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서재는 나의 성소 (숨비북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hemanpaul</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네이버 서평 블로거 '숨비북'입니다! 독서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 서평을 통해 느낌과 생각을 정리하며 좋은 책을 소개해요!</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16 Jul 2026 20:07:00 +0900</lastBuildDate><image><title>숨비북</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07591003348373.png</url><link>https://blog.aladin.co.kr/hemanpaul</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숨비북</description></image><item><author>숨비북</author><category>서평</category><title>삶으로 증명한 존재의 의미 - [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hemanpaul/17372625</link><pubDate>Fri, 03 Jul 2026 23: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hemanpaul/173726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9340&TPaperId=173726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2/2/coveroff/k4821393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9340&TPaperId=173726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a><br/>빅터 프랭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br>&lt;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gt;<br>50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수백만 부가 팔린 &lt;죽음의 수용소에서&gt;는 인간 존재의 참된 의미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이들을 통해 새로운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충격적 저작이다.​&lt;죽음의 수용소에서&gt;를 완독 후 한동안 넋을 잃고 상념에 젖었던 기억이 있다. 책 한 권이 던지는 메시지의 후폭풍이 그렇게 클 줄 예상치 못했기에 사유의 갈피를 잃었던 경험이다.​아내, 부모, 남동생이 학살되었고, 여동생과 자신만 살아남았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생지옥에서 생환한 저자 '빅터 프랭클' 박사의 어조가 너무나 담담했기에 소름 돋았다. 그런 그가 생전에 강연한 네 편의 글이 하나로 엮여져 &lt;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 지음 / 북하우스 펴냄&gt;라는 작품으로 세상에 나왔다.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아비규환의 현장 속 저자가 깨달은 사유의 총체는 전작 &lt;죽음의 수용소에서&gt;에 밀도 있게 녹아져 있다. 반면 후속작 &lt;죽음의 수용소 이후&gt;는 믿기 힘든 광기의 시대 속 인간 실존의 진짜 의미를 찾고 바른 삶에의 방향을 제시하는 저자의 지성적 혜안이 돋보이는 수작이다.<br><br>빅터 프랭클 박사는 인간이 인간을 푸줏간 고깃덩어리로 취급한 강제수용소의 현장 속에서 '의미'라는 기괴한 명제를 제시했다. 당장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가스실로 들어가 한 덩어리의 시신으로 분하는 공허의 현장 속 의미를 찾는 행위는 그야말로 넌센스다.​그러나 실제로 그의 이러한 해괴한 의미 찾기는 '로고 테라피'라는 정신심리학적 기법으로 명명되었다. 그 현장이 바로 지옥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포기치 않는 갈망과 그로 인한 살아야 할 이유와 의미를 되새긴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까지 살아남더라는 것!​사람은 살아야 할 의미를 상실할 때 살아갈 생의 의지를 잃는다. 반면 살아야 할 실낱같은 이유와 명확한 의미를 붙잡은 이들은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서 아리아드네의 실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무사 귀환할 수 있었던 테세우스와 같이 아수라의 현장 속에서 인간 세상으로 생환할 수 있었다.​저자는 이 시대를 의미 상실의 세대로 진단한다. 살아야 할 참된 의미를 상실한 현대인의 대표적 보상 기제는 쾌락이다. 더불어 공허함은 채움을 갈망하기에 진짜 삶의 의미와 의지를 잃어버린 이들은 인생이 어찌할 수 없다는 숙명론적 태도와 대충 살아가는 삶의 행태를 보이고, 소망이 없는 극강의 허무와 공허함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깊이 배어 나온다.​프랭클 박사의 캐나다 방송 협회 TV 인터뷰 녹취록 또한 흥미롭다. TV 강연 사회자는 저자의 '로고 테라피'가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가 묻는다. 돌아온 답변은 생의 의지와 의미에 관한 저자의 깊은 철학적 사유는 이미 그가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 탄생했고, 수용소에서의 경험이 오히려 그의 정신심리학 이론을 체계화시키며 그의 확신에 정당성을 부여한 임상의 현장이었음을 말한다. ​저자가 삶의 의미를 타의에 의해 송두리째 강탈당하는 경험을 자신의 정신심리학 이론을 확증, 발전시키는 기회로 선용했다는 점이 믿기지 않는다. 수용소 동료들과 자신의 삶으로 입증한 '로고 테라피'는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깊은 영감과 생의 의지를 일깨운 훌륭한 교보재가 된다.<br><br>"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아우슈비츠가 있다."라고 말한 저자의 통찰 또한 예리하다. 참된 의미를 상실한 시대 속 쾌락과 물질적 풍요만을 좇는 현대인의 텅 빈 사고와 공허한 심상은 그 자체가 아우슈비츠다.​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사유함을 고통스러워하는 세대 속 인간 실존이 보이는 삶의 양상은 천사 아니면 악마다. 프랭클 박사 또한 인간은 두 부류가 있는데 품위 있는 인간과 품위 없는 인간이 그것임을 역설한다.​끊임없이 생각하고, 사유하며 사회적 연대 책임에 대한 의무를 신성시하는 품위 있는 인간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의 앞날은 밝다. 인간의 유한성과 필멸성이 인정될 때 잘못에 대한 책임은 강조된다. 시간이 없기에 그렇다. 반면 인간 실존의 불멸성이 강조되면 집단의 과오와 시대적 아픔에 대한 책임은 희석된다. 분명 모두 다 죽지만 영원히 살 것이라는 착각이 집단 책임의 짐을 가볍게 만들기에 그렇다.​타자의 아픔과 책임, 공감 능력의 상실은 별다방 논란으로 사회를 시끄럽게 만든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며 이는 곧 본서에서 빅터 프랭클이 말한 품위 없는 인간이 존재하는 사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실례다.​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관한 농도 짙은 사유의 작업을 행할 수 있는 &lt;죽음의 수용소 이후&gt;를 통해 품위 있는 인간상에 한걸음 더 다가가길...]]></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2/2/cover150/k4821393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820209</link></image></item><item><author>숨비북</author><category>서평</category><title>바른 예배에 대한 갈망 -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hemanpaul/17347889</link><pubDate>Sun, 21 Jun 2026 23: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hemanpaul/173478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416785X&TPaperId=173478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931/69/coveroff/890416785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416785X&TPaperId=173478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예배의 감격에 빠져라</a><br/>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2년 02월<br/></td></tr></table><br/><br>우리는 주일이기에 교회에 간다. 주일이 돌아왔고, 그래서 예배한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왜 예배하는지에 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주일이고, 신자이기에 관성적으로 예배당을 찾는 일만큼 서글픈 모습은 없다.​&lt;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 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gt;는 30년 전 초판 출간 이래로 약 13만 부 이상 팔린 예배에 관한 스테디셀러다.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한 예배의 모습이 일상화된 우리네 신앙의 현주소에 폭탄을 던진 저작이다.​성도라 칭함 받으며 오랜 시간 예배했지만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른 채 습관적으로 자리만 채우고 갔던 수많은 이들의 아까운 시간과 헛된 노력에 대한 안타까움이 책의 전면에 흐른다.​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 만남이 예배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정형화된 틀 안에서 지루함과 졸음, 잡생각으로 점철된 무감각한 예배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그리고 그렇게 드려지는 무력한 예배의 삶에서 탈피하여 진짜 예배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가슴 떨리는 예배의 본질은 무엇인가?​저자인 김남준 목사님은 우리의 예배가 충분치 않은 이유가 신앙적 무지와 영적 무기력에 있음을 말한다. ​신앙적 무지가 예배를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일종의 가벼운 쇼로 만들었고, 이는 곧 쉽게 얻는 구원, 깨어짐과 자기 성찰이 없는 방만한 기독교 신앙을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지적한다.<br><br>본서는 총 9장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핵심은 예배를 통해 신자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며 생명력 있는 감격의 예배는 신자의 삶을 회복시키고, 회복된 신자의 삶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으로 승화된다.​예배를 견디는 것이 일상화된 우리네 예배 풍경 속 저자의 지적은 제법 매섭다. 예배를 견디도록 만든 책임은 전적으로 설교자에게 있다. 회중들을 지루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모종의 압박이 설교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값싼 유머를 남발하게 만들며 그것을 듣는 성도의 영혼은 고사되어간다.​깊은 진리의 말씀이 강단에서 사라져 가는 교회의 설교는 설교자의 가벼운 유머와 생각 없는 애드립이 대체한다. ​저자는 참된 예배자,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세 가지의 방편을 말한다. 첫째는 성경에 대한 바른 설교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생동감 있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조건임을 강조한다.​바르게 선포되는 성경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없을 때 성도의 영혼은 영적 방종을 성령 안에서의 자유함으로 착각하며 영적 무지로 치닫는다. 진리는 회중의 눈높이에 맞춰 가능한 쉽게 이해되도록 설파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진리 자체의 농도가 옅어져서는 안 된다. ​순도 높은 설교는 듣는 이들의 지성을 일깨워야 할 정도로 날카롭고 예리해야만 한다. 한 주간 설교를 준비하는 설교자들이 누구보다 많이 공부해야 하고, 연구에 매진해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다.​더불어 예배를 통해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의 두 번째 요소는 순도 높은 설교가 선포될 때 그것을 나의 것으로 취하려는 말씀에 귀 기울이는 성도의 능동적이며 열렬한 갈망이다. 아무리 설교가 탁월해도 귀를 닫고, 기대하지 않는 마음으로 와서 앉아 있다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요원하다.​세 번째 요소는 성령의 일하심이다. 한 주간 목숨을 걸고 준비한 설교자의 순도 높은 말씀, 말씀에 내 삶을 걸겠다는 절박함으로 귀 기울이는 신자의 필사의 예배 태도, 거기에 더해 성령의 임재하심이 더해질 때 죄 고백과 용서하심의 은혜 속 더 깊고 깊은 신령한 은혜의 예배 가운데 들어갈 수 있다.​그 밖에도 저자는 예배와 삶, 봉헌, 참회, 찬양, 성수주일이라는 다양한 주제를 통해 예배 속 결핍과 회복되어야 할 예배의 참모습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다룬다.<br><br>오래전 읽었던 본서의 리뉴얼 복간을 펼치며 가장 기본을 다루는 책의 가치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결코 퇴색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책장을 덮으며 나의 부족함과 죽은 시체와 같이 살아가는 게으름과 영적 무지, 한없는 무기력함을 부드럽게 질타하시는 성령의 음성 앞에 얼굴이 붉어진다.​반복되는 예배 현장 속 기대감 없이 자리만 채웠던 경험들이 죄스럽다. 예배할 때 예배자의 최대 관심은 삶이어야 하며 살아갈 때 예배자의 최대 관심은 예배여야 한다는 저자의 순환적 가르침이 무지한 지성을 뒤흔든다.​실낱같은 기대조차 없이 드려지는 예배의 무미건조함을 떨쳐버리고, 복음 앞에 아멘으로 반응했던 첫사랑의 순간을 회복하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집어 들고 읽으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931/69/cover150/890416785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9316985</link></image></item><item><author>숨비북</author><category>서평</category><title>자성을 요구하는 불편함 - [게르마니아 : 유럽의 뿌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hemanpaul/17310950</link><pubDate>Mon, 01 Jun 2026 12: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hemanpaul/173109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8336&TPaperId=173109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2/49/coveroff/k7221383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8336&TPaperId=173109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게르마니아 : 유럽의 뿌리</a><br/>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05월<br/></td></tr></table><br/><br>"우리는 뭔가 잘못 가고 있어!" ​스스로의 결점과 결핍의 상기는 건강하지만 다소 위험이 따르는 행위다. 더군다나 그것이 경쟁 대상 또는 자신보다 못한 존재들과의 비교를 통해 끄집어낸 견해일 때 매우 불편한 진실이 된다.​국경을 맞댄 이민족을 거울삼아 조국 로마 사회의 변질과 부패함을 용기 있게 고백한 쇠락한 영혼의 탁월한 저작 &lt;게르마니아: 유럽의 뿌리 / 타키투스 지음 / 현대지성 펴냄&gt;이 바로 불편한 진실의 보고서다.​로마 제국 북방 유럽 본토와 흑해, 북해 너머 스칸디나비아반도에까지 광범위하게 흩어져 자신들만의 고유한 민족적 특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던 게르마니아족은 당시 문명화 된 로마 제국의 눈에는 그야말로 짐승과 다름없는 야만족이다. ​날것 그대로의 태곳적 원시성을 담지한 게르마니아의 존재가 로마인들에게는 정복과 경계의 대상인 동시에 혐오와 차별의 출구가 아니었을까!​민족적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듯했던 로마 제국의 오만과 허영은 방종과 광기로 이어지며 제국의 급속한 사회적 변질과 부패를 가속화했다. 이러한 상황 속 로마의 지성 타키투스는 로마가 그토록 경멸했던 야만의 세계, 게르마니아족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관습의 일면을 수면 밖으로 끄집어낸다.​그는 의도성 짙은 저작 &lt;게르마니아&gt;를 통해 스러져가는 로마와 비교할 때 야만이라 지칭한 게르마니아 사회가 가진 도덕적 고결함과 순수함을 드러내어 조국 로마에 일침을 가하는 동시에 로마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의 이정표를 제시한다.<br><br>게르마니아의 만장일치 부족 민회의 민주적 의사 결정 장면을 통해 '도미티아누스'라는 미치광이 황제 치하에서 권력의 부패와 변질을 경험하며 로마 사회의 남용된 권력의 현장을 고발했다.​또한 일부일처제를 강력하게 고수하고, 남편과 아내가 혈맹으로 맺어지며 아이들은 유모가 아닌 어머니가 직접 양육하는 게르마니아의 가정 형태에 관한 기사는 '팍스 로마나'가 가져다준 기형적 사회 구조물로서의 로마 사회의 향락과 오락적 현상에 대한 일갈이다.​용맹함과 신의, 끈끈한 공동체성이 강조된 게르마니아인의 단일적 특성은 편안함과 안일함 속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한 당시 로마 제국의 유약함과 비견되어 읽는 내내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더불어 재미있는 사실은 &lt;게르마니아&gt;를 저자의 집필 의도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읽고 해석해 낸 이들이 있었다는 것! 다름 아닌 순수 혈통 게르만족의 우수성과 단일성을 강조하며 인종 우월주의를 표방했던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이다.​고전 텍스트의 해석이 원독자가 아닌 이상 자신의 시대적 컨텍스트를 일정 부분 반영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지만 &lt;게르마니아&gt;를 자신들의 이념과 주관적 사상의 틀에 집어넣고 가공한 나치의 이해는 동일한 책을 어느 각도와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어떤 결과가 펼쳐지는지에 관한 명징한 예다.<br><br>타키투스는 로마 제정의 명암을 직시한 역사가다. 한 해에만 황제가 네 번이나 바뀌는 미친 형국 속 청소년 시절을 보내야 했고,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폭정과 새로운 황제 가문이 시작되는 역사적 사건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는 뼛속까지 로마인이었음과 동시에 로마의 녹을 먹는 공직자로서 조국 로마를 향한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lt;게르마니아&gt;라는 탁월한 저작을 탄생시킨 것이 아닐까!​로마 사회 전반에 누룩처럼 번져갔던 향락과 쾌락에의 탐닉, 부에 기인한 인간 내면의 타락은 로마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한 안목을 안이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며 하대했던 야만족 게르마니아는 로마의 부패상을 비추는 거울임과 동시에 미처 정복하지 못한 미완의 과제이며 끊임없이 로마의 정수리를 겨눈 칼끝이었다.​&lt;게르마니아&gt;가 2000년 시간의 간극을 넘어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인간 본성이 견지하며 고수해야 할 덕목은 자기자랑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고행에 가까운 노예적 겸손함이 수반되지 않을 때 교만한 인간 본성은 고개를 쳐든다. ​로마 사회는 끝없는 물질적 풍요와 함께 타락한 인간 본성의 출몰을 제어하지 못한 채 자신을 잃어간 반면 거친 수풀 속 북방의 짐승 같은 이들은 그들만의 엄격한 규례와 관습의 힘으로 민족정신과 사회문화적 순수성을 지켜냈다.​로마의 지성, 타키투스는 본성이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뀜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고전의 성소로 현대의 독자를 이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2/49/cover150/k7221383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324986</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