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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95
임솔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3월
평점 :
임솔아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문학과지성사
1. 작가는 소설과 시를 쓴다.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201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옆구리를 긁다」를 읽은 기억이 있다. 시인은 ‘나’에 집중한다. ‘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관계들,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골똘하다. 말의 꼬임을 지나치게 않아 표면적으로는 잘 읽힌다는 것도 장점이다.
* 메모
- 모래 10-11쪽 부분
오늘은 내가 무수했다./ 나를 모래처럼 수북하게 쌓아두고 끝까지 세어보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혼자였던 것일까.
- 2014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임솔아, 옆구리를 긁다 66-67쪽
빈대가 옳았다 까마귀 몇 마리가 쥐 한 마리를 사이좋게 찢어먹는
걸 구경하다가 아무 일 없는 길거리에 아무 일 없이 앉아 있다가 성
스러운 강물에 두 손을 적시다가 모를 일이지만 풍경의 어디선가
빈대가 옳았다 빈대는 안 보이고 빈대는 안 들리고 빈대는 안 병
들고 빈대는 오직 물고 물어서 없애려 할수록 물어뜯어서 남몰래 옆
구리를 긁으며 나는 빈대가 사는 커다란 빈대가 되었다
비탈길을 마구 굴러가는 수박처럼 나는 내 몸이 무서워지고 굴러
가는 것도 멈출 것도 무서워지고
공중에 가만히 멈춰 있는 새처럼 그 새가 필사적으로 날아가고 있
었다는 사실처럼 제자리인 것 같은 풍경이 실은 온힘을 다해 부서지
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모래들이 있다
빈대는 나 대신 나를 물어 살고 빈대는 나를 물어 나 대신 내 몸을
발견한다 빈대가 옳았다 풍경을 구경하다가
심사평)“빈대가 옳았다”로 시작해 “빈대가 옳았다”로 나아가기까지의 이미지의 변주를 시도한 수작, 주체를 존재와 비존재의 전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장소가 되게 하는 ‘빈대’는 역동적이고 다면적으로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힘차고도 세심한 상상의 기류라고 할 수 있다. (김기택, 이수명)
- 아홉 살 41-43쪽
나는 시민들이 다시 도시를 세울 수 있을 정도로만 나는 도시를/ 망가뜨렸다.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더 오래 게임을 하고 싶었으니까. 나는 나의// 시민들에게 미안하지/ 않다. 아무래도/미안하지가 않다./ 약간의 사고와 불행은 나의 시민들을 더 성실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