 살아 내었더라도 참으로 힘들었을 격동의 시대, 그 선택의 순간들.

편익보다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심지어 몇 번이나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진실을 추구하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단순하면서 확고한 기준 하나로 감당해온 험난한 여정.

냉전시대에 굶주리고 헐벗는 것으로만 묘사되었던 북한과 중국의 현실을 '미화'시켜 소개했다거나
'반공 친미'라는 대립적 구도를 통해서라도 한국 사회를 한 방향으로 묶어두려던 정치 권력에 대해
비민주성, 폭압통치 등 모나고 불편한 '유언비어'를 주장하여 젊은이들의 반공 의식과 건전한 사상을 '오염'시킨
'의식화의 원흉'
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그에게도 따라붙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를 비난하고
폄하를 한다고 쳐도  '치열하게 살아온 독립적인 시각의 언론인이자 학자 '임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그런 와중에도 부인,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부모님에 대한 회한, 가끔 드러나는 아래와 같은 내용들은
늘 꼬장꼬장하고 강직했을 것 같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새롭게 보여주는 듯하다.

남자와 여자의 판단이 다를 때 작은 일은 남자 쪽이건 여자 쪽이건 어느 것을 따라도 무방할 것이니 서로 양보하는 미덕이 해결해줄 것입니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의 큰일에서 의견차가 생긴다면 신랑은 반드시 신부의 의견을 따르기 바랍니다. 이것은 인생의 선배로서 경험적으로 드리는 충고입니다.
- 평전 p.517; 유홍준(미술사학자)의 결혼식 주례사, 1975

 
자신의 글에 책임지는 치열한 자세, 본질을 꿰뚫으려는 끊임없는 노력, 언행일치의 행동하는 양심.
직필 직언을 서슴지 않던 옛 선비의 이미지에 지식과 진실을 대중과 나누려는 근대 지식인의 모습까지.

또 다른 '우상숭배'를 염려하여 남들이 붙여놓은 '사상의 은사'란 표현을 굳이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역사에 이 정도로 투철한 문제의식실천정신을 가진 '지식인'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쯤은
아무리 '보수적'으로 몸을 사려 이야기한다고 해도 응당 하나의 '모범'으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나는 좌·우의 어떤 정치·이데올로기적 권력이건 진실을 은폐·날조·왜곡하려는 흉계에 대항해서 진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른 모습대로 세상에 밝혀내는 것을 글 쓰는 목적으로 삼고 일관하였다. 광적인 반공·냉전·전쟁애호·반통일 세력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시기에 특히 그러했다.
'진실'은 균형 잡힌 감각과 시각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左와 우右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맞고, 인간 사유의 가장 건전한 상태다.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평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
- 평전 p.481; 리영희《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中, 1994

 
<오마이 뉴스>에 연재되었던 때문인지 6~10페이지 간격으로 매듭이 되어있는 형태의 평전.
가끔씩 흐름이 끊어지고 단편화 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만, 한 가지 이슈에 지나치게 늘어지지 않고 보기보다 쉽게 읽힌다는 것 또한 이러한 편집의 영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요 저서에서 인용된 수많은 '명대사'와 함께 한 편의 영화나 대하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
<굿나잇 앤 굿럭>, <프로스트 vs 닉슨> 또는 <바더 마인호프> 같은 타입의 영화들이 머리속에 슬쩍 대비되어 떠오른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극적인 장면이나 반전은 아마 힘들것이다. 주인공은 초지일관 변함이 없으니까...)




 

고민하는 20대 젊은이의 눈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시대를 염려하는 80대 할아버지의 목소리로
끝을 맺을 때까지, 진실을 추구하는 그 의지는 한결같고 세상을 보는 눈과 양심은 늘 푸르다.

아직 그를 몰랐던 이들/이미 아는 이들에 상관없이, '은사'나 '원흉'이라는 세간의 평가보다는
치열하게 살았던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파란만장한 우리의 근현대사를 다시 짚어보면서
사건 이면의 진실을 추구하는 시각, 그런 생각이 빚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 주요 저서의 내용들까지
전반적으로 돌아보며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찬양의 뉘앙스는 미리 걷어내고 읽으시길.)

그분의 책을 읽었다지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제목으로부터의 통찰'과 몇 가지 비판적 시각 외에는
어느새 흐릿한 기억속에 현실에만 안주하고 있었던 '지나간 세대'의 독자들에게도 유익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너도나도 '지식인'을 자처하는 이 시대에, 현대 지식인의 사표로 거론되는 한 인물의 삶을 통하여
한국의 근현대사와 그 시대의 '좌와 우'를 뒤흔든 사상적 개요까지 훑어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까 싶다.


장하준 교수의 교양 경제서가 '금서'로 지정되고 부시2세가 '평화'의 이름으로 종교집회에 초빙되기도 하는 전근대적 상황이 가끔 펼쳐지지만, 신문을 뒤지고 대사관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찾아야 했던 과거와 달리 '클릭' 한 번으로 위키리크스며 동서고금의 엄청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지금.

지식이 있다고 '지식인'이 아니라 어떤 눈과 자세를 지녀야 참다운 지식인인가를 말없이 보여주는 그의 삶과 글들은,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얼마나 지독한 고민과 희생들을 바탕으로 한 걸음씩 힘겹게 전진해왔는지를 역사와 함께 당당하게 증거하고 있다. 스스로 인지하든 못하든, '리영희와 무연한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는 현대 한국 사회와 이 땅의 지식인에게 끼친 그의 영향력이 너무도 크다.


오랫동안 그분의 서재에 걸려 있었다는 서산대사의 시를 읽으며,
어느 한쪽 치우침 없이 허투루 살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다시 옷깃을 여미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평전>을 덮는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길을 걸을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흐트러지게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내가 걷는 발자국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뒤에 오는 이의 길이 될 것이니

 ▲李泳禧 : 사진출처 ⓒ프레시안(김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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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영희.. 그가 없으면 우리 현대사는 조금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도 같아요. 이 세상에 있었고, 없었고 자체가 이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친 삶을 살았다는 게 정말 대단하게 느껴져요.
전, 녹평의 김종철 선생님이 강추하셔서 <대화>(박헌영씨의 리영희 인터뷰 기록이죠..) 읽었는데, 진짜 좋은 독서 경험이었지요. 그분의 삶과 말에서 배울 게 정말 많더라구요. 무엇보다 그분의 삶이 고맙고,존경스러웠고요.

herenow 2011-02-28 16:06   좋아요 0 | URL
예, 말 그대로 시대의 '소금'의 역할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대화>는 정말 필독서구요.
<대화>나 그분의 책들, 이번의 <평전> 같은 책을 볼 때 마다 놀라는 것은
10~40년 전에 바라보고 해석한 말씀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빛을 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전>이라는 특성상 '우러러보고 칭송하는 감정'을 담을 수 밖에 없는지라, 미리 그런 영향을
마음속에서 배제하고 읽기 시작했는데도 어쩔 수 없이 감탄하게 되는 그런 거 말이에요.
좌파 우파 어쩌고 편가르기를 떠나, 알게된다면 존경의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cyrus 2011-02-28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입체적인 내용,, 긴 글임에도 불구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읽혀지게 되네요,
정말 이 분은 존경받아야할 마땅한 인물인거 같아요. 한편으로는 다음 세대에도 리영희 선생 같은
인물이 우리나라에도 나올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 분의 별세가 지금도 아쉽기도 합니다.

herenow 2011-02-28 16:08   좋아요 0 | URL
이런 분들이 돌을 골라내고 밭을 다듬어 씨를 뿌려놓았으니
우리 세대가 균형있게 잘 키워 나가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1-02-28 0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8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뚜버기 2011-02-28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꺼운 책내용과 선생의 사상, 생애를 유기적으로 잘 엮어서 정리해준 리뷰로군요. 잘보았습니다.

herenow 2011-02-28 16:10   좋아요 0 | URL
다음 뷰 통해 오셨나요? 고맙습니다. ^ ^;

마녀고양이 2011-02-28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장바구니로.... 굉장히 좋은 리뷰네요.

"문제적 구조를 제대로 말하기 때문이다" 란 문구가 많이 와닿습니다.
순수하고 착하고 또는 영리하고 능력있더라도, 현실과 앞날을 제대로 판단하고 예측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문제적 구조를 제대로 보고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워낙 드믈고, 그런 사람은 해당 분야에서 몇 안되는 전문가나 선생님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다 "진실을 진실 그대로..." 까지 겹친다면, 진정한 스승이라 모실 수 밖에요.

히어나우님, 지금은 혼돈과 암흑의 시대일까요, 아니면 두보 전진을 위한 한보 후퇴일까요?
사람들이 다시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복지가 얼마나 중요한가, 나눔이 얼마나 중요한가 뼛속깊이
느낀다는 점에서 필요한 시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요즘 합니다.


2011-02-28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8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8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02-2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극적인 장면이나 반전은 아마 힘들것이다. 주인공은 초지일관 변함이 없으니까...' 극적인 장면이나 반전은 지금부터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숙제로 하고, 숙제 잘 해서, 영화 찍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요즘 제가 '허세' 병 걸렸나봐요. 어쩌자고 이렇게 책임지지 못할 말이 왜 자꾸 튀어나오는지.. ㅠㅠ)

herenow 2011-02-28 16:48   좋아요 0 | URL
와우~ 정말 "극적인 반전"이 기대됩니다.
응? 우리 스스로가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 가야 하는 거군요. ^ ^
 
신과 함께 : 저승편 세트 - 전3권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길라임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착했나? 작년부터? 
<신과 함께> 읽고부터 그랬던 거 아니야? 
 
이봐, 이 만화는 댁들이 생각하는 그런 '만화'가 아니야. 
골방에서 10년간 마감에 쫒기던 작가가 한 컷 한 컷... 
 
실은, 다양한 전통문화와 소중한 삶의 가치들을 유머 속에 녹여낸 작품이라구 이게. 
각종 지옥, 시왕(十王), 저승차사, 강림도령, 사만이, 할락궁이,
지장보살 같은 이야기가 괜히 겁주려고 꾸며낸 얘기가 아니라는 말이지.

그렇다고 이게 심각한 만화로 보여? 안 그렇잖아. 진짜 웃기고 재미 있잖아.
여기 나오는 에피소드, 공감가고 재미나고 눈물나고... 막.. 안그래?


맞아, 2가지 스토리가 동시 진행중이야.
저승에선 49일간 나랑 함께 여행하며 재판 받는 노총각 김자홍씨 이야기,
이승에선 저승차사 3인방과 이들이 추적하는 말년병장 유성연씨 원귀(冤鬼) 이야기.

부제가 <저승편>이라 저승 이야기가 전부일 것 같지만, 이게 다 그쪽이 살아가는
매일의 '이승'이 원인이 되어 그걸로 복도 받고 벌도 받는 스토리라구!
알고보면 '정의란 무엇인가'가 확실히 전달되는 내용이라니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저승차사 3인방, 진짜 '물건'이란건 다들 잘 알거야. (강림도령, 덕춘이, 해원맥이)
얘들 때문에 한번도 컥 가슴 뭉클했던 적이 없다면, 책값 물어줄... 아니, 죽을때 단단히 각오하는게 좋아. (흠)
나, 그쪽이 신경 안써도 되는 그런 사람 아니야. 
 


"그렇다고 이 트레이닝복이 안어울리진 않죠." : 염라국 국선변호사 진기한


잘 보면 G옥 마켓의 '죄가 쏙 비트', 염라대왕이 즐겨찾는 검색엔진 '죽을(Joogle)',
호텔 헬리포니아(Hellifornia), 지옥다방 '헬벅스(HellBucks)' 같은 티나는 간접광고(?) 말고도
깨알같은 풍자와 패러디가 곳곳에 쏙~쏙~ 묻어나와 있다구.

알아. 저승행 열차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호그와트 열차'랑 좀 비슷하지? (은하철도 999~?)
그렇다고 '일산 대화역' 가서 기둥에 좀 뛰어들지마. 나만 바빠져. (우씨, 또 민원 들어왔네...) 

"페이퍼 타올이 요기있네?" (상권 p.74) 라든지
'1986년 평화의 댐 5천원'(하권 p.138), '삼도천 정비사업'(상권 p.119) 같은건 또 어때?
억울한 군생활 사건 사고에 어, 하며 뭔가 떠올린 사람도 제법 있었을걸?

특이한 '녹색 머리'로 유명한 지장보살께서 검은색 헤어스따~일로 등장하신다거나
그림 설명에 지옥 이름 하나쯤 실수한건(상권 p.155) 옥의 티로 봐주자고. (새 판 찍으면 고치겠지?)
어쨌건, 저승이나 이승이나, 아는 만큼 보이는거야.


 


저기... 상/중/하 책들마다 뒤쪽에 만들어놓은 특별부록 봤어? 그래, 올컬러 특별화보.
인터넷 연재할땐 없었던 "깨알같은 네 컷 만화"도 거기에 실려있어. 교양 돋구는 사진도 많이 있고.
웹툰만 봤다고 더 볼 게 없는 그런 책이 아니라는 소리지.

내가 어디가서 이런 말 잘 안하는 사람인데,
지금 댁이 생각하는 그 상투적이고 진부하고 유치한 '만화'보다
곱절은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교양까지 쌓이는 만화라구 요게.


뭐? 그림이 대충 그린 것 같다고? 디테일한 맛이 없다고?
똑바로 그리면 후회할텐데...?
윗몸 일으키기... (쓰읍~)...아니라, 그래서 상상하고 공감할 여지가 더 많은 거라구. ;;

한빙지옥 '업관' 통과할 때 무빙워크 기억나? (상권 p.193)
① 걷거나 뛰지 마세요 ② 전방의 틀 모양대로 자세를 취해주세요. (그 다음... 알지? ㅎㅎ;)  
검수지옥에서 죄의 무게를 재던 '업칭'이나 염라대왕 협찬하신 '천산갑'은 또 어떻구.
대충 엉성하게 그린 것 같아도 웃기고 겁나고 재미있고, 눈물까지 제대로 쏙 빼게 해주잖아.

잘 모르고 써왔을 '명복'(저승에서 받는 복)이나 '비수'(날카롭고 칼집받이가 없는 단도)라는 말,
'극락왕생'(극락세계에 다시 태어남) 같은 말도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되지 않았어?
"49재(齋) 지낸다"는 그런 말이 건성으로 안들리고, 뭔가 알 것 같은 기분도 생길테구. (49'제'가 아니야~)

7 x 7 = 49일간 저승을 여행하며 죽기 전의 언행을 심판 받는 프로세스는
우리 조상들만의 독창적인 발명품이 아니니 혹시라도 우쭐하며 오해하지 말라구.

불교+도교+민간신앙의 영향을 받은 티베트, 동북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49일'이라는 전체 스케줄까지도
동일하게 전해오는 이야기니까. (디테일은 좀 달라).  궁금하면 작가가 공개해놓은 아래 참고서적이나
제목만 겁나 무서운 <티베트 사자의 서> 같은 책을 '이쪽 세계' 여행 가이드로 참고하면 괜찮아. (그러라고 써낸 거야)
옛날 사람들이 '미신을 믿어서 꾸며낸 이야기'라기엔(?) 너무 심오하고 구체적이라 깜짝! 놀라울거야. 

불교미술의 해학 : 백중과 49재, 지옥에서 피우는 담배맛, 지옥의 옥졸 등을 참고 하라구.

우리 신 이야기 : 오방색, 저승신(뭐뭐~ 대왕들 다 나오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 저승차사 강림도령의 후덜덜한 과거... ㅎㅎㅎ;

이야기 한국신화 : 저승차사가 된 강임의 내력, 저승사자를 대접하여 수명을 연장한 사마장자, 소사만이와 저승사자 등등.. (요 책도 물건이지)
※ 이 리스트에 없는 <
우리신화의 수수께끼>도 참 괜찮아.


귀족적인 마스크에 거침없는 기품, 후덜덜한 섹시미!
돈 잘 벌고, 돈 많고, 돈 잘 쓰는 사회지도층 (응?) ....... 껍데기만 번지르한 요런 것보다
오늘도 가까운 사람에게 말 한 마디, 손길 한번 어떠한 '마음'으로 건네며 살아왔는지
그런 걸 알아봐주는 고마운(!) 곳이라고, 저승은.  
김자홍씨 재판 속에서 진짜 서민들, 착한 사람들, 손해보며 살았던 사람들 위로 좀 받았을거야..  
 
부모 가슴, 남들 가슴에 잘난 척, 모르는 척 쾅쾅 못이나 박고 다니다가는
5번 척추가 6번 되는 수가 있어...
어떤 벌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받게 될 거야.



발설지옥 재판 중에 나타난 지장보살(우측), 염라대왕의 불편한 표정과 당황한 판관들 
 


저봐 저봐, 사람들은 왜 그래? 귀여운 지 새끼들한테는 안 그러면서,
꼭 남들이랑 있으면 입술에 거짓말 묻히고, 남들 손해 입히면서 모르는 척 하더라?
아잇, 드러. 이리와 봐...
아, 죽어야 올 수 있는 곳이지 여긴.  (... 왜 거품 묻히고 눈은 감고 그래?)

나중에 죽어보면 알게 될거야. 아, 내가 저런 분과 함께 저승 여행을...
뭐 그런 생각 하게 될 그런 사람이라고 내가.

응? 그럼 <신과 함께>의 그 '신(神)'이 바로 나님 아니시냐구?

하핫~ 김자홍씨도 그걸 물어보던데(중권 p.123), 내 정체(?)는 '하권'에 나와있으니 그걸 좀 참고하고...
사실, 요 제목은 곰곰히 생각할수록 의미가 깊은 거거든.  그러니 그쪽이 찾으면서 좀 즐겨봐.
저승 시왕들, 가택신들, 죽은 영혼들, 저승이라는 시스템 자체, 그쪽이 믿는 神, 바로 '그쪽' 등등등 (응?)
온갖 것들을 神으로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강림도령이 부르는 노래 속에도 힌트가 들어있어.

넋이로세 넋이로세~ 넋인 줄을 몰랐더니 오늘 보니 넋이로세~
신이로세 신이로세~ 신인 줄을 몰랐더니 오늘 보니 신이로세~
- 진도 씻김굿 (하권 p.164)

 
어쨌거나, 나에 대한 배려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죽기 전'에 한번 정도는 자신을 점검 했어야지.
내가 모르는 착한 일은 없어? 몰래 도와주고 티 안내고 넘어간 적은 없어?
시간이 없었어? 상황이 안됐나?

누가 그쪽한테 못된 짓을 좀 했어도, 좋은 말로 달래든가 차라리 조금 손해를 봐주던가
내가 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란 말이야...  

어이, 거기! 덕춘이한테 소리 좀 그만 지르세요.
방금도 막 밀치고 그러시던데, 그러시면 안 됩니다.

저한테는 이 사람이 김태희고 전도연입니다.
제가, 착한 사람 열렬한 팬이거든요. 

 


"...... 입 닥치시고 어금니 꽉 무세요" : 저승차사 3인방 (해원맥, 이덕춘, 강림도령)
 

혹시 오해할까봐 말해두는 건데, 나 추천이나 땡스투 받으려고 이러는거 아니야..
(그래서 제가 좀전에 '저기..' 하면서 수줍게 말 꺼내는거 못 느끼셨어요? ;;;)
빙의된 저승 변호사의 윤리란 이런 거야. 일종의 재미.. 아니, 선행..이지. 나 가정교육 이렇게 받았어. ;;
그러니까, 떨려 죽겠어도  "착하게 살아".


엔딩 유출에, 웹툰 링크에, 악성 스포들이 독자들을 못살게 흔들어대는 오후다.
그쪽이 이 리뷰를 볼 때에도 이런 오후일거야.
놀라도 괜찮아. 그러라고 쓰는 거야.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난다며.
어떻게 내 똥꼬에 자꾸 ㅌ을 돋게해, 이 어메이징한 만화야.



"문자왔쑝~ 문자왔쑝~"

어, 또 새로운 영혼이 도착한 모양이야.
이번엔 늦지 않게 마중 잘 나가야지.

오늘도 이승에서 건투를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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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1-02-16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erenow님 뽐뿌질에 저도 이 책을 사고 싶잖아욧!!ㅠㅠ(책임지세욧~~~흑)

herenow 2011-02-16 14:22   좋아요 0 | URL
헉.. 책임이라는 말 무서워욧~~ ㅠ.ㅠ;
귀엽게 그냥 재미로 봐주세용. ^ ^;

잘잘라 2011-02-16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빙의된건 저승 변호사가 아니구 김주원이구만요.ㅎㅎ

헌데 결론이 "착하게 살아야겠다" 인거예요? 음.. 그럼 저는 이 책 안봐야 될것 같아요. 그렇쟎아도 너무나 차카게, 차케빠지게, 차카게만 살아서 갑갑할지경인데 뭘 더 어떻게..?? ㅋㅋ


herenow 2011-02-16 16:51   좋아요 0 | URL
1. 네, 원래 '김주원에 빙의된' 저승 변호사 컨셉... (이 말투 더이상 못써먹을 듯 ^^;)

2. 결론은? 보는 사람 마음이죠. ㅋㅋ
아시겠지만, 줄곧 차카게 살았다고 재미와 감동을 못 느낄 작품은 아닌 듯 해요.

3. 2012년 12월 21일 지구 대변환을 대비하여 (믿거나 말거나), 관심있는 전문가들이 모여서
대책을 의논한 적이 있었더랬죠. 태양폭풍? 종말론? 재림? 외계인? 오컬트? 마야? 온난화? ...
높은 산 위에 지하 벙커를 파고 식량과 물을 준비하자는 것에서부터, 외계 존재로부터의 구출,
종교적 믿음(성경의 아마겟돈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서 그 시나리오를 따르려는 광신도도 있다죠),
에너지 변화에 대비한 몸과 마음의 정화 등등등... 지극히 현실적인 것에서 SF스러운 것까지
다양한 분석과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복잡다단한 중간 단계를 거쳐서 도출된
가장 현실적이고 유력한 대비책의 하나도 이거였답니다 = "착하게 살자".

4. 조폭 문신의 '차카게 살자'부터 이 책의 '착하게 살자'까지 여러가지 개념 정의가 있겠지만요,
'착하다'는 도덕적 관념에 붙들려 자기 삶을 희생하고 등신같이/성자같이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 때문에 죄짓지 않도록 해주는 적극적 개념을 깔고 있는 것도 있더라구요.
피해의식과 자기연민 속에 나 혼자 손해보고 이용당하며 공주병/성자병 환자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용하고 속여서 그 사람 스스로 죄 짓게 되는 것을 지혜롭게 막아주는 자비와 너그러움,
더불어 나 자신도 착하게 보살필 줄 아는 그런 것이 덕德과 도道를 말할 때의 그 착함이라 하네요.
(물론, 깜냥이 안되는 저의 경우, 착한 사람 기분 맞춰 점심이나 얻어먹곤 합니다만... ^^;)

요 며칠 메리포핀스님 서재에 적어놓으신 글들의 분위기가 댓글에도 비치는 듯 하네요. ^ ^
평안하시기를...

잘잘라 2011-02-18 00:40   좋아요 0 | URL
우하하.... 3번, 대에~~~~~~~~~~~박! ㅋㅋㅋㅋ
4번, 나 자신도 착하게 보살필 줄 아는!!! 여기 밑줄 쫙^^

cyrus 2011-02-1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 알라디너분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은거 같은데,, 저는 예전에 <짬>을 재미있게
읽어서 이 만화도 보고 싶네요. 그런데 도서관에서 비치가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동네도서관에도
이 만화책 비치되었으면 좋겠어요 ^^;;

herenow 2011-02-16 16:54   좋아요 0 | URL
뭐,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그렇지만.. 다들 알아서 잘 보시던데요? ㅎㅎ;

마녀고양이 2011-02-16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해의 여지가 있는 댓글이지만,
히어나우님의 이런 말투 페이퍼, 진짜 사랑스럽단 말이예요.
온라인의 그대와 사랑에 빠지게 하지 말란 말이야, 이 어메이징한 히어나우님! 아하하.

<살아있는 우리 신화>를 정말 폭 빠져서 읽었었는데요, 거기에 강림도령, 한랑궁이를 만났었어요.
그런데 이 코믹스가 전통과 삶의 가치를 녹여냈다니... 아아, 너무 땡긴다는거죠!

herenow 2011-02-18 00:25   좋아요 0 | URL
오해? 전혀요~ 역시 마녀고양이님 ㅋㅋ
예고한대로 여력이 없어서 논문(?)은 못 썼구요..
웃자고 끄적거린 글, 생각보다 길어져서 리뷰로 일단 투척... ㅠ.ㅠ;

알려주신 책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시크릿가든 드라마 보셨으면 원래 과장된 말투라는건 잘 아실테죠? ^ ^;


L.SHIN 2011-02-16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하핫, 재밌겠군요.
종교적인 것을 떠나서 인생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herenow 2011-02-18 00:33   좋아요 0 | URL
인생까진 보장을 못해드리지만요, 부모님께 효도하며 잘 해드려야 겠구나..
이정도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 ^

드라마 보신 분들은 특유의 과장되고 건방진 표현을 윗글에서 감안해서 보시겠지만
시크릿가든 안보셨다면 과잉광고+뽐뿌질+초건방체의 어설픈 패러디(?)이니 참고해주세요.
^ ^;

2011-02-20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erenow 2011-02-22 00:17   좋아요 0 | URL
아, 그것도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나온 대사를 살짝 패러디 한거랍니다.
저승에서 주인공의 변호를 맡아준 '진기한' 변호사(파란 추리닝)가
시크릿 가든 김주원(현빈)의 말투를 흉내내어 이 만화의 소개를 한다는 설정이죠.
너무 교훈적인 내용이 되어버렸나요? (그 장면 아신다면 오히려 웃을 수도 있는 대사 ^ ^;)

2011-02-22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오해하고 뭔가 눌러버렸네요. 그러게 수줍게 '저기~' 하지 마셨어야죠.ㅎㅎㅎ
우리 주원님 말투는 엄청 패턴화된 말투이긴 하지만, 히얼나우님의 완벽한 빙의 능력에는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신과 함께' -지금은 눈팅이지만, 이거 결국은 장바구니에 담길 것 같은 예감...^^

2011-02-23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도둑 2011-02-24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치로 똘똘 뭉친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승사자 3인방 앞에선 정말 입닥치고 어금니 꽉 앙다물어야 할 것 같아요..
ㅎㅎㅎ 착하게 살아야겠다...


2011-02-24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보집권플랜>을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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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동막골>에서, 인민군 리수화는 동막골의 노촌장에게 의아해하며 묻는다.
"큰소리 한번 내지 않는 위대한 영도력의 비밀이 뭡네까?"

"뭐를 마~이 멕예야지 뭐."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곳 어디서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온갖 방법들이 시도되었다.
혼자만 잘 먹는 것에서 → 다함께 잘 먹는 것으로,
다함께 잘 먹기 위해서는 전체 자원을 어떻게 나누고 운용하는가 하는 것이 대략의 내용이었다.

마찬가지로 경제·정치 모델에서는
골고루 나누는 것에 더 신경 쓰자는 쪽을 '진보-개혁-좌파'의 입장,
키우고 유지하는 것에 우선 집중하자는 쪽을 '수구-보수-우파'의 입장이라고 대략 정의내려 왔다.


◆ 무엇을 묻고 무엇을 대답했나

<진보집권플랜>에서 오연호-조국 듀엣이 대화를 통해 짚어내는 현실적 문제는 시의 적절하고,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대체로 명확하다.

책은 크게 6개의 마당으로 2010년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 정치적 현실을 되짚어본다.

(1) 성찰                  : 왜 진보가 집권해야 하는가
(2) 사회·경제 민주화 : 특권과 불공정의 시대를 넘어
(3) 교육                  : 청년들의 미래에 투자하라
(4) 남북문제            : 그래, 통일이 밥 먹여준다
(5) 권력                  : '괴물' 검찰 어떻게 바꿀 것인가
(6) 사람                  : 잔치는 다시 시작이다


'진보·개혁'이라는 시각을 통해
과거 반성 + 현재 분석 +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본 것이다.


책 제목에서부터 정치적 입장이 뚜렷하니 어쩌면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이 남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다음과 같은 주제들이 과연 정치적 편향에서만 비롯된 것이겠는가?

언론 통제, 재벌로 대표되는 경제권력, 무상급식 논쟁, 여성의 출산 부담, 노동시간과 여가활용, 
  복지 확대와 세금 증가, 청년 실업, 4대강 토목공사, 비정규직 확대, 양극화된 기업 환경, 세습경영,
부동산 거품과 주택 문제, 뉴타운과 용산참사,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복지 정책별 차이, 
  대학 교육의 질, 외고 논란과 입시 제도, 대학간 서열화와 채용 정책, 학벌에 의한 차별,
핀란드 교육, 빚쟁이 낳는 대학 등록금, 사립 재단 비리, 햇볕정책과 북한 핵실험 논쟁, 천안함, 
  한미동맹, 주한미군, 개방과 세계화, 한미 FTA의 불공정 조항, 식량주권, 이중국적과 병역문제,
외국인 노동자, 노무현 대통령과 검찰 권력,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 검찰 개혁, 코드 인사 논란, 
  2012년 대선, 야권 통합, 선거제도 개정, 20대의 보수화, 유시민/정동영/안희정/이광재/김두관/
이정희/송영길/원희룡/나경원/박근혜/김문수 등 유력 정치인에 대한 인물론과 비평, etc.


책을 읽으면 지난 3년, 나아가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을 관통했던 주요한 이슈들을
재빨리 훑어보며 쟁점이 되어왔던 부분들을 간략히 정리해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주제를 일반인들이 정리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면서도 중요한 대목을 놓치지 않는다.

멋있는 용어나 개념을 내세워 그걸 잘 모르면 무슨 소리인지 선뜻 감이 잡히지 않는다거나,
읽는 사람이 자신의 교양수준을 자책하게 만드는 현학적인 표현도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시사주간지 정도의 난이도에 토크쇼 수준의 재치, 거기에 지식인으로서의 문제 분석이 곁들여져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 제기이고, 그에 대한 논의 또한 대체로 고루하지 않다.
대화속에 인용되는 책이나 시, 노래, 영화 이야기들은 그 내용에 말랑한 온기를 더해준다.


 


◆ 어떻게 하자는 소리일까?

나름대로 정리해본 이 책의 논리 전개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역시 "뭐를 마~이 멕여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밥의 문제', 복지 정책.
      먹고 자고 입고, 보육과 교육, 일자리, 주택, 건강에 대한 문제 해결은 필수적이다.
      대중의 관심이 정치 영역에서→ 경제 영역, 생활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무상급식, 준 무상의료와 같은 구체적인 '생활경제' 어젠다를 찾고,
      제대로 된 '대안 경제모델'을 제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2) 그러기 위해, 정치권에서는 진보·개혁 진영의 '연대'를
     20대, 30대, 40대들에게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현실적으로 힘겨운 '정당 통합' 보다는, 소통합과 상설협의체 등의 협의기구를 통해
      '하나로 합치지 말고 하나인 것처럼 연대하자'는 제안이다. 동시에
      무관심한 20대, 분노하는 30대, 이중적인 40대들에게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3) 그래서 정치권과 시민들이 함께 '판을 바꾸고 인물을 키워보자'고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드림팀'과 같이 새로운 판에 대해 함께 구상하고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의 '놀이터'가 제시된다. 앞으로 더 생각하며 키워나가야 할 영역이다.

(4) 그렇게 해서 바꿔야 할 것은 바로 '제도'이다.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어떤 정의도 철학도 근사한 담론들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
      현실 생활에서 효력을 발휘하고, '마~이 멕일 수 있는' 살맛 나는 세상으로 이끌어 주는
      실질적인 장치는 '제도'와 그것에 기반을 둔 '사회구조'.

(5) 그리고,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정치'이다.
      정치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대다수 시민을 위해 '제대로 잘 하는' 정치.


   
  오연호 : 우리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제도는 정치인들이 바꾸는데, 우리 사회는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정치인이 만든 틀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데, 시민들이 그들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게을리 하고 나아가 그들을 냉소적으로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보는 셈이겠죠.

조국 : 현재 대중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일자리, 교육, 주택 문제 등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즉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성취하려면 정치가 제대로 서야 합니다. 제도를 바꿔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물론 아래로부터 운동이 일어나고 대중의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꼭지'는 정치가 따줘야 합니다. 어떠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가는 정치인이 결정합니다. (중략)
  그렇다면 정치인들에게 그저 맡겨두면 될까요? 물론 아닙니다. 시민들이 풀뿌리 수준에서, 그리고 각자의 영역에서 참여의식을 가지고 뛰어들지 않으면 정치인은 자신과 자기 정당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게 됩니다. 정치인 개인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렇게 구조화되어 있다는 거죠. 정치권 바깥에서 정치인과 정당에게 압박을 가해야 합니다. -p.38~39
 
   



◆ 무시못할 정치의 힘, 그래서 집권이 필요한 건가

개인적으로 와닿은 이 책의 미덕은 크게 3가지였다.

첫째, 지난 몇 년 동안의 사회적 이슈들을 적절한 난이도로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둘째, 솔직히 무시해왔던 '정치'의 중요성을 달리 인식하게 된다는 것.
셋째, 이 내용을 계기로 어떤 식으로든 다른 논의들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두 사람의 분석이나 제안에는 다른 의견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아마 자칭 '진보·개혁·좌파'라는 사람들이 더 그럴 것이다. ㅎㅎ;
그 재능을 나누고 쪼개는 쪽으로 쓰기 보다는, 통합하고 연대하는 쪽으로 집중하면 어떨런지.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고 일반 시민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쪽으로도 말이다.

정치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에 책으로 접한 것만도 여러 차례 되었던 것 같다.
조지 오웰부터 조국-오연호에 이르기까지
"정치에 무관심한 것도 정치적 행위" 라는 똑같은 요지의 멘트를 날리지 않나,
미셸 푸코는 대놓고 "젠장, 어째서 당신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거요?" 라고 하지를 않나...

오연호-조국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는 그 당위성이 차근차근 접수되는 느낌이다.
'제도'로 만들어야 변화가 일어날 수 있고, 그 제도를 만드는 것은 결국 '정치'라는 이야기.

워낙에 '철학'도 없고 '정의'나 '도덕성'은 찾아보기 힘든 '그들만의 정치'를 목격하고 있는지라
그럴싸한 정치철학과 정의론, 투철한 윤리의식 같은 것이 먼저 그리워지는 현실이지만,
일단은 씹어대고 무시해왔던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 그들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하고
간편한 손가락질 보다는 가능한 방법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 내게 일어난 분명한 변화이다.

   
  조국 :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권력혐오증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인은 악마적 힘과 손잡는 사람"이라고 갈파한 바 있어요. 정치권력은 다름 아니라 악마적 힘입니다. 이 힘과 손을 잘못 잡으면 악마에게 내가 넘어가죠. 이 힘을 포기하면 반대 정파가 이 힘을 사용하여 나를 억누르죠. 그러나 그 힘을 정확히 사용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능력이 정치인에게는 필요한 겁니다.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에 능한 것을 넘어, 그 권력을 잡았을 때 이를 잘 다루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거죠. 진보·개혁 진영의 사람들은 권력 행사를 혐오하는 경향을 버려야 하며, 권력을 유능하게 행사하는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p.253~254  
   

 


 


◆ 어떻게 골고루 마~이 멕일까?

무상급식에서 촉발된 '복지' 논쟁은 이 책의 출간을 전후로 진보/수구 모두의 핵심 이슈가 되었다.

그동안 인상깊은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던 진보·개혁 정당은 책 내용 그대로
무상급식에 이어 의료 등 다른 분야로까지 '보편적' 복지 간판을 계속 밀어부칠 기세이고,
부자 감세, 소외계층 지원 삭감 등 기득권 배불리기만 '선택적'으로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복지 이슈를 싸잡아 '포퓰리즘'이라 평가절하했던 수구·보수 정당은 뒤늦게 눈치를 살피면서
역시 '선택적'으로 수정된 복지 정책을 원래 자신들의 것이었던 양 들고 나타나는 모양새다.


   
  조국 : 그리고 진보·개혁 진영이 주의할 것은 복지가 진보·개혁 진영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비스마르크와 드골이 독일과 프랑스에서 복지국가의 기초를 놓았고, 골수 신자유주의 정당이던 스웨덴 보수당도 전격적으로 복지국가를 수용하며 집권했죠. 복지국가 모델은 사회민주주의의 비전과 투쟁의 산물이었지만, 이후 보수 진영도 이를 채택,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떤 정책이건 먼저 주장했다고 해서 그 과실果實이 자기에게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예를 보더라도 무상급식 정책의 원조는 민주노동당이었지만,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그 과실은 민주당이 대거 가져갔죠. -p.294
 
   



모두가 '복지'의 중요성을 알게 된 이 시점에서 진보/수구/개혁/보수의 아웅다웅 편 가르기에 의해
시민들의 소중한 삶의 질이 정치적 소모품이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정치와 제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복지국가를 이룰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이제는 '5세' 훈이식 치졸한 광고보다는 구체적인 정책 논쟁을 통해 미래 세대를 책임지려는
발전적인 경쟁의 모습을 한번쯤 지켜보며 밀어주고 싶어진다.

생뚱맞은 생각이 하나 불쑥 솟아오른다. 더 좋은 정책을 겨루는 '복지 정책 배틀 대회'...
버스값, 배추값도 모르는 철없는 사회지도층(?)들이 정당의 이익만 내세워 입씨름 벌이기 보다는,
'심시티' 개념의 소셜네트워크 온라인 게임 같은걸 공개적으로 진행하여
다수의 유저들이 각자의 정책을 미리 시뮬레이션을 통해 경쟁적으로 검증해본 다음,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를 통해 도출된 최적의 솔루션을 제도화하여 수정 보완해 나가면서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몇 년간 꾸준히 추진해 나가는 모습...
민주사회의 '21세기 정치'라면 이런 것도 한번쯤 대안으로 생각할 만한 때가 되지 않았을까?
(... 적어도 4대강 '로봇물고기' 보다는 접근 방식이 낫지 않나 하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ㅎㅎ;)


 

현재의 대한민국이 만족스럽고 잘 돌아간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을 손에 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뭔가 불만족스럽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함께 고민하고 참고할 만한 '이야깃거리'가 여기에 있다.

거창한 의미 따질 것도 없이
'진보'나 '개혁'이라는 말의 의미가 원래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것 아니었을까.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다. (파우스트)
- 조국 교수의 트위터(@patriamea) 프로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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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2-05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어려울거라고 지레 겁먹는 저같은 사람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리뷰네요.
동막골 대사로 설명해주니 쉽게 이해되고 공감이 되네요.^^

herenow 2011-02-06 22:3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어렵지 않게 쓴 것 같고 책 만듦새도 괜찮으니
서점 가시는 길에 부담없이 한번 살펴보세요. ^ㅅ^

잘잘라 2011-02-07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깐요. 진보두 좋구 진보가 집권하는 것두 좋구 진보 집권 플랜두 좋구,
다 좋은데 말이죠. 정권을 잡고 나서 딴소리 하지 않을, 그런 사람을 원한단 말이죠.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모든 과정은 회색이다... 라는 말로 들려요.
(너무나 무책임한 회색, 석달 열흘쯤 쨍쨍한 햇빛에 널어두면 하얗게 표백되려나? 때 타서 더 짙은 회색 되겠지. 대기 오염 심각한 도시에서라면..)

herenow 2011-02-07 22:14   좋아요 0 | URL
Both Sides Now



Both Sides Now - Hayley Westenra



Both Sides Now - Joni Mitchell


herenow 2011-02-07 22:15   좋아요 0 | URL
아마도... Never ending story ? ^^



Never ending story - 윤상현

herenow 2011-02-16 17:18   좋아요 0 | URL
예전에 메리포핀스님 이 댓글에 대해 직접적 답변을 안올렸는데,
다른 분이 저 인용문의 의미를 다시 언급하셔서 외람되이 긴 댓글 하나 달았습니다.
이론이 회색이니 과정이 회색이니 하는 것보다, '딴소리 하지 않을 사람' 원하신다는 말씀이
메리포핀스님이 이 댓글을 다실 때 강조하려던 본뜻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도 '모든 이론 = 모든 과정'이라고 치환하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아래 설명에 함께...
시간되시면 참고 바랍니다.

2011-02-08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erenow 2011-02-09 13:31   좋아요 0 | URL
나이와 서열을 가린다고 '보수적'이고
나이 서열 따지지 않으면 '진보적'이라고 간단히 구분지어 말할 수는 없겠죠.
어떤 상황과 전제가 그런 판단에 깔려있었을테니 그걸 모르고는 단정지어 말하기 어렵네요.
예의도 모르고, 말꼬리 애매하게 내려 까는 사람이 '진보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거든요. ㅎㅎ;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은 불변 부동하는 '실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상태' 내지 '자세/태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진보'라도 한 자리 차지하면 어딘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지 않던가요.
(어려운 철학 이론 들먹일 필요 없이 陰陽의 이치로만 봐도 그러하잖아요.)

불변 부동하지도 않는 '진보↔보수'라는 개념을 미리 굳게 정의내리고
그 개념을 여러가지 잣대로 섬세하게 쪼개고 나누어
그 '차이'에 초점을 맞추면서 각자가 잘난 척 분열되어 있기 보다는
일이 되는 쪽으로, 가능한 방법 쪽으로,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쪽으로 지혜를 모으는 것이
진정 '진보'적인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은 진보와 보수가 win-win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구요.

이런 논의를 솔직하게 나눠볼 수 있다는 것도 '진보'된 것이겠죠? ^ㅅ^


마녀고양이 2011-02-09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늦은 댓글을 달게 되는군요. ^^
설 지내고, 감기 앓다보니 그렇게 되네요... 자칫했으면 너무 좋은 리뷰 놓칠뻔 했습니다.

너무나 쉽게 들어오네요. 아직도 손대지 못 한 책에 더욱 욕심이 가구요.
거기다 진짜 공감되는 부분 있네요. 결국은 '정치'로 귀결된다는 것.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순수함도 좋고 이상도 좋지만, 아무리 올바른 것이라도 실행력이 없으면 소용없다는 겁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다 깨달아서 변혁해야 한다지만, 그것은 교육과 생활의 차이가 있는한 어림없는 이야기거든요.
그렇다고 예전 공장에 가서 교육시킨 것처럼 농촌과 공장을 교육한다? 그것도 아닌거 같구요...

빨리 읽어봐야겠어요. 히어나우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herenow 2011-02-10 00:24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방가방가~
왜 이케 오랜만에 뵙는 것 같죠? (^ㅅ^)m

늦게라도(?)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ㅋ
실행력이 없으면 소용없다는 말씀, 이게 바로 '정치'라는 걸, 정치를 무시하면 안된다는 걸
이제껏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에공... ^ ^;

햇빛눈물 2011-02-13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보관만하고 언제 읽어야지 마음만 있던 책이었는데 히어나우님 덕분에 아주 일목요연하게 책 내용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다라는 말에서 전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는 동의하지만, '모든 이론은 회색'이라는 말은 이해하기가 힘드네요.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이 말의 진심은 '모든 이론은 처음에는 푸르지만 회색일수 밖에 없다'라고 들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어렵네요. ㅋㅋ

herenow 2011-02-14 20:17   좋아요 0 | URL
전에 메리포핀스님도 그러시더니, 이 말에 걸리는 분들이 더러 계시나 봅니다..
저 멘트를 내뱉은 메피스토펠레스나 괴테가 직접 설명을 해주셔야 할 듯. ^ㅅ^;
사실 저는 참 공감하며 옮겨온 말이라서요.
(1+2=3처럼 본인에겐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을 설명한다는 게 제일 힘들죠. ^ ^;)


herenow 2011-02-14 20:30   좋아요 0 | URL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다." (파우스트)

주제넘게 잠시 사족을 달아본다면, 저 말은 뇌과학으로 보아도 사실(fact)에 해당하고
'이론'이나 '생각', '개념화', '추상적 사고'라는 것의 본질을 들여다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생각, 개념, 사고라는 것은 '과거'의 재료들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경험들, 개념들, 말들, 상징들 같은 것이죠.

뇌과학에서는 이걸 간단히 '기억'이라고 해버리더군요.
'미래의 기억'이라는 용어도 있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든 생각은 '과거'이고 '기억'이라는 사실(fact)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맞다, 틀리다, 좋다, 싫다는 것도 경험한 어떤 과거의 조합들이나
내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과정을 통해 도출되는 것이구요.
(이런 과정에 개입해 새로운 정보를 적절히 넣어주면 인지와 판단에 변화가 생기게 되죠.
그리고, 이런 과정 자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유의지'를 가진 독립된 실체로서의 '나'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당연히 가질 수 밖에 없게 되구요. 유물론 같은건 아닙니다.)

대부분의 '생각'은 '언어(내적언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실제의 무언가를 하나의 기호나 상징으로 대체하는 행위입니다.
즉, 살아있는 것을 죽어있는 '개념'으로 대체해버린 결과, 이렇게 말과 글을 쓰고 있는 것이거든요.

당장, 한국말이 아니라 우간다말 같은걸 써서 '생각'을 해보라고 하면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죠.
(이미지? 기억 또는 기억의 재구성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회색'이라는 표현은 그것의 본질이 '과거', '기억'이라는 절묘한 은유로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녹색으로 태어났다가 어떤 과정을 거쳐 회색으로 변질되는 그런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그렇게 머리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나 판단의 본질을 보면 그 또한 과거의 지식/기억이 바탕이지요)
그 '개념'이라는 것 자체의 본질을 꿰뚫어본 것이죠.

여기까지는 뇌과학, 인지과학, 불교, 명상, 일부 철학과 사상에서 거의 동일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딴것들은 이걸 직관이나 논리로 풀어내는데, 뇌과학은 신경세포의 재조합으로 간단히 보여주구요.)

조금 더 나아가면, 모든 '생각'이나 '개념', '이해', '추상적 사고'의 바탕이 되는
'아는 작용'은 '대상'을 '한정짓는' 것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므로,
제 아무리 거창한 사상이나 철학, 개념이라고 해도 한정지워진 어떤 것,
결코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거나 설명해줄 수 없는 창백한 대체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괴테의 말에서 '생명의 나무'는 위의 글에서 '있는 그대로' 쯤이 되겠네요.
길게 적었습니다만, 앞부분의 몇 가지 내용만 찬찬히 확인해 보신다면
비슷한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렇게 구질구질한 설명보다 단 한줄로 본질을 아름답게 노래해버리고 있으니
파우스트가 역시 명작은 명작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아브람 노엄 촘스키.미셸 푸코 지음, 이종인 옮김 / 시대의창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촘스키와 푸코, 두 사람이 산을 오른다.
그 산의 이름은 "인간의 본성(Human Nature)".

촘스키는 날 때부터 타고난 '내재주의 언어론'을 재잘대며 뛰어가고,
푸코는 "규정된 건 없어. 뭐가 그리 당연하지? 그걸 어떻게 정의할거야?" 중얼거리며
한 발 한 발 '권력 관계'의 규칙성을 찾으면서 걸어간다.

네덜란드 TV, 토론의 사회자는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도구를 가지고 같은 산에서 터널 작업을 한다'고 서두에 소개한다.

지켜본 소감은?
미안하지만,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산을 타고 있었던 것 같다.


촘스키 : 저의 관심사는 정신에 내재하는 특성이고, 반면에
푸코 씨는 사회적, 경제적, 기타 조건들의 특정 배열에 더 관심을 두는 듯합니다. - p.56


촘스키가 오르는 산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보편적인' 지형이 결정되어 있는 산이다.
마치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진행할 때 마다 부분적으로 밝아지는 지도처럼,
그는 '생래적' 지형의 존재를 의심치 않고 그 '심층구조'를 밝힐 수 있다며 겁없이 뛰어다닌다.
지식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타고난 능력'에 의해 사회 정치적 의견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면서
언어이론과 당대의 사회적 이슈를 거침없이 골고루 재잘거리며...

푸코가 오르는 산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아무것도 '당연한 게 없다'.
상황, 사회, 역사, 제도, 계급 등 조건에 따라 지형도, 오르는 규칙도 변화 무쌍하다.
그는 그 속의 여러가지 관계와 조건 속에서 이런저런 주제들의 법칙성을 찾아내려 애쓴다.
그의 발 아래에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정의된 '담론'들이 디딤돌처럼 한 발 한 발 솟아올라 놓여진다.
때로는 자신의 모습조차 불확실해지는 그 산을 오르면서 그는 화두처럼 뭔가를 중얼거린다.
"이 언어, 이 지식을 규제하는 권력 관계는 대체 뭐야?"


푸코 : 중요한 것은 사건들을 변별하고, 그 사건들이 속한 네트워크와 층위를 가려내고,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어 의미를 생산해내는 구조를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이런 작업을 하려면 상징주의적 분석이나 기호론적 구조의 영역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 대신에 권력 관계의 계보, 전략적 발전, 전술의 측면 등을 살펴야 합니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 대단한 랑그(langue: 모든 개인의 두뇌 속에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문법 체계)와 기호(랑그에 의해 가능해지는 각 개인의 구체적 언어 행위)모델이 아니라 전쟁과 전투 모델입니다.

  우리의 존재를 품고 규정하는 역사는 전쟁의 형태를 취하지 랑그의 형태를 취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권력 관계이지 의미의 관계는 아니라는 겁니다. - p.190


그렇다면, 이걸 '같은 산'인 양 퉁쳐서 소개했던 그 사회자는?
아마 또 다른 언덕에서 이들 둘을 구경하고 있었겠지. ㅎㅎ;

잘은 모르지만 두 사람의 익숙한 이름과 '인간의 본성', '대중을 위한 TV토론' 같은 말에
홀딱 넘어가 가벼운 마음으로 이 내용을 접한 독자들은?
한번쯤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런 멘트를 떠올려 봤음직하다.

".......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듀스, '우리는')

그들이 내뱉은 한숨들이 한겨울 중고책 되어 어딘가 쌓여있다는 슬픈 전설...
이해하기 어려워 더 많이 읽히기도 한다는 역설적인 독서계의 주인공들 아니시던가. ㅠ.ㅠ


촘스키 : 지배 이데올로기와 선전 체계에서 스스로를 기꺼이 해방하려는 사람은, 조금만 노력하고 응용하면, 상당수 지식 분자들이 발전시킨 왜곡의 양상을 즉각 간파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그것을 해낼 수 있어요. 만약 이런 분석이 잘 안 된다면 그것은 사회·정치적인 분석이 실제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특정한 이권 계층을 옹호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경향 때문에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특수한 훈련을 받은 지식인만이 분석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상을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사실 그것은 지식인 계급이 우리에게 심어주려는 생각입니다. 그들은 보통 사람이 다가갈 수 없는 난해한 활동에 종사하는 것처럼 허세를 부립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사회과학도 그렇고 무엇보다 오늘날의 사건에 대한 분석에, 이런 일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가설 수 있는 겁니다. 이런 문제들이 복잡하고, 심오하고, 모호하다는 얘기는 이데올로기적 통제 체제가 선전하는 환상일 뿐입니다. - p.97~98


생득론이 어떻게 활발한 정치적 참여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촘스키다운 발언이지만,
푸코와 촘스키가 당연한 듯 내뱉는 이야기들 그 자체가 '특수한 훈련을 받은 지식인만이'
쉽게 이해할 것 같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러한 상황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 ^;

그렇다고 얄팍한 두께에 동네 뒷동산쯤 만만하게 생각하고 성큼 발을 내디뎠다간
마주치는 생경한 언어와 개념들에 길을 잃고 헤메일 수 있는 산이라는 것도 조금은 안타까운 사실... 

두 관점의 차이는 "옮긴이 후기"(p.263)를, 책 전체의 배경은 "서문"을 일단 먼저 챙겨 읽고,
가능하면 웹 서핑과 최소한의 사전 지식으로 기초 체력을 다진 다음
베이스캠프가 감 잡혔을 때 한 발씩 도전하면 '골라먹는 재미'를 조금씩 느껴볼 수 있는 것 같다.

여러 매체의 인터뷰와 자료를 한 권으로 묶어뒀기에, 언어/정치/권력/진리/정의 등
그들이 1970년대에 각기 다른 산을 오르며 나름대로 발전시켜 온 주요 분야의 견해들을
생생한 인터뷰 형식을 통해 짚어보고 때로 비교하여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등산 코스의 장점.


푸코 : 당신의 질문은 제가 왜 정치에 관심이 많으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되묻겠습니다. 왜 제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하나요? 어떤 맹목성, 어떤 귀먹음, 어떤 이데올로기가 나를 압제하여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한단 말입니까. 정치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 그 안에서 작동하는 경제 관계, 우리 행동의 규칙적 형태와 그 행동에 대한 가부를 결정하는 권력 체계, 이 모든 것이 정치와 관련됩니다. 우리 생활의 본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정치적 기능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왜 정치에 관심이 많으냐는 질문에 답변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정치에 관심 없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제입니다. 그러니 저한테 그런 질문을 하지 말고,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매우 적절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젠장, 어째서 당신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거요?" (일동 웃음을 터뜨리고 방청객도 웃음) - p.61~62


이민자 지지 데모중인 푸코와 사르트르 (1972)

 

인터뷰를 읽다보면 떠오르는 곁다리들...

▶ 유전, 선험, 관념론, 인지, 정신, 생득주의... 이것은 촘스키?
▶ 양육, 경험, 경험론, 구조, 조건, 구조주의... 이것은 푸코?

엄밀히 말해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기도 하지만, 이런 개념들은 어떤 식으로든
두 사람이 건드려놓은 관점과 논쟁들에 한 다리씩 연결 가능한 개념들 되시겠다.
푸코는 "저는 구조주의자 아니거든요?" 라며 꼬장꼬장 의미의 재해석을 요구할 듯 하지만. ㅎㅎ 
여기에 어디선가 주워들은 행동주의, 인지주의, 구성주의 같은 것도 슬쩍 한 다리... 

그렇다고 두 사람이 서로를 의식하여 반대 입장을 내놓았던 것은 아니니 재미있는 일이다.
푸코와 촘스키의 견해는 '다른' 것이지 엄밀히 말해 '반대'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 책이 두 사람을 엮어놓긴 했지만, 그들이 돌아다닌 山은 서로 다른 산이라니깐... ) 
 
어쩌면 힌두교와 불교의 관점까지 대비되어 떠오르기도 한다.
생득적인 '아트만-브라흐만' 내지 '푸루샤-프라크리티' 시스템의 힌두교는 촘스키와 뭔가 이야기가 통할 것 같고,
모든 것은 서로 조건지어 발생할 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불변의 실체는 없다고 하는 '연기론'의 불교는
어쩐지 푸코와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당연히 촘스키/푸코의 구체적인 사상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느껴지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유사성이 엿보이는 이상의 관점들이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내내 인류의 관심을 끌어왔다는 것,
현실세계를 설명하고 집단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도구로까지 사용되어 왔다는 점은 
푸코나 촘스키의 이야기에서 선뜻 이해되지 않는 개념들을 접하면서도 흥미롭게 느껴지던 사실. 

어쩌면 한갖 '관점'에 불과할 수도 있는 그들의 생각이 언어, 정의, 정치로까지 개념이 확장되어
그들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형성하고, 일련의 학문적/사상적 흐름을 이끌어내면서
사회적/정치적 활동으로까지 체계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던 쉽지 않은 독서를 통해 얻게 된 또 다른 뿌듯함이랄까...

그런데, 이처럼 현란한 언어와 관점으로 짜여진 남의 산을 헤메이다 얼핏 드는 생각은

왜 내가 남들의 그 산을 애초부터 '명산'이라 열광하며 오르려고 애쓰는지,
이렇게 발 디디고 서 있는 내 산은 대관절 어떤 것인지 더 찬찬히 살펴보고 싶어지더라는 것. 

 
P.S.

실제로 푸코 뿐만 아니라 구조주의 사상가로 분류되는 레비스트로스, 데리다 등이 모두
불교와 선禪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들로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게다.
(그러면, 푸코의 '권력'에 대한 설명은 불교의 어떤 개념과 유사성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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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1-29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촘스키와 푸코의 대담이라길래,,
그리고 솔직히 사이러스 님에 이어 히어나우님의 리뷰를 보고,
신간평가단이라지만 이리 어려운 책도 읽으시는 분들이 있구나... 존경스럽다 싶답니다. ㅎㅎ

혼자 말하는 글도 어렵던데, 대담이라.. 대담이란 두사람의 논지를 이해하고 공박까지 이해해야 한다눈. ㅋ
거기다... 두 분 진짜 거리가 있는 분들에 동감입니다. 하긴 그래서 붙여놓았을까여?

herenow 2011-02-04 12:03   좋아요 0 | URL
허걱.. 존경이라뇨. 신간평가단이 아니었다면 서점에서 펼쳐보고 그냥 왔을지도 몰라요. ^ ^;
읽고 싶고 관심있는 책 뿐만 아니라 의무적으로 읽게되는 독서를 통해서도
새로운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게 신간평가단의 또다른 매력(?)인 것 같아요. ㅎㅎ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건, 1부 대담 초반에 서로가 이미 간파를 해버렸어요.
그래서 공박이랄까 싸움의 느낌이 아니라 대부분 각자 자기들 세계관대로 자기 얘기만 하고 있죠.
인터뷰 형식이라 푸코나 촘스키에 대해 사전지식이 있는 분들은 조금 편하게 보실 수 있을테구요,
각자 다른 산에서 떠들어대고 있는 그들 둘을 어떻게든 연관시키려면 (사회자가 그랬듯이)
읽는 사람 나름대로 도표를 그리든지 비교를 하든지 하면서 머리를 굴리게 되는 것 같아요. ^ ^;

두 거장의 대담이라고 미리 너무 거창하게 보실게 아니라 (이게 책을 읽은 후의 솔직한 느낌),
서점에서 잠시 펼쳐 읽어보시면 분위기 파악이 되실거라는... ^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1-29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마녀고양이님의 댓글에 적극 공감하며..ㅎㅎ 존경합니다..^^
전 도서관에 들락거리며 이 책을 봤는데 빌려가는 사람도 뽑아가는 사람도 없어서
저도 (어려운 책이구나 싶어) 표지만 보고 왔다는 후문이..ㅎㅎㅎ
리뷰 읽으며 덕분에 녹슬어가는 머리 잠깐 굴려보았어요^^

herenow 2011-02-04 12:08   좋아요 0 | URL
허거걱... 부끄럽습니다. 저도 버벅거리며 읽었답니다.
한번씩 이런 책을 읽어두면 조금 똑똑해지는 느낌이 들기는 해요. 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1-01-29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고 딱딱한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정리하는 재주가 있으시구만요. 재밌게 읽히는 리뷰여요.^^

음.. 하루가 25시간이면 그 중 한 시간을 저 책 읽는데 쓰고 싶군요. 그러니까 읽어보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제 머리에...(촘스키 인용 읽다가 머리에 쥐가...-_-;)

herenow 2011-02-04 12:2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

하루가 몇 시간 남지 않았을 때에도 절실히 손에 잡히지 않는 책이라면
굳이 하루를 25시간으로 늘려서까지 마음에 부담을 주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 ^;

버스에서 읽으셨다는 바닷마을 다이어리 1~3권이 더 땡기는걸요! ㅋㅋ

cyrus 2011-01-30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보는 순간 제 마음 같아서 공감했어요 ㅎㅎ
정말 사상적 배경지식이 없으면 맨 손으로 등산하는 기분이라고 해야되나요,,? ^^;;
재미있게도 루우님 댓글처럼 저도 신간평가도서가 확정하기 전에
도서관 신간코너에 이 책을 보게 되었는데,, 빌려가는 사람이 많지 않을거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herenow 2011-02-04 12:30   좋아요 0 | URL
비슷한 예로, '알라딘중고샵' 인문학 코너에 이 책이 한가득 쌓여있는 상태에서
덜컥 신간평가단 도서로 선정되는 걸 보면 '왜 이럴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하죠. ㅎㅎ;

시루스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복학 준비하느라 슬슬 바빠지겠네요? ^ ^

2011-02-01 0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erenow 2011-02-04 13:25   좋아요 0 | URL
실질적인 체험이 있으셨다면 경계를 넘어 연결을 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요?
불교든 선이든, 어떤 사상, 철학이라도 '개념'과 '해석'에 묶여있다면 그 산에서만 노는 것이구요.
그렇다고 '경계를 넘어섰다'며 마냥 '개념'을 무시하면 이도저도 아닌 꼴이 되는 것 같구요. ㅎㅎ

이 책의 대담에서는 각자의 산조차 벗어나지 않으려 해서 그 점이 안타까웠죠. ^ ^
자기 산을 키우고 그 안에 정밀한 길을 내고 유사한 다른 것들과 연관은 시킬 줄 알면서도
결코 각자의 산 자체를 벗어나거나 산 아래 땅, 너머의 하늘 같은 것은 관심있게 보지 않는다고 할까요.

불교나 선 같은 것은 '의식의 내용물'을 통해 그 '너머'를 가리키고
내용물 보다는 그 본질을 꿰뚫어본 다음 그에 기반한 현실적 실천을 얘기했던 것에 비해,
(제가 이해한) 이들의 사상은 '의식의 내용물'만을 정밀하게 가다듬고 구분지어 다루고 있을 뿐
이것을 벗어나는 것들에 대해서는 개념적 촉수를 뻗으려는 듯 싶다가도
다시 내용물 자체에 집중하거나 한정된 개념 속으로 제한되어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어찌보면 연기론과 비슷한 발상을 시도했던 구조주의 같은 것이 '구조' 자체가 아니라
구조로 형성된 '대상'과 그 법칙들에 더 초점을 기울인다든지 하는걸 보면 그렇구요.
그래도 비슷한 뭔가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 불교나 선을 연구하고 친밀감을 표시한걸 보면
건성으로 절에 다니는 일반 불교신자들보다는 서구의 구조주의 계열 사상가들이
불교이론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고 볼 수 있는데 말이에요.

일반적인 철학 내지 사상가들은 의식의 내용물/개념/언어를 벗어난 그 바깥의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도 없을 뿐더러 유물론이나 허무론 같이 극단적인 관점으로만 취급해 버리는 듯도 합니다.

사상적 바탕이 비슷하다는(?) 동양에서도 그런 식으로 간단히 불교 등을 오해해버리는 판국에,
애초에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뚜렷한 서구의 사상이 '연기론적 무아'를 얘기하는 불교나
아예 '나'조차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동양철학을 새롭게 재해석하여 사상이 역수입되는 걸 보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 핵심을 벗어나긴 하더라도, 그런 해석들을 통하여
고리타분하고 천편일률적이었던 '동양적' 사고방식에 비해 분명히 배울 것들이 있거든요. ^ ^

명절 잘 보내고 계시겠죠?
다시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시코쿠를 걷다 - 시간도 쉬어 가는 길
최성현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길을 떠나 돌아보는 마음의 풍경, 글을 따라 마주치는 사람과 자연. 성찰의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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