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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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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을 읽고 두려움에 떠는 일은 낯선 경험입니다. 소설을 다 읽어 갈 때 즈음해서 시작된 편두통으로 늦은 밤 알약을 삼키며 무엇이 이 고통의 시작이었는지 점검을 했습니다. 단순히 낯선 세계를 엿본 것 때문이라면 이보다 더한 세상, 세계도 많이 읽었는데 왜일까? 싶었습니다.

그건, 공명했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화자인 인수는 나름 보통의 아이였고 그래서 존재감이 별로 없는 아이였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잘나가는 사업가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군림에 저항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열일곱 살 인수는 집을 나왔고 자신을 애타게 찾을 부모가 바뀌길 바라는 희망을 안고 거리를 배회 했습니다. 동갑인 성연을 만나 집을 나온 아이들의 세상에도 여전히 계급이 존재한다는 걸 알기전까지는. 인수는 이미 범죄와 폭력에 무감각해진 성연이 든든한 배후가 되어 주는 동안엔 자신도 뚜렷한 존재감을 뽐낼 수 있어 좋아했고 나중에서야 자신이 폭력에 길들여지고 나태한 생활에 적응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또다른 친구 경우를 무료급식소에서 만나 자신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더 어리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성연의 행동들이, 친구였기에 서로를 위해 그정도는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결국 정신적ㆍ육체적으로 이용만 당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미성년 아이들을 착취하는 어른들, 그런 어른들을 속이며 물건을 훔치고도 살아남기 위해 그럴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아이들, 공갈과 협박으로 평범한 이들을 갈취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내놓은 목숨줄을 부여잡고 그 위에 군림하는 어른들...

소설은 인수가 그런 세상에 걸어들어가 방황하던 시간과 이미 피폐해지고 상처를 입은 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현재 시점에 과거 자신이 걸어갔던 길을 서성이는 또다른 아이 이호를 발견하면서 시작됩니다. 12년 전 그날 밤 이후 겪었던 불가사의한 증상으로 고통받는 인수가 이호와 이호가 데려 온 진혁으로 인해 이해할 수 없던 ‘경우‘의 이타심을 나름 알아가는 동안 자신에게도 변화가 생겼음을 느끼게 되고 한여름 뙤약볕이 있을 때만 겨우 멈추던 추위가 사람으로 인해 누그러 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공명의 원인은 두려움이었습니다.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다 보니 얼핏 그런 세계가 있다는 이야기나 뉴스를 접했을 땐 그런가 보다 했던 사실들이 [경우 없는 세계]엔 너무나 독하게 그려져 인수가 보고 느끼는 존재들 만큼이나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사자가 아닌데 얼마나 이해하겠습니까. 우리가 10대 시절을 보냈던 1990년대와 지금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2020년대는 너무도 다른데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려 하니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결론 밖에 나올 수 없습니다. 방임되고 소외되어 희망마저 포기하는 이들, 그림자 취급을 당하고 어둠에 가려져 없는 존재가 된 외면 받는 이들, 진흙탕 속에 발을 내디뎠지만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는 이들과 그들이 건너오지 못하게 경계선을 긋는 이들, 아니면 이도 저도 모른 체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이 모두에게 소리치는 소설 [경우 없는 세계]를 통해 우리가 지금 어떤 벼랑 끝에 다다랐는지 깨닫게 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라는 말 대신, 부디 아프지 않고도 성숙해지는 우리 사회가 되길 바라봅니다.

*출판사 제공 도서(가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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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dagogy 2023-04-02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평을 올리고서 이 서평을 보니 부끄러워지네요. 깊은 사유가 담긴 글 잘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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