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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중국어 첫걸음 (교재 + CD 1장 + 포켓북)
권수전 옮김 / 시사중국어문화원(시사중국어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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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학창시절 유난히 싫어했던 한문 시간, 같은 시간을 투자해 공부하면 다른 과목과 비교해 가장 성적이 낮았던 한문. 다행이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하는 바람에 더이상 어렵고 지루한 한문을 외워야 하는 부담은 없었다.

그랬던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게도 대학에서 중국어를 선택했다. 친구들은 모두 일본어를 배울 때 혼자서 중국어를 배웠다. 정말 신기한 것은 그렇게 어려웠던 한문과는 달리 중국어는 너무나도 재미있고 쉬웠다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언젠가는 좋아하는 중국 영화를 자막 없이 봐야지 다짐했는데, 직장을 다니면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서 다시 중국어에 손을 대면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처음부터 다시 복습을 하고 싶어서 선택하게 되었는데, 책의 레이아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예전에 내가 보면서 공부했던 책은 흑백에 행간이 좁아서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막 중국어를 처음 시작하는데 병음으로 표기가 되어 있지 않아서 일일이 중국어 사전을 찾아가며 공부를 하려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 초보에게 가장 큰 적은 진도일거라 생각한다. 이제 막 재미를 붙여 공부를 하려는 찰나에 단어의 병음을 찾느라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으면 그만 흥미를 잃어버리고 도중에 하차를 하게 된다.

반면에 이 책은 왕초보라도 혼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정리가 잘 되어 있고 난이도도 그다지 높지 않다. 함께 제공되는 포켓북에도 문법과 단어 정리가 알차게 되어 있어서 이동 중에 틈틈히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 책은 중국어를 처음 배우는 왕초보들에게 확실하게 기초를 짚고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조만간 자막 없이 중국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열심히 중국어와 친해지련다.

 

2007/10/24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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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열림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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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인호, 나는 그의 작품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제왕의 문』, 『잃어버린 왕국』 등 그가 쓴 작품들의 제목에서 풍겨오는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일부러 피해왔다. 덕분에 처음으로 『꽃밭』의 표지 날개에 있는 그의 프로필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가 다작을 하고 있는 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작가 생활을 해왔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는 불과 열여덟이라는 나이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해 문단에 데뷔했다. 40년이 넘도록 글쓰기에만 매진해 온 그, 그는 천재적인 소질을 살려 꾸준히 노력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 그를 나는 이제서야 만나게 되었다.   

 

『꽃밭』은 지난 10여년 동안 그가 써 온 짧은 단편들을 엮은 작품이다. 제목과는 달리 여전히 그의 문체가 강렬한 것이 아닐까 우려했던 나는, 단편들을 읽으면서 왜 그런 생각으로 그를 외면해 왔던가를 후회하게 되었다. 역시 그는 대작가였다. 이야기를 써내려 감에 있어 거침이 없었다. 정말 술술 읽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편안했다. 마치 그가 내 곁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했다. 나는 그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만 기울이면 되었다. 이것은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이지? 골치 아프게 그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귀만 기울이고 있으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대로 전해졌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바라볼 때처럼, 정말 그런 기분이었다.

게다가 김점선 화가의 그림들이 더욱 그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암투병 중에 그린 그림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그림들도 따뜻하고 편안했다.

좋은 책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을 쓴 이들이 전하고자 함이 그대로 읽는 이에게 전해지는 책, 그것을 알고자 읽는 이를 절대 불편하거나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 책.

 

꽃밭의 편암함과 따사로움에 흠뻑 취해 잠시 잊고 있었던 나의 꽃밭이 떠올랐다. 이제 막 씨를 뿌린 나의 꽃밭, 따가운 햇빛과 맞짱을 뜨더라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지루한 장마비와 쌀쌀한 가을 바람에도 꺾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 꽃밭으로 가꾸기 위해선 아직 손 볼 일이 많다. 나도 그만큼 나이가 들면 그런 꽃밭을 가질 수 있을까. 꽃밭의 아주 사소한 것까지 소중하고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을까. 누구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오랜만에 지나간 유행가를 들으며 한구절을 되새겨 본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어찌 그리도 농염한지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산에 누워 하늘을 보네.

청명한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푸른 하늘이여.

풀어놓은 쪽빛이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 유생 최한경이 지은 연시 중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

 

2007/10/24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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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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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 동물원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귀여운 곰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가 한편 있다. 할인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발랄한 20대인 현채는 멋진 로맨스를 꿈꾸지만, 항상 그녀 앞에 나타나는 남자와 사랑은 모두 시시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날 도서관 화집에서 "이것은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의 시작입니다. 당신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귀여운 곰같이 사랑스럽답니다. 다음엔 이 책을 빌려보세요."라고 적힌 메모를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메모에 적힌대로 책을 빌려보기 시작하고, 그 메모는 계속되었다. 드디어 그녀가 꿈꾸던 로맨스가 찾아온 것이다. 우리에게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영화는 개봉되기 직전에 제목이 바뀌었다. 그러나 굳이 원제를 밝히지 않더라도 영화의 내용만으로도 카롤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어느 날, 내가 사랑하던 남자가 내게 너무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 주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난 싫증을 느꼈다. 답장이 없는 그에게 편지를 쓰는 데도 지쳤고, 내 침대 위에 걸린 그의 사진을 어루만지는 일에도 신물이 났다." (p. 7)

 

스물다섯의 콩스탕스. 그녀는 로맹 가리와 그의 작품을 사랑한다. 그러나 로맹 가리를 마음껏 사랑할 수도, 그의 작품을 마음껏 읽을 수도 없다. 그는 이미 자살한 작가였고, 그의 작품은 모두 서른한 권밖에 되지 않는다. 일년에 한 권씩, 그의 책을 아껴가며 읽더라도 여자의 평균 수명을 고려한다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가 없는 그 이후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 그렇다고 그녀에게 달리 사랑할 남자도 없다.  그녀는 잠시 '외도'를 하기로 결심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시립 도서관에 회원으로 등록한다. 그녀가 로맹 가리에게 너무 빠져 있었던 탓일까. 여러 권의 책을 빌려 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책이 없다. 어떤 책들은 펼쳐보지도 않고 그냥 반납했을 정도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폴리냑의 『오렌지빛』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당신을 위해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노름꾼』. 좋은 책입니다. 그걸 당신에게 권합니다."

그렇잖아도 조언을 구하고 싶었는데, 도스또예프스끼라면 그녀가 좋아하는 로맹 가리와 같은 러시아 사람이 아닌가. 메모를 따라 읽은 『노름꾼』에서 그녀는 또다른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감히 시립도서관 소유의 책에 밑줄을 긋는 남자는 누구일까. 처음에는 그저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연필로 밑줄을 그어 놓은 부분들은 모두 그녀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녀를 향한 그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를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그어놓은 밑줄을 지우개로 지우기도 하고, 그녀의 마음을 밑줄로 그어 전하기도 한다.

 

설레임으로 가득한 대학 신입생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이 책을 발견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시립도서관이나 동네에 있는 작은 도서대여점을 이용했던 나는 그렇게 많은 책이 있는 곳은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책 냄새 폴폴나는 대학 도서관은 나에게 있어서 꿈의 공간이었다. 어릴적부터 내가 좋아했던 작품들은 대부분이 프랑스 소설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프랑스 소설 코너로 발을 옮겼는데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책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밑줄 긋는 남자』였다.

지금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사서 읽으며 기억하고 싶은 부분은 밑줄을 긋거나 표시도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빌려있는 책에 밑줄을 긋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종종 책의 한 귀퉁이를 접거나 밑줄을 그어놓은 책을 만나게 되면 짜증이 났다. 혹은 낙서를 하거나 이물질이 끼어있는 책을 발견하게 되면 경악을 금치 못하며 그냥 반납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밑줄 긋는 남자'는 달랐다. 그 남자 때문에 콩스탕스의 마음이 콩닥콩닥 뛰면 내 마음도 함께 뛰었다. 다음에는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 혹시 이 도서관 안에도 '밑줄 긋는 남자'가 있지 않을까, 도서관 안을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그때의 그 두근거림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였을까. 며칠전 이 책을 서점에서 구입해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런데 나에게 찾아온 것은 두근거림이 아닌 무덤덤함과 실망이었다. 무엇 때문일까? 이 책의 진가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때에만 발휘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그때 나는 콩스탕스보다 훨씬 어린, 갓 소녀에서 벗어난 학생이었다. 나 또한 그때는 현채처럼 로맨스를 꿈꾸었었다. 지금은 콩스탕스보다 나이가 많아졌고, 몇 번의 사랑을 거친 다음 더이상 로맨스를 꿈꾸지 않게 되었다. 혹여 도서관에서 '밑줄 긋는 남자'를 만나게 되더라도 살짝 썩소를 날려줄 수 있는 내공이 쌓였다고나 할까. 지금 나는 설레임으로 가득한 그때의 나를 상상하며 웃음을 머금을 수 밖에 없다. 언제 또다시 로맨스를 꿈꾸어 보겠는가.

 

사실 『밑줄 긋는 남자』는 나에게 '로맹 가리'라는 대작가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왜 그토록 콩스탕스가 그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공감했다. 그녀는 31편이 적어서 다른 작가와의 '외도'를 결심했지만, 내가 그를 만날 수 있는 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의 작품이 몇 권 되지 않고, 그나마 출간된 책들도 이미 절판된 책이 많아서 아쉬울 따름이다.

 

2007/10/0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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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0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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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어와 서술어가 제대로 갖추어진 단문을 좋아한다. 주어는 없이 수식어들만 장황하게 나열되어 있고, 언제 맺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문장을 싫어한다. 그런 문장들을 보면, 마치 머리에는 든 것도 없이 겉모습만 치장하다가 볼일 다 보는 사람 같다. 번역된 외국 문학들은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 문학 속에서 번역체 문장들이 난무하는 것은 도저히 볼 수가 없다. 그럴 땐 정말 책을 집어 던지고 싶다. (사실 말뿐이지, 한번도 그것을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쓰여진 문장이라면 무조건 쉽게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라고 하면 평소에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던 단어들을 무슨 지식의 척도인양 자랑스러워하며 쓰는 사람들, 그 글을 쓴 사람조차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모를 정도로 긴 복문을 쓰는 사람들, 내가 보기엔 그들은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글로 위장하려는 것 같다.

읽기 쉬운 단문으로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김훈을 좋아한다. 어떤 이들은 그의 문장이 너무 건조해서 읽히지가 않는다고 한다. 문장 속에서는 절대 그 누구의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그. 극도로 절제된 문장이지만 그 문장을 읽으면서 복받쳐 오름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한 지인이 내게 책을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다. 그즈음허삼관 매혈기』의 개정판이 나왔고, 나는 서슴없이 이 책과 김훈의 『강산무진』을 선택했다. 물론 『강산무진』은 단편들을 수없이 곱씹어 가며 읽었지만, 『허삼관 매혈기』는 반대였다. 내가 좋아하는, 읽기 쉬운 단문들로 쓰여져 있었지만 맺음이 없었다. 장면 하나 하나가 제대로 서술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무언 얼렁뚱땅 넘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래도 선물로 받은 책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읽었다. 어느 정도 읽고 나니 그의 문장이 적응이 되었고, 그 어느 문장보다 쉽게 쓰여졌다는 것을 느꼈다. 절대 문장이나 내용의 가벼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위화식의 해학'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허삼관 매혈(賣血)기』, 제목 그대로 '허삼관'이라는 인물이 '피를 파는 이야기'이다.

초코파이나 문화상품권에 자신의 피를 팔아본 사람이라면 '피를 파는 어려움'을 알 것이다. 정작 나는 팔고 싶어도 무엇이 미달이었는지 한번도 팔 수가 없었기에 그 어려움을 안다. 보통 '전혈'이라고 하는 320 혹은 400cc의 피를 뽑고 나면 2개월이 지나야 다시 할 수 있다. 허삼관도 다르지 않았다. 한번에 400리터씩, 3개월이 지나야 다시 팔 수 있다. 처음에 그는 피를 파는 것이 '건강의 상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를 팔아서 번 35원이 한달동안 노동을 한 대가보다 커서, 그 이후로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팔았다. 35원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한 그는 땀이 아닌 피를 팔아서 번 돈이었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한 그는 큰 돈이 필요할 때마다 피를 팔았다. 지금껏 자신의 아들이라 생각하며 키웠던 큰 아들이 사고를 쳐 병원비를 물어내야 할 때, 결혼 전에 마음에 품고 있던 여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후 대가를 치뤄야 할 때, 가족이 가뭄으로 끼니를 거르고 있을 때 등. 그때까지는 3달에 한번이라는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살이는 생각만큼 그리 규칙적이지 않다. 어느날 갑자기 큰 돈이 필요할 때가 찾아오기 마련이고, 또 그런 때가 한꺼번에 겹치기도 한다. 허삼관은 아픈 큰 아들과 둘째 아들 때문에 한달만에 다시 피를 팔고, 또 며칠 만에 거듭해서 피를 팔았다. 예전에는 피를 판 후 몸보신용으로 '돼지간볶음 한 접시와 황주 두 냥'을 꼭 챙겨 먹었지만, 지금은 한두푼도 아쉬워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그는 아들 녀석이 살 수만 있다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허삼관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투박하고 거칠었다. 삶이 고단해서였을까. 툭툭 내뱉는 말에서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허삼관은 자신과 결혼하기 전에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아내도 욕했고, 부적절한 관계로 태어난 첫째 아들도 미워했다. 그러나 부인을 위해, 아들을 위해 피를 팔러 뛰어 다니는 그의 모습에서 어느 누구보다 깊은 정이 느껴진다.

투박함 속에 해학이 있었다. 거친 말 속에는 정이 있었고 따뜻함이 있었다. 마치 대문을 열고 나서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처럼 친근함이 느껴졌고, 그리움이 생겼다. 지금도 어디선가 피를 팔고 반점에서 외치는 허삼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여기 돼지간볶음 한 접시하고 황주 두 냥 가져오라구. 황주는 따뜻하게 데워서 말이야." 

 

2007/10/0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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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vs LG, 그들의 전쟁은 계속된다
박승엽.박원규 지음 / 미래의창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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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에서 언론과 광고를 전공한 나는 과제로 기획서를 만들어야 할 기회가 많았다. 기업 자체나 브랜드, 개별 제품 등 다양한 주제의 기획서를 만들었고, 그럴때마다 경쟁사나 경쟁 제품에 대한 분석을 빠뜨리지 않고 보태야만 했다. 우리가 어떤 주제를 선택하든지 간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것이 '삼성'과 'LG'였다. '또 하나의 가족'으로 히트를 치고 있던 삼성의 기업이미지 광고를 분석할 때는 '사랑해요, LG'를 외치는 LG의 이미지광고를 함께 비교해야만 했다. 당시 주부들의 로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디오스' 냉장고에 대한 광고를 만들 때도 경쟁제품인 '지펠'을 분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LG가 삼성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우리집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온 집안이 삼성 브랜드로 도배가 되어 있다. 간혹 '에어컨은 휘센'이라는 것을 인정해서 세트로 나오는 가전제품 중에서 에어컨만 LG 제품을 구매한다던가, 'CD-RW는 LG가 최고'라는 이야기를 듣고 삼성 컴퓨터에 그것만 LG 제품으로 장착을 하긴 했지만 어느 것이 더 나은지 가치판단을 할 수 없을 때는 그냥 삼성 제품을 사곤 한다. 게다가 충성도 또한 뛰어나서 휴대전화가 100만원을 웃돌던 시절 샀던 애니콜 덕분에 재구매를 해야할 때마다 여전히 애니콜만 고집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굳이 삼성의 경쟁 상대를 찾아야 하는 경우라면 LG 말고 또 있을까 생각을 해보지만, 그렇지 않다면 LG가 삼성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전자, 통신, 화학, 금융 등 주요 사업 분야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두 기업의 경쟁 이야기. 비록 전공 때문에 관심은 많았지만 경제나 시장 상황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렵고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생활 깊숙이 삼성과 LG가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소한 기술 이야기가 나와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 그들의 경쟁 구도는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조금씩 접해 왔던 것이었고, 이전에 우리가 접한 것이 작은 나무였다면 이 책을 통해서 큰 숲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기술 개발 측면에서의 그들의 경쟁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제품 이미지나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삼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기술 측면에서도 삼성의 승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술 개발 측면에서는 그야말로 한치의 양보도 없는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의 크기 전쟁, VCR과 광디스크 시장에서의 속도 전쟁은 유치할 정도로 심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유치한 싸움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사활을 건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항상 맞불 작전으로 부딪히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대우의 '공기방울 세탁기'가 히트를 쳤을 때처럼 자신들을 위협하는 제3자가 등장하면 합세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 아들과 딸을 교환한 사돈지간이었다. 초창기에 뛰어들었던 방송 사업에서는 함께 출자하여 TV, 라디오 방송국을 세우기도 했다.

 

좋은 라이벌은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들은 경쟁 관계에 있었지만, 서로의 장점들을 모방하며 좀 더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때 전세계 1위라는 영광의 자리에 있었던 '소니'를 침체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 것은 '소니'를 견제할만한 경쟁 상대가 없었고 그로인해 '소니'를 자만에 빠지게 만든 '소니' 자신이었다. 반면에 삼성과 LG는 서로를 견제하며 끊임없이 기술 혁신을 추구하였고, 덕분에 오늘날은 국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서로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과거 미국의 제약회사들은 지나친 경쟁으로 제 살들을 깎아먹는 과오를 범하며 함께 추락해 갔다. 삼성과 LG는 함께 경쟁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상생의 길을 가야할 것이다.

 

2007/10/0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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