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어렸을 때, TV만화를 보며 그토록 상상하고 고대했던 2020년, 원더키디의 해가 드디어 왔다.

2020년은 엄청 공상과학스러운 시대가 될 줄 알았는데. 조지 오웰은 맞았고 김대중은 틀렸다.

('2020 우주의 원더키디' 원작자가 김대중 님이시다. 이거 DVD 같은 거 내주시면 참 좋겠다. 영원히 소장하게.)

그런 드라마틱한 변화 없이 소소한 소품들을 준비하며 차분하게 2020년을 맞이했다.

*

2020년 준비물

- 새해에 읽으려고 아껴둔 (선물받은) 책들

- 2020년 스타벅스 다이어리

- 올해도 역시 민음사 세계문학 클래식 캘린더 (민음사님, 매년 잘 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꼭!)

- 미니미니한 라이브워크 일력

- 독서기록을 위해 내가 직접 만든 떡메모지 (맘에 드는 떡메모지 없어서 또 만들어버렸다.)

*

2020년에 꼭 읽고 싶은 책들

- (현재 진행 중인) 밀란 쿤데라 전집 시리즈 (총 15권)

- (원더키디의 해를 맞이해 꼭 읽고 싶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총 7권)

- (민음사 온라인 패밀리 데이 때 구매한) 이탈로 칼비노 전집 (총 11권)

- (2019년에는 톨스토이를 모두 읽었으니)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아마도 26권)

- (늘 읽고 싶었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총 6권)

보통 1년에 100권을 못 읽으니, 이 시리즈들만 다 읽어도(총65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이상의 북킷리스트는 추가하지 않는 걸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2021년으로 넘겨야겠다.

*

2020년에 꼭 지키고 싶은 것

- 해마다 다짐하면서도 늘 지켜지지 않는 것. 읽은 책들은 모두 리뷰로 남기기.

올해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다짐해 본다. 더 야무지게 읽고, 더 부지런히 쓰기로.

- 그리고 이왕 읽는 거 좀 더 실용적인 책들을 읽어보기로 했다. (이건 나중에 공개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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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1-02 2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은 책의 대부분을 허접하게나마
리뷰로 남깁니다. 작년에도 몇 권이
저의 예리한 포위망을 뚫고 나갔네요.

뭐 그렇게 가는 거지요.

올해에도 우리 열심히 달려 보아요.

뒷북소녀 2020-01-03 09:09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리뷰 쓰시는 거 보면 정말 대단하시더라구요...
저는 정말... 할 수 없는...대단한 일을... 하고 계시는 레삭매냐님.^^

네넵. 우리 올해도 열심히 읽어보아요. 건강하세요^^

雨香 2020-01-10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년 전부터 쿤데라 읽기 계획만 세우고 있습니다. 저 전집 때문에요. ^^
(지금까지 읽었던 책은 3권인데, 전집 버전으로 새로 읽어보려고요, 7권인가 8권인가 이미 준비는 해두었습니다.)
 

언제나 목표는 100권.


2019년 시작하면서 호기롭게 1일1책을 달성해서 2019년에는 100권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시작은 했지만 완독하지 못한 책들이 너무 많아서 100권을 채우지 못했다.

그래도 양보다는 양질의 독서를 추구하니까. 2019년도 대만족.

우선, 톨스토이의 모든 작품들을 읽었고 지금은 밀란 쿤데라 전집 읽기에 도전 중이다.

다양한 작가를 만나는 것도 좋지만, 나는 이렇게 한 작가를 깊이있게 아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굳이 2019년 베스트를 뽑자면, 톨스토이와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 그리고 박완서 작가님.

(박완서 작가님 책은 많이 읽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 2020년에는 많이.)


  



나는 무언가를 꾸준하게 잘 못하는 편이고(호기심이 많아서라고 말하고 싶다.) 심지어 꾸준하게 정리도 잘 못하는 편인데,

유일하게 몇 년째 꾸준하게 잘 정리하고 있는게 바로 이 민음사 세계문학 캘린더이다.

(매년 꼬박꼬박 이 캘린더를 만들어주고 있는 민음사에 감사하며.)

제때에 정리하지 못한채 한달치를 한꺼번에 정리한 적도 있었지만 어쨌든 마무리는 깔끔하게 정리되었으므로.

2020년에는, (일명 원더키디의 해에는) 진짜 매일 매일 잘 정리하는게 목표.




1.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 페소아

2.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 페소아

3. 불안의 책 / 페소아

4.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 에드워드 올비

5. 반쪼가리 자작 / 이탈로 칼비노

6. 타샤의 계절 / 타샤 튜더

7. 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 / 나카노 노부코

8. 아우라 / 카를로스 푸엔테스

9. 픽션들 / 보르헤스

10.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이다혜

11. 우리가 녹는 온도 / 정이현

12. 밥보다 일기 / 서민

13. 그런 책은 없는데요 / 젠 캠벨

14. 그냥 흘러 넘쳐도 좋아요 / 백영옥

15.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 김금희

16.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17. 분노의 포도1 / 존 스타인벡

18. 분노의 포도2 / 존 스타인벡

19. 또또 / 조은

20. 쾌락독서 / 문유석

21. 그래도 우리의 나날 / 시바타쇼

22. 불멸 / 밀란 쿤데라

23. 소설의 기술 / 밀란 쿤데라

24. 오늘은 잘 모르겠어 / 심보선

25. 지적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 이즐라

26.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27.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김영민

28. 마녀체력 / 이영미

29. 연필로 쓰기 / 김훈

30. 여행의 이유 / 김영하

31. 성 / 프란츠 카프카

32. 그림자를 판 사나이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33.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 바닷마을 다이어리1 / 요시다 아카미

34. 한낮에 뜬 달 : 바닷마을 다이어리2 / 요시다 아카미

35.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 바닷마을 다이어리3 / 요시다 아카미

36. 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 : 바닷마을 다이어리4 / 요시다 아카미

37. 남빛 : 바닷마을 다이어리5 / 요시다 아카미

38. 4월이 오면 그녀는 : 바닷마을 다이어리6 / 요시다 아카미

39. 그날의 파란 하늘 : 바닷마을 다이어리7 / 요시다 아카미

40. 사랑과 순례 : 바닷마을 다이어리8 / 요시다 아카미

41. 다녀올게 : 바닷마을 다이어리9 / 요시다 아카미

42. 악의 / 히가시노 게이고

43. 부활1 / 레프 톨스토이

44. 카탈로니아 찬가 / 조지 오웰

45. 부활2 / 레프 톨스토이

46. 거지소녀 / 앨리스 먼로

47. 소년이로 / 편혜영

48. 이반 일리치의 죽음ㆍ광인의 수기 / 레프 톨스토이

49.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50. 딱 1년만 쉬겠습니다 / 브라이언 리아

51. 쪽지종례 / 이경준

52. 철학은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야마구치 슈

53. 잊기 좋은 이름 / 김애란

54.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55. 모든 순간의 물리학 / 카를로 로벨리

56.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심보선

57. 박완서의 말 / 박완서

58. 시절일기 / 김연수

59.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

60.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를로 로벨리

61. 신이 내린 필력은 없지만 잘 쓰고 싶습니다 / 심원

62. 그리고 한 문장이 남았다 / 허연

63. 밤으로의 긴 여로 / 유진 오닐

64. 유럽도시기행1 / 유시민

65. 내 이름은 루시 바턴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66. 아침 그리고 저녁 / 욘 포세

67. 항구의 사랑 / 김세희

68. 농담 / 밀란쿤데라 전집1

69.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70. 대도시의사랑법 / 박상영

71. 디어라이프 / 앨리스 먼로

72. 국화와칼 / 루스 베네딕트

73. 돈 / 에밀 졸라

74. 우스운사랑들 / 밀란 쿤데라

75. 삶은다른곳에 / 밀란 쿤데라

76. 목로주점1 / 에밀 졸라

77. 목로주점2 / 에밀 졸라

78. 이별의 왈츠 / 밀란 쿤데라

79. 웃음과 망각의 책 / 밀란 쿤데라

80. 닥터 지바고 1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81. 닥터지바고 2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82.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83. 우리 시대의 영웅 / 미하일 레르몬토프

8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85. 동유럽 근현대사 / 오승은

86. 웃음과 망각의 책 / 밀란 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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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1-02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밀란 쿤데라가 돋보이네요.

전 더블-업입네요 ㅋㅋㅋ

그 중에 카를로 로벨리 아저씨가 눈에
띄네요. 저도 읽다 말았는데...
올해는 다 읽어 보려구요.

새해에도 열심으로 고고씽~
해삐 뉴 이얼!!!

뒷북소녀 2020-01-02 16:17   좋아요 0 | URL
아마 올해 상반기까지 계속 밀란 쿤데라 전집을 읽고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카를로 로벨리... 제가 읽은 작품은 별로였어요.
좀 더 깊이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아직 중고서점에서 구매한 뒤 읽지 않은 한 권이 남아서...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이 책 마저 읽고 판단해 보려구요.

레삭매냐님, 원더키디의 해에도... 다양한 책 추천 부탁드려요.^^

카알벨루치 2020-01-05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민음사 캘린더를 배치해 이렇게 화려하게 페이퍼를 작성하시다니!!! 댓글을 안 달 수가 없군요! 우직함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멋지다는 말 밖엔 할 말이 없네요 그나저나 나는 뭐하고 있지!??? 새해 복 많이 받으소서!

뒷북소녀 2020-01-08 16:3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감사합니다. 그나마 제가 꼬박꼬박 남기는 기록이라서요.

카알벨루치님도 새해엔 더 재미있고 유익한 책들 읽으시면서...

새해 책 많이 받으세요.^^
 
우스운 사랑들 밀란 쿤데라 전집 2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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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기도 하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기도 한 우스운 소설들!

『우스운 사랑들』은 총 15권으로 구성된 '밀란 쿤데라 전집' 시리즈의 2권. 7편의 단편들이 실려있는 이 책은 밀란 쿤데라의 유일한 단편집이라고 하니 더 의미가 있는듯 하다. 『농담』이 먼저 출간되었지만, 사실은 정식으로 등단하기 전부터 써놨던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모두 진지하지 못한 관계, 우스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목록은 이렇다.

「누구도 웃지 않으리」

「영원한 욕망의 황금 사과」

「히치하이킹 게임」

「콜로키움」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에게 자리를 내주도록」

「이십 년 후의 하벨 박사」

「에드바르트와 하느님」

「누구도 웃지 않으리」는 『농담』 때문에 파멸한 '루드비크'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자투레츠키로부터 자신의 논문에 대한 논평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의 논문을 읽은 '나'는 그의 논문이 너무나도 형편 없었기 때문에, 논평을 써줄 수가 없었다. 자신 뿐아니라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 상황인데 굳이 자신이 총대를 메고 자투레츠키를 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에 그는 자투레츠키를 일단 돌려보낸 다음 그를 피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너무나도 간절했던 자투레츠키는 '나'의 의중을 눈치채지는 못한채 끈질기게 그를 쫓아다닌다. 그냥 솔직하게 논문의 내용이 최악이기 때문에 써줄 수 없다고 하면 될텐데, 그는 그 말을 하지 않으려고 이 핑계 저 핑계로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하게된다. 그런 일들 때문에 그는 사랑하는 연인과 주변 사람들, 학교 당국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제발! 내가 그 사람들 우습게 만들어 버릴 거야. 이거 전부 그저 농담일 뿐이라니까."

"농담하는 시대가 아니야. 지금 우리 시대엔 모든 걸 심각하게 받아들여." 「누구도 웃지 않으리」 39~40쪽

왜 솔직하게 말하지 않느냐고 묻는 연인에게 그는 이 모든 것이 그저 우스운 '농담' 같은 것이라며, 다른 사람들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해서 그런 거라며 가볍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 몰랐다. 현재의 의미를. 그리고 농담이 통하지 않는 시대라는 것을.

우리는 눈을 가린 채 현재를 지나간다. 기껏해야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것을 얼핏 느끼거나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중에서야, 눈을 가렸던 붕대가 풀리고 과거를 살펴볼 때가 돼서야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누구도 웃지 않으리」 12쪽

「에드바르트와 하느님」에 등장하는 에드바르트의 형은 스탈린이 죽은 날 한 소녀에게 장난을 쳤다가 학교에서 축출 당하고 만다. 스탈린이 죽은 줄도 몰랐던 에드바르트의 형은 한 여학생이 부동자세로 서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 주위를 뱅뱅 돌며 크게 웃었다. 그 여학생은 이 웃음이 정치적 도발이라 평가했고, 그 일 때문에 그의 형은 학교를 그만두고 노동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런 생활을 즐겼다.

훗날 에드바르트 또한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하느님을 믿는 여자친구를 따라 성당에 갔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과장된 믿음을 보였던 에드바르트는 그가 재직중인 학교 위원회에 소환된다. 당시 종교가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됐든 하느님을 믿고 성당을 다니는 것은 그들이 따르고 있는 당과 배치되는 것이었고 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드바르트는 네 명의 재판관 앞에서 자신의 믿음이 과장된 것이 아닌 진지한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자신의 행동이 장난이었다고, 과장된 것이었다고 말한다면 자신을 소환한 사람들의 진지함을 우습게 만드는 꼴이 되어 사태가 더 악화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그들은 6개월 후에 다시 판단하자고 했고, 그동안 교장이 그의 교화를 맡았다. 사실 교장은 에드바르트의 형이 그 옛날 장난을 쳤던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

에드바르트의 여자친구 알리체는 종교 탓이기도 했겠지만, 엄청나게 얌전하고 조신한 학생이었다. 그에게 가벼운 뽀뽀 정도만 겨우 허락할 정도였는데, 이 사건 이후로 알리체의 태도가 돌변한다. 알리체를 비롯한 사람들은 그를 마치 순교자처럼 여겼다. 그런 순교자에게 알리체는 기꺼이 자신의 입술과 몸을 맡겼다. 에드바르트가 그렇게 원할 때는 내주지 않더니, 이제서야 종교의 이름으로. 정말 웃긴 사랑이다.

"무엇 때문에 진실을 말해야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해야만 하게 하는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진실함을 미덕으로 여겨야만 하는가?"

(…)

"형이 그 사람한테 진실만을, 정말로 그 사람에 대해 형이 생각하는 것만을 말한다면 그건 형이 미친 사람하고 진지한 토론을 하는 데 동의한다는 뜻이고 형 자신도 미쳤다는 뜻일 거야. 우리를 둘러싼 세상하고도 정확히 마찬가지야. 형이 세상 앞에서 진실을 말하겠노라 고집한다면 그건 형이 세상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그렇게 진지하지 않은 어떤 것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건 자기 자신이 진지함을 다 잃어버린다는 거야. 나는, 나는 미친 사람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나 자신이 미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만 해." 「에드바르트와 하느님」 346쪽

정말 웃긴 해프닝은 「콜로키움」에 등장한다. 멋진 몸매를 가졌지만 얼굴 때문인지, 아무도 원하지 않는 간호사 엘리자베트. 심지어 그녀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플라이슈만 또한 그녀에게 치를 떤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몸매를 부각시키는 스트립쇼를 (상징적으로 다 벗은 상태로) 하지만 모두들 외면한채 수면제를 건네며 자라고 하자 다른 방으로 건너간다.

마침 복도를 지나던 플라이슈만이 가스 냄새를 맡고 그녀의 방으로 달려가고, 그곳에서 플라이슈만은 벌거벗은 채로 잠든 엘리자베트를 발견하게 된다. 아무도 보기를 원치 않았지만, 자살을 시도한 그녀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그녀의 벌거벗은 몸매. 그런데 여의사가 그것은 자살이 아니었다고 한다.

사람들 앞에서는 옷을 벗을 수 없었던 엘리자베트. 그녀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옷을 벗고 완벽하게 스트립쇼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수면제를 먹어서 잠이 왔고, 그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시려고 가스 버너에 물을 끓였는데 그 사이에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든 것이다.

분명 그 버너 위에는 물이 바닥난 냄비가 있었음에도 남자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엘리자베트가 잠에서 깨 자신의 실수였다고 밝혀도 플라이슈만은 자신이 너무 큰 죄책감을 느낄까봐 그것을 감싸주려고 그런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플라이슈만은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이 소설에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모든 남자와 관계를 맺었지만 유독 자신만은 거부했다던 창녀의 이야기를 들려준 과장. 창녀는 자신이 아닌 과장이 자신을 원하게 만들어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고 한다. 나머지 한 남자는 모든 여자와 관계를 맺었지만 절대 엘리자베트와는 관계를 맺지 않은 하벨 박사. 그녀가 그토록 자신을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와 관계를 맺지 않는게 마치 유행 같은 것이어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하벨 박사.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매력있고, 누가 누구를 원하는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이라는 것. 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혼자만 원한다면 우스운 꼴이 된다는 것.

아, 사랑이, 에로티시즘이, 이토록 가볍고 우스운 것이었나.

여기에 실린 7편의 단편들은 모두 『농담』이면서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기도 하다. (어쩌면 전집을 모두 완독하고 나면 더 많은 작품들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단편소설들은 그가 쓴 장편소설들과 닮았다. 주제의식도 비슷하고, 구성도 닮았다. 어쩌면 이 단편들이 그가 본격적으로 쓰고자 하는 이야기들의 밑그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을 몇 권 읽어보니 그가 집착하는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농담』에서도 그랬지만, 그는 시종일관 '농담(진지하지 못한 이야기)'을 던지고 있다. 심지어 농담이 통하지 않는 시대, 농담을 할 수 없는 시대인데도 말이다. 그는 왜 '농담'에 집착하는 것일까? 조상 중에 농담을 하지 못해서 죽은 귀신이 있었나 보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을 쓸 때 '7'이라는 숫자에도 집착한다. 그의 첫 소설인 『농담』을 쓰고 난 후부터 일곱 부분으로 구성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원래 6부로 구상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7장을 덧붙여 썼다고 한다. 그런데 이 단편집에 실린 단편 수 역시 7편. 이것 역시 그가 의도한 게 아니었을까?

제 소설들은 7이라는 숫자 위에 세워진 동일한 건축술의 변형인 셈이죠. 『소설의 기술』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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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12-02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도 요즘 쿤데라 전집 읽기 친구와 함께 하고 있어요. 쿤데라의 맨 처음 시작, 가장 나중 소설을 먼저 읽었는데 이 책도 조만간. 읽은지 너무너무 오래라 사진 올려주신 거 보고 다시 뽑아서 응?이런 표지였냐? 하고 확인했네요. ㅎㅎㅎㅎ

뒷북소녀 2019-12-02 21:32   좋아요 1 | URL
반갑습니다. 저도 지인들이랑 전집 읽기를 하고 있는데 정말 좋아요^^ 꼭 완독하신 후 함께 이야기 나눠보아요.

레삭매냐 2019-12-23 1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쿤데라의 책은 <무의미의 축제> 읽은
게 다네요 ㅠㅠ

<참을 수 없는... >부터 읽어야 하는데
만날 읽다 말고, 읽다 말구의 무한반복...

뒷북소녀 2019-12-31 15:23   좋아요 0 | URL
아, 전집에 없어서 <무의미의 축제>를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책도 넣어야겠어요.^^
요즘 계속 읽고 있는데... 읽을수록 재미있어요.
특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요.

새해에도 멋진 활동과 글 부탁드려요.
레삭매냐님^^

서니데이 2019-12-24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뒷북소녀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뒷북소녀 2019-12-31 15:2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저도 올해 서니데이님의 글들을 만나 즐거웠어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삶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 전집 3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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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삶은 다른 곳에 있어요! 완전히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가 그 유명한 '프라하의 봄' 시기에 집필을 시작해서 1968년 러시아 침공 이후에 끝마친 장편소설 『삶은 다른 곳에』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삶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훗날 시인이 되는 '야로밀'은 정확하게 어디에서 잉태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공원 벤치, 아니면 어느 오후 시인의 아버지의 친구의 아파트, 혹은 어느 날 아침 프라하 근교의 한 낭만적인 장소"(9쪽) 중 하나일 텐데, 시인의 어머니는 프라하 근교의 한 낭만적인 장소에서 잉태되었길 바랐다. 그곳만이 시인이 잉태되기에 적당한 곳이니까.

시인이 잉태되어 부랴부랴 결혼한 시인의 부모. 시인의 아버지는 이미 잉태된 시인을 떼버리자고 할 정도로 무심했고, 그런 아버지 때문에 시인의 어머니는 점점 더 시인에게 집착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시인의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고, 가족들은 수용소에서 그가 죽었다는 통지서를 받게 된다.

어머니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시인을 향할 수밖에 없었고, 시인 또한 그런 관심과 시선을 즐겼다. 특히, 어머니는 "인생은 잡초 같아요."(27쪽) 같은 시인이 짧게 내뱉는 단어들의 조합을 듣고 "문장의 각운"(25쪽)이 느껴진다며 칭찬했고 훗날 시인이 될 재능을 발견했다. '프라하 근교의 한 낭만적인 장소'에서 잉태된 것은 야로밀일뿐, 사실 시인은 이때 잉태된 것이 아니었을까? (어머니로부터)

어머니는 재능 있는 아들의 조기교육을 위해 한 화가에게 미술 교육을 맡긴다. 그런데 이 화가는 삐뚤삐뚤한 시인의 그림을 바로잡아주기는커녕 그것이 바로 예술적 재능이라고 말하고, 항의하러 온 어머니의 몸을 탐하기도 한다.

소년 '야로밀'은 왜 시를 썼을까?

사춘기 무렵의 소년들이 그러하듯이, 이즈음 야로밀도 성적 충동이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외출한 후 하녀 마그다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게 된 야로밀. 치밀하게 준비를 했지만, 마그다가 욕실 열쇠구멍을 쳐다보는 것 같자 이내 자기 방으로 도망쳐 버린다. 야로밀은 대담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해 격렬한 혐오감"(89쪽)을 느꼈고, 그 혐오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때의 불발된 행동과 감정들을 시로 써냈다.

내가 이토록 작디 작음을 문득 깨닫게 되면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어디로 도망을 치는가? 위를 향한 도피만이 밑으로 낮아지는 것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책상에 앉아 그 작은 책(화가가 다른 누구에게도 빌려 주지 않는다고 했던 그 소중한 책)을 펼치고 제일 좋아하는 시들에 집중하려고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또다시 모든 것이 거기에 있었으니, 저 멀리 그대 눈동자가 잠기는 바다가 있고, 또다시 눈앞에 마그다가 보이고, 그렇다, 그녀 몸의 고요 속에 깃든 눈송이를 포함하여 거기 모든 게 있었고, 닫힌 창을 너머 강물 소리가 방으로 들어오듯 찰랑이는 물소리가 시 속으로 들어왔다. 야로밀은 나른한 욕망이 온몸을 사로잡는 느낌이 들었고, 책을 덮었다. 그는 종이 한 장과 연필을 꺼내 엘뤼아르, 네즈발, 비에블, 데스노스 식으로 자기가 직접 글을 쓰기 시작하며, 운율도 각운도 없이 짧은 시행들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이건 그가 읽은 시들의 변주였지만 이 변주 속에는 그가 조금 전 겪은 것이 들어 있었고, 녹아내려 물로 변하는 슬픔이 있었으며, 수면이 올라가고 또 올라가 내 눈까지 차오르는 초록빛 물이, 몸이, 슬픈 몸, 내가 쫓아가는, 한없는 물을 가로질러 내가 쫓아가는 물속에 잠긴 몸이 있었다.

그는 이 구절을 큰 소리로, 선율적이고 비장한 목소리로 여러 번 읽으며 열광했다. 이 시의 근원에는 욕조 안의 마그다가 있고 욕실 문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댄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자기 체험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그 위에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그가 느낀 혐오감은 저 아래 있는 것이었다. 저 아래에서 그는 두려움에 질려 손이 축축해지고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 이 위에서, 시 속에서 그는 자신의 초라함과 아주 멀리 떨어진 저 위에 있었다. 열쇠 구멍과 자신이 비겁하게 굴었던 사건은 이제 그가 딛고 뛰어오르는 발판일 뿐이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방금 겪은 것에 종속되지 않았고, 그가 방금 겪은 것이 그가 쓴 것에 종속되어 있었다. 90~91쪽

*밑줄 : 책 본문에서 볼드체로 표시된 부분.

하녀 마그다가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다가 생긴 혐오감 때문에 쓴 시인데, 야로밀은 자신이 쓴 이 시를 읽고 열광한다. 더 웃긴 것은, 그의 어머니 또한 이 시를 엄청난 사상이 내재된 시로 여기고 감탄했다는 것이다. 이 시의 진실을 안다면, 어머니는 도대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마그다를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본 이야기라는 것은 짐작도 못 했고, 물속의 사랑이란 그녀에게 무언가 더 일반적인 것, 사랑의 신비로운 범주 아니 불가해한, 그 의미는 예언의 의미를 추측하듯 그렇게 추측될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라고 여겨졌다. 350쪽

이처럼 야로밀이 '시'에 집착하는 이유는, 시가 그를 "이 아래 세상"에서 "저 위"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위안이 있었다. 이 아래 세상, 일상의 삶을 살고, 학교에 가고, 어머니, 할머니와 점심을 먹는 여기에서는 단조로운 공허가 펼쳐져 있지만 저 위, 자신의 시 속에서 그는 푯말들을 세우고, 설명을 새긴 이정표들을 박아 놓았다. 그곳에서 시간은 서로 구분되고 달랐다. 그는 어떤 시의 시기에서 다른 시기로 건너갔고, (곁눈으로 흘깃 저 아래 세상을, 아무 일도 없이 끔찍하게 정체된 그곳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상상에 예기지 않던 지평선이 열리는 새로운 시기의 도래를 벅찬 황홀감 속에서 자신에게 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또 그는 별 볼일 없는 자신의 외모(또한 삶)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겐 어떤 특별한 풍요로움이 있다는 굳건하고 든든한 확신을 가질 수도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선택된 존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155~156쪽

시를 쓰면서 야로밀은 "별 볼일 없는 자신의 외모(또한 삶)"가 "선택된 존재"로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는 '신동'이라고 감탄하기까지 했으며, 저속한 내용의 시도 고상한 사상이 담겨있는 것으로 받아졌다.

야로밀은 어떻게 행동하는 삶으로 뛰어들었나?

이랬던 그가 각성하는 계기가 생겼다. 학창시절 함께 다녔던 수위의 아들이 있는데, 사실 이 친구는 아버지 때문에 왕따처럼 지냈다. 야로밀 역시 친구들로부터 하나씩 버림을 받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둘은 친구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만난 수위 아들은 경찰관이 되어 있었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가장이 되어 있었다. 청년 야로밀이 시를 쓰며 추상의 세계(혹은 거울 속 세계)를 헤매고 다닐 때 그는 '행동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게다가 야로밀만의 세계라고 생각했던 '시의 세계'를 알고 있었고, 야로밀의 시를 알아봐 주었다.

야로밀은 이렇게 말하며 또다시 이런 남성적인 직업과 이런 기밀과 아내를 가진 동창이 부러웠고 또한 아내 앞에서 기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아내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부러웠다. 그는 그의 진짜 삶, 자기는 아무리 해도 다가가지 못하는 (갈색 머리 남자가 왜 잡혀갔는지 전혀 영문을 모르고, 그저 단 하나, 그래야만 했다는 것밖에 알지 못했다.) 잔인한 아름다움(또한 아름다운 잔인함)을 지닌 그 진짜 삶이 부러웠으며, 그 자신은 아직 들어가지 못한 (동갑인 옛 동창 앞에서 다시 한 번 쓰라리게 깨닫는다.) 그 진짜 삶이 부러웠다. 357~358쪽

야로밀은 수위 아들의 삶이 부러웠다. 자신은 여전히 어머니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어머니 테두리 안에서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심지어 독립적인 공간 하나 갖지 못해 어머니 눈치를 보고 여자친구 집만 전전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서 시의 세계로 숨어들었는데, 수위 아들은 그와 정반대인 '진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소심하고 수동적이며, 여성적인 환경에 둘러싸인 자신과는 달리 남성적이며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삶. 심지어 시까지 잊지 않고 있다니.

야로밀은 이런 부끄러움 혹은 분노를 빨간 머리 여자친구에게 내뱉는다. 여자친구가 잠깐 늦었을 뿐인데, 야로밀을 잠시 기다리게 했을 뿐인데, 무엇 때문에 늦었는지 여자친구를 추궁하는 야로밀. 자신을 기다리게 만든 이유가 중요한 일이길 원했던 야로밀 때문에 여자친구는 오빠가 국경을 넘으려 한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 정도쯤 되면 야로밀이 진짜 중요한 일이라고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친구 오빠 이야기를 들은 야로밀은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시대가 정해준) '의무'에 따라 행동할 때라고 생각하고는 수위 아들을 찾아가 여자친구 오빠를 밀고한다.

그는 (경찰서처럼 중요한 건물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듯이) 수위실에 신분증을 제출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가 어떻게 걸어가는지, 한 걸음 한 걸음 어떻게 재듯이 걷고 있는지 보라! 그는 마치 어깨 위에 자신의 운명 전체를 지고 있는 것처럼 걷고 있다. 그는 건물 위층이 아니라 자기 삶의 위층, 아직 보지 못했던 것을 이제 내다보게 될 위층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420쪽

야로밀의 밀고 때문에 여자친구는 체포되고, 야로밀은 그녀를 만날 수가 없었다.

야로밀은 (유치하지만) 여자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자신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겠냐고 여자친구에게 물었더니 여자친구는 그냥 슬플 거라고만 대답했다. 이 대답을 들은 야로밀은 자신이 없어졌는데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냐고 크게 화를 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사라진 후 야로밀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여자친구가 풀려난 3년 뒤로 건너뛰어 버린다. 그녀는 예전부터 자신에게 의지가 됐던 '사십 대 남자'를 찾아가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그날 그녀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그 후 야로밀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야로밀은 그의 말처럼, 그녀가 사라지자 죽어버렸다.

그런데 그 죽음은 그렇게 위대하지도 비극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잉태와 달리 시인답지 않게) 며칠 뒤 감기에 걸려 죽었다. 심지어 어떤 이의 집에 갔다가 발코니로 쫓겨나는 바람에 감기에 걸렸던 것이다.

1부. 또는 시인이 태어나다

2부. 또는 자비에

3부. 또는 시인, 수음을 하다

4부. 또는 시인은 달린다

5부. 또는 시인, 질투하다

6부. 또는 사십 대 남자

7부. 또는 시인이 죽다

『삶은 다른 곳에』 역시 밀란 쿤데라의 여느 소설처럼 7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첫 소설인 『농담』을 쓰고 난 후부터 일곱 부분으로 구성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숫자'7'에 집착하고 있다.) 각 장의 제목처럼 1부, 3부, 4부, 5부는 시인의 이야기이며, 6부의 '사십 대 남자'는 여자친구가 시인을 만나기 전부터 알고 지냈던 남자로, 여자친구 입장을 전한다. 2부에 등장하는 '자비에'는 시인이 창조해 낸 가상의 인물이다. '자비에'의 정체는 7부에서 밝혀지는데, 그는 자신이 현실에서 살 수 없었던 삶을 '자비에'를 통해 대신 살았다.

처음에는 야로밀, 자기 혼자밖에 없었다.

나중에 야로밀은 자신의 분신, 자비에를 만들어 내 그와 더불어 또 다른 삶, 꿈과 같고 모험에 찬 다른 삶을 지어냈다. 477쪽

누구나 단 하나 유일한 자신의 삶 외에 다른 삶들을 살아 볼 수 없음을 아쉬워한다. 당신 또한 실현되지 못한 당신의 모든 잠재적 삶들, 당신의 모든 가능한 삶들을 살아 보고 싶을 것이다.(아! 실현 불가능한 자비에!) 우리의 소설은 당신과 같다. 우리의 소설 역시 다른 소설들, 그렇게 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않은, 다른 소설들이고 싶다. (…) 사람은 결코 자기 삶에서 나올 수가 없다면, 소설은 훨씬 자유롭다. 434쪽

『삶은 다른 곳에』는 '야로밀'(야로밀의 분신인 '자비에'까지)를 제외하면 주요인물들은 이름이 없다. (그러니까 하녀 마그다는 주요 인물이 아니라는 이야기) 아버지, 어머니, 빨간 머리 여자친구, 사십 대 남자, 수위의 아들, 영화학도, 노시인 등.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은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한 사람의 이야기로 특정 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시절을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그런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살았다고, 그들 모두가 비슷한 일들을 겪었었다고.

앞서 읽었던 두 편의 소설, 『농담』, 『우스운 사랑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읽었던 작품이다. (사실 할 이야기도 많아서 정리하기도 어렵다.) 『농담』부터 공통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인물 혹은 상황들이 있고, 그 모든 작품들 속에서 '농담' 같은 에피소드들이 존재한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들은 각각의 이야기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 얽혀있는 것 같다. 아니면 그 모든 작품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설계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삶은 다른 곳에 있어요! 완전히 다른 곳에! 4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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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02 1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쿤데가 전작으로 가시나요?

ㅋㅋ 전 꼴랑 한 권 읽은 게 전부네요.

<참을 수>도 읽다가 말았더라는. 그것
도 두 번이나.

뒷북소녀 2019-12-02 21:34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ㅋ 전집 15권 도전 중입니다. 완주하고나면 자랑할게요. 참고로 엄청 재밌어요.ㅋ

plmokn7755 2021-04-30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쿤데라의 에세이에서 <삶은 다른 곳에>를 쓸 때 카프카의 K를 말하면서 인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으려고 했었다고 하죠
 
이별의 왈츠 밀란 쿤데라 전집 4
밀란 쿤데라 지음, 권은미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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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사랑일까? - 쿤데라가 준비한 독자와의 이별

『이별의 왈츠』는 온천이 유명한 체코의 한 소도시를 배경으로 5일 동안 일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을이 시작되어 나무들이 노란색, 붉은색, 갈색으로 물들고 있던 어느 월요일(첫째 날), 그것도 일이 다 끝나 갈 무렵이었다. 소도시에서 불임 치료를 위해 온천장에 온 부인들을 담당하고 있는 '젊은 미혼 간호사 루제나'는 얼마 전 하룻밤을 보낸 트럼펫 주자 클리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클리마는 루제나의 비장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녀가 클리마의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바람끼가 조금이라도 있는 남자라면 이 순간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알 것이다.

유명 트럼펫 주자였던 클리마에게는 전직 가수이자 여전히 아름다운 아내 '카밀라'가 있다. 그는 비록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긴 하지만, 자신의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으며, 심지어 아내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문제의 그날밤, 두 사람에게 그 자리를 만들어 준 베르틀레프와의 대화인데, 과연 누가 그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무도 이 사실을 이해 못 해요. 그 누구보다 제 아내는 더욱 이해 못 하죠. 그녀는 위대한 사랑이 우리가 바람피우는 걸 포기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매순간 뭔가가 저를 다른 여자에게 접근하도록 만들어요. 그러나 그 여자를 소유하는 순간, 마치 다시 아내 카밀라 곁으로 저를 되던져 버리는 어떤 강력한 반동에 실린 것처럼 그 여자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되죠. 그래서 제가 다른 여자들을 찾는다면, 그건 단지 매번 새로 부정을 저지를 때마다 더욱더 사랑하게 되는 제 아내에게로 저를 이끌어 주는 이 반동과 약동, 그리고 (다정함과 욕망, 겸손에 가득 찬) 이 찬란한 비상 때문이라는 느낌을 받아요."

"그러니까 루제나 간호사는 당신에게 단지 아내에 대한 당신 사랑을 확인시켜 줬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그것도 극도로 기분 좋은 확인이죠. 왜냐하면 루제나 간호사는 처음 볼 땐 무척 매력적이거든요. 그리고 그 매력이 두 시간 후에는 완전히 다 사라진다는 것 또한 아주 유리하죠."

"(…) 당신 부인이 당신에게 전부라는 사실은 바로 다른 모든 여자들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고, 달리 말하면 당신에겐 창녀들이란 거죠. 그런데 그건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심한 모독이고 크나큰 멸시인 겁니다. 이봐요, 친구, 그런 사랑은 일종의 이단이에요." 50~51쪽

둘째 날(화요일), 클리마는 루제나의 사랑 혹은 감정에 호소하며 아이를 단념시키려고 소도시로 간다. 클리마가 그녀를 사랑하니까, 단 둘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아이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루제나는 아이가 자신에게 무기가 되어줄거라고 믿고 있다. 그 예로, 자신을 피하기만 하던 클리마가 아이 이야기를 하자마자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던가.

그녀는 자신의 전화 한 통으로 모든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유명한 트럼펫 주자가 수도에서 그녀를 만나러 왔으며, 멋진 자동차로 그녀와 드라이브했고 또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임신과 이 갑작스러운 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걸 의심할 수 없었다. 만약 그녀가 이 힘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임신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92쪽

그녀는 자기 배 속에 든 것을 아주 강렬하게 의식하기 시작했고, 그것이야말로 성스럽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녀를 변모시켰으며 격상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를 이 개 잡는 미치광이들과 구별 지어 줬다. 그녀는 자신에겐 포기할 권리가 없노라고, 자신에겐 타협할 권리가 없노라고 생각했다. 그녀 배 속에 유일한 희망이 있기에, 미래로 가는 유일한 입장권이 있기에 말이다. 145쪽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녀를 설득할 수 없게 되자, 클리마는 온천장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어떻게 보면 원인 장소 제공자였던) 미국인 사업가 '베르틀레프 씨'와 그녀의 상관인 '슈크레타 의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베르틀레프 씨는 클리마의 생각(사랑의 방식)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를 돕겠다고 한다. (왜냐하면 친구니까.)

당시 이 나라에선 쉽게 낙태를 허용하지 않았는데, 마침 슈크레타 의사가 낙태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위원회 소속이었다. 그러면서 클리마에게 협연을 제안한다. 자신이 드럼을 칠 수 있는데, 이 곳에서는 같이 연주할 사람들이 부족해서 할 수 없었다고. 클리마는 시간이 부족했지만(슈크레타가 제안한 날은 목요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 협연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슈크레타 의사에게 낙태 허용 여부에 대한 결정권이 있었고, 클리마에게도 일종의 알리바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요일(셋째 날) 아침, 슈크레타의 친구인 야쿠프가 그를 찾아온다. 야쿠프는 곧 이 나라를 떠날 예정이었는데, 예전에 슈크레타에게서 받은 파란색 알약(독약)을 그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다. 그냥 버려도 될텐데, 굳이 그에게 돌려주려고 온 것은 아마 핑계였으리라. 이 온천장에는 야쿠프가 후견인으로 돌봐주고 있는 소녀(올가)가 있었는데, 그는 올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올가는 처형당한 친구의 딸로, 야쿠프는 아버지처럼 그녀를 후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야쿠프는 올가의 아버지 때문에 감옥에 다녀오고 정치적 탄압을 당했다. 복수를 해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아버지처럼 올가를 후원해주고 있다. 아마도 (올가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관대함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비록 자신은 올가의 아버지 때문에 탄압 당했더라도 이렇게 돌봐주는 아량을 지녔다고. 그는 자신이 항상 품 안에 지니고 다녔던 연한 파란색 알약을 올가에게 보여주며 그 약의 사연을 들려준다.

"십오 년도 더 되었지. 이 약을 지닌 지. 감옥에 갔다 온 이후,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어. 적어도 하나의 확신이 필요하다는 거야. 자신의 죽음을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고, 또 그 방법과 때를 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 말이야. 그런 확신이 있으면 많은 일들을 견뎌 낼 수 있지. 언제든지 원할 때 최악의 사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아는 거지. (…) 이 나라에선 이런 것들을 언제 필요로 하게 될지 절대로 몰라. 그리고 그건 내게 원칙의 문제야. 모든 인간은 성년이 되는 그날 독약을 받아야 한다고 봐. 그걸 위해 엄숙한 예식도 거행되어야 하고. 자살을 고취하려는 게 아니라 반대로 더 큰 확신과 평온을 누리며 살기 위해 말이야. 자신의 삶과 죽음이 자기 손에 달렸다는 걸 알면서 살기 위해서지. (…) 슈크레타 의사는 실험실에서 생화학자로 일을 시작했지. 처음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런 부탁을 했지만 그는 독약을 주지 않는 게 자신의 도의적 의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슈크레타는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이 알약을 직접 만들어 줬어. (…) 무엇보다 그가 나를 이해했기 때문일 거야. 내가 자살극이라도 벌이며 혼자서 만족스러워하는 히스테리 환자가 아닌 걸 그는 알고 있었어. 무엇이 문제인지 그는 이해했던 거야. 오늘 나는 그에게 이 약을 돌려줄 거야. 더 이상 필요치 않을 테니까." 135~136쪽

한편, 루제나의 아버지는 다른 노인들과 함께 공원을 뛰어다니는 개들을 공공질서를 어지럽힌다며 포획하고 있다. 마침 개 한 마리가 위험에 처한 것을 목격한 야쿠프는 그 개를 안고 온천장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이때 루제나가 야쿠프를 막는다. 온천장은 온천 요양객을 위한 호텔이지, 개를 위한 곳이 아니라며. 하지만 남자의 완력을 어떻게 루제나가 막을 수 있겠는가.

"인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멍청이들을 생산해 낸다는 거야. 그게 내 전공이거든. 바보스러울수록 더 자식을 원해. 완벽한 인간들은 기껏해야 자식을 하나 낳고, 자네처럼 가장 나은 인간들은 자식을 아예 낳지 않기로 결정하지. 정말 엉망이야. 나는 말이야, 인간이 이방인들 사이에 태어나지 않고 형제들 사이에서 태어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시간을 보낸다네." 183쪽

불임 치료 전문의사로 이름난 슈크레타에게는 계획이 있다. 그는 자신이 치료해 준 미국인 사업가 베르틀레프의 양자가 되고 싶어한다. 물론 2년 전에 베르틀레프의 부인이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도와주긴 했지만, 심지어 그의 양자가 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기도 하지만, 슈크레타는 그의 양자가 되기 위해 2년 동안 끊임없이 암시를 해왔다. (하지만 베르틀레프는 조금 둔한 사람이었나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슈크레타의 불임 치료 비법을 야쿠프에게 들려준다. 심지어 이 비법은 베르틀레프에게도 통했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이 나라에서 태어나는 많은 아이들이 형제가 될 것이다.

"내 계획을 자네에게 말해 줄게. 시험관 안에 든 게 바로 내 정액이야. (…) 그 방법으로 난 벌써 상당히 많은 여성들의 불임을 치료했어. 여성들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게 상당 부분 단지 남편 때문이라는 걸 기억해 두라고. 나는 전국에서 많은 환자들을 받고, 사 년 전부터 이 도시 진료소에서 산부인과 검진 책임자로 일하지. 시험관에 주사기를 갖다 댄 다음 진찰받는 여성에게 번식력이 왕성한 액체를 주입하는 건 누워서 떡먹기야."

"아이를 몇 몇이나 가졌지?"

"수년 전부터 그 일을 하고 있지만 정확한 계산은 못 해. 내가 아버지인지 언제나 확신할 수는 없거든. 내 환자들이 자기네들 남편과 관계를 가짐으로써, 말하자면 내게 부정한 짓을 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 버리면 내 치료가 성공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어. 이곳에 사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더 확실하지."

(…) "그렇게 많은 여성들이 자네 아이를 갖는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일 거야……."

"모두가 서로 형제야." 185~186쪽

넷째 날, 드디어 콘서트가 열리는 목요일이다. 카밀라는 남편이 소도시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가 없었고(자신이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남편이 몰라야 했기 때문에), 남편을 따라 그곳에 갔다가 콘서트 같은 건 없다는 걸 알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녀는 그를 잃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바로 그 두려움 때문에 결국 그를 잃을지도 몰랐다!" (192쪽) 그러나 카밀라는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만약에 진짜라면 남편을 응원하기 위해 왔다고 말하면 될 것이다.

야쿠프는 루제나가 깜박하고 두고 간 약통을 발견한다. 그 약통에는 야쿠프가 늘 가지고 다니는 알약과 비슷하게 생긴 진정제가 들어 있었고, '하루 세 번 복용'하라고 적혀 있었다.

야쿠프는 "바로 오늘, 연한 파란색 알약이 든 약통이 테이블 위 자기에게 주어진 것은"(222쪽) 우연한 일이 아니며,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연한 파란색 알약의 필요성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내게 말하려는 건가? 아니면 독약에 대한 이런 암시를 통해 나에 대한 꺼지지 않는 원한을 표현하려는 건가?"(223쪽)

그는 호주머니를 뒤져 둘둘 말린 종이를 꺼내 펼쳐 보았다. 자기 알약을 살펴보니, 그녀가 잊고 간 약통 속 알약보다 조금 더 진해 보였다. 그는 유리 약통을 열고 한 알을 손바닥 위에 떨어뜨렸다. 그랬다. 그의 것은 약간 더 짙었고 좀 더 작았다. 그는 약통에 두 알약을 같이 넣었다. 그러고 나서 그 알약들을 살펴보니, 얼핏 본다면 두 알약의 차이를 전혀 알아챌 수 없다는 걸 확인했다. 제일 위에, 아마도 가장 사소한 장애를 치료하는 데 쓰는 아무 위험도 없는 알약 위에, 가면을 쓴 죽음이 놓여 있었다. 223쪽

그때 루제나가 돌아와 야쿠프가 들고 있는 자신의 약통을 발견한다. 그녀는 "당신에게 부탁이 있는데, 약 한 알만 주세요."(224쪽)라고 말하는 야쿠프를 뿌리치고 약통을 가져가 버린다.

그때부터 야쿠프는 루제나가 가져가버린 독약 생각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루제나가 지금 당장 그 독약을 먹을 수도 있는데, 마음 속으로 변명만 떠올리며 가만히 있었다. 도대체 루제나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약 한 알만 달라는 그의 부탁을 뿌리친 것도 루제나가 아닌가. 루제나의 행적을 (소극적으로) 찾아보기도 했으니, 이제 야쿠프도 더이상 취할 조치가 없는게 아닌가.

그때 그는 자기가 간호사에게 독약이 든 약통을 준 건 우연이 아니라(즉 의식이 마비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수년 전부터 기회를 엿보던 오랜 욕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강해 결국은 그런 기회를 만들고야 만 그런 욕망 말이다. 242쪽

소도시에 도착한 카밀라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기 위해 꾸며낸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로 콘서트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된다. 카밀라는 무대 아래서 콘서트를 지켜보고 있다. 콘서트가 끝나면 클리마와 만나기로 약속한 루제나 역시 카밀라와 같은 공간에서 콘서트를 지켜보고 있다. 바로 그때 베르틀레프가 나타나 루제나를 데리고 나간다. 루제나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간 베르틀레프는 뜬금없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마치 성자처럼, 아무 조건도 없이 루제나에게 사랑을 베풀려고 한다. (여기서는 '사랑을 베풀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하거나 주는게 아니라.) 루제나가 보이지 않자 클리마는 불안해 하고, 카밀라는 그런 남편을 의심스런 눈빛으로 쫓는다.

한편 올가는 "야쿠프에게서 아버지 역할이라는 가면을 벗기고 싶었다." (281쪽) 야쿠프는 "그 어떤 것보다도 이 여자아이와는 자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기쁨을 주고 호의를 베풀기를 바랐지만, 그 호의는 관능적 욕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 호의란 순결하고 사심 없고 모든 쾌락과는 무관하길 원했기 때문에, 그런 욕망을 완전히 없앴던 것이다." (289쪽) 야쿠프는 올가를 보살펴 주면서 보통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보다 높은 차원의 인격(관대함)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허세를 장착한 캐릭터) 그런데 내일이면 이 나라를 떠나서 다시는 올가를 볼 일도 없으니 하룻밤 정도는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카밀라에게 준 약통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랬을지도.)

"자네는 자네가 관대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 자네 속에 있는 당연한 증오와 혐오를 억눌렀던 거야." _슈크레타 의사 344쪽

드디어 마지막 다섯째 날, 루제나는 "클리마 없이, 프란티셰크 없이도 살 수 있음을 깨달았다.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과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너무나 빨리 늙게 하는 이 마술에 걸린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현명하고 성숙한 한 남자의 인도를 받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304쪽) "베르틀레프 씨는 매력적인 남자일뿐 아니라 무엇보다 수많은 달러와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여권을 가진 미국인 사업가"(369쪽)인데다가 심지어 아이가 없어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던가.

그날 아침, 간호사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한 야쿠프는 안도한다. 하루 세 번 복용하라고 적혀 있었으니, 적어도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야쿠프의 알약을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살아있다면 슈크레타가 준 것은 가짜 독약이었나보다. 그는 안도하며 공원을 산책하다가 카밀라를 마주치게 된다. 야쿠프는 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마치 자기 삶에선 의미 없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듯이.) 오늘 이 나라를 떠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가 마주친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카밀라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야쿠프는 마음 속에서 나오는 대로 거침없이 고백한다. "마음에 드는 건 바로 당신입니다. 너무나도 당신이 좋군요. 당신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우십니다." (316쪽)

야쿠프의 난데없는 고백을 들은 카밀라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느껴졌으며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를 클리마에게 묶어 둔 게 정말 사랑일까, 아니면 단지 그를 잃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일까?" (361쪽) "인생의 행로 저 앞쪽 어딘가에 트럼펫 주자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선이 그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처음으로 그녀에게 아무런 고통도 두려움도 불러 일으키지 않았다." (362쪽)

한편, 아침부터 찾아와 자신의 아이라며 소리치는 프란티셰크 때문에 흥분한 루제나는 약통에서 한 알을 꺼내 삼켰고, 격렬한 통증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농담』에서 헬레나가 죽으려고 먹었던 약이 복통을 불러오는 설사약이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설사약이 아닐까 했는데 진짜 독약이었다.

남자친구와 싸우다가 그녀가 직접 약통에서 약을 꺼내 먹었으니 사람들은 당연히 자살이라고 했는데, 어젯밤을 그녀와 함께 보낸 베르틀레프는 절대 그럴리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그녀를 죽였다며 체포하라고 한다. 죄를 지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대신 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처럼, 조건없이 사랑을 베푸는 성자처럼 말이다.

그녀가 죽었으니 클리마는 더이상 아이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심지어 슈크레타 또한 클리마의 편에 서서 그를 대변해 준다. 루제나가 그의 아이를 가졌을리 없다며, 다만 낙태를 하려면 아버지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온 클리마에게 부탁한거라고 말이다.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으니)

그리고 야쿠프는 자신이 진짜 살인자인지도 모른채 가짜 독약을 약통에 넣긴 넣었으니 '나는 열여덟 시간 정도 암살자였군.'이라고 생각하며 그곳을 떠난다. 인상적인 것은 야쿠프가 자신의 행동을 『죄와 벌』에서 전당포 노인을 죽인 라스콜리니코프와 비교했다는 것이다.

실험으로서, 그리고 자아 인식 행위로서의 살인, 이는 그에게 뭔가를 환기했다. 그래, 라스콜리니코프였다. 인간이 열등한 자를 죽일 권리가 있는지 알려고, 그리고 자신이 살인을 견딜 힘이 있는지 알려고 사람을 죽였던 라스콜리니코프였다. 그 살인을 통해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제기했던 것이다.

그래, 라스콜리니코프와 유사한 점이 있었다. 즉 살인의 무용성, 그 이론적 성격, 그러나 차이점도 있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재능 있는 인간이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등한 생명을 희생할 권리가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야쿠프가 간호사에게 독약이 든 약통을 주었을 때 그는 그와 유사한 어떤 것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야쿠프는 인간이 타인의 샐명을 희생할 권리가 있는지 자문한 게 아니었다. 반대로 야쿠프는 평생 인간에겐 그럴 권리가 없다고 믿었었던 것이다. 야쿠프는 사람들이 추상적 이념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희생하는 세계에 살았다. 야쿠프는 그런 사람들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때로는 뻔뻔하게도 순진하며, 때로는 슬프게도 비겁한 그 얼굴들,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하지만 은밀하게 자기 이웃들에게 잔인한 판결을, 그네들 스스로 그게 잔인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는 그런 판결을 내리는 그 얼굴들 말이다. 야쿠프는 그 얼굴들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증오했다. 더욱이 야쿠프는 모든 인간은 타인의 죽음을 원하며, 단지 두 가지, 즉 처벌이 두려움과 살인을 행하는 데 따르는 물질적 어려움이라는 두 가지 사실만이 인간들에게 살인을 단념케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야쿠프는 모든 인간들이 몰래, 그리고 멀리서 살인할 수만 있다면 인류는 몇 분 후면 사라지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실험은 완전히 헛된 것이라고 결론지어야만 했다. 352~353쪽

여기서 약간의 반전은 루제나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걸, 루제나를 죽인 사람은 야쿠프라는 것을 눈치챈 올가와 클리마의 마음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자 (언젠가는 하게 될) 이별 준비를 하는 아내 카밀라의 존재였다.

곳곳에 던져져 있는 상징 덩어리, 『이별의 왈츠』

모든 것을 읽어낼 수는 없었겠지만, 이 소설은 상징들로 가득하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자신과 닮은 형제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꿈꾸는 슈크레타와 늘 사람들에게 베풀고 다니는 성자 같은 베르틀레프의 대립이 돋보인다.

슈크레타가 꿈꾸는 사회는 마치 조지 오웰의 『1984』 속 사회와 같은 전체주의 사회 혹은 집단 내에서의 동지애(형제애)를 중시하는 공산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개인의 개성이나 감정은 배제하고, 똑같은 모습을 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상상만해도 소름 끼친다.

공원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개를 잡는 루제나의 아버지는, 그런 사회에서 아무런 의식없이 살고 있는 사람을 표현할 것일테고.

반면 베르틀레프는 유일하게 자유가 보장된 나라, 미국인 여권을 소지한 돈 많은 사업가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종교 조차 가질 수가 없는데, 어쩌면 그는 종교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의 방에는 후광을 받고 있는 턱수염 난 남자 초상화가 있고, 마치 예수처럼 사랑을 베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과 달랐지만 친구라는 이유로 클리마에게도 도움을 줬으며, 루제나에게는 조건 없는 사랑을, 심지어 슈크레타가 바라는 일이기 때문에 그를 입양하기까지 한다. 야쿠프가 지은 죄에도 마치 자신이 지은 것처럼 체포하라고 하고.

하필이면 옅은 푸른색인 독약 또한 마찬가지다. 푸른색은 희망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우울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게다가 후광처럼 영광 혹은 보다 고귀한 것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그 모든 것이 각각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같거나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필이면 푸른색인 걸 보면.

제목에 대한 고찰. 왜 『이별의 왈츠』인가?

왈츠는 남녀가 한 쌍이 되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추는 경쾌한 춤으로, 보통은 남녀 파트너가 계속 바뀐다.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만나도 어쩔 수 없이 (이별하고) 파트너를 바꿀 수 밖에 없다.

콘서트를 빌미로 모두 같은 공간에 모였던 '넷째 날', 그들은 각자 '이별의 왈츠(행위)'를 춘다.

1970년 대 초에 『이별의 왈츠』를 끝낸 후, 나는 작가로서의 내 행로가 완결됐다고 여겼다. 당시는 러시아 점령 치하였고 우리, 즉 아내와 나는 다른 일들을 근심하고 있었다. 내가 육 년 동안 완전히 중단되었던 글쓰기를 별 열정 없이 다시 시작한 것(프랑스 덕분에)은 프랑스에 온 지 일 년이 지나서였다. 잔뜩 주눅이 들어 있던 나는 다시 한 번 발밑에서 단단한 지반을 느끼기 위해 과거에 이미 만들었던 것을 되살려 보고자 했다. 『우스운 사랑들』의 후속편 같은 것을 써 보는 것 말이다. 엄청난 퇴보 아닌가! 『배신당한 유언들』, 249쪽

쿤데라는 1997년 체코어 판 후기에서, 처음에는 소설의 제목을 '에필로그'로, 나중에는 '이별'로 붙였으나 프랑스 출판인 갈리마르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금의 제목을 고쳐서 발표했다고 한다. '에필로그' 혹은 '이별'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그가 프랑스로 떠나기 전, 체코에서 마지막으로 쓴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는 체코를 떠나면 더이상 글을 쓸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담아냈고, 독자와의 '이별'도 준비했던 것이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소설 속 인물인 야쿠프에게 투영했을 것이다. 비록 야쿠프처럼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죽이진 않았더라도, 조국에 그 모든 사람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마음이 그렇게 무겁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이 그의 유일한 조국을 떠난다는 것, 그리고 다른 조국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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